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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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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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루클린'은 애시당초 관심 밖의 영화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될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오는 날 짬뽕 땡기듯, 맑은 날 말랑한 영화가 땡겨서 이 영화를 보러 갔다. 포스터를 봐도 그렇고 이 영화는 철저하게 '멜로영화'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근데 그거 아니다. 만약 이걸 '멜로'영화라고 만든거라면 감독이건 작가건 보이는대로 멱살을 잡아야 할 판이다. 


2. 시작은 대단히 좋다. 아일랜드에서 일자리도 못 얻고 잡화점 파트타임으로 근근히 살던 에일리스(시얼샤 로넌)은 언니 로즈(피아노 글래스콧)의 도움으로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인맥이라고는 전혀 없는 미국에서 그녀는 혈혈단신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대단히 낯익은 설정이다. 70년대 한국영화에서도 적잖게 봐 온 설정이고 당장에 '주토피아'에서도 본 설정이다. 이제 에일리스는 뉴욕 생활에 적응하며 미국인으로 정착하기까지 우여곡절만 남은 줄 알았다. 여기까지는 확실히 즐겁고 흥미진진하게 봤다. 


3. 이야기가 크게 요동치는 지점은 로즈가 죽고 에일리스가 고향으로 오는 지점이다. 배타고 왔다 갔다 하기 힘드니 한 달 이상은 고향에서 지냈으리라 생각된다. 근데 그 와중에 아일랜드의 짐(돔놀 글리슨)에게 호감을 갖는 과정과 브루클린에 두고 온 연인 토니(에모리 코헨)에게서 멀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단순히 "몸이 멀어져서" 마음도 멀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순식간이다. 만약 정말 그 이유였다면 좀 더 설명을 했어야 했다. 


4. 짐과 가까워지는 과정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앞서 말한대로 몸이 멀어져서 마음도 멀어졌다고, 그렇다 치자. 그런데 뉴욕에서의 토니와의 결혼 소문이 고향까지 들려오고, 그 소문이 못된 잡화점 사장님의 귀에 들어가서 다시 에일리스에게 전해진다. 잡화점 사장님은 에일리스를 아주 나쁜 년인양 몰아붙인다. 그런데 그 순간 에일리스는 "내 이름은 에일리스 피오렐리오(?)에요!"라며 토니에게 마음을 급선회한다. 그럭저럭 '브루클린'이라는 영화를 잘 먹다가 이 대목에서 급체해버렸다. "아니, 갑자기 왜!". 그렇게 마음이 떠나서 답장도 꼬박꼬박 안 쓰더니 갑자기 왜! 마음이 기울어버린 것일까? 나는 이 대목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5. 갑자기 마음이 토니에게 기운 탓에 엄마와도 떨떠름한 작별을 하고 돌아선다. 심지어 짐에게는 편지 한 통으로 이별을 고하고 떠난다(이게 카톡으로 "헤이지자"고 하는거랑 뭐가 다른가). 꿈 많은 소녀로 고향을 떠났던 에일리스는 이제 사연있는 여자처럼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다. 뉴욕으로 향하는 배에서 에일리스의 모습은 한결 성장했지만 그 과정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 투성이다. 혹자들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며 많은 관객들이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에게 "저런 개놈시키!"라고 했다. 에일리스는 츠네오와 쌍벽을 이룰 처지에 놓이게 됐다. 츠네오는 나중에라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만 과연 에일리스는 나중에라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6. '브루클린'은 '이민자의 뉴욕 정착기'로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아일랜드와 미국의 거리는 아니지만 울산에서 서울로 떠나 온 입장에서는 두 도시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에일리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마 에일리스의 적응기와 갈등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멜로영화'로서 이 이야기에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없다. 


7. 게다가 에일리스가 아일랜드와 미국 사이에서 방황하던 모습, 그러다 정착할 곳을 결정하는 과정이 순전히 '남자' 때문인 것도 썩 유쾌하진 않다. 뉴욕으로 떠나기를 결정한 과정, 낮에는 백화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는 과정까지, 철저하게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결정하던 이 '신 여성'은 결정적 순간에서 '남자' 때문에 삶을 결정하게 된다. 왜 페미니스트들이 이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특히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캐롤'은 자기 삶에 주체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브루클린'과 '캐롤'을 비교해본다면 '브루클린'은 여러 부분에서 한참 모자란 영화가 된다. 그 때문에 아일랜드로 돌아가기 전까지 매력적이었던 에일리스도 갑자기 매력이 뚝 떨어진다. 적어도 백화점에서 일하던 에일리스의 모습은 테레즈(루니 마라)와 함께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8. 이 영화에서 시얼샤 로넌 못지 않게 매력적인 여배우가 바로 로즈를 연기한 피오나 글래스콧이다. 영화를 보면서 "저 여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며 떠올려보니 재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영화 '쉐도우 하우스'(Controra)에 출연한 여배우다. 아르젠토 느낌 물씬 나던(그렇다고 아르젠토 영화처럼 매력적이진 않은) 그 영화에서 피오나는 유독 허여멀건 살결로 호러영화 속 여주인공 역할을 해낸다. '지알로' 호러의 전통을 잘 이어받았다고 부천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그 전통은 여배우가 다 이어받은 모양이다. 국내 개봉할 가능성은 거의 없긴 한데 피오나 글래스콧은 그 영화에서 대단히 매력적이다. 


9. 돔놀 글리슨이 또 대박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필모를 통틀어 이 영화에서 가장 남자답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카톡으로 이별통보 받는 불쌍한 남자다. '레버넌트'에서도 불쌍하고 '드레드'에서도 안스럽더니... 불쌍한 거 전문인 모양이다. 


10. 시얼샤 로넌은 다소 살이 찐 듯 하다. 근데 더 예쁘다. 볼살 빵빵해지고 여드름 사라져서 조신하고 정숙한 여자 연기를 하니 되게 매력있다. 딱 지금 '한나'같은 영화 하나 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그 옛날 주근깨 빼빼마른 금발머리 한나도 매력있었다. ...진짜다. 그나저나 이제 다 커서 베드씬도 한다. ...기특하구로...


11. 결론: 미국의 건국신화까지는 아니어도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현대문명을 이룩한데 공을 세운 아일랜드인에 대한 헌정으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특히 히어로영화와 재난영화들이 뻔질나게 부숴대던 뉴욕이 누구 손에 의해 만들어진건지 보여주는 장면은 대단히 애틋하다(노쇄한 아일랜드 노동자들). 근데 확실히 '멜로'로서는 별로다. '캐롤'까지 본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결국 마케팅을 잘못한건가 싶기도 하다. 



추신1) 닉 혼비라는 작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심지어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영화를 좋아해도 별 관심이 없었다). 씨네큐브 로비에서 예고영상을 보면서 "닉 혼비? 닉...혼비백산?"이라며 혼자 아재개그를 하고 킥킥거렸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심각한 표정으로 나지막히 읊조리게 된다. "닉...혼비백산"


추신2) 이번에는 내가 봐도 '초간단' 치고는 길어졌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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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By 코마 2020.03.18 00:3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50년대라는 시대를 감안하면 뭐...
    그리고 잡화점 아주머니랑 얘기하면서 학떼는게 공감가던데요.
    어렸을 적 이 지긋지긋한 동네에서 절대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그 감각을 다시 깨우친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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