'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 아버지의 욕망
회사일때문에 왠만하면 리뷰 안 쓸려고 했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한 번 리뷰 쓰면 체력이 좀 닳기 때문이다. 근데 얼마전부터 몸이 좀 근질근질했다. 회사 일 때문에 매번 글 쓰면서 지쳤었는데 슬금슬금 리뷰 욕구가 샘 솟았다. 아니나 다를까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흥미로운 영화를 보고 나니 손맛이 슬슬 올라와서 결국 리뷰를 질러버렸다. 이러면서 블로그질도 슬슬 시동 걸어봐야겠다.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있는 블로그가 그리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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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건데 '윤종빈'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크지가 않았다. 그의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는 좋아하지만 <비스티 보이즈>를 봤을때는 "이 양반도 소 뒷걸음질 치다가 걸작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영화계에서는 그런 사례를 종종 봐왔기 때문에 윤종빈 감독도 결국 그런 경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그가 진화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진화는 윤종빈이 어떻게 상업영화에 녹아들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지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진화는 도에 지나칠 정도로 성공적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다. 여타 조폭영화의 정통성인 배신과 음모를 잘 보여준 가운데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선포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장르와 역사적 화두가 마치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적절하게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좀 짧게 마무리 짓기로 한다. 이미 누가 꺼내도 할 이야기이며 더 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구성이 탄탄하고 배치가 좋기 때문이다.
단,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인 '최익현'(최민식)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영화는 최익현에 대해 따로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최익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문제는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최익현'을 '아버지'의 모습으로 보기로 한다.
최익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읽어낸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간 영화를 통해 흘러 온 최익현의 삶을 돌아보자.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성공한 삶을 위해 서슴치 않고 모든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쁜 사람들과도 서슴없이 어울리고 높은 사람에게 굽신거리기도 한다. 어찌보면 비굴하고 치사한 삶이지만 최익현에게 그 모든 것은 서슴없이 행해지는 일상과도 같은 것이다.
최익현의 비굴한 삶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영화의 중간중간에 등장하지만 최익현은 자녀들(특히 3대 독자 외아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최익현이 검찰에 연행되며 걱정하는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모습과 외식하는 모습 등은 자녀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보여준다. 특히 엔딩에서는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최익현의 비굴한 삶은 가족들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아버지의 욕망'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우리네 아버지들은 물건 하나 더 팔기 위해 손님에게 굽신거리거나 직장 내에서 자리를 유지하며 성공의 길을 걷기 위해 상사에게 굽신거리는 등,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밖에서 굽신거리는 씁쓸한 모습을 보인다. 그게 아버지다.
자 그렇다면 관객은 '아버지 최익현'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가정, 특히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비굴함을 마다하지 않지만 딱히 존경할만한 아버지는 아니다. 보통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에서 생각하는 아버지는 고집불통에 답답한 구석이 있지만 자녀들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엔 존경할만한 인물인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마 관객이라면 최익현에게서 그런 아버지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관객에게 최익현은 일말의 존경할 가치도 없으며 그에게서 관객 각자의 아버지를 그릴수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리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최익현의 3대 독자 외아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물론 아들만 잘 키운 최익현을 바라보는 두 딸 입장은 그리 편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아들이 바라보는 최익현은 관객이 바라보는 최익현과 분명 다를 것이다. 마치 우리들 모두, 우리 각자의 아버지를 가장 멋있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것처럼, 최익현의 아들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누구보다 존경할 것이다. 다시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들은 우리들 각자에게는 너무나 크고 위대한 사람이지만 그들 역시 욕망과 시기, 질투, 분노를 가진 한 인간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인간'으로써의 아버지를 만나는 영화이며 인정하기 싫지만 최익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진짜 아버지를 이해하는 길인 것이다.
화두를 바꿔서 잠시 '윤종빈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는 꽤 신선했다. '죄-속죄'라는 화두를 '대한민국 군대'라는 익숙한 듯 낯선 공간에 녹여내표현한 작품이었다. 다음 작품인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주류영화에 녹아들려는 시도를 보였지만 '호스트바'라는 익숙한 듯 유치한 소재를 끄집어 내 큰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어쩌면 영화감독 윤종빈의 욕망은 장르영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편승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도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드디어 결실을 보인다.
무엇보다 윤종빈은 디테일의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방법을 터득함과 동시에 이야기에 있어서도 그만의 고집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또 한국영화사에 꽤 독특하게 자리잡고 있는 조폭영화의 정통성을 포기하지 않음과 동시에 역사적 시대상을 끌어들여 전혀 새로운 조폭영화를 만들어냈다. 이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두고 볼 일이지만 <범죄와의 전쟁>은 꽤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로 평가될 것이다.
여담1) 마동석과 조진웅은 <퍼펙트 게임>에 이어 다시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됐다. 둘의 인연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여담2) 영화의 배경이 부산이다 보니 낯익은 지명이 여럿 등장한다. 특히 필자 입장에서는 다니던 초등학교(남부민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완월동(공식지명 '부민3가)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은 꽤 반가운 일이다. 물론 지금은 초토화됐다고 들었다.
여담3) 영화를 함께 본 여자친구가 '관광호텔'과 그냥 '호텔'의 차이를 물었다. 알 것 같은데 은근히 구별이 잘 안 된다. 애정남에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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