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 뮤즈를 대하는 문학인의 태도
간혹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혹시 '로리'세요?". 난 그 질문에 딱히 부정하고 싶진 않다. 섹시한 글래머 여성보다는 풋풋한 소녀에게 끌리고 키 크고 늘씬한 여자보다는 작고 아담한 여자가 좋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로리'가 결코 성적으로 탐하는 로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러면 '로리'가 아닌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테지만 나는 '가공된 섹시'에서 천박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거부감이 먼저 일어나게 된다. 반대로 '가공된 순수'가 있다면 그것은 '순수'가 아닌 '귀여움'이라는 말을 얻게 된다. 귀여운거랑 순수한거랑은 다르다. 순수함은 쉽게 가공이 안된다. 난 그래서 그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머금은 소녀들이 좋다. 영화 '은교'에게서 난 어쩌면 그런 것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 기대는 만족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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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게 정확히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비록 명예로운 삶을 산 노년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결국에 남은 건 늙어버린 육신과 혼자된 외로운 순간만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은교'는 시작부터 노년의 외로움을 구구절절하게 표현해준다. 특히 이적요(박해일)의 탄력없고 늙어버린 육신은 그 자체만으로 이 명예로운 거장 시인의 노년을 잘 표현해준다.
그렇다면 '은교'는 이 노년의 시인과 여고생의 사랑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영화를 보기 전에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로리타'에서처럼 소녀를 탐닉하는 중년남자의 로맨스를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은교'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은 창작자의 고뇌이자 욕망의 탐닉에서 스스로를 구해내는 구도자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그렇다고 종교적인 영화는 아니다. 종교적인 해석의 여지는 충분히 있지만 그것이 의미가 없을만큼 이 영화는 '뮤즈' 은교(김고은)에 대한 이야기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대로 70대 노 시인과 여고생 은교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느 늦은 여름 이적요의 집에서 이뤄진다. 항상 비어있던 정원 앞 의자에 잠들어 있는 여고생 은교. 여린 목과 쇄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과 햇살처럼 새하얀 정강이에 묻은 흙은 적요의 마음 속 큰 돌덩이처럼 내려앉는다. 하지만 그 돌덩이의 무게감은 부담감이나 고뇌가 아닌 강렬한 새김과 같은 것이다.
영화는 은교의 과거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그녀가 어떤 학생이고, 집에서는 어떤 아이인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간혹 이야기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만이 은교의 과거에 대해 알 수 있는 전부다. 이처럼 과거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은교는 마치 '실존하지 않는 존재'처럼 이적요의 생활 속에 내려앉았다.
과연 실존했는지 조차 궁금해지는 이 소녀는 이적요의 집에서 가정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적요와 가까워진다. 이 과정은 사실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조용한 성격의 늙은 시인과 생기발랄한 여고생이 가까워지는 흔한 과정과 닮아있다. 심지어 이 과정은 참 풋풋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뒤틀리는 순간이 발생한다. 바로 거센 비가 내리던 그 날 밤이다.
비가 거세게 내리던 늦은 밤, 은교는 엄마에게 뺨을 맞은 채 적요의 집으로 찾아오게 된다. 비에 젖은 교복에 비친 은교의 속살은 적요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그리고 적요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는 은교를 보면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욕망을 마주하는 순간 이적요는 소설 '은교'를 집필하게 된다.
하지만 이적요와 은교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은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김무열)가 둘의 관계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늘 적요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존경한다"고 말하는 지우지만 은교가 나타나는 순간 그의 마음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지우의 마음은 사실 여러가지가 맞물려있다. 스승 적요가 은교와 가까워지면서 은교에게 스승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질투심'일
수 있다. 또 은교가 적요의 '뮤즈'가 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 그 뮤즈를 빼앗아 스승을 뛰어넘고 싶다는 탐욕일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마음은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지우는 영화 후반에 가서는 적요의 '뮤즈'인 은교를 탐하게 되고 그러기 위해 사실상 적요의 모든 것을 빼앗게 된다.
지우는 결국 '뮤즈'를 탐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 그 댓가는 적요의 분노에서 비롯되지만 그 분노는 다시 지우의 분노가 되면서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하지만 그 분노의 댓가는 결국 적요 역시 치르게 된다. 어쩌면 은교는 두 남자를 망쳐버린 팜므파탈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은교가 적요에게 나타난 뮤즈였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 뮤즈 역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창작자의 자격이 없는 자에게 넘어간 죄를 고백한다. 이 뮤즈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창작의 여신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는 창작의 가치를 아는 적요에게는 뮤즈가 되었지만 그 가치를 모르던 지우에게는 한낮 여자아이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은교'는 순수문학에 대한 찬양이자 창작물 그 자체로써의 존중을 담은 작품이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소설 '은교'를 쓰던 적요의 모습처럼 세심한 관찰과 피사체를 대하는 심연의 마음가짐이 '은교'를 만들어냈다. 적요는 은교를 탐하고 싶은 유혹의 순간도 몇 차례 있었지만 그 욕망이 끓어오를수록 그것은 연필 끝으로 다가가 작품으로 승화된다. 문학을 하는 창작자로써 아주 훌륭한 마음가짐인 것이다. 욕망은 손끝으로 다가가 작품으로 태어나고 욕망이 사라진 사랑은 소녀에 대한 배려와 관심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은교는 나비처럼 창작의 정원을 훨훨 날게 된다. 하지만 창작의 가치를 모르던 대중소설가(그 이름조차 아까운 인물이지만) 지우는 적요의 정원에 사는 이 아름다운 나비를 탐했다. 정원을 날지 못하고 지우의 손 안에 갇힌 나비는 더 이상 뮤즈가 아니다. 뮤즈를 도둑맞은 적요는 분노가 싹 터 위험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게 되고 그로 인해 처참한 결과를 불러온다.
누구에게나 뮤즈는 찾아온다. 그것은 창작자에게는 뮤즈라는 이름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기회'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 쓸쓸한 여생만 남은 적요에게 은교는 활기를 불어넣어줄 소녀였다. 그 소녀는 어떻게 붙잡아두려 해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나 더 오래 붙잡아 두느냐는 뮤즈를 만난 창작자의 역량에 따른다. 영화 '은교'는 인생의 뮤즈를 만났을때 가져야 할 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또 창작에 대한 숭고함과 그 가치를 논하는 영화다.
영화적으로 '은교'는 서정적이고 탐미적인 모습을 여러차례 오고 간다. 대체 장소가 어딘지 궁금해지는 적요의 집과 여름날의 햇살은 영화의 서정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헌책의 냄새가 스크린 너머로 풍겨올 것 같은 적요의 서재와 옻칠한 나무의 감촉이 느껴질 것 같은 집의 내부는 현대한국의 순수문학 속 배경을 재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적요의 시선으로 흘깃 바라보는 은교의 모습은 탐미적 욕망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지우가 바라보는 은교는 욕망의 대상이 된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그 자신도 창작자를 갈망하고 꿈꾸지만 방법이야 어찌됐건 자신에게 찾아온 뮤즈를 알아채지 못하고 거짓된 방법으로 그녀를 탐한다. 그런 그에게 은교는 어찌됐건 징벌로 다가온다. 특히 지우의 마지막 장면은 CG티가 좀 나긴 했지만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다이나믹한 장면이다. 이 영화가 마냥 서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관객들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건축학개론'에 버금가는 서정적이고 풋풋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은교'는 그 이면에 욕망과 에로티시즘을 품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캐릭터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바로 그 에로티시즘을 이겨내는 것이다. 이 영화, 참 여러가지가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 역시 배우들을 꼽을 수 있다. 박해일이 70대 노인 역할을 맡았다고 했을때 논란도 많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역할에 박해일이 필요했음을 알게 된다. 영화를 보면 적요의 역할이 70대 노인이었음을 잊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몰입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은교 역할의 김고은 역시 여고생의 생기발랄함과 관능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의 역할대로 은은하게 적요의 마음을 휘젓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연기를 펼친다. 서지우 역의 김무열은 '작전'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욕망을 쫓는 모습이 닮아있지만 그 욕망은 더 깊은 내면에 있고 섬세하다. 이 영화는 늦여름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고운 반짝임을 뽐내는 적요 서재 책상 위의 책처럼 배우들 역시 곱게 반짝이고 있다.
'은교'는 여러모로 매력이 많고 다이나믹하며 서정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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