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블로그 이미지
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 2,906,515Total hit
  • 220Today hit
  • 277Yesterday hit

'공포영화'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9.11.15
    '더 빌리지' 초간단 리뷰
  2. 2019.08.19
    '암전' 초간단 리뷰
  3. 2019.06.26
    '사탄의 인형' 초간단 리뷰
  4. 2019.03.11
    '더 위치' - 공포의 또 다른 얼굴
  5. 2018.06.06
    '유전' 초간단 리뷰
  6. 2018.04.09
    [약간 스포] '콰이어트 플레이스' 초간단 리뷰
  7. 2017.05.22
    [스포주의] '겟아웃' 초간단 리뷰
  8. 2015.07.03
    '손님' 초간단 리뷰 (1)
  9. 2013.07.14
    공포영화와 야동은 정말 위험한 존재인가 (2)
  10. 2011.06.20
    알렉상드르 아자 - 웰메이드 하드고어 아티스트

1.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름 중간관리자 위치에 올랐다. 별 대단한 직업은 아니지만 이 위치에 이르면서 '회의는 짧게, 보고는 간단히'는 내가 늘 고수한 원칙이다. 수습생활과 짬밥 안되던 시절을 거쳐오면서 "보고가 길어봤자 도움될 것 없고 회의가 길어봤자 피곤하다"는게 나름의 경험이었다. 예를 들어 지각을 하더라도 구구절절한 변명을 하느니 "늦잠 잤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욕 먹고 넘어가거나 사고를 쳤어도 별 대응을 하지 않는다. 나의 이런 원칙이 영화보기에도 적용이 되는지 확신할 순 없다. 나는 어떤 영화에 한해서는 구구절절 말 많은 것을 싫어한다. '더 빌리지'는 구구절절 말이 많은 영화다. 

2. '더 빌리지'의 러닝타임은 114분이다. 요즘 극장에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서는 '평균 수준'인 상영시간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올해 이보다 긴 영화들을 정말 많이 봤다. 유사한 공포영화였던 '미드소마'나 '서스페리아'도 2시간을 훌쩍 넘는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고 최근 본 '아이리시맨'은 3시간도 넘어가버린다. 특히 '미드소마'는 '몇 명의 젊은이들이 낯선 마을에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빌리지'와 닮은 구석도 있다. 그런 '미드소마'의 러닝타임은 170분이다. 그렇다면 "'더 빌리지'는 지나치게 길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미드소마'를 끌어와야 할 필요가 있다. 

3. '미드소마'를 만든 아리 에스터 감독은 전작 '유전'에서도 그랬지만 공포영화의 정통성을 벗어난다. 점프컷을 지양하고 익숙한 촬영이 아닌 꽤 색다른 방식을 취한다. '유전'의 경우 주인공 애니(토니 콜렛)가 작업하는 미니어쳐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카메라를 배치해 인물들을 작은 공간 안에 가둬버린다. 관객은 인물들의 바깥, 꽤 전지적인 시점에서 바라보기도 하지만 인물들에 빠져들수록 관객은 작고 폐쇄된 미니어쳐의 공간 안에 갇혀버린다. '미드소마'는 공포영화의 정통성은 '어둠'을 배제해버린다. 눈 부시게 밝은 낮에 일어나는 '기이한 일'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드소마'는 관객이 '낮의 공포'에 갇힐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준다. 그것은 전에 없었던 공포이며 느리지만 서서히 살갗을 파고드는 공포다. 

4. 반면 '더 빌리지'의 공포는 아주 전형적이다. 낯선 마을에 갇히게 된 젊은이들은 '밤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되고 도망치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마을과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다(나름 극적 반전이다). 마을로 향하기 전 인물들이 대화를 하고 주인공 야스민(야스민 디마씨)이 꿈을 꾸는 장면 등은 결말에 향하면 그 이유가 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대세와 의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꽤 지루한 전반부를 만드는 역할도 했다. 다 보고 나서는 "아 그랬구나"라고 이해하게 되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인터스텔라'에서 쿠퍼(매튜 매커너히)와 브랜트(앤 헤서웨이)를 기다리는 로밀리 박사(데이빗 기아시)처럼 외롭고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연구할 블랙홀도 없다). 

5. '더 빌리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의도도 명확하다. 그렇다면 이야기보다는 이미지로 의도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했다. '더 빌리지'의 이미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낯선 튀니지의 배경과 그것을 담아내는 방식도 신선하고, 심지어 세련되기까지 했다. 그 세련된 그림 안에서 인물들은 이유도 모르게 화가 나있고 의미도 없는 대화를 떠들어댄다. 솔직히 이미지가 아깝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6. 결론: '더 빌리지'는 마치 과도기적 한국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썩 괜찮은 그림을 만들었지만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렸다. 게다가 신선한 설정을 관객에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는지 구구절절 말도 많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괜찮은 호러소설을 읽었다는 인상 정도는 받게 되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다.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미지의 공포감도 많이 떨어졌다. 공포영화의 기원은 독일 초현실주의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에서 비롯됐다. 이들 영화는 기이하고 엽기적인 이미지로 다른 세계를 구현해내고 이미지로 관객을 움직이는데 있다. 그 대목에서 '더 빌리지'는 공포영화를 아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세련되고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야기로 그것을 파묻어버린다. 때문에 이미지마저 강렬함이 죽어버리는 '참사'를 낳았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1. 오래전 한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 지인이 "'령'은 꽤 괜찮은 공포영화가 아니냐"라고 말했다. 영화 '령'은 김하늘, 류진, 남상미가 주연한 영화로 전국 56만명의 관객이 든 2004년작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썩 괜찮은 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내 대답은 "'령'이 괜찮은게 아니라 그 시기에 공포영화들이 죄다 구려서 상대적으로 나아보인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떤 영화들이 그런 '상대적 띵작'의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암전'도 그런 영화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잘 만든 영화일 수 있고 상대적으로 못 만든 영화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장단점이 정말 확실하다. 이것은 산지직송 신선한 채소와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서 만든 요리와 같은 영화다. 이제 신선한 채소와 음식물 쓰레기를 나눠보자. 

2. 영화에서 '제4의 벽'을 허무는 일은 꽤 재미있다. 이것은 만드는 사람도 재미있는 일이고 보는 사람도 재미있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데드풀'이 하는 짓들을 말한다. 공포영화에서도 이런 시도는 종종 일어난다. 그 영화들을 우리는 '파운드 푸티지'라고 부른다. 1999년 '블레어 윗치' 이후 20년을 이어온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는 분명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관객들이 적응하기 시작했고 영화 역시 "관객을 속이자"라는 사명을 져버렸다. 그 와중에 '암전'의 시도는 꽤 신선해보였다. 아주 노골적으로 '제4의 벽'을 무너뜨리겠다며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를 넘실거린다. '암전'에서 그 널뛰기를 보는 재미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3.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대체 공포영화 얼마나 보신거냐"라고 물어보고 싶다. 왜냐하면 '암전'의 음식물 쓰레기는 바로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기괴해보겠다고 묘사한 것들은 전형적인 표현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라기 보다는 저 옛날 '토요 미스테리 극장'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근데 그거보다 안 무섭다). 특히 귀신이라고 등장하는 녀석은 '신세계'에서 정청이 쓰고 나온 명품 선글라스처럼 시커먼게 하나도 안 보인다. 놀래키려고 등장해도 한 3초 뒤에 "귀신이었어?"라며 정신차리게 된다. 화재로 죽은 귀신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모양인데 그랬다면 목을 꺾어서 가야코처럼 걷던지 천장에 매달려서 거꾸로 걸어오기라도 하던지 동작으로 겁을 줬어야 했다. 귀신이 시커먼데 활발하지도 않다. 

4. 문제의 영화 속 영화 '암전'에서는 3명의 스탭들이 죽는다. 감독 나름대로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겠다고 작정한 모양인데 솔직히 하품만 나온다.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피와 비명이 난무해야 하는 시점인데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시시하다. 나름 귀신이고 공간조작도 하는 능력이 있다면 좀 더 창의적으로 죽여도 괜찮았다. 예를 들어 '이벤트 호라이즌'에서 번개같이 지나가는 지옥의 풍경을 늘여서 담아낸다는 각오로 찍어도 좋았을 것이다. 게다가 3명은 숫자가 좀 적다. 2명 정도 더 추가했더라면 풍성한 그림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름 '저주받은 영화'로 등장한 작품의 장면인데 정말로 부천에 출품된 대학교 졸작보다 '졸작'이다. 

5. 부족한 표현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결국에는 주인공의 긴박한 상황과 귀신의 얼굴을 오버랩하는 레트로풍 연출이 등장한다. MTV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뮤직비디오도 이거보다는 세련됐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에 등장한 군산 국도극장은 정말 끝내주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암전'의 소재와 이야기가 클라이막스를 맞기에는 더없이 완벽한 곳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몇 개의 연출도 꽤 훌륭했다('제4의 벽'을 무너뜨리는 연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레트로풍 연출을 한다는 점은 아이디어가 거기까지라는 의미다. ...이 아이디어, 대단히 아깝다. 

6. 영화가 이 지경이 된 몇 가지 원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이 영화는 돈이 없다. 가난하게 만든 티가 팍팍 난다. 그러나 이 가난은 결코 변명이 되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로 시작한 거 더 고민만 했어도 기발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아이디어로 밀어붙였다면 어설픈 표현따위는 자제해도 충분했다. 빈틈은 뭘로 채워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마이너스런 환경에서 메이저의 영화를 지향하다 보니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다. 투자자가 뭘 강요한 것인지 감독의 역량이 여기까지였는지 알 수는 없다. ...물어볼 생각도 없다. 

7. 결론: 나는 "제 아무리 엉망진창인 영화라도 건질만한 것 하나쯤은 있다"는 말을 믿는다. '암전'은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다. 엉망진창인데도 건질 것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김진원 감독이 혹평에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그는 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다. 그것을 세밀하게 다듬을 수 있다면 아주 괜찮은 공포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1할타자만 즐비한 타선에서 2할 중반대 타자를 보는 기분과 같다. 


추신) 서예지가 원래 미인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 영화에서처럼 스타일링 해놓으니 정말 예쁘다. '암전'이 가진 최고의 미덕은 서예지의 미모와 스타일링이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1. '착시'라는 말을 이럴 때 써도 되는건지 잘 모르겠다. 우선 그 사전적 의미는 '시각적인 착각 현상'을 말한다. 내가 '착시'라는 말을 써야 할 지 고민이 되는 상황은 리메이크 영화와 원작영화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인랑'이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원작만 못하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외면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오키우라 히로유키의 애니메이션 '인랑'은 그렇게 상업성을 갖춘 영화는 아니었다. (또 김지운 감독 영화의 예를 들어 송구스럽지만) '장화, 홍련'의 헐리우드 리메이크 영화 '안나와 알렉스'를 봤을때도 "'장화, 홍련'을 몰랐다면 이 영화가 조금 더 재밌었을까"라는 의심을 했다. 어떤 영화(소설, 만화 등)의 리메이크 영화가 만들어지고 내가 그 원작을 알고 있다면 나는 당연히 원작과 리메이크작을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원작이 더 나았어"라는 착각을 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2. '사탄의 인형'은 슈퍼스타 '처키'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은 영화다. 처키(마크 해밀)의 매력을 우선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원작에서 처키는 인형에 살인범의 영혼이 깃들어 만들어졌다. 어린 아이 앤디를 구슬리면서 가까워지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인형이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꽤 엽기적인 모습이 매력인 '유니크한 호러 빌런'이다. 그 매력으로 인기를 얻은 탓에 '처키 시리즈'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고 이 녀석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으며 호사를 누렸다. 그런 '사탄의 인형'이 다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호러영화 팬들이 기대한 것은 귀여운 얼굴로 살인을 저지르는 무자비한 캐릭터였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조건은 "어떻게 인형을 움직이는, 아주 나쁜 녀석으로 만드냐"는 것이었다. 

3. 미국에서는 아마존 에코와 구글 홈 등 인공지능(AI)스피커가 등장했고 한국에서는 LCD모니터에 얼굴까지 붙인 로봇형 AI스피커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인형을 움직이게 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굳이 '연쇄살인범의 영혼'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AI가 좀 더 나쁜 생각을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지점은 시대에 걸맞는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래된 호러팬 입장에서는 기운이 빠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래전 '사탄의 인형' 오프닝의 오컬트 감성 풀풀 풍기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사탄의 인형'은 오컬트 소재를 아주 싸구려스럽게 쓴 영화 중 하나였다. '이블데드'나 '매드니스'같은 20세기 오컬트 호러 걸작들도 따지고 보면 그리 고급스런 영화는 아니었다(그러나 재미있다).

4. 리메이크 '사탄의 인형'은 오컬트를 잃은 대신 새로운 것 하나를 취했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한 스마트홈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신선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주인공 앤디(가브리엘 베이트먼)를 위협한다. 예를 들어 앤디의 말을 녹음한다거나 주변 기기를 활용해 압박하는 식으로, 전에 없던 '스토킹 기능'을 탑재한 것이다. 이는 초연결 사회의 익숙한 공포지만 20세기 호러스타 '처키'가 그걸 하고 있으니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만 여기에 대해 "과학적으로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자면 글을 새로 써야 할 정도다(겸사겸사 헐리우드 영화 속 ICT 기기의 불가능한 장면도 정리해야 할 듯 하다). 

5. 다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하나만 언급하자면 대체 왜 AI칩에 '폭력적인 기능'과 '언어 필터링 기능' 온/오프 버튼이 있냐는 점이다. 이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런데 군사용 AI칩이어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이 대목이 왜 어린이 인형용 AI칩에서 온/오프가 가능하냐는 것이다(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스파이더맨 AI칩인가). 이는 애시당초 칩의 개발단계에서 잠궈야 할 정도로 쓸모없는 버튼인데 심지어 베트남 하청공장의 조립단계에서, 하청노동자가 칩을 조작한다. 전세계 어떤 ICT기업도 저런 식으로 완제품 생산을 하진 않을 것이다(미국 기업이 중국의 중소형 기업에 OEM 방식으로 의뢰해 제작한 것이라면 가능할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저 정도 인기를 누리지 못할 싸구려 제품인 셈이다. 게다가 저 정도 인기있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기술이 있는 기업이 그렇게 허름하지도 않을 것이다). 

6. 그리고 이 영화가 베트남과 동남아에 개봉할 경우 일어날 참사는... 생각하기도 싫은 수준이다.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영화의 오프닝이 불쾌했는데 인접한 베트남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KFC에 불을 질러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아시아 신흥국가인 베트남은 풍부한 젊은 층 인구를 바탕으로 ICT 산업과 문화산업에 수요가 많다. 우리나라 기업과 중국 기업들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큰 시장으로 보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마치 베트남전쟁 당시에 머무른 듯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다른 헐리우드 영화도 동남아시아에 대해 이런 시선을 가지고 있을까 두려운 수준이었다. 

7. 여기에 '사탄의 인형'과 '애나벨'에게 제기하는 공통적인 단점.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인형이라고 얼굴을 그리 무섭게 해놓으면 몰입감이 꽤 떨어진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실제 애나벨 인형은 꽤 귀엽게 생겼다. 그리고 원조 '사탄의 인형' 속 처키도 웃고 있으면 꽤 귀엽다. 나는 왜 이런 거 만드는 사람들이 '갭모에'를 이해 못하는지 모르겠다. 귀엽게 웃다가 돌변해야 무서움이 더욱 커지는 법이다. 시작부터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기 쉽다. 심지어 처키는 귀엽지도 않은데 못 생기기까지 했다. 영화 시작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드는 생각은 "대체 저딴 걸 누가 사"라는 것이었다. 

8. 결론: 20세기 호러스타 처키를 이용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포를 보여주겠다는 시도는 좋았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본다면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야"라며 반박하겠지만 이용자들은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공포의 지점에 충분히 도달해있다. 다만 거기로 향하면서 어이없는 부분도 있고 '엄청난 논란'이 될 지점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이 영화는 장점이 많은가, 단점이 많은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글을 쓰기 전에는 "이 영화는 엄청나게 큰 단점이 있어"였다. 글을 다 쓰고 나니 "이 영화는 엄청나게 큰 장점 하나만 있고 나머지는 죄다 단점이야"로 정리된다. 원작보다 조금 더 매력적인 그 장점 때문에 영화 잘 봤다. 


추신)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처키 너무 못 생겼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인간의 눈과 뇌에는 '편집' 기능이 없다. 이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영화는 편집을 한다. 화면의 전환으로 만들어진 리듬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해 사건에 더 깊게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에서 편집은 영화 속 인물의 현재 심경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관객을 영화 속 인물과 동일시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편집은 현장 연출만큼 중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포영화들은 빠른 템포로 만들어진다. 이는 관객에게 '긴장'이라는 감각을 심어주기 위해 빠른 리듬감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지게 하기 위해서다. 편집으로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알프레드 히치콕부터 강조됐다. 서스펜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빠른 편집과 반복되는 음악은 관객에게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준다(물론 이것이 해소된 다음에 얻게 될 카타르시스를 노린 계산이다). 

그런데 최근 몇 편의 공포영화들은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 앞에 반기를 드는 느낌이다. 이들은 편집과 음악의 리듬으로 공포를 주는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방식의 공포를 선사한다. 이 공포는 느리고 정적이다. 이 리듬감은 때로 지루하다는 인상도 줄 수 있다. 그런데 느린 공포의 감각이야말로 인간의 시청각에 가장 근접한 상태다. 앞서 말한대로 인간의 눈에는 편집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느린 리듬의 공포영화들은 휘발성이 강하고 말초적인 공포가 아니라 근원적이고 오래 남는다. 이는 '공포'의 실체에 도달하면서 그렇게 얻어진 감각을 뇌리에 깊게 새겨둔다는 의미다. 느린 공포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다. 그저 이야기를 쫓아가는데 충실한 이 영화는 소설책을 읽듯이 따라가다가 덜컥 공포를 안겨준다. 이야기를 다 읽고 봐야 무서운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포는 대단히 깊게 뇌리에 박힌다. 여기서 감독은 영화에 연출적 기교를 시도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공포가 더 깊게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중 꽤 알기 쉬운 것은 데이빗 로버트 미첼의 '팔로우'다 저 멀리서 기괴한 존재가 자신을 향해 걸어온다. 영화는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관객들은 지금쯤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시선은 도망치지 않는다. 관객은 그때쯤 조바심이 생긴다. 마치 관객을 결박한 듯한 이 긴장감은 느린 가운데 생기고 느려야지 더 배가된다. 아마도 '팔로우'는 내가 본 중 '가장 느린 공포영화'가 될 것이다. 가장 최근작인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 역시 빠른 템포를 보여주진 않는다. '유전'은 '팔로우'와 마찬가지로 멍하게 바라보는 풍경의 한 지점에서 벌어지는 낯선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공포를 배가시키는 대신 때에 따라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도 한다. 이는 영화 자체가 미니어쳐를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이 인물들을 미니어쳐화 시키면서 관객들 역시 미니어처에 갇힌 듯한 공포를 준다. 영화가 눈에 근접한 연출을 하면서 관객을 영화 안으로 밀어넣은 셈이다. 


개봉한지 꽤 지났지만 이제서야 본 영화 로버트 에거스의 '더 위치'는 이들 '느린 공포영화'와 결을 같이 한다. 흐릿하고 어두운 풍경 가운데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는 광경은 이상한 불안감을 준다. 이 영화는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족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여느 공포영화에서 본 익숙한 '가족'의 유대감은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다. 귀여운 쌍둥이 동생들은 불쾌한 꼬마들로 묘사되고 엄마(케이트 딕키)는 히스테릭한 광신도, 아빠(랄프 이네슨)는 무능한 맹수처럼 보인다. 꽤 믿을만한 장남 케일럽(하비 스크림쇼)도 누나 토마신(안야 테일러 조이)에게 음흉한 시선을 보낸다. 관객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영화 전반부를 차지한 이 가족의 균열이다. 이 균열은 사무엘이 실종되면서 극대화된다. 이것은 유일하게 균열에 기인하지 않는 구성원인 사무엘을 제거한 마녀가 균열의 틈새로 파고들기 위한 수작이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체험하도록 유도한 것은 이 가족의 '불안'이다. 이것은 서스펜스와 다른 의미다. 예를 들어 '서스펜스'는 똥이 마려운 가운데 화장실을 찾아 뛰어가는 순간이고 '불안'은 똥이 마려운데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불안은 별 다른 편집을 요구하지 않는다. 물끄러미 바라만 봐도 불안한 것은 불안하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어도 똥이 마려운 긴장감은 변하지 않는다. '더 위치'는 가족의 불안으로 관객을 붙잡아두다가 기어이 붕괴시키면서 공포를 준다. 사실 이 대목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에게 일부 빚을 지고 있다. '싸이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샤워실 살인장면, 이 장면이 무서운 이유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 침입을 당하기 때문이다. 공포는 가장 사적인 것이 침입을 당할 때 더욱 커진다. 가족은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최소한의 단위다. 그리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긴밀한 공동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만 살펴봐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는데 가족은 끈끈한 울타리 역할을 한다. 그런데 '더 위치'는 그 단위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더 위치'는 편집의 기교를 부리진 않지만 조명과 음악에서는 굉장한 기교를 부린다. 음악은 길게 늘어지고 현악기의 선율을 불편하게 상승시켜 감정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조명은 익숙한 것조차 낯설어 보이게 한다. 특히 조명을 쓰는 방법은 가히 예술적이다. 토마신이 마녀의 연회장에 도착해 하늘로 상승하는 장면에서 조명은 아래에서 위로 향한다. 이는 익숙한 공포효과를 넘어서 극단적인 대비 효과도 준다. 이를 통해 얼굴의 윤곽은 기이한 형태를 띈다. 흡사 그것은 짐승의 두개골과 닮았다. 케일럽이 마녀와 처음 마주한 장면에서도 수직으로 떨어지는 조명은 눈동자를 감추며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밖에도 많은 장면에서 자연광을 주로 쓰고 조명의 위치는 입체적이지 않다. 이는 빛이 귀한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어둠을 강조해 분위기를 위축시키려는 점도 있다. 그리고 영화가 뒤로 갈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마치 마녀가 잠식한 가족을 보여주려는 모양새다. 

'더 위치'는 서스펜스에 집중하지 않는다. 촬영과 조명, 음악은 단조로운 가운데 익숙하지 않은 균열을 내면서 불안을 조장한다. 그리고 불안이 극대화되는 지점에서 관객이 느끼는 공포도 커지기 마련이다. '더 위치'는 히치콕의 '서스펜스 기술'이 일상화된 시점에서 그보다 더 진화되고 근원적인 공포를 주는데 집중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몇 개의 공포영화들에서 드러난 경향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말할 수 없다. 사람에 따라 금방 휘발되는 공포를 선호할 수 있고 더 근원적이고 깊게 새겨지는 공포를 원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공포영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포영화는 수많은 장르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아방가르드와 독일 초현실주의에서 시작해 100년 가까이 진화하며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놀았다. 어쩌면 '더 위치'는 공포영화의 진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을 것이다. 먼 풍경이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은 만유인력의 법칙 못지 않은 발견이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0. 꽤 오래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래리 페슨덴이라는 사람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심야상영을 '래리 페슨덴 특별전'으로 꾸밀만큼 영화제에서 비중있게 다룬 감독이었다. 우선 그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감독과 제작자로써 이력도 있지만 주로 배우로 많이 활동을 한다. 알다가도 모를 공포영화들에 주로 얼굴을 내미는 사람이고, 얼굴 자체도 괴팍한 노인네처럼 생겼다(궁금하면 검색해보시길). 아무튼 전주국제영화제는 당시 래리 페슨덴에 대해 '격이 다른 공포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은 "이게 뭐야"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공포영화와 래리 페슨덴의 영화는 확실히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또 몇 년 전, 씨네마떼끄1/24에서 알바 하던 시절아는 형의 추천으로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를 보게 됐다. 역시 '끝내주는 공포영화'라는 추천사를 들은 작품이었다. 나는 영화를 다 본 직후 역시 "이게 뭐야"라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큐어'의 경우에는 "영화를 볼 땐 안 무섭다가 그날 밤에 자려고 이불덮고 누우면 그때부터 무섭다"라는 추천사를 몸소 체험한 영화긴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큐어' 역시 내가 아는 공포영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꽤 최근에는 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데이빗 로버트 미첼의 '팔로우'(영화제 상영명 '죽을때까지')를 봤다. 느리고 정적인 리듬의 이 영화는 역시 내가 알던 공포영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팔로우'의 공포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 관객이 미처 직감하지 못한 공포를 붙잡고 집요하게 늘어진다. 그 끈기와 뚝심에는 박수를 보내기 충분했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공포'라는 것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몇 번의 깜짝쇼라던지, 섯다판에서 3광을 들고 뒷패를 쪼는 심정같은 단순하고 말초적인 즐거움 대신 더 깊은 곳의 공포를 탐구하는 일은 난해하고 흥미롭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은 익숙한 '공포'와는 다른 어떤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1. '유전'의 첫 장면은 대단히 흥미롭다. 애니(토니 콜렛)의 작업실, 미너어쳐 작가인 그녀의 작업실에는 여러 미니어처가 진열돼있다. 이것은 주로 가족과의 기억을 재현한 작품들이다. 그 중 한 미니어처에 집중한다. 이 미니어처는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의 방이다. 이야기는 미니어처화 된 피터의 방에서 시작한다. 이 첫 장면은 일종의 입구와 같다. 마치 "이 모든 이야기는 미니어처 안에서 벌어질거야"라는 걸 보여주는 듯 하다. 

2.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집이 배경이 될 때 대부분의 장면을 미니어처처럼 잡아낸다. 예를 들어 인물을 풀샷 정도로 잡아내고 횡방향으로 패닝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미니어쳐를 디테일하게 찍어내는 방법은 풀샷이 적당하다. 그리고 위아래는 세트의 바깥인 만큼 패닝으로 세트를 훑는 것이 배경을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게다가 제멋대로 오가는 낮과 밤도 인상적이다. 낮에서 밤으로 자연스럽게 시간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화투패 뒤집듯 순식간에 낮이 되고 밤이 된다. 마치 누군가 전등을 껐다 켜는 느낌이다(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애니와 스티브(가브리엘 번)가 사는 집은 외딴 숲속에 있다. 도시에서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영화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밀폐된 공간처럼 이들의 집은 꽉 막혀있다. 

3. 영화의 많은 부분이 애니의 가족들을 미니어쳐 안에 가둬두는 효과를 준다. 그렇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 미니어처를 만드는 애니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녀는 마치 전지적인 신(神)처럼 설계하고 창조한다. 미니어처 안의 모든 디테일은 오직 그녀의 의도대로 이뤄진다. 그렇다면 이 가족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도 누군가가 만들어낸 미니어처가 된다. 그 '누군가'는 누구이며, 어떤 의도로 이 가족을 가둬놓고 마음대로 조작한 것일까?

4.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것에 대해 여러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꽤 흥미로운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은 누군가의 이름이 뜨면 거기서 알파벳 하나의 색깔이 변하면서 아래로 향한다. 그리고 그 알파벳은 다른 사람의 이름에 섞이게 된다. 그리고 그 이름에서 알파벳 하나가 내려와 누군가의 이름에 들어간다. 이는 영화의 제목인 '유전', 대를 이어져 내려온 어떤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이다. 영화에 등장한 '저주'는 그들의 시대에서 훨씬 이전부터 내려온 것임을 보여준다. 

5. '유전자'는 변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연예인의 자녀는 어릴때부터 예쁘고 잘 생겼다. 예쁘고 잘 생긴 연예인이 있다면 그들의 부모 역시 미남미녀다. '팔로우'에서 주인공을 집요하게 쫓는 '그것들'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유전자는 집요하고 끈질기다. 그것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 '유전'은 바로 그 '유전자'에 저주가 씌였다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끔찍한 저주를 받지 않더라도 유전자의 존재는 우리를 미니어처 안에 가둬두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존재라는 나름의 '결론'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6. 나는 '인생 가장 무서웠던 영화'를 묻는 질문에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레퀴엠'이라고 답한다. 물론 '레퀴엠'은 공포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레퀴엠'은 비극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게 하는 영화다. 다시 말해 공포는 죽음이나 상실 등 비극을 피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공포영화나 소설은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을 찾아내 거기서 공포를 주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관객은 '데스티네이션'이라는 즐거운 공포영화를 만났고 '팔로우'라는 끈질긴 영화도 만났다. 그리고 두려움이 형상화돼서 나타난 페니와이즈의 영화 '그것'도 만났다. '유전'은 이들 영화들이 시도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7. '유전'은 싸구려 깜짝쇼에 집착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럴 필요도 없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공포'를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지 관객을 놀래키는데는 크게 관심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놀라게 할 때가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자신의 의도에 매우 충실하게 만들어져있다. 이야기는 서서히 심연으로 향해 간다. 그러다 깊은 곳 어딘가에 머물렀을때 주위는 시커먼 어둠으로 둘러싸여있고 빠져나올 수 없는 미니어처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극은 그렇게 유전자가 돼 세포 깊은 곳에 새겨져있다. 

8. 결론: 그러니깐 '유전'도 '큐어'나 '팔로우', 래리 페슨덴의 영화들처럼 '차원이 다른 공포영화'라고 불러야 할 지 갈등이 생기게 된다. '유전'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이야기의 실체를 감춰둔 미끼와 같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공포의 실체를 마주하고 싶다면 절대 미끼를 물어선 안된다. 공포의 실체는 미니어처를 바라보는 눈 뒷편에 있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1. 최근 몇년간 공포영화라는 것은 '아이디어'의 승부였다. "얼마나 무섭냐"도 중요한 화두였지만 공포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기발하냐"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 덕분에 최근 일련의 미국 공포영화들은 '기발함'을 최대 화두로 꼽았다. 여담이지만 이런 경향은 LG전자 스마트폰이 한창 헛발질하던 시절을 보는 것 같다. 이들은 새로운 제품을 내놓으면서 연구원들을 쥐어짜서 '혁신'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LG G5였고, 모두가 알다시피 이 스마트폰은 '대실패'했다. 

2. 모든 공포영화가 혁신을 강조하던 이 시기에 존 크라신스키 감독(겸 주연)의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기본에 대단히 충실한 영화다. 물론 이 영화라고 아이디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조용해야 한다"는 발상은 이 영화가 가진 '거의 유일한' 혁신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놀랍도록 기본기에 충실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의 기본기는 무엇일까? 공포영화의 존재목적. 그것은 '공포'를 주는 것. 관객을 무섭게 하는 것이다. 

3. 최근에 기억에 남는 공포영화라면 역시 안드레스 무시에티의 '그것'이 있을 것이다. '공포' 그 자체에 무엇보다 충실한 이 영화는 탐구하듯 공포에 집착하며 관객을 그 한 가운데로 몰아넣는다. 이런 공포는 잔상이 오래 남는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를 보면서도 겪은 일이지만 영화가 끝나고 집에 가서 잠자리 덮고 누워도 공포가 남아서 관객(이었던 자)을 괴롭힌다. '그것'이나 '큐어'에 비하면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공포 그 자체에 매달리지만 맥락이 다르다.

4.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공포는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굉장히 무서운 영화지만 보고 나서 극장을 나서면 공포는 깨끗하게 휘발돼 사라져버린다. 그러니깐 "영화를 보는 동안은 세상 다 잊고 공포에 벌벌 떨어라"고 작정한 듯 보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익숙한 장치 안에 온갖 공포를 깔아놓았다. 사실 '소리내면 죽는다'는 이 영화의 발상도 공포를 주기 위한 장치로써 기능한다. 그리고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가기 위해서도 침묵은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상영관 내에서도 느꼈지만 그 분위기에서는 영화를 보는 일 외에 섣불리 뭔가를 할 수가 없었다(물론 대단히 뻔뻔한 사람이라면 예외겠지만).

5. 이 영화가 공포를 주는 방식은 꽤 고전적이고 대담하다. 호러영화를 자주 본 관객이라면 익숙할만한 상황을 깔아놓는다. 예를 들어 계단에 튀어나온 못이다. 그러면 관객은 누군가 저 못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영화 속 상황은 '소리를 내선 안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맨발에 못을 밟는다면? 그 다음 상황은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만약 최근 나온 공포영화의 방식이라면 누군가 못을 피하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그 소리때문에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연출은 꽤 고전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 고전이 굉장한 효과를 발휘한다. 

6. 영화가 대체로 이런 식이다. 패를 다 까고 상황을 전개시키지만 그것이 익숙해서 싫증나는게 아니라 익숙하기 때문에 언제 일어날지 몰라 조마조마해진다. 이 조마조마함은 영화의 끝까지 이어진다. 이런 영화는 '공포 그 자체'를 탐구하는 깊이있는 호러영화들과 맥락이 다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다. 올라가던 열차가 언젠가 떨어질 것을 알지만 그게 언제인지 몰라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그리고 롤러코스터를 다 타고 나면 진이 빠지거나 몹시 신나지만 금새 잊어버린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설계가 잘 된 롤러코스터다.

7.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것'이나 '큐어'에 비해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저평가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전혀 그런 의도는 없다. 오히려 의도와 목적에 충실한 이런 영화가 너무 반갑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적어도 공포영화를 무섭기 위해 보러 간 관객이라면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최고의 만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것 외에는 달리 생각할 것이 없다. 기발한 것을 찾아서 머리 굴릴 일도 없고 익숙한 귀신과 또 만날 필요도 없다. 그냥 무섭기만 하면 된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말이다.


추신1)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점 하나: 영화 속 에블린(에밀리 블런트)은 재앙 발생 479일 후에 임신한 상태(출산임박)다. 즉 재앙이 진행되는 중(조용히 해야 하는 상황)에 아이를 가진 것이다. 나중에 영화에서도 드러나지만 에블린은 아이를 낳은 후에야 방음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이 아이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 소리를? 대체? 어떻게 막은거지?

추신2) 영화를 본 후 새삼 생각나는 사람이 '클로버필드 10번지'의 하워드(존 굿맨)다. 그분의 벙커가 새삼 그리운 영화였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1. 영화를 볼 때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라는 생각이 있어서 평론가의 글도 읽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영화에 대한 모든 정보를 완전 차단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미국에서 대박을 쳤다는 조던 필레의 '겟아웃'도 어느 정도의 사전정보를 접하게 됐다. '굉장한 걸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크게 마음을 움직이진 않았다. 영화는 결국 내가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일이다. 

2. '겟아웃'의 시작은 나름 '시선 사로잡기'를 한다. 공포영화나 액션, SF 등 볼거리가 중요한 영화는 오프닝부터 관객의 시선을 훅 잡아 당기는게 중요하다. 공개 코미디쇼를 시작하기 전 '바람잡이'와 같은 것이며 여느 콘서트의 오프닝 게스트와 같다. 영화 시작 전 관객을 주목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오프닝이 등장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의 오프닝은 꽤 가볍다. 호러영화에 잔뼈가 굵은 관객이라면 "오프닝이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오프닝은 이후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즉,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호러영화 팬들에게는 "약하다"라고 인식될 수 있다. 

3. 이 영화가 얼마나 약하냐면 이야기의 대부분이 '추측 가능한 것들'이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로즈(앨리슨 윌리엄스)는 헤딩으로 노크를 할 때(야만적인 행위)부터 '위험한 여자'로 보인다. 로건 킹(키스 스탠필드)의 눈에 플래시가 터질 때 "다른 인격이 돌아왔다"는게 인식이 가능하다(물론 이들의 실질적인 '만행'은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친절한 아미티지 가족은 뒤에 묘한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마치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것처럼 관객을 설레게 만들어놨지만 실상은 꽤 시시한 편이다. '겟아웃'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영화'인 셈이다. 

4. 하지만 '겟아웃'은 가볍다고 무시 당할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가볍지만 강력하다. 이 영화가 비밀에 접근하는 방식은 굉장히 느리고 침착하다. 서서히 양파를 벗기듯 한겹 한겹 벗겨내며 비밀에 다가간다. 그렇다 보니 영화에는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다. 영화 속 모든 장면은 '떡밥'이 돼 후반부의 '비밀'과 연관성을 갖는다. 모든 비밀이 밝혀졌을때 영화의 모든 장면(징조)들이 고리처럼 이어진다. 사슴을 치고 그 꿈을 꾼 것은 크리스(다니엘 칼루야)의 앞날을 예견한 복선과 같다. 백인경찰의 인종차별 역시 앞으로 사건에 대한 요약, 혹은 마을의 분위기를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아미티지 가족이 모두 '의료인'인 것 역시 역할을 한다. 확실히 버릴 장면이 없다. 그리고 침착하고 정성스럽다. 

5. 여기에 관객을 겁주는 방식이 매우 새롭다. 사실 겁을 줄만한 장면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관객을 놀래킨다. 조지나(베티 가브리엘)의 표정이나 동작, 파티에 참석한 자들의 기이한 행동, 최면에 대한 묘사 등. 관객을 겁줘야 할 때는 최대한 분위기를 이끌고 간다. 이것은 이전의 공포영화와는 꽤 색다른 방식이다. 일단 보기 불편한, 혐오스런 것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차라리 이 영화에서 혐오스러운 것은 아미티지 일가의 발상과 거기에 담긴 생각이다. 사실 공포는 거기에 있다. 

6. 앞서 이 영화를 '가벼운 영화'라고 설명했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에 발 붙이고 사는 동양인인 나의 생각이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국가에 사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인종차별 이슈를 접하는 것이 익숙한 나라의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는 의외로 가깝게 다가올 수 있다. 우리의 이야기로 가정하면 장기밀매와 같은 '도시괴담' 정도가 될 것이다. 요약해서 가정해보자. '흑인이 사라지는 마을'이 있다고 하면 흑인들 심정은 어떨까? 그리고 그런 끔찍한 일이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다면 이웃마을 사람들은 어떨까? 한국에서 이 이야기가 가깝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문화의 차이'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내가 미국인이 돼 본 적은 없지만, 미국인이라면 이 이야기 상당히 무서울 것 같다.

7. 영화를 다 보고, 이대로라면 이 이야기의 속편을 만들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와 친구 로드(릴 렐 호워리)는 마을에서 빠져나왔지만 아는 사람 에드워드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크리스와 로드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시 마을로 간다. 그리고 마을에서는 아미티지 일가를 몰살시킨 크리스를 잡기 위해 준비를 한다. 그렇게 양 측이 싸우는 이야기. ...조던 필레가 가볍게 무시할 것 같다.

8. 결론: 이 영화가 미국에서 호평을 받은 이유는 '미국인이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조던 필레의 얼굴이 낯이 익어 찾아보니 코미디쇼에 출연한 배우 출신이다. 미국식 코미디를 하던 사람이니 미국식 공포도 만들어내는 모양이다. 애석하게도 한국인인 나에게는 그리 무섭거나 피부로 다가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탁월하고 정성스런 만듦새는 어느 나라의 영화인이건 본 받을만하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1. "호러는 분위기"라는 진리를 지키는 몇 안되는 국산호러다. 많은 국산호러영화 감독들이 "호러는 분위기"라는 진리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호러는 분위기!"


2. 게다가 "공포는 비극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도 잘 따르고 있다. 아주 비극적인 호러영화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한, 모두의 비극이다.


3. 그 와중에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잘 만든 신파극이 초장에 웃기듯 초반에 웃기는 호러도 나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4. 단, 피의 복수가 벌어지는 장면이 생각보다 심심하다. 예상하건대 더 찍어놓고도 등급이나 다른 사정으로 인해 수위를 대폭 낮춘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 이렇게 잘 잡아놓고 이 중요한 장면을 섭섭하게 찍을리가 없다. 어서 디렉터스컷을 내놓길 바란다. 디렉터스컷 안 내놓으면 손님이 찾아갈 것이다.


5. 류승룡이나 이성민, 천우희 등 명불허전 배우들의 듬직한 연기가 영화의 수준을 한껏 높여준다. 그 가운데 이준 역시 거물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배우들은 흠 잡을데가 없다.


6. 사실 이 영화에서 기대한 배우는 역시 '이민지'다. 포스터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으나 그녀는 대사 한마디 없이 리액션만 한다. 리액션도 아주 훌륭하게 잘한다.


7. 사실 이 영화는 정말 잔인한 호러영화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극악무도한 호러영화들도 지키던 불문율에 대해 이 영화는 아주 가차없다. 그 장면은 영화의 결말에 등장한다. ...잔인하지는 않다.


8. 어쨌든 이 영화에서 최고 개고생한건 아역배우들이다. 모든 아역배우들, 특히 영남이(구승현)에게 박수를 보낸다. 


9. 엔딩크레딧을 보다가 궁금한게 크레딧에 라디오DJ, 비서, 노인 등의 역할을 본 거 같다(그 와중에 노인 역할은 전국환 배우가 맡았다). 대체 저들은 어디에 나온거지? 난 졸지도 않았는데...


10. 위 9번의 근거로 봤을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영화는 디렉터스컷이 따로 있다. 디렉터스컷을 내놔라. 진짜 피리들고 손님이 되어 찾아간다.


11. 결론: 기발한 아이디어와 장르적 재미, 공포의 근원을 놓치지 않고 골고루 잡아낸 공포영화다. 최근 몇 년 한국 호러영화의 퀄리티를 감안했을때 이 정도면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단, 중요한 장면에서 에너지를 마음껏 뿜어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추신1) 위 사진은 NG컷인듯 한데 재밌어서 썸네일은 저걸로 한다.


추신2) 극장의 상태고 나발이고 나는 영등포CGV가 제일 좋다. 집에서 걸어갈 거리니 말이다. 

TRACKBACK 0 AND COMMENT 1
  1. 2015.07.11 04:46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이다. 윤리와 도덕적 관념을 누구보다 중시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부던히 노력한다. 그런데 나는 때로는 이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것은 최근 일련의 사태들과 아주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는 우리 어른들을 보며 내리게 된 결론이다.

 

얼마전 용인에서 끔찍한 토막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이 10대라는 것 또한 우리에게는 엄청난 충격이다. 나는 이것에 대한 경기지방경찰청의 어떤 보도자료를 받고 다시 한 번 충격에 빠지게 됐다. 범인에 대한 기자 질의응답을 요약한 문서에서 왜 기자는 뜬금없이 공포영화 이야기를 물어봤을까? 물론 가장 충격적인 것은 거기에 대해 시크하게 대답한 범인이지만 2차적으로 그런 질문을 꺼낸 기자에게 충격을 받게 됐다. 사회부 사건기자의 어떤 매뉴얼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뜬금포가 아닌가 싶었다.

 

이에 앞서, 우리는 여성가족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게 됐다. 이들은 야동에 대한 규제를 선언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성범죄 예방'을 꼽았다. 야동보고 딸딸이(자위행위) 한 번 해 본 사람이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야동유저들은 "야동보고 나가서 성범죄 저지를 사람이라면 야동을 보지 않아도 저지를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유독 공포영화가 살인과 연결되고 야동이 성범죄와 연관될 것이라는 단순명료한 결론을 내놓고 있을까?

 

 

반 윤리의 극단에 치닫는 영화를 보고 당신은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까?


사실 아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기술적인 면에서는 충분히 모방할 여지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의도'면에서 따져 봤을 때 전적으로 영상물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기득권층과 어른들의 비겁한 책임회피일 뿐이다.

 

나는 살인과 성범죄의 모든 책임은 사회구조상의 빈부격차와 억압을 양산하는 관계에 있다고 본다. 즉 자본에 의한 격차가 심해지고 그에 따른 피지배 층이 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 커지면서 그 극단에 이르러 발생하게 되는 반발심이 잔혹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 예로 아동 성폭행의 경우 단순한 '성욕의 해소'로 보기에는 여러가지로 무리가 있다. 사실 이건 '로리콘'과도 다른 양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피지배자로 억눌리면서 그 스트레스가 극단에 치닫는 사람이 자신의 정복욕구에 대한 '기형적 과시'로 가장 약한 어린이들을 해하는 모양새가 된다. 굳이 연결짓자면 이것 역시 '억눌린 성욕'으로 풀어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성욕 이상의 복잡한 이야기가 된다.

 

오히려 공포영화는 이것에 대한 욕구분출의 장이 된다고 본다. 억눌리고 금기된 욕망들이 스크린을 통해 분출되고 반 윤리의 극단에 치닫는 이미지들이 나열되면서 내면 깊은 곳의 윤리와 도덕을 끄집어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러니깐 야동을 즐기는 유저들이 말하는 '현자타임'이라는게 이런 식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유혈낭자한 영화를 본다고 피를 봐야 현자타임이 오는 건 아니지만 반 윤리적 살인과 유혈낭자의 끝을 보고 나서야 "이렇게 살면 안되지"라고 느끼게 되는게 바로 호러영화의 현자타임이다.

 

 


살인과 섹스는 가장 말초적인 자극들이다. 그만큼 인간 내면에 꽁꽁 숨겨둔 욕망의 분출이다. 인간을 '동물'로 분류한다면 이것은 이성과 윤리가 지배하는 문명사회구조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욕구의 분출이다. 실제로 많은 포르노그라피들은 섹스에 대해 '지배와 피지배'의 정치학을 대입시켜 관계를 풀이하기도 한다. 살인과 성폭행 모두 억압된 인간의 지배욕이 분출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배와 피지배의 극단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조금은 더 대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게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지배하려 드는 여러 계층들(특정 계층을 지칭하진 않겠지만)이 오히려 공포영화, 야동보다 더 위험한 존재이지 않을까?

 

p.s) 물론 필자는 살인과 성폭행을 저지른 썅놈들에게 동정을 보내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으며 그들의 사지를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놈들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런 글을 쓴 것이다. 공포영화와 야동을 백날 규제하고 비난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소리다.

TRACKBACK 0 AND COMMENT 2
  1. BlogIcon sephia 2013.07.16 23:1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으흠........ 사쿠라 마나가 누군가 했더니 AV배우인가요?





세계 호러영화사를 통틀어 '프랑스 호러'라는 것이 알려진지는 지극히 얼마 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물론 '영화 역사의 기원'이 되는 중요한 나라이며, 오늘날 세계 예술영화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국가다. 어쩌면 이 '예술의 나라, 프랑스'라는 이미지가 장르영화의 최고봉이었던 호러영화의 발달을 막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독일의 포스트모더니즘 대표작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루이스 브뉘엘-살바도르 달리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전위적인 실험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는 오늘날 호러영화의 전통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고, 가까운 이탈리아에는 마리오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 등 걸출한 호러작가들이 대거 배출됐다. 그만큼 유럽에서 '프랑스'는 유독 호러영화의 불모지였다.

최근 필자는 프랑스 호러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마주한 적이 있다. 불쾌함과 하드고어로 무장한 잔혹 호러영화 <인사이드>는 전세계 어떤 공포영화와 비교해봐도 뒤지지 않는 걸출한 작품이었다. 그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이었다. 마치 이것이 프랑스 호러의 전부인양 <인사이드>의 이미지는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그런데 잘 따져보니 그로부터 4년전인 2003년에 프랑스에서는 꽤 멋진 호러영화가 탄생했었다. 그것은 바로 알렉상드르 아자 감독의 <엑스텐션>이었다.

'엑스텐션'(2003)

피칠갑과 하드고어, 반전으로 무장한 이 난리법석 영화 <엑스텐션>을 만든 후 알렉상드르 아자는 곧장 헐리우드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세계 호러영화에 길이 남을 거장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 <힐즈 해브 아이즈>를 리메이크했다. 그 후 아자 감독은 각각 한국영화 <거울속으로>와 조 단테 감독의 <피라냐>를 리메이크한다.

워낙 짧은 필모그라피에다가 그 중 75%를 '리메이크작'으로 채운 이 감독에 대해 어떤 이야기거리가 있는지 의문일테지만 알렉상드르 아자는 이 악조건 속에서도 유독 강하게 개성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그의 개성은 모두 알다시피 막무가내 피칠갑과 신체훼손으로 일관된 철저한 하드고어다.

사실 과거에도 많은 호러영화 감독들은 신체훼손과 피칠갑으로 자신의 영화를 장식해왔다. 가장 대표적으로 '스플래터' 장르의 기원을 이룩한 피터 잭슨 역시 <데드얼라이브>같은 영화를 통해 피의 향연을 보여줬으며, 미국인들에겐 낯 익은 이름인 허셀 고든 루이스, <13일의 금요일>의 스테판 홉킨스 등이 있을 것이다.

'힐즈아이즈'(2006)

이 와중에 알렉상드르 아자의 하드고어가 개성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웰메이드'라는 점이다. 사실 그간의 하드고어를 보고 있자면 잔혹한 신체훼손은 있었지만 그것에 그리 리얼리티가 가미되진 않았다. 만약 그 피칠갑에 리얼리티라도 가미됐다면 관객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기술적 한계이거나 감독의 윤리의식이 최소한으로 발휘가 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알렉상드르 아자는 이런 피칠갑에 자비가 없다. 최대한 공을 들여서 잔혹함을 연출해내고 그것에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그리고 상황 자체를 잔인함의 끝으로 몰고 가 자신이 만든 하드고어에 힘을 실어준다.

아자 감독이 연출하는 '상황'의 힘은 매우 중요하다. 간혹 몇몇 장면에서 '상황'은 '디테일'보다 더 잔혹함을 배가 시켜준다. 예를 들어 <힐즈 해브 아이즈>에서 갱들이 처음 트레일러에 침입해 할머니와 아이엄마를 공격하고, 같은 시간 할아버지를 화형시키는 장면은 상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잔인하다. 여기에 디테일하고 빠른 연출력은 상황을 잔인함의 끝으로 완성시켜준다.

'미러'(2008)

그런 그에게 <피라냐>는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하드고어를 더 디테일하게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을거라는 기대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피라냐>라는 영화에는 감독의 '신명'이 곳곳에 묻어있다. 디테일에도 공을 들이고, 물고기들로 장난도 치고, 심지어 첫 장면에서는 죠스를 때려잡은 리차드 드레이퓨스를 한 방에 보내버린다.

하지만 그의 신명과 달리 영화는 유독 튀는 CG로 인해 몇 장면을 말아먹게 되고 전체적 완성도를 저하시킨다. 물론 조 단테의 원작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도 있었지만 그 풍부한 리얼리티에 비하면 CG는 영 튀는 모습이었다.

<피라냐>에서 드러난 이런 문제점을 통해 관객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아자 감독에게는 아날로그를 활용한 디테일이 자신의 영화를 완성시키는 중요한 키워드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호러영화란 원래 적은 돈으로 만드는 영화라는 사실. 프랑스에서 <엑스텐션>을 만든 후 헐리우드로 온 그는 줄곧 풍족한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아마도 예상컨데 <피라냐>는 그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작비로 만든 영화였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아자 감독은 적은 예산으로 욕심없이 디테일과 상황을 이용한 하드고어에 집중할 때 가장 멋진 영화가 나오는 듯 하다.

'피라냐'(2010)

아자 감독의 '호러'는 분명 <블레어윗치>, <큐브>, <쏘우>만큼이나 호러영화사의 새로운 발견이다. 그러나 그 발견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 이룩한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의 호러영화가 이룩한 장르의 공식에 자신만의 디테일과 상황을 곁들여 관객으로 하여금 엄청난 불쾌감을 유발하도록 하는 것이 아자의 방식이다. 새롭다면 새로울 이 방식은 헐리우드 호러영화에 '웰메이드 하드고어'의 바람을 불러올 수도 있는 일이다. 적어도 신체훼손에 CG를 사용하지 않는 그의 고집에는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을 지경이다.

이제 갓 4편의 영화를 만든 어린(필자보다 2살 많지만 어쨌든 현역 영화감독 중에서는 어린) 호러영화 기대주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를 일이다. 부디 그 초심만은 계속 유지해주길 바란다.

알렉산드르 아야(Alexandre Jouan Arcady) / 영화감독
출생 1978년 08월 80일
신체
팬카페
상세보기

TRACKBACK 0 AND COMMENT 0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218)
일상생활 (137)
창작의 공간 (11)
영화이야기 (959)
음악이야기 (41)
야구이야기 (21)
포토샵 장난질 (3)
Entertainment (31)
익스트림알콜 (9)
본의 아니게 떠난.. (4)

CALENDAR

«   2020/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