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블로그 이미지
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 2,906,515Total hit
  • 220Today hit
  • 277Yesterday hit

'마동석'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9.12.27
    [약간 스포] '시동' 초간단 리뷰
  2. 2019.12.23
    '백두산' 초간단 리뷰 (1)
  3. 2019.09.16
    '나쁜 녀석들:더 무비' 초간단 리뷰
  4. 2018.10.29
    '동네사람들' 초간단 리뷰
  5. 2018.08.03
    [약간스포] '신과함께:인과 연' 초간단 리뷰
  6. 2018.05.03
    '챔피언' 초간단 리뷰
  7. 2017.10.10
    마동석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1)
  8. 2016.08.16
    [스포주의] '부산행' 속편... Escape From Busan
  9. 2016.07.12
    '부산행' 초간단 리뷰
  10. 2012.01.27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 아버지의 욕망 (1)

1. 낡은 오토바이가 있다. 중고나라에서 싸게 산 녀석이고 잡다한 스티커가 붙어서 화려하다. 시동을 걸어보지만 매캐한 배기가스만 날리고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터덜터덜 굴러간다. 그러다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는 녀석은 화단 턱을 들이받고 넘어진다. 꽤 뜬금없이 시작한 영화 '시동'의 첫 장면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영화만들기의 기본기'에 가까운 복선이다. 이토록 성실한 복선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꽤 튼튼하고 성실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그리 튼튼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확고한 메시지를 가지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성실하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시동'은 보기보다 잘 만든 영화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걸 알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2. '시동'은 택일(박정민)의 오토바이처럼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자퇴한 택일부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동화 형(윤경호)의 말에 솔깃한 상필(정해인),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아온 엄마정혜(염정아). 엄마와 싸우고 가출한 택일은 역시 목적지가 없이(길을 잃은) 만원으로 갈 수 있는 아무 곳이나 가다가 군산으로 향한다. 군산에서 택일은 갈 곳 없는 경주(최성은)를 만나고 싼 맛에 밥 먹으러 갔다가 중국집에 배달부로 취직한다. 이 중국집에는 사연 많아 보이는 공사장(김종수)과 늘 비틀거리는 배구만(김경덕), 역시 사연이 심각하게 많아 보이는 거석이형(마동석)이 있다. 위에 등장한 인물들은 목적지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한 채 현재 보이는 것에만 충실한 사람들이다. '시동'은 목적지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어울려 목적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3. 여기까지만 들으면 '시동'은 참 감동적이고 훈훈한 영화다. 분명 영화 자체도 그것을 의도하고 기획됐을 것이다. 그런데 '시동'에서 훈훈함을 느끼기에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일단 거석이형의 '너의 아구창에 Knock Knock'을 피해야 한다. '거석이형'과 '택일이 오빠'의 관계는 여느 버디무비와 유사하다. 서로 으르렁대며 갈등하다가 봉합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거석이형은 늘 택일이의 아구창을 'Knock Knock'하고 택일이 오빠는 거석이형에게 늘 개긴다. 치고 받는 갈등구조라기 보다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치는 구조다. '시동'은 이 관계를 중심으로 웃음을 끌어낸다. 이게 너무 강력해서 이야기의 줄기와 거기서 나오는 메시지를 쫓아가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일단 웃기니깐 웃는데 이야기가 웃음에 매몰된다. 

4. 나는 코미디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정교함으로 소동을 만들어내고 그 소동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코미디 △일반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웃기는 코미디 △추잡한 개그와 오물로 웃기는 코미디 △멋드러진 말장난으로 웃기는 코미디. 일단 '시동'의 코미디는 그리 수준 높은 코미디는 아니다. 으르렁대고 엎어지면서 웃기는 원초적인 코미디다. '시동'의 코미디는 명확한 타깃을 가지고 있다. 그 타깃은 딱 택일이 오빠와 상필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다. 사내놈들은 유독 '센 형'을 좋아한다. '해바라기'의 오태식(김래원), '아저씨'의 차태식(원빈), '신세계'의 이자성(이정재), '비트'의 이민(정우성) 등이다. 이들은 단순히 '센 형'이 아니라 '센데 내 편'인 형이다. 마동석이 인기를 얻는 이유도 '센데 내 편'이라서 그렇다(마동석이 살인자로 나오는 영화들이 대부분 망한데는 이런 마동석의 인기요인을 활용하지 못한 탓도 있다). 10~20대의 남자들이라면 거석이형처럼 세고 유쾌한데 내 편인 형 하나 정도는 원할 것이다. 

5. 타깃이 명확해서 그런지 '시동'은 전혀 심각하지 않다. 사채업자가 돈을 받으러 와서 협박하는 상황에서도 사채업자는 만만하고 우스꽝스럽다. 심지어 엄마 정혜조차 엄청나게 센 여인으로 나와서 심각할 구석을 주지 않는다. "엄마가 세다"는 것 역시 아이들이 가진 로망이다. '시동'에서 엄마는 유독 큰 산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가 흘러가다 보면 엄마 역시 불완전하고 소녀같다. 사실은 엄마도 길을 잃고 불안해 하는 존재다. 이 영화에서 온전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6. 그렇다면 '시동'이 가진 메시지는 명확해진다. 길 잃은 10~20대에게 "너희만 그런 것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길을 잃고 헤매며 현재를 살고 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다면 길을 찾는 일은 조금 쉬워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상필이와 다니던 동화형이나 택일이 오빠에게 한 소리 들은 거석이형, 그리고 영화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은 함께 하다가 길을 찾는다. 첫 장면 이후 한 번도 굴러가지 않던 오토바이에 다시 시동이 걸린다. 핸들을 잡은 택일이 오빠 뒤에는 엄마 정혜가 탄다. 마음을 맞춘 두 사람이 함께 올라타자 오토바이는 그럭저럭 굴러가기 시작한다. 사실 첫 장면에서도 택일이 혼자 탈 때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던 오토바이는 상필이 함께 타자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오토바이는 둘이 타야 외롭지 않다"는 말에 썩 공감이 가지 않지만 '시동'의 경우에는 그것을 원하는 모양이다. 

7. 결론: 이런 메시지가 있어도 결국 기억에 남을 것은 거석이형이 택일이 오빠 아구창을 Knock Knock 하는 장면이다. 개그에 힘을 빼는게 더 나을 뻔 했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1. 몇 년 전 한국영화 '7광구'를 볼 때 느꼈던 불편함들이 있었다. 일단 괴상한 CG부터 불편했겠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점은 배우들의 감정이 과잉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클라이막스에서 차해준(하지원)과 괴물이 싸울 때 해준이 지나칠 정도로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거의 모든 장면에 "으아아아아" 거리면서 뭔가를 한다. 그때 관객인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인물이 괴물과 싸우고 있다"라는 생각보다 "이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보며 연기하는 일은 천하의 대배우 안성기조차 어려워 한 일이다. 그런 작업에 익숙해진 헐리우드 배우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하더라도 우리 배우들에게 그건 여전히 낯선 일이다. 이 글이 이렇게 시작했다고 "'백두산'은 '7광구'급이다"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백두산'은 '7광구'에 비하면 당연히 훌륭한 영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연기하는 것도 많이 늘었다. 다만 이 영화가 가진 '불편했던 지점'은 '7광구'를 보고 느꼈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한다. 이 불편한 점들을 개선하는 것은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2. 다행스럽게도 '백두산'은 배우의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진 않는다. 워낙 잘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만큼 8년전 하지원이 하던 "으아아아아" 같은 것은 답습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같은 "으아아아아"를 하더라도 꽤 멋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클라이막스에서 등장하는 현악기 길게 늘어뜨린 음악은 "이러다 '아리랑' 연주하는 거 아냐?"라는 긴장감을 준다. 들을 때 마다 '디 워'가 떠오르는 음악이었다. 배우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며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그런데 음악이 지나치게 앞서나간다. 만약 내가 '올해 최악의 영화음악'을 꼽아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백두산'을 선택할 것이다. 

3. '백두산'에서 음악보다 더 거슬리는 것이 바로 편집이다. 속도감을 더하기 위해 편집을 더 했다는 인터뷰 내용을 봤다. 대체 편집을 어떻게 했길래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지 물어보고 싶다. 예를 들어 지하에서 드립을 주고 받다가 갑자기 지진이 나고 우루루 뛰어 나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깥에서 뭔가 회의를 하나 싶더니 갑자기 지하에서 총격전을 한다. '백두산'은 꽤 많은 부분이 이런 식으로 흐름이 끊어지고 설명이 생략된다. "속도감을 더해야 한다"는 게 감독의 뜻인지 제작자의 압박인지 궁금하다. 누가 저질렀건 간에 편집을 더한 것은 '저스티스 리그' 수준의 참사를 불러왔다. 배우의 말대로 이 영화, 감독판이 절실하다. 

4, '백두산'이 가져야 할 최대 장점은 CG여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CG기업인 덱스터스튜디오가 참여한 작품인 만큼 헐리우드 수준의 퀄리티를 보여줘야 한다. 큰 그림에서는 당연히 놀라운 CG를 보여준다. 영화를 나름 큰 화면에서 보고 싶어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슈퍼플렉스G에서 봤는데 대단히 만족스러운 스펙타클을 보여줬다. 그런데 스펙타클한 CG는 그렇게 잘 그리면서 그 흔한 크로마키는 왜 그렇게 티가 나는지 궁금하다. 리준평(이병헌)이 조인창(하정우)을 데리고 중국으로 넘어가려다가 차를 세우고 소변을 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 이후 리준평은 탈출을 시도하려는 조인창을 발견하고 차 뒷문을 연다. 이때 하늘과 나무가 보이는 배경 앞에 리준평이 서있다. 이 장면은 크로마키 촬영한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적어도 날씨예보하는 기상캐스터보다는 현실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최고의 CG 스튜디오 작품인데. 

5. 올해 '나랏말싸미'를 보면서 문제점이라고 느낀 것이 "왜 개그를 끼워넣냐"는 것이었다. 확실히 극장에서 가볍게 팔아먹기 위해서는 적당히 웃겨주는 것이 좋다. 게다가 영화의 주인공인 이병헌과 하정우는 웃기는 걸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들의 재능이 출중한 탓에 웃기다가도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매끄러웠지만 웃기려고 하는 장면은 확실히 이야기와 따로 논다. 상업영화라고 굳이 웃길 필요는 없다. 재난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백두산'이 많은 클리셰를 가져다 쓴 헐리우드 재난영화에서도 섣불리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재난영화 매니아('장인'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은)' 롤런드 에머리히의 영화들도 그랬고 그냥저냥 봤던 '샌안드레아스'도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만약 웃기고 싶었다면 재난이 터지기 전에 웃기는 것이 좋다. 특히 아무리 EOD(폭발물처리반)팀이라고 해도 구보시 발도 못 맞추고 총도 제대로 못 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 록'의 스탠리 굿스피드(니콜라스 케이지)는 FBI 화학무기 전문가(=과학자)였다. 그럴싸한 EOD는 '허트로커'에 나온다. 걔들은 총 잘 쏘잖아.

6. 많은 관객들은 '백두산'이 "전형적이고 뻔하다"라고 말한다. 분명 그런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난영화에는 '한국이니깐 가능한 장면'이 분명 등장한다. 화산이 터져서 범국가적 재난이 불어닥쳤는데 총질하는 장면이 나오고 작전지휘권을 빼앗기는 장면이 나오는 건 미국영화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재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휴머니즘이나 추악한 인간성 대신 총질하는 정치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안 어울리는 상황들이 등장하는데 그게 꽤 말은 된다. 미중 갈등상황도 어느 정도 반영돼있어 더 말은 된다. 헐리우드 재난영화였다면 오직 재난하고만 싸워야 했을테지만 한국의 재난영화는 싸워야 할 상대가 너무 많다. 그건 꽤 기발했다. 기발한 걸 잘 못 살린 게 문제지만. 

7. 결론: 나는 '백두산'이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재미가 없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불가피한 사정은 '저스티스 리그'가 노잼이 된 사정과 통한다. 재미없는 영화지만 감독판이 보고 싶다. 


추신) '백두산'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마동석을 새롭게 썼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마동석은 2017년 '부라더' 이후 처음으로 사람을 때리지 않았으며 2016년 '38사기동대'의 공무원 백성일 이후 가장 지적인 역할이다. 

TRACKBACK 0 AND COMMENT 1
  1. BlogIcon 길가다 2019.12.24 12:49 address edit/delete reply

    덱스터의 특징을 잘 짚으셧네요... 갸들 특징은 중요한데서 성의가 없다는거죠.. 자신들이 제작한 신과 함께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영화들의 덱스터 특징을 보면 디테일 해줘야 할 중요한 부분들이 너무 성의 없다는..
    아마도 제작비의 문제가 크겠지만.. 명성에 비하면 너무 조잡하다 싶은부분들이 ..

    솔까 자신들 이름을 걸고 만든 신과 함께조차 어설프게 만들은거 보면..




1. 가끔 어떤 영화들은 첫 장면만 봐도 영화의 전체가 그려질 때가 있다. 관객과 작가가 매번 수싸움을 하는 것이 영화는 아니지만 상업영화에서 첫 장면만 봐도 영화 전체가 그려지는데 그게 그대로 맞아떨어진다면 작가는 관객에게 패배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벤져스:엔드게임'처럼 관객이 어떤 그림을 그리건 다른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 상업영화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나쁜 녀석들:더 무비'('더 무비')는 관객에게 완벽하게 패배한 영화다. 첫 장면만 봐도 이 영화에 대해 대단히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렇게 그린 그림이 꽤 마음에 들더라도 이미 첫 장면에서 김이 빠졌다. 그런데 처음 3분을 보고 그린 그림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심지어 영화사 비단길 로고영상마저 구렸다). 

2. 슬픈 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보고 떠올린 영화는 '조폭마누라'였다. '조폭마누라'는 첫 장면에서 주인공의 멋짐을 보여주기 위해 말같지도 않은 액션씬을 집어넣는다. 그 장면은 '만화적'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그 만화적인 액션씬을 계승한 영화가 '리얼'이 아닌가 싶다. ...애초에 계승하면 안 될 장면이었다. '더 무비'의 첫 장면은 '조폭마누라'의 만화적 오프닝을 계승한다. 그런데 너무 완벽하게 계승한 모양이다. '조폭마누라'는 2001년 영화다. 3편까지 등장할 정도로 꽤 성공한 시리즈물이지만 그때는 조폭영화가 매우 성행할 때였다. 영화적 완성도는 구리다는 소리다. 영화사 로고영상부터 구리기 시작해서 오프닝씬마저 구리다. 이 정도면 영화 전체가 구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직 110분이 더 남은 지점에서의 우려였다. 

3. '더 무비'의 첫 장면은 "이 영화의 악당은 졸라 무시무시하고 세다"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그랬다면 한국영화에서는 '범죄도시'라는 아주 좋은 텍스트가 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장첸(윤계상) 일당은 졸라 무서운 놈들이다"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상업영화에서는 당연한 구성이다. 그런데 이것을 위해 '범죄도시'가 택한 방법은 건들거리며 유쾌한 조선족 세 친구들이 고물상 하나 접수해서 빚진 놈 손목 아작내는 장면이다. 잔인한 장면에서 낄낄대며 웃는다. 늘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나쁘게 생긴 나쁜 놈'과 '안 나쁘게 생긴 나쁜 놈' 중 더 무서운 놈은 후자다. 이것은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든든하게 생긴 총각이 돌변해야 진짜 무서운 법이다. 그 맥락에서 본다면 악당두목보다 중간에 나오는 박성태(박형수)가 더 무서워보인다. ...물론 도긴개긴이다. 

4. 박성태가 활약하는 장면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불쾌한 장면이다. 나는 '영화적 허용'을 믿는 편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 사고에서는 말같지 않은 장면이라도 영화의 전개에 필요하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박성태가 노래방에서 한미정(한정현)을 죽이는 장면은 연출 자체가 쓸데없고 비윤리적이다. 이 장면은 박성태가 노래방 문을 막고 마이크와 재떨이 든 온갖 둔기를 이용해 한미정을 죽이려는 장면이다. 곽노순(김아중)이 문을 따려고 하지만 굳게 잠궈놔서 쉽지 않다. 이때 문을 열기 위해 박웅철(마동석)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때 박웅철은 오함마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온다. 영화는 멋진 음악과 함께 슬로우를 걸면서 박웅철의 멋짐을 표현한다. 그러니깐 안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슬렁어슬렁 멋지게 걸어와서 문 때려부순다는 얘기다. 사람이 죽건 말건 박웅철은 멋있으면 된다는 의미일까?

5. 노래방 장면을 곱씹어봤다. 저 장면에서 박웅철이 멋있어야 하는게 영화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아무 의미없다. 그냥 박웅철이 멋있어 보이기 위함이다. 만약 나라면 이 장면에서 박웅철이 뛰어오는 것으로 연출했을 것이다. 그래서 몸통박치기로 문을 밀치자 가구와 문짝이 날아가고 박성태를 참교육했을 것이다. 이때 똑같이 슬로우를 걸고 멋진 음악을 깔아도 좋다. 이렇게 연출하면 박웅철의 멋짐과 피해자 구출을 모두 잡을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내 연출이 실제 영화의 것보다 합리적이고 멋있다고 믿는다. 

6. '나쁜 녀석들'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챙겨보진 않았다. 그러나 OCN과 슈퍼액션에서 워낙 자주 틀어준 탓에 사실상 다 봤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나쁜 놈들을 풀어서 더 나쁜 놈들을 잡는다'라는 카피가 있다. 나쁜 놈들은 더 나쁜 놈들에게 당한 이력이 있고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나쁜 녀석들' 드라마의 묘미는 복수극인 것이다. 물론 극장판이 드라마를 고스란히 계승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드라마보다 더 나은 것을 보여줄 필요는 있다. '명탐정 코난'도 극장판이 나오면 축구경기장 하나는 때려부술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준다. 그런데 '더 무비'는 어느 하나 드라마보다 나은 구석이 없다. 캐릭터들은 단순해졌고 액션도 구식이다. 이야기가 구식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스핀오프라면 안 나오는게 나았다. 

7. 결론: 올해 본의 아니게 '피플스 워스트(People's Worst)'라고 알려진 영화들('자전차왕 엄복동', '비스트', '광대들:풍문조작단')을 다 피해갔다. 이래가지고 연말에 '올해 최악의 한국영화'를 이야기 할 자격을 얻을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더 무비'를 보고 나는 더 이상 그런 염려를 하지 않기로 했다. 


추신1) 마동석의 액션영화가 매번 이런 식이라면 아예 케이블 예능프로 하나 런칭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제목은 '마동석쇼'. 마동석이 등장해 매주 나쁜 놈 하나 두들겨패는 쇼. ...재밌을 것 같긴 하다.

추신2) 요즘 한국영화를 보며 바라는 것이 몇 가지 있다. ①천만배우 조한선 ②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정해인 ③마동석의 격정멜로다. 정말로 '만추'나 '실락원'같은 가을 느낌의 진한 멜로영화에 마동석이 주연한 거 보고 싶다. 캐릭터도 조직폭력배 같은 거 하지 말고 펀드매니저나 건축디자이너로. 

TRACKBACK 0 AND COMMENT 0



※ 블라인드 시사로 본 후기


1.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마동석에 대해 근심이 깊다. 나는 '배우 마동석'을 참 좋아한다. 사이다같은 그의 이미지가 좋고 아주 든든한 '우리 형'같은 인상도 좋다. 솔직히 '배우 마동석'을 떠나서 '아는 형 마동석'이 있으면 정말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로써 마동석도 참 좋다. 그는 정말 열심히 일한다. 1년에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직접 기획과 제작도 한다. 마동석이 한국영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꽤 클거라고 생각한다. 나름 '흥행보증수표'였던 시절도 있었고 지금도 마동석의 브랜드 가치는 대단하다. 그런데 나는 마동석이 슬슬 걱정된다. 이 걱정은 일개 관객으로써 "마동석을 오래 보고 싶다"는 바램이 깨질 수 있겠다는데 대한 '우려'다. 

2. 올해 개봉한 마동석의 영화만 벌써 3편('신과 함께: 인과 연', '챔피언', '원더풀 고스트')이다. 그리고 개봉 대기 중인 영화만 2편('동네사람들', '성난 황소')이다. 여기에 작업 중인 영화('악인전')까지 더하면 마동석은 6편의 영화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셈이다(11월에는 운 좋으면 '마동석 vs 마동석'도 볼 수 있을 지경이다).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영화를 찍는다. 게다가 직접 기획까지 하고 제작에 참여도 한다. 앞서 말한대로 마동석을 보는 일은 찐고구마를 3개 연속으로 먹고 마시는 사이다와 같다. 그런데 사이다만 연속으로 3병 마시면 어떻게 될까? 요즘 마동석을 보는 기분은 대충 그렇다.

3. 나는 일전에 마동석에 대해 "어떤 캐릭터도 마동석화 해버리는 배우"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마동석에게 '연기변신'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언제 어디에선가 살았을 것 같은 마동석을 우리는 매번 스크린에서 만난다. 그런데 최근의 추세는 사방에 마동석이 너무 많다. 유머러스하고 적당히 귀여운데 힘은 겁나 센, 이 매력적인 마동석이 너무 많다. '동네사람들'도 그런 마동석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동네사람들'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동석의 아저씨'다. 김새론이 출연한 탓도 있겠지만 원빈의 '아저씨'와 맥을 같이 한다. 상상해보자. 원빈의 '아저씨'에서 원빈 대신 마동석이 나오는 그림을. '동네사람들'은 거기에 대단히 근접해있다. 

4. 이야기는 서울에서 사고 친 복싱코치 역기철(마동석)이 시골학교 교사로 내려가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마을은 꽤 괴상하다. 언듯 로빈 하디의 1973년작 '위커맨'이 생각나기도 한다(그 정도로 호러블하진 않지만). 이 괴상한 마을에서 기철은 친구의 실종에 집착하는 강유진(김새론)과 마주치게 되고 함께 실종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동네사람들'은 크게 뒤집어지는 지점이 없다. 나름 반전이라고 만들어놨지만 얄궂은 수준이다. 사실 반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언제쯤 마동석이 저 나쁜 놈들을 쓸어버리는지 중요하다. 마동석이 쓸어버리는 지점은 확실히 시원하다. 나무문도 때려부수고 자동차 전면유리도 때려부순다(아마 '아저씨'에 나온 방탄유리도 맨손으로 때려부쉈을 것 같다). 

5. 이제 문제는 "나쁜 놈이 얼마나 매력있냐"에 달렸다. 마동석은 그저 마동석했기 때문에 나쁜 놈이라도 개성이 있다면 이 영화는 돋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큰 기대를 하지 말자. 나쁜 놈은 그저 나쁜 놈하고 있으며 이제는 솔직히 식상한 나쁜 놈이다. 솔직히 나쁜 놈들보다 새론이 괴롭히는 일진들이 더 나빠보인다. 만약 '동네사람들'이 올해 개봉한 첫 마동석 영화라면 꽤 재밌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너무 많은 마동석을 봤다. 사이다만 너무 마셔서 솔직히 배부를 지경이다. '동네사람들'의 가치(흥행성적)는 올해 개봉한 다른 마동석 영화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만약 당신이 올해 처음 본 마동석 영화가 이 작품이라면 꽤 재밌을 수 있다).

6. 마동석은 귀한 배우다. 엇비슷한 이미지의 배우들이 종종 나오지만 마동석이 하는 건 오직 마동석만이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귀한 음식이 있으면 아껴서 먹는다. 귀한 술이 있어도 중요한 날에만 따고 귀한 향수가 있으면 특별한 날에만 뿌린다. 마동석은 귀한 음식이며 귀한 술이고 귀한 향수다. 오래 먹고 오래 마시고 오래 쓰기 위해서는 특별한 날에만 그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얼마나 엔터테이너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엔터테이너로서 오래 활약하기 위해서는 더 좋은 작품에 나왔으면 좋겠다. 시간이 좀 걸려도 기다릴 수 있다. 그러니 귀한 작품에서 귀한 역할로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마동석을 오래 보고 싶다.


추신1) 진선규는 또 마동석에게 맞고 있다(많이 맞았다). 다음 생....아니 다음 영화에서는 마동석과 같은 편에 설 수 있길 바란다. 

추신2) 블라인드 시사로 볼 당시 영화의 제목은 '곰탱이'였다. 그걸로 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1. 나는 영화 '신과 함께'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의 풋풋한 마음이 아니라 '한국형 프렌차이즈'의 탄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상업영화에서 있어 흥행 원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프렌차이즈'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프렌차이즈의 천국인 미국이나 만화·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천국'인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돈 벌어먹을 콘텐츠'가 유난히 없다. '한국형 프렌차이즈'의 가능성을 보인 영화라면 '여고괴담'이나 '조선명탐정' 정도 있을 것이다. 마음먹고 기획한다면 팔아먹을 꺼리가 많은 영화지만 정작 제작·기획을 하는 사람들은 이 콘텐츠들로 돈 벌어먹는데 실패한다. 김용화 감독은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에 빗대 KCU(김용화시네마틱유니버스)라는 되먹지 않은 농담을 했지만 나는 '신과 함께'가 그에 못지 않은 프렌차이즈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 프렌차이즈의 요건은 우선 '팔아먹을 꺼리'가 많아야 한다. 단순히 영화 티켓값 뿐 아니라 캐릭터 상품도 팔아야 하고 게임이나 소설 등 2차 콘텐츠로도 생산돼야 한다(이미 원작이 만화책이니 한번의 재생산은 거친 셈이다). 그 가능성을 보기 위해 '신과 함께:인과 연'은 매우 중요한 지점의 영화였다. 말 그대로 앞으로 이 콘텐츠가 얼마나 돈이 될 지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먼저 훌륭한 캐릭터들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함께 외적인 디자인도 포함한 것이다. 그리고 게임으로도 팔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중독성'(a.k.a. 게임성)도 갖춰야 한다. 다시 말해 게임으로 발전될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과 함께:인과 연'은 재미있는 영화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티켓값을 제외한 다른 수익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3. '인과 연'은 전편의 단점들을 상당수 보완했다. 일부 관객들의 말대로 전편보다 담백하고 재미있다. 다만 캐릭터들은 여전히 장사가 될 인물들이 아니다. '인과 연'에서는 이들의 기구한 사연이 공개되긴 했지만 그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기회가 주어지진 않는다. 돈이 되는 캐릭터들(예를 들어 마블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사연을 극복하고 본격적인 활약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캡틴아메리카의 경우 약골인 몸을 극복하고 영웅으로써 활약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아이언맨 역시 테러단체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하는 고난을 겪고 활약을 보여준다. '인과 연'은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은 자신들의 사연을 극복하는데 영화 전체를 할해한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뭘 해보려니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적어도 3편은 나와봐야 이들의 '상업성'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4. 마동석이 연기한 '성주신'은 어쩌면 '인과 연'에서 가장 상품성이 있는 캐릭터다. 마동석 자체가 주는 매력과 성주신의 우직함과 귀여움은 관객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기 충분하다. 게다가 캐릭터 디자인 역시 원색이 많아서 눈에 띄는 편이다. 팔아먹기 좋다는 의미다. 다만 너무 일찍 이 캐릭터를 내놓은 것이 이 캐릭터의 상품성을 해치고 있다. 디자인의 상품성으로 따지면 최고였던 저승의 7대왕들은 몇몇 대왕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번에는 지옥이 포인트가 아니기 때문이라 치더라도 그 캐릭터들의 상품성은 다소 아깝다. 그리고 성주신은 기대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5. 이야기는 재미있다. 이승과 저승을 아우르며 1000년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복잡한 이야기는 꽤나 잘 짜여져 있다. 다만 여기에는 몇 가지 거슬리는 지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1000년 전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고리가 그리 밀접하지 않다. 두 사건이 만나야 하는 이유도, 두 사건을 만나게 한 강림의 의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결과적으로 두 사건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연관성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강림의 선택은 억지스럽다. 또 하나, 배경이 고려시대라면서 한글을 이용한 트릭은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해놓은건지 모르겠다. 

6. 그런데 '인과 연'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있다. 해원맥이 고려군 장수였던 시절과 덕춘이 여진족 고아였던 시절.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나는 이것이 '로맨스'를 의도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치 '불한당:나쁜놈들의 세상'에서 한재호(설경구)와 조현수(임시완)의 관계가 로맨스였냐 아니냐는 논란과 비슷할 것 같다. 해원맥과 덕춘의 관계는 '키다리 아저씨'와 '고아소녀'로 보기에는 그 이상으로 애틋한 지점이 많다. 화살을 가르치는 장면이나 마지막 죽을 때의 모습에서 두 사람에게 '연인'이 보인다. 물론 감독이 다른 생각을 했는데 표현이 잘못된 것일수도 있겠다.

7. 워낙 김향기의 팬이기도 하지만 이번에도 김향기는 몹시 애절하다. '죄와 벌'에서 눈물샘을 차태현과 예수정 배우가 책임졌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김향기가 눈물을 다 책임진다. 원래 잘하는 다른 배우들은 접어두고라도 김향기의 눈물연기를 볼 수 있는게 이 영화의 백미가 될거라 생각된다(사실 김향기도 눈물연기를 원래 잘한다). 그리고 불쌍한 여진족 고아의 분장이 너무 잘 어울려서 영화 보다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정말 잘 어울렸다.

8. 결론: 한국형 프렌차이즈는 아직이란 말인가...


추신1) 4DX 효과가 생각보다 시시하다. 물론 아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4DX 효과를 보여줬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오히려 잔잔할 지경이었다. 

추신2) 쿠키영상 보자마자 육성으로 튀어나온 말 "이자성 너 이 새끼..."

TRACKBACK 0 AND COMMENT 0




1. 팔씨름이라는게 스포츠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것은 워낙 짧은 순간에 압축해서 힘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보는 재미'를 기대하긴 어려운 운동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그 스포츠를 재미나게 다룬 영화 중에 '오버더톱'이 있긴 했지만 이건 팔씨름 자체의 매력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이야기의 매력으로 승부를 보는게 전부였다. 그렇다면 마동석 주연의 영화 '챔피언'의 과제도 명백해진다. 팔씨름은 이 영화의 배경일 뿐 그 자체의 매력을 보여줄 순 없다(팔씨름은 원래 매력이 없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매력, 매끈한 이야기와 연출력으로 승부를 봐야한다. 영화 '챔피언'은 과연 그 과제를 성실히 이행했을까?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우선 대놓고 '신파'를 노린 입양아의 이야기나 억척스런 싱글맘, 빚쟁이 조직폭력배의 이야기는 아침드라마에서도 잘 쓰지 않을 낡은 소재다. 이 낡은 소재를 반드시 지양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 낡은 소재라도 재미있게 요리만 하면 된다. 그런데 '챔피언'은 그걸 못한다. 영화는 소재의 '낡음'에 갇혀서 낡은대로 흘러 가버린다. 억척스런 싱글맘은 갈등과 위기를 꿋꿋이 헤쳐나가고 입양아 주인공은 가족의 문제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믿음이 안 가는 에이전트는 어느 순간 진심을 드러낸다. 

3. 이 정도면 이야기에 많은 빈틈이 생긴다. 망하기 직전에 이를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려서 뭐라도 메워야 한다. '챔피언'은 그 빈틈을 '마.동.석'으로 메운다. 영화는 마동석의 이미지를 활용한 장면을 몇 군데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계단에서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이 수진(한예리)에게 대들다가 뒤에 등장하는 마크(마동석)를 보고 예의 바르게 도망친다거나 도로에서 수진의 차에 끼어들어 시비거는 아저씨가 마크를 보고 갑자기 예의 바르게 자책을 하는 식이다. 마동석의 우월함을 활용한 코미디 장면이 꽤 많다. 이것은 반복돼있고, 금새 질려버린다. 

4. 이 이야기의 기획의도가 '마동석의 우월함을 알리기 위함'이라면 나는 딱히 할 얘기가 없다. 적어도 그것은 확실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기엔 수진과 진기(권율)가 아깝다. 충분히 비중있게 다뤄졌고 활용가치가 충분한 캐릭터였다. '마동석 유아독존'이 아니라 앙상블을 통해 돋보이게 할 여지가 충분했다. 그런데 그 앙상블조차 '마동석 유아독존'에 묻혀버린다. 좋은 배우들을 모아놓고 이 정도 밖에 못하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5. 영화에는 마동석, 한예리, 권율 말고도 좋은 배우들이 많다. 특히 영화 '분장'에 출연했던 4명이 눈에 띈다. 남연우와 양조아, 안성민, 한명수 등이 '분장'에서 비중있는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다. 모델 강승현도 극의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여러 신선한 얼굴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익숙한 조연들이 아닌 새로운 얼굴들이 다수 등장하는 점은 대단히 마음에 든다. 그런데 여기서 유난히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 '펀치' 역할을 맡은 이규호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로드FC 선수가 아니다. 겨우 그의 얼굴을 기억해낸 것은 '범죄도시'에서 마석도 형사(마동석)에게 한 대 맞고 쓰러지는 춘식이파 조직원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단역' 필모그라피가 화려하다(네이버 프로필상 데뷔작은 2002년 '아유레디?'의 '곰연기4'였다). '챔피언'은 그의 첫 조연작이다. 이 배우 잘 됐으면 좋겠다. 그동안의 '조폭형 감초배우'와는 클라스가 다르다.

6.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혹자들은 "마동석의 영어연기가 어색하다"며 지적을 할 것 같다. 분명 그렇게 느낄 여지가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마동석은 한국어로 연기를 해도 악센트 변화가 큰 사람이 아니다. 그는 대사 연기에 감정을 크게 싣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점이 매력이 돼서 지금까지 온 배우다. 그런데 '챔피언'에서는 분명 감정적인 부분을 요구한 모양이다. 오히려 마크의 영어는 더 건조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캐릭터가 좀 더 명확해졌을 것이다. 이건 디렉션이 잘못된거다. 감독을 배달통에 넣는게 좋을 것 같다.

7. 결론: '챔피언'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좋은 배우들을 건질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궁금한데 이 영화와 '분장' 팀들은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일까?


추신1) 마동석이 건달 다섯 때려 눕히는데 자꾸 타노스가 보인다.

추신2) 마지막 장면에서 마크와 수진이 눈을 마주치는데 갑자기 주마등처럼 연출되는 장면을 보고 마크가 죽은 줄 알았다. 

추신3) 배우 이규호


TRACKBACK 0 AND COMMENT 0




나는 '연기변신'이라는 말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누군가 '연기변신'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 나는 "어머, 얘 그런건 다니엘 데이 루이스나 하는거야"라며 질색할 것이다. 배우가 한평생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라고 한다면 그 안에서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돼서' 연기하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배우는 결국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따라 연기할 수 밖에 없는 법이다. 특히 한국의 대중영화는 그 인기에 비해 장르적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아 제 아무리 좋은 배우라도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보여주는데는 한계가 따른다. 

여기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있다. 압도적인 비주얼을 가진 이 배우는 첫인상만 봐도 조직폭력배나 깡패, 거칠게 살아온 강력계 형사가 어울린다. 이 배우는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 알려지면서 '마요미', '마블리' 등이 별명을 얻게 된다. 마동석은 그 파괴적인 비주얼과 어울리지 않는 '반전매력'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얻으며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마동석에게 대중들이 기대할 수 있는 캐릭터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마동석이 화장품 광고를 찍으며 파우더 쿠션을 상큼하게 바르고 있어도 "저 파우더 쿠션으로 몇 명을 때려눕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맛있는 쿠키를 들고 있어도 "누군가 저 쿠키꼴이 나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중들이 바라는 마동석의 캐릭터는 가장 먼저 '강력하고 파괴적인 상남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마동석은, 스스로 이 이미지를 깨부순다. 맨손으로 콘크리트 벽도 때려부술 것 같은 마동석이 가장 먼저 때려부순 것은 자신에 대한 대중들의 선입견인 것이다. 


마동석이 대중들의 선입견을 때려부수고 얻은 것은 '반전매력'이다. 그는 데뷔 후 '결혼전야', '굿바이 싱글' 그리고 곧 개봉을 앞둔 영화 '부라더'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드라마 '38사기동대'나 '노리개' 등에서는 세무공무원이나 기자같은 '인텔리' 직업군도 연기한다. 앞서 말한대로 마동석은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확고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외모의 이미지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런 '반전매력'은 우정출연을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 '댄싱퀸'에서의 게이커플이나 '미스터고'에서 야구경기 중계 캐스터, '특별시민'에서는 악귀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것 같은 신부, '베테랑'에서는 그 유명한 아트박스 사장님. 심지어 '인류멸망보고서'에서는 고등학생도 연기한다. 마동석은 우정출연을 할 때마다 깨알같은 반전의 재미를 선사하며 씬(scene)을 훔쳐낸다. 

이것은 스크린 밖의 마동석에게서 보여지는 '매력'이다. 마동석이라는 사람이 대중들에게 조금씩 드러나자 사람들이 그에게 매료되는 핵심 포인트인 셈이다. 다소 수줍음이 많은 커다란 덩치는 '귀여움'이 됐고, 미국에서 트레이너 생활을 한 '뜻밖의 인텔리'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 매력포인트가 됐다. 혹자는 마동석의 이런 캐릭터들이 "마동석에 대한 대중들의 또 다른 요구"라고 해석할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중들이 마동석에게 요구하는 캐릭터는 하나가 아닌 2개(혹은 3개)가 됐다. 그는 거친 상남자 외에 코미디와 인텔리 캐릭터를 확보한 셈이다. 이것은 오로지 '마동석' 그 자체로 밀어붙여서 일궈낸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역시 마동석은 다 때려부숴야 제맛이지". 그의 여러 작품들 중 '이웃사람'이나 '나쁜 녀석들', '부산행' 그리고 최근 영화 '범죄도시' 등은 마동석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활용한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마동석의 수줍음 많은 모습이 대중들에게 보여지자 사람들은 그를 '착하고 여린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그가 나쁜 놈들을 때려잡을때는 꽤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동석 같은 형이 내 편에 서주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영화 '범죄도시'의 흥행포인트가 이 지점에 있다고 본다('범죄도시'는 10월 10일 기준 손익분기점인 200만명을 넘어섰다). 장첸(윤계상)같은 잔인한 나쁜 놈이 등장하지만 마동석은 특유의 과격함으로 범인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액션씬과 조폭들 갈구는 코미디씬은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마동석이 사이다 액션을 펼치는 작품들은 흥행성적이 좋은 편이다. '부산행'이나 '나쁜 녀석들'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이웃사람' 역시 손익분기점을 훌쩍 뛰어넘는 스코어를 기록했다(손익분기점: 140만, 전국관객: 243만). 그리고 여담이지만 '베테랑'의 흥행에도 아트박스 사장님인 마동석이 기여한 바가 꽤 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마동석은 쓰임새가 많은 배우다. 앞서 말한대로 그는 인텔리 직업군이나 코미디 연기가 가능하고 특유의 액션연기도 잘해낸다(당연히!). 그런데 여전히 '마동석을 절대 사용해선 안되는 예'가 존재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판단이지만 부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마동석을 이 경우에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진리'인양 우겨본다. 마동석의 비중이 컸던 몇 개의 작품들 중 잘 되지 않은 영화, '살인자'와 '함정'을 언급해보자. 두 영화는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기록한 영화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연쇄살인범' 혹은 '납치강간범'이라는 점이다. 마동석이 그 과격한 외모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해한다는 이야기다. 

일단 위압감을 주는 외모로 사람을 해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험악해 보이는 사람이 험악한 짓을 한다는 지나치게 '뻔한 설정'이 문제다. 마동석을 바라보며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것 뿐이라면 작가를 그만둬야 할 판이다. 전혀 트렌드를 읽지 못한 결과물이며 고민하지 않은 이야기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영화에서 가장 획기적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하는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을 또 언급해보자. 그는 '연쇄살인범'의 매뉴얼에 걸맞는 연기를 곧장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 사건에서 어느 누구도 얼굴에 '험악한 놈'이라고 써붙여놓고 험악한 짓을 하진 않는다. 나쁜 놈은 나쁜 얼굴을 숨기고 산다. 이 얘기인 즉슨 마동석에게는 죽었다 깨도 '연쇄살인범'같은 캐릭터를 맡겨선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 재미없는 발상은 제작비를 현찰로 바꿔서 불쏘시개로 쓰는 짓과 같다.


다행히도 마동석은 본인도 연쇄살인범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은 듯 하다. 그는 현재 연극을 원작으로 한 코미디 영화 '부라더'과 인기 웹툰 원작 영화 '신과 함께'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김새론과 함께 영화 '곰탱이(가제)'를 촬영 중이다. 코미디도 있고 드라마도 있고 판타지도 있다. 아무래도 마동석은 여전히 욕심이 많은 배우인 듯 하다. 일개 관객이 "연쇄살인범 캐릭터는 안 어울려요"라며 호소했지만 그는 자신의 구미가 당기는 작품이라면 또 한 번 '나쁜 놈'을 연기할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그는 대중들의 편견을 주먹으로 때려부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마동석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배우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어느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완벽하게 지워버리는 배우다. 사실 그런 경우에만 '연기변신'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것이다. 반면 마동석은 어느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건 '마동석'을 가져다 붙인다. 마치 마동석 같은 아트박스 사장님이 거기 있을 것 같고 마동석 같은 형사도 어디 있을 것 같다. 마동석 같은 세무공무원도 있을 것 같고 좀비 아포칼립스에서는 마동석 같은 사람이 나타나 맨주먹으로 좀비를 패버릴 것 같다. 마동석은 '연기변신'을 하지 않는다. 그저 캐릭터를 '마동석화' 시킬 뿐이다. 그 무자비하고 불도저같은 '마동석화'에 관객들의 편견은 속수무책으로 박살날 뿐이다. 천하의 마동석이니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TRACKBACK 0 AND COMMENT 1
  1. 2017.10.14 14:47 address edit/delete reply

    대단히 좋은 분석 잘 읽고 갑니다




※ 이 소설은 '부산행'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지므로 '부산행'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안 보신 분은 피해주십시오.

 

※ 저도 그냥 재미로 쓴 소설이라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속출할 수 있습니다(제목부터 어디서 많이 봤을겁니다). 그 점 염두해두시기 바랍니다.

 

※ 좀 더 신경을 써서 써보고 싶었는데 "한 편에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보니 이야기를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2편 이상 넘어가면 제가 완결을 못 지을 것 같아 그랬으니 그냥 스토리만 봐주십시오.




그날 이후 7년이 흘렀다. 부산은 많은 피난민으로 혼잡해졌다. 난리를 피해 온 사람들 덕에 부산의 인구는 1300만명에 이르렀고 해외에서 구조와 연구를 위해 입국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1370만명에 이른다. 경계지역에는 혹시 모를 좀비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호 철책이 둘러쳐졌고 이곳은 마치 GOP처럼 군인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하지만 부산을 방호할 병력은 많이 부족한 상태고 결국 17세 이상 입대 허용에 의무 복무기간은 3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부산 임시정부에서는 군의 지원을 위해 해외에서 들어온 긴급 구호자금으로 최신식 좀비 디펜스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UN군이 긴급 투입돼 좀비 소탕작전에 나섰지만 한국의 복잡한 지형과 수많은 좀비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핵폭탄 투하도 고려됐으나 시민들의 반발로 이는 보류된 상태다. 좀비들을 99.8% 감지해 신속히 제거하는 이 방어체계는 부산의 최북단인 금정구 노포동에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전자파와 방사능 수치가 높다는 소문에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뉴스에서는 전방 경계태세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군 장병들의 효율적 방어를 위해 화기와 방어장비 등을 미 육군 기준으로 교체했다고 하지만 실감할 수가 없다. 여전히 40년 된 수통과 반합을 사용하면서 대체 어느 부대에 최신식 장비가 들어온건지 궁금할 뿐이다. 말로만 떠들던 '방산비리'라는 것을 슬슬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들이 경계근무를 서는 곳은 최전방이다. 하지만 인구 포화상태인 부산 때문에 민가와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계선 주변으로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종종 눈에 띈다. 군인들은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말을 하지만 병력이 부족해 이런 통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계를 해야 할 대상이 화기를 든 북한군이 아니라 좀비라는 점이다. 



성경과 수안, 수안의 엄마는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수안의 엄마는 부산까지 수안을 무사히 데려온 성경이 고마워 함께 머물도록 해준 것이다. 성경의 아이, 선영이는 어느덧 7살이 됐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다. 지금 부산의 학교는 한 반에 50명이 넘는 교실이 태반이다. 


어느날 수안과 수안의 엄마, 성경, 선영이는 주말을 맞아 교외로 나가기로 했다. 혼잡한 부산 시내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포동보다 조금 위쪽에 위치한 서창 초소는 북적대는 부산에서 그나마 가장 한적한 곳이다. 군인들의 통제가 허술한 틈을 타 수안과 선영이는 철책까지 올라가보기로 한다. 원래는 군인들이 통제를 하던 곳이지만 사람이 없어서 통제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도 성인이라면 두려움에 잘 올라오지 않는 곳이지만 수안과 선영은 겁이 없는 편이었다. 


철책에 서서 바라본 외곽은 이제 수풀이 우거진 조용한 곳이다. 7년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은 철책 외곽은 간간히 보이는 좀비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초창기에 군인들은 좀비들을 좀비영화에서나 봤을 '좀비사격게임'을 하곤 했지만 이젠 실탄도 부족해 그조차 금지됐다. 그저 좀비들이 군인쪽을 보지 못하도록 숨을 죽이고 경계만 할 뿐이다. 


선영이는 철책에 바짝 달라붙어 좀비들을 구경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선영이는 좀비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두려움도 없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 상화처럼... 좀비가 궁금한건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궁금했는지, 선영은 연신 철책 너머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선영은 좀비들 사이에서 유독 덩치가 큰 좀비에게 시선이 향했다. 바로 상화였다. 선영은 언니인 수안을 불렀다. 수안은 선영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곧바로 상화 아저씨인걸 알아챘다. 어찌해야 할 지 잠시 당황하다 선영을 안고 철책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진땀을 흘리다 엄마와 성경에게 "그만 가자"고 졸랐다. 두 사람은 잠시 당황했지만 마침 오래 있었기도 해서 내려가기로 했다. 



한편 철책 너머의 좀비가 된 상화는 철책에서 선영을 데리고 내려가는 수안의 그 작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쪽을 쳐다본다. 상화를 포함한 몇몇 좀비들도 그 소리를 듣고 그곳을 바라본다. 스멀스멀, 좀비들이 철책을 향해 다가간다. 느긋하게 초병을 서던 군인들은 좀비가 다가오는 것을 미쳐 보지 못한다. 오히려 좀비보다 철책 안 쪽의 민간인들을 통제하기에 더 여념이 없다. 안전을 위해 철책 내부의 민간인들도 어느 정도 통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접근하지 않던 좀비들에 대해 미쳐 간과하고 있었다.


육군에서 발간한 '좀비대처규정'에 300m 이내로 좀비가 접근하면 사살하도록 정해져 있다. 각 초소에서는 300m를 표시할 수 있는 구조물을 정해 초병들이 암기하도록 해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민간인들을 통제하는 사이, 좀비들은 이 구조물을 지나 더 안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100m 가까이 접근해서야 한 이등병이 발견하고 총을 쐈다. 총소리에 놀란 군인들도 뒤늦게 좀비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철책 주변에는 1차 경고방송이 전파됐다. 좀비 사태 이후, 부산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들이 숙지하고 있는 어떤 규정이 있었다. 사이렌이 길게 한 번 울리는 1차 경고방송은 철책 주변으로만 방송된다. 이 경우 철책 주변 주민들은 집 안이나 대피소로 대피해 문을 잠그고 대기하면 된다. 사이렌이 짧게 3번 울리는 2차 경고방송은 시내 전역에 울리며 이 경우 철책 주변 2km 이내 주민들은 거주지를 벗어나 시내 중심부로 피신하고 시내 주민들은 집 안이나 실내에 있으면 된다. 사이렌이 짧게 6번 울리는 3차 경고방송은 전 부산시민의 대피를 알리는 방송이다. 이 경우 가까운 항구와 공항으로 대피해야 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산을 떠나야 한다. 



이 시각 성경과 수안 일행은 철책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들은 철책 부근을 벗어나 1차 경고방송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던 성경의 일행은 도로 앞에 한 무리의 시위대를 만난다. 좀비 디펜스 시스템을 반대하던 노포동 주민들의 무리다. 경찰은 유턴해서 우회하라고 안내를 해준다. 돌아서 가는 길에 선영이가 마침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고 차는 근처 지하철역 주변에 내린다. 성경이가 선영이를 데리고 지하철역 화장실로 향하고 수안이와 엄마는 역 근처에서 음료를 마시며 이들을 기다린다. 


수안과 엄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이야기, 성적, 내일 할 일. 누구도 아빠 석우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 그리움을 애써 묻어두려는 눈치였다. 그렇게 잠깐의 대화가 오고갈 즈음, 한산한 지하철역을 흔드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짧게, 여섯번. 수안과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성경이 화장실에서 선영을 안고 허겁지겁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서둘러 차를 세워둔 지상으로 향했다. 



지상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노포동에서 내려온 좀비들이 시위대를 물어버리기 시작했다. 군인들과 경찰들이 좀비들을 제압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좀비와 시위대는 분간할 수 없어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좀비 뿐 아니라 시민들 역시 총에 맞고 쓰러져갔다. 


한편 3차 경고방송과 동시에 지하철역은 대피소로 봉쇄된 상태였다. 이들은 지상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하 대피소 봉쇄에 성공하면 지하철은 오직 항구와 공항으로 향하는 노선만 운행됐다.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역무원의 안내로 지하철로 향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부산항까지 곧장 향하게 됐다. 


지하철에는 놀란 시민들도 있었고 짜증내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이미 좀비 사태가 벌어진지 7년이 지났으니 사람들은 좀비에 대해 둔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인 반응은 '침묵'이었다. 짧은 시간 그들이 지켜온 일상이 붕괴되는 순간, 당연히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무거운 침묵이 가득 찬 가운데 지하철은 조용히 부산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하철이 서면을 지날 즈음,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하철이 멈춰섰다. 시민들은 침묵을 깨고 불안함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지하철이 멈춰 선 그 시간, 서면의 지하철 환풍구가 무너져 내렸다. 환풍구 위에 서 있던 수많은 좀비들은 지하로 떨어졌고 마침 성경 일행이 타고 있던 열차가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열차 위로 좀비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열차가 좀비를 치여버린 것이다. 기관사는 이들이 좀비임을 깨닫고 밀어붙였다. 그때 열차는 다시 출발했다. 그러나 옆에 매달려 있던 좀비가 기관실을 공격했고 기관사가 좀비에게 물린 것, 그리고 열차는 기관사가 없이 내달리게 됐다. 


열차는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리고 부산항이 위치한 초량역까지 지나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성경 일행을 포함한 시민들이 이를 깨달았을때는 이미 열차는 멈출 수 없는 상태였다. 시민들은 언제 전복될 지 모르는 열차에 탄 채 두려움에 떨며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더 이상 역이 보이지 않게 됐다. 빠르게 '신평역'이 지난 걸 눈치 챈 시민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손잡이를 있는 힘껏 부여잡고 있었다. 충돌에 대비한 것이다. 열차는 생각보다 세게 부딪히진 않았다. 비상 브레이크가 작동한 탓에 서서히 속도가 줄었지만 워낙 빠르게 달렸던 탓에 열차는 꽤 빠른 속도로 부딪혔다. 시민들은 신평차량기지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차량기지를 빠져 나와서 우왕좌왕 하던 시민들은 조심스레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정해진 안전수칙대로 우선 다대포항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선과 소형선박이 들어서고 인근 조선소에서도 작은 배들이 만들어지는 작은 항구였다. 유사시에는 이곳에서도 많은 배들이 대피선박으로 활용되지만 대부분 항구가 좁은 위험성 탓에 시민들이 대피장소로 꺼려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걸어서 이곳까지 향하려던 시민들은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주변에 정차된 버스 2대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신평차량기지에서 다대포항은 차로 약 20분 거리였다.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언제 좀비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버스는 속도를 내서 달리고 있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인적이 없는 주택가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좀비가 들이닥친 것이다. 버스는 좀비를 피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부산의 좁은 골목길을 대형버스로 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뒤에 따라오던 버스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전복됐다. 좀비들은 넘어진 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앞 차에 있던 성경의 일행과 시민들은 버스를 공격하던 좀비를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좀비들을 피해 전속력으로 달린 버스는 얼마 후 다대포항에 도착했다. 많은 배들이 떠나고 조선소 쪽에 마지막 한 대의 배만이 사람들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꽤 컸던 탓에 항구에 완전 정박하진 못했다. 많은 고깃배들이 동원돼 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배에 올라타야 했다. 흡사 영화 '국제시장' 첫 장면의 흥남부두가 펼쳐진 듯 했다. 


버스는 최대한 가까이에 정차했다. 사람들이 내린 후 버스를 운전한 아저씨는 버스로 길을 막았다. 그리고 빠르게 배로 달려갔다. 살아남은 이들은 본능적으로 이 배가 마지막 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넘어 멀리에서는 좀비들의 괴성과 뜀박질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남은 군인들은 버스에서 내린 일행들이 지나가자 배치된 크레모어를 터트렸다. 그러나 밀려오는 좀비들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제서야 군인들도 배로 피신하기 시작했다. 


배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어선들이 만든 다리를 건너 배 옆에 있는 그물을 타고 올라야 했다. 성경은 선영을 업고 수안과 수안의 엄마는 짐을 들고 그물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미친 듯이 그물을 오르고 있었다. 여자와 아이라고 봐줄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기어이 수안의 엄마가 옆에 올라가던 아저씨의 어깨에 부딪혀 떨어졌다. 바다로 빠진 수안의 엄마를 보고 놀란 수안은 엄마를 구하기 위해 내려가려 했다. 그때 성경이 수안의 팔을 잡았고 선영이를 건넸다. 남편을 잃은 자신을 거둬주고 보살펴준 수안의 엄마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수안과 선영은 성경을 말렸지만 성경의 의지는 확고했다. 마침 버스를 운전하고 오던 아저씨가 수안의 팔을 잡았다. 아저씨는 수안과 선영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성경은 수안의 엄마를 구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성경은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성경과 수안, 아저씨,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내려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일말의 희망과 수안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성경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좀비들이 부두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든 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물을 타고 올라오는 중이었지만 승무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그물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선영을 등에 업은 수안이 아저씨와 함께 배에 오르고 몇 명의 사람들이 더 올라오자, 승무원들은 그물을 버렸다. 수안과 선영은 울부짖으며 바다를 향해 뛰어갔지만 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배를 향해 달려오는 좀비들과 성경, 수안의 엄마를 뒤로하고 배는 매정하게 다대포항을 떠났다. 


부산시의 대피계획은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으로 시민들을 수송하는 것이었다. 수안과 선영이 탄 배는 일본 후쿠오카로 향하고 있었다. 수안은 엄마를 잃은 슬픔에 엉엉 울고 있었지만 자신의 품에서 더 크게 울고 있는 선영을 보고 울음을 참아보기로 했다. 다가올 미래가 두려웠지만 자신을 지키려다 죽어간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성경을 생각해 어떻게든 살아보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부산에서 대피한 한국인들은 후쿠오카와 교토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들의 생활은 피폐할 따름이었다. 흡사 '제2의 식민지'가 아니냐는 우려도 시민들 사이에서 퍼져 나왔다. 사실 부산시의 대피계획을 수립할 때 야당은 대만과 협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일본, 중국과 협정을 맺었다. 역사가 반복될 것을 우려한 사람이 있었지만 정부와 여당에게는 들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일본에 정착한 수안은 부잣집 가정부로 생계를 이어갔다. 일은 고되지만 월급으로 선영을 보살피고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수안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수안은 늦은밤 선영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주인집 가족들이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면서 집이 3일 동안 집이 비게 된 것이다. 집주인의 허락으로 수안과 선영은 단 3일동안 이 부잣집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남은 음식을 싸가서 끼니를 해결했던 이전과 달리 처음으로 둘은 직접 만든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오키나와 해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 화려한 해변 깊숙한 곳에서 어떤 생물체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이들은 마치 강에 잠복한 특전사처럼 소리없이 조용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한국에서 떠내려 온 좀비들이었다. 부산항과 감천항, 다대포항에서 바다에 빠진 좀비들이 오랜 시간 바다를 떠내려와 일본에 도착한 것이다. 특히 일본 근해의 높은 방사능을 직접 쬔 좀비들은 피부 돌연변이가 나타나 바다 속에서도 끄떡없는 피부를 갖게 됐고 더 강력한 힘과 스피드를 얻게 됐다. 어떤 좀비들은 몸에서 촉수까지 뻗어나왔다. 이들에게서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바다를 떠내려 온 좀비들은 오키나와를 비롯해 후쿠오카, 시마네, 교토 등에 상륙했다. 그리고 이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휴가를 즐기던 집주인 가족들도 좀비에게 끔찍하게 당했다. 이 좀비들 가운데는 상화와 석우의 얼굴을 한 좀비도 있었다. 방사능 돌연변이로 온 몸에 두꺼운 비늘과 가시 돋은 어깨를 가진 상화는 대형 트럭도 넘어뜨릴 정도로 강력한 좀비로 변해있었다. 석우 역시 방사능 돌연변이로 갈퀴가 돋은 손과 5m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다리를 가진 좀비가 됐다. 대부분의 좀비들에게서 이런 돌연변이 현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삽시간에 도심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좀비들이 공격한 그 시각, 수안과 선영은 주인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45층 펜트하우스에 위치한 복층짜리 대형 고급아파트, 1층 입구는 유사시에 철문으로 봉쇄된다. 철저한 내진설계에, 만약을 대비한 비상식량도 3개월치가 구비돼있다. 역시 지진을 대비한 자가발전은 3개월 동안 불을 켜고 살 수 있으며 식수 또한 수도에 연결된 정수시스템으로 상시 공급이 가능하다. 이 펜트하우스는 최소 3개월을 버틸 수 있는 '요새'에 가깝다. 수안과 선영은 천연덕스럽게 이곳에서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은 꿈에도 모른채...

'창작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날, 은희와 윤진명이 남산에서 만났다"  (0) 2016.09.21
스토리 컨셉  (0) 2016.09.11
[스포주의] '부산행' 속편... Escape From Busan  (0) 2016.08.16
타임머신  (0) 2015.04.20
신체강탈자  (0) 2015.03.04
주님 뜻대로  (0) 2015.03.04
TRACKBACK 0 AND COMMENT 0




1. 확실히 같은 '독한영화'라도 '외제'보다는 '국산'이 피부로 와닿는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심하게 느낀 부분인데 좀비영화도 제대로 국산을 만드니 피부로 와닿는다. 


2. 사실 '부산행'은 '좀비영화'보다 '재난영화'에 가깝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좀비 특유의 정통성이 돋보이지 않는다. 끈적끈적하게 조여드는 좀비의 공포와 야무지게 식사하는 좀비의 먹성은 썩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재난영화로서의 폐쇄성과 고난을 헤쳐나가는 인간의 모습은 잘 보여준다. 


3. 일단 영화를 보기 전부터 플롯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폐쇄공간에 좀비라니, 이보다 매력적일 수 있나 싶었다. 그리고 이 폐쇄공간(기차)은 이동한다. 좀비영화고 재난영화임과 동시에 한국에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로드무비'인 것이다. 


4. 이전에 가장 최근에 본 좀비영화는 단연 '좀비스쿨'이다. 좀비 말고는 아무것도 볼 게 없는 영화였다. 아마 좀비에 대한 묘사는 딱 그 정도다. 뭐 그보다 쪽수가 많은건 나름 장점이다. 사람에 따라 '월드워Z'의 '좀비 쓰나미'가 생각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 정도로 무자비하다는 뜻이다(아, 이 영화에는 '좀비카펫'이 등장한다). 


5. 재난상황 속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만큼 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상화(마동석)와 운송회사 상무(김의성)가 가장 눈에 띈다. 마동석은 특유의 거친 상남자 매력과 귀요미 매력은 동시에 폭발시킨다. 게다가 그 로맨티스트적 모습은 사람에 따라 "공유보다 더 멋있어"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확실히 이 영화에서는 공유보다 마동석이다. 


6. 김의성은 그동안 영화에서 악역을 많이 맡았다. 단언컨대 이 영화에서 김의성은 그동안 맡은 역할을 통틀어 가장 나쁜놈을 연기한다. 관객이 보다가 "으...암 걸릴 것 같아요"라는 반응이 나오면 무조건 김의성 때문이다. 


7. 석우(공유)의 성격이 변해가는 것도 다소 전형적이지만 봐줄만하다. 영화의 드라마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거라 생각된다. 그 맥락에서 봤을때 수안(김수안)의 역할은 다소 재미가 없다. 너무 착한 딸이라 석우와 수안 사이의 드라마가 돋보이지 않는다. 


8. 이 영화의 숨은 명품 캐릭터는 노숙자(최귀화)다. '존멋, 개간지'였던 상화만큼이나 노숙자는 대단히 멋있다. 


9.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의 드라마는 그럭저럭이다. 단 안소희가 영화 후반에 뜬금없이 연기를 잘해서 상당히 놀랬다. 


10. 연상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밝은 영화인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연상호라면...연상호라면..."이라며 예상한 결말을 완전히 빗나가버린다. 문제는 사람이 그동안 워낙 다크포스 가득한 이야기를 써내다 보니 밝고 화기애애한 드라마를 낯설어 한다. 아마 어느 지점에서 "전형적이다"라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해하자, 오글거리는 말 잘 못하는 사람같더라...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마무리 지은 것은 연상호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중간중간 연상호 식의 '자비없는 연출'은 돋보였다(CJ식으로 만들었다면...먼산).


12. 결론: 정통 좀비영화에서는 상당히 어긋났지만 오락영화로써 재미는 충분하다. 



추신1) 익무여신님 카메오, 놓치지 말자!


추신2) 역시 동대구역은 환승역이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회사일때문에 왠만하면 리뷰 안 쓸려고 했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한 번 리뷰 쓰면 체력이 좀 닳기 때문이다. 근데 얼마전부터 몸이 좀 근질근질했다. 회사 일 때문에 매번 글 쓰면서 지쳤었는데 슬금슬금 리뷰 욕구가 샘 솟았다. 아니나 다를까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흥미로운 영화를 보고 나니 손맛이 슬슬 올라와서 결국 리뷰를 질러버렸다. 이러면서 블로그질도 슬슬 시동 걸어봐야겠다.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있는 블로그가 그리웠다...ㅠㅠ
----------------------------------------------------------------------------------------------

솔직히 고백하건데 '윤종빈'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크지가 않았다. 그의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는 좋아하지만 <비스티 보이즈>를 봤을때는 "이 양반도 소 뒷걸음질 치다가 걸작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영화계에서는 그런 사례를 종종 봐왔기 때문에 윤종빈 감독도 결국 그런 경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그가 진화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진화는 윤종빈이 어떻게 상업영화에 녹아들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지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진화는 도에 지나칠 정도로 성공적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다. 여타 조폭영화의 정통성인 배신과 음모를 잘 보여준 가운데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선포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장르와 역사적 화두가 마치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적절하게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좀 짧게 마무리 짓기로 한다. 이미 누가 꺼내도 할 이야기이며 더 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구성이 탄탄하고 배치가 좋기 때문이다.

단,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인 '최익현'(최민식)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영화는 최익현에 대해 따로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최익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문제는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최익현'을 '아버지'의 모습으로 보기로 한다.

최익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읽어낸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간 영화를 통해 흘러 온 최익현의 삶을 돌아보자.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성공한 삶을 위해 서슴치 않고 모든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쁜 사람들과도 서슴없이 어울리고 높은 사람에게 굽신거리기도 한다. 어찌보면 비굴하고 치사한 삶이지만 최익현에게 그 모든 것은 서슴없이 행해지는 일상과도 같은 것이다.

최익현의 비굴한 삶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영화의 중간중간에 등장하지만 최익현은 자녀들(특히 3대 독자 외아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최익현이 검찰에 연행되며 걱정하는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모습과 외식하는 모습 등은 자녀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보여준다. 특히 엔딩에서는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최익현의 비굴한 삶은 가족들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아버지의 욕망'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우리네 아버지들은 물건 하나 더 팔기 위해 손님에게 굽신거리거나 직장 내에서 자리를 유지하며 성공의 길을 걷기 위해 상사에게 굽신거리는 등,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밖에서 굽신거리는 씁쓸한 모습을 보인다. 그게 아버지다.

자 그렇다면 관객은 '아버지 최익현'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가정, 특히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비굴함을 마다하지 않지만 딱히 존경할만한 아버지는 아니다. 보통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에서 생각하는 아버지는 고집불통에 답답한 구석이 있지만 자녀들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엔 존경할만한 인물인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마 관객이라면 최익현에게서 그런 아버지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관객에게 최익현은 일말의 존경할 가치도 없으며 그에게서 관객 각자의 아버지를 그릴수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리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최익현의 3대 독자 외아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물론 아들만 잘 키운 최익현을 바라보는 두 딸 입장은 그리 편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아들이 바라보는 최익현은 관객이 바라보는 최익현과 분명 다를 것이다. 마치 우리들 모두, 우리 각자의 아버지를 가장 멋있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것처럼, 최익현의 아들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누구보다 존경할 것이다. 다시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들은 우리들 각자에게는 너무나 크고 위대한 사람이지만 그들 역시 욕망과 시기, 질투, 분노를 가진 한 인간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인간'으로써의 아버지를 만나는 영화이며 인정하기 싫지만 최익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진짜 아버지를 이해하는 길인 것이다.

화두를 바꿔서 잠시 '윤종빈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는 꽤 신선했다. '죄-속죄'라는 화두를 '대한민국 군대'라는 익숙한 듯 낯선 공간에 녹여내표현한 작품이었다. 다음 작품인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주류영화에 녹아들려는 시도를 보였지만 '호스트바'라는 익숙한 듯 유치한 소재를 끄집어 내 큰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어쩌면 영화감독 윤종빈의 욕망은 장르영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편승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도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드디어 결실을 보인다.

무엇보다 윤종빈은 디테일의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방법을 터득함과 동시에 이야기에 있어서도 그만의 고집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또 한국영화사에 꽤 독특하게 자리잡고 있는 조폭영화의 정통성을 포기하지 않음과 동시에 역사적 시대상을 끌어들여 전혀 새로운 조폭영화를 만들어냈다. 이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두고 볼 일이지만 <범죄와의 전쟁>은 꽤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로 평가될 것이다.


여담1) 마동석과 조진웅은 <퍼펙트 게임>에 이어 다시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됐다. 둘의 인연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여담2) 영화의 배경이 부산이다 보니 낯익은 지명이 여럿 등장한다. 특히 필자 입장에서는 다니던 초등학교(남부민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완월동(공식지명 '부민3가)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은 꽤 반가운 일이다. 물론 지금은 초토화됐다고 들었다.

여담3) 영화를 함께 본 여자친구가 '관광호텔'과 그냥 '호텔'의 차이를 물었다. 알 것 같은데 은근히 구별이 잘 안 된다. 애정남에 물어봐야겠다.

TRACKBACK 2 AND COMMENT 1
  1. BlogIcon Shain 2012.01.27 13:0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갑자기 관광 호텔과.. 호텔의 차이를 잘 모르겠네요 ^^
    지금 생각해 보니... 모텔의 전신이랄까..
    여관 보다는 급이 높고 부담스런 호텔 보다는 약간 비용이 저렴한
    그런 급의 호텔들이 생길 때 많이 생긴 것도 같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오던 시절에
    (80년대에 싼 가격 때문에 상당히 많이 다녀갔죠)
    저렴하게 계약하려 생긴 것 같기도 하고(관광이 그래서 붙은듯)
    하여튼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호텔이란 뜻일텐데...
    그 시작은 잘 모르겠네요
    최민식씨를 연기자로서 간만에 보는 느낌이에요..
    궁금합니다.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218)
일상생활 (137)
창작의 공간 (11)
영화이야기 (959)
음악이야기 (41)
야구이야기 (21)
포토샵 장난질 (3)
Entertainment (31)
익스트림알콜 (9)
본의 아니게 떠난.. (4)

CALENDAR

«   2020/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