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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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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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본 사와라는 배우가 있다. 1978년생인 그는 1993년 TV영화 '셜록 홈즈 리턴즈'로 데뷔했다. 이어 '꼬마유령 캐스퍼'와 '나우앤덴'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1999년 '크레이지 핸드'와 2000년 '데스티네이션'에서 얼굴을 알렸다. 그는 '데스티네이션'으로 2001년 새턴어워즈 최우수 신인배우상을 받기도 했다.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잘 나갈 줄 알았던 이 배우는 2002년 '슬랙커즈'와 2003년 '익스트림 OPS'에 출연했으나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는 귀신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실 그는 꾸준히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었다. 다만 변변치 않은 작품에 주인공을 했고, 잘 나가는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동년배 배우인 애쉬튼 커처와 조쉬 하트넷도 이미 내리막길이지만 그들은 꽤 오래 '좋은 시절'을 보냈다. 또 다른 동년배 배우인 안소니 마키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제대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 외에 많은 동년배 배우들이 그럭저럭 큰 족적을 남긴 것에 비하면 이 배우의 행보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대로 청춘스타가 될 수 있었으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2. 전세계 영화계를 통틀어 이런 배우가 어디 데본 사와 하나뿐일까. 오래된 책은 먼지가 쌓여 서재 한 쪽 귀퉁이에 놓여있지만 언젠가는 펼쳐진다. 잠깐의 임팩트를 남기고 사라진 스타들은 '슈가맨'을 찾는 누군가에 의해 다시 꺼내어진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헐리우드'(인 헐리우드)의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수많은 데본 사와와 '슈가맨' 중 하나일 것이다. ...이쯤 이야기하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 영화가 대단히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언뜻 이 영화는, 우리가 아는 '낭만'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있어보인다. 쇼비즈의 거침없는 모습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가장 끔찍한 살인사건의 서막도 깔린다. 그러나 타란티노의 영화들을 챙겨 본 관객이라면 알 것이다. '인 헐리우드'는 '유열의 음악앨범'과 정서를 공유할 정도로 감성적이다. 

3. '잊혀진 것들'은 비단 반짝스타뿐만 아닐 것이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동네의 풍경과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음악을 들려주던 레코드판, SF영화에서나 들었을 전자음을 들려주며 시작하던 PC통신 모뎀, 첫 연애와 첫 키스의 두근거림. 어느 시대건 세월이 지나면서 잊고 지내는 것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잊지 못하는 것도 있다. 끔찍한 사고와 그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 국가적 위기에 휩쓸려 힘들어하던 기억, 두근거림은 묻어뒀으나 아련하게 떠오르던 첫 연인의 얼굴. '인 헐리우드'는 이 중 '사고'에 주목한다.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은 개인의 참극이지만 집단의 트라우마다. 어쩌면 데본 사와만큼 짧게 인기를 얻고 사라졌을지도 모를 스타가 끔찍하게 살해당했고 그 범인은 역사에 길이남을 연쇄살인범과 그 추종자들이다. 이 사건으로 히피문화는 종말을 맞았고 미국의 대중문화도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잊혀진 것'과 '잊을 수 없는 것'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인 헐리우드'는 '유열의 음악앨범' 혹은 '벌새'와 닮았다. 

4. '인 헐리우드'는 픽션이다. 아마 평범한 감독이었다면 영화 시작 장면에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된 픽션으로 등장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허구에 의해 제작됐습니다. 만약 실제와 동일한 이름이 등장하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라는 식의 문구가 들어갔을 것이다(물론 타란티노는 그런 거 안 넣는다). '유열의 음악앨범'이나 '벌새'도 픽션이지만 이 작품들은 거대한 시대를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픽션이지만 어딘가에 그렇게 살았을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영화 속 릭 달튼은 배우라는 점에서 특수성을 갖는다. 그는 명백한 가상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인 헐리우드'는 보편적 기억을 특수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을 '인 헐리우드' 안으로 특정 시킨다는 의미다. 이어서 타란티노는 사건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종말하는 시대의 바지자락을 붙잡는다. 이를 위해 영화는 오랜 러닝타임동안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의 이야기에 공을 들인 것이다. 

5. '인 헐리우드'는 동시대를 산 사람에게는 꽤 위로가 될 것이다. 이것은 연상호 감독의 '염력'과 닮은 지점이다. '염력'이 용산참사를 염두해둔 것은 영화를 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클라이막스는 용산참사와 매우 닮아있지만 실제 용산참사와 다른 결말로 치닫는다. 때문에 '염력'은 용산참사가 비극이 아닌 다른 결말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엔딩크레딧에 '공동정범'과 '두 개의 문'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의 이름이 올라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짐작해본다). 다만 주인공 신석헌(류승룡)이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보편적인 기억이 아닌 영화 속 특수한 이야기가 된다. '위로'라는 것이 보편적 트라우마에 대해 보편적인 방식으로 건넨다면 자칫 오지랖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영화 안에서 위로받고 나가도록 하는 것은 조심스런 방법 중 하나다. 영화가 트라우마를 달랠 때는 다른 방식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생일'처럼 철저할 정도로 트라우마 안으로 파고들어서 달래는 방법도 그 중 하나다(대단히 어려운 방법인 것으로 추측해본다). 혹은 '벌새'처럼 '보편적인 개인'을 만들 수도 있고 '국가 부도의 날'처럼 직구를 던질 수도 있다. 

6. 그렇다면 동시대를 살지 않은 사람에게 이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확실한 것은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을 모르고서는 이 영화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저 '온라인 탑골공원 극장판'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길고 복잡한 구성이다. 그럴때는 '내가 아는 어떤 반짝스타'를 떠올려보자. 영화의 마지막은 릭 달튼이 큰 사건을 겪은 후 로만 폴란스키의 집에 방문한 장면이다.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는 영화 초반부에서 "로만 폴란스키와 파티를 할 수만 있어도 엄청 성공할거야"라는 식의 말을 한다. 영화 내내 로만 폴란스키와 릭 달튼은 전혀 인맥도 없고 관련도 없었다. 잊혀져가는 TV스타와 천재 영화감독은 당연히 괴리감이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은 연결고리가 생겼다.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후 릭 달튼은 '차이나타운'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을지도 모르겠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잭 니콜슨은 닮았다). '인 헐리우드'의 마지막 장면은 헐리우드의 비극적 사건을 되돌림과 동시에 잊혀진 스타를 잊혀지지 않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7. 우리 기억 속의 반짝스타도 잊혀지지 않을 계기가 있었다. 꽤 좋아했던 예능프로인 JTBC '슈가맨 프로젝트'에 등장한 슈가맨들은 "대중 앞에서 사라지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주로 회사가 도산했다거나 못된 대표를 만나고, 사기를 당하는 등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 만약 그 사정이 일어나지 않고 다른 계기가 생긴다면? 다른 계기를 맞았다면 그들은 현재까지도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은 스타가 됐을 것이다. 이것은 스타뿐 아니라 시대와 트렌드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B무비들은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때 굉장했던 한국 비디오 에로영화시장도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막을 내렸다. 박력 넘치던 그라인드하우스 영화도 짧은 전성기와 함께 막을 내렸다. 가난하고 잊혀진 영화들은 그만큼 빠르고 연약하게 사라진다.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어떤 계기가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8-1. 결론: '온라인 탑골공원'부터 시작해서 아재감성 자극하는 것들이 요즘 너무 많다. 이걸 좋아해야 할 지 싫어해야 할 지 모르겠다. 노래방에서 "내가 최신유행곡을 잘 알아"라며 빅뱅의 '거짓말'을 선곡하는 부장꼴 나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그거 다 의미없는 모양이다(그렇다고 내가 부장급 나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젠 10, 20대들이 기도하듯 마이크잡고 노래하는 조성모 보고 "매실형이다"라며 반가워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만 '세대간의 융합'이 이뤄진다. 이 나라의 미래가 밝으려나보다. 

8-2. 결론: B무비를 먹고 자라서 B무비를 찬양하는 타란티노가 보는 헐리우드는 꽤 재미가 없는 모양이다(그러니 은퇴 소리를 했겠지). 그래서 그는 매 필모그라피마다 '재미 좋았고 아련했던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한다. '인 헐리우드'는 그 추억의 결정판이다. 이 의견에 일부 동감하지만 반대하는 면도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그에 걸맞는 이야기꺼리가 생긴다고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 30~40년이 지나면 '어벤져스:엔드게임'조차 아련한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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