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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혹시 '로리'세요?". 난 그 질문에 딱히 부정하고 싶진 않다. 섹시한 글래머 여성보다는 풋풋한 소녀에게 끌리고 키 크고 늘씬한 여자보다는 작고 아담한 여자가 좋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로리'가 결코 성적으로 탐하는 로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러면 '로리'가 아닌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테지만 나는 '가공된 섹시'에서 천박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거부감이 먼저 일어나게 된다. 반대로 '가공된 순수'가 있다면 그것은 '순수'가 아닌 '귀여움'이라는 말을 얻게 된다. 귀여운거랑 순수한거랑은 다르다. 순수함은 쉽게 가공이 안된다. 난 그래서 그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머금은 소녀들이 좋다. 영화 '은교'에게서 난 어쩌면 그런 것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 기대는 만족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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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게 정확히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비록 명예로운 삶을 산 노년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결국에 남은 건 늙어버린 육신과 혼자된 외로운 순간만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은교'는 시작부터 노년의 외로움을 구구절절하게 표현해준다. 특히 이적요(박해일)의 탄력없고 늙어버린 육신은 그 자체만으로 이 명예로운 거장 시인의 노년을 잘 표현해준다.


그렇다면 '은교'는 이 노년의 시인과 여고생의 사랑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영화를 보기 전에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로리타'에서처럼 소녀를 탐닉하는 중년남자의 로맨스를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은교'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은 창작자의 고뇌이자 욕망의 탐닉에서 스스로를 구해내는 구도자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그렇다고 종교적인 영화는 아니다. 종교적인 해석의 여지는 충분히 있지만 그것이 의미가 없을만큼 이 영화는 '뮤즈' 은교(김고은)에 대한 이야기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대로 70대 노 시인과 여고생 은교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느 늦은 여름 이적요의 집에서 이뤄진다. 항상 비어있던 정원 앞 의자에 잠들어 있는 여고생 은교. 여린 목과 쇄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과 햇살처럼 새하얀 정강이에 묻은 흙은 적요의 마음 속 큰 돌덩이처럼 내려앉는다. 하지만 그 돌덩이의 무게감은 부담감이나 고뇌가 아닌 강렬한 새김과 같은 것이다.


영화는 은교의 과거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그녀가 어떤 학생이고, 집에서는 어떤 아이인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간혹 이야기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만이 은교의 과거에 대해 알 수 있는 전부다. 이처럼 과거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은교는 마치 '실존하지 않는 존재'처럼 이적요의 생활 속에 내려앉았다.


과연 실존했는지 조차 궁금해지는 이 소녀는 이적요의 집에서 가정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적요와 가까워진다. 이 과정은 사실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조용한 성격의 늙은 시인과 생기발랄한 여고생이 가까워지는 흔한 과정과 닮아있다. 심지어 이 과정은 참 풋풋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뒤틀리는 순간이 발생한다. 바로 거센 비가 내리던 그 날 밤이다.


비가 거세게 내리던 늦은 밤, 은교는 엄마에게 뺨을 맞은 채 적요의 집으로 찾아오게 된다. 비에 젖은 교복에 비친 은교의 속살은 적요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그리고 적요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는 은교를 보면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욕망을 마주하는 순간 이적요는 소설 '은교'를 집필하게 된다.

 

 

하지만 이적요와 은교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은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김무열)가 둘의 관계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늘 적요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존경한다"고 말하는 지우지만 은교가 나타나는 순간 그의 마음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지우의 마음은 사실 여러가지가 맞물려있다. 스승 적요가 은교와 가까워지면서 은교에게 스승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질투심'일

수 있다. 또 은교가 적요의 '뮤즈'가 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 그 뮤즈를 빼앗아 스승을 뛰어넘고 싶다는 탐욕일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마음은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지우는 영화 후반에 가서는 적요의 '뮤즈'인 은교를 탐하게 되고 그러기 위해 사실상 적요의 모든 것을 빼앗게 된다.


지우는 결국 '뮤즈'를 탐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 그 댓가는 적요의 분노에서 비롯되지만 그 분노는 다시 지우의 분노가 되면서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하지만 그 분노의 댓가는 결국 적요 역시 치르게 된다. 어쩌면 은교는 두 남자를 망쳐버린 팜므파탈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은교가 적요에게 나타난 뮤즈였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 뮤즈 역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창작자의 자격이 없는 자에게 넘어간 죄를 고백한다. 이 뮤즈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창작의 여신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는 창작의 가치를 아는 적요에게는 뮤즈가 되었지만 그 가치를 모르던 지우에게는 한낮 여자아이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은교'는 순수문학에 대한 찬양이자 창작물 그 자체로써의 존중을 담은 작품이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소설 '은교'를 쓰던 적요의 모습처럼 세심한 관찰과 피사체를 대하는 심연의 마음가짐이 '은교'를 만들어냈다. 적요는 은교를 탐하고 싶은 유혹의 순간도 몇 차례 있었지만 그 욕망이 끓어오를수록 그것은 연필 끝으로 다가가 작품으로 승화된다. 문학을 하는 창작자로써 아주 훌륭한 마음가짐인 것이다. 욕망은 손끝으로 다가가 작품으로 태어나고 욕망이 사라진 사랑은 소녀에 대한 배려와 관심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은교는 나비처럼 창작의 정원을 훨훨 날게 된다. 하지만 창작의 가치를 모르던 대중소설가(그 이름조차 아까운 인물이지만) 지우는 적요의 정원에 사는 이 아름다운 나비를 탐했다. 정원을 날지 못하고 지우의 손 안에 갇힌 나비는 더 이상 뮤즈가 아니다. 뮤즈를 도둑맞은 적요는 분노가 싹 터 위험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게 되고 그로 인해 처참한 결과를 불러온다.


누구에게나 뮤즈는 찾아온다. 그것은 창작자에게는 뮤즈라는 이름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기회'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 쓸쓸한 여생만 남은 적요에게 은교는 활기를 불어넣어줄 소녀였다. 그 소녀는 어떻게 붙잡아두려 해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나 더 오래 붙잡아 두느냐는 뮤즈를 만난 창작자의 역량에 따른다. 영화 '은교'는 인생의 뮤즈를 만났을때 가져야 할 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또 창작에 대한 숭고함과 그 가치를 논하는 영화다.

 

 

영화적으로 '은교'는 서정적이고 탐미적인 모습을 여러차례 오고 간다. 대체 장소가 어딘지 궁금해지는 적요의 집과 여름날의 햇살은 영화의 서정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헌책의 냄새가 스크린 너머로 풍겨올 것 같은 적요의 서재와 옻칠한 나무의 감촉이 느껴질 것 같은 집의 내부는 현대한국의 순수문학 속 배경을 재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적요의 시선으로 흘깃 바라보는 은교의 모습은 탐미적 욕망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지우가 바라보는 은교는 욕망의 대상이 된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그 자신도 창작자를 갈망하고 꿈꾸지만 방법이야 어찌됐건 자신에게 찾아온 뮤즈를 알아채지 못하고 거짓된 방법으로 그녀를 탐한다. 그런 그에게 은교는 어찌됐건 징벌로 다가온다. 특히 지우의 마지막 장면은 CG티가 좀 나긴 했지만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다이나믹한 장면이다. 이 영화가 마냥 서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관객들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건축학개론'에 버금가는 서정적이고 풋풋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은교'는 그 이면에 욕망과 에로티시즘을 품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캐릭터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바로 그 에로티시즘을 이겨내는 것이다. 이 영화, 참 여러가지가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 역시 배우들을 꼽을 수 있다. 박해일이 70대 노인 역할을 맡았다고 했을때 논란도 많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역할에 박해일이 필요했음을 알게 된다. 영화를 보면 적요의 역할이 70대 노인이었음을 잊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몰입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은교 역할의 김고은 역시 여고생의 생기발랄함과 관능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의 역할대로 은은하게 적요의 마음을 휘젓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연기를 펼친다. 서지우 역의 김무열은 '작전'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욕망을 쫓는 모습이 닮아있지만 그 욕망은 더 깊은 내면에 있고 섬세하다. 이 영화는 늦여름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고운 반짝임을 뽐내는 적요 서재 책상 위의 책처럼 배우들 역시 곱게 반짝이고 있다.


'은교'는 여러모로 매력이 많고 다이나믹하며 서정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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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늘 그렇듯 극장가의 비수기다. 뭐 그런 이유로 볼 영화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건축학개론'은 이것을 떠나서 개인적인 기대작이다. '불신지옥'의 탄탄함에 매료된 것도 있었고 극장에서 미쳐 보지 못한 '시라노:연애조작단'같은 풋풋한 멜로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은 앞의 두 작품과 전혀 무관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영화를 다 본 한 기자는 "'불신지옥'에서의 연출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은 이성적 재미를 떠나서 감성적으로 깊게 파고든 영화다. 또 이성적 재미를 압도적으로 제압할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것이 '멜로영화'가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건축학개론'은 근래 보기 드물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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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과거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그것은 남의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나 자신의 과거에 대한 집착이다. 누군가 말한대로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필자는 그게 참 심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건축학개론'은 참 반가운 영화였다. 필자만큼 과거에 대한 이토록 섬세한 관심을 보인 사람이 있다는게 다행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화에 녹아 들어있는지도 잘 보여진다. 집과 사랑, 그것은 모두 과거라는 자양분을 먹고 사는 예쁜 꽃과 같은 것이다.

'건축학개론'은 30대 중반의 건축가 승민(엄태웅)에게 15년전 첫사랑 서연(한가인)이 찾아와 제주도에 집 재건축을 의뢰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승민과 서연은 대학시절 건축학개론 수업을 듣다가 처음 만난 사이로 같은 동네에 산다는 우연과 그로 인해 건축학개론 숙제를 함께 시작하며 가까워진다. 승민은 서연의 집을 설계하고 짓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가슴 아팠던 첫사랑의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된다.

어떤 영화들은 이성에 호소하게 되고 그만큼 분석하고 이해해야 할 거리들을 안게 되기 마련이다. 또 어떤 영화들은 화려한 비주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기도 한다. '건축학개론'은 철저하게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는 영화다. 사실 멜로영화들은 어느 정도 이런 면을 가지고 있다. '건축학개론'은 그런 면에서 참 철저한 영화다. 이 영화는 영화적 해석이나 기술력에 대한 이해가 무의미 할 정도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나 첫사랑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태어난 집'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감성에 기댄 리뷰를 써야겠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대한 이성적 이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여자에 대한 궁금한 점 하나를 떠올리게 됐다. 왜 여자는 과거의 사랑에게 가끔 연락을 건네게 되는가? 뭐 실제로 이런 연락을 받아 본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 여성들의 심리가 궁금해졌었다. 이에 대해 몇몇 주변의 여성 지인들이 말하기를 "현재의 사랑과 뭔가 잘 안 풀릴때 과거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서연이 승민을 찾아오게 된 이유도 이 말과 일치한다. 서연도 그랬고 그때 필자에게 연락 온 그 여자애도 마찬가지로 과거를 찾게 한 암울한 현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거는 현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잠깐의 도피처가 되는 것인가? 물론 서연은 "제주도 집 재건축"이라는 현재와 과제를 가지고 승민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로 인해 첫사랑의 풋풋했던 감정을 떠올리게 되며 스스로를 정화한다. 어쩌면 남자에겐 좀 이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승민(이제훈)에게 서연(수지)과의 첫사랑은 그리 아름다운 기억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기적이고 아픈 작업은 승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결혼을 앞둔 여자(고준희)가 있고 결혼준비가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승민이 있고 지낸 것은 너무도 변해버린 현재의 자신과 다른 순수했던 과거였다.

서연은 힘들어진 현재만 제외하면 크게 바뀐 것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승민은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이 변했다. 수줍음 많은 순수한 청년은 능글맞은 아저씨가 되어버렸고 담배도 못 피우던 순진남은 어느덧 골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사랑에 서툴지만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던 이 청년은 쫓기듯 결혼을 준비하게 된다. 승민이 변하지 않은 것은 엄마에게 막 대하는 것 하나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서연을 만나면서 변하게 된다. 한결같이 보살펴 준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태어나서부터 쭉 살던 정릉의 낡은 집, 쪽팔림을 안겨줬던 짝퉁 티셔츠에 대한 소중함과 추억을 알게 된다.

승민은 서연의 집을 짓는 작업과 함께 결혼준비도 하게 된다. 그리고 서연의 집이 완성되고 승민은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는 순간 승민의 마음 속에는 서연을 통해 알게 된 '낡은 것의 소중함'을 안고 떠났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현재란 참 힘들고 치열한 삶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삶은 더욱 편리해졌지만 소중한 것을 잊고 살게 된다. 핸드폰이 생기면서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연락을 주고 받게 됐지만 삐삐로 연락을 주고 받던 시절의 간절함이나 기다림은 사라진지 오래다. MP3로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음악을 다운받는 탓에 CD 한 장 사서 듣는 그 시절 음악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건축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현재에는 캐드나 3D MAX로 설계하던 집모양을 당시에는 두꺼운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이어붙였다.

...여기까지는 아날로그 예찬론자들의 이야기다. 필자는 여기에 한가지를 더 보태고자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첫사랑이 아름답고 풋풋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 모든 것이 느리고 불편했던 아날로그 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 대한 배움이 늦어져 순수를 간직한 20살 소년소녀들과 모든 것이 디지털이 아닌 물질로 존재했기에 갖게 되는 추억의 매개체들. 그리고 불편함이 오해를 만들어냈기에 더 가슴아프게 기억되는 첫사랑. 첫사랑이 아름답고 풋풋하고, 가슴 아프고 아쉬웠던 이유는 그것이 아날로그 시대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사랑' 그 자체가 아날로그적 감성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화두인 '집' 역시 추억을 한껏 머금은 '유기체'다. 특히 '태어난 집'이라면 어릴적부터 있었던 많은 추억을 곳곳에 새겨두고 있다. 그것은 승민의 정릉 집이나 서연의 제주도 집 모두 마찬가지다. 승민의 엄마가 30년 넘은 정릉집을 떠나지 않는 이유, 병상에 누운 서연의 아버지가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 집 재건축을 맡긴 서연이 집의 몇몇 기억들을 허물지 않길 바라는 이유. 낡은 집에 새겨진 많은 기억들이 우리가 우리였음을 알게 해주는 아이덴티티가 된다.

아날로그적 낡은 단독주택의 추억을 모르는 세대들은 아마 대부분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것이다. 물론 아파트에서도 많은 추억이 있을테지만 단독주택의 낡은 추억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집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조금만 낡아도 그 집에 불편함을 느끼고 새 아파트를 찾으려 한다. 아마도 이용주 감독은 이 영화의 낡은 집을 첫사랑과 같은 것으로 봤을 것이다. 아름답고 슬프고 즐거웠던 많은 추억들을 머금고 있지만 그 추억을 미쳐 꺼낼 엄두도 못 내고 그것이 아름다웠음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낡은 집에서 변해버린 현재의 자신과는 다른 낡은 과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건축학개론'은 잊고 지낸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는 첫사랑을 떠올리게 되고 누군가는 오래전 살던 집, 그리고 누군가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필자 역시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돌이켜보니 나 자신이 과거에 비해 참 많이 변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영화를 보게 될 30대 관객들은 첫사랑을 떠올림과 동시에 과거의 자신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영화를 만든 이용주 감독은 "반성문을 쓰는 심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관객 역시 이 영화를 보며 변해버린 현재의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때 그 첫사랑에게 했던 실수들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 시절, 첫사랑에게 오해로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떠올려보자. 그 실수, 오해 역시 첫사랑의 추억이다.


여담1) 리뷰를 다 쓰고 보니 뭔가 통속적이고 흔한 이야기다. 뭐...어쩔 수 없다. 영화가 필자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 영화 차갑게 보는 기자들조차 촉촉하게 적셔버린 작품이니 오죽하겠는가? 잠시 과거에 좀 젖어살자.

여담2) 영화는 예쁜 배우와 예쁜 집, 예쁜 제주도가 앙상블을 펼친 작품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쁜 배우란 한가인과 수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심지어 엄태웅까지 예뻐보일 지경이다.

여담3) 아마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봄날은 간다'를 볼 적에 강릉 이후 오랜만인데, 정말 영화 속 장소인 정릉과 제주도에 가보고 싶어졌다. 영화 속 저 집 아직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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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빠서 언론시사회 못 간지도 오래됐다. 그런데 간만에 '억지로' 시간을 내서 '휴고'를 보러 갔다. 물론 상영관인 용산CGV가 집에서 10분 거리인 점도 크게 기여했지만 노골적인 '클로이 모레츠빠'인 필자에게 이 영화는 '필견의 리스트'인 셈이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휴고'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극장에서 필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레임을 마주하게 됐다. 그것은 성룡의 영화를 처음 보고 영화를 좋아하게 된 필자의 어린시절 설레임과 닮은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1931년과 1990년, 파리와 부산,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서 영화를 향한 너무나 닮은 설레임을 마주했고, 색다른 경험 또한 얻었다.

이건 참 좋은 영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꼭 클로이 모레츠 때문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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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3D영화라는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하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전 부터다. 지난 몇 년간 3D영화들은 여러 장르에서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의 스펙타클을 보여줬다. 그것은 관객들이 영화의 판타지를 조금 더 가깝게 맞이할 수 있게 한 장치였다.

이쯤에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사물에 대한 입체적 기록을 담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사진'이라는 테크놀로지로 발전했다. 사진의 다음에 등장한 우리의 기록매체는 무엇인가? 바로 '영상'이다. 1985년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열차의 도착'을 만들어 상영했을때 사람들은 스크린 속 열차가 달려오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런 스크린 속 개체의 모습이 익숙해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입체화' 시켜버리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어쩌면 3D라는 녀석은 영화를 너머 사물의 입체적 기록에 대한 하나의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휴고'는 전혀 다른 의미로 활용된 3D 테크놀로지의 예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휴고'는 그렇게 스펙타클한 영화도 아니고 화끈한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영화 속 공간은 1931년 몽파르네스 기차역을 중심으로 펼쳐져 한정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깐 내용만 따지자면 이 영화는 굳이 3D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3D는 매우 중요한 영화적 소재가 된다.


영화 '휴고'는 앞서 언급한대로 1931년 파리 몽파르네스 기차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휴고 카브레(아사 카퍼필드)는 화재로 아버지를 여의고 클로드(레이 윈스톤) 삼촌을 따라 몽파르네스 기차역에서 시계관리인으로 일하게 된다. 벽 뒤 공간에서 생활하며 경비원(사샤 바론 코헨) 몰래 시계관리일을 하던 휴고는 아버지의 유산인 고장난 자동인형을 고치기 위해 조르쥬 할아버지(벤 킹슬리)의 장난감 가게에서 부속품을 훔치지만 결국 조르쥬 할아버지에게 들키게 되고 자동인형의 설계도가 담긴 노트도 빼앗기게 된다.

노트를 되찾기 위해 휴고는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일하게 되며 할아버지의 집에서 사는 소녀 이사벨(클로이 모레츠)과도 가까워진다. 휴고는 이사벨과 함께 할아버지로부터 노트를 찾기 위해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둘은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둘은 할아버지가 갖고 있는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필수적이라 결국 밝히는데, 조르쥬 할아버지의 실체는 영화 '달세계여행'을 만든 마술사 조르쥬 멜리어스다. 즉, 이 영화 '휴고'는 조르쥬 멜리어스의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탐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실존인물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우선 조르쥬 멜리어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보자면 그는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기술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카메라를 개발하고 영화를 만든 인물이며 처음으로 영화에 '상상력'을 부여한 인물이다. 카메라의 발명은 뤼미에르 형제와 에디슨이 조금 앞서 있지만 오늘날 영화의 형태, 이야기가 있고 상상력이 있는 영화를 만든 최초의 인물이다.

'휴고'는 1차 대전을 겪은 이 조르쥬 멜리어스의 절망과 무성영화 시기의 설레임, 판타지를 다루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휴고'는 무성영화 시기의 걸작들을 일부 차용한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을 유쾌하게 차용한 휴고의 꿈 장면이나 버스터 키튼의 영화처럼 시계에 매달린 휴고, 그리고 영화 속 장면으로 등장하는 '국가의 탄생', 미국 서부영화(사실 필자도 많은 장면들이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휴고와 이사벨이 몰래 들어가서 감상한 버스터 키튼의 영화. 이 영화는 어느 순간 고스란히 무성영화를 찬양하며, 영화의 태동기였던 그 시기의 설레임을 담아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영화는 아주 독특한 경험을 안겨준다. 바로 멜리어스의 '달세계여행'을 3D로 보게 되는 경험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의 시작과 현재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체험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 3D는 '달세계여행'과 마주하기 위한 영화의 현재를 상징하는 하나의 접점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3D로 구현할 수 있는 시각적 체험요소가 적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3D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3D가 이렇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신선한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최고의 3D영화를 만들었던 제임스 카메론조차 상상도 못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3D 테크니션인 제임스 카메론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경지였다. 또 이 시도와 경지는 이후 다시 오지 못할 발상이자 도전이다. 그 누가 3D라는 테크놀로지와 영화의 발전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고 부드러운 탐구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같은 연구는 영화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가장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고 살아온 인물에게만 가능한 성찰이었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는 이 한 편의 영화로 제임스 카메론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오르지 못한 어떤 경지를 이뤄냈다.

영화를 사랑한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와 처음 만날때의 설레임과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따스한 감동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휴고'에게서 '아바타'만큼의 스펙타클이나 '틴틴:유니콘호의 비밀'만큼의 정교한 감각도 기대할 수는 없다. 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만큼의 긴장감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휴고'는 그 어떤 3D영화보다 낭만적이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 낭만은 영화를 사랑하는 만큼, 그것에 대한 설레임을 기억하는 만큼 고스란히 관객의 가슴 속으로 다가올 것이다.


여담1) 돌이켜 보면 이 영화의 '자동인형'은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본 그것과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여담2) 필자는 아주 노골적인 클로이 모레츠의 '빠'다. 뭐 꼭 그래서 이 영화를 좋게 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왠지 이 여배우에게 '마의 16세'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여담3) 저기 저 사샤 바론 코헨이 '보랏'의 그 친구인가? 자막 올라가는 거 보고 알았다.

여담4) 이 영화는 반드시 3D로 봐야 할 영화다. 그러나 굳이 큰 스크린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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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윗치'때부터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아주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접한 '클로버필드'도 꽤 괜찮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였다. 어느날 그 장르는 우후죽순처럼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 '파라노멀 액티비티'의 흥행은 이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으며 'REC'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 이 장르는 꽤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크로니클'은 이 보편적인 장르가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접하게 된 이 영화의 실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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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 '절대선'이라는 불문율이 깨진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어느 순간 히어로는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보다 "세상을 지켜야 하나"라는 물음을 갖게 됐다. 어쩌면 그 물음에 대한 근원은 갑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힘에 대한 활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스파이더맨3'에서도 히어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의 활용과 책임에 대한 고뇌를 이어갔다.

여기 정체불명의 괴물질로 인해 초능력을 얻게 된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초능력으로 장난을 치고 놀면서 또래 청소년들에 걸맞는 일을 벌인다. 하지만 이들 일당 중 단 한 명이 문제가 된다.

학교에서는 왕따고 집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불우한 청소년인 앤드류 디트머(데인 드한)는 또래의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고민들을 안고 있다. 게다가 초능력을 가지고 함께 다니는 친구 맷 게레티(알렉스 러셀), 스티브 몽고메리(마이클 B. 조던)와도 초능력을 함께 공유하게 된 계기로 친해진 것이다. 앤드류의 내면은 이미 꼬일대로 꼬여있다.

물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모든 청소년들이 위험한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어떤 계기가 작용한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 모두에게 '멘탈붕괴'의 위험을 안겨줄 사건은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영화 속 앤드류와 같은 청소년들에게 사건을 계기로 '멘탈붕괴'를 이끌어 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그만큼 앤드류는 감성이 예민한 나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앤드류는 여러 정황적 요건으로 봤을때 멘탈붕괴의 위험성을 가장 많이 가진 청소년이며 그에게 하필이면 가장 강력한 초능력이 부여되게 된다. 영화는 그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 앞서 언급한대로 '멘탈이 가장 연약했다'거나 '하필 캠코더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으로 추측된다.

영화는 바로 이런 상상에서 시작하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장 연약하고 위험하며 감성이 예민한 청소년에게 엄청난 초능력을 허락했을때 생길 수 있는 일. 그것에 대한 상상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앤드류같은 청소년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그것은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뉴욕 맨하탄 한 가운데 괴물이 나타난 것과 맞먹을 수준의 대재앙이 벌어진다.

분명 앤드류에게 그 힘은 어느 정도 정당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자신을 왕따시킨 친구들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쌓일대로 쌓인 입장에서 그 강력한 힘은 어쩌면 해방구와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즉 힘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에게 지배당하는 순간, 그에게 주어진 이 축복같은 일은 재앙으로 변한다. 그런 점에서 '크로니클'은 정통성을 고스란히 확보한 재난영화에 가깝다. 그 재난은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나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도 모두 해당된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것은 엄청난 돈에 대한 욕심일수도 있고, 돈, 권력에 관한 욕심일수도 있다. 또 이 영화에서처럼 '힘'에 관한 욕심일수도 있다. 이미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통해 성찰한 이야기지만 '크로니클'은 감당하지 못할 욕심이 불러올 재앙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영화적으로 '크로니클'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앤드류의 카메라 촬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앤드류의 카메라는 왜 그것이 촬영을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한 뚜렷한 근거가 없다. 단지 '좋아서' 시작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꽤 많이 눈에 띈다. 또 중간에 갑자기 개입한 케이시(애쉴리 힌쇼)의 카메라에 대해서도 뚜렷한 이유가 없다. 심지어 클라이막스에 임박하며 등장하는 CCTV와 핸드폰 카메라 등은 그저 '페이크 다큐인 척'만 하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며 반문할 수도 있지만 꽤 잘 만든 페이크 다큐였던 '블레어윗치'나 '클로버필드'는 모두 영상에 대한 배경이 있거나 그에 대한 철저한 근거를 구상해두고 있다. 그것은 페이크 다큐가 관객을 속이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즉 "이 영화는 진짜다"라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인 것이다. '크로니클'은 바로 그 점에 대해 크게 공을 들이지 않고 있다. 다 좋았던 이 영화가 유독 심심하게 느껴진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여담1) 영화 속 스티브 몽고메리의 본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에어덩크를 잘 할 것 같은 이름이다.

여담2) 앤드류는 '길버트 그레이프'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간혹 떠올린다.

여담3) 솔직히 대저택 파티 장면은 좀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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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이라는 영화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영화다. 언젠가 보고 싶었지만 아마 기억이 맞다면 극장 개봉도 안 한 작품이었을게다. 비디오로 직행해서 안타까웠는데 그나마 그 비디오도 구할 수가 없어서 못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10여년이 흐르고, 영화를 만든 브라이언 싱어는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다. 이미 '유주얼 서스펙트'로 그의 궁극적 초심을 엿봤지만 '유주얼 서스펙트'와 '엑스맨' 사이의 디딤돌같은 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그가 어떻게 거물이 되었는지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잊고 지낸 배우 브래드 랜프로를 추억하기에도 좋은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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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게된다는 것이 썩 좋은 경험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마치 그것은 식욕이나 성욕과 유사한 어떤 욕구와 같은 것이다. 이 욕구는 우리에게 기이한 인식을 심어주는데 그것은 음모론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기이한 인식이란 "세상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실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이 기이한 인식이 우리에게 "더 진실을 알고 싶다"라는 간절한 욕망을 심어주게 된다.

여기 토드 보든(브래드 랜프로)이라는 소년이 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모든 것이 완벽한(심지어 얼굴도 잘 생긴) 소년이다. 토드는 평소 관심이 많던 역사 과목에서 최고 학점을 받지만 여전히 뭔가 불만이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관한 부분은 교과서 외에 뭔가 더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느날 토드는 버스 안에서 한 할아버지를 보게 된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주도하던 나치 장교 커트 두센더(이안 맥컬렌)다.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은 2차 대전 유대인 학살의 진실을 알려줄 인물이라고 믿게 된 토드는 커트를 찾아가 위험한 거래를 제안하게 된다.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철저하게 토드와 커트의 이야기에 중심을 맞추고 있다. 토드는 커트를 통해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커트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토드에게 과거의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끈은 바로 '진실'이다. 토드는 커트를 통해 진실을 알고 싶어 하고, 커트는 토드를 통해 진실을 숨기려 한다. 이 관계는 친구처럼 가까우며 적처럼 팽팽한 이중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두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끈은 바로 '내면의 악마성'이다. 2차 대전 당시 악마적 학살행각을 보여준 커트가 40년 동안 잠재운 채 살아온 잔혹한 과거는 토드에 의해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토드 역시 커트로 인해 서슬퍼런 악마성에 눈을 뜨게 된다. 그렇게 일깨워진 악마성은 관객이 피부로 와닿을 만큼 친숙하지만 또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과 그것에 대한 숨김, 또 비밀을 저당잡힌 자의 공포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라기보다는 오히려 공포영화에 가깝다. 인물들은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시종일관 이들을 조종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그들 각자의 '비밀'이다.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을 조종하던 악령처럼 '비밀'은 인물들을 조종하며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공포의 실체'가 된다. 즉 이 영화에서는 '비밀'이 연쇄살인범이 되고, 귀신이 되며, 악령, 괴물 등의 역할을 한다.

이 친숙함이 주는 공포, 그리고 '비밀'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은밀한 것을 대하는 인간 각자의 마음가짐, 인간의 악마성을 잠재우는 유리보다 가녀린 이성의 끈. 이 영화야 말로 "너희들도 그러하다"라는 뻔하디 뻔한 괴담을 진짜인 것 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커트 두센더처럼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에는 꽤 의미있는 두 배우가 출연한다. 2008년 1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브래드 랜프로와 '간달프', '매그니토' 등 그럴싸한 캐릭터는 죄다 연기하는 이안 맥컬렌이다. '굿바이 마이 프렌드'로 국내에 잘 알려진 브래드 랜프로는 이 영화에서 순진한 소년과 지식욕에 사로잡힌 악마적 모습을 잘 분별해서 연기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그가 이 영화를 통해 이안 맥컬렌에게 뭔가 배웠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아있었다면 괜찮은 배우가 됐을 걸로 생각된다. 무려 잘 생기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안 맥컬렌은 다른 의미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 든다. 잘 알려진 이후 그의 모습 못지 않게 14년전 이 영화에서도 그는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게다가 늙기로 따지면 14년전 이 영화에서 오히려 더 늙은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개념이 헷갈릴 지경이다. 사실 이안 맥컬렌의 연기를 논하는 것이 이순재의 연기력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의미없는 일인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가장 뚜렷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악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악역을 연기하는 전세계 모든 배우들이 분명 본받을 부분이 있기에 한 번 언급하고 넘어간다.

영화를 만든 브라이언 싱어에게도 이 영화는 매우 의미있는 작품일 것이다. '유주얼 서스펙트'로 명성을 얻고 '엑스맨'으로 본격 헐리우드에 입성한 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중요한 디딤돌이자 징검다리인 셈이다. '유주얼 서스펙트'는 그에게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 됐다면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그가 정공법에 얼마나 능통한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헐리우드에서 영화감독으로서의 가능성과 역량을 점검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영화가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이다. 그리고 그 시험은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스티븐 킹의 원작을 매우 촘촘한 연출력으로 만들어냈으며 충분히 염통이 쫄깃해질만한 공포도 선사했다. 만약 그가 블럭버스터 감독이 아닌 공포영화 감독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필모그라피 가운데 '엑스맨'이나 '슈퍼맨 리턴즈'보다 '유주얼 서스펙트'와 이 영화를 주목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영화감독이 '볼거리'에 대한 부담감을 버린다면 얼마나 마음껏 날갯짓을 할 수 있는지, 이 영화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익숙한 공포를 아주 친숙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 배우들의 치밀한 연기와 감독의 꼼꼼한 연출력은 장르영화로써의 만족감을 충분히 안겨준다. 관객들이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이처럼 만드는 사람들도 부담감을 버려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이나 배우 모두가 얼마나 부담없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잘 드러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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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때문에 왠만하면 리뷰 안 쓸려고 했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한 번 리뷰 쓰면 체력이 좀 닳기 때문이다. 근데 얼마전부터 몸이 좀 근질근질했다. 회사 일 때문에 매번 글 쓰면서 지쳤었는데 슬금슬금 리뷰 욕구가 샘 솟았다. 아니나 다를까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흥미로운 영화를 보고 나니 손맛이 슬슬 올라와서 결국 리뷰를 질러버렸다. 이러면서 블로그질도 슬슬 시동 걸어봐야겠다.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있는 블로그가 그리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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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건데 '윤종빈'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크지가 않았다. 그의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는 좋아하지만 <비스티 보이즈>를 봤을때는 "이 양반도 소 뒷걸음질 치다가 걸작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영화계에서는 그런 사례를 종종 봐왔기 때문에 윤종빈 감독도 결국 그런 경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그가 진화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진화는 윤종빈이 어떻게 상업영화에 녹아들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지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진화는 도에 지나칠 정도로 성공적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다. 여타 조폭영화의 정통성인 배신과 음모를 잘 보여준 가운데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선포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장르와 역사적 화두가 마치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적절하게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좀 짧게 마무리 짓기로 한다. 이미 누가 꺼내도 할 이야기이며 더 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구성이 탄탄하고 배치가 좋기 때문이다.

단,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인 '최익현'(최민식)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영화는 최익현에 대해 따로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최익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문제는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최익현'을 '아버지'의 모습으로 보기로 한다.

최익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읽어낸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간 영화를 통해 흘러 온 최익현의 삶을 돌아보자.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성공한 삶을 위해 서슴치 않고 모든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쁜 사람들과도 서슴없이 어울리고 높은 사람에게 굽신거리기도 한다. 어찌보면 비굴하고 치사한 삶이지만 최익현에게 그 모든 것은 서슴없이 행해지는 일상과도 같은 것이다.

최익현의 비굴한 삶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영화의 중간중간에 등장하지만 최익현은 자녀들(특히 3대 독자 외아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최익현이 검찰에 연행되며 걱정하는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모습과 외식하는 모습 등은 자녀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보여준다. 특히 엔딩에서는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최익현의 비굴한 삶은 가족들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아버지의 욕망'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우리네 아버지들은 물건 하나 더 팔기 위해 손님에게 굽신거리거나 직장 내에서 자리를 유지하며 성공의 길을 걷기 위해 상사에게 굽신거리는 등,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밖에서 굽신거리는 씁쓸한 모습을 보인다. 그게 아버지다.

자 그렇다면 관객은 '아버지 최익현'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가정, 특히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비굴함을 마다하지 않지만 딱히 존경할만한 아버지는 아니다. 보통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에서 생각하는 아버지는 고집불통에 답답한 구석이 있지만 자녀들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엔 존경할만한 인물인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마 관객이라면 최익현에게서 그런 아버지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관객에게 최익현은 일말의 존경할 가치도 없으며 그에게서 관객 각자의 아버지를 그릴수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리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최익현의 3대 독자 외아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물론 아들만 잘 키운 최익현을 바라보는 두 딸 입장은 그리 편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아들이 바라보는 최익현은 관객이 바라보는 최익현과 분명 다를 것이다. 마치 우리들 모두, 우리 각자의 아버지를 가장 멋있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것처럼, 최익현의 아들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누구보다 존경할 것이다. 다시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들은 우리들 각자에게는 너무나 크고 위대한 사람이지만 그들 역시 욕망과 시기, 질투, 분노를 가진 한 인간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인간'으로써의 아버지를 만나는 영화이며 인정하기 싫지만 최익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진짜 아버지를 이해하는 길인 것이다.

화두를 바꿔서 잠시 '윤종빈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는 꽤 신선했다. '죄-속죄'라는 화두를 '대한민국 군대'라는 익숙한 듯 낯선 공간에 녹여내표현한 작품이었다. 다음 작품인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주류영화에 녹아들려는 시도를 보였지만 '호스트바'라는 익숙한 듯 유치한 소재를 끄집어 내 큰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어쩌면 영화감독 윤종빈의 욕망은 장르영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편승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도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드디어 결실을 보인다.

무엇보다 윤종빈은 디테일의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방법을 터득함과 동시에 이야기에 있어서도 그만의 고집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또 한국영화사에 꽤 독특하게 자리잡고 있는 조폭영화의 정통성을 포기하지 않음과 동시에 역사적 시대상을 끌어들여 전혀 새로운 조폭영화를 만들어냈다. 이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두고 볼 일이지만 <범죄와의 전쟁>은 꽤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로 평가될 것이다.


여담1) 마동석과 조진웅은 <퍼펙트 게임>에 이어 다시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됐다. 둘의 인연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여담2) 영화의 배경이 부산이다 보니 낯익은 지명이 여럿 등장한다. 특히 필자 입장에서는 다니던 초등학교(남부민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완월동(공식지명 '부민3가)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은 꽤 반가운 일이다. 물론 지금은 초토화됐다고 들었다.

여담3) 영화를 함께 본 여자친구가 '관광호텔'과 그냥 '호텔'의 차이를 물었다. 알 것 같은데 은근히 구별이 잘 안 된다. 애정남에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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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때문에 부득이하게 블로그를 접었다. 이 일이 안정을 찾기 전까지는 블로그를 안 할 계획이었는데 요즘들어 영 좀이 쑤신다. 영화 리뷰도 쓰고 싶고, ...막 그렇다..ㅋㅋ 아무튼 이 글이 '블로그 활동 재개'의 신호탄이 될 지는 모르겠다. 그냥 늘 하던 일 안 해서 찜찜한 마음에 써본 글이다. 게다가 좀 늦은 감도 있지만... 그래도 2012년에 성공할만한 배우들을 한 번 언급해본다.

'도가니'(2011)

 

1) 김현수

- 지난해 '도가니'라는 영화는 범국민적 충격을 안겨줬다. 아마도 역대 모든 한국영화를 통틀어 국회에서 가장 많이 제목이 오르내린 영화가 바로 '도가니'가 아닌가 싶다. 그 가운데 민주당 전병현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도가니' 속 아역배우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며 지적했다. 이 이야기는 이후에도 종종 이슈가 됐다.

그 '보호받지 못한' 아역배우 중 1명이 바로 김현수양이다. 큰 눈망울과 또렷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이 아이는 다행히 '도가니'에서의 연기가 크게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신세경의 아역으로 등장하며 영화에서의 연기력을 고스란히 이어갔다. 아역배우로써 첫 등장을 꽤 충격적으로 한 이 아이는 흡사 재작년 '여행자'의 김새론을 연상시킨다. 올해, 이 아이가 과연 김새론의 행보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퍼펙트 게임'(2011)


2) 차현우

- 이름이 낯선 배우지만 그의 배경을 들어보면 "아!" 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중견배우 김용건이고, 형은 젊은 연기파 배우 하정우다. 차현우의 본명은 김영훈. 연극배우 출신이고 사회인 야구를 즐기는 사내다. 그 배경 탓인지 그는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해태의 주전포수 장채근을 연기했다.

지난해 그는 '퍼펙트 게임' 외에도 '수상한 고객들'에 출연한 적이 있으며 배우들의 국토대장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577프로젝트'에서는 형 하정우와 함께 출연했다. 이제 그는 2012년에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강렬한 작품 하나만 잡으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존재를 각인시키기에는 미약한 점이 있지만 그가 준비된 배우라는 것은 여러 부분에서 확실하게 다가온다.

'이층의 악당'(2010)


3) 이장우

- '아줌마들의 대통령' 이장우를 새삼 다시 언급한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그는 '웃어라 동해야', '영광의 재인' 등으로 드라마계에서 엄청난 스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더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바로 '주연'과 '영화'다.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끈 두 편의 드라마에서 그는 모두 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우는 악역이라면 악역이다. 영화도 '이층의 악당' 단 한 편에 출연했을 뿐이다.

훤칠한 키와 잘 생긴 마스크,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인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보여준 '능글맞은 로맨틱함'이 잘 어우러진다면 충분히 영화판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

'작전'(2009)


4) 김준성

- 비교적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김준성은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해왔다. 첫 작품이 2002년의 영화 '4발가락'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것은 2009년 영화 '작전'에서부터다. 재미교포 펀드매니저 브라이언으로 출연하며 유창한 영어실력과 적당한 '재수없음'을 뽐내더니 다음 작품 '만추'에서도 탕웨이의 전 남친으로 등장해 고스란히 그 '재수없음'을 이어나간다.

남자인 필자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김준성은 단역으로 묵혀두기에는 아까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젠틀하고 단정한데다가 럭셔리함마저 느껴지는 그의 외모는 분명 더 성장할 수 있음을 반증한다. 1975년생이라고 하니 아직 기회는 충분할 것이다.

현재 그는 '종편채널 역사상 가장 퀄리티 높은 드라마'인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에 출연하고 있다. 드라마를 안 봐서 무슨 역할인지는 모르겠지만 4개 종편 채널 모든 프로그램을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프로그램인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메이커'(2011)


5) 최태준

- 역시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배우다. 그것도 무려 '정우성의 아들'로 말이다. 또 영화 '페이스메이커'에서도 김명민이 밀어주는 마라톤 국가대표로 출연한다. 게다가 젊은 층들에게는 '빅뱅 승리 친구'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미 준비된 스타로서의 행보를 걸어가는 만큼 어느 정도 성공은 보장된 배우라고 볼 수 있다. 일단 2012년 '페이스메이커'가 이뤄낼 성적에 따라 최태준의 성공여부도 달라질 것이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2011)


6) 오인혜

- 이미 뜰대로 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여준 전율의 드레스로 대한민국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이 그녀의 이름을 다 안다. 게다가 영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에서 보여준 전라의 노출연기는 p2p사이트에서 노출장면만 편집되서 돌아다닐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 이쯤되면 오인혜는 이미 스타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과제는 배우로서의 가능성이다.

일단 여배우 보는 눈이 까다로운 박철수 감독에게 신임을 얻은 걸 보면 꽤 끼가 있는 배우로 보인다. 영화에서도 그녀는 독특한 목소리톤과 담담한 연기는 '잘한다'보다도 '당차보인다'라는 인상을 준다. 심지어 노출연기마저도 말이다. 일단 노출연기를 보면 겁없는 배우라는 인상은 확실히 든다. 그럼 그녀는 배우로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이제 작품만 잘 고르면 된다.

'써니'(2011). 사진 오른쪽이 천우희.


7) 천우희

- 지난해 청룡영화제를 취재가서 꽤 낯익은데 당최 이름을 모를 배우를 봤다. 누군지 한참 고민하다가 겨우 알아냈다. 그녀는 영화 '써니'에서 본드 불고 나타난 여학생이었다. 꽤 많은 젊은 아역배우들이 등장한 영화 '써니'에서 천우희는 어쩌면 심은경 다음으로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역할을 맡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상당히 잘 해냈다.

어디에나 있을 1인자(강소라)의 기에 눌린 2인자 역할이 너무나도 그럴싸하게 보이며 그 설움마저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본드불고 나미(심은경) 옆에 나타날때는 소름마저 돋을 지경이다. 이것저것 다 접어두고 그냥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뭘 하건 말이다.

'고지전'(2011)


8) 이다윗

- 역시 젊은 팬들이 꽤 많이 확보된 배우다. 아직은 앳되보이는 이미지 탓에 아역을 많이 하고 있다. '고지전'으로 충분한 존재감을 각인시켰지만 '최종병기 활'에서 그는 여전히 아역이다. 하지만 그 아역을 매우 잘한다. 하지만 그는 1994년생, 이제 19세다. 아역이 가능한 나이긴 하지만 그만큼 성인연기도 가능한 나이다.

이다윗은 이래뵈도 경력이 상당한 배우다. 2001년부터 연기를 시작한 이다윗은 드라마 등을 거치며 2004년 독립영화 '물길이 일다'를 통해 영화에 적응하게 된다. 이후 행보를 살펴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굵직한 작품들에 얼굴을 비춘다. '극락도 살인사건', '시', '살인의 강' 등. 누가 시나리오 골라주는지 참 잘 고른다. 이쯤되면 충분히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되는 배우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2011). 사진 오른쪽이 안지혜.


9) 안지혜

- 왠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시선이 '오인혜'에 쏠린 영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에서 그녀는 묵묵히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독립영화 '온실'과 '라라 선샤인'에서 얼굴을 비췄다. 또 2009년에는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에서 최지우의 매니저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2년 그녀는 결코 만만치 않은 영화 한 편을 준비하고 있다. '타운 3부작'을 만든 전규환 감독이 연출하고 연기파 배우 조재현이 출연하는 영화 '무게'다. 조재현에게도 안지혜 본인에게도, 이 작품은 매우 중요한 영화가 될 것이다. 조재현은 작년에 '더 킥'을 완전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TV방자전'.(2011)


10) 이은우

- 장진 감독 치고 별 재미없던 영화 '로맨틱 헤븐'을 보다가 꽤 눈길이 가는 여배우를 봤다. 영화 속 이미지 탓인지 도에 지나칠 정도로 청순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김수로의 아내로 출연한 배우 이은우다. 이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여배우는 다음 작품에서 곧장 '관능적인 춘향'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아마도 전작의 자신을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벌인 만행으로 보인다. 그녀를 기억하던 필자로써는 당최 혼란이 올 정도로 충격적인 변신이다. 하지만 필모그라피를 살펴보니 이미 내공은 닦을만큼 닦은 배우다. 아마도 그녀는 성공을 위해 한 작품 더 거쳐가야 할 것 같다. 'TV방자전'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TV영화로 한 작품 더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더 킥'.(2011) 사진 오른쪽이 태미.


11) 태미

- '더 킥'이라는 영화는 필자에게는 괴로운 기억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심야상영 세 작품 중 유일하게 안 자고 본 영화다. 왜냐하면 가장 처음에 했기 때문이다. 근데 세 작품 중 가장 재미없는 영화다. 그리고 2011년 한 해 동안 본 영화 중 가장 악몽같은 영화라고 인정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나태주와 태미는 분명 좋은 발견이다. 그것은 결코 두 사람의 연기력 때문이 아니다. 절망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왠만한 아이돌 출신 연기자보다 연기는 더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이 배우들이 보여준 아크로바틱 액션은 분명 한국영화의 보물이 될 것이다. 그간 '거칠마루', '도시락' 등 한국형 아크로바틱 액션영화는 많았지만 이 두 배우들의 등장으로 이같은 액션영화들은 더 성공할 가능성을 갖게 됐다. 이들에게 '연기력'은 좀 부족해도 '스타성'은 꽤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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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뉴스를 통해 '성폭행' 관련 보도를 보는 일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닌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보도에 이어지는 '가벼운 처벌'에 관한 내용을 보고 분노하는 것 또한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씁쓸하지만 대한민국은 유독 '성폭행'에 관대한 나라다. "왜 대한민국은 성폭행에 관대한가?"라고 묻는다면 여러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그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형을 선고하는 사람들이 안 겪어봐서 그렇다"라고 설명하고 싶다.

우리는 보통 성폭행이 '나쁜 짓'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나쁘고, 잔인한 짓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혹자는 "그걸 왜 몰라?"라고 말하겠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그 수치심과 고통은 절대 모를 것이라 생각된다. 그 여린 몸뚱아리에 가해지는 가혹한 폭력, 거기에 저항할 수 없는 스스로의 무기력함, 그리고 '가장 개인적인 것'을 빼앗겼을때에 찾아오는 허탈감. 성폭행은 호흡을 끊거나, 심장기능을 정지시키고, 뇌를 멈추게 하는 것을 제외하고 그 만큼의 충격을 줄 수 있는 폭력이다.

몇 년 전, 여린 몸 몇 명이 어른의 무자비한 손길에 짓밟힌 사건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소중한 몸을 지키지 못한 수치심에 괴로워하고, 억울해 했지만 어디에도 그것을 쉽사리 호소할 수 없었다. 이들은 청각장애인들이기 때문이다. 몇 년간 이 고통이 지속된 후에야 몇 명의 사람들이 이 아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나서 싸우기로 마음 먹은 순간, 상대는 단순히 '가혹한 손길을 휘두르는 어른'이 아니라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는 기득권층'이 되어버렸다.

힘없는 사람들 몇 명은 모여 '진실의 힘'을 믿고 기득권층에 대항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힘없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권력에게 패하게 되고, 마치 이 어린이들이 성폭행 당했듯 그들의 소중한 진실과 정의는 짓밟히고야 말았다. 이 청각장애어린이들은 교장과 행정실장의 가혹한 손길에 성폭행 당했고, 기득권층이 휘두르는 권력의 무자비함에 다시 한 번 성폭행 당했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것은 '다수의 힘'이다. 어른의 무자비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호소했고,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 호소할 것이다. 여리고 약한 자신들을 지킬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분명 아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불편하고 괴로운 것이다.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만큼 끔찍해서 차라리 고개를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피하지 말아야 할 진실이다. 아이들에게 1차적 성폭행을 가한 교장과 행정실장, 일부 선생들이 있다면 2차 성폭행은 기득권층의 권력과 어른들의 무관심, 책임전가가 저지른 것이다.

영화 '도가니'에서 강인호(공유)의 어머니(김지영)는 아이와 집안을 걱정한다면 보고도 못 본 척 해야한다는 충고를 한다. 극 중 강인호에게는 천식에 걸린 어린 딸과 전세금을 뺀 어머니가 있다. 강인호는 진실을 밝히고 싸우기 위해 직장과 싸우는 용기있는 선택을 한다. 물론 원작소설에서는 도망치듯 동네를 떠난다고 나와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만약 우리가 정말로 큰 용기를 얻어 이 아이들을 위해,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던 중 1억원 상당의 뇌물과 안정된 직장을 제안받는다면, 우리는 그때도 진실을 위해 싸울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애시당초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울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과감하게 말하고 있다. 부조리를 마주하고도 싸우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폭력이 된다고... 시쳇말대로 '무관심'이 가장 무서운 폭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진행중인 이 추악한 사건을 마주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이미 영화를 본 입장에서 한마디 하자면 그저 영화만 보더라도, 소설만 읽더라도 그동안 이 사건에 무관심했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바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가 전하는 진실의 무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무게는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어른의 책임'이다.

이 영화를 두고 '어른의 책임'을 강조할 수 있는 것은 성폭행 사건 외에 영화가 담고 있는 몇 가지 부조리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성폭행을 일삼는 장애학교 교장은 교회 장로이며 지역사회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유지이기도 하다. 가해자가 교회장로이자 대외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면 가장 크게 반발할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교회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치 진실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장로님'만을 지키기 위해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또 다시 못을 박고 있다.

여기에 '전관예우'라는 법조계의 오랜 관행과 동시에 '나'를 지키기 위해 정의를 등지는 부조리한 어른의 모습이 보여지면서 그 추악한 어른의 모습을 보편화시켜버린다. 영화의 주연을 맡은 공유는 원작소설 속 강인호의 선택을 언급하며 "인정하긴 싫지만 누구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시 인정하긴 싫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몇 마디 하자면 부조리 앞에 우리는 누구보다 자신을 지키려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까운 사람이라면 실체를 알건 모르건 지키고자 할 것이다. 이미 살면서 그런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

영화 '도가니'는 감히 '재미'의 유무를 논할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영화를 접한 관객이라면 이야기의 엄청난 무게감에 짓눌리게 될 것이고 그 먹먹함에 신음하며 며칠을 가라앉게 될 것이다. 분명 흥겨운 추석 명절에 볼 영화는 아닐거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 영화의 흥행은 장담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몇 명이 보더라도 진실을 똑바로 마주하게 된다면 이 영화는 스코어와 상관없이 자신의 도리를 다 한 것이다.

그리고 관객 역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충분히 극장에서 좋은 화두와 결론을 얻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미쳐 관심갖지 못한 소외된 곳, 연약하고 힘없는 계층을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냉정하고 이기적인 우리가 조금 온화해질 수 있다면, 이 영화와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느 정도 완수했을 것이다.

도가니
감독 황동혁 (2011 / 한국)
출연 공유,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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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만한 스포일러~

사실 '프리퀄'을 만든다는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같지만 관객에게 어필하기는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관객들은 이미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말을 뻔히 아는 영화를 다시 재밌게 만드는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다시 뒤집어보면 '프리퀄'이 재밌어지는 조건 또한 매우 간단해진다. 그것은 바로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드라마틱하게 달려가는 것"이다. 즉 프리퀄에게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담은 SF의 고전인 <혹성탈출>의 프리퀄인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진화의 시작>)이 만들어졌다. 이 영화 역시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느 프리퀄 영화와 똑같은 과제를 안고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원숭이가 지구를 점령했나?"를 가장 합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 영화는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얼마나 잘 해결했을까? 그것만 알아보더라도 이 영화의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68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혹성탈출>은 마치 원숭이행성이 다른 차원의 세계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원작 <혹성탈출>의 시작이 서기 2673년의 지구이기 때문이다. 즉, 프리퀄의 배경이 못해도 2011년, 혹은 좀 가까운 미래라고 설정한다면 원작에서 최소 600년 전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최소 600년전에 지구에 나타난 '인간형 원숭이'와 '괴바이러스'가 지구를 휩쓸고 간 상황에서 2673년에 어떻게 인간이 우주선을 쏘아올릴 수 있을까? <진화의 시작>의 엔딩대로라면 이미 <혹성탈출> 원작의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이미 원작과 충돌을 일으킨다.

여기에 <진화의 시작>이 선택한 것은 일정부분 원작과 단절해버리는 것이다. 이미 여기서 "프리퀄의 의무를 포기했다"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이 영화가 '합리적 이야기 전개'를 위해 선택한 것인 만큼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그러나 '영화적 허용'으로 포기한 것이 있다면 그만큼 얻는 것도 있어야 한다.

<진화의 시작>이 시간적 연속성을 포기해가며 선택한 것은 바로 "원숭이들이 어떻게 인간만큼 발달했는가?"의 과정이다. 이 영화는 '시간의 연속성'을 포기한 대신 그것을 통해 '인간형 원숭이'의 비밀을 완벽하게 풀어내면서 원작 <혹성탈출> 시리즈가 하고자 했던 "동물학대와 자연파괴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사실상 완성해버린 셈이다. 적어도 이 영화는 시리즈 전체가 아우르는 메시지 전달의 측면에서는 '프리퀄'이 아니라 '파이널'이 되는 셈이다.

이 영화가 선택한 '인간형 원숭이'의 비밀은 치매 치료제를 개발 중인 제약회사에서 진행된다. 개발중인 약품 실험을 위해 실험용 원숭이들을 이용하게 되고 이 원숭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과정을 낱낱이 보여줌으로써 동물학대와 자연파괴에 대한 직접적 경고를 하게 된다. 여기서 '자연파괴'라 함은 나무를 꺾거나 강물을 더럽히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자연파괴'란 "자연적 순리를 거스르는 일"을 말한다. 삶과 죽음, 그 외 자연이 정한 모든 순리를 거스르려는 인간의 행동을 벌하려는 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고 그것을 시작으로 <혹성탈출>의 방대한 시리즈는 시작된다. 이 프리퀄은 '메시지'적 측면에서 종지부이자 시작점을 찍은 셈이다.

앞서 이야기를 하다 말았지만 <진화의 시작>이 프리퀄로써 주어진 과제인 '인간형 원숭이'의 과정을 풀어내기 위해 '제약회사'를 선택한다. "자연의 순리를 거슬렀다"라는 점과 함께 그 말도 안되는 원숭이들에 대해 나름 합리성을 갖게 한다. "제약회사의 치매 치료제가 예상밖의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말도 안되는 원숭이'에서 '잘하면 존재할 수도 있는 원숭이'로 관객의 인식을 바꿔놓게 된다.

<진화의 시작>이 해낸 이런 업적은 이 영화 뿐 아니라 시리즈 전체를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 이 영화가 앞으로 이뤄낼 가능한 성과라면 이미 40년전 영화인 <혹성탈출>을 다시 찾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불가능한 행성이 가능한 행성이 되어버린 이상 <혹성탈출> 시리즈가 보여줄 이야기가 얼마나 절망적인지 더 온 몸으로 와닿게 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진화의 시작>이 선택한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앞서 이 영화가 포기한 '시간의 연속성'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야기의 연결을 완벽하게 맞춘 이상 시간의 오류는 지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프리퀄로써의 과제'를 완벽하게 풀어낸 <진화의 시작>을 독립된 영화 한 편으로 이야기해보자. 나름 블럭버스터로써 상업적 의무를 띄고 만들어진 영화일테지만 이 영화는 큰 스케일을 위해 무리한 이야기 진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굉장히 느리게 간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차라리 여름 시즌을 겨냥한 블럭버스터 무비가 아니라 정교하고 숙성된 스릴러 영화와 같은 느린 속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 느린 이야기 전개속도는 의외로 완만한 곡선을 자랑한다. 이야기 초반부에 드러낼 부분(시저가 다 큰 원숭이로 성장과정)은 과감하게 버리고 집중해야 할 부분(시저가 윌에게 분노하고 돌아서는 장면)은 차분한 속도로 세세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에 아주 능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야기 전개의 기초가 아주 잘 숙련된 '이야기꾼'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원숭이의 세계와 습성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디테일의 측면에서 많은 것을 완성한다. 시저가 원숭이 세계의 대장으로 올라서는 과정과 인간에게 정을 느끼고 적응하는 과정 등 실제 사람(앤디 서키스)이 연기하는 만큼 자칫 사람의 습성이 나올 수도 있지만 디테일에 대한 완벽한 연구로 정말 원숭이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영화의 '원숭이 디테일'은 CG가 완성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완성된 것이다.

<진화의 시작>은 여러 면에서 돋보이는 점이 많은 영화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돋보이는 점은 바로 '선택과 집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프리퀄'로써 역할을 하기 위해 시간의 연결고리를 포기하고 원숭이 진화의 과정을 선택한 점과 이야기 전개에서 버릴 부분은 버리고 필요한 부분은 차분히 참아가며 전개한 점은 '선택과 집중'이 돋보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인내와 포기가 만들어낸 웰메이드 '원숭이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여담1) 많은 사람들이 <진화의 시작>의 속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 하지만 애석하게도 속편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의 엔딩과 원작 <혹성탈출>의 시작 사이에는 뚜렷한 연결고리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담2) 이 영화에서 원숭이 연구소 소장을 맡은 브라이언 콕스는 <엑스맨2>에서 돌연변이 연구소 소장 '윌리엄 스트라이커'였다. 어쩐지 둘이 닮았다.

여담3) 게다가 앤디 서키스는 피터 잭슨의 <킹콩>에서 '킹콩'을 연기했다. 유인원 연기에는 나름 경력자다. ...그래서 캐스팅했나?

여담4) 입닥쳐, 말포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감독 루퍼트 와이어트 (2011 / 미국)
출연 제임스 프랭코,프리다 핀토,앤디 서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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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뜯어서 보는 걸 즐기는 필자는 <L.A좀비>같은 영화까지도 자근자근 뜯어내서 그 내부구조를 관찰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필자에게도 도저히 뜯을 수가 없는 영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너무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너무 정교해서" 때문이다. 각기 다른 장르가 정교한 짜임새로 어우러졌고, 거기에 너무나 섬세한 디테일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굳이 뜯어낼 필요없이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영화가 바로 <블라인드>다. 도저히 뜯어서 해체할 필요없이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이야기가 되어주는, 아주 좋은 영화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글이 해야 할 일은 <블라인드>라는 영화가 어째서 좋은 영화이며, 어떤 좋은 이야기를 하는지 풀어내는 일일 것이다.

<블라인드>는 시각장애인이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시각장애인 민수아(김하늘)는 경찰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동생이 죽고 시력을 잃는 사고를 당한다. 그렇게 시각장애인이 된 민수아는 경찰대에 재입학 할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 비관하던 어느날 수아는 택시를 몰고 가던 수상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가 뺑소니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듣게 된다.

<블라인드>는 기본적으로 시각장애인이라는 핸디캡을 가진 여성이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일단 상황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 안소니 뮐러의 <무언의 목격자>처럼 핸디캡과 살인사건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물려 돌아가는 이야기는 <블라인드>에서도 고스란히 흥미로운 상황을 유발하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다. 그러니깐, 다시 말하자면 <블라인드>는 <무언의 목격자>만큼 정교하다는 말이다.

이 정교함은 기본적으로 크로스오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픔을 가진 시각장애인의 휴먼드라마, 어릴적 사랑하는 동생을 잃고 마음을 닫아버린 한 여자가 동생과 같은 나이대에 성격도 비슷한 소년을 만나 마음을 여는 훈훈한 이야기, 잔혹한 강간살인마를 추적하는 범죄스릴러, 동물과 주인의 훈훈한 우정, '여성·시각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험난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회드라마. 이 여러가지 다양한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다. 마치 "간장 반큰술, 고추가루 200g, 설탕 한 큰술, 청양고추 약간"같은 요리의 레시피대로 정교하게 계산을 해서 첨가한 듯한 인상이다.

물론 이런 정교함은 매니아적 관객의 입맛을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보편적 입맛'에는 확실히 맞춰가는 영화다. 특히 '애견매니아'들의 입맛을 고려한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수아의 안내견 슬기를 연기한 '달이'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왠만한 아이돌 올킬 시킬 정도로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애완견을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이 영화에서는 폭풍눈물을 쏟기에 충분한 명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언급하고 싶은 하나는 바로 배우 김하늘이다. 얼마전 <7광구>의 리뷰를 쓰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연기해야 했던 하지원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사실 <7광구>에서 보여준 하지원의 연기는 그 고충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블라인드>에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연기해야 했던 김하늘에게는 그 고충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관객이 너무 편안하게 느낄 정도로 시각장애인 연기에 빠져있었다는 소리다. 김하늘의 필모그라피를 천천히 되돌려보면 배우로써 연기력이 폭발할만한 작품은 없었다. 아마도 <블라인드>는 김하늘의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물론 필자는 <블라인드>에게서도 약간의 아쉬운 점을 찾아내게 됐다. 수아와 기섭(유승호)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사건을 미궁으로 끌고 가는 부분이 너무 짧고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리고 범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적어서 존재감을 거의 느끼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마치 범인은 시각장애인 수아의 핸디캡 극복을 위한 도구인 것처럼 묘사될 뿐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스릴러적 요소가 심각할 정도로 약하다. 물론 지하철 추격장면이나 보육원 장면 정도는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걸 뺀다면 범인이 등장하는 나머지 장면은 <악마를 보았다> 12세 버젼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스릴러로써 모자란 부분을 휴먼드라마로 채워내고 있다. 다시 말해 '스릴러'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 한 편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마 감독 역시 그것을 노리고 만든 영화인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역사상 많은 작품들이 시도했지만 결국 하지 못한 일이 "'모든' 관객이 공감하고 만족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껏 누구도 그 작업을 성공하지 못했으며 <블라인드> 역시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단언코 말할 수 있는 것은 <블라인드>는 "'다수'의 관객을 공감하고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수'에 해당되지 못한 사람이 '스릴러 장르를 즐기는 사람'인 것만은 확실하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지하철 추격장면'만 기억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 전체는 그리 맘에 들지 않을 것이다.

2011년 한국 장르영화에서 우리는 <써니> 이후 또 하나의 '물건'을 접하게 됐다.

폭풍연기를 펼치신 '개느님' 달이.


여담1) 이 영화의 맹인안내견 '슬기'는 5년전 <마음이>에서 유승호와 함께 연기했던 '마음이'다. 본명은 달이다.

여담2) 이 영화에서 조형사 조희봉은 극 중 유일하게 본명으로 영화에 출연한다. 이에 대해 안상훈 감독은 "도저히 그 캐릭터에는 '조희봉' 말고 다른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왠지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3) 이 영화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놀랄만한 디테일을 보여준다. 그 비결은 영화를 만든 안상훈 감독이 실제로 1년 넘게 시각장애인 도우미로 일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한다. 역시 경험이 제일 무섭다.

블라인드
감독 안상훈 (2011 / 한국)
출연 김하늘,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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