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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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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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20.04.23
    [스포주의] 넷플릭스 '사냥의 시간' 간단 리뷰 (1)
  2. 2020.04.20
    [스포주의] '뉴욕탈출'(1981) 초간단 리뷰
  3. 2020.04.17
    '뉴욕 리퍼'(1982) 초간단 리뷰
  4. 2020.04.13
    넷플릭스 '서바이벌 캠프' 초간단 리뷰
  5. 2020.04.10
    [스포주의] 넷플릭스 '블랙미러:베타테스트' 초간단 리뷰
  6. 2020.04.08
    넷플릭스 '블랙미러: 화이트 크리스마스' 초간단 리뷰 (1)
  7. 2020.04.05
    넷플릭스 '라 마피아' 초간단 리뷰
  8. 2020.04.04
    넷플릭스 '블랙미러: USS 칼리스터' 초간단 리뷰

1.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는 전편보다 속편이 더 훌륭한 영화다. 그러나 전편 역시 그 나름대로 매력이 훌륭한 영화다. '터미네이터'는 전편과 속편이 합쳐져서 거대하고 정교한 타임 패러독스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전편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B급 감성이 물씬 풍기는 SF 액션 스릴러가 된다. '터미네이터'가 액션 스릴러로써 정체성을 갖는 방법은 간단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있고 극단적으로 쫓고 쫓기는 것이다. 이 간단한 플롯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쫓는 자는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는 로봇이 됐고 로봇을 등장시키기 위해 미래라는 배경도 끼어들었다. 아마 제임스 카메론도 '터미네이터'가 거대한 유니버스를 갖추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터미네이터'에서 미래는 타임 패러독스와 로봇을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다. 

2. 쫓고 쫓기는 플롯은 단순하지만 아주 재미있다. 그것은 액션 스릴러 장르로써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여지가 있다. 그 '새로운 이야기'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영화 '사냥의 시간'이다.  '사냥의 시간'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쫓기는 청춘들과 쫓는 암살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다. 그리고 충분히 '터미네이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른 노선을 택한다. 오히려 '쫓고 쫓기는' 오래된 플롯을 도구로 삼아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데 쓴다. 이것은 장르영화의 틀 안에 메시지를 녹인 것이며 전작인 '파수꾼'과 장르영화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와 같다. 꽤 어려운 도전을 한 셈이며 그럭저럭 잘 해냈다. 

3. '사냥의 시간'은 배경이 되는 시대부터 의미심장하다. 이 시대는 일단 '가상의 미래'다. 대략 "경제가 어렵다"라는 설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대단히 낯이 익다. 영화에 간간히 등장하는 뉴스들로 미뤄봤을 때 이 시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나라 경제가 파탄난 대한민국이다. 1997년을 살아본 세대라면 영화 속 풍경들이 그리 낯설진 않을 것이다. 물론 IMF의 기억을 되돌려봐도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다. '원화'가 더 이상 가치를 상실하고 달러로 거래하는 시대라면 원 가치는 영화 속 대사처럼 '휴지조각'이 됐다는 의미다. 추측해보건대 영화 속 시대는 IMF 당시 금모으기 등 이것저것 하지 않고 그대로 쭉 살았을 경우 맞이했을 '현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이는 가상의 '미래'가 아닌 가상의 '현재'가 될 수 있다. 

4. IMF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까지 살았다면 정말 나라는 파탄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시대를 사는 젊은이라면 정말 보석상이라도 털지 않는 이상 먹고 살 길이 막막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준호(이제훈)의 일행은 킬러 한(박해수)에게 쫓기기 전부터 이미 쫓기는 삶을 살고 있었다. 때문에 킬러 한에게 쫓기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쫓고 쫓기는' 플롯이 필요했지만 그것은 불확실한 시대 속 청춘들의 삶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도구에 불과했다. 게다가 준호 일행이 도둑질을 하며 훔친 것은 달러였고 한이 찾으려는 것은 하드디스크다. 상징적이긴 하지만 애시당초 둘은 지향점이 다르다. 그래서 곽철용 선생의 말처럼 "이 경우엔 원래 쇼당이 안 붙"는다. 

5. 추격전은 결국 도구로 전락했지만 감독은 최대한 재미를 끌어내려 시도한다. 닌자처럼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한의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 그의 얼굴에는 유독 역광을 심하게 줬고 미세먼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안개와 붉은 조명은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한껏 살려낸다. 특히 몇몇 장면에서는 사소한 리듬을 살려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준호 일행이 주차장에서 차를 훔칠 때 반복되는 자동차 경보음이 긴장감을 더한다. 그리고 준호가 바에서 전화벨 소리를 듣는 장면도 소리의 리듬으로 긴장을 주는 장면이다. '사냥의 시간'에서 추격전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그 한계 속에서 재미를 주려는 시도는 충분히 했다. 그리고 그 시도에 나는 만족한다(물론 '터미네이터'에 비할 바는 아니다). 

6. 극단적인 추격전 끝에 준호는 한에게 죽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한에게 죽은 봉식(조성하)을 쫓는 형 봉수(조성하)의 일행이 한을 쫓아 공격한다. 사냥꾼(=한)이 또 다른 존재의 사냥감이 된 순간이다. 추격전에서 준호는 쫓기는 자이긴 했으나 '주체'였다. 그러나 봉수의 등장으로 준호는 주체의 위치를 빼앗긴다. 그 가운데 준호는 겨우 살아남아 홀로 대만으로 향했다. 그러나 친구들을 모두 잃고 도착한 대만에서 그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애시당초 이 추격전은 준호가 주체인 싸움이 아니었다. 준호의 일행이 훔친 것은 도박장 환전소 금고의 돈이었으나 누구도 그 돈을 쫓진 않았다. 즉 준호와 그 일행들은 모든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자신과 상관도 없는 싸움에 내던져진 것이다. 

7. 결국 혼자 남아 도망친 준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이것은 조금 꼰대같은 결론이 될 수 있다. 준호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를 한을 죽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치 도망치려 한 현실에 피하지 말고 맞서라는 '꼰대'스런 메시지처럼 들린다. 온전히 청춘들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파수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사냥의 시간'은 청춘들의 불안과 좌절에 대해 시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랬다면 영화는 끝에 가서도 시대가 바뀌어야 함을 요구해야 한다. 여느 청춘들처럼 친구들과 있을 때 욕이나 찍찍 해대지만 결국 친구를 좋아하고 가족을 그리워 하는 아이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시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 청춘들 스스로에게 답을 찾을 것을 요구함은 "시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패배선언인지 꼰대의 도피인지 물어보고 싶다(차라리 '패배선언'이라고 하는 것이 덜 비겁해보인다). 

8. 궁금한 장면이 하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2020년 4월 23일 오후 9시16분) 온라인에서 진행 중일 GV를 본다면 다행이겠지만 귀찮아서 그냥 혼자 궁금증으로 남겨둔다. 영화에서는 네 친구 중 상수(박정민)와 기훈(최우식)이 죽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수는 준호의 꿈을 통해 죽었음을 짐작할 뿐이고 기훈은 빈대(김원해)의 대사에서 추측할 뿐이다. 차라리 장호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의 죽는 모습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해가 쉬웠을텐데 굳이 상수와 기훈만 죽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의문스럽다. '친구를 잃었다'와 '친구가 죽었다'는 분명 맥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수와 기훈은 '잃은 것'으로, 장호(안재홍)는 '죽은 것'으로 묘사한다. 장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상실'을 '죽음'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싶었지만 기훈의 죽음은 장호의 죽음 이후에 언급된다(빈대의 대사와 자전거 가게의 상상). 이건 참 궁금한 대목이다. 

9. 결론: 추격전(장르영화)의 재미와 청춘에 대한 관찰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가 보인다. '균형을 잘 잡았는가'라는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보다는 위로와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장르영화의 범주에서 벗어나 이 영화를 보는 일은 피로하다. 과연 세상의 모든 청춘들이 자신을 쫓아오는 킬러와 맞서 싸울만큼 여력이 남아있을까? 킬러를 없애고, 돈을 훔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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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NUPE 2020.04.24 02:4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가장 먼저 '사라진' 트렌드에는 마초가 대표적이다. 20세기에는 근육질에 과묵하고 헝크러진 머리에 싸움 잘하는 형들이 남녀노소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21세기를 지나 어느 순간에 순정만화를 찢고 튀어나온 인형처럼 예쁜 남자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기왕에는 날씬한데 근육도 좀 있고 몸도 쓰지만 마초같은 상남자는 아닌 소년들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세기 마초는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으리!"를 외치고 다닌다. 그런데 21세기의 누군가는 사라진 마초들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전당포를 운영하던 그 형은 만찢남과 마초가 크로스오버 된 '퓨전 마초'에 가까웠다. 그리고 뉴욕에서 개 키우던 형은 사라진 20세기 마초의 향수를 제대로 불러 일으키고 있다. 

2.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20세기 마초 한 사람을 소환하려고 한다. 이 남자는 람보나 코만도처럼 근육질은 아니다. 존 맥클레인처럼 인간미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나쁜 놈을 무찌르고 대통령을 구출하는 일을 하기 싫은데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한다. 보통 그런 경우라면 억지로 하다가 정의감에 불타기 시작하는데 이 형은 끝까지 억지로 한다. 이 형의 이름은 스네이크 플리스켄(커트 러셀)이다. 사람들이 '스네이크'라고 불러주는 걸 좋아한다. 퇴역군인이었다가 강도로 붙잡혀서 뉴욕에 버려질 처지다. 그런데 마침 그때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이 피랍돼 뉴욕에 추락한다. 그리고 뉴욕의 갱들에게 대통령(도널드 플레전스)이 납치된다. 경찰의 대대적인 진입은 실패하고 전문가 스네이크에게 대통령 구출 임무를 맡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뉴욕 탈출'이다(비디오 출시명 '코브라 22시'도 상당히 정감있지만 우선 이 제목을 쓰기로 한다). 

3. 스네이크 얘기를 좀 더 해보자. 그는 임무를 수락하기 싫다. 그냥 만사 귀찮으니 알아서 뉴욕에 집어 던지라고 말하지만 어쩌다 수락을 해버린다. 사실 중간에 튈 생각도 한 것 같은데 경찰의 계략으로 24시간 안에 대통령을 구하지 못하면 죽을 처지다. 게다가 대통령은 핵전쟁을 막을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 그걸 찾아야 한다. 나름 쓸만한 장비도 지급 받는다. 007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장비다. 무동력 글라이더를 타고 뉴욕에 침투했다. 수소문을 해서 대통령을 찾으려고 하는데 뉴욕에 생각보다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스네이크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가 죽은 줄 알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해서 꾸역꾸역 대통령을 구해온다. 그런데 구해온 대통령이라는 인간도 뭔가 시원치 않다. 대통령을 구하긴 했지만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 억지로 임무는 했고 대통령도 구했으니 그 다음 세상은 어찌돼건 알 바 아니다. 

4. 스네이크의 매력은 임무를 하기 싫어하는데 있다. 코만도가 적을 부수는 일에도 명분이 있고 존 윅(키아누 리브스)이나 차태식(원빈)도 하려는 일에 명분이 있다. 그래서 자기 의지대로 일을 한다. 그러나 스네이크는 철저하게 남의 의지대로 한다. 의도치 않게 임무를 하더라도 하다 보면 의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사이 안 좋은 마누라 만나러 회사에 갔다가 의도치 않게 빌딩이 테러범에게 점거 당하면서 갇히게 되지만 꾸역꾸역 마누라를 구하고 적을 소탕한다. 하기 싫은 일도 하다보니 해야 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스네이크는 끝까지 하기 싫다. 대통령이고 테이프고 뭐고 24시간 안에 어서 데리고 나가서 목숨은 부지하고 싶다. 이것은 요즘 말로 '츤데레'에 가깝다. 이 츤데레가 한결같이 츤츤거리는 지점은 마지막에 있다. 최소한의 영웅적 태도라도 있다면 구해놓은 대통령은 마음에 안 들지만 핵전쟁은 안 일어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네이크는 핵전쟁이 나건 말건 알 바 아니다. 세상을 구하는 일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세상 망하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다"라는 식의 마인드가 요즘들어 유난히 더 좋다. 정말 세상이 망할 것 같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5. 나는 '뉴욕 탈출'에 대해 오해한 것이 있다. 오래전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이것이 '저예산 영화'인 줄 알았다. 비행기 추락장면을 레이더로 퉁쳐버린 것에서 "돈을 아꼈다"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영화,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다. 폐허가 된 뉴욕 밤거리를 재현한 장면이나 '매드맥스: 로드워리어'에 버금가는 자동차 장면, 초대형 격투장 세트 등. 꽤 스케일이 큰 영화다. 특히 이 영화가 1981년 작품이고 무려 '할로윈'으로 싸게 잘 찍었던 존 카펜터 영화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건 그야말로 '당대의 블록버스터 영화'인 셈이다(MGM이 배급했으니 어련했을까). 그런데 '뉴욕 탈출'의 제작비와 흥행수익을 찾아보진 못했지만 분명 잘 안됐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007'과 '인디아나 존스'같은 말랑하고 유쾌한 액션영화들이 흥행하던 시대에 이렇게 어두컴컴하고 매사 하기 싫어하는 마초가 나오는 영화가 잘 될 수가 없다. 그래서 21세기에 이 영화는 컬트가 됐을 것이다. 

6. 결론: '뉴욕 탈출'은 잘 만든 액션영화다. '다이하드'에 버금가는 단순한 플롯으로 최대한의 재미를 이끌어낸다. 다만 주인공 스네이크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는 존 맥클레인이나 인디아나 존스처럼 인간적인 히어로가 아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시켜서 억지로 하는 사람이다. 21세기 현재에 학교와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사람'에게는 감히 추천할만한 영화다. 일단 재미있다. 그리고 '존 카펜터 최고의 영화 TOP3'를 내자면 그 안에 확실하게 넣을 수 있는 영화다(나머지 2개는 '괴물'과 '할로윈'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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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영화'에는 그 시대만의 정서가 있다. 만약 그 '옛날 영화'가 시대를 아우르는 걸작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런 영화들은 '세계영화사'의 몇 페이지에 기재된 영화들(혹은 기재된 작가들의 영화)이 전부다. 한 시대에 등장했던 대부분의 상업영화들은 그 시대에 머물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몇 년 전 나는 옛 기억이 떠올라 김성수 감독의 '비트'를 다시 봤다. 분명 그때는 멋있고 세련된 영화였는데 나이 들어서 다시 보니 도저히 못 들어줄 대사가 귀를 때렸다. 그래서 옛날 영화를 보는 일은 때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현재의 정서'다. 간단히 말해 "그땐 그랬지"라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봐야 옛날 것을 즐길 수 있다. 

2. 루치오 풀치의 '뉴욕 리퍼'는 무려 1982년에 만들어진 '옛날 영화'다. 시작부터 80년대 뉴욕 다리 밑이 등장하고 개가 잘린 손을 물어오자 레트로 범죄수사물에 걸맞는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온다. 2020년에 이 음악은 "이야 레트로 갬성이다"라며 즐길 수 있다. 레트로가 유행하는 시대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찐 레트로'다. 시그널 음악뿐 아니라 뜻밖의 핸드헬드나 지나친 패닝, 급격한 줌인은 이것이 80년대 정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연하다. 이 영화는 이탈리안 호러의 거장 루치오 풀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3. 루치오 풀치의 영화를 많이 보진 못했다. '좀비2'하고 '뉴욕 리퍼'를 보긴 했지만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이번에 '뉴욕 리퍼'를 다시 본 것도 다 까먹어서 다시 봤으니 사실상 루치오 풀치의 영화를 처음 봤다고 해도 된다. 내가 아는, 익숙한 이탈리안 호러는 다리오 아르젠토나 람베르토 바바, 미쉘 소아비의 영화가 전부다. 그들이 만든 20세기 이탈리안 호러의 특징을 종합해보자면 대단히 거칠고 투박하지만 묵직한 한방이 곳곳에 있다. 현악기 중심의 음악을 쓰던 미국 공포영화와 달리 이탈리아는 신시사이저와 일렉기타가 난무하는 바로크 메탈을 사용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호러는 음악이 공포를 배가시키진 않는다. 대신 음악 듣는 재미가 미국 공포영화보다 한껏 풍성하다. 색감이 굉장히 화려하다. 아르젠토 특유의 스타일일수도 있지만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도 아주 화려한 색감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4. '뉴욕 리퍼'는 미국 스릴러 영화 느낌을 많이 살린다. 앞서 언급한대로 형사영화에 어울릴 법한 음악을 쓰고 형사와 살인범의 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된다. 형사가 살인범이 멀리 있고 이들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건을 해결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이 영화의 만듦새는 공포영화와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말자. 이 영화가 긴장감을 주는 방식은 38년이 지난 지금봐도 훌륭하다. 공포영화가 살인씬에서 긴장감을 주는 것은 잔뜩 조이다가 빵 터트리는 방식이다. 공포영화를 자주 본 관객이라면 한창 조이고 있을 때 "이때쯤 터트리겠구나"라고 생각한다. '뉴욕 리퍼'는 그 예상지점에서 거의 모두 빗겨간다. 공포영화의 흔한 공식에서 몽땅 빗겨간다는 의미다. 이것은 현대 공포영화도 이르지 못한 창의적이고 신선한 발상이다. 

5. 반면 이야기는 허술하다. 내가 봤던 왓챠플레이 영상의 자막탓일 수 있겠지만 내용을 쫓아가기 어렵다. 쫓아가더라도 허점이 자꾸 보인다. 대충 사건을 수사하다보면 "언젠가 잡겠지" 혹은 "쟤가 범인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보면 된다(물론 그러다 보면 예상은 빗나가기 마련이다). '선택과 집중'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식 형사물 이야기 하나 꾸려놓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난도질을 마음껏 한다. '뉴욕 리퍼'에서 이야기는 살인장면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6. 이탈리아 감독이 만든 이탈리안 호러영화지만 동시대 미국 호러영화와 통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시점샷'을 쓰는 방식이다. 동시대 미국 호러영화의 대표작인 샘 레이미의 '이블데드'에는 악령의 시점에서 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찍은 샘 레이미는 없는 살림으로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악령의 시점샷으로 마구 내달리며 찍었다. '뉴욕 리퍼'에서는 범인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범인의 시점으로 찍는 장면이 꽤 등장한다. 이 장면들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인식하면서 보면 영화가 건네는 어설픈 추리게임의 룰을 찾을 수 있다(잊지 말자. 이 영화는 난도질씬이 주인공이 이야기가 장신구다). 

7. 결론: '찐 레트로 갬성'을 느끼고 싶다면 '뉴욕 리퍼'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다. 다만 자막은 누가 좀 새로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다, 자막마저도 어쩌면 그 시절 비디오테이프에 적합한 자막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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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나다처럼 넓은 나라에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집까지 차로 1시간 이상 나가야 한다면 외로울지 안락할지 궁금하다. 때로는 사람으로 북적대는 도시를 떠나고 싶기도 하고 그래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게 좋기도 하다. 아무튼 사람이란 참 복잡한 존재며 그것들과 관계하는 일도 복잡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찾는다. 생존을 위한 수행이건 잠시동안 일탈이건 자연에서 지내는 것은 여러 재미난 이야기를 만든다. 캐나다산 넷플릭스 영화 '서바이벌 캠프'를 접했을 때 기대한 것은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과 같은 것이었다. 미니멀하지만 끈끈한 긴장감을 가진 재미있는 정글영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서바이벌 게임'보다 더 미니멀하다. 

2. 코로나19 시대에 '서바이벌 캠프'를 보는 것은 묘한 기분이 든다. 주인공 앙투안은 평상시 가족들과 생존훈련을 할 정도로 생존에 관심이 많다.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핵전쟁, 좀비 등 온갖 재앙에 대비하는게 일상이다. 그러다 평소 즐겨보던 생존 전문 유튜버 알랭의 서바이벌 캠프에 참여하게 되고 알랭이 사는 외딴 마을로 오게 된다. 하나의 목적을 가진 몇 명의 사람들이 외딴 장소에 모였다. 비교적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우연한 사고로 한 사람이 죽고, 이들의 목적에는 균열이 생긴다. 그때부터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두 집단의 갈등의 시작된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사고를 묻으려는 사람이 있고 밖으로 나가 사고를 알리려는 사람이 있다. 묻으려는 사람은 알리려는 사람을 공격하고 알리려는 사람은 도망친다. 그 추격전이 주된 이야기다. 

3. 나는 흔히 장르영화는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포영화는 관객을 무섭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에로영화는 야해야 한다. 그리고 액션영화는 힘있게 싸워야 한다. 그래서 잘만 킹의 에로영화를 좋아하고 가렛 에반스의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서바이벌 캠프'는 비교적 목적에 충실하려고 하는 편이다. 쫓고 쫓기는 긴장감을 주려고 하고 대자연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모습도 잘 보여준다. 특히 표면이 얼어붙은 강(호수 말고)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를 통틀어 강을 건너는 장면은 가장 무서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지나치게 미니멀하다. 캐나다 대자연의 스케일과 그에 상반되는 인간의 초라함은 잘 보이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도 명분이 없다. 새삼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이 '개쩌는갓엠퍼러레전드띵작'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4. '서바이벌 캠프'의 후반부에 가면 한 번 뒤통수를 크게 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감히 예상하지 못했고 "이거 왜 이래?"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것은 신선한 반전이다. 고전적인 형식과 전개를 가져다 쓴 영화지만 중요할 때 고전적인 것을 파괴했고 새로운 전개를 이어간다. 이 영화의 정체성이 여기에 있다. 고전적인 것의 재해석. 과거 "캠핑을 갔는데 목숨이 위협받는다"는 식으로 시작하는 서바이벌 영화보다는 "천재지변에서 살아남으려고 자연으로 갔더니 인간이 가장 큰 재앙이다"라는 식은 코로나19 시대에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가볍게 들어도 상관없긴 하다. 소소한 비틀기는 이야기에 깨알같은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5. 결론: 소소한 재미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심심하다. 대자연 서바이벌 무비에서 바라는 배경의 스케일이 썩 살지 않고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도 밋밋하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몇몇 행동은 쉽게 납득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깨알같이 재미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고 요즘 시대의 생존영화라는 점도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 러닝타임도 짧으니 가볍게 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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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랙미러' 시즌3'의 '베타테스트'는 유난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놉시스를 가지고 있다. 일단 '증강현실'과 '게임', '공포'라는 키워드가 상당히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블랙미러'에 대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환상특급'이구나"라고 감을 잡은 상황에서는 '증강현실'을 활용한 '게임'으로 구현하는 '공포'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를 보는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게다가 재미도 있고 이야기꺼리도 많아서 그런지 단 한 번도 끊지 않고 쭉 봐버렸다(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도 집에서 보는 버릇이 들지 않으면 끊어서 보게 된다). 다소 원초적이고 얄궂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충분히 예측불가한 이야기다. 

2. '베타테스트'는 세계일주를 떠난 미국인 남자가 영국에서 계좌를 해킹당해 여행경비를 잃게 되고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값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그러다 한 게임회사에서 마련한 공포게임 베타테스트에 참여한다. 이 게임은 디바이스를 인체 신경망에 접속해 가상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게임이다. 말 그대로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처럼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시놉을 읽어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이고 부작용이 많아 보이는 게임이다. 게임을 출시하는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니나 다를까 공포는 게임 그 자체가 아닌 전혀 다른 지점에서 비롯된다. 

3. '베타테스트'를 보고 느꼈는데 '블랙미러'는 몇 개의 에피소드들이 과학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인격을 복제해 데이터화 한다면 데이터화 된 인격의 시간과 실제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설정이라던지 데이터화 된 인격이 자의식을 지닌다는 설정이다. '블랙미러'를 더 본다면 그것 말고도 공유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중 가상공간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다는 설정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에서 가져온건가 생각해봤다. 따지고 보니 그건 애시당초 상대성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블랙미러'의 과학이 생각보다 실현 가능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반전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예측조차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비틀고 비트는 반전에 맥락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맥락을 설명할 이유도 없다. 이 에피소드의 엔딩에 이르기까지 뒤집을거면 더 뒤집을 수 있었다. 그저 감독이 그만 뒤집기로 해서 적당히 뒤집다가 끝내버린 모양이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의 림보'에 갇혔다"며 이야기를 더 할 수도 있다. '베타테스트'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해야지"라며 끝낸 느낌이다. 

5. 이 에피소드를 연출한 댄 트라첸버그는 이후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만들었다. 그게 벌써 4년전 영화라 요새 뭐하나 싶어 찾아보니 TV시리즈 '더 보이즈'의 에피소드 하나를 연출했고 신작 영화를 준비 중인 모양이다. 잊고 지냈는데 이 감독도 궁금한게 많다. 주목할만한 영화를 만든 감독치고는 차기작이 참 안 나오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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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임스 카메론은 '에이리언2'와 '아바타'를 통해 세상에 없는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외계생물의 생태계'는 실제 동물의 생태를 일부 참조할 수는 있겠지만 디자인에서부터 생물학적 구조까지 모든 것이 맨땅에서 시작한다. '에이리언2'에서 워밍업을 한 그는 '아바타'에서 무려 행성의 자연과 생태를 통째로 창조하는 경지에 이른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셉션'에서 꿈의 구조를 정의내린다. 그리고 '인터스텔라'에서는 가장 실제와 닮은 블랙홀을 구현해낸다. '인터스텔라'의 블랙홀은 천체물리학자의 자문을 구해 만들어졌지만 영화가 개봉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인류는 블랙홀의 흐릿한 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놀란이 구현한 세계도 사실상 맨땅에서 구현한 상상의 세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2. 제임스 카메론과 크리스토퍼 놀란이 영화 미학적으로 뭔가를 구현한 감독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의 상상력만큼은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맨땅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다소 편법처럼 보일 수 있다. 이야기가 갈 수 있는 유리한 공간구조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이야 말로 '진짜 상상력'인 셈이다. 21세기 대중문화는 상상력 고갈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시대에서는 반세기 전 상상한 슈퍼히어로나 20세기 프렌차이즈 영화들이 다시 득세한다. 그래서 현대 대중문화에서는 '진짜 상상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넷플릭스의 '블랙미러'는 이런 '진짜 상상력'에 접근하고 있다. 다소 유치해보이기도 하고 쉽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리즈는 이 시대에 고갈돼버린 '진짜 상상력'을 찾아서 나가고 있다. 저 옛날 '환상특급'이나 '기묘한 이야기'가 보여줬던 상상력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3. '블랙미러' 시즌2의 마지막 에피소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상상력과 인내를 가진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기술이 발전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의 편리를 위해 첨단 기술을 만들고 그것을 기반으로 여러 서비스를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편리의 이면에는 인간성이 결여돼있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비극을 부르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인간성 말살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SF영화에서 지지고 복도록 다룬 흔해 빠진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당연히 이야기가 상상한 기술에 있다. 모든 사람들은 인공눈을 이식받는다. 이 눈은 오늘날의 스마트폰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홈 IoT에 필요한 인공지능은 더 이상 딥러닝을 하지 않는다. 집주인과 싱크를 맞추는 작업을 거치고 약간의 튜토리얼만 거치면 단시간에 완벽한 IoT 허브를 만날 수 있다. 이 단순하지만 기발한 기술들이 기어이 비극을 부른다. 자세한 것은 이야기를 참고하시길...

4.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진짜 이유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이 에피소드는 길어야 30~40분 안에 끝날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의 러닝타임은 70분이 넘는다. 이야기는 긴 호흡을 가지고 이야기 안에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이야기는 반전을 향해 다가가는 계단처럼 된다. '식스센스' 이후 한국에서도 반전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호러·스릴러 영화들은 반드시 반전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이었다. 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두고 "반전은 이렇게 만드는거야"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씩 먹이를 던져두고 시청자가 먹이를 물 때까지 기다린다. 먹이를 물었다 싶을 때 이야기는 반전으로 향한다. 이 경우 몇몇 시청자는 반전을 예상할 수 있다. 시청자가 반전을 예상한다 한들 이 이야기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 순간 받아들이는 것은 "어머 뒤통수를 맞았네"가 아니라 "이야기가 이렇게 완성되다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교한 구조를 가진 기발한 이야기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5. '블랙미러'를 많이 보진 못했지만 화려한 시각효과로 구현한 SF 스릴러를 기대한 시청자에게 이 에피소드는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차분하게 보다보면 오래된 스릴러를 읽듯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에피소드에 이르러서야 '블랙미러'('밴더스내치' 제외)의 매력을 알게 됐다. 몇 개 더 봐야겠다. 


추신)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중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 같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 언급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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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NUPE 2020.04.08 03:2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궁금하네요! 바로 보러가야겠어요! 구독하고갑니당




1. "자, 여기 영화가 하나 있어. 주연과 감독 이름을 보니 대충 이탈리아 국적의 영화같아. 원제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글 제목은 '라 마피아'라고 써져 있어. 그렇다면 이 영화는 이탈리아 정통 마피아 영화일 수 있겠군". 넷플릭스 '라 마피아'를 보기 전 내 사고는 이랬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마르코 벨로키오의 '배신자'는 다소 길고 산만하긴 했지만 분명 매력이 넘치는 정통 이탈리안 마피아 영화였다. 음모와 배신이 판을 치고 그 가운데 근현대사를 거칠게 산 한 남자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마피아 영화는 오래전부터 "갱스터 집단을 미화한다"는 도덕적 비난을 받아왔다. 이것은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인 '대부'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배신자'는 마피아를 미화했다는 비난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들이 나쁜 놈들인 건 부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 '라 마피아'는 '배신자'에서 한발 더 나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 산토(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는 전혀 동정하거나 감정이입을 가치도 없는 나쁜 놈이다. 그의 아버지는 실패한 마피아였고 그런 아버지에게조차 버림받은 산토는 "나쁜 놈이 되자"라고 마음 먹은 듯 나쁜 짓만 한다. 어려서부터 도둑질과 폭행을 일삼았고 나중에는 납치에 살인까지 서슴없이 한다. 영화는 거기에 대해 어떤 명분도 부여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나쁜 놈에게 서사를 부여한다'는 우려를 완전히 차단하며 거침없이 펼쳐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누구도 산토에게 정을 붙이거나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만약 "이해한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다). 

3. '라 마피아'는 6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레트로풍 편집과 음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때문에 분명 눈과 귀가 즐거운 지점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산토와 그 무리들의 '멋짐'을 부각시키진 않는다. 애시당초 멋하고 상관없는 배우(산토를 연기한 배우는 '존윅:리로드'에서 악역을 연기했다)들이 출연하고 하는 짓도 우스꽝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저 옛날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멋있는 갱스터'는 안중에도 없다. 산토는 멋진 마피아도 아니고 차라리 '양아치'에 가깝다. 영화가 주인공 산토를 동정하거나 미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4. 이 영화에는 산토가 멋있어 보일'뻔한' 장면이 있긴 있었다. 산토는 큰 돈을 벌기 위해 친구들과 마약사업을 시작한다. 아직 마약이 낯설던 시기에 사업은 크게 번창하고 조직도 커진다. 그러나 산토와 10대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슬림(알레시오 프래티코)이 마약에 빠지면서 조직원들의 원성이 나온다. 이들은 마약을 판매하지만 자신들은 마약에 빠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그러나 슬림이 중독자가 되면서 조직의 문제꺼리가 될 수 있다. 보통의 마피아 영화라면 이때쯤 슬림을 죽여야 하는 산토의 고뇌가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최대한 생략하고 빠르게 처리해버린다. 산토가 인간적인 고뇌를 할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다. 이 영화의 아이덴티티가 가장 명확해지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5. 이 영화의 이야기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앞서 언급한 '배신자'나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과 마찬가지로 한 남자의 삶을 시간순, 혹은 플래시백으로 풀어낸다. 이 남자는 보통 이민자거나 가난한 집에서 어렵게 자란 아이다. 이야기는 이 보잘 것 없는 아이가 어떻게 밤의 세계를 주무르는 거물이 됐는지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여기에는 보통 인물의 내면을 관찰해야 마초 감성을 끌어올린다. '아이리시맨'이 그랬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주인공을 깊고 세밀하게 관찰하려는 태도는 똑같다. '라 마피아'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애시당초 산토라는 인물의 내면을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생각이 없는 영화다. 이것을 '마피아 영화의 정통성에 대한 비틀기'라고 봐야 할 지는 잘 모르겠다. 그걸 알기에는 '일반적인' 마피아 영화를 본 게 없다.

6. 그래서 이 영화의 가치를 찾는 일은 어렵다. 아주 폭력적이고 나쁜 영화라 하기에 이 영화는 폭력에 대한 카타르시스가 없다. 레트로풍의 음악과 편집이 멋지긴 하지만 이 나쁜 놈을 감수하고 그 미장센을 즐기기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남자의 삶'이라는 키워드로 감상하기에는 그 남자가 너무 '개썅놈'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영화의 미덕은 무엇일까? 범죄자에 대해 '그는 그저 쌩양아치이며 그리 멋있지도 않고 끝까지 정신 못 차릴 놈'이라고 정의내리는 것이 전부다. 영화의 내용과 달리 기획의도는 심히 도덕적이다. 이상하게 교훈적인 지점이 있는 영화다. 

7. 영화를 만든 레나토 데 마리아는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은 감독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었고 자국 영화제(베니스 영화제 포함)에 몇 차례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현재까지 찾아본 바로는 우리나라의 어떤 평론가나 영화제에서조차 소개된 적이 없는 듯 하다. 때문에 이 사람의 영화관에 대해서는 감을 잡을 수 없다. '라 마피아'가 아주 만족스럽거나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생긴다. 이 사람의 영화 몇 편 더 보고 싶긴 하다. 

8. 결론: 이 영화를 '나쁜 놈이 나쁜 짓 하는 이야기' 정도로 묘사했지만 그 나쁜 놈이 하는 어설픈 짓들 보면서 낄낄대는 것도 재미가 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대로 좋은 복고음악과 레트로풍 편집과 촬영, 패션은 눈이 꽤 즐겁다. 갱스터 영화에 거부감이 없다면 넷플릭스에 봐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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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랙미러'를 많이 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녀석의 정체성이 정확히 뭔지도 잘 모른다. 그저 내가 아는 정보는 '블랙미러는 디지털 시대의 환상특급'이라는 것이다. 낯설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던 '환상특급'은 아재들의 감성 자극 버튼이었다. '블랙미러'도 그런 역할을 하겠다며 등장한 모양이다. 시즌1의 '공주와 돼지'를 본 후 '핫 샷'에서 영 지루해서 관람을 멈춘 상태였다. 그 와중에 '밴더스내치'는 뭔가 매력적이라서 챙겨봤다. 'USS 칼리스터'를 보게 된 배경도 '밴더스내치'와 비슷할 것이다. 그냥 제목과 시놉, 썸네일 사진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야말로 이것은 '가장 원초적인 선택'이었다. 

2. 'USS 칼리스터'는 '스타트렉'이나 그 이전의 우주 SF물을 떠올리게 한다. 함장과 대원들이 존재하고 저 옛날 '스타트렉2: 칸의 분노'에서 칸을 떠올리게 하는 악당 발닥도 존재한다. 뭐 대충 그런 우주 SF물을 기대했다가 갑자기 영 이상한 지점으로 흘러간다. 게임회사가 등장하고 CTO 로버트 데일리가 나타난다. CTO, 최고기술책임자는 우리나라 회사였다면 CEO 다음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인물이다. 단지 할 줄 아는 것이 기술개발 밖에 없어서 사람 챙기는 건 조금 미숙하지만 말 그대로 회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 CTO 치고 로버트는 영 찐따 취급을 받는다. 그런 그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3. 레트로풍 우주영화에서 갑자기 게임회사 찐따 얘기로 흘러가니 이것이 뭔지 당황스러웠다(사실 '환상특급'도 당황하는 맛에 본다). 그러다 중반에 다다를 즈음 이 이야기의 감이 잡힌다. 한마디로 반전이 중간에 등장하는 셈이다. 이 반전은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중간에 턱하니 박혀서 "이 다음에 어쩔 셈인가" 걱정됐다. 결국 이야기는 '반전'이 과제가 돼서 그것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된다. 아주 새로운 발상이라 마음에 든다. 특히 그 새로운 발상은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며 새로운 발상에 공감하는 것 역시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겜덕의, 겜덕에 의한, 겜덕을 위한'이야기다. 

4. 여기에 '스타트렉'을 비꼬면서 '스타트렉'스러움을 지킨다는 점도 기발하다. 'USS 칼리스터'는 '스타트렉' 팬이라면 부글부글하거나 "귀엽네"라며 코웃음 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클라이막스에 이르고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정말 '스타트렉'스럽다. '스타트렉'의 이야기 전개방식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함장의 팬이라면 관람을 좀 더 고민해보자. 

5. 이 이야기의 아이덴티티를 깨닫고서야 나는 '밴더스내치'를 다시 떠올렸다. '블랙미러'가 생각하는 디지털 시대의 정체성은 게임과 미디어, 네트워크를 말한다. 그 키워드를 가지고 무한한 상상을 펼쳐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몇 개의 에피소드를 더 봐야 여기에 대해 자세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현재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은 '블랙미러'의 훌륭한 소재이며 그것이 내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몇 개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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