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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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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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는 전편보다 속편이 더 훌륭한 영화다. 그러나 전편 역시 그 나름대로 매력이 훌륭한 영화다. '터미네이터'는 전편과 속편이 합쳐져서 거대하고 정교한 타임 패러독스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전편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B급 감성이 물씬 풍기는 SF 액션 스릴러가 된다. '터미네이터'가 액션 스릴러로써 정체성을 갖는 방법은 간단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있고 극단적으로 쫓고 쫓기는 것이다. 이 간단한 플롯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쫓는 자는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는 로봇이 됐고 로봇을 등장시키기 위해 미래라는 배경도 끼어들었다. 아마 제임스 카메론도 '터미네이터'가 거대한 유니버스를 갖추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터미네이터'에서 미래는 타임 패러독스와 로봇을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다. 

2. 쫓고 쫓기는 플롯은 단순하지만 아주 재미있다. 그것은 액션 스릴러 장르로써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여지가 있다. 그 '새로운 이야기'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영화 '사냥의 시간'이다.  '사냥의 시간'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쫓기는 청춘들과 쫓는 암살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다. 그리고 충분히 '터미네이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른 노선을 택한다. 오히려 '쫓고 쫓기는' 오래된 플롯을 도구로 삼아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데 쓴다. 이것은 장르영화의 틀 안에 메시지를 녹인 것이며 전작인 '파수꾼'과 장르영화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와 같다. 꽤 어려운 도전을 한 셈이며 그럭저럭 잘 해냈다. 

3. '사냥의 시간'은 배경이 되는 시대부터 의미심장하다. 이 시대는 일단 '가상의 미래'다. 대략 "경제가 어렵다"라는 설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대단히 낯이 익다. 영화에 간간히 등장하는 뉴스들로 미뤄봤을 때 이 시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나라 경제가 파탄난 대한민국이다. 1997년을 살아본 세대라면 영화 속 풍경들이 그리 낯설진 않을 것이다. 물론 IMF의 기억을 되돌려봐도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다. '원화'가 더 이상 가치를 상실하고 달러로 거래하는 시대라면 원 가치는 영화 속 대사처럼 '휴지조각'이 됐다는 의미다. 추측해보건대 영화 속 시대는 IMF 당시 금모으기 등 이것저것 하지 않고 그대로 쭉 살았을 경우 맞이했을 '현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이는 가상의 '미래'가 아닌 가상의 '현재'가 될 수 있다. 

4. IMF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까지 살았다면 정말 나라는 파탄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시대를 사는 젊은이라면 정말 보석상이라도 털지 않는 이상 먹고 살 길이 막막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준호(이제훈)의 일행은 킬러 한(박해수)에게 쫓기기 전부터 이미 쫓기는 삶을 살고 있었다. 때문에 킬러 한에게 쫓기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쫓고 쫓기는' 플롯이 필요했지만 그것은 불확실한 시대 속 청춘들의 삶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도구에 불과했다. 게다가 준호 일행이 도둑질을 하며 훔친 것은 달러였고 한이 찾으려는 것은 하드디스크다. 상징적이긴 하지만 애시당초 둘은 지향점이 다르다. 그래서 곽철용 선생의 말처럼 "이 경우엔 원래 쇼당이 안 붙"는다. 

5. 추격전은 결국 도구로 전락했지만 감독은 최대한 재미를 끌어내려 시도한다. 닌자처럼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한의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 그의 얼굴에는 유독 역광을 심하게 줬고 미세먼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안개와 붉은 조명은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한껏 살려낸다. 특히 몇몇 장면에서는 사소한 리듬을 살려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준호 일행이 주차장에서 차를 훔칠 때 반복되는 자동차 경보음이 긴장감을 더한다. 그리고 준호가 바에서 전화벨 소리를 듣는 장면도 소리의 리듬으로 긴장을 주는 장면이다. '사냥의 시간'에서 추격전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그 한계 속에서 재미를 주려는 시도는 충분히 했다. 그리고 그 시도에 나는 만족한다(물론 '터미네이터'에 비할 바는 아니다). 

6. 극단적인 추격전 끝에 준호는 한에게 죽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한에게 죽은 봉식(조성하)을 쫓는 형 봉수(조성하)의 일행이 한을 쫓아 공격한다. 사냥꾼(=한)이 또 다른 존재의 사냥감이 된 순간이다. 추격전에서 준호는 쫓기는 자이긴 했으나 '주체'였다. 그러나 봉수의 등장으로 준호는 주체의 위치를 빼앗긴다. 그 가운데 준호는 겨우 살아남아 홀로 대만으로 향했다. 그러나 친구들을 모두 잃고 도착한 대만에서 그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애시당초 이 추격전은 준호가 주체인 싸움이 아니었다. 준호의 일행이 훔친 것은 도박장 환전소 금고의 돈이었으나 누구도 그 돈을 쫓진 않았다. 즉 준호와 그 일행들은 모든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자신과 상관도 없는 싸움에 내던져진 것이다. 

7. 결국 혼자 남아 도망친 준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이것은 조금 꼰대같은 결론이 될 수 있다. 준호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를 한을 죽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치 도망치려 한 현실에 피하지 말고 맞서라는 '꼰대'스런 메시지처럼 들린다. 온전히 청춘들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파수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사냥의 시간'은 청춘들의 불안과 좌절에 대해 시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랬다면 영화는 끝에 가서도 시대가 바뀌어야 함을 요구해야 한다. 여느 청춘들처럼 친구들과 있을 때 욕이나 찍찍 해대지만 결국 친구를 좋아하고 가족을 그리워 하는 아이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시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 청춘들 스스로에게 답을 찾을 것을 요구함은 "시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패배선언인지 꼰대의 도피인지 물어보고 싶다(차라리 '패배선언'이라고 하는 것이 덜 비겁해보인다). 

8. 궁금한 장면이 하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2020년 4월 23일 오후 9시16분) 온라인에서 진행 중일 GV를 본다면 다행이겠지만 귀찮아서 그냥 혼자 궁금증으로 남겨둔다. 영화에서는 네 친구 중 상수(박정민)와 기훈(최우식)이 죽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수는 준호의 꿈을 통해 죽었음을 짐작할 뿐이고 기훈은 빈대(김원해)의 대사에서 추측할 뿐이다. 차라리 장호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의 죽는 모습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해가 쉬웠을텐데 굳이 상수와 기훈만 죽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의문스럽다. '친구를 잃었다'와 '친구가 죽었다'는 분명 맥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수와 기훈은 '잃은 것'으로, 장호(안재홍)는 '죽은 것'으로 묘사한다. 장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상실'을 '죽음'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싶었지만 기훈의 죽음은 장호의 죽음 이후에 언급된다(빈대의 대사와 자전거 가게의 상상). 이건 참 궁금한 대목이다. 

9. 결론: 추격전(장르영화)의 재미와 청춘에 대한 관찰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가 보인다. '균형을 잘 잡았는가'라는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보다는 위로와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장르영화의 범주에서 벗어나 이 영화를 보는 일은 피로하다. 과연 세상의 모든 청춘들이 자신을 쫓아오는 킬러와 맞서 싸울만큼 여력이 남아있을까? 킬러를 없애고, 돈을 훔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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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NUPE 2020.04.24 02:4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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