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블로그 이미지
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 2,887,237Total hit
  • 26Today hit
  • 447Yesterday hit

1. MBC '무한도전'을 매주 챙겨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즐겨보고 좋아하는 주말예능이었다. 13년간 주말을 책임진 이 예능에서 아주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도 있었고 그냥 그랬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은, '무한도전'은 마치 문화대통령처럼 예능과 문화의 판도를 바꿔놨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것은 마블씨네마틱유니버스(MCU)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2008년 '아이언맨' 이후 2019년 '어벤져스:엔드게임'까지, 이 시리즈는 영화 자체를 넘어서 문화와 가치관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이것은 '무한도전'과 MCU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두 작품 모두 '쇼(Show)'라는 점이다. 

2. 사실 MCU 영화들은 볼 땐 재미나게 보지만 돌아서면 불만이 생길 때가 있었다. 영화로써 작품 안에서 완결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앞에 어떤 영화가 있었는지 알아야 하고 뒤에 어떤 영화가 나올지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영화는 숨겨둔 단서를 찾아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흐름을 읽어야 했다. 작가주의 영화에서도 기피하는 일들을 MCU 영화들을 보면서 불가피하게 해야 했다. 초창기 MCU 영화들을 볼 때는 그 부담이 적었지만 영화가 계속 나오고 이 세계관에 '역사'가 생기면서 관객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불가피하게 해야 할 일이지만 MCU 영화들을 보면서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일들을 굳이 하게 된다. 

3. '어벤져스:엔드게임'은 그 불만들을 모두 잊게 만들었다. 그것은 영화가 재밌기 때문이 아니라 이 영화들이 온전히 자기 정체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쇼'이자 '상품'이다. '엔드게임'은 지난 10년간 MCU의 모든 영화들에게 '상품'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화룡정점과 같은 영화다. '엔드게임'은 분명 재미있는 영화다. 그런데 그것은 이야기가 탄탄해서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MCU에 대한 기억들을 모두 아우르는 '이벤트'라서 재미있는 것이다. 사실 이야기 자체만 본다면 루소 형제가 만든 모든 MCU 영화 중 가장 허술하다. 그것은 '이벤트'가 되기 위해 이야기의 합리를 희생한 것과 같다.

4. 이야기는 모두가 예상한대로 '시간여행'으로 비롯된다. 이것은 MCU 히스토리에 대한 복습과 같다. '인피니티워'를 장식한 히어로들부터 단 한 작품에 출연한 조연들까지 모두 등장해 자기 역할을 한다. 지난 10년간 MCU 영화를 즐긴 관객들은 지난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끝나면 이제 타노스(조쉬 브롤린)과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짓는다. 이것은 '인피니티워'처럼 여러 히어로들이 무더기로 출연하는 파티라기 보다 주요 캐릭터 3인방(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토르)의 메인 이벤트다. 예를 들자면 WWE '레슬매니아'에서 월드헤비웨이트챔피언쉽 경기와 같다. 

5. '엔드게임'이 '쇼'라고 느낀 장면은 굉장히 많다. 몇 가지 언급해보자면 타노스의 군대에 맞설 군대들이 포털을 타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왜 발키리 군대까지 끼어있는가. 걔들을 쓸어버린건 헬라(케이트 블란쳇)가 아니었던가(사실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영화 내내 본 적 없던 마법사들도 쪽수를 맞추려고 등장한다(그렇게 많이 있는줄도 몰랐다). 그러니깐 군대 vs 군대로 맞서는 장면은 타노스의 군대와 머리수 맞추려고 오만 군대 다 불러온 인상이다(이럴거면 엘리스 대통령의 군대까지 불렀어도 될 뻔 했다). 게다가 아이언맨(토니 스타크)의 장례식에서는 정말 MCU의 모든 히어로가 다 나왔다. 한 두 사람 정도 바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깐 영화의 합리성보다 '이벤트'에 더 무게를 두고 만들었다는 의미다. 

6. 이 '이벤트'는 단순히 마무리에 의미를 두지도 않는다. 다음 시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예고도 하고 있다. 건틀릿을 들고 가던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이 공격받자 페퍼 포츠(기네스 팰트로우)가 나서서 도와준다. 그녀와 함께 MCU의 모든 여성캐릭터들이 뭉친다. 그러지 마란 법은 없지만 굳이 누나들만 뭉친 지점이 다소 인위적이다. 이는 '캡틴마블'에 부여한 정체성을 MCU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캡틴마블의 헤어스타일까지 여기에 결부시킬 수 있겠지만 그 정도 확대해석까진 하지 않겠다). 게다가 캡틴아메리카가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는 장면은 굳이 콕 찝어서 팔콘(안소니 마키)에게 물려준다. 절친한 버키(세바스찬 스탠)를 놔두고 굳이 팔콘을 지명한다. 인종의 이슈도 뛰어넘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니깐 앞으로 MCU 영화에서는 여성과 흑인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의미다(정말 그렇게 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7. 엔딩크레딧은 이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결정타와 같다. 미래의 히어로들과 조역들이 먼저 이름을 올리고 과거를 이끌었던 주역들은 그보다 더 화려하게 퇴장한다. 이것은 "지난 10년동안 우리 쇼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떠나는 스타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시사회가 있었다면 이 엔딩크레딧은 정말 박수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엔딩크레딧까지 완성되면서 이 영화는 '거대한 쇼'라는 정체성을 지킨다. 

8. 그런데 나는 이 마무리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캡틴아메리카:윈터솔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시당초 말도 안되는 것 투성이인 마블세계관에서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오싹했기 때문이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잊혀지는게 아니라 한동안 기억에 남을 정도로 '하이드라'가 무시무시하게 다가왔다. 그 진지함에 대해 '엔드게임'은 "뭐 어때, 이건 그냥 '쇼'야"라고 답한다. 10년을 끌고 가던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은 정말 메인이벤트만 치르고 끝을 맺었다. '해리포터'의 마지막 영화는 여정의 결말이자 이야기의 완성이다. 그리고 '엔드게임'은 간간히 진지했던 순간들을 모두 내려놓고 즐기게 만든다. MCU 영화는 어차피 다 '쇼'이기 때문에 마지막은 큰 '이벤트'를 마련한 셈이다. 이제서야 나는 MCU 영화들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9. 결론: 10년짜리 쇼의 주인공이었던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 토르는 결핍을 보상받았다. 아이언맨은 모두 구하지 못했다는 부담을 내려놨고 캡틴은 잃어버린 70년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토르는 왕관의 무게를 내려놓고 배불뚝이 자유인이 됐다. 호크아이는 가족들과 안정을 찾았고 브루스 배너는...헐크와 합의점을 찾았다. 블랙위도우는 처음 가족의 존재를 알게 됐고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게 됐다. 암살자이자 스파이였던 그녀는 가장 영웅다운 행동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마무리지었다. ...아무튼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보긴 봐야겠다. 


추신1)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의 배를 보고 내 배를 봤다. ...확실히 남 일은 아니다.

추신2) 그래서 로키(톰 히들스턴)는 어디로 튄건가. 그리고 과거의 토르는 망치를 잃어버린건가. 

추신3) 분명 캡틴은 망치도 같이 들고 갔는데...그거 옷장에 두고 온건가.

TRACKBACK 0 AND COMMENT 0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206)
일상생활 (137)
창작의 공간 (11)
영화이야기 (947)
음악이야기 (41)
야구이야기 (21)
포토샵 장난질 (3)
Entertainment (31)
익스트림알콜 (9)
본의 아니게 떠난.. (4)

CALENDAR

«   2020/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