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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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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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니로'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9.11.11
    [스포주의] '아이리시맨' 간단 리뷰
  2. 2019.09.26
    '조커' 간단 리뷰
  3. 2015.09.14
    '인턴' 초간단 리뷰
  4. 2013.02.21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사랑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면?
  5. 2011.03.24
    '미트페어런츠3' - 중년이여, 극장으로 오라!!

1. 미국영화에서 분명 갱스터 영화가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히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가 그 정점(혹은 시작)을 찍었고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도 그 시대의 어딘가에 있었다. 그리고 마틴 스코세이지가 만든 몇 개의 영화들도 갱스터 영화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다.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카지노' 등은 그의 대표적인 갱스터 영화다(여기에 '갱스 오브 뉴욕', '뉴욕, 뉴욕' 등을 포함해도 좋다). 마틴 스코세이지를 정의내리기 위해서는 '갱스터' 말고 하나 더 언급할 것이 있다. '뉴욕'이다.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한 곳이자 여러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곳이다. 그리고 뉴욕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뮤즈와 같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갱스터 영화만 만든 것은 아니다. 당연히 뉴욕을 배경으로만 영화를 찍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뉴욕'과 '갱스터'다. 만약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세계를 결산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작품이 나와야 할까? 당연히 뉴욕의 갱스터들 이야기다. 

2. '아이리시맨'은 50년대부터 현재까지 뉴욕 뒷골목에서 페인트공(마피아들의 은어)으로 지낸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니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병원에서 요양 중인 프랭크가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트럭 운전수로 지내는 프랭크는 운송하던 고기를 빼돌렸다는 이유로 회사에 고소를 당한다. 이때 도움을 받은 변호사 빌 부팔리노(레이 로마노)와 가까워지면서 그의 사촌 러셀(조 페시)과도 가까워진다. 러셀은 지역 내 여러 사업에 관여하는 큰 손이고 프랭크는 그의 굳은 일을 돕게 된다. 그러다가 러셀의 소개로 화물운송노조위원장인 지미 호파(알 파치노)와 알게 되고 그의 일을 도와주게 된다. 러셀과 지미는 가까운 듯 하지만 경계를 한다. 둘의 묘한 관계 사이에서 프랭크는 갈등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3. 이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할 수 있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실제사건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이다. 그는 미국의 화물운송노조위원장이자 노동 운동가로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인물이다. 영화 속 내레이션대로 그는 대통령 다음으로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실종사건이 영화의 핵심이라면 이 영화는 간단하게 끝날 영화였다. 그러나 지미 호파 실종사건은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프랭크다. 때문에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을 설명하는데 영화는 많은 부분을 할해한다. 당시 마피아와 노조가 권력을 쥐고 있던 50~60년대 미국 정치사를 배운 사람이 아니라면 영화만 봐서는 쉽게 따라가기 어렵다. "공부를 해야 하나" 고민도 해봤지만 결국 이 영화는 프랭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용없게 된다. 이 이야기는 마피아와 노조의 권력싸움 사이에 놓인 프랭크의 이야기다. 

4. 그렇다면 '프랭크'라는 인물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에서 전투를 한 적이 있으며 우직한 다혈질이다. 성격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으나 누가 딸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쫓아가서 박살을 내놓는 성격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는 러셀의 페인트공이었으나 지미의 신임을 얻으면서 노조 지부장까지 지내게 된다. 러셀과 지미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서 프랭크는 아주 바빠진다.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을 전해야 되고 설득도 시켜야 된다. 흡사 '아수라'의 한도경(정우성)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만큼 처절한 상황은 아니다. 그는 묵묵히 양 측을 설득하며 틀어진 두 세력을 봉합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도 알 수 있지만 프랭크는 신의가 두텁고 충성스런 사람이다. 자신과 관계를 쌓은 보스를 쉽게 배신하지 못한다. 그에게 그런 성격은 천성에 가깝다. 

5. 앞서 언급했 듯, 이 영화는 프랭크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다. 이야기가 끝나고 현재로 돌아왔을 때 프랭크는 혼자서 걷지도 못하고 약도 챙겨먹지 못하는 노인이 돼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 정작 딸들과의 관계는 멀어졌다. 경찰들은 "이제는 지미 호파 실종사건의 진실을 말해도 되지 않냐. 당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은 모두 죽고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러셀과 안젤로(하비 케이틀), 면도날(바비 카나발레), 토니 살레르노(도미닉 롬바르도치) 등은 모두 늙어서 죽고 없다. 그럼에도 그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신부님 앞에서도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가 끝까지 지키는 신의, 마피아들의 의리라고 말하던 그것은 이제 허망한 옛날의 것처럼 느껴진다. 

6. 프랭크는 요양원 안에서 옛날 사진들을 보면서 가족과 과거를 추억한다. 그의 시대에 대단했던 인물인 지미 호파는 현재 미국 젊은이들에게 '누군지도 모르는 아저씨' 정도다. 그는 여전히 자녀들과 화해하지 못했고 의미없는 비밀을 지킬 뿐이다. 화려하게 시대를 누볐던 프랭크에게 주어진 공간은 억지로 열어놓은 문 틈 사이의 작은 공간뿐이다. 갱스터 영화의 엔딩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허망하다. 이 엔딩에는 어떤 극적인 것도 없다. 정확히는 극적인 것을 일부러 배제한 모양새다. 사실 갱스터 영화에서 극적인 요소를 주는 방법은 주인공이나 그의 최측근이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는 경우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대부분 늙어죽거나 늙어 죽기 직전까지 살아있다. 죽어서 멋있는 엔딩이 아닌 살아서 허망한 엔딩인 셈이다. 

7. 이 엔딩을 통해 영화는 수많은 세기의 영광을 벗겨낸다. '뉴욕'과 '갱스터'로 대표되는 마틴 스코세이지 자신의 필모그라피 속 영광과 케네디 시대의 풍요를 벗겨낸다. 더 나아가 이민자와 총기(=범죄)로 쌓아올린 미국의 풍요도 벗겨낸다. 이민자의 나라는 세계 최강대국이다. 이 나라에는 많은 우방이 있다. 그러나 그 우방은 언제고 사라질 허망한 것들이다. 언젠가 그들이 사라졌을 때 남은 것은 스스로 들어갈 관을 짜맞추고 문틈 너머 들어올 죽음을 기다리는 늙고 허망한 자신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3시간동안 뉴욕 속 이민자 갱스터의 성공을 보여준 모양이다. 이것은 마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라스트 미션'을 연상시킨다. '더티 해리'로 대표되는 영광의 매그넘 시대를 스스로 끝내버린 노인과 마찬가지로 마틴 스코세이지도 그 영광을 끝내려 한 모양이다. 

8. 이렇게 말을 했지만 영화는 끝내주는 몰입감을 자랑한다.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한 남자의 인생을 보는 맛이 있고 그 인생을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도 있다.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 하비 케이틀 등으로 이어지는 '연기 거장'들의 향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를 완벽하게 만든다. 특히 자신이 돋보일 때와 조화를 이뤄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연기는 감동스러울 지경이다. 넷플릭스라는 게 핸디캡이 아니라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유력후보라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도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나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보다 '아이리시맨'의 로버트 드니로 연기가 더 좋다). '아이리시맨'은 진정한 고수들의 향연이다. 

9. 결론: 난해한 미국 정치사를 공부하고 간다면 더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프랭크의 삶에서는 늙어버린 가장의 모습도 보이는 만큼 한국의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한 남자의 삶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이 영화는 '대부'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미국 근현대사에 종말을 선고한 영화다(그런 영화들에 종말을 선고할 수 있는 사람은 마틴 스코세이지 정도다). 그렇기에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어쩌면 이 영화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어제의 용사들을 잔뜩 모아놓고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한다. 지미 호파도, 케네디 대통령도, 마피아도 모두 잊혀진 새로운 시대. 


추신) 최근 마틴 스코세이지가 마블 영화들을 두고 한마디씩 한 모양이다. 내가 아는(=내가 본 영화들을 만든) 마틴 스코세이지는 오래된 시대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던 사람이다. 그는 늘 새로운 시대에 관심이 있었고 그 때문에 현재에도 도태되지 않고 거장으로 남아있다(20세기의 거장들 중 도태된 사람을 많이 봤다). 그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에도 '시네마'가 이어지길 바라는 듯 하다. 영화가 줄 수 있는 무한한 즐거움과 매력이 CG액션과 '체험'에 국한되지 않기를 바라는 듯 하다. 히어로 영화가 세계 영화산업의 주류가 됐지만 그래도 '영화'는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작가들은 시대와 인간을 고민할 것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낼 것이다. 거기에는 과거를 빌어 현재를 바라본 마틴 스코세이지의 공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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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칭송받을 수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에서 그것은 '차별' 당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우리나라에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겪는 일이기도 하고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들, 성소수자들도 일상에서 '개성'이라며 인정받는 것보다는 차별당하고 무시 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가정이나 학교 혹은 직장에서 차별 당하고 무시 당한 존재들은 그것에 좌절에 무너지거나 그것을 극복한다. 다만 아주 소수의 경우로, 차별 당한 존재들은 괴물이 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 중 많은 이야기들은 이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대체 "괴물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을 한다. 토드 필립스의 영화 '조커'는 히어로무비 역사상 최고의 빌런으로 손꼽히는 조커를 우리의 일상 곁으로 끌어내린다. 가히 무자비한 짓이라고 볼 수 있다. 

2.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직업은 '출장 광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나왔고 어머니 페니 플렉(프랜시스 콘로이)의 집에 얹혀서 지낸다(우편함에 적힌 집주인 명의가 페니 플렉이다). 광대(혹은 코미디언)라는 직업은 앞서 말한대로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슬프거나 아픈 일이 있어도 늘 웃어야 한다. 심지어 광대는 울고 있어도 웃는 표정이고, 반대로 웃고 있어도 우는 표정이다. 다시 말해 광대는 늘 차별에 노출돼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예능 토크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코미디언들이 길을 걷다 초등학생들에게 반말로 이름 불리는 경우를 여럿 들을 수 있다(과장되기도 했겠지만 영 일어나지 않는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TV에 나와서 웃음을 주는 직업들에게 이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넓은 범주에서 '차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조금만 과격한 시대에 살았다면 무명 코미디언도 길을 가다 나쁜 아이들에게 이유없이 얻어 터질 수 있다. 

3. 아서는 광대라는 위치에 걸맞게 뭐든지 반대다. 남들과 웃음코드도 다르고 출구로 들어가려고 한다. 일부러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괴롭거나 슬플때마다 웃는다(병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분명 다수와 다른 사람이며 그 때문에 무시당하고 얻어터진다. 그동안 조커의 매력은 이런 아이러니에서 있었다. 끔찍한 짓을 하면서 웃고 공포와 혼란을 조장하지만 정작 본인은 춤을 춘다. 영화는 이런 아이러니의 기원을 '광대'라는 분장에서 찾고 있다. '배트맨'이나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대목을 영화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 '조커'는 지극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다. 유약했던 아서 플렉이 어떻게 영화 사상 최악의 빌런으로 거듭나는지 보여주는게 이 영화의 목적이다. 그가 광대라는 점과 주목받고 싶어한다는 점, 그리고 웨인 가문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마지막은 배트맨 영화들에서 언급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그것들을 찾아가는데 현미경을 가져다 댄 것처럼 아주 성실하다.

4.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충실하게 짜여진 캐릭터와 함께 그것을 표현해내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다. 이 영화는 배우가 영화 그 자체인 작품이다. 호아킨 피닉스는 목소리와 표정뿐 아니라 몸짓과 골격 하나까지 완벽하게 아서 플렉,(a.k.a. 조커)이 된다. 눈은 울면서 입만 웃거나 눈은 화내면서 입은 미소짓는 표정들은 가히 압권이다. 여기에 굽은 어깨뼈나 기이하게 패인 갈비뼈는 캐릭터의 기괴함을 더 잘 표현해준다. 정말 "이 배우는 뼈도 연기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아서 플렉을 지나 조커에 이르렀을때 변화도 놀랍다. 영화 내내 "이토록 유약한 남자가 어떻게 조커가 될까" 궁금했다. 그런데 아서 플렉이 조커에 이르는 과정은 일종의 '해방'이다. 어깨뼈를 짓누를 정도의 차별적 시선과 갈비뼈를 패일 정도로 만드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정말로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다름이 아니라 '윤리 ·도덕적으로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는 이 모든 것,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는 해방을 모두 연기해낸다. 가히 놀라운 연기다. 

5. 상업영화적으로 생각하자면 조커를 더 조커답게 할 대항마(빌런)는 반드시 필요할 수 있다. 록키(실베스터 스탤론)에게는 이반 드라코(돌프 룬드그렌)가 있고(혹자들은 '아폴로' 얘기를 하는데 나는 이반 드라코다) 슈퍼맨에게는 렉스 루터가 있다. 서도철 형사에게는 조태오가 있고 마석도 형사에게는 장첸이 있다. 강백호에게는 서태웅이 있고 하니에게는 나애리가 있다. 주인공이 있다면 그를 돋보이게 할 빌런은 있는 것이 좋다.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이끄는 방법이다. 그런데 '조커'에서는 그런 대항마가 없다. 토마스 웨인(브레트 컬렌)조차 조연에 불과하고 브루스 웨인은 아직 꼬마다.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의 역할도 크지 않다. 이 영화에는 오직 조커만 있다. '빌런이 있다'는 발상은 앞서 말한대로 상업영화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상업영화적인 것'을 포기했을까? 그저 어려운 길을 갔다고 보는게 맞다. 빌런을 포기하고 조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해한다. 그와 동시에 "너희 중에도 조커가 있다"며 조커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이보다 무시무시한 저주가 있을까?

6. '조커'는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많다. 영화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의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가진 자들의 오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있다. 혼돈과 불안의 도시 고담은 '배트맨'에도 등장한 대목이다. 그 시대에 대해 영화는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본다. 혼돈과 불안의 시대에서 무정부주의적 행동은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 그것은 마치 폭탄처럼 잠자코 있다가 뇌관을 건드리기만 하면 겉잡을 수 없이 터질 것이다. 분명 이것을 두고 '(부자) 트럼프 시대에 대한 경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만 다소 구차해보여서 거기까지 가진 않겠다. 빈부격차와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는 정말로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시절부터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조커가 등장하는 과정이 '모던 타임즈'를 참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7. 결론: 영화 '조커'가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봐서 반갑긴 했지만 조커의 매력이 반감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커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크나이트'에서처럼 '이유없이 미친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조커'를 계기로 '이유있는 미친놈'이 됐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유가 있어도 미친놈은 미친놈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고 조커의 매력을 더 배가시킨 것은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힘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히스 레저의 조커마저 지워버리게 만들었다. 이제는 히스 레저의 조커를 떠나보내도 될 것 같다. 


추신1) 만약 사람들이 "영화 '조커'를 아이맥스로 보는게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가능하면 큰 화면가 짱짱한 사운드에서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 '조커'는 스케일이 큰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한 개인에게 집중하는 영화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 분노, 좌절, 광기 등 오만 감정에 온전히 몰입하는데 큰 화면과 짱짱한 사운드는 큰 도움이 된다. '조커' 덕분에 아이맥스의 새로운 활용 가치를 알게 됐다. 그리고 한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스펙타클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추신2) 끝내주는 노래가 많이 나온다. 예고편 영상에도 들어간 지미 듀란티의 'Smile'도 그렇고 엔딩크레딧 때 흘러나온 'Send in the Clowns'도 좋다. 그런데 후자에 나온 곡은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 음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대결은 지금부터다. '조커'를 보면서 김연아를 떠올릴까, 아니면 김연아를 보면서 '조커'를 떠올릴까. 그게 궁금해서 이 글을 쓰기 전에 김연아 소치 동계올림픽 경기영상을 찾아봤다. ...그래도 아직은 김연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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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리 생각해도 이 멋진 플롯을 왜 우리나라 작가들이 안 써먹었나 싶다. 역시 당장에 돈 되는 것만 갖다 만드는 한국의 대중문화답다.


2. '인턴'은 플롯이나 이야기나 자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세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기 충분한 이야기다. 차분하게만 만들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돈 되기 충분한 이야기다.


3. 특히 경로우대사상이 사라지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강력추천할만하다. 아마 그런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주변의 모든 지인들에게 반드시 보라고 권유할 것이다. ...이건 정말 한국적인 이야기다.


4. 사실 나는 정말 경로우대사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같은 어르신이라면 충분히 우대해드리고 싶다. 모름지기 어른은 저래야 한다.


5.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주의깊게 보진 않았지만 그것의 속편으로 둬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6. 앞서 말한대로 이 이야기가 한국에서 가능할지 고민해봤다. 만약 한국식으로 했다면 분명 저런 쇼핑몰은 어느 대기업에 인수합병 됐을 것이다.


7. '이메일 에피소드'가 영 튄다. 아무리 봐도 저건 작가의 의도로 들어간 건 아닌 것 같다. 이 차분하던 영화가 갑자기 그런 슬랩스틱을 할리가 있나.


8. '리쎌웨폰'에서 날라다니던 르네 루소가 벌써 할머니가 됐다는 사실이 어쩐지 서글프다.


9. 쥴스 오스틴(앤 해서웨이)가 벤 휘태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장면은 매우 흥미롭다. 이 장면에서 벤은 꼰대질하듯 조언하지 않고, 한참동안 쥴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 ...작가가 이렇게 섬세한 사람이다.


10. 아무리 미국이라도 일 많으면 정규직은 7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한다. ...그런데 인턴은 10시10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저런 인턴쉽이라면 할만하지 않겠는가?


11. 다소 극단적으로 나누는 것 같지만 미국의 기업문화는 너무 부럽다. 스타트업 기업이라 그런지 몰라도 확실히 그쪽 동네 회사는 어딘가 프리한 구석이 있다. 


12. 결론: 어른이 공경을 받으려면 어른다운 경험과 기품이 필요하다.



추신) 영등포CGV 7관 C열 9번, 10번... 팝콘을 하도 시끄럽게 먹어서 난 무슨 개가 사료 먹는 줄 알았다. B열 7, 8번, 11, 12번. ...떠들려면 커피숍을 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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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중 몇몇은 흔히 말하는 '연애할 때 다 퍼주는 스타일'이다. 필자도 역시 그렇다. 사랑을 시작할때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딱 그 사람만 보이고 그 사람만 사랑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엔 그게 좀 오래 가는 편이다. 돌이켜 보면 늘 그래서 이별이 찾아올때도 혼자 사랑하고 있다가 상처받게 되기 마련이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며 그런 연애가 참 바보같고 '스스로를 상처받게 하는 길'이란 걸 깨닫게 되지만 마음의 움직임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떤 바보같은 유부남들은 아내말을 듣기 위해 부모, 친구들과 갈등을 벌인다. 결혼을 해본 적은 없지만 아내를 사랑해서 그러던지, 아니면 안정된 가정생활을 꾸리기 위해 그럴거라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아내말을 잘 들어 아내의 마음을 달래려는 그 순간 부모와 친구의 마음에는 상처가 생길지도 모른다. 마치 '애정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그 마음은 공평하게 모두에게 향하는게 힘들기 마련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영화 속 팻(브래들리 쿠퍼)도 그렇다. 아내의 외도로 인한 폭력사건 때문에 정신병원에 8개월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심사가 뒤틀려있다. 아마도 그 8개월 동안 팻은 "아내에게 큰 잘못을 했다. 반성해야지. 여기서 나가면 아내에게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정신병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 갇혀있다는 자체가 꽤 심심하고 잡생각 많이 든다는 건 알고 있다. 8개월 동안 팻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을 했을 것이고 아마도 그 반성은 오랜 시간 숙성되며 어느 정도 왜곡이 있었을거라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뒤틀려있고 닫혀있고 여전히 폭력적이다. 흔히 말하는 조울증이다. 그는 그 마음을 고쳐보려 운동도 하고 다른 여자에게 눈길도 안 주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영화 내내 팻의 마음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다. 


그런 그에게 티파니(제니퍼 로렌스)가 찾아온다. 친구 로니(존 오티스)의 처제인 티파니는 남편을 사고로 잃었지만 비교적 쿨한 여자다. 그 이유는 영화로 확인하길 바란다. 어쨌든 티파니의 팻은 관객들조차 쉽게 알아차릴 정도로 닮아있다. 둘 다 어딘가 심기가 뒤틀려있다. 이 뒤틀린 남녀는 첫 만남 이후 매일 아침 조깅때마다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투닥거린다. 



현대사회에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받는다.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상처주는 사람 역시 있다는 것이고 상처받은 사람은 다시 말해 상처주는 사람도 된다. 심사가 뒤틀린 팻과 티파니는 그 뒤틀린 심기가 모두 타인으로 인한 상처에서 비롯됐지만 한편으로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다. 


정말 '애정량 보존의 법칙'이라는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영화 보다가 생각난 단어다. 상처받은 만큼 상처를 주고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이 부족해진다. 즉 '한 연인에게 모든 사랑을 베풀기엔 사랑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만약 당신이 줄 수 있는 사랑의 양이 정해져 있다면, 그 사랑을 어떻게 당신 주변에게 나누겠는가? 어떤 방법으로 나눌 것인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있다. 



잘 알고 있다.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 형을 사랑한다. 내 친구들 모두를 사랑하고 클로이 모레츠, 이연희, 레인보우 조현영도 사랑한다. 짜장면을 시켜도 단무지, 양파 외에 특별히 김치를 내어주는 우리 동네 중국집 사장님도 좋아하고 10년 넘게 엘지팬이라 주름이 깊어진 슈퍼 주인아저씨도 좋아한다. 


아마 당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어떤 것들, 심지어 평소 좋게 본 영화배우들, 명품가방, 요리 등등 여러가지를 사랑할 것이다. 당신은 그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게 어떻게 애정을 표현하는가? 때로는 사소한 어떤 말들로 상처를 주거나 의도치 않게 무관심해지고 잊고 지낸다. 앞서 말한대로 우리의 '사랑'은 정해진 양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지만 상처를 주게 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상처주지 않고 모두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내놓은 답은 '그냥 살아라'라는 것이다. 연애 처음하는 애송이처럼 연인에게 다 퍼주는 바보짓 하지말고 연인을 사랑하는 그만큼 삶을 사랑하고 살라는 것이다. '별 거 없지만 있어보이는 척' 하는 연애지침서에 보면 나오는 이야기지만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에 대해 공부하고 이것저것 다 퍼주는 남자보다는 자기 일에 충실한 남자가 매력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뭐 그렇다고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 반쯤 풀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에 집중하다가 피곤하다는 듯 엄지와 중지로 양 미간을 어루만지며 인상 쓸 필요는 없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삶이 아닌 당신 자신을 위한 삶을 살면 된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그걸 제일 못하는 사람이 필자다. 정말 연애를 하면 그 사람밖에 안 보여서 삶의 모든 사이클을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에 맞춰버린다. 참 바보같은 짓이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주변인들에게 소홀하게 되는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주변과의 관계가 오래되며 내가 받은 상처만 기억하게 되고 뜸해지는 표현에 익숙해지게 된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애정량은 줄어들게 된다. 우스개소리로 하는 '솔로가 오래되면 연애세포가 죽는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애정량이 줄어들면 사랑이 곁에 있어도 사랑인 줄 모르고, 인연이 곁에 다가와도 인연인 줄 모르게 된다. 솔로가 오래되도 연애세포가 죽지 않게 할려면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며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면 된다. 그러면 그때 자연스럽게 'ASKY(안생겨요)'를 탈출하게 될 것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로맨틱코미디다. 그런데 그것은 연인과의 사랑에 대한 로맨틱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자의 로맨틱코미디다. 요즘 '힐링'이 대세라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삶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아주 좋은 힐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잊었던 소중한 것들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여담) 개인적인 이야기 좀 하자면 지금 필자는 소중한 사람과 인연이 끝날 위기에 쳐해져 있다. 그 사람이 해준 몇 가지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그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이 영화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너무 늦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에게 "네가 날 소중하게 생각한만큼 나도 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소중한 만큼 날 생각하는 너 역시 소중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다. 내 나이 30대 중반인데... 이제 어떻게 사랑하는지 좀 알 것 같다. 너무 늦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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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영화를 지배한다"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가 개봉할 때 였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라는 당대의 거물급 배우들이 출연했으니 "연출력은 개뿔"이라며 영화를 집어삼킬 명연기를 펼쳤을 것이다. 이후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성룡의 영화들조차 "감독은 개뿔"이라며 연기력으로 영화를 지배해버린 경우였다.

배우가 영화를 지배한 경우는 어찌 보면 '월권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배우가 주체할 수 없는 강인한 포스로 감독의 연출력을 압도해버린다면 그 영화는 이미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배우의 영화'가 되어버린다.

가만 생각해보니 필자는 <미트 페어런츠>의 시리즈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미 앞 시리즈에서 만난 거물 셋(로버트 드니로, 더스틴 호프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이 어떤 연기를 펼쳤는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미트 페어런츠3>에서 이들 셋은 그야말로 죽은 영화도 살린다는 연기를 펼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이름값만으로도 죽은 영화 살린 셈이다. 여기에 '사실상 곁다리'인 제시카 알바와 오웬 윌슨, '카메오 주제에 미친 존재감' 하비 케이틀은 쏠쏠한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미트 페어런츠3>은 평범한 가족코메디의 외피를 쓰고 있다. 갈등하고 싸우고, 우연히 화해하고, 감동주고,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필자가 전작을 안 봐서 모르겠는데, 이거 원래 이렇게 음담패설이 작렬하는 코메디였던가? 이 정도 음담패설이면 저 옛날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같은 화장실 유머 수준으로 봐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대놓고 가족과 부부애를 다룬 가족코메디영화에서 부부성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빠진다면 섭섭할 것이다. 그러나 성생활을 코미디로 푼다고 해서 이런 지저분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건 뭔가 머리를 안 쓴 느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이야기는 정말 특별할 것 없는 가족코미디 영화가 되어버렸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배우로써 한 평생 거칠게 살아온 로버트 드니로, 더스틴 호프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아늑한 집 거실에 앉아서 차 한 잔 기울이는 장면은 세상풍파 거친 세월 다 보낸 거물들이 "우리가 왕년엔 어마어마했었지"라며 담소를 나누는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 드는 장면이다. 게다가 로버트 드니로와 하비 케이틀이 만나 멱살잡이 하는 장면도 왠지 이들이 비열한 거리 한 가운데 선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이제 이쯤에서 "과연 누가 이 영화를 좋아할까?"를 생각해보자. 우선 코미디영화라면 관객을 박장대소하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필자는 영화 시작하고 최소 20분 동안은 무표정이었던 것 같다. 이것은 엄연히 개인차이긴 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개그코드가 세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시당초 10여년 전에 유행하던 화장실 유머를 들고 나온 것 자체가 이를 잘 증명해준다.

즉, 젊은 관객들에게는 어필하기 힘들다는 소리다. 저 옛날 <메리에겐...>을 보고 웃었던 관객들도 이제 최소 30대 이상이다. 그나마 <메리에겐...>보다 화장실 유머의 강도도 약하다. 그렇다면 대체 이 영화는 어떤 관객들이 봐야 하는가? 필자가 극장에 앉아보니 옆자리에 앉은 중년 아저씨는 꽤 재미나게 보시는 듯 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애시당초 중장년층을 위한 영화였다. 로버트 드니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더스틴 호프만을 추억할 수 있는 세대도 사실 지금의 20대는 아니다. 어쩌면 이건 반가운 일이다. 젊은 세대들에게 극장을 점령당해 "당최 볼 게 없어"라며 푸념할만한 어르신들이 간만에 극장에 갈 일이 생겼다. 그것이 비록 헐리우드 영화라 할지라도 한국의 어르신들도 좋아할만한 유머와 공감코드가 많이 배치되어 있다.

<미트 페어런츠3>은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개그코드와 이야기를 엮은 가족코미디다. 왕년에 거물이었던 배우들이 모여앉아 "웃겨줄까?"라며 판 벌인 영화다. 그런데 이 거물들도 어르신들이다 보니 그리 세련된 개그를 펼치진 못한다. 만약 극장가서 이 영화를 보고 아주 재밌게 웃고 나왔다면 나이불문하고 그는 '어르신'이다. 그래서 필자는... 별로다.

짤방은 늘 주관적이다.

여담) 실컷 리뷰를 쓰고 보니 정작 주연인 '벤 스틸러'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었다. 음... 벤 스틸러다, 그냥... 전편을 못 봐서...

미트 페어런츠 3
감독 폴 웨이츠 (2010 / 미국)
출연 로버트 드 니로,벤 스틸러,제시카 알바,오웬 윌슨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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