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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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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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러니를 좋아한다. 안 어울리는 것 둘이 만나서 조화를 이뤄가는 과정은 언제봐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내가 형사버디무비를 좋아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성격도 다르고 이것저것 다 다른 두 캐릭터가 만나서 조화를 맞춰가고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은 큰 재미를 준다. 나는 한 번도 "그게 왜 재미있지?"라는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건 내게 "초콜렛이 왜 맛있지?"라는 질문과 같았다. 그건 진지하게 고민한다고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고민의 방향조차 찾기 힘든 일이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영화 '두 교황'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아이러니의 근간을 쫓는다. 그것은 꽤 종교적인 지점에 있었으며 신과 인간 모두에게로 범위를 확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삶 그 자체가 거대한 아이러니일 수 있다. 

'두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조나단 프라이스)과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안소니 홉킨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사람은 성향과 국적, 성격, 취미, 기호 등 여러가지가 다 다르다. 세계적인 명망을 갖춘 두 종교인의 대화에서 흔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종교적인 깨달음과 지혜 등이다. 보통 이것은 꽤 신성하고 위대한 것으로 부각돼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평범한 영화였다면 두 교황의 이야기를 그렇게 다뤘을 것이다. 그러나 '두 교황'은 이것을 보기 좋게 배신하며 시작한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베사메무쵸'가 흘러 나오더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 빈민가 거리에서 당시 추기경이었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조나단 프라이스)는 군중들을 상대로 연설을 한다. 이것은 따분한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라 시민들과 편하게 소통하면서 나누는 '유쾌한 대화'다. 그리고 그는 시민들과 가깝게 만나며 추기경의 위치에 있지만 '이웃집 신부님'같은 이미지를 고수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죽고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열린 가운데 호르헤와 라칭거 추기경(안소니 홉킨스)도 참가한다. 호르헤는 교황 자리에 욕심이 없지만 선거회에서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반면 라칭거는 교황이 되기 위해 매우 노력하는 야심가다. 라칭거는 '종교인'이라기보다 '정치인'이나 '사업가'에 가깝다. 게다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대중의 인지도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보수파 추기경으로 이루고자 하는 신념이 있고 야망이 있었다. 때문에 호르헤는 라칭거를 지지하고 그는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된다. 시작부터 신도들에게 "나치"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역사상 가장 인지도가 낮은 교황'이 된 베네딕토 16세는 훗날 교황 측근의 스캔들과 교황청 기밀문서 유출로 곤혹을 치른다. 종교인으로서 좌절을 느낀 베네딕토 16세는 호르헤에게 교황직을 넘기고 물러나려고 한다. 


라칭거와 호르헤는 존재 자체가 대립적이다. 국가와 대륙도 다르고 보수파와 진보파로 성향도 다르다. 당연히 종교적 이슈에 대한 입장도 다르고 음악과 축구를 좋아하는 취미도 다르다. 그런데 이들은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의 것들을 인용하며 닮아간다. 예를 들어 호르헤가 "그것은 타협이 아니고 변화입니다"라고 말을 하면 얼마 뒤 다른 대화에서 라칭거가 그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라칭거는 교황업무로 이동을 해야 할 때 자신을 찾아온 호르헤와 함께 가길 원한다. 그렇게 성격이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대화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당연히 교황을 물려줘도 제일 상극인 호르헤에게 물려준다. 이것은 보수정당의 지도자가 정권 말기에 진보정당의 지도자를 지지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지도자는 대단히 종교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들이며 존경받을 가치가 충분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그렇지만 자신이 집권하면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과 성향이 같거나 비슷한 지도자를 선택하고 지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라칭거는 자신과 전혀 반대되는 사람을 지목한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함께 공감할 것이 있는 사람은 금새 가까워지고 친해질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닮은 사람은 서로 보완해야 할 것들을 알지 못한다. 반대되는 사람끼리 만나면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고 발전적인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엄청난 갈등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라칭거가 호르헤를 선택한 것은 자신이 실패한 것들을 이룩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을 지목했다. 이것은 전세계 모든 정치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지만 대부분 실천하지 못한다. 두 교황처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치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상호보완의 정치'를 하기에 우리의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은 너무나 성장하지 못했다. 

호르헤는 라칭거의 '교황 제의'를 처음에 거절한다. 애시당초 그가 교황을 만나고자 했던 것은 '추기경 은퇴 서류'에 싸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는 은퇴를 위해 교황 제의를 거절한 것도 있지만 스스로 지은 죄 때문에 교황이 되기를 주저한다. 실제로 호르헤는 1970년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당시 예수회 소속으로 인권운동에 침묵하고 군부를 도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심지어 동료였던 신부 둘이 군부에 체포돼 끔찍한 고문을 당할 때에도 호르헤는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호르헤는 처음에 "신부들이 체포된 것에 침묵했다"고 알려지며 비난을 받았으나 실제로 그는 두 신부의 석방을 위해 군부를 설득했다. 결국 두 신부는 풀려났으나 호르헤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힌 채 해외로 돌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라칭거는 그런 호르헤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으나 호르헤에게 그 일은 마음의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다. 

호르헤가 추기경의 자리에 오르고 교황의 제의를 받은 것은 그가 속죄하고 오랜 시간 종교인으로 헌신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결한'(그렇게 믿고 있는) 종교인을 인간적인 위치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아이러니, '다르다'는 것은 시대에 따라 상하관계와 권력을 만들어낸다. 세력이 큰 종교는 세력이 작은 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다. 이것은 다른 종교뿐 아니라 하나의 종교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마치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친문', '비문'으로, 자유한국당 안에서도 '친박', '비박'으로 나뉘어지듯 가톨릭이나 기독교 안에서도 저마다 다른 종파로 나뉘어진다. 집단이 분리되는 것은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한 갈등을 유발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보여준 라칭거와 호르헤의 애매한 대립도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는 무신론자다. 그래서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인간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고난을 감당할 수 없어서 기댈 수 있는 핑계를 마련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실체'라고 말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저 인간이 나약해서 만든 '핑계의 대상'이라고 믿는 편이다. '두 교황'을 보고 "신앙이 생길 것 같다"며 온갖 찬사를 남겼지만 나는 여전히 무신론자다. 다만 인간이 '신(神)'이라는 존재를 만든 이유에 하나 더 추가하게 됐다. 인간이 저마다 집단화돼있고 집단끼리 갈등을 유발할 경우 권력의 상하관계가 형성된다. 신은 그 상하관계를 무마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즉 '절대적인' 신이 존재하는데 인간끼리 계급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즉, 신 앞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설령 그 인간이 '교황'일지라도. 

이 때문에 호르헤의 1970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성인군자에게 바라는 고결함은 사실 인간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 날때부터 언제 어디서든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죄를 짓고 반성하며 변하는 것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죄의 무게만큼 반성하고 속죄하며 변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살인범이 고해성사로 죄를 씻어내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라칭거는 호르헤의 과거를 알고도 그를 교황으로 지목했다. 라칭거는 호르헤의 잘못이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많은 생명을 구하면서 종교인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를 지은 후 40년 동안 호르헤는 존경받는, 훌륭한 종교인으로 성장했다. 죄를 잘 다스려 교황이 될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죄를 잘 다스려 훌륭한 종교인으로 남을 것이다. 신부님이 사하여 준다거나 예수가 십자가에 짊어지고 갔다고 죄가 사라지진 않는다. 살면서 지은 죄는 살아서 죄값을 치르고 갚아야 하는 것이다. 

'두 교황'은 앞서 말한대로 여러 아이러니의 집합체같은 영화다. 보수와 진보의 아이러니, 국가의 아이러니, 인간과 신의 아이러니가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아이러니는 '인간과 신'의 관계다. 이것은 '합리와 신앙'으로 나눌 수 있다. 신앙은 합리적이지 않다. 가톨릭 신부나 기독교인이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쉽게 생각해도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쫓는 일이다. 목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오르는 일은 충분히 고통스럽다. 이는 불교에서도 '고행'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종교적 경지에 이르는 일은 엄청난 고통과 노력을 강요한다. 라칭거는 그 노력에 고스란히 몸을 던졌다. 반면 호르헤는 스스로의 삶을 살면서 그 가운데 종교적 길을 찾았다. 

종교적 경지를 위해 불합리한 길마저 감수해야 하는 것과 절대 다수에게 이익을 주는 옳은 길을 가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신앙을 위해 합리를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합리 안에서 신앙을 찾는 일은 분명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나 부처 등 종교적 경지에 이른 지도자(이 경우에 이들을 '신'(神)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에게는 '제자'가 있었다. 즉 이들은 '스승'의 위치에 있으며 보이지 않는 실체를 쫓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을 가르쳤다. 제자는 이 말을 배우고 이해해 자신들의 삶에 체득하고 그 가운데서 얻는 깨달음을 다음 제자에게 전파한다. 이는 우리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종교는 학습에서 시작했으며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는 길을 가르쳤다. 현대에 와서 이것은 '맹목적인 신앙'으로 변해버렸다.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영화 '두 교황'은 "신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 대신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신앙을 쫓는 대신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그 안에서 신앙을 찾으라고 하고 있다(적어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렇게 살았다). '두 교황'은 내가 태어나서 본 모든 영화들 중 '가장 아이러니한 영화'에 속한다(몇 편 안될거다). 신앙과 합리, 신과 인간, 국가와 국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름'을 허물고 모두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상대의 가치관을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관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건 굉장히 간단하고 당연한 일인데 의외로 어렵다(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상대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 혹은 이해하려 했으나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겠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황도 지은 죄가 있다. 

나는 영화 '두 교황'이 너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러니의 대환장판'도 너무 좋고 늘 매혹되는 '범 인류적인 이야기 주제'에 '긍정적인 결말'도 좋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두 할아버지의 꽁냥질'이 유쾌한 것도 있지만 이들의 대화에서 묻어나는 종교와 인간에 대한 성찰도 좋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좋다. 내가 아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시티오브갓'이 처음이다. 그는 대단히 강렬하고 스타일리쉬했으며 자신의 색채가 강했다. 그런데 '두 교황'은 그 색채가 많이 묻어나지 않는다. 거물급 주연배우인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에게 많은 부분을 할해한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주제와 마찬가지인 아이러니를 표현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해한다. 예를 들어 콘클라베 장면에서 아바의 '댄싱퀸'이 나온다거나 가톨릭 벽화가 가득한 교황청 내부 공간을 배경으로 재즈가 흘러나오는 장면, 두 교황이 나란히 앉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아르헨티나 vs 독일)을 보는 모습 등이다.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이런 장면들과 함께 두 주연배우는 명연기를 펼친다. 이들의 연기는 누구 하나 튀려고 하거나 메소드 연기를 펼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가 대부분인 영화에서 이들은 주고 받는 앙상블로 조화를 이뤄간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 배우의 연기조차 영화의 주제인 '아이러니'와 '조화'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두 배우의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이 영화는 놀랍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고 거슬릴 것 없이 영화는 조화롭다. 그리고 "종교의 권위가 대중 곁으로 내려왔다"는 인상은 이 영화가 더 좋아지게 만든다. '두 교황'이 담고 있는 이야기(혹은 실제 두 교황의 삶)는 우리 사회와 각자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 바램이라면 정치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맹신은 신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삶에 충실하면서 그 안에서 지지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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