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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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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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메라가 담아내는 '육체'라는 것은 실제로 느끼는 것과 다르다. 우리는 모두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의 그것을 느낀다. 그러나 많은 영화들은 그것에 힘이 있고 유연하고 부드럽다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관객들 대부분은 드웨인 존슨 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지 않고 갤 가돗처럼 늘씬하지 않다. 당연히 미셸 로드리게즈처럼 근육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톰 히들스턴처럼 늘씬하지도 않다. 바쁜 하루를 사는 우리의 육체는 그저 엔진과 배터리, 구동축과 관절을 가진 유기체에 불과하다. 한가람 감독의 '아워바디'는 그런 육체를 바라본다. 아무런 로망도 없고 미화도 없이, 온전히 자의식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써 육체다. 우리는 거울이 아닌 맨 눈으로 온전히 스스로의 몸을 바라볼 일이 없다. 나는 내 뒤통수를 두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등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워바디'가 이것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진 않지만 영화는 '내 몸은 안녕하신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정확히는 '내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2. '아워바디'에 대해 '육체에 대한 영화'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이유, 다시 말해 그것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이야기 속에 있다. 영화는 8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자영(최희서)의 일탈로 시작한다. 시험에 지친 자영은 어느날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는 현주(안지혜)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건강함에 매료돼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다. 시놉시스의 내용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무기력한 청춘이 달리기를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얻어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영화'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어느 장면에 이르러 무참이 깨진다. 영화는 이렇게 상식적인 전개를 3번 정도 뒤집는다. 이 뒤집히는 방향에 따라 이야기의 주제도 달라진다.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던 '이 영화의 주제'가 끊임없이 박살난다. 

3. 영화가 뒤집어지는 첫 번째 지점은 현주의 죽음이다. 자영과 함께 동반자의 위치에 있던 현주는 달리던 중 갑자기 차에 치여 죽는다. 앞서 현주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은 드러났으나 이는 주제의 전환에 영향을 줄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현주의 죽음 이후에도 '스스로 일어서는' 자영의 모습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그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아워바디'는 현주의 죽음 이후 자영을 끝없는 심연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다가도 극복을 한다면 영화는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되지만 이때부터 자영의 달리기는 병적인 집착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 집착한 죽은 현주에 대한 집착일 수 있고 실패했다고 믿는 자신으로부터 도피일 수 있다. 

4. 두 번째 뒤집어지는 지점은 자영이 정부장(장준휘)과 섹스를 하는 순간이다. 장면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야근을 하던 인턴 자영이 우연히 사무실에 들른 정부장과 술을 마시게 된다. 아슬아슬한 대화가 오고가다 자영은 정부장에게 "저 나이 많은 남자 좋아해요"라는 말을 한다. 앞서 현주는 자영과 술을 마시면서 "나이가 서른살 쯤 많은 남자와 섹스하는 것이 로망"이라고 말한다. 자영은 죽은 현주의 판타지를 대신 충족한 셈이다. 이것이 장면의 의도다. 이 장면이 뒤집어지는 점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장면의 분위기나 정부장의 뉘앙스로 봤을때 이 장면은 "정부장이 자영을 덮친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장 그렇게 돼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지만 영화는 반대로 자영이 정부장을 덮친다. 그리고 건강한 메시지를 가진 것처럼 굴던 영화는 이 장면 이후 이상한 아슬아슬함을 갖는다. 그것은 직장 내 괴롭힘(왕따)와 같은 시선이고 관객 역시 그런 시선을 갖도록 유도한다. 관객은 분명 자영이 현주의 판타지를 대신 충족시킨 것을 알지만 이후 분위기는 "그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박평식 평론가가 '엉뚱한 장면 하나가 치명상'이라고 말한 장면이 이 지점이 아닌가 싶다. 

5. 이후 타인의 시선을 인지하게 된 자영은 친구 민지(노수산나)와 대화 후 회사를 관둔다. 초반부에 자영의 오열을 생각한다면 그녀가 회사에서 자리잡고 난제를 극복하길 바랬을텢만 영화는 그것을 보기 좋게 배반한다. 그리고 자영은 엄마(김정영)와 여동생(이재인)에게 비싼 밥을 사고 최고급 호텔로 향한다. 앞서 자영은 현주와 술을 마시면서 자신의 성적 판타지는 최고급 호텔에서 룸서비스 시켜먹으면서 하루 종일 섹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와 복도를 따라 호텔로 향하는 자영을 보면서 누군가가 있는 방으로 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호텔에는 자영 혼자만 있다. 그녀는 혼자 룸서비스를 시켜먹고 섹스 대신 자위행위를 한다. 그렇게 영화의 마지막에 남은 것은 '몸'과 몸의 주체인 '자아'뿐이다. 

6. 첫 번째 전환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자영이 달리기를 통해 삶의 의지를 얻어 열심히 살 것으로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열심히 산다는 것'은 자영만의 독자적인 기준이 아닐 수 있다.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건실한 회사에 취직해서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은 보편적 기준,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시 엄마의 말을 빌어 그것을 계속 강조한다. 두 번째 전환에서 자영은 앞서 말한대로 현주의 성적 판타지를 대신 충족한다. 자영은 처음부터 현주의 아름다움과 삶을 동경했다. 그러나 카페에서 드러난 현주의 표정과 심경의 변화는 그녀 역시 자영과 같은 위치에 있음을 보여줬다. 자영이 정부장과 잠자리를 갖기까지 자영은 현주 역시 자신과 같은 위치였음을 의식하지 못한 듯 하다. 다시 말해 현주는 이상향이 아닌 동등한 위치의 타인이다. 타인의 성적 욕망은 개인에게 온전히 반영될 수 없다. 성적 판타지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주의 판타지를 옮긴 자영에게는 온전한 쾌락이 아닌 스트레스만 따른다(정작 자영과 정부장의 섹스신은 생략돼있다). 

7. 마지막 전환은 섹스에 대한 얘기다. 첫 장면에서 자영은 경수(오동민)와 섹스를 한다. 이때 자영은 아래에서 수동적으로 있을 뿐이다. 자세를 바꿔서 자영이 위로 올라가보지만 이때는 섹스가 잘되지 않는다. 영화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섹스에서는 위에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는다(그래서 박찬욱의 '아가씨'에서는 위에 올라간 사람이 없다).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의지와 감각대로 허리를 움직일 수 있음을 말한다. 자영과 현주의 대화에서도 '어린 남자와 섹스'에 대해 "자기 마음대로 한다"며 불만을 나타낸다. 정부장과 섹스에서 자영은 위에 올라타 일을 주도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는 아무것도 주도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섹스는 두 사람이 함께 하지만 두 사람의 의지와 감각이 온전히 반영될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절정에 이르는 순간도 다르고, 심지어 동성끼리도 그 순간을 합의시키기는 어렵다. 즉 섹스에서는 갑을관계가 생길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영화는 내내 그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자위행위는 가장 주체적인 섹스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몸을 조율해 절정에 이른다. '아워바디'의 마지막은 자영이 가지고 있는 성적 판타지의 정점에서 스스로 그것을 주도하는 장면이다. 그제서야 자영은 자기 몸의 온전한 주체가 됐고 온전한 몸의 권리를 되찾았다. 

8. 나는 '아워바디'가 '내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 몸은 온전히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고 보편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관리를 해야 한다(이것을 두고 '자기만족'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 만족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걷기 시작하고부터 체득한 운동인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배워야 할 정도로 우리는 주체적으로 움직이는데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몸을 온전히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타인의 존재를 하나씩 지운다. 애인을 지우고 친구를 지우고 직장을 지운다. 그리고 동경하는 상대를 지우고 가족도 지워버린다. 이야기 내내 그렇게 다 지워버리고 나서 결국 남는 것은 나와 내 몸이다. 영화의 제목은 '아워바디'(Our Body)지만 공교롭게도 이것은 '마이바디'(My Body)에 대한 질문이다. 내 몸은 온전히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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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자스민차향기조아 2019.10.01 18:2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관람 후기 잘 보았습니다. 영화 포스터가 왠지 끌려서 읽었어요. 원래같으면 사실 이런 류의 영화는 제 취향은 아닌데 읽다보니 한 번 보고 싶네요. 영화를 보면서 이런 분석을 하면서 본다는 게 신기합니다. 저는 그냥 재미있다 아니면 재미없다 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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