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블로그 이미지
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 2,906,496Total hit
  • 201Today hit
  • 277Yesterday hit



한국의 근현대사는 식민시대와 독재, 전쟁 등으로 오욕과 고난의 세월이었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이렇게 고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있나 싶을 정도다(물론 뒤져보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끝나지 않은 고난의 세월같다. 이런 고난의 세월 속에서는 언제나 저항정신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한국영화에서도 분명 저항의 아티스트들이 존재해왔다. 


지금부터 언급할 장선우, 송능한, 임상수 감독을 '저항의 아티스트'라고 정의내린다면 분명 누군가는 섭섭해 할 것이다.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제3의 영역에서 저항을 이어간 영화운동가들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들 3명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들이 메인 프레임에 존재했던 만큼 대중에게 미치는 파급력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은, 셋다 지독하게 냉소적이고 어딘가 건방진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들이 저항은 조롱과 냉소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양아치스러운 면이 있다. 



'꽃잎'


장선우, 신내린 무당이거나 땡중이거나


장선우 감독은 한때 박광수 감독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티격태격 한 인물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박광수 감독의 영화들은 사시미로 역사의 급소를 쿡 쑤시는 반면 장선우 감독은 송곳으로 여기저기 쿡쿡 찌르며 도발하는 스타일에 있다. 그만큼 장선우 감독은 장르적 특성과 파격을 활용한 도발에 능하다. 


장선우의 도발은 무속신앙과 불교에 뜻을 두고 있다. 그는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향해 한 판 굿을 벌이거나 불경을 외운다. 이쯤 들으면 장선우의 영화는 '도발'이 아닌 '위로'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똑같은 굿 한 판을 벌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도발이 된다. 


영화 '꽃잎'은 80년 5월의 광주를 향한 위로와 애도의 굿 한 판이다. 처참히 찢겨져 이름모를 길 위에 버려진 5월의 광주를 향해 애잔한 위로를 건넨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5월의 광주 뿐 아니라 그 광주를 짓밟은 어떤 존재에 대한 묘사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 소녀를 강간하고 가두고 폭행한 가난뱅이 어른(문성근)과 흑백 TV 속 어스름히 숨어있는 대머리 권력자. 영화는 비참이 버려진 소녀와 대비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숨어있는 권력과 군부의 잔인함을 부각시킨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사실 장선우가 가장 자주 조롱한 사람들은 지식인 계층이다. '경마장 가는 길'이나 '너에게 나를 보낸다', '거짓말' 등의 영화는 지식인들이 부려대는 허세가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그리고 그들 또한 결국 아랫도리의 노예일 뿐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거짓말'은 개봉 직후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사회적 반응들이 있었다(영화 개봉 후 보수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보이콧 사태가 벌어졌다. 문화부 뿐 아니라 사회부에서도 큰 뉴스꺼리였다). 아마도 장선우는 영화 개봉 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을 보며 낄낄댔으리라 예상된다. 


장선우의 영화는 주로 길 위에 있을때가 많다. '꽃잎'도 그랬고 '화엄경'도 길 위의 영화였다. 그리고 '나쁜 영화' 역시 도시의 길 위에 버려진 가출청소년과 노숙자들의 이야기다. 장선우 감독 역시 길 위를 떠도는 땡중처럼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고, 중생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본의 힘이 커지는 시대가 도래할 즈음, 그는 100억짜리 보시(布施) 한 번 시원하게 지르고 홀연히 사라졌다. 회사 두어개가 사라진 것이야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아마도 장선우는 "돈이 뭐 중요하나"라는 심정으로 영화계를 떠나 조용히 지내고 있다. 



'넘버3'


송능한, 부조리한 세상의 민낯을 까발리다


송능한 감독은 단 두 편의 영화만 남기고 영화판을 떠난 인물이다. 하지만 그 두 편의 영화는 우리 영화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영화들이다. 과연 한국영화에서 송능한의 이전과 이후에 그토록 날카로운 조롱을 전방위로 날리던 인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특히 송능한 감독의 영화는 여러 부조리의 대상들이 한 곳에 뭉쳤을때 벌어지는 난장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권력과 폭력, 자본이 한데 어우러졌을때 벌어지는 이 난리부르스가 실제 우리 사회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인지할때 관객들은 웃어도 웃는게 아닌 괴이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넘버3'은 표면적으로 조폭영화다. 그러나 조폭보다 포악한 검사와 부조리에 휘둘리는 조폭(넘버2), 권력의 부조리와 욕망이 얽히고 섥히면서 그야말로 '세상의 난장판'을 보여준다. 이 난장판의 근본은 앞서 말했지만 '욕망'에 있다. 권력과 돈, 섹스에 대한 욕망이 부딪혔을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주는게 이 영화의 주된 목적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난장판이 세기말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가장 통렬하고 직설적인 시선일 것으로 생각된다. 



'세기말'


'세기말'은 한국사회에 대해 좀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자본과 착취, 지식인의 부조리함, 도덕의 실종으로 얼룩진 혼돈의 세기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혼돈은 '세기말의 불안'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세기말'을 제거하고, 2015년의 한국을 대입시켜보자. 썩 틀린 이야기가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혼돈의 한국사회는 단순히 '세기말이어서'가 아니라 '불안해서'인 것이 더 크다. 불안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기도 하고, 우리를 더 타락시키기도 한다. 혼돈과 불안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무너지고 타락할 것인가. 적어도 16년전 '세기말'보다 지금 우리는 더 타락해있다. 


송능한의 영화들은 원론적 화두에서부터 한국사회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원론적 화두에서 비롯된 부조리함을 직시하고 적나라하게 스크린에 옮겨낸다. 즉 송능한의 영화는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도 들어맞는 우리의 불편한 민낯인 셈이다. 


송능한 감독은 '세기말'이후 한국 정치의 난장판을 스크린에 옮기고자 했었다. 그러나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정치스캔들이 터진 후 송능한은 영화연출을 그만뒀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이제 현실이 영화보다 더 부조리하다. 송능한 감독 스스로, 이제 현실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를 만들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좋아한 일개 관객으로서 말하자면 이 부조리한 현실을 스크린에 온전히 담아낼 사람은 송능한 뿐이다. 



'그때 그 사람들'


임상수, 부르주아 한량의 허허실실 직격탄


일단 임상수 감독에 대해 '부르주아'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나는 임상수 감독의 재산상황에 대해서도 모르고 '아부지 뭐하시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부르주아'라는 수식어를 붙인건 그의 영화들 때문이다. 임상수의 영화는 사실 별로 치열한 영화는 아니다. 딱히 전투적이지도 않고 공격적인 어조를 갖춘 것도 아니다. 그의 영화는 몹시 여유롭고 느긋하다. 하지만 썩 긍정적이지는 않다. 딱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본 건 아닌 듯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은 부조리 투성이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섹스와 역사, 돈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는 침대 위의 남자들을 조롱했고, '눈물'에서는 아이들을 착취하는 어른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바람난 가족'에서는 가부장적 가족의 부조리함을 비웃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군부독재의 심장부에 총알을 박고 희희낙락 웃어댔고 '오래된 정원'에서는 역사적 아픔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여주며 폭력의 가해자들을 냉소했다. 일종의 돌려까기인 셈이다. 


임상수식 조롱은 직접적이지도, 공격적이지도 않다. 그저 뒤에서 팔짱끼고 실실 웃으며 "지랄하네"라고 욕지거리 날리는 수준이다. 하지만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게 날리는 조롱이 더 기분 나쁘고 열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딱히 반박할 꺼리도 없다는 점이다. '그때 그 사람들'처럼 디테일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순 있어도 영화 전체에 대해 반박하기는 어려운게 임상수 영화의 특징이다. 특히 초창기 섹스 3부작은 특정인을 겨냥하진 않았지만 불특정 다수의 불편한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조롱했다. 이러한 조롱은 최근 영화들에서도 이어졌다. 



'나의 절친 악당들'


최근에 만들어진 '하녀'와 '돈의 맛'은 표면적으로는 돈에 대한 조롱이다. 하지만 실상 이 영화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돈'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사실은 돈을 바탕으로 한 '갑'(甲),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돈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염두해 둘 때 권력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은 바로 '재벌'이다. 그래서 두 영화는 '재벌=권력'이 욕망에 의해 드러내는 추악한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욕망으로 인해 무너질 것 같지만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돈의 벽'을 체감하게 한다.


임상수 감독의 최근작 '나의 절친 악당들'은 이전과 다른 이야기 방식을 고집한다. 허허실실 웃어대던 이 아저씨는 젊은 감각으로 자신을 덧씌우고 있다. 아마도 임상수는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꼰대스럽다"는 생각을 한 듯 하다. 뒤에서 낄낄대는 아저씨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최전선에서 함께 뒹구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당초 임상수 감독은 '눈물'을 통해 착취당한 아이들을 위로하면서 차가운 사회의 장벽을 신랄하게 알려주는 '어른'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는 어른으로서 가르침이 아니라 청년들이 뛰어놀 판을 벌려주는 역할을 했다. '갑'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조롱했던 입장에서 스스로 '갑질'을 하고 싶지는 않은 듯 하다.


임상수 감독은 이제 '냉소적인 구경꾼'이 아니라 함께 뛰어노는 아저씨가 되려고 한다. 앞으로 그가 얼마나 더 스크린 위에서 뛰어놀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영화에는 3명의 '양아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2명이 영화와 사회에 환멸을 느껴 영화판을 떠났다. 이제 남아있는 양아치는 임상수 감독 뿐이다. 그리고 그런 임상수는 이제 좀 더 적극적인 양아치가 되려고 한다. 이 적극적인 양아치가 저질러댈 난장판이 좀 더 기대된다. 



추신) 장선우와 송능한 감독 모두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 얄라셩 출신이다. 확실히 이 동아리는 강력한 곳이었다. 

TRACKBACK 1 AND COMMENT 2
  1. BlogIcon 지구본 2015.09.30 13:43 address edit/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공유해가기 괜찮을런지요?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218)
일상생활 (137)
창작의 공간 (11)
영화이야기 (959)
음악이야기 (41)
야구이야기 (21)
포토샵 장난질 (3)
Entertainment (31)
익스트림알콜 (9)
본의 아니게 떠난.. (4)

CALENDAR

«   2020/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