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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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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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20.05.29
    놀 줄 아는 형, 조정석
  2. 2020.05.28
    '초미의 관심사' 초간단 리뷰
  3. 2020.05.25
    넷플릭스 '라 테르' 초간단 리뷰
  4. 2020.05.21
    '더 플랫폼' 초간단 리뷰
  5. 2020.05.19
    [스포주의] 넷플릭스 '블랙미러:미움 받는 사람들' 초간단 리뷰
  6. 2020.05.18
    넷플릭스 '블랙미러: 사냥개' 초간단 리뷰
  7. 2020.05.18
    [스포주의] 넷플릭스 '블랙미러: 보이지 않는 사람들' 초간단 리뷰
  8. 2020.05.15
    넷플릭스 '블랙미러: 블랙 뮤지엄' 초간단 리뷰
  9. 2020.05.14
    '씨 피버' 초간단 리뷰
  10. 2020.05.06
    잡담 200506 - 코로나19와 국제영화제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과에 재미있는 형이 있었다. 키도 훤칠하고 늘씬한 몸매를 가진 그럭저럭 미남인 형이었다. 이 형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운동도 잘한다. 그리고 같은 아재개그도 찰지고 맛있게 살렸다. 낯가림이 없어서 남녀노소 누구와도 친하게 지냈고 성격도 활달해 학교의 절반 이상은 이 형을 알 정도였다. 거의 학교에서 '스타'에 가까운 형이었다. 그 형은 내가 1학년 때 4학년이었으니 오래 볼 일은 없었다. 공부도 별로 안 하는 것 같았는데 희한하게도 졸업은 칼 같이 했다. 졸업한 후 들려온 소식은 평범한 회사에 다니면서 여전히 유쾌하게 산다는 것 정도였다. 결혼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결혼을 했다면 형수님도 대단히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형은 말 그대로 '잘 노는 형'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언제 어느 시기고 '놀 줄 아는 형'을 만나게 된다. 어릴 때 만났을 수 있지만 주로 기억하는 '놀 줄 아는 형'은 고등학생 이후에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는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놀 줄 아는 형 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배우 조정석 얘기다. 1980년생인 조정석은 공항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데뷔작은 2004년 연극 '호두까기 인형'이다. 이후 오랫동안 연극과 뮤지컬을 하던 조정석은 2011년부터 드라마와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그 유명한 '납득이'부터다. 조정석은 아주 전형적으로 무대에서 내공을 쌓고 카메라 앞에서 만개시킨 '천생배우'의 길을 걸었다. 

조정석의 커리어는 무대와 TV를 거쳐 스크린으로 향하는, 좋은 배우가 갈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길이다. 그런 길을 걸어서 성공한 배우는 아주 많지만 조정석은 조금 특별해보인다. 우선 그는 잡기에 능하다. 기타와 노래, 춤, 운동 등 여러 가지를 잘한다(심지어 영어도 잘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도 등장하지만 배우는 다양한 배역을 따내기 위해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것이 좋다. 조정석은 바로 그 '이것저것'을 잘한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엑시트'에서는 "저게 가능해?" 싶은 철봉동작도 척척 해낸다. 그리고 작가의 대본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애드립을 하는데 그게 반응이 아주 좋다. 애드립을 잘한다는 점이 유쾌한 재치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이쯤 되면 그는 박철민이나 김수로, 유해진 등 '천생 광대'들과 계보를 같이 한다. 그러나 조정석은 이전의 광대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잘생겼다. 

조정석은 잘생겼다. 주관적 견해기도 하지만 객관적 데이터로도 그는 '주연감'의 외모다. 우리가 아는 잘생긴 배우들을 몇 명 떠올려보자. 정우성, 원빈, 조인성, 장동건, 현빈 등. 이 잘생긴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뽐내며 중후한 멋을 선사한다(때로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기를 하지 않는 자리에서 이들은 중후하고 점잖은 배우가 된다. 내보일 끼가 많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조정석은 잘생겼으면서도(조정석을 정우성, 현빈, 원빈, 장동건, 조인성의 외모와 나란히 놓을 수 있는지 코멘트를 하진 않겠다) 끼를 마구 내보인다. 영화 '형'의 비하인드에서는 무려 아이돌인 EXO 도경수를 압도하는 잔망스러움도 보여준다. "얼굴을 저렇게 써도 되나"라는 걱정도 들지만 저렇게 쓰기 때문에 조정석은 더 특별해진다. 

그렇다면 이 배우는 그저 놀 줄 아는 배우이기만 할까? 앞서 말한대로 그는 무대에서 탄탄히 내공을 쌓고 온 배우다. 당연히 연기도 잘한다. '관상'에서의 절절함도 있고 '마약왕'에서의 카리스마도 있다. '뺑반'의 나쁜놈도 있고 '엑시트'의 용남이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학개론'의 납득이도 있고 '더킹 투하츠'의 은시경도 있다(난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더킹 투하츠'의 은시경을 꽤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런거 다 가지고 있으면서 '헤드윅'의 헤드윅도 있다. 조정석은 잘생긴 데다 아무 역할을 던져줘도 액체괴물처럼 달라붙는다. MCU의 토르가 브루스 배너만큼 똑똑하다면 이런 느낌일까? 잘생겼는데 아무 역할이나 맡겨도 된다는 점은 배우로서 '역대급 사기캐'라고 봐도 무방하다(사생활면에서 그가 자상한 남자 사기캐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겠다. 여기는 배우로서 이야기하는 자리다). 

심지어 작품 선구안도 괜찮은 편이다. 드라마의 경우 '더킹 투하츠'부터 '최고다 이순신', '오 나의 귀신님', '질투의 화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주연을 맡을 경우 타율이 좋은 편이다. 영화는 종종 말아먹는 영화('특종:량첸살인기', '시간이탈자' 등)에 출연하는 편이긴 하지만 '관상'과 '엑시트'라는 걸출한 대작도 가지고 있다. 다만 괜찮은 타율을 가지고도 천만영화가 없는 걸 보니 이러다 커리어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되는 건 아닌가 우려도 된다. '다 가진 남자' 조정석의 유일한 과제라면 '천만영화' 하나 커리어에 올리는 것 정도다. 천만 문턱 앞에서 주저 앉은 '관상'과 '엑시트'를 생각하면 더 아쉽다. 

조정석은 범상치 않은 배우다. 박철민, 유해진의 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인공급으로 잘생겼다. 얼굴 쓰는데 두려움이 없어서 아무 역할이나 갖다줘도 다 해낸다. 멜로도 되고 나쁜 놈도 되고 액션도 되고 변태도 된다. 동시대 배우 중에 역대급 사기캐인 이 배우는 이제 겨우 40살이다. 아직도 쌓아야 할 커리어가 아주 많다. 조정석은 무대와 스크린, TV에서 충분히 오래 볼 수 있는 배우다. 그리고 지금까지 별의 별 역할로 나온만큼 앞으로도 별의 별 역할로 나올 것이다. 놀 줄 아는 형하고 놀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즐겁다. 조정석을 보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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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이 이성을 갖기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해온 활동 중 하나가 창작이다. ...아니, 고대 원시인들의 동굴벽화도 창작이라고 본다면 인간 창작활동의 역사는 끝을 알 수 없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창작활동의 역사가 그토록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나올 이야기는 다 나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롭게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결국은 과거 누군가에 의해 나온 이야기에서 돌고 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시대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익숙한 것의 변주에서 시작된다. 오랫동안 트렌드를 주도한 이야기가 있다면 거기서 방향 하나만 바꿔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남연우 감독의 영화 '초미의 관심사'는 이런 변주에서 비롯된다. 

2. '초미의 관심사'는 익숙한 버디무비의 모양새를 띄고 있다. 어떤 사건이 생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목적이 같은 두 사람이 뭉친다. 두 사람은 목적만 같을 뿐 성격에 환경, 여러 가지가 완전 다르다. 당연히 갈등이 생기고 싸움도 하지만 결국은 사건을 해결하며 힘을 합치고 서로 이해하게 된다. '초미의 관심사'는 이런 익숙한 버디무비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둘째 딸 유리는 어디에 갔는가"를 찾는 추리영화의 구조도 띄고 있다. 유리는 엄마(조민수)의 가게 월세 300만원과 언니 순덕(김은영)의 비상금을 들고 잠적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와 순덕은 유리를 찾기 위해 힘을 합치고 증언과 단서를 쫓아 이태원 곳곳을 누빈다. 영화가 성실하게 유리를 쫓아가는 덕에 관객들도 "대체 유리가 어디로 간 것일까?"라며 함께 찾게 된다. 이 가운데 이야기는 몇 개의 반전을 심어둬 더 흥미진진해진다. 이래뵈도 이 이야기는 나름 튼튼한 반전을 가지고 있다. 

3. 두 주인공인 엄마와 순덕도 단순해보이지만 일관성이 있는 캐릭터들이다. 일단 주먹이 먼저 나가는 엄마와 꽤 차분한 순덕, 두 사람의 케미는 버디무비로써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다. 다만 엄마와 딸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가 가슴에 대못박히는 말도 막 던지다가 중요할 때 의기투합하고 허무할 때는 함께 웃고 이해하다가 싸우다가... 이 모든 것을 하루에 다 한다. 캐릭터는 일관성이 있어도 관계에는 당최 일관성이 없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애증'이 쌓인 가족이라면 보고 싶다가도 보면 으르렁대기 마련이다. 잘해주고 싶다가도 막상 해주다 보면 화가 난다. 불판 위에 돼지갈비 뒤집듯 뒤집어지는 관계로 이 모녀를 설정한 것은 '아들'인 나조차 공감할 정도로 탁월한 선택이다. 

4. "왜 이 영화는 배경이 이태원일까?"를 생각해봤다. 이태원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엄마의 대사 몇 마디로 미뤄볼 때 그녀는 양공주의 딸이다. 험한 유흥가에서 태어난 엄마는 그 딸이 그랬던 것처럼 모성을 물려받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때문에 순덕이 가출한다 했을 때도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 마음은 걱정이 됐지만 그 걱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어떻게 딸을 보살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엄마 역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순덕과 유리는 엄마, 외할머니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딸들 곁에는 엄마가 미처 이루지 못한 음악이 함께 하고 있다. 음악에 더 가까이 있는 딸들은 외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지는 역사의 대물림을 끊어낸다. 이태원 밤거리의 불빛에 가려진 그림자에서 살았던 외할머니와 엄마를 지나, 딸 순덕에게는 화려한 조명이 감싸고 있다. 

5.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서며 나는 "이게 '이태원 클라쓰'구만"이라고 말했다. 양공주의 자녀들에게서 시작해 정복이(테리스 브라운)라는, '외국인'의 경계에서 벗어난 한국인도 있고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 등 성소수자들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이태원역 앞 메인 거리를 지나 산 높은 곳 뒷골목까지 보여주면서 이태원 구석구석을 헤집는다. 만화같은 인생역전 스토리가 아니라 이태원의 근간이 되는 밑바닥부터 헤집으면서 그들의 유대와 삶을 보여준다. 이태원이 어떤 동네이며, 어떤 기반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 이 이야기의 구성과 인물들이 명확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이태원 클라쓰'다. 

6. 영화에서는 치타(김은영)가 노래하는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한다. 총 러닝타임이 92분임에도 체감상 거의 10분 이상은 치타가 노래하는 장면으로 꾸며졌다. 기분탓인지 몰라도 치타가 노래하는 장면은 유독 정성스럽다. 사운드부터 카메라, 배우를 감싸는 화려한 조명까지, 뮤직비디오에 가까울 정도로 치타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잉그리드 버그만을 찍을 때도 이렇게 정성을 들였나 돌아보게 될 정도의 장면들이다. 카메라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게 이런 기분인지 궁금하다. 게다가 영화에 삽입된 음악만 10곡 가량 되는 듯 보이는데 그 중 단 1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치타의 노래다(치타가 작사, 작곡에 참여한). 감독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연인에게 헌정하는 영화'라고 이해할 생각이다. ...남연우 감독....멋있네.

7. 결론: 엄마 캐릭터가 다소 과해서 편하게 못보는 사람도 있을거라 생각된다. 그런 엄마 캐릭터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된다. 마지막 노래가 나오기 전 대사가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그것만 빼면 꽤 재미있는 영화다. 특히 짧은 러닝타임에 걸맞게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추신1) 이 시국이 이태원 트랜스클럽이 등장하는 영화의 개봉을 밀어붙인 제작사의 패기에 박수!

추신2) 박종환, 임화영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이승원 감독이 조연출로 참여한('해피뻐스데이', '소통과 거짓말'의 그 이승원 감독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함) 이 영화를 보고 있으니 작년 부천에서 봤던 재미있는 영화 '팡파레'의 개봉이 더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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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는 일단 영화를 잘 찍는다. 예술영화도 당연하고 장르영화도 잘 찍는다. 공포영화도 당연하고 코미디영화(내 취향엔 안 맞지만)도 잘 찍는다. '파쿠르'의 본고장답게 액션영화도 잘 찍는다. 프랑스 영화의 정통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뤼미에르 형제나 장 뤽 고다르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정통성과 깊은 문화적 인프라를 갖춘 나라답게 재미있는 영화를 잘 찍는다. 내가 넷플릭스 영화 '라 테르'에 대해 가졌던 기대는 그런 것들에서 비롯됐다. 영화의 발상지이자 파쿠르의 본고장이고 뤽 베송이 나고 자란 나라(?)인데 못해도 '택시'같은 영화는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기대한 내가 미친 놈이다. 

2. '라 테르'는 시놉이 익숙하고 간단하다. 산에서 재재소를 운영하는 주인공 사이드(사미 부아질라)는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 청각장애인 딸 사라(소피아 레사프레)를 위해 그는 재재소를 처분하고 딸의 미대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런데 가석방 중인 직원 야니스가 마약거래에 말려들게 되고 마약조직 두목이 자신의 약을 찾기 위해 재재소를 찾아온다. 사이드는 딸을 지키기 위해 마약조직과 일전을 벌인다. 시놉만 읽으면 '아저씨'나 '테이큰'을 기대할 수 있다(심지어 '테이큰'을 만든 피에르 모렐도 프랑스 사람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시벌 이게 대체 뭔소리야"였다. '라 테르'는 분위기 잡는데 영화의 절반을 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대체 저 아저씨가 왜 저러나"라는 의문을 가지고 보게 된다. 

3. 일단 사이드는 온갖 무게를 다 잡는다. 분위기만 봤을때는 지젠느(GIGN)에서 복무하다 퇴역한 군인인가 싶다. 그러나 그런 배경설명은 없다. 그리고 마약조직이 올 것을 예상하면서 오히려 일을 더 크게 키운다. 예를 들어 엄한 야니스를 창고에 가뒀다가 꺼내고 마약을 괜히 숨기고 괜히 악당 차를 운전하다 들이받고 괜히 내부로 유인했다가 재재소 태워먹는 식이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사이드의 행동은 일을 더 키우고 있다. 한 예로 '아저씨'의 경우 차태식(원빈)은 전당포에 물건 찾으러 온 녀석들에게 일단 지갑부터 주고 시작한다. 일을 크게 만들지 않는게 최선이라는 걸 안다. 사이드는 그걸 모른다(대체 왜?). 정말 최후의 보루로 "그래, 평생 나무나 베던 사람이 뭘 알겠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해보려는데 일이 꼬이는 경우겠지"라고 생각했다. 

4. 일단 여기서 꼬여버리니 다른게 다 별로다. 액션도 시원치 않고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발암캐'같다. 잔뜩 잡아놓은 무게조차 공중분해 돼버리고 "이거 너무 재미없어"라며 짜증만 날 뿐이었다. 이쯤되니 이 영화를 만든 쥘리엥 르클레르크의 전작이 궁금해졌다. 그는 꽤 많은 영화를 만들었고 모두 범죄액션스릴러다. 전작인 '더 바운서'는 무려 노년의 장 클로드 반담이 주연이고 2015년작 '더 크루'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다(아마도 미드나잇 패션으로 추정). 이것들이 그의 커리어를 증명해주진 않을 것이다. 다만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거지같은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하다. 

5. 결론: '라 테르'의 미덕이 뭐가 있을지 여러모로 고민해봤다. 그나마 미덕이라면 '테이큰'이 보여준 판타지는 깼다는 점이다. 특수부대에 복무하지 않은 다수의 아버지들은 저렇게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치다가 꾸역꾸역 목숨바쳐 자식을 구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약간 애잔하기도 하다. 다만 '라 테르'에 대해 내가 기대한 것은 그게 아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썩 좋게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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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끔 아주 노골적으로 메시지가 보이는 영화가 있다. 이 경우는 이야기를 쓰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 장면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거야"라고 작정한 경우다. 이 경우 나는 리뷰를 쓰기 싫어질 때가 있다. 내가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이것은 감독이 정한 답 안에서 놀아나는 느낌이다. 이것은 내가 어느 순간부터 김기덕 영화를 싫어하게 된 이유에도 해당된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김기덕 영화를 보면서 "이 인간은 자기가 보통의 인간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정확히 어떤 작품부터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일대일'을 봤을 때 정말 노골적으로 느꼈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승려가 자신의 깨달음을 과시하듯 내려다보며 설법을 전한다. 그런데 그 설법이 하찮게 느껴진다. 김기덕의 영화는 어느 순간 그랬다. 

2. '더 플랫폼'은 중기 이후 김기덕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감옥과 음식이 등장하는 설정은 대단히 초현실적이다. 그리고 그 초현실적인 기호는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아주 노골적으로' 상징한다. 이 노골적인 설정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권력이동의 원리, 혁명의 방향 등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깨기 위해 사회주의적 정서를 가져온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해를 두고 이 영화를 본다면 레고 블럭처럼 완벽하게 들어맞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글을 쓰기 싫다. 정치적 이해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이야기가 바란 바이기 때문에 거기에 휘둘리는 것이 재미가 없다. 

3. 올해 내가 몇 편의 영화를 더 볼 지 모르겠다. 그러다 '리얼'같은 영화를 만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 플랫폼'은 '올해 최악의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것보다 이 영화의 태도가 기분이 나쁘다. 게다가 계급사회에 대한 메타포라면 더 잘 만든 이야기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차라리 영화 '파리대왕'이나 '엑스페리먼트'를 보는 쪽이 더 흥미롭지, 이건 너무 노골적이고 단순하다. 깨달음을 얻은 듯 0층에서 내려다 보지만 정말 별 것 없는 0층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어떤 메타포도 읽고 싶지 않다. 답정너도 이런 무식한 답정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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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 개의 '블랙미러' 에피소드를 보다가 얻게 된 깨달음: 이 녀석들은 통상 마지막 에피소드에 공을 들인다. 시즌2의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시즌4의 마지막 '블랙 뮤지엄'은 특히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시즌3의 마지막 에피소드도 재미있을까?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미움 받는 사람들'이다. 썸네일을 보니 대략 청문회 내지는 법정으로 추정된다.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인터넷 혐오, 협박메시지 등 단어가 등장한다. 이것은 SNS에 대한 진중한 고찰일까? '블랙미러'의 여러 에피소드들 가운데 단연 묵직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러닝타임도 장편영화 하나에 이를 정도로 길다(1시간29분). 시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긴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를 대하려면 마음에 준비가 필요할 듯 하다. 

2. 막상 에피소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말벌'이 등장한다. 그때 나는 "아, 이것도 결국 '블랙미러'구나"라고 깨달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듣도 보도 못한 과학기술이 등장하고 그것이 인간을 공격한다. 전자말벌 이야기를 해보자. ADI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벌의 멸종 후 식량난을 막기 위해 개발된 로봇 벌이다. 벌의 행동 패턴만 입력됐으며 시각센서를 통해 꽃을 구분한다. 놀란 점은 인류가 벌의 멸종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엔지니어 사정 생각 안 하고 막 만든 디자이너의 작품같지만 가능하다면 인류는 벌의 멸종에 따른 식량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계에서 우려하는 인류멸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별의 멸종'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한 셈이다. 이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기술이다. 

3.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야기에서 드러나지만 ADI가 정부의 승인을 받을 당시 정부는 식량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ADI의 시각센서를 활용하면 첩보활동이 더 쉬워진다는 점을 이용했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ADI의 시각데이터를 보관해 관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ADI 개발에 참여한 한 직원이 이를 악용했다는 점이다. 진중한 사회고발극을 기대한 나에게 대뜸 '전자말벌의 습격'이 등장한 것은 신선한 뒤통수였다. 그것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처럼 스릴과 서스펜스를 주진 않았지만 전자말벌이 무차별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설정만으로 긴장감을 줬다. 물론 중요한 것은 전자말벌이 아니라 SNS였다. 

4. '미움 받는 사람들'은 SNS에서 소위 '관종', '어그로충'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사람은 온라인에 게임을 열고 '#DeathTo'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을 매일 1명씩 결산해 죽이겠다고 말한다. 돌고 돌아 이 이야기는 SNS의 익명성과 그 익명으로 형성된 집단의 부조리한 폭력을 고발한다. 그런데 뭐 그런 거 생각 안 해도 좋다. 영화의 엔딩에 이르고 나서도 SNS의 부조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도 그것을 잘 아는듯 이 이야기의 결론은 여느 형사 버디무비처럼 마무리된다(마치 속편이 만들어질 것처럼). 이 이야기는 장르영화의 범주 안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뛰어논다.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미움 받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본 '블랙미러' 에피소드 중 가장 재밌어야 했다. 단 한 가지 문제점이 치명적이긴 했다. 

5. '미움 받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형사 역할을 맡은 두 주연배우가 연기를 너무 못한다는데 있다. 이쯤에서 나는 OCN에서 봤던 몇 개의 드라마를 떠올렸다. 몇 년 전만해도 OCN 드라마를 종종 챙겨봤다.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장르로 재밌게 풀어낸 것이 좋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대사와 디테일에 정말 신경을 안 쓴다는 게 느껴졌다. 잔뜩 무게잡은 주인공은 거부감이 들 정도고 이야기는 낯이 익었다. 10개 던지면 하나 마구가 나오는 투수처럼 장면 중 90%는 유치해서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미움 받는 사람들'은 두 형사가 나오는 장면마다 대체로 보기 힘든 수준으로 연기를 못한다. 이 이야기에는 조연으로 베네딕트 웡이 등장한다. 연기를 잘할만한 작품에서 본 적이 없어서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그는 거의 유일한 '연기 사이다'다. 한 예로 두 형사가 걸어오며 대화하는 장면을 풀샷으로 잡는데 둘의 대사를 들으며 "대체 지금 누가 말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둘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넷플릭스 자막 싱크도 이상할 때가 많은데...

6. 결론: 신선하고 재미있다. 러닝타임 89분이면 거의 영화 1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누가 날 잡아서 다시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아니, 다시 만들어줘...주인공 배우 바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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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랙미러'를 뒤늦게 보기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에서 갖기 시작한 매력은, 시리즈를 수식하는 단어기도 했던 '디지털 시대의 환상특급'에 딱 걸맞다는 점이다. 이미 SF영화 속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과학적으로 더 상상할 것이 없다고 여겨졌을때쯤 '블랙미러'는 새로운 상상을 제시한다.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문장에 대해 20세기에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스카이넷' 정도였지만 21세기에는 우리 스스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그림을 만들어낸다(그렇게 생각해보면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시대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인가). 문장을 조금 다르게 나열해보자. '과학은 인간성을 어떻게 말살할 것인가'. '블랙미러'는 그 물음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것은 현재를 기반으로 한 근미래에 대한 상상이며 실현 가능한, 어쩌면 조금 더 다가온 디스토피아다. 

2.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블랙미러' 시즌4의 5번째 에피소드 '사냥개'는 지금까지 본 '블랙미러' 중 가장 불친절하다. 이 에피소드는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고 많은 것을 축소시켰다. 그저 인간과 로봇개의 추격전 외에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색깔조차). 그래서 나는 며칠 전에 이 에피소드를 봤음에도 리뷰를 쓰는 일을 망설였다. 이 이야기에서 숨어있는 과학을 찾을 수 없었고 인간성은 진작에 말살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저 쫓고 쫓기는 게임에 불과했다. 꽤 오래 고민을 해봐도 이 이야기는 도저히 쓸 말이 없는 에피소드였다. 그러던 어느날 TV에서 '엑스맨:데이즈오브퓨처패스트'를 보다가 뭔가 깨달았다. 저 이야기, 참 '사냥개'와 닮았다. 어쩌면 '사냥개'는 '블랙미러'가 강조한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에 가장 직접적인 비유일 수 있다. 

3.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사냥개는 최첨단 과학 테크놀러지를 탑재하고 있다. 폭탄 형체의 위치추적 디바이스나 카메라, 총을 장착하고 있고 4족보행 로봇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빨리 달릴 것이다. 로봇공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KAIST와 연을 맺고 있는 입장에서 보고 들은 몇 가지 로봇들로 이해해보자면 로봇은 이제 두 발로 걷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전히 정말 로봇처럼 걷지만 이는 굉장한 발전이다. 4족 보행 로봇이 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말 그대로 관절만 빨리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만큼 빨리 달리는 로봇이라면?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자동차만큼 빨리 달리는 4족 보행 로봇이 대체 왜 필요하지?"라고 물을 수 있다. 이는 사냥개는 실현 가능한 과학기술처럼 보이지만 '블랙미러'에 등장한 다른 과학기술처럼 미래의 기술이다. 

4. 과학의 집약체가 인간을 쫓는다. 물류창고에서 무언가 훔치려 했던 인간들은 사냥개의 공격을 받고 쫓기기 시작한다. 이들은 어느 집단의 소속이며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는 상세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맨 마지막에 그들이 훔치려 했던 것이 보여질 때서야 조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에서 인간들은 휴머니즘이 극대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막을 달리고 총도 쏘지만 그리 전투적이지도 않다. 흑백에 가려져 있지만 이들은 누가 봐도 사람이고 사람답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과학'에 쫓기는 '인간'으로 봐도 무방하다.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문장이 통째로 이야기가 된 셈이다. 

5. 이 이야기는 대단히 낯이 익다. 제임스 카메론의 1984년작 '터미네이터'도 이런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은 '터미네이터'의 진정한 매력을 오해하고 있다. '터미네이터'는 1과 2로 이어지는 타임 패러독스가 매력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에서 끝났다. 그렇다고 다 때려부수는 스케일도 매력이 아니다. 애시당초 '터미네이터' 1편은 뭐 때려부술 만큼 돈 많은 영화가 아니었다. '터미네이터'의 매력은 '겁나 센 녀석이 나를 죽이러 쫓아오는데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말도 안 통한다'는 점이다. 나는 오히려 '터미네이터'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한 영화가 데이빗 로버트 미첼의 '팔로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터미네이터'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한 이야기에 '블랙미러:사냥개'를 추가해도 될 것 같다. 

6. 결론: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다면 문명은 지금보다 수백년 뒤쳐졌을 것이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문명의 발달은 살육을 먹고 이어졌다. 인간은 개개인으로 싸우기도 하고 집단으로 싸우기도 한다. 어느 어른의 말인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인류 전체에 써도 무방하다. 망한 리메이크영화인 '인베이전'에서는 외계인이 인간을 잠식하고 갈등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서늘한지 보여준다. 감정을 가진 존재는 사랑하고 미워하다 갈등하고 싸운다. 찰스 자비에 교수와 에릭 랜셔도 그랬다. 그 오랜 싸움은 인간이기에 가능했고 거대한 위협(센티넬) 앞에 그들은 뭉쳤다. '엑스맨:데이즈오브퓨처패스트'는 그래서 인간성(엑스맨)과 과학(센티넬)의 대결이다. 이것이 '사냥개'와 '엑스맨'이 닮은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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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철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수업시간에 영화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당시 철학과 교수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은 단연 '매트릭스'였다. 장자의 사상부터 시작해서 장 보드리야르까지 이야기꺼리가 아주 풍부한 작품이었다. 교수들이 '매트릭스'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 캐릭터는 싸이퍼(조 판톨리아노)였다. 그는 참혹한 현실을 택하느니 조금 더 나은 매트릭스를 택하는 '변절자'다. 고통스런 현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의무일까? 행복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는 등을 돌려도 좋지 않을까? 여기에 더해 싸이퍼의 대사 중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 고기와 와인맛은 결국 매트릭스가 보낸 신호에 불과하다"는 식의 내용이 있다. 즐거움이나 쾌락은 결국 허상이다. 아무튼 철학과 교수들에게 싸이퍼는 중요한 연구소재였다. 

2. '블랙미러' 시즌3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매트릭스'와 같은 물음을 던진다. 망각으로 행복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현실에 고통받으며 살아갈 것인가. 이 이야기에는 군인들이 등장한다. 하는 일로 봐서는 UN군처럼 보이는데 민간군사기업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이들에게는 '마스크'라는 장치가 이식돼있다. 이 장치는 증강현실(AR)을 볼 수 있고 드론 카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마스크의 핵심은 AR에 있는 듯 하다. 여기서 AR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만약 시청자가 마스크의 기능 중 AR을 의식한다면 이야기 초반에 반전은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놀라운 것은 마스크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3. 현재의 AR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 수준의 캐릭터를 구현해내는 그래픽에 싱크도 그리 완벽하지 않다. 대용량 그래픽의 전송이 어렵고 이를 구현할 디바이스도 아직 개발되지 않아 AR과 실제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게다가 현재의 AR은 디바이스(글래스)를 장착하고 봐야 하는 수준이다. 그 무거운 걸 쓰고 있으면 누가 봐도 "아 이건 AR이다"라고 의식할 수 있다. 현재의 AR은 스마트폰 콘텐츠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수준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AR의 발전과 활용은 딱 지금까지가 적절한 것 같다. 이 에피소드에서 AR은 굉장히 발전된 수준이다. 신체에 디바이스를 이식했고 무거운 글래스 없이도 AR을 볼 수 있다. 다만 조금 현실적인 관객이라면 "저것도 AR일까?"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4. 이 이야기의 반전을 의식하게 된 지점은 군인들이 '벌레'라고 부르는 존재가 처음 등장했을때다 그들은 의외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손에 뭘 들고 싸우고 군인들을 보자 도망가기 바쁘다. 벌레들은 첫 등장부터 좀 무섭게 생겼을뿐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때부터 반전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 역시 '벌레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대신 이 이야기가 노린 지점은 "왜 기업이 군인들의 마스크에 그런 기능을 넣었냐"는 점이다. 마치 오대수에게 묻는 이우진처럼, 중요한 것은 "벌레는 무엇이냐?"가 아니라 "왜 벌레처럼 보이게 했냐?"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무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5. 마지막에 등장하는 설명을 요약하자면 군인들은 같은 인간을 상대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적을 사살하는데 주저함이 있다. 그러나 만약 적이 끔찍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사살하기 더 쉽다는 게 기업의 설명이다. 이들은 군인들에게 주어진 최후의 윤리의식을 기술로 제거해버린 것이다. SF영화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과학기술을 병사들에게 이식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대에 대해서는 이런 상상이 정말 많았다. 2013년 만들어진 네덜란드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군대'(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에서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죽은 병사들을 기술로 살려낸다. 아마도 나치에 대한 수많은 음모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퍼스트 어벤져'의 레드스컬(휴고 위빙) 정도는 아주 윤리적인 군인이었다고 이해하자. 차라리 '캡틴 아메리카'를 탄생시킨 약물로 군대를 만들고자 했던 미국 정부가 더 무시무시하다. 

6. 마지막 장면은 '매트릭스' 싸이퍼의 선택을 떠올린다. 깨달음으로 얻은 불행 대신 망각으로 얻은 행복을 선택한다. 다만 이야기는 마지막 눈물에서 다시 물음을 던진다. 망각으로 얻은 행복이 정말 행복일까? 이 이야기가 '매트릭스'를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VR과 현실에 대한 물음은 '매트릭스' 이후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 물음에는 답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이것은 '부먹'과 '찍먹'보다 논쟁적인 물음이다. 여기 어떤 사실이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불행해진다. 알게 되는 순간 돌이킬 수도 없다. 대신 단 한 번 사실을 지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행복한 가상을 인식받아 가상현실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매트릭스' 이후 오랜만에 이 물음 앞에 다시 섰다. 20년동안 과학이 그토록 눈부시게 발전해도 여전히 빨간약과 파란약 중 뭘 먹어야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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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오래전 나는 어떤 이야기를 상상한 적이 있다. L.A에서 조직 보스의 돈을 훔쳐 달아난 마피아가 있다. 그는 차를 타고 사막을 달리던 중 어떤 사고를 당한다. 차는 박살나고 황량한 도로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사막의 열기에 정신을 잃어갈 때 쯤 저 멀리 호텔 하나가 나타난다.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런 호텔에 도착한 주인공은 로비를 열고 들어가자마자 쓰러진다. 호텔 직원들은 그를 극진히 보살핀다. 주인공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호텔에 충분히 머물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친절하고 맑은 호텔의 분위기에 이상한 거부감이 든다. 기력을 회복한 주인공은 체크아웃하고 호텔을 빠져나가려 하지만 아무리 내려가도 자신이 들어온 로비를 찾을 수 없다. 직원에게 문의하지만 "지내시다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저희가 개선하겠습니다"라는 말만 한다. 빠져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호텔을 나갈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가 호텔을 나가려 할수록 알 수 없는 존재가 그를 위협한다. 

0-2. 이 이야기는 아주 어릴때 상상한 이야기다. 나도 잘 안다. 이 이야기는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샤이닝', '1408'을 연상시킨다.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이야기를 상상할 때 '샤이닝'은 보지 못했고 '1408'은 제작도 되지 않았다. '황혼에서 새벽까지'는....얼추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차이점을 찾자면 내 이야기는 시작하고 빠른 시간 안에 주인공을 미지의 공간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사실 저 이야기를 상상했을때 나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듣고 있었다. 서정적이고 슬픈 느낌도 있는 노래에서 묘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 이야기는 '호텔 캘리포니아'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제목도 '호텔 캘리포니아'라고 했었다. 

1. '블랙미러' 시즌4의 마지막 에피소드 '블랙 뮤지엄'은 첫 장면에서부터 '호텔 캘리포니아'를 떠올렸다. 그랬다는 의미는 누군가는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블랙 뮤지엄'에서 '블랙'은 범죄를 의미하는 '블랙'이었지만 이야기의 초반부에는 주인공의 피부색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블랙 뮤지엄'은 내가 상상한 지점을 정확하게 후드러 패면서 반전을 주는 에피소드다(그 주인공은 '블랙 팬서'의 슈리다). '블랙 뮤지엄'이 내 이야기 '호텔 캘리포니아'를 연상시킨 것은 사막 한 가운데 박물관이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그것부터 이 박물관이 신비로운 공간이라는 인상을 준다. '호텔 캘리포니아'처럼. 신비로운 공간은 당연히 고대 전설이나 영적인 존재에 기인한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등장한 뱀파이어도 마찬가지다.

2. 그러나 신비로운 것은 듣도 보도 못한 과학기술이다. 그때쯤 잊지 않고 중요한 것을 상기시켜야 했다. 이것은 '블랙미러'다. '블랙 뮤지엄'은 '블랙미러'의 아이덴티티에 맞는 '신비로운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공포영화를 상상해봤다. 그것은 '이벤트 호라이즌'처럼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SF호러와 다르다('이벤트 호라이즌'은 오히려 우주 공간에 지옥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고전 호러와 맥락을 같이한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검증하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발전해버렸다. 더 이상 도시전설이나 신화 속 고대 괴물, 영적인 존재는 힘을 받기 어렵다. 그것들은 얼마든지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미러'는 미래의 공포는 과학기술이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블랙 뮤지엄'에 등장한 기술들은 대체로 상식을 뛰어넘었다. 감각을 전송하고 의식을 다운로드 하는 기술은 놀라운 것들이지만 인간윤리에서 어긋난다. '블랙 뮤지엄'은 인간윤리에서 벗어난 혁신기술이 무차별로 사용됐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3. 그리고 놀라운 점은 '블랙 뮤지엄'은 앞서 언급한 나의 편견에도 반기를 든다. 이것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중반에는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부부도 등장한다. 그리고 잠깐 언급하는 '백인우월주의자'는 추악한 변태처럼 묘사된다. 놀라울 정도로 인종에 대한 문제를 배제했다. 이 에피소드는 인종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인종차별? 그거 너무 구식 아니니?"라고 말한다. 그런 태도를 통해 이 에피소드는 인종차별을 비판한다. 쿨내가 나면서도 멋있는 방식이다. 이 에피소드가 인종차별 이슈를 대하는 방식은 많은 영화들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4. 지금까지 '블랙미러' 에피소드 몇 개를 보면서 이제서야 이 녀석의 정체성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블랙미러'에 등장하는 기술들은 현재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반영하고 있지만 대단히 앞서 나갔고, 그래서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1968년에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등장한 HAL9000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저게 말이 돼?"라며 봤을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사람들이 SF영화를 보면서 "저게 말이 돼?"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뤄진 현재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제 저녁 대전방송에서는 KAIST 로봇 '휴보'가 저녁 뉴스를 진행했다고 한다. 연구기관들은 코로나19 역학조사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해 동선을 파악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아주 빠른 속도로). 우리가 사는 현재는 오래전 사람들이 상상했던 SF 세계다. 그 의미는 '블랙미러'가 상상한 SF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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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릴 때 비디오가게에는 꽤 재미있는 해양 크리처물이 많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것들이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가 낳은 아류작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딮식스', '레비아탄' 등) 그때는 오들오들 떨면서 크리처의 멋진 퀄리티를 감상했다. 크리처가 등장하는 해양 스릴러는 이후에도 꽤 나왔던 것 같다. 일단 '딥블루씨'도 생각나고, 해양 크리처물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오징어가 등장했던 '스피어'도 생각난다. 이런 영화들은 주로 여름에 개봉해서 시원한 바닷물에 풍덩 빠져서 느끼는 오싹한 공포를 제공한다. 때문에 에어컨 빵빵한 극장에서 해양 크리처물을 보는 것은 최고의 피서였다. 

2. 애시당초 해양 크리처물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에 대한 흥미가 유난히 떨어졌다. 예전 해양 크리처물이 가지고 있던 폐쇄공간의 긴장감은 없고 일단 '겁나 큰 괴물'이 등장해서 다 때려부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캐리비안 해적'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크라켄 등장씬도 내겐 그저 시큰둥할 뿐이었다(바다회오리 전투장면은 좀 재밌었다). '씨 피버'는 꽤 옛날 생각나게 하는 해양 크리처물이었다. 복고적이었고 어설프다. 그런데 정작 이 녀석은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3. '씨 피버'가 놓친 중요한 것을 설명하기에 앞서 나는 이 영화와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영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2015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했던 '하빈저 다운'이다. 영화제 상영 이후 국내에 정식 수입됐으나 극장 문턱도 못 밟고 2차 판권으로 넘어간 듯 하다. '하빈저 다운'은 '씨 피버'와 유사한 해양 크리처물이다. 감독인 알렉 길리스는 '에이리언3'과 ;에이리언4', '죽어야 사는 여자',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엑스파일' 극장판의 특수효과를 맡았다. 특히 헐리우드 특수효과의 거장 스탠 윈스턴의 '펌프킨 헤드'로 입문했으니 업계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최근에는 '엑스맨:퍼스트 클래스'와 '오드 토머스'의 분장팀으로 일했으며 '하빈저 다운'은 그의 연출 데뷔작이다. 

4. 이런 커리어를 가진 감독의 작품이니 당연히 크리처 디자인과 특수효과는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크리처 특수효과의 기념비적 걸작인 존 카펜터의 '괴물'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있어 크리처 영화팬이라면 눈이 행복한 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부실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크리처 디자인은 '에이리언'을 넘어 존 카펜터의 '괴물'에 범접할 정도지만 이야기는 '7광구'와 맞먹는다('7광구'는 크리처 디자인마저 구렸으니 두 영화는 자웅을 겨뤄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하빈저 다운'을 정말 재미없게 봤지만 한편으로 아까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5. '씨 피버'는 '하빈저 다운'과 반대방향에 있다. 이야기는 꽤 그럴싸하게 만들었는데 크리처가 구리다. 처음에는 짧은 오프닝으로 시본(헤르미온느 코필드)의 정체성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아 당황스러웠는데 나중에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의 설명을 최소화하면서도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는 것은 합리적인 연출이다. 크리처물이 크리처를 숨기는 경우는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에이리언2020'이나 '스크리머스'는 크리처의 등장을 최소화하고 긴장을 유발한다. 크리처 영화는 아니지만 샘 레이미는 '이블데드'를 만들면서 가난한 살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카메라가 악령의 역할을 대체했다. '씨 피버'도 없는 살림으로 아등바등 만든 영화같은데 그럴거면 촬영과 편집, 음향 등 영화적 기술을 활용해 긴장감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주 정직하게 없는 살림으로 아등바등 만든 크리처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6. '씨 피버'가 긴장감을 주는 일에 영리하지 못한 것은 오프닝에서도 드러난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만든다면 첫 장면은 시본의 배가 발견한 다른 배에서 시작됐을 것이다(영화에서는 '트롤 어선'이라고 불렀다). 제한구역에서 조업을 하던 배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고통스러워하고 동료선원들이 그를 보살피려 하지만 막지 못한다. 비명소리와 함께 선원들이 끔찍하게 죽어가고 그 배후에 있던 크리처(실루엣만 살짝 보이는)가 바다 속으로 숨어버린다. 카메라는 물 밑에서 올라오는 기포를 비춘다. 그리고 그 기포는 시본이 보는 자료영상으로 바뀐다. ...이것은 상업영화의 아주 전형적인 연출이다. 일단 시작할 때 관객을 흡입시킬 강렬한 장면을 보여주고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러나 '씨 피버'는 이것조차 안하고 '정직'하게 간다. 감독이 참 정직한 사람인 모양이다. 

7. 결론: '씨 피버'는 지나치게 정직한 영화다. 없는 살림에 아등바등 살면서 주어진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 더 영악해도 된다. 영화가 영악할수록 관객은 '순풍산부인과'의 정배가 돼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툭 친다. 영화에게 당해서 통수를 얻어맞는 일은 꽤 즐겁다. '씨 피버'는 그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크리처도 구리다. 


추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최고 미덕(거의 유일한 미덕)은 '자가격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장면이다. "너 하나 때문에 너의 고향이 쑥대밭이 되는 꼴을 보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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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매년 국내 3대 국제영화제(부산, 부천, 전주) 중 최소 1개 이상은 무조건 갔습니다. 부산에서는 두 번 정도 '내부자'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나름대로는 우리나라 영화제의 생리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아는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최근 우리나라 국제영화제는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입니다. 관객의 관심과 영화제의 지향점이 다르다던지, 효율적인 운영을 할 돈이 없다던지. 뭐 그런 문제들이죠. 

올해 전주영화제가 코로나19 영향으로 무관객 영화제가 된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메가박스 객사점이 영업을 종료하면서 전주영화제 상영관이 부족할 상황이었거든요. 4월말에 같은 자리에 씨네큐 전주영화의거리점이 문을 연게 영화제와 어떻게 연동될 수 있었을지 알 수 없지만(첫 개관행사를 전주국제영화제로 할 수도 있었음) 메가박스 객사가 있을 때도 전주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만약 씨네큐가 예정대로 문을 열지 못했다거나 씨네큐와 협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면 올해 전주영화제는 더 정신없어질 뻔 했죠. 

부천영화제는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김봉석 전 프로께서 언급하신 여러 사태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도 이 자리에서 차마 언급할 수 없는 여러 이슈들이 있었죠. 

영화제뿐 아니라 어딜 가도 20년 넘게 자리를 잡은 기관이라면 고인물과 적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영화판은 정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자리가 극히 제한적이라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위원장 같은 자리는 여러 사람이 탐내는 자리죠. 사무국장을 포함한 사무국 주요 요직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의 경우 상근직이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고 그만큼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약하자면 현재 대한민국 3대 국제영화제는 여러 고인물과 적폐가 어우러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코로나19로 영화제들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가 마찬가지죠. 외국의 사정은 잘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사태가 개선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전보다 관(官)이 개입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관의 입김은 세죠. 게다가 영화제에 얽힌 이권다툼도 심각합니다(이것은 김봉석 전 프로님 말씀 참조). 때문에 코로나19는 영화제의 내적 쇄신을 꾀할 계기가 될 수 있겠군요. 

구체적인 대안은 더 연구해봐야겠지만 변해버린 관람문화를 수용하고 넷플릭스를 포함해 더 늘어나는 글로벌 OTT 플랫폼과도 상생의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고전적인 지역 축제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를 수 있는 행사가 돼야겠죠. 더 자세한 건 관계자들이 논의해서 답을 내놓을거라 생각됩니다. 

전주가 무관객 영화제를 하기로 했고 부천도 규모가 대폭 축소된다고 합니다. 개인적 생각은 이참에 부산도 조정을 하고 대규모 쇄신에 들어갔으면 좋겠군요. 이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는 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부산시장에 의한 쇄신이 아니라 내부에서 나오는 자성의 목소리여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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