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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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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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20.07.02
    넷플릭스 '사라진 탄환' 초간단 리뷰
  2. 2020.06.29
    [약간 스포] 넷플릭스 'Da 5 블러드' 초간단 리뷰
  3. 2020.06.01
    잡담 200601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화
  4. 2020.05.25
    넷플릭스 '라 테르' 초간단 리뷰
  5. 2020.05.19
    [스포주의] 넷플릭스 '블랙미러:미움 받는 사람들' 초간단 리뷰
  6. 2020.05.18
    넷플릭스 '블랙미러: 사냥개' 초간단 리뷰
  7. 2020.05.18
    [스포주의] 넷플릭스 '블랙미러: 보이지 않는 사람들' 초간단 리뷰
  8. 2020.05.15
    넷플릭스 '블랙미러: 블랙 뮤지엄' 초간단 리뷰
  9. 2020.04.23
    [스포주의] 넷플릭스 '사냥의 시간' 간단 리뷰 (1)
  10. 2020.04.13
    넷플릭스 '서바이벌 캠프' 초간단 리뷰

1. 프랑스 사람들은 바게뜨빵을 만드는 역동적인 문화가 있어서 그런지 액션영화를 잘 찍는다(농담이다). 그들이 만든 최초의 영화인 '열차의 도착'부터 굉장히 역동적인 영화다(무려 기차가 역에 들어온다!). 뤽 베송의 '택시'부터 시작된 역동적인 프랑스 액션영화는 파쿠르라는 괴상한 스포츠와 함께 더욱 발전했다. 프랑스 액션영화의 육체적 속도감은 다른 나라에서 쉽게 따라하기 힘들다. 어떤 형태로건 프랑스와 연관된 액션영화를 찾아봐도 '택시', '트랜스포터', '테이큰', '야마카시' 등 소위 '몸으로 조지는 영화들'이다. 주인공이 싸움을 매우 잘하고 카메라도 속도감이 넘친다. 이것이 프랑스 액션영화만의 개성이다. 내가 넷플릭스 영화 '사라진 탄환'에 대해 기대한 것도 그런 액션이었다. 

2. '사라진 탄환'의 예고편을 봤을 때는 '보급형 분노의 질주'를 상상했다. 일단 자동차가 달리고 부딪힌다. 주먹다짐이 오고 가는데 당연히 예고편이다 보니 편집에 속도감이 넘친다. 막상 뚜껑을 열어봤을 때 영화는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게다가 내가 알던 프랑스 액션영화와도 전혀 달랐다. 일단 이 영화의 이야기는 차량개조 전문가인 주인공 리노(알반 레누아)가 동생을 도와주다 감옥에 가게 되고 감옥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경찰의 일을 돕는다. 그러다 어떤 사건에 연루돼 도망자 신세가 되고 자신의 누명을 벗는 이야기다. 액션영화다운 간단하고 재미있는 플롯이다. '트랜스포터'나 '테이큰'을 떠올려봐도 이들은 간단한 플롯을 선호한다. 액션영화는 이야기가 간단한 게 좋다. 

3. 이제 재미있는 지점은 액션연출방식이다. 이 영화에는 리암 니슨이나 제이슨 스타뎀이 없다. 그 말은 주먹다짐을 정말 동네 양아치 개싸움 하듯이 한다. 리노가 양아치 개싸움방식으로 경찰 10명을 때려눕힌 걸 보면 차태식(원빈)보다 더 말도 안되게 세보이긴 한다. 아무튼 경찰 10명을 때려눕혔다. 영화의 막싸움방식은 카체이싱에도 적용된다. '택시'나 '분노의 질주'의 카체이싱은 '속도감'에 포커스를 맞췄다. 속도감을 줄 수 있다면 온갖 CG를 갖다 써서 차가 빨리 달린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속도감보다는 '오직 박.력'이다('박.력'에 강조해야 한다). 프랑스 국민차 르노를 가지고 이렇게 박력있는 카체이싱을 찍을 수 있을까 싶은데 영화는 그걸 해낸다. 게다가 CG를 쓴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큰 돈을 쓰진 않았지만 때려 부수고 줘 패는 것은 박력이 있다. 

4. 나는 일전에 넷플릭스 프랑스 액션영화 '라 테르'를 보고 심기가 불편했던 적이 있다. '라 테르'는 주인공인 아버지가 적들과 싸우면서 하는 행동들이 당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대체 왜 저기서 차를 훔치고, 대체 왜 저기에 숨고, 대체 왜 거기로 가는가"라는 의문을 시종일관 안고 영화를 봐야 했다. 반면 '사라진 탄환'은 인물의 행동들에 명분이 있다. 간혹 명분없는 조연들도 있지만 액션영화에서 이 정도는 이해해줄만 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한결 개운하다. 게다가 '택시'처럼 유치하지도 않고 '테이큰'이나 '트랜스포터'처럼 판타지 스타가 나오지도 않아서 더 몰입할 수 있다. '사라진 탄환'은 대단히 현실적인 액션영화다. 

5. 영화를 만든 귀욤 피에레트 감독이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 찾아보니 단편영화 하나 만든 이력이 전부다. 게다가 주인공 알반 레누아는 액션배우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출연작이 꽤 다양하다. 특히 한국영화 '상류사회'에도 출연했다고 나와있는데 어디에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기억나는 외국배우는 단 한 명이다). 니콜라스 뒤포셸은 '파리의 인어'와 '그 누구도 아닌', '인사이드' 등에 출연했다. 잘 생겼는데 좀 재수없어 보이는 캐릭터다. 낯선 얼굴들과 낯선 연출이 돋보이는 재미있는 영화다. 

6. 결론: 카체이싱 연출은 약간 '가난한 크리스토퍼 놀란'을 떠올리기도 한다. 스피디한 자동차 액션을 기대한다면 이 영화를 권하진 않는다. 이 영화는 그저 박력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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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떤 영화감독은 흔히 '20세기 거장'으로 불린다. 당장 생각나는 이름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브라이언 드 팔마, 아톰 에고이얀, 에밀 쿠스트리챠, 장이모우 정도다. 그들은 20세기에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걸작을 만들었지만 21세기에는 귀신같이 잊혀졌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국내에서 파악되지 못한 어느 지점에서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들이 꾸준히 등장하면서 20세기의 거장들은 예전과 같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파이크 리도 '20세기 거장'이다. '스쿨 데이스', '똑바로 살아라', '모베터 블루스'를 시작으로 '정글 피버', '말콤엑스', '클락커스', '썸머오브샘' 등 흑인의 삶과 권리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다수 만들었다.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흑인 영화감독이 많지 않던 시절인 만큼 스파이크 리는 가장 독보적인 개성을 지닌 감독이었다. 

1-2. 현재에 이르러서는 배리 젠킨스나 스티브 맥퀸, 조던 필, 라이언 쿠글러 같은 젊은 감독들이 흑인의 삶과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스파이크 리의 영화도 유산처럼 남아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부정하기 힘든 사실은, 스파이크 리는 '20세기 거장'이다. 그는 21세기에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다. 괜찮은 범죄 스릴러 영화인 '인사이드 맨'이 있었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리메이크 한 '올드보이'가 있었다. 그 밖에도 국내에 소개되지 못한 몇 편의 영화들이 있다. 2018년 영화 '블랙클랜스만'은 스파이크 리의 부활과 같은 영화였다. 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무려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그 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그린북'이었다는 점도 이채롭다). 넷플릭스 영화 'Da 5 블러드'는 '블랙클랜스만' 이후 만든 첫 장편영화다. 

2. 'Da 5 블러드'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베트남전쟁과 마틴 루터 킹 암살사건 등 동시대 미국을 흔든 일련의 사건들이 교차돼 보여진다. 이것은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베트남 참전용사인 4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분대장 노먼(채드윅 보스먼)의 유해를 수습하고 숨겨둔 금괴를 찾기 위해 다시 베트남으로 향하는 내용이다. 소소한 로드무비나 유쾌한 모험극을 기대했던 나에게 이 영화는 꽤 묵직한 이야기를 건넨다. 그 이야기는 영화 초반부부터 노골적인 선언을 하고 시작된다. 4명의 할아버지들은 베트남에 도착한 첫 날 클럽에서 춤을 춘다. 클럽 DJ의 뒷면 벽에는 'Apocalypse Now'라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이것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영어제목이다. 베트남전쟁을 다룬 최고의 영화인 '지옥의 묵시록' 앞에서 흑인 4명이 '지옥의 묵시록'을 부정하듯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것은 '지옥의 묵시록'과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선언과 같다. 이 선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체를 드러낸다. 

3. 미국에서 만들어진 유명한 베트남 전쟁 영화 몇 개를 떠올려보자. 가장 유명한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을 시작으로 '디어헌터', '람보', '야곱의 사다리'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 영화들은 모두 백인의 관점에서 본 베트남 전쟁 이야기다. 영화 속 대사에서도 '람보'를 언급하며 "그런 만들어진 영웅 말고 진짜 영웅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람보'조차 부정하는 셈이다. 'Da 5 블러드'는 흑인의 입장에서 베트남전쟁은 조금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흑인이 겪은 베트남 전쟁은 조금 다른 이야기이며 어떤 미국영화도 그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4. 베트남전쟁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일어났다.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1964년 베트남에 폭격을 가했고 이때부터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65년은 미국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말콤엑스가 '이슬람 국가운동' 소속 흑인에게 살해됐고 3년 뒤인 1968년에는 마틴 루터 킹이 살해됐다. 두 정신적 지주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던 흑인인권운동은 베트남 전쟁과 같은 시기에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영화 속 주장에 따르면 미국인 중 11%가 흑인이지만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흑인은 32%에 해당된다. 흑인의 관점에서 본 베트남 전쟁은 전쟁의 트라우마와 함께 인권이 탄압당했으며 정신적 지주를 잃었다는 슬픔도 느낀 사건이다. 백인에 비해 삼중고로 힘든 전쟁인 셈이다. 영화 속 노먼은 4명의 대원들에게는 마틴 루터 킹이나 말콤 엑스와 같은 정신적 지주였을 것이다. 이들이 50년 가까이 떠안고 있던 트라우마는 전쟁의 참상과 함께 정신적 지주를 잃었다는 것에 따른다. 

5. 이들이 다시 베트남을 찾았을 때는 KFC, 맥도널드 같은 미국 브랜드들이 자리잡은 나라다. 실제로 베트남은 아시아의 신흥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곳에서 4명의 할아버지들이 과거의 유산을 찾는다. 이때 이미 "그들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을 한다. 실제로 그들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 파병왔을 당시 이 미국인들은 명분없는 전쟁을 했다. 지금은 명분이 있는 전쟁을 한다. 그 명분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금을 챙겨가는 것이다. 금은 4명의 '블러드'에게 인생을 바꾸게 하기 충분한 돈이었다. 그러나 이 금은 과거 세대인 베트남 참전군인들이 아닌 다음 세대들의 인권운동을 위해 넘겨진다. 그 인권운동은 전쟁터의 지뢰와 불발탄을 제거하고 '#Blacklivesmatter'라는 흑인인권운동에 지원된다. 이것은 노먼이 이루려 했던 '흑인을 위해 쓰여지는 돈'이다. 50년이 지났지만 그 돈은 여전히 흑인인권을 위해 쓰여진다. 그것은 노먼의 유산이자 마틴 루터 킹과 말콤엑스의 유산이다. 

6. 나는 '흑인인권운동'이라는 구체적인 것에 관심이 없다. 인스타그램에 '#Blacklivesmatter'라는 해시태그가 달릴 때도 시큰둥했다. 나는 '흑인', '여성'이라는 구체적 계층보다 권력의 상하관계에서 낮은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거기에는 유색인종, 여성뿐 아니라 어린이, 노약자, 가난한 사람, 다문화 가정, 장애인 등이 모두 해당된다. 그렇기 포괄적 범주에서 나는 이 영화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메시지가 반갑다. 우리에게도 과거의 유산이 어떻게 대물림되고 받아들여져 구호가 돼야 하는 'Da 5 블러드'는 명확하게 보여준다. '#Blacklivesmatter'는 우리에게는 '#No재팬'으로 바꿔도 된다. "내가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호기로운 젊은이처럼, 우리에게도 과거의 유산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7. 결론: 'Da 5 블러드'는 대단히 직접적인 영화다. 할 얘기가 있는데 둘러서 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기대보다 과감하고 묵직하게 전개돼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뒷통수 맞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4명의 '블러드'와 1명의 아들이 싸우다가 서로 위하는 저 관계가 대체 뭔가 싶다가도, '전쟁의 트라우마+오래 본 사내놈들'로 이해하면 쉬워진다. 원래 서로 쌍욕하고 싸우다가도 위험할 때 위해주는 게 친구다. 사내놈들에 대한 관찰이 꽤나 리얼해서 재미있다. 앞서 언급한 배리 젠킨스나 스티브 맥퀸, 조던 필, 라이언 쿠글러는 흑인의 인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영화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스파이크 리는 이 영화로 했다. 이것은 1957년생인 그가 베트남전쟁과 말콤엑스, 마틴 루터 킹의 시대를 관통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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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요즘 일하면서 가장 자주 쓰는 키워드가 '포스트 코로나'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이 이전과 달라지게 되면서 산업계 전반에서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를 전망하고 이에 대비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당연히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전문가들이 하는 논의와 별개로 이 글은 관객 입장에서 바라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화'에 관한 글이다. 어쩌면 우리는 누벨바그나 뉴저먼시네마를 뛰어넘는 영화 대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1895년 영화가 처음 발명된 이후 그것은 '극장'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과 만났다. 극장은 영화 이전 연극, 혹은 그보다 더 이전 로마시대 검투사의 싸움터였던 콜로세움과 맥락을 같이 한다. 집단이 모여서 하나의 상황을 함께 보고 즐기는 것이다.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곳, 연극을 공연하는 곳에 모두 쓰이는 단어다. 그래서 '극장=영화관'은 사슬처럼 엮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콜로세움과 맥락을 같이 할 수 있다. 영화라는 매체를 상영하는 극장은 매번 도전을 받아왔다. 극장이 받은 가장 큰 도전은 TV의 등장이다. 당시 집에서도 영화와 공연을 볼 수 있는 TV가 등장하면서 이제 극장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 예상됐다. 그러나 당시 TV는 몹시 작았고 극장은 대형 스크린을 가지고 있었다. 극장이기에 가능한 영화적 체험이 있었고 극장은 온전히 그것을 관객에게 선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영기술의 발달은 '체험'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발전해왔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고 프리미엄 사운드시스템이 구축되고 레이저 영사가 등장하며 스크린X, 4DX 등이 만들어졌다. 이것의 목표는 관객이 영화를 체험하게 하는 데 있다. 오직 그것만이 목표였다. 체험의 플랫폼이 구축됐으니 영화는 더 거대한 체험을 선사해야 한다. 그래서 상업영화는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만화 속 슈퍼히어로와 함께 하늘을 날게 했고 100여년 전 타이타닉 여객선에 탑승하도록 했다. 황폐한 사막을 미친 속도로 달리도록 했고 감히 상상도 못할 무역센터 빌딩 위를 외줄로 걷도록 했다. 영화와 극장은 그렇게 공생하며 TV의 도전을 뿌리치고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TV의 재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반세기 전 극장에 참패한 TV는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극장에 도전한다.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변수 때문에 TV에게 좀 더 유리해졌다. 오늘날 TV는 과거보다 훨씬 크고 선명해졌다. 사운드시스템은 극장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 됐고 화질과 색감 역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TV의 대형화와 사운드시스템의 고급화는 극장을 위협한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여기에 한가지 변수를 더 선사한다. 

우리는 한동안 대형영화를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하루 아침에 종식된다거나 백신과 치료제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극장은 지금과 같이 관객이 찾지 않는 곳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마찬가지다. 이는 극장수익에 의존하던 영화들이 수익을 내는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대형영화들은 오프라인 프로모션도 활발히 해야하고 극장을 가득히 채울 정도로 많은 관객을 유도해야 한다. 대형영화는 기존에 해왔던 수익창출 방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적자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스튜디오들은 고민이 깊을 것이다. 현재는 기존의 제작 스케줄을 고수하고 있지만 코로나19에 그들의 운명이 달렸다. 

극장을 키운 대형영화들이 위기를 맞이 한다. 당연히 극장도 위기를 맞이한다. 반면 TV(=넷플릭스)는 기회를 잡게 된다. TV로 보는 영화는 관객에게 새로운 과제를 만들 수 있다. 나는 과거 '6언더그라운드'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클 베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6언더그라운드'는 마이클 베이 특유의 '다 때려부수는' 영화다. 운이 좋게 롯데시네마 수퍼플렉스G 대형화면으로 봤다. 만약 이 영화를 스마트폰으로 봤다면 정말 재미없을 것 같았다. 이 거대한 영화를 넷플릭스로 공개하게 된 데 대해 마이클 베이는 "큰 TV를 사라"고 농담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결코 가벼운 농담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늘게 된다. 누군가는 대형 8K TV로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작은 LCD TV, 혹은 PC 모니터, 태블릿,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본다. 8K TV로 본 영화와 스마트폰으로 본 영화는 똑같은 경험을 선사할까? 환경과 디바이스에 따라 영화는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만원 남짓의 돈으로 동일하게 영화적 경험을 선사했던 이전과 달리 TV(=OTT)의 시대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영화적 경험을 얻을 수 없다. 최악의 경우, 더 이상 영화는 모두의 대중예술이 아닌 중세 유럽의 클래식처럼 상류층의 예술이 될지도 모른다. 

극장은 언젠가 종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에게 큰 변화를 선사할 것이다. 극장의 종말 이후 찾아올 영화를 내 눈으로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훗날 세계영화사에 기록될 순간을 이렇게 마주하게 될 거라고도 생각 못했다.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화가 세계영화사에 큰 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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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는 일단 영화를 잘 찍는다. 예술영화도 당연하고 장르영화도 잘 찍는다. 공포영화도 당연하고 코미디영화(내 취향엔 안 맞지만)도 잘 찍는다. '파쿠르'의 본고장답게 액션영화도 잘 찍는다. 프랑스 영화의 정통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뤼미에르 형제나 장 뤽 고다르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정통성과 깊은 문화적 인프라를 갖춘 나라답게 재미있는 영화를 잘 찍는다. 내가 넷플릭스 영화 '라 테르'에 대해 가졌던 기대는 그런 것들에서 비롯됐다. 영화의 발상지이자 파쿠르의 본고장이고 뤽 베송이 나고 자란 나라(?)인데 못해도 '택시'같은 영화는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기대한 내가 미친 놈이다. 

2. '라 테르'는 시놉이 익숙하고 간단하다. 산에서 재재소를 운영하는 주인공 사이드(사미 부아질라)는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 청각장애인 딸 사라(소피아 레사프레)를 위해 그는 재재소를 처분하고 딸의 미대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런데 가석방 중인 직원 야니스가 마약거래에 말려들게 되고 마약조직 두목이 자신의 약을 찾기 위해 재재소를 찾아온다. 사이드는 딸을 지키기 위해 마약조직과 일전을 벌인다. 시놉만 읽으면 '아저씨'나 '테이큰'을 기대할 수 있다(심지어 '테이큰'을 만든 피에르 모렐도 프랑스 사람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시벌 이게 대체 뭔소리야"였다. '라 테르'는 분위기 잡는데 영화의 절반을 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대체 저 아저씨가 왜 저러나"라는 의문을 가지고 보게 된다. 

3. 일단 사이드는 온갖 무게를 다 잡는다. 분위기만 봤을때는 지젠느(GIGN)에서 복무하다 퇴역한 군인인가 싶다. 그러나 그런 배경설명은 없다. 그리고 마약조직이 올 것을 예상하면서 오히려 일을 더 크게 키운다. 예를 들어 엄한 야니스를 창고에 가뒀다가 꺼내고 마약을 괜히 숨기고 괜히 악당 차를 운전하다 들이받고 괜히 내부로 유인했다가 재재소 태워먹는 식이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사이드의 행동은 일을 더 키우고 있다. 한 예로 '아저씨'의 경우 차태식(원빈)은 전당포에 물건 찾으러 온 녀석들에게 일단 지갑부터 주고 시작한다. 일을 크게 만들지 않는게 최선이라는 걸 안다. 사이드는 그걸 모른다(대체 왜?). 정말 최후의 보루로 "그래, 평생 나무나 베던 사람이 뭘 알겠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해보려는데 일이 꼬이는 경우겠지"라고 생각했다. 

4. 일단 여기서 꼬여버리니 다른게 다 별로다. 액션도 시원치 않고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발암캐'같다. 잔뜩 잡아놓은 무게조차 공중분해 돼버리고 "이거 너무 재미없어"라며 짜증만 날 뿐이었다. 이쯤되니 이 영화를 만든 쥘리엥 르클레르크의 전작이 궁금해졌다. 그는 꽤 많은 영화를 만들었고 모두 범죄액션스릴러다. 전작인 '더 바운서'는 무려 노년의 장 클로드 반담이 주연이고 2015년작 '더 크루'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다(아마도 미드나잇 패션으로 추정). 이것들이 그의 커리어를 증명해주진 않을 것이다. 다만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거지같은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하다. 

5. 결론: '라 테르'의 미덕이 뭐가 있을지 여러모로 고민해봤다. 그나마 미덕이라면 '테이큰'이 보여준 판타지는 깼다는 점이다. 특수부대에 복무하지 않은 다수의 아버지들은 저렇게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치다가 꾸역꾸역 목숨바쳐 자식을 구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약간 애잔하기도 하다. 다만 '라 테르'에 대해 내가 기대한 것은 그게 아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썩 좋게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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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 개의 '블랙미러' 에피소드를 보다가 얻게 된 깨달음: 이 녀석들은 통상 마지막 에피소드에 공을 들인다. 시즌2의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시즌4의 마지막 '블랙 뮤지엄'은 특히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시즌3의 마지막 에피소드도 재미있을까?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미움 받는 사람들'이다. 썸네일을 보니 대략 청문회 내지는 법정으로 추정된다.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인터넷 혐오, 협박메시지 등 단어가 등장한다. 이것은 SNS에 대한 진중한 고찰일까? '블랙미러'의 여러 에피소드들 가운데 단연 묵직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러닝타임도 장편영화 하나에 이를 정도로 길다(1시간29분). 시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긴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를 대하려면 마음에 준비가 필요할 듯 하다. 

2. 막상 에피소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말벌'이 등장한다. 그때 나는 "아, 이것도 결국 '블랙미러'구나"라고 깨달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듣도 보도 못한 과학기술이 등장하고 그것이 인간을 공격한다. 전자말벌 이야기를 해보자. ADI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벌의 멸종 후 식량난을 막기 위해 개발된 로봇 벌이다. 벌의 행동 패턴만 입력됐으며 시각센서를 통해 꽃을 구분한다. 놀란 점은 인류가 벌의 멸종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엔지니어 사정 생각 안 하고 막 만든 디자이너의 작품같지만 가능하다면 인류는 벌의 멸종에 따른 식량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계에서 우려하는 인류멸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별의 멸종'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한 셈이다. 이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기술이다. 

3.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야기에서 드러나지만 ADI가 정부의 승인을 받을 당시 정부는 식량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ADI의 시각센서를 활용하면 첩보활동이 더 쉬워진다는 점을 이용했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ADI의 시각데이터를 보관해 관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ADI 개발에 참여한 한 직원이 이를 악용했다는 점이다. 진중한 사회고발극을 기대한 나에게 대뜸 '전자말벌의 습격'이 등장한 것은 신선한 뒤통수였다. 그것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처럼 스릴과 서스펜스를 주진 않았지만 전자말벌이 무차별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설정만으로 긴장감을 줬다. 물론 중요한 것은 전자말벌이 아니라 SNS였다. 

4. '미움 받는 사람들'은 SNS에서 소위 '관종', '어그로충'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사람은 온라인에 게임을 열고 '#DeathTo'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을 매일 1명씩 결산해 죽이겠다고 말한다. 돌고 돌아 이 이야기는 SNS의 익명성과 그 익명으로 형성된 집단의 부조리한 폭력을 고발한다. 그런데 뭐 그런 거 생각 안 해도 좋다. 영화의 엔딩에 이르고 나서도 SNS의 부조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도 그것을 잘 아는듯 이 이야기의 결론은 여느 형사 버디무비처럼 마무리된다(마치 속편이 만들어질 것처럼). 이 이야기는 장르영화의 범주 안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뛰어논다.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미움 받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본 '블랙미러' 에피소드 중 가장 재밌어야 했다. 단 한 가지 문제점이 치명적이긴 했다. 

5. '미움 받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형사 역할을 맡은 두 주연배우가 연기를 너무 못한다는데 있다. 이쯤에서 나는 OCN에서 봤던 몇 개의 드라마를 떠올렸다. 몇 년 전만해도 OCN 드라마를 종종 챙겨봤다.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장르로 재밌게 풀어낸 것이 좋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대사와 디테일에 정말 신경을 안 쓴다는 게 느껴졌다. 잔뜩 무게잡은 주인공은 거부감이 들 정도고 이야기는 낯이 익었다. 10개 던지면 하나 마구가 나오는 투수처럼 장면 중 90%는 유치해서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미움 받는 사람들'은 두 형사가 나오는 장면마다 대체로 보기 힘든 수준으로 연기를 못한다. 이 이야기에는 조연으로 베네딕트 웡이 등장한다. 연기를 잘할만한 작품에서 본 적이 없어서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그는 거의 유일한 '연기 사이다'다. 한 예로 두 형사가 걸어오며 대화하는 장면을 풀샷으로 잡는데 둘의 대사를 들으며 "대체 지금 누가 말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둘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넷플릭스 자막 싱크도 이상할 때가 많은데...

6. 결론: 신선하고 재미있다. 러닝타임 89분이면 거의 영화 1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누가 날 잡아서 다시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아니, 다시 만들어줘...주인공 배우 바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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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랙미러'를 뒤늦게 보기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에서 갖기 시작한 매력은, 시리즈를 수식하는 단어기도 했던 '디지털 시대의 환상특급'에 딱 걸맞다는 점이다. 이미 SF영화 속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과학적으로 더 상상할 것이 없다고 여겨졌을때쯤 '블랙미러'는 새로운 상상을 제시한다.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문장에 대해 20세기에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스카이넷' 정도였지만 21세기에는 우리 스스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그림을 만들어낸다(그렇게 생각해보면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시대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인가). 문장을 조금 다르게 나열해보자. '과학은 인간성을 어떻게 말살할 것인가'. '블랙미러'는 그 물음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것은 현재를 기반으로 한 근미래에 대한 상상이며 실현 가능한, 어쩌면 조금 더 다가온 디스토피아다. 

2.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블랙미러' 시즌4의 5번째 에피소드 '사냥개'는 지금까지 본 '블랙미러' 중 가장 불친절하다. 이 에피소드는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고 많은 것을 축소시켰다. 그저 인간과 로봇개의 추격전 외에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색깔조차). 그래서 나는 며칠 전에 이 에피소드를 봤음에도 리뷰를 쓰는 일을 망설였다. 이 이야기에서 숨어있는 과학을 찾을 수 없었고 인간성은 진작에 말살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저 쫓고 쫓기는 게임에 불과했다. 꽤 오래 고민을 해봐도 이 이야기는 도저히 쓸 말이 없는 에피소드였다. 그러던 어느날 TV에서 '엑스맨:데이즈오브퓨처패스트'를 보다가 뭔가 깨달았다. 저 이야기, 참 '사냥개'와 닮았다. 어쩌면 '사냥개'는 '블랙미러'가 강조한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에 가장 직접적인 비유일 수 있다. 

3.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사냥개는 최첨단 과학 테크놀러지를 탑재하고 있다. 폭탄 형체의 위치추적 디바이스나 카메라, 총을 장착하고 있고 4족보행 로봇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빨리 달릴 것이다. 로봇공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KAIST와 연을 맺고 있는 입장에서 보고 들은 몇 가지 로봇들로 이해해보자면 로봇은 이제 두 발로 걷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전히 정말 로봇처럼 걷지만 이는 굉장한 발전이다. 4족 보행 로봇이 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말 그대로 관절만 빨리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만큼 빨리 달리는 로봇이라면?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자동차만큼 빨리 달리는 4족 보행 로봇이 대체 왜 필요하지?"라고 물을 수 있다. 이는 사냥개는 실현 가능한 과학기술처럼 보이지만 '블랙미러'에 등장한 다른 과학기술처럼 미래의 기술이다. 

4. 과학의 집약체가 인간을 쫓는다. 물류창고에서 무언가 훔치려 했던 인간들은 사냥개의 공격을 받고 쫓기기 시작한다. 이들은 어느 집단의 소속이며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는 상세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맨 마지막에 그들이 훔치려 했던 것이 보여질 때서야 조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에서 인간들은 휴머니즘이 극대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막을 달리고 총도 쏘지만 그리 전투적이지도 않다. 흑백에 가려져 있지만 이들은 누가 봐도 사람이고 사람답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과학'에 쫓기는 '인간'으로 봐도 무방하다.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문장이 통째로 이야기가 된 셈이다. 

5. 이 이야기는 대단히 낯이 익다. 제임스 카메론의 1984년작 '터미네이터'도 이런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은 '터미네이터'의 진정한 매력을 오해하고 있다. '터미네이터'는 1과 2로 이어지는 타임 패러독스가 매력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에서 끝났다. 그렇다고 다 때려부수는 스케일도 매력이 아니다. 애시당초 '터미네이터' 1편은 뭐 때려부술 만큼 돈 많은 영화가 아니었다. '터미네이터'의 매력은 '겁나 센 녀석이 나를 죽이러 쫓아오는데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말도 안 통한다'는 점이다. 나는 오히려 '터미네이터'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한 영화가 데이빗 로버트 미첼의 '팔로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터미네이터'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한 이야기에 '블랙미러:사냥개'를 추가해도 될 것 같다. 

6. 결론: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다면 문명은 지금보다 수백년 뒤쳐졌을 것이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문명의 발달은 살육을 먹고 이어졌다. 인간은 개개인으로 싸우기도 하고 집단으로 싸우기도 한다. 어느 어른의 말인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인류 전체에 써도 무방하다. 망한 리메이크영화인 '인베이전'에서는 외계인이 인간을 잠식하고 갈등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서늘한지 보여준다. 감정을 가진 존재는 사랑하고 미워하다 갈등하고 싸운다. 찰스 자비에 교수와 에릭 랜셔도 그랬다. 그 오랜 싸움은 인간이기에 가능했고 거대한 위협(센티넬) 앞에 그들은 뭉쳤다. '엑스맨:데이즈오브퓨처패스트'는 그래서 인간성(엑스맨)과 과학(센티넬)의 대결이다. 이것이 '사냥개'와 '엑스맨'이 닮은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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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철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수업시간에 영화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당시 철학과 교수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은 단연 '매트릭스'였다. 장자의 사상부터 시작해서 장 보드리야르까지 이야기꺼리가 아주 풍부한 작품이었다. 교수들이 '매트릭스'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 캐릭터는 싸이퍼(조 판톨리아노)였다. 그는 참혹한 현실을 택하느니 조금 더 나은 매트릭스를 택하는 '변절자'다. 고통스런 현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의무일까? 행복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는 등을 돌려도 좋지 않을까? 여기에 더해 싸이퍼의 대사 중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 고기와 와인맛은 결국 매트릭스가 보낸 신호에 불과하다"는 식의 내용이 있다. 즐거움이나 쾌락은 결국 허상이다. 아무튼 철학과 교수들에게 싸이퍼는 중요한 연구소재였다. 

2. '블랙미러' 시즌3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매트릭스'와 같은 물음을 던진다. 망각으로 행복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현실에 고통받으며 살아갈 것인가. 이 이야기에는 군인들이 등장한다. 하는 일로 봐서는 UN군처럼 보이는데 민간군사기업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이들에게는 '마스크'라는 장치가 이식돼있다. 이 장치는 증강현실(AR)을 볼 수 있고 드론 카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마스크의 핵심은 AR에 있는 듯 하다. 여기서 AR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만약 시청자가 마스크의 기능 중 AR을 의식한다면 이야기 초반에 반전은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놀라운 것은 마스크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3. 현재의 AR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 수준의 캐릭터를 구현해내는 그래픽에 싱크도 그리 완벽하지 않다. 대용량 그래픽의 전송이 어렵고 이를 구현할 디바이스도 아직 개발되지 않아 AR과 실제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게다가 현재의 AR은 디바이스(글래스)를 장착하고 봐야 하는 수준이다. 그 무거운 걸 쓰고 있으면 누가 봐도 "아 이건 AR이다"라고 의식할 수 있다. 현재의 AR은 스마트폰 콘텐츠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수준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AR의 발전과 활용은 딱 지금까지가 적절한 것 같다. 이 에피소드에서 AR은 굉장히 발전된 수준이다. 신체에 디바이스를 이식했고 무거운 글래스 없이도 AR을 볼 수 있다. 다만 조금 현실적인 관객이라면 "저것도 AR일까?"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4. 이 이야기의 반전을 의식하게 된 지점은 군인들이 '벌레'라고 부르는 존재가 처음 등장했을때다 그들은 의외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손에 뭘 들고 싸우고 군인들을 보자 도망가기 바쁘다. 벌레들은 첫 등장부터 좀 무섭게 생겼을뿐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때부터 반전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 역시 '벌레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대신 이 이야기가 노린 지점은 "왜 기업이 군인들의 마스크에 그런 기능을 넣었냐"는 점이다. 마치 오대수에게 묻는 이우진처럼, 중요한 것은 "벌레는 무엇이냐?"가 아니라 "왜 벌레처럼 보이게 했냐?"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무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5. 마지막에 등장하는 설명을 요약하자면 군인들은 같은 인간을 상대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적을 사살하는데 주저함이 있다. 그러나 만약 적이 끔찍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사살하기 더 쉽다는 게 기업의 설명이다. 이들은 군인들에게 주어진 최후의 윤리의식을 기술로 제거해버린 것이다. SF영화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과학기술을 병사들에게 이식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대에 대해서는 이런 상상이 정말 많았다. 2013년 만들어진 네덜란드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군대'(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에서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죽은 병사들을 기술로 살려낸다. 아마도 나치에 대한 수많은 음모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퍼스트 어벤져'의 레드스컬(휴고 위빙) 정도는 아주 윤리적인 군인이었다고 이해하자. 차라리 '캡틴 아메리카'를 탄생시킨 약물로 군대를 만들고자 했던 미국 정부가 더 무시무시하다. 

6. 마지막 장면은 '매트릭스' 싸이퍼의 선택을 떠올린다. 깨달음으로 얻은 불행 대신 망각으로 얻은 행복을 선택한다. 다만 이야기는 마지막 눈물에서 다시 물음을 던진다. 망각으로 얻은 행복이 정말 행복일까? 이 이야기가 '매트릭스'를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VR과 현실에 대한 물음은 '매트릭스' 이후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 물음에는 답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이것은 '부먹'과 '찍먹'보다 논쟁적인 물음이다. 여기 어떤 사실이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불행해진다. 알게 되는 순간 돌이킬 수도 없다. 대신 단 한 번 사실을 지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행복한 가상을 인식받아 가상현실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매트릭스' 이후 오랜만에 이 물음 앞에 다시 섰다. 20년동안 과학이 그토록 눈부시게 발전해도 여전히 빨간약과 파란약 중 뭘 먹어야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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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오래전 나는 어떤 이야기를 상상한 적이 있다. L.A에서 조직 보스의 돈을 훔쳐 달아난 마피아가 있다. 그는 차를 타고 사막을 달리던 중 어떤 사고를 당한다. 차는 박살나고 황량한 도로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사막의 열기에 정신을 잃어갈 때 쯤 저 멀리 호텔 하나가 나타난다.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런 호텔에 도착한 주인공은 로비를 열고 들어가자마자 쓰러진다. 호텔 직원들은 그를 극진히 보살핀다. 주인공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호텔에 충분히 머물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친절하고 맑은 호텔의 분위기에 이상한 거부감이 든다. 기력을 회복한 주인공은 체크아웃하고 호텔을 빠져나가려 하지만 아무리 내려가도 자신이 들어온 로비를 찾을 수 없다. 직원에게 문의하지만 "지내시다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저희가 개선하겠습니다"라는 말만 한다. 빠져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호텔을 나갈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가 호텔을 나가려 할수록 알 수 없는 존재가 그를 위협한다. 

0-2. 이 이야기는 아주 어릴때 상상한 이야기다. 나도 잘 안다. 이 이야기는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샤이닝', '1408'을 연상시킨다.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이야기를 상상할 때 '샤이닝'은 보지 못했고 '1408'은 제작도 되지 않았다. '황혼에서 새벽까지'는....얼추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차이점을 찾자면 내 이야기는 시작하고 빠른 시간 안에 주인공을 미지의 공간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사실 저 이야기를 상상했을때 나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듣고 있었다. 서정적이고 슬픈 느낌도 있는 노래에서 묘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 이야기는 '호텔 캘리포니아'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제목도 '호텔 캘리포니아'라고 했었다. 

1. '블랙미러' 시즌4의 마지막 에피소드 '블랙 뮤지엄'은 첫 장면에서부터 '호텔 캘리포니아'를 떠올렸다. 그랬다는 의미는 누군가는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블랙 뮤지엄'에서 '블랙'은 범죄를 의미하는 '블랙'이었지만 이야기의 초반부에는 주인공의 피부색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블랙 뮤지엄'은 내가 상상한 지점을 정확하게 후드러 패면서 반전을 주는 에피소드다(그 주인공은 '블랙 팬서'의 슈리다). '블랙 뮤지엄'이 내 이야기 '호텔 캘리포니아'를 연상시킨 것은 사막 한 가운데 박물관이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그것부터 이 박물관이 신비로운 공간이라는 인상을 준다. '호텔 캘리포니아'처럼. 신비로운 공간은 당연히 고대 전설이나 영적인 존재에 기인한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등장한 뱀파이어도 마찬가지다.

2. 그러나 신비로운 것은 듣도 보도 못한 과학기술이다. 그때쯤 잊지 않고 중요한 것을 상기시켜야 했다. 이것은 '블랙미러'다. '블랙 뮤지엄'은 '블랙미러'의 아이덴티티에 맞는 '신비로운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공포영화를 상상해봤다. 그것은 '이벤트 호라이즌'처럼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SF호러와 다르다('이벤트 호라이즌'은 오히려 우주 공간에 지옥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고전 호러와 맥락을 같이한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검증하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발전해버렸다. 더 이상 도시전설이나 신화 속 고대 괴물, 영적인 존재는 힘을 받기 어렵다. 그것들은 얼마든지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미러'는 미래의 공포는 과학기술이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블랙 뮤지엄'에 등장한 기술들은 대체로 상식을 뛰어넘었다. 감각을 전송하고 의식을 다운로드 하는 기술은 놀라운 것들이지만 인간윤리에서 어긋난다. '블랙 뮤지엄'은 인간윤리에서 벗어난 혁신기술이 무차별로 사용됐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3. 그리고 놀라운 점은 '블랙 뮤지엄'은 앞서 언급한 나의 편견에도 반기를 든다. 이것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중반에는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부부도 등장한다. 그리고 잠깐 언급하는 '백인우월주의자'는 추악한 변태처럼 묘사된다. 놀라울 정도로 인종에 대한 문제를 배제했다. 이 에피소드는 인종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인종차별? 그거 너무 구식 아니니?"라고 말한다. 그런 태도를 통해 이 에피소드는 인종차별을 비판한다. 쿨내가 나면서도 멋있는 방식이다. 이 에피소드가 인종차별 이슈를 대하는 방식은 많은 영화들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4. 지금까지 '블랙미러' 에피소드 몇 개를 보면서 이제서야 이 녀석의 정체성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블랙미러'에 등장하는 기술들은 현재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반영하고 있지만 대단히 앞서 나갔고, 그래서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1968년에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등장한 HAL9000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저게 말이 돼?"라며 봤을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사람들이 SF영화를 보면서 "저게 말이 돼?"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뤄진 현재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제 저녁 대전방송에서는 KAIST 로봇 '휴보'가 저녁 뉴스를 진행했다고 한다. 연구기관들은 코로나19 역학조사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해 동선을 파악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아주 빠른 속도로). 우리가 사는 현재는 오래전 사람들이 상상했던 SF 세계다. 그 의미는 '블랙미러'가 상상한 SF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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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는 전편보다 속편이 더 훌륭한 영화다. 그러나 전편 역시 그 나름대로 매력이 훌륭한 영화다. '터미네이터'는 전편과 속편이 합쳐져서 거대하고 정교한 타임 패러독스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전편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B급 감성이 물씬 풍기는 SF 액션 스릴러가 된다. '터미네이터'가 액션 스릴러로써 정체성을 갖는 방법은 간단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있고 극단적으로 쫓고 쫓기는 것이다. 이 간단한 플롯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쫓는 자는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는 로봇이 됐고 로봇을 등장시키기 위해 미래라는 배경도 끼어들었다. 아마 제임스 카메론도 '터미네이터'가 거대한 유니버스를 갖추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터미네이터'에서 미래는 타임 패러독스와 로봇을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다. 

2. 쫓고 쫓기는 플롯은 단순하지만 아주 재미있다. 그것은 액션 스릴러 장르로써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여지가 있다. 그 '새로운 이야기'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영화 '사냥의 시간'이다.  '사냥의 시간'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쫓기는 청춘들과 쫓는 암살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다. 그리고 충분히 '터미네이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른 노선을 택한다. 오히려 '쫓고 쫓기는' 오래된 플롯을 도구로 삼아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데 쓴다. 이것은 장르영화의 틀 안에 메시지를 녹인 것이며 전작인 '파수꾼'과 장르영화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와 같다. 꽤 어려운 도전을 한 셈이며 그럭저럭 잘 해냈다. 

3. '사냥의 시간'은 배경이 되는 시대부터 의미심장하다. 이 시대는 일단 '가상의 미래'다. 대략 "경제가 어렵다"라는 설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대단히 낯이 익다. 영화에 간간히 등장하는 뉴스들로 미뤄봤을 때 이 시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나라 경제가 파탄난 대한민국이다. 1997년을 살아본 세대라면 영화 속 풍경들이 그리 낯설진 않을 것이다. 물론 IMF의 기억을 되돌려봐도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다. '원화'가 더 이상 가치를 상실하고 달러로 거래하는 시대라면 원 가치는 영화 속 대사처럼 '휴지조각'이 됐다는 의미다. 추측해보건대 영화 속 시대는 IMF 당시 금모으기 등 이것저것 하지 않고 그대로 쭉 살았을 경우 맞이했을 '현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이는 가상의 '미래'가 아닌 가상의 '현재'가 될 수 있다. 

4. IMF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까지 살았다면 정말 나라는 파탄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시대를 사는 젊은이라면 정말 보석상이라도 털지 않는 이상 먹고 살 길이 막막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준호(이제훈)의 일행은 킬러 한(박해수)에게 쫓기기 전부터 이미 쫓기는 삶을 살고 있었다. 때문에 킬러 한에게 쫓기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쫓고 쫓기는' 플롯이 필요했지만 그것은 불확실한 시대 속 청춘들의 삶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도구에 불과했다. 게다가 준호 일행이 도둑질을 하며 훔친 것은 달러였고 한이 찾으려는 것은 하드디스크다. 상징적이긴 하지만 애시당초 둘은 지향점이 다르다. 그래서 곽철용 선생의 말처럼 "이 경우엔 원래 쇼당이 안 붙"는다. 

5. 추격전은 결국 도구로 전락했지만 감독은 최대한 재미를 끌어내려 시도한다. 닌자처럼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한의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 그의 얼굴에는 유독 역광을 심하게 줬고 미세먼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안개와 붉은 조명은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한껏 살려낸다. 특히 몇몇 장면에서는 사소한 리듬을 살려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준호 일행이 주차장에서 차를 훔칠 때 반복되는 자동차 경보음이 긴장감을 더한다. 그리고 준호가 바에서 전화벨 소리를 듣는 장면도 소리의 리듬으로 긴장을 주는 장면이다. '사냥의 시간'에서 추격전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그 한계 속에서 재미를 주려는 시도는 충분히 했다. 그리고 그 시도에 나는 만족한다(물론 '터미네이터'에 비할 바는 아니다). 

6. 극단적인 추격전 끝에 준호는 한에게 죽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한에게 죽은 봉식(조성하)을 쫓는 형 봉수(조성하)의 일행이 한을 쫓아 공격한다. 사냥꾼(=한)이 또 다른 존재의 사냥감이 된 순간이다. 추격전에서 준호는 쫓기는 자이긴 했으나 '주체'였다. 그러나 봉수의 등장으로 준호는 주체의 위치를 빼앗긴다. 그 가운데 준호는 겨우 살아남아 홀로 대만으로 향했다. 그러나 친구들을 모두 잃고 도착한 대만에서 그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애시당초 이 추격전은 준호가 주체인 싸움이 아니었다. 준호의 일행이 훔친 것은 도박장 환전소 금고의 돈이었으나 누구도 그 돈을 쫓진 않았다. 즉 준호와 그 일행들은 모든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자신과 상관도 없는 싸움에 내던져진 것이다. 

7. 결국 혼자 남아 도망친 준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이것은 조금 꼰대같은 결론이 될 수 있다. 준호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를 한을 죽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치 도망치려 한 현실에 피하지 말고 맞서라는 '꼰대'스런 메시지처럼 들린다. 온전히 청춘들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파수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사냥의 시간'은 청춘들의 불안과 좌절에 대해 시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랬다면 영화는 끝에 가서도 시대가 바뀌어야 함을 요구해야 한다. 여느 청춘들처럼 친구들과 있을 때 욕이나 찍찍 해대지만 결국 친구를 좋아하고 가족을 그리워 하는 아이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시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 청춘들 스스로에게 답을 찾을 것을 요구함은 "시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패배선언인지 꼰대의 도피인지 물어보고 싶다(차라리 '패배선언'이라고 하는 것이 덜 비겁해보인다). 

8. 궁금한 장면이 하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2020년 4월 23일 오후 9시16분) 온라인에서 진행 중일 GV를 본다면 다행이겠지만 귀찮아서 그냥 혼자 궁금증으로 남겨둔다. 영화에서는 네 친구 중 상수(박정민)와 기훈(최우식)이 죽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수는 준호의 꿈을 통해 죽었음을 짐작할 뿐이고 기훈은 빈대(김원해)의 대사에서 추측할 뿐이다. 차라리 장호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의 죽는 모습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해가 쉬웠을텐데 굳이 상수와 기훈만 죽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의문스럽다. '친구를 잃었다'와 '친구가 죽었다'는 분명 맥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수와 기훈은 '잃은 것'으로, 장호(안재홍)는 '죽은 것'으로 묘사한다. 장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상실'을 '죽음'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싶었지만 기훈의 죽음은 장호의 죽음 이후에 언급된다(빈대의 대사와 자전거 가게의 상상). 이건 참 궁금한 대목이다. 

9. 결론: 추격전(장르영화)의 재미와 청춘에 대한 관찰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가 보인다. '균형을 잘 잡았는가'라는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보다는 위로와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장르영화의 범주에서 벗어나 이 영화를 보는 일은 피로하다. 과연 세상의 모든 청춘들이 자신을 쫓아오는 킬러와 맞서 싸울만큼 여력이 남아있을까? 킬러를 없애고, 돈을 훔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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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NUPE 2020.04.24 02:4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 캐나다처럼 넓은 나라에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집까지 차로 1시간 이상 나가야 한다면 외로울지 안락할지 궁금하다. 때로는 사람으로 북적대는 도시를 떠나고 싶기도 하고 그래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게 좋기도 하다. 아무튼 사람이란 참 복잡한 존재며 그것들과 관계하는 일도 복잡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찾는다. 생존을 위한 수행이건 잠시동안 일탈이건 자연에서 지내는 것은 여러 재미난 이야기를 만든다. 캐나다산 넷플릭스 영화 '서바이벌 캠프'를 접했을 때 기대한 것은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과 같은 것이었다. 미니멀하지만 끈끈한 긴장감을 가진 재미있는 정글영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서바이벌 게임'보다 더 미니멀하다. 

2. 코로나19 시대에 '서바이벌 캠프'를 보는 것은 묘한 기분이 든다. 주인공 앙투안은 평상시 가족들과 생존훈련을 할 정도로 생존에 관심이 많다.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핵전쟁, 좀비 등 온갖 재앙에 대비하는게 일상이다. 그러다 평소 즐겨보던 생존 전문 유튜버 알랭의 서바이벌 캠프에 참여하게 되고 알랭이 사는 외딴 마을로 오게 된다. 하나의 목적을 가진 몇 명의 사람들이 외딴 장소에 모였다. 비교적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우연한 사고로 한 사람이 죽고, 이들의 목적에는 균열이 생긴다. 그때부터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두 집단의 갈등의 시작된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사고를 묻으려는 사람이 있고 밖으로 나가 사고를 알리려는 사람이 있다. 묻으려는 사람은 알리려는 사람을 공격하고 알리려는 사람은 도망친다. 그 추격전이 주된 이야기다. 

3. 나는 흔히 장르영화는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포영화는 관객을 무섭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에로영화는 야해야 한다. 그리고 액션영화는 힘있게 싸워야 한다. 그래서 잘만 킹의 에로영화를 좋아하고 가렛 에반스의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서바이벌 캠프'는 비교적 목적에 충실하려고 하는 편이다. 쫓고 쫓기는 긴장감을 주려고 하고 대자연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모습도 잘 보여준다. 특히 표면이 얼어붙은 강(호수 말고)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를 통틀어 강을 건너는 장면은 가장 무서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지나치게 미니멀하다. 캐나다 대자연의 스케일과 그에 상반되는 인간의 초라함은 잘 보이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도 명분이 없다. 새삼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이 '개쩌는갓엠퍼러레전드띵작'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4. '서바이벌 캠프'의 후반부에 가면 한 번 뒤통수를 크게 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감히 예상하지 못했고 "이거 왜 이래?"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것은 신선한 반전이다. 고전적인 형식과 전개를 가져다 쓴 영화지만 중요할 때 고전적인 것을 파괴했고 새로운 전개를 이어간다. 이 영화의 정체성이 여기에 있다. 고전적인 것의 재해석. 과거 "캠핑을 갔는데 목숨이 위협받는다"는 식으로 시작하는 서바이벌 영화보다는 "천재지변에서 살아남으려고 자연으로 갔더니 인간이 가장 큰 재앙이다"라는 식은 코로나19 시대에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가볍게 들어도 상관없긴 하다. 소소한 비틀기는 이야기에 깨알같은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5. 결론: 소소한 재미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심심하다. 대자연 서바이벌 무비에서 바라는 배경의 스케일이 썩 살지 않고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도 밋밋하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몇몇 행동은 쉽게 납득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깨알같이 재미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고 요즘 시대의 생존영화라는 점도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 러닝타임도 짧으니 가볍게 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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