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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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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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5.18
    넷플릭스 '블랙미러: 사냥개' 초간단 리뷰
  2. 2020.05.18
    [스포주의] 넷플릭스 '블랙미러: 보이지 않는 사람들' 초간단 리뷰

1. '블랙미러'를 뒤늦게 보기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에서 갖기 시작한 매력은, 시리즈를 수식하는 단어기도 했던 '디지털 시대의 환상특급'에 딱 걸맞다는 점이다. 이미 SF영화 속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과학적으로 더 상상할 것이 없다고 여겨졌을때쯤 '블랙미러'는 새로운 상상을 제시한다.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문장에 대해 20세기에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스카이넷' 정도였지만 21세기에는 우리 스스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그림을 만들어낸다(그렇게 생각해보면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시대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인가). 문장을 조금 다르게 나열해보자. '과학은 인간성을 어떻게 말살할 것인가'. '블랙미러'는 그 물음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것은 현재를 기반으로 한 근미래에 대한 상상이며 실현 가능한, 어쩌면 조금 더 다가온 디스토피아다. 

2.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블랙미러' 시즌4의 5번째 에피소드 '사냥개'는 지금까지 본 '블랙미러' 중 가장 불친절하다. 이 에피소드는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고 많은 것을 축소시켰다. 그저 인간과 로봇개의 추격전 외에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색깔조차). 그래서 나는 며칠 전에 이 에피소드를 봤음에도 리뷰를 쓰는 일을 망설였다. 이 이야기에서 숨어있는 과학을 찾을 수 없었고 인간성은 진작에 말살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저 쫓고 쫓기는 게임에 불과했다. 꽤 오래 고민을 해봐도 이 이야기는 도저히 쓸 말이 없는 에피소드였다. 그러던 어느날 TV에서 '엑스맨:데이즈오브퓨처패스트'를 보다가 뭔가 깨달았다. 저 이야기, 참 '사냥개'와 닮았다. 어쩌면 '사냥개'는 '블랙미러'가 강조한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에 가장 직접적인 비유일 수 있다. 

3.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사냥개는 최첨단 과학 테크놀러지를 탑재하고 있다. 폭탄 형체의 위치추적 디바이스나 카메라, 총을 장착하고 있고 4족보행 로봇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빨리 달릴 것이다. 로봇공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KAIST와 연을 맺고 있는 입장에서 보고 들은 몇 가지 로봇들로 이해해보자면 로봇은 이제 두 발로 걷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전히 정말 로봇처럼 걷지만 이는 굉장한 발전이다. 4족 보행 로봇이 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말 그대로 관절만 빨리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만큼 빨리 달리는 로봇이라면?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자동차만큼 빨리 달리는 4족 보행 로봇이 대체 왜 필요하지?"라고 물을 수 있다. 이는 사냥개는 실현 가능한 과학기술처럼 보이지만 '블랙미러'에 등장한 다른 과학기술처럼 미래의 기술이다. 

4. 과학의 집약체가 인간을 쫓는다. 물류창고에서 무언가 훔치려 했던 인간들은 사냥개의 공격을 받고 쫓기기 시작한다. 이들은 어느 집단의 소속이며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는 상세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맨 마지막에 그들이 훔치려 했던 것이 보여질 때서야 조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에서 인간들은 휴머니즘이 극대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막을 달리고 총도 쏘지만 그리 전투적이지도 않다. 흑백에 가려져 있지만 이들은 누가 봐도 사람이고 사람답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과학'에 쫓기는 '인간'으로 봐도 무방하다.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문장이 통째로 이야기가 된 셈이다. 

5. 이 이야기는 대단히 낯이 익다. 제임스 카메론의 1984년작 '터미네이터'도 이런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은 '터미네이터'의 진정한 매력을 오해하고 있다. '터미네이터'는 1과 2로 이어지는 타임 패러독스가 매력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에서 끝났다. 그렇다고 다 때려부수는 스케일도 매력이 아니다. 애시당초 '터미네이터' 1편은 뭐 때려부술 만큼 돈 많은 영화가 아니었다. '터미네이터'의 매력은 '겁나 센 녀석이 나를 죽이러 쫓아오는데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말도 안 통한다'는 점이다. 나는 오히려 '터미네이터'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한 영화가 데이빗 로버트 미첼의 '팔로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터미네이터'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한 이야기에 '블랙미러:사냥개'를 추가해도 될 것 같다. 

6. 결론: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다면 문명은 지금보다 수백년 뒤쳐졌을 것이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문명의 발달은 살육을 먹고 이어졌다. 인간은 개개인으로 싸우기도 하고 집단으로 싸우기도 한다. 어느 어른의 말인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인류 전체에 써도 무방하다. 망한 리메이크영화인 '인베이전'에서는 외계인이 인간을 잠식하고 갈등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서늘한지 보여준다. 감정을 가진 존재는 사랑하고 미워하다 갈등하고 싸운다. 찰스 자비에 교수와 에릭 랜셔도 그랬다. 그 오랜 싸움은 인간이기에 가능했고 거대한 위협(센티넬) 앞에 그들은 뭉쳤다. '엑스맨:데이즈오브퓨처패스트'는 그래서 인간성(엑스맨)과 과학(센티넬)의 대결이다. 이것이 '사냥개'와 '엑스맨'이 닮은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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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철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수업시간에 영화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당시 철학과 교수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은 단연 '매트릭스'였다. 장자의 사상부터 시작해서 장 보드리야르까지 이야기꺼리가 아주 풍부한 작품이었다. 교수들이 '매트릭스'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 캐릭터는 싸이퍼(조 판톨리아노)였다. 그는 참혹한 현실을 택하느니 조금 더 나은 매트릭스를 택하는 '변절자'다. 고통스런 현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의무일까? 행복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는 등을 돌려도 좋지 않을까? 여기에 더해 싸이퍼의 대사 중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 고기와 와인맛은 결국 매트릭스가 보낸 신호에 불과하다"는 식의 내용이 있다. 즐거움이나 쾌락은 결국 허상이다. 아무튼 철학과 교수들에게 싸이퍼는 중요한 연구소재였다. 

2. '블랙미러' 시즌3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매트릭스'와 같은 물음을 던진다. 망각으로 행복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현실에 고통받으며 살아갈 것인가. 이 이야기에는 군인들이 등장한다. 하는 일로 봐서는 UN군처럼 보이는데 민간군사기업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이들에게는 '마스크'라는 장치가 이식돼있다. 이 장치는 증강현실(AR)을 볼 수 있고 드론 카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마스크의 핵심은 AR에 있는 듯 하다. 여기서 AR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만약 시청자가 마스크의 기능 중 AR을 의식한다면 이야기 초반에 반전은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놀라운 것은 마스크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3. 현재의 AR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 수준의 캐릭터를 구현해내는 그래픽에 싱크도 그리 완벽하지 않다. 대용량 그래픽의 전송이 어렵고 이를 구현할 디바이스도 아직 개발되지 않아 AR과 실제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게다가 현재의 AR은 디바이스(글래스)를 장착하고 봐야 하는 수준이다. 그 무거운 걸 쓰고 있으면 누가 봐도 "아 이건 AR이다"라고 의식할 수 있다. 현재의 AR은 스마트폰 콘텐츠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수준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AR의 발전과 활용은 딱 지금까지가 적절한 것 같다. 이 에피소드에서 AR은 굉장히 발전된 수준이다. 신체에 디바이스를 이식했고 무거운 글래스 없이도 AR을 볼 수 있다. 다만 조금 현실적인 관객이라면 "저것도 AR일까?"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4. 이 이야기의 반전을 의식하게 된 지점은 군인들이 '벌레'라고 부르는 존재가 처음 등장했을때다 그들은 의외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손에 뭘 들고 싸우고 군인들을 보자 도망가기 바쁘다. 벌레들은 첫 등장부터 좀 무섭게 생겼을뿐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때부터 반전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 역시 '벌레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대신 이 이야기가 노린 지점은 "왜 기업이 군인들의 마스크에 그런 기능을 넣었냐"는 점이다. 마치 오대수에게 묻는 이우진처럼, 중요한 것은 "벌레는 무엇이냐?"가 아니라 "왜 벌레처럼 보이게 했냐?"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무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5. 마지막에 등장하는 설명을 요약하자면 군인들은 같은 인간을 상대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적을 사살하는데 주저함이 있다. 그러나 만약 적이 끔찍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사살하기 더 쉽다는 게 기업의 설명이다. 이들은 군인들에게 주어진 최후의 윤리의식을 기술로 제거해버린 것이다. SF영화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과학기술을 병사들에게 이식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대에 대해서는 이런 상상이 정말 많았다. 2013년 만들어진 네덜란드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군대'(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에서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죽은 병사들을 기술로 살려낸다. 아마도 나치에 대한 수많은 음모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퍼스트 어벤져'의 레드스컬(휴고 위빙) 정도는 아주 윤리적인 군인이었다고 이해하자. 차라리 '캡틴 아메리카'를 탄생시킨 약물로 군대를 만들고자 했던 미국 정부가 더 무시무시하다. 

6. 마지막 장면은 '매트릭스' 싸이퍼의 선택을 떠올린다. 깨달음으로 얻은 불행 대신 망각으로 얻은 행복을 선택한다. 다만 이야기는 마지막 눈물에서 다시 물음을 던진다. 망각으로 얻은 행복이 정말 행복일까? 이 이야기가 '매트릭스'를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VR과 현실에 대한 물음은 '매트릭스' 이후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 물음에는 답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이것은 '부먹'과 '찍먹'보다 논쟁적인 물음이다. 여기 어떤 사실이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불행해진다. 알게 되는 순간 돌이킬 수도 없다. 대신 단 한 번 사실을 지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행복한 가상을 인식받아 가상현실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매트릭스' 이후 오랜만에 이 물음 앞에 다시 섰다. 20년동안 과학이 그토록 눈부시게 발전해도 여전히 빨간약과 파란약 중 뭘 먹어야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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