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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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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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상의 이면을 탐구하는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마치 킹스크로스역 9와3/4 승강장 너머의 세계처럼 신나는 마법도 있고 끔직한 괴물도 있다. 일상의 이면에 있는 다른 세계는 지루한 현실세계에 대한 상상을 자극시킨다. "작은 고블린들이 나타나 내 기억을 조작하고 내 월급을 갉아먹는 건 아닐까", "아주 어릴 적 또 다른 지구의 나와 이 지구의 내가 바뀐 것은 아닐까", "다른 지구에서는 토르가 살고 있지 않을까" 등. 이 삶이 지루한 만큼 다른 세계에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바라게 된다. 그래야 이 삶이 조금은 더 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모든 행위는 지루하고 비정한 삶이 조금은 유연해지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일 것이다. 

2. 그런데 어떤 경우에 한해서는 상상과 현실의 관계가 반대로 흐른다. 앞선 언급이 현실의 영향을 받은 상상이라면 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 '온다'는 현실의 영향을 받은 상상의 영향을 받은 현실, 다시 말해 상상의 영향을 받은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는 사회면 어딘가를 흔히 장식하는 사건뉴스의 이면에 끔찍한 악마(보기왕)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비롯된다. 악마는 현실의 어두운 면을 먹고 자란다. 그렇게 자란 악마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파고들어 생명력을 얻는다. '온다'의 악마는 그래서 실체가 없다. '헬보이'에서나 봤을 법한 끔찍한 크리쳐의 형상을 한 대신, 타인의 모습을 하고 타인의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는 시기와 질투, 배신, 혐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악마는 현실과 분리된 듯 하나 곧 현실에 숨어있다. 2층집 침실에서 손발이 묶인 채 절규하는 소녀에게는 이제 벽이 없다. 찢겨진 얼굴의 소녀는 거리의 군중 속 어딘가에서 얼굴을 숨긴 채 걷고 있다. '온다'의 공포는 거기서 비롯된다. 

3. '온다'는 평범한 청년 히데키(츠마부키 사토시)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는 어린 시절 이웃 소녀와의 오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경험이 희미해진 탓인지 억지로 노력한 탓인지 히데키는 싹싹하게 직장생활을 해나간다. 그러다 아름다운 아내 카나(쿠로키 하루)를 얻고 아이까지 생기면서 그는 대단히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 삶의 이면에는 어두운 모습이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은 행복한 가정의 깊은 곳에 숨은 불신에서 자라나 가족을 집어삼키고 모두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 그리고 이 가족을 지켜보던 퇴마사 마코토(고마츠 나나)와 애인 카즈히로(오카다 준이치)는 악마와 맞서 싸우게 된다.  

4. 언듯 평범한 오컬트 영화같은 '온다'에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꽤 많다. 그것은 마코토의 언니이자 일본 최고의 퇴마사 코토코(마츠 다카코)가 최후의 퇴마의식을 준비하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만약 다른 오컬트 영화라면 생략했을 장면을 꽤 길게 보여준다. 퇴마 조력자들이 도쿄로 상경하기 위해 열차에 몸을 싣고 택시를 타는 장면이나 캡슐호텔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의복을 갖추는 장면, 퇴마를 위해 재단을 짓는 인부들의 모습, 엔지니어들이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 등이다. 비범하고 신성해야 하는 오컬트 영화의 분위기에는 오히려 반대되는 장면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장면들은 마치 의도했다는 듯 퇴마의식의 비범함을 방해한다. 이런 장면은 하나 더 있다. 일본 최고의 무당 쯤 돼보이는 코토코가 도쿄로 건너와 카즈히로와 만난다. 그때 코토코는 라멘을 먹으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한다. 실컷 포스를 풍기던 코토코는 깔끔하게 일어나 접시와 그릇을 반납하러 간다(거기는 푸드코트인 모양이다). 

5. 영화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오컬트적인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 순간 관객의 시선을 주변으로 분산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주변은 평범한 사람들이 밥먹고 수다떠는, 관객들의 일상이다. 당연히 관객들은 악마가 등장하는 이야기와 일상적인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두 이야기가 동시에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지나면 관객은 "악마가 우리 주변에 있는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히데키의 가족에게 닥쳐온 이야기는 힘을 얻기 시작한다. 영화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히데키의 실체를 보여준다. 자상하고 의젓한 가장인 척한 히데키는 사실 무책임한 가장이다. 정확히 그는 '의젓하고 자상한 가장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무책임한 가장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당연히 아내가 받는다. 그리고 아내의 스트레스는 가정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악마는 어떤 형태로건 개입하게 된다. 뉴스의 어딘가에서 봤을 가정폭력의 한 페이지에 악마가 개입하는 것이 '온다'의 핵심이다. 

6. 그렇다면 영화 속 가정폭력의 양상에서 조금 더 개념을 확대시켜보자. 히데키가 카나를 만나고 결혼하기까지 지점,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 모두 완벽해보이고 행복해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움이 있다. 그것은 그들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다. 쉽게 말해 '뒷담화'다. 앞서 이 영화 속 악마는 타인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타인이 전하는 뒷담화다. '뒷담화'의 양상을 알아보자. 그것은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할 때 생겨난다. 아마도 이 악마에게 그런 감정들은 좋은 먹이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면 소름돋는 상황이 일어난다. 이 무시무시한 악마의 난입은 영화 속 누구에게나, 그리고 영화를 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특별하지 않은 히데키의 가족을 타겟으로 삼았다. '온다'는 이처럼 안간힘을 쓰고 일상적이지 않은 이야기(오컬트)를 일상의 세계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래야 오컬트의 이야기가 더 깊이 뇌리에 박히게 되고 살면서 피어나는 작은 감정들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7. 나는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홍진의 '곡성'을 떠올렸다. 분명 '곡성'과 닮은 지점이 많이 있다. 사소하게 닮은 것들도 분명 있지만 가장 중요한 '닮은 꼴'은 이와 같은 '오컬트의 일상성'이다. '검은 사제들'에서도 그것을 시도한 바 있고 '곡성'에서도 이어지는 지점이다. 이들 두 작품에 비하면 '온다'가 보여주는 '오컬트의 일상성'은 더 노골적이다. 일상 속에 오컬트(=악마)가 산다는 것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빈틈을 파고들 수 있다는 의미다. 상처가 있고 불행을 안고 있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 악마에 씌이게 된다. 그것은 끔찍한 살인자의 얼굴을 하기도 하고 가정폭력, 음주운전, 도박중독, 강간, 폭행 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모든 악행에 악마가 있다고 믿는 것이 '오컬트의 일상성'의 핵심이다. 

8. 그래서 히데키와 카나의 딸 치사의 역할은 중요하다. 결핍 투성이들인 영화 속 주요 인물들 중 치사는 유일하게 희망적이다. 물론 이 아이 역시 무책임한 아빠와 어두운 엄마 사이에서 자라 악마를 품었지만 아직 이 아이의 메모리에는 빈 공간이 많다. 더 새롭고 밝은 것으로 채워나갈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불안하고 어두운 현재의 유일한 희망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이다. 어쩌면 그 아이가 자라서 이루게 될 유토피아가 '오무라이스 나라'일지도 모르겠다(노랗고 빨갛고 맛있는 나라라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온다'는 '곡성'과 '검은 사제들'의 연장선에서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추신) 영화를 다 보고 엔딩크레딧이 나오자 나는 깜짝 놀라서 같이 본 여친에게 물었다. "고마츠 나나가 나왔었어?". 잠시 후 다시 물었다. "마츠 다카코가 나왔었어?". 그리고 얼마 뒤 여친이 나에게 물었다. "오카다 준이치가 나왔었어?". 죄다 알아보기 어려운 몰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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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20.04.14 20:19 address edit/delete reply

    영화 끝나고 엔딩 크레딧 보면서 저도 추신)과 똑같이 생각했는데 ㅋㅋㅋㅋㅋ 일드 일영에서 많이 본 세 사람인데 온다에선 영화 끝날 때까지 못알아봤다는게 영화 끝나고 영화내용보다 더 충격적이었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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