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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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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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일전에 썼던 몇 개의 글을 꺼내봤다. 정확히는 4년전에 쓴 글(https://daishiromance.tistory.com/568)인데 다시 읽어보니 참 못 쓴 글이다. 이 글의 배경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영화 '패션왕' 개봉 전 언론시사회 당시 설리를 처음 보고 느낀 생각을 적었다. 당시 설리는 에프엑스 활동 중 잠적설과 열애설 등으로 여러 악플에 시달리고 있었다. '패션왕' 언론시사회는 이같은 여러 일들 이후 첫 공식석상이다. 당연히 기자들은 설리에게 시선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홍보사는 "영화에 대한 질문만 해달라"며 기자들을 '진정'시켰다. 현장에 참석한 나는 설리가 어떤 표정으로 등장할지 궁금했다. 여러 구설수에 시달린 탓에 어두운 표정을 할 줄 알았지만 내가 처음 본 설리는 너무 자연스럽고 밝은 모습이었다. 영화에 관심을 보인 기자들(정확히는 설리에게 관심을 보인 기자들)을 신기해하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당연히 기자들의 질문(영화에 대한 질문)에도 잘 대답했다. 

4년전 해당 글을 쓴 당시는 설리가 에프엑스 탈퇴를 공식화한 시점이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등을 돌린 에프엑스팬들'의 악플 공격이 이어지던 중이었고 2015년 8월은 그것이 폭발하던 때였다. 내가 글을 썼던 4년전의 심경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설리를 위한 변명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게 아니다"라는 말을 그때도 믿었고 지금도 믿는다. 그런데 4년전 나는 연예인이 아닌 한 인간이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 해맑게 웃던 여자아이가 2015년 8월의 악플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때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닌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를 향한 공격은 더 심해졌다. 거기에는 익명의 악플러뿐 아니라 미디어까지 합류해 더 거세졌다. 마치 설리는 '실체없는 인간'이 돼버린 것 같았다. 

2015년의 글 이후에도 나는 가끔(두 번 정도) 설리를 언급했다. '네온 데몬'이나 '아이, 토냐' 같은 영화를 보면 설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제시(엘르 패닝)나 토냐 하딩(마고 로비)처럼 차라리 '나쁜 년'이 돼서 맞짱뜨고 싸우길 바랬다. 소위 걸그룹에게 씌워지는 '소녀스럽고 착한 이미지'가 아니라 화날 때 화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랬다. 그리고 자기 안의 혼란과 불안을 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길 바랬다. '네온 데몬'과 '아이, 토냐'는 그런 영화다. 대중들과 미디어, 그들이 씌운 이미지와 싸우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다. 나는 그녀가 더 당당하게 싸우길 바랬지만 너무 착했기 때문인지 그 화와 불안을 홀로 삭혔던 모양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죽음을 맞이한 뒤 다시 이 글을 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글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내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할 자격이 있는건지 모르겠다. 나는 어느 한 사람의 자살에 책임이 없다고 할 만큼 떳떳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직업이 기자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한 '계정'으로써 하는 얘기다. 차라리 이 글의 성격을 '반성문'으로 정의내려보자. 이후에 언급할 모든 비판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설리의 죽음 이후 여러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에는 다양한 반응이 등장했다. 대부분은 애도하고 슬퍼하는 글이지만 그 와중에 조롱의 댓글도 있었고 책임을 묻는 댓글도 있었다. 그 댓글들을 보면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애도하고 슬퍼하는 댓글은 살아있을 때 다 어디에 있었나"라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 있었던 수많은 악플에 누구도 옹호하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제서야 나타나 그녀를 애도하고 추모한다. 현재 설리의 SNS 마지막 게시글에는 20만개가 넘는 애도의 글이 달려있다. 그 댓글 중 1/10이라도 포털에 달려가 선플을 달았다면 설리는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느끼며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삐딱해서 그런지 몰라도 갑자기 나타난 수많은 애도의 글을 보면 삐딱한 생각마저 든다. 한 사람이 상처받고 외로움과 우울증을 느끼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데 대해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악플러들과 다르다"라는 선긋기로 보인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설리가 악플에 시달릴때는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 애도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이 생각은 바로 이어서 따라오는 두 번째 생각 "책임을 묻는다"와도 이어진다. 설리의 죽음에 악플이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 알 순 없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정의내리면서 '악플에 대한 책임'을 묻기 바빠졌다. 이것은 '남초'와 '여초' 커뮤니티에서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다. '남초 사이트'들은 "페미가 설리를 죽였다"고 말하고 '여초 사이트'들은 "한남이 설리를 죽였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죽음에 대해 "니 책임이다"라고 떠넘기는 모양새다. 이것은 사실 간단한 결론이다. 그들이 말하는 '페미'도 악플을 달았고 '한남'도 악플을 달았다면, 결국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이 죽음에 대해 "너네 책임"이라며 싸워대고 비난하는 꼴은 결국 자기 얼굴에 침뱉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갑자기 나타난 애도'와 '책임추궁'은 "내 잘못은 없다"는 선긋기와 이어진다. 비난의 화살이 '악플러'를 향한 지금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모습과 같다(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그런 글이 될까 조심스럽다). 사실 나는 인터넷의 이같은 문화가 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줄 알았다. 2010년에 '경희대 패륜녀'라는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사건이 있었을 때 나는 인터넷의 역할에 대해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단언컨대 이때의 나는 대단히 틀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반성문'으로 규정한다. 나 역시 뜬금없는 애도로 선을 그었고 다른 존재를 비난해 도망치려고 했다.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에 대해 나도 더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못했고 더 착한 댓글을 달지 못했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나보다 더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더 살피지 못했고 더 위로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2011년 대구에서 사망한 중학생의 사진을 찾아봤다. 아이들의 세계에 무심한 어른이라 잘못했고 그 못된 문화를 배우도록 해서 잘못했다. 나는 나쁜 어른이고 나쁜 시민이다. 만약 내가 쓴 글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선플을 달고 선한 영향력을 내려 한 사람,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난하거나 혐오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를 비난해도 좋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함께 반성하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 


※ 이 글에 한해서는 댓글을 막아두겠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나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을 못 믿겠다. ...설리의 죽음 이후 더 못 믿겠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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