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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빠서 언론시사회 못 간지도 오래됐다. 그런데 간만에 '억지로' 시간을 내서 '휴고'를 보러 갔다. 물론 상영관인 용산CGV가 집에서 10분 거리인 점도 크게 기여했지만 노골적인 '클로이 모레츠빠'인 필자에게 이 영화는 '필견의 리스트'인 셈이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휴고'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극장에서 필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레임을 마주하게 됐다. 그것은 성룡의 영화를 처음 보고 영화를 좋아하게 된 필자의 어린시절 설레임과 닮은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1931년과 1990년, 파리와 부산,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서 영화를 향한 너무나 닮은 설레임을 마주했고, 색다른 경험 또한 얻었다.

이건 참 좋은 영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꼭 클로이 모레츠 때문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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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3D영화라는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하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전 부터다. 지난 몇 년간 3D영화들은 여러 장르에서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의 스펙타클을 보여줬다. 그것은 관객들이 영화의 판타지를 조금 더 가깝게 맞이할 수 있게 한 장치였다.

이쯤에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사물에 대한 입체적 기록을 담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사진'이라는 테크놀로지로 발전했다. 사진의 다음에 등장한 우리의 기록매체는 무엇인가? 바로 '영상'이다. 1985년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열차의 도착'을 만들어 상영했을때 사람들은 스크린 속 열차가 달려오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런 스크린 속 개체의 모습이 익숙해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입체화' 시켜버리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어쩌면 3D라는 녀석은 영화를 너머 사물의 입체적 기록에 대한 하나의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휴고'는 전혀 다른 의미로 활용된 3D 테크놀로지의 예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휴고'는 그렇게 스펙타클한 영화도 아니고 화끈한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영화 속 공간은 1931년 몽파르네스 기차역을 중심으로 펼쳐져 한정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깐 내용만 따지자면 이 영화는 굳이 3D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3D는 매우 중요한 영화적 소재가 된다.


영화 '휴고'는 앞서 언급한대로 1931년 파리 몽파르네스 기차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휴고 카브레(아사 카퍼필드)는 화재로 아버지를 여의고 클로드(레이 윈스톤) 삼촌을 따라 몽파르네스 기차역에서 시계관리인으로 일하게 된다. 벽 뒤 공간에서 생활하며 경비원(사샤 바론 코헨) 몰래 시계관리일을 하던 휴고는 아버지의 유산인 고장난 자동인형을 고치기 위해 조르쥬 할아버지(벤 킹슬리)의 장난감 가게에서 부속품을 훔치지만 결국 조르쥬 할아버지에게 들키게 되고 자동인형의 설계도가 담긴 노트도 빼앗기게 된다.

노트를 되찾기 위해 휴고는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일하게 되며 할아버지의 집에서 사는 소녀 이사벨(클로이 모레츠)과도 가까워진다. 휴고는 이사벨과 함께 할아버지로부터 노트를 찾기 위해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둘은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둘은 할아버지가 갖고 있는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필수적이라 결국 밝히는데, 조르쥬 할아버지의 실체는 영화 '달세계여행'을 만든 마술사 조르쥬 멜리어스다. 즉, 이 영화 '휴고'는 조르쥬 멜리어스의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탐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실존인물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우선 조르쥬 멜리어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보자면 그는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기술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카메라를 개발하고 영화를 만든 인물이며 처음으로 영화에 '상상력'을 부여한 인물이다. 카메라의 발명은 뤼미에르 형제와 에디슨이 조금 앞서 있지만 오늘날 영화의 형태, 이야기가 있고 상상력이 있는 영화를 만든 최초의 인물이다.

'휴고'는 1차 대전을 겪은 이 조르쥬 멜리어스의 절망과 무성영화 시기의 설레임, 판타지를 다루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휴고'는 무성영화 시기의 걸작들을 일부 차용한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을 유쾌하게 차용한 휴고의 꿈 장면이나 버스터 키튼의 영화처럼 시계에 매달린 휴고, 그리고 영화 속 장면으로 등장하는 '국가의 탄생', 미국 서부영화(사실 필자도 많은 장면들이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휴고와 이사벨이 몰래 들어가서 감상한 버스터 키튼의 영화. 이 영화는 어느 순간 고스란히 무성영화를 찬양하며, 영화의 태동기였던 그 시기의 설레임을 담아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영화는 아주 독특한 경험을 안겨준다. 바로 멜리어스의 '달세계여행'을 3D로 보게 되는 경험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의 시작과 현재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체험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 3D는 '달세계여행'과 마주하기 위한 영화의 현재를 상징하는 하나의 접점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3D로 구현할 수 있는 시각적 체험요소가 적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3D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3D가 이렇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신선한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최고의 3D영화를 만들었던 제임스 카메론조차 상상도 못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3D 테크니션인 제임스 카메론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경지였다. 또 이 시도와 경지는 이후 다시 오지 못할 발상이자 도전이다. 그 누가 3D라는 테크놀로지와 영화의 발전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고 부드러운 탐구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같은 연구는 영화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가장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고 살아온 인물에게만 가능한 성찰이었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는 이 한 편의 영화로 제임스 카메론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오르지 못한 어떤 경지를 이뤄냈다.

영화를 사랑한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와 처음 만날때의 설레임과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따스한 감동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휴고'에게서 '아바타'만큼의 스펙타클이나 '틴틴:유니콘호의 비밀'만큼의 정교한 감각도 기대할 수는 없다. 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만큼의 긴장감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휴고'는 그 어떤 3D영화보다 낭만적이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 낭만은 영화를 사랑하는 만큼, 그것에 대한 설레임을 기억하는 만큼 고스란히 관객의 가슴 속으로 다가올 것이다.


여담1) 돌이켜 보면 이 영화의 '자동인형'은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본 그것과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여담2) 필자는 아주 노골적인 클로이 모레츠의 '빠'다. 뭐 꼭 그래서 이 영화를 좋게 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왠지 이 여배우에게 '마의 16세'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여담3) 저기 저 사샤 바론 코헨이 '보랏'의 그 친구인가? 자막 올라가는 거 보고 알았다.

여담4) 이 영화는 반드시 3D로 봐야 할 영화다. 그러나 굳이 큰 스크린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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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윗치'때부터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아주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접한 '클로버필드'도 꽤 괜찮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였다. 어느날 그 장르는 우후죽순처럼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 '파라노멀 액티비티'의 흥행은 이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으며 'REC'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 이 장르는 꽤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크로니클'은 이 보편적인 장르가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접하게 된 이 영화의 실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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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 '절대선'이라는 불문율이 깨진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어느 순간 히어로는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보다 "세상을 지켜야 하나"라는 물음을 갖게 됐다. 어쩌면 그 물음에 대한 근원은 갑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힘에 대한 활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스파이더맨3'에서도 히어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의 활용과 책임에 대한 고뇌를 이어갔다.

여기 정체불명의 괴물질로 인해 초능력을 얻게 된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초능력으로 장난을 치고 놀면서 또래 청소년들에 걸맞는 일을 벌인다. 하지만 이들 일당 중 단 한 명이 문제가 된다.

학교에서는 왕따고 집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불우한 청소년인 앤드류 디트머(데인 드한)는 또래의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고민들을 안고 있다. 게다가 초능력을 가지고 함께 다니는 친구 맷 게레티(알렉스 러셀), 스티브 몽고메리(마이클 B. 조던)와도 초능력을 함께 공유하게 된 계기로 친해진 것이다. 앤드류의 내면은 이미 꼬일대로 꼬여있다.

물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모든 청소년들이 위험한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어떤 계기가 작용한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 모두에게 '멘탈붕괴'의 위험을 안겨줄 사건은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영화 속 앤드류와 같은 청소년들에게 사건을 계기로 '멘탈붕괴'를 이끌어 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그만큼 앤드류는 감성이 예민한 나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앤드류는 여러 정황적 요건으로 봤을때 멘탈붕괴의 위험성을 가장 많이 가진 청소년이며 그에게 하필이면 가장 강력한 초능력이 부여되게 된다. 영화는 그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 앞서 언급한대로 '멘탈이 가장 연약했다'거나 '하필 캠코더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으로 추측된다.

영화는 바로 이런 상상에서 시작하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장 연약하고 위험하며 감성이 예민한 청소년에게 엄청난 초능력을 허락했을때 생길 수 있는 일. 그것에 대한 상상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앤드류같은 청소년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그것은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뉴욕 맨하탄 한 가운데 괴물이 나타난 것과 맞먹을 수준의 대재앙이 벌어진다.

분명 앤드류에게 그 힘은 어느 정도 정당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자신을 왕따시킨 친구들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쌓일대로 쌓인 입장에서 그 강력한 힘은 어쩌면 해방구와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즉 힘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에게 지배당하는 순간, 그에게 주어진 이 축복같은 일은 재앙으로 변한다. 그런 점에서 '크로니클'은 정통성을 고스란히 확보한 재난영화에 가깝다. 그 재난은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나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도 모두 해당된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것은 엄청난 돈에 대한 욕심일수도 있고, 돈, 권력에 관한 욕심일수도 있다. 또 이 영화에서처럼 '힘'에 관한 욕심일수도 있다. 이미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통해 성찰한 이야기지만 '크로니클'은 감당하지 못할 욕심이 불러올 재앙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영화적으로 '크로니클'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앤드류의 카메라 촬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앤드류의 카메라는 왜 그것이 촬영을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한 뚜렷한 근거가 없다. 단지 '좋아서' 시작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꽤 많이 눈에 띈다. 또 중간에 갑자기 개입한 케이시(애쉴리 힌쇼)의 카메라에 대해서도 뚜렷한 이유가 없다. 심지어 클라이막스에 임박하며 등장하는 CCTV와 핸드폰 카메라 등은 그저 '페이크 다큐인 척'만 하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며 반문할 수도 있지만 꽤 잘 만든 페이크 다큐였던 '블레어윗치'나 '클로버필드'는 모두 영상에 대한 배경이 있거나 그에 대한 철저한 근거를 구상해두고 있다. 그것은 페이크 다큐가 관객을 속이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즉 "이 영화는 진짜다"라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인 것이다. '크로니클'은 바로 그 점에 대해 크게 공을 들이지 않고 있다. 다 좋았던 이 영화가 유독 심심하게 느껴진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여담1) 영화 속 스티브 몽고메리의 본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에어덩크를 잘 할 것 같은 이름이다.

여담2) 앤드류는 '길버트 그레이프'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간혹 떠올린다.

여담3) 솔직히 대저택 파티 장면은 좀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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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이라는 영화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영화다. 언젠가 보고 싶었지만 아마 기억이 맞다면 극장 개봉도 안 한 작품이었을게다. 비디오로 직행해서 안타까웠는데 그나마 그 비디오도 구할 수가 없어서 못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10여년이 흐르고, 영화를 만든 브라이언 싱어는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다. 이미 '유주얼 서스펙트'로 그의 궁극적 초심을 엿봤지만 '유주얼 서스펙트'와 '엑스맨' 사이의 디딤돌같은 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그가 어떻게 거물이 되었는지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잊고 지낸 배우 브래드 랜프로를 추억하기에도 좋은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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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게된다는 것이 썩 좋은 경험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마치 그것은 식욕이나 성욕과 유사한 어떤 욕구와 같은 것이다. 이 욕구는 우리에게 기이한 인식을 심어주는데 그것은 음모론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기이한 인식이란 "세상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실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이 기이한 인식이 우리에게 "더 진실을 알고 싶다"라는 간절한 욕망을 심어주게 된다.

여기 토드 보든(브래드 랜프로)이라는 소년이 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모든 것이 완벽한(심지어 얼굴도 잘 생긴) 소년이다. 토드는 평소 관심이 많던 역사 과목에서 최고 학점을 받지만 여전히 뭔가 불만이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관한 부분은 교과서 외에 뭔가 더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느날 토드는 버스 안에서 한 할아버지를 보게 된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주도하던 나치 장교 커트 두센더(이안 맥컬렌)다.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은 2차 대전 유대인 학살의 진실을 알려줄 인물이라고 믿게 된 토드는 커트를 찾아가 위험한 거래를 제안하게 된다.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철저하게 토드와 커트의 이야기에 중심을 맞추고 있다. 토드는 커트를 통해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커트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토드에게 과거의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끈은 바로 '진실'이다. 토드는 커트를 통해 진실을 알고 싶어 하고, 커트는 토드를 통해 진실을 숨기려 한다. 이 관계는 친구처럼 가까우며 적처럼 팽팽한 이중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두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끈은 바로 '내면의 악마성'이다. 2차 대전 당시 악마적 학살행각을 보여준 커트가 40년 동안 잠재운 채 살아온 잔혹한 과거는 토드에 의해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토드 역시 커트로 인해 서슬퍼런 악마성에 눈을 뜨게 된다. 그렇게 일깨워진 악마성은 관객이 피부로 와닿을 만큼 친숙하지만 또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과 그것에 대한 숨김, 또 비밀을 저당잡힌 자의 공포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라기보다는 오히려 공포영화에 가깝다. 인물들은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시종일관 이들을 조종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그들 각자의 '비밀'이다.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을 조종하던 악령처럼 '비밀'은 인물들을 조종하며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공포의 실체'가 된다. 즉 이 영화에서는 '비밀'이 연쇄살인범이 되고, 귀신이 되며, 악령, 괴물 등의 역할을 한다.

이 친숙함이 주는 공포, 그리고 '비밀'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은밀한 것을 대하는 인간 각자의 마음가짐, 인간의 악마성을 잠재우는 유리보다 가녀린 이성의 끈. 이 영화야 말로 "너희들도 그러하다"라는 뻔하디 뻔한 괴담을 진짜인 것 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커트 두센더처럼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에는 꽤 의미있는 두 배우가 출연한다. 2008년 1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브래드 랜프로와 '간달프', '매그니토' 등 그럴싸한 캐릭터는 죄다 연기하는 이안 맥컬렌이다. '굿바이 마이 프렌드'로 국내에 잘 알려진 브래드 랜프로는 이 영화에서 순진한 소년과 지식욕에 사로잡힌 악마적 모습을 잘 분별해서 연기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그가 이 영화를 통해 이안 맥컬렌에게 뭔가 배웠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아있었다면 괜찮은 배우가 됐을 걸로 생각된다. 무려 잘 생기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안 맥컬렌은 다른 의미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 든다. 잘 알려진 이후 그의 모습 못지 않게 14년전 이 영화에서도 그는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게다가 늙기로 따지면 14년전 이 영화에서 오히려 더 늙은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개념이 헷갈릴 지경이다. 사실 이안 맥컬렌의 연기를 논하는 것이 이순재의 연기력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의미없는 일인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가장 뚜렷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악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악역을 연기하는 전세계 모든 배우들이 분명 본받을 부분이 있기에 한 번 언급하고 넘어간다.

영화를 만든 브라이언 싱어에게도 이 영화는 매우 의미있는 작품일 것이다. '유주얼 서스펙트'로 명성을 얻고 '엑스맨'으로 본격 헐리우드에 입성한 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중요한 디딤돌이자 징검다리인 셈이다. '유주얼 서스펙트'는 그에게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 됐다면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그가 정공법에 얼마나 능통한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헐리우드에서 영화감독으로서의 가능성과 역량을 점검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영화가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이다. 그리고 그 시험은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스티븐 킹의 원작을 매우 촘촘한 연출력으로 만들어냈으며 충분히 염통이 쫄깃해질만한 공포도 선사했다. 만약 그가 블럭버스터 감독이 아닌 공포영화 감독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필모그라피 가운데 '엑스맨'이나 '슈퍼맨 리턴즈'보다 '유주얼 서스펙트'와 이 영화를 주목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영화감독이 '볼거리'에 대한 부담감을 버린다면 얼마나 마음껏 날갯짓을 할 수 있는지, 이 영화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익숙한 공포를 아주 친숙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 배우들의 치밀한 연기와 감독의 꼼꼼한 연출력은 장르영화로써의 만족감을 충분히 안겨준다. 관객들이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이처럼 만드는 사람들도 부담감을 버려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이나 배우 모두가 얼마나 부담없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잘 드러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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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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