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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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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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 해당되는 글 6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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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 줄 아는 형, 조정석
  2. 2020.01.28
    잡담 200128 - 카라타 에리카
  3. 2020.01.20
    2019년 박소담, 보편적 특별함을 연기하다
  4. 2020.01.10
    최우식 - 무기력을 연기하는 에너지
  5. 2020.01.08
    아담 드라이버 - 좋은 작품의 냄새를 맡는 하이에나
  6. 2019.04.23
    [직찍] '기생충' 제작보고회 - 송강호, 봉준호, 최우식,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장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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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2019년에 잘 될 것 같은 배우 1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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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종서 & 김다미 - 지상에 내린 별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과에 재미있는 형이 있었다. 키도 훤칠하고 늘씬한 몸매를 가진 그럭저럭 미남인 형이었다. 이 형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운동도 잘한다. 그리고 같은 아재개그도 찰지고 맛있게 살렸다. 낯가림이 없어서 남녀노소 누구와도 친하게 지냈고 성격도 활달해 학교의 절반 이상은 이 형을 알 정도였다. 거의 학교에서 '스타'에 가까운 형이었다. 그 형은 내가 1학년 때 4학년이었으니 오래 볼 일은 없었다. 공부도 별로 안 하는 것 같았는데 희한하게도 졸업은 칼 같이 했다. 졸업한 후 들려온 소식은 평범한 회사에 다니면서 여전히 유쾌하게 산다는 것 정도였다. 결혼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결혼을 했다면 형수님도 대단히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형은 말 그대로 '잘 노는 형'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언제 어느 시기고 '놀 줄 아는 형'을 만나게 된다. 어릴 때 만났을 수 있지만 주로 기억하는 '놀 줄 아는 형'은 고등학생 이후에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는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놀 줄 아는 형 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배우 조정석 얘기다. 1980년생인 조정석은 공항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데뷔작은 2004년 연극 '호두까기 인형'이다. 이후 오랫동안 연극과 뮤지컬을 하던 조정석은 2011년부터 드라마와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그 유명한 '납득이'부터다. 조정석은 아주 전형적으로 무대에서 내공을 쌓고 카메라 앞에서 만개시킨 '천생배우'의 길을 걸었다. 

조정석의 커리어는 무대와 TV를 거쳐 스크린으로 향하는, 좋은 배우가 갈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길이다. 그런 길을 걸어서 성공한 배우는 아주 많지만 조정석은 조금 특별해보인다. 우선 그는 잡기에 능하다. 기타와 노래, 춤, 운동 등 여러 가지를 잘한다(심지어 영어도 잘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도 등장하지만 배우는 다양한 배역을 따내기 위해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것이 좋다. 조정석은 바로 그 '이것저것'을 잘한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엑시트'에서는 "저게 가능해?" 싶은 철봉동작도 척척 해낸다. 그리고 작가의 대본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애드립을 하는데 그게 반응이 아주 좋다. 애드립을 잘한다는 점이 유쾌한 재치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이쯤 되면 그는 박철민이나 김수로, 유해진 등 '천생 광대'들과 계보를 같이 한다. 그러나 조정석은 이전의 광대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잘생겼다. 

조정석은 잘생겼다. 주관적 견해기도 하지만 객관적 데이터로도 그는 '주연감'의 외모다. 우리가 아는 잘생긴 배우들을 몇 명 떠올려보자. 정우성, 원빈, 조인성, 장동건, 현빈 등. 이 잘생긴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뽐내며 중후한 멋을 선사한다(때로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기를 하지 않는 자리에서 이들은 중후하고 점잖은 배우가 된다. 내보일 끼가 많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조정석은 잘생겼으면서도(조정석을 정우성, 현빈, 원빈, 장동건, 조인성의 외모와 나란히 놓을 수 있는지 코멘트를 하진 않겠다) 끼를 마구 내보인다. 영화 '형'의 비하인드에서는 무려 아이돌인 EXO 도경수를 압도하는 잔망스러움도 보여준다. "얼굴을 저렇게 써도 되나"라는 걱정도 들지만 저렇게 쓰기 때문에 조정석은 더 특별해진다. 

그렇다면 이 배우는 그저 놀 줄 아는 배우이기만 할까? 앞서 말한대로 그는 무대에서 탄탄히 내공을 쌓고 온 배우다. 당연히 연기도 잘한다. '관상'에서의 절절함도 있고 '마약왕'에서의 카리스마도 있다. '뺑반'의 나쁜놈도 있고 '엑시트'의 용남이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학개론'의 납득이도 있고 '더킹 투하츠'의 은시경도 있다(난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더킹 투하츠'의 은시경을 꽤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런거 다 가지고 있으면서 '헤드윅'의 헤드윅도 있다. 조정석은 잘생긴 데다 아무 역할을 던져줘도 액체괴물처럼 달라붙는다. MCU의 토르가 브루스 배너만큼 똑똑하다면 이런 느낌일까? 잘생겼는데 아무 역할이나 맡겨도 된다는 점은 배우로서 '역대급 사기캐'라고 봐도 무방하다(사생활면에서 그가 자상한 남자 사기캐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겠다. 여기는 배우로서 이야기하는 자리다). 

심지어 작품 선구안도 괜찮은 편이다. 드라마의 경우 '더킹 투하츠'부터 '최고다 이순신', '오 나의 귀신님', '질투의 화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주연을 맡을 경우 타율이 좋은 편이다. 영화는 종종 말아먹는 영화('특종:량첸살인기', '시간이탈자' 등)에 출연하는 편이긴 하지만 '관상'과 '엑시트'라는 걸출한 대작도 가지고 있다. 다만 괜찮은 타율을 가지고도 천만영화가 없는 걸 보니 이러다 커리어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되는 건 아닌가 우려도 된다. '다 가진 남자' 조정석의 유일한 과제라면 '천만영화' 하나 커리어에 올리는 것 정도다. 천만 문턱 앞에서 주저 앉은 '관상'과 '엑시트'를 생각하면 더 아쉽다. 

조정석은 범상치 않은 배우다. 박철민, 유해진의 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인공급으로 잘생겼다. 얼굴 쓰는데 두려움이 없어서 아무 역할이나 갖다줘도 다 해낸다. 멜로도 되고 나쁜 놈도 되고 액션도 되고 변태도 된다. 동시대 배우 중에 역대급 사기캐인 이 배우는 이제 겨우 40살이다. 아직도 쌓아야 할 커리어가 아주 많다. 조정석은 무대와 스크린, TV에서 충분히 오래 볼 수 있는 배우다. 그리고 지금까지 별의 별 역할로 나온만큼 앞으로도 별의 별 역할로 나올 것이다. 놀 줄 아는 형하고 놀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즐겁다. 조정석을 보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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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이 배우를 알게 된 건지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다만 "배우인가?"라는 생각을 먼저 했던 걸 보니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전이었던 것 같네요.

카라타 에리카의 데뷔 스토리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목장형 테마파크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에이전시의 눈에 띄어서 데뷔하게 된, ...길거리 캐스팅이죠. 

광고에 몇 개 출연하다가 '연기'라는 걸 하게 된 게 '아사코'인 모양입니다. 

워낙 청순한 외모에, 국내 소속사 BH엔터에서 올린 유튜브 영상을 봐도 꽤 발랄하고 순박해보였죠.

'아사코'를 봤을때도 "뜨악"할 정도로 예뻐서 영화가 기억이 안 날 수준이었습니다.

발연기를 부정할 순 없었습니다만 그 발연기조차 아사코의 모호한 캐릭터와 어울렸죠.


오래 본 배우기 때문에 이번 일은 좀 화가 나네요.

다만 그게 '불륜'이라서 화가 나는 건 아닙니다.

연애라는게 누구랑 사랑에 빠질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배신 당하고 상처받는 사람도 있으니깐요. 

말 그대로 그 집 연애는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그래도 팬의 입장에서는 얼굴도 알려진 사람이 기왕 연애할 거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하면 좋지 않나 싶네요. 

이건 당사자들 말고는 누구도 축복할 수 없는 사랑이네요. 오히려 비난과 조롱이 난무하겠죠.

그 가시밭길을 함께 걸어줄 정도로 제가 카라타 에리카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아무리 팬이라도, 아니 오히려 팬이라서 그 가시밭길은 함께 못 가겠습니다.


이렇게 손절하고 나니 오히려 재미난 생각이 드네요.

정확히는 카라타 에리카 이 사람이 재밌습니다. 픽션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요.

'청순 여배우의 불륜'은 아주 자극적이면서도 통속적인 소재죠. 익숙한 막장드라마 느낌도 나고...

만약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저는 불륜 사건을 그냥 '트리거' 역할 정도로 쓰고 싶네요. 

그리고 한 사람의 양면성을 파고들면서 그 뒷이야기를 '상상'하는겁니다. 

사실 이 사건은 이야기 자체가 막장이라서 그대로 가져다 써도 사람들이 픽션인 줄 알거에요. 

암튼 이 사건, ..정확히는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보여진 카라타 에리카 캐릭터 자체가 아주 재미난 영화 소재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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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최고의 한국 여자배우를 꼽으면서 '박소담'을 언급했다면 어떤 사람들은 "덕심이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짧은 공백을 깨고 돌아온 이 배우를 만났던 2019년은 딱 맞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귀여운 여인'처럼 유난히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박소담의 필모그라피는 주·조연, 특별출연, 단역 가리지 않고 이 배우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흔적과 같다. 몇 개의 대표작이 있고 몇 개의 의미있는 작품도 있다. 몇 개의 찰떡같은 작품도 있고 몇 개의 새로운 모습도 있다. 배우로서 지내온 치열한 시간만큼 그녀의 필모그라피에는 그 흔적들이 돋보인다. 내가 '언더독'과 '기생충', '후쿠오카'를 통해 만났던 '2019년의 박소담'은 대표작이자 의미있는 작품, 찰떡같으면서 새로운 모습이 모두 혼재돼 있었다. 이 배우가 스스로 2019년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 4년 된 팬 입장에서 바라본 '박소담의 2019년'은 그녀가 가야 할 긴 연기인생에서 아주 큰 변곡점이 됐다. 박소담에게 2019년은 유난히 특별한 해다. 

박소담의 배우인생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앞서 말한대로 주연과 조연, 단역을 모두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중 주·조연작을 추리더라도 이렇다 할 특징을 잡아내기 어렵다. 그저 찾아낼 수 있는 특징은 '연기에 목이 마른 배우'였다는 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가볍고 무거움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임했다. 누군가 "너는 이 배우를 어쩌다 좋아하게 됐나"라는 질문을 던지면 나는 "겁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배역을 맡고 연기하는데 두려움이 없다는 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검은 사제들'의 '영신'에게서 받은 느낌이 가장 컸지만 '사도'나 '설행-눈길을 걷다', '뷰티풀 마인드', '베테랑' 등 섣불리 공통점을 찾기 어렵고 편안하거나 부담없이 할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했다(물론 '처음이라서' 같은 작품은 썩 부담이 적어보였다). 여기에 연기 부담이 클 법한 연극무대도 과감하게 도전했다.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부담이 적어보였지만 '클로저'나 '렛미인'은 분명 난해하고 어려운 역할이었을 것이다(거리의 여자부터 뱀파이어까지). 연기의 공통된 방향을 찾기 어렵고 난해하거나 새로운 작품(역할)을 맡는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은 분명 큰 메리트였다. 

가열차게 달리던 박소담은 2016년 즈음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드라마 '뷰티풀마인드'가 실패했고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도 썩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국가대표2'의 히든카드로 출연했고 '대장 김창수'에 특별출연했다. 이 시기에 박소담은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좋은 작품에 출연했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사실상 2016년 이후에는 잠깐의 휴식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8년에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고 애니메이션 '언더독'에서는 생애 첫 목소리연기를 했다('언더독'은 그 이전에 작업했다). 2015년 영화 '검은 사제들'은 그녀의 연기인생에 분명한 터닝포인트였다. 그러나 그 약빨은 빠르게 식어갔고 이 배우에게는 두 번째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그녀의 연기인생에 두 번째 터닝포인트였다. 

"기정 역할에 왜 박소담을 캐스팅했나?"라는 물음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답변은 박소담의 팬 입장에서 썩 유쾌하진 않다. 봉 감독의 답변은 "남매로 출연하는 최우식과 닮아서"라는 것이었다. "배우에겐 외모도 능력이다"라는 전제가 붙는다면 긍정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봉 감독이 박소담의 연기역량을 보고 캐스팅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답변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봉 감독도 만족한 모양이니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기생충'의 기정은 입체적이되 보편적이다. 기택네 가족의 무기력한 남자들에 비하면 엄마 충숙(장혜진)의 영향을 받아 강한 여자의 모습이 있다. 다만 그와 동시에 가난한 집안의 특성 때문에 무기력한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세계 안에서의 강함과 외부 세계에서의 무력함이 자연스럽게 공전해야 한다. 기정은 외부 세계에서는 이미 꺾일대로 꺽인 인물이다. 기정의 거친 언행은 이 인물이 자기 세계에서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와 같다. 이런 모습은 거친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너지지 않으려는 우리 각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반면 '후쿠오카'의 '소담'은 특별하고 이상한 인물이다. 영화에 함께 출연한 캐릭터 '제문'은 '소담'에게 "얘 또라이네"라는 대사를 연발한다. '소담'의 이상한 언행,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모습 때문에 나온 대사다. 그렇다고 '소담'이 '통통 튀는 신세대'를 연기하는 것은 아니다. '소담'은 '제문'의 대사처럼 그냥 '이상한 애'다. '후쿠오카'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두 세계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발견하기 위해서는 꽤 깊게 영화를 이해해야 한다. 그 작업은 잠시 접어두겠다. '군산'에서 박소담은 주은을 연기했다. 군산의 한 민박집에서 아빠 이사장(정진영)과 함께 사는 주은은 약간의 자폐성향이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선물해준 일본인형을 품에 안고 알 수 없는 일본어 노래를 부른다. '후쿠오카'에서 '소담'은 주은과 도플갱어처럼 등장한다(이것이 명확하게 정의내려져 있진 않다). 하나인듯 다르고 둘인듯 셋, 혹은 그 이상인 이 존재는 실체가 없는 기이함처럼 이방인의 도시를 거닐고 있다. 이는 이방인이자 경계인인 장률 감독의 정체성과 통한다. 

여기서 '소담'의 '또라이 같은 면'은 기정과 맞물려 매력적이다. 기정이 입체적이되 보편적인 인물이었다면 '소담'은 특별하고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지점은 '여전히 보여줄 것이 많은' 박소담의 정체성(혹은 바램)과도 통한다. '군산'의 주은과 멍함을 공유하면서도 주은이 갖지 못한 활기와 적극성을 가지고 있다. 어수룩한 일반인들에게 휘둘렸던 주은과 어수룩한 일반인들을 휘두르고 다니는 '소담'은 분명 같지만 다르다. 주은과 '소담'은 쪼개진 두 개의 자아처럼 보인다. 그리고 장률의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두 자아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다. '후쿠오카'와 '기생충'의 박소담은 너무 보편적이라 특별했거나(기정) 특별해서 더 특별한(소담) 역할을 연기했다. 이는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팬 입장에서야 그녀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들이 소중하지만 이 새로운 시도들은 앞서 언급한대로 터닝포인트가 됐으며 앞으로 더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올해 박소담은 영화 '특송'과 드라마 '청춘기록'에 출연한다. 액션영화 하나에 청춘멜로 하나다. 수년전 연기열정이 불타오르던 박소담의 행보를 다시 보는 기분이라 반갑다. 다만 이번에는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작품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가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특송', '청춘기록'이 좋은 작품인지는 보면 알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 늘 믿는 이야기지만 '배우의 가치는 작품으로 결정된다'. '기생충'은 박소담의 가치를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작품이다. '기생충' 같은 작품이 매년 나올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기생충'은 좋은 작품의 여러 종류 중 하나다. 분명 다른 종류의 좋은 작품도 있을 것이다. 팬의 바램'으로, 나는 이 배우가 매번 좋은 작품에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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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아닌 사람도 다 아는 사실: 배우는 몸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항상 건강하게 체력을 유지해야 하고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이것은 굳이 액션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덕목이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감정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지치지 않고 연기하려면 체력과 멘탈 관리는 필수적이다. 나는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 그저 연기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감정을 마음껏 뿜어내는 연기보다 감정을 억누르는 연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오래전 영화 '용순'을 봤을 때도 내내 뚱한 표정을 짓고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용순(이수경)의 연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최우식에 대해 떠올린 가장 첫 번째 단어는 '무기력'이었다. 그는 체력이 좋고 건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감정을 마음껏 뿜어내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그는 나보다 건강할 것이며 외향적이고 활기찬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의 그는 놀라울 정도로 무기력하고 절제하고 있다. 사실 그는 동세대의 배우들 중 가장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배우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최우식이라는 배우를 새겨두진 않았다. 드라마의 조연으로 시작해 리얼리티 예능을 전전하며 스타가 되기 위한 거친 길을 걷는 청년일 뿐이었다. 첫 영화 주연작인 '거인'에 출연했을때도 '다시 없을 명연기'를 선보였다고 하지만 독립영화의 한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그 연기가 닿진 않았다. 그는 '거인'으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제36회 청룡영화제 '신인남우상',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 제16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 제2회 들꽃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는 tvN 드라마 '호구의 사랑'에서 첫 주연을 맡는다. 어쩌면 대중에게 다가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으며 '최우식' 이름 석자를 알릴 계기가 됐을 것이다. '거인'의 내실에 이어 대중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우식의 저력을 알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부산행'에서 최우식을 처음 봤을 때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있었다. 극 중 그는 고교 야구부로 등장한다. 누가 봐도 야구부와는 거리가 먼 체격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야구 하는 사람'이라는 그의 역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가 연기한 '영국'은 축구부나 관악부였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트럼펫으로 좀비를 때려잡는다던지). 이런 작용은 꽤 이상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야구부 같지 않은 체격의 배우를 야구부에 앉히고 야구부와 상관없는 역할을 부여한다. 이 작용을 통해 놀랍게도 그는 '완벽한 야구부'가 된다. 관객이 야구부를 의식하지 않게 되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영국'을 야구부로 세뇌시켜버린 것이다. 최우식의 저력은 여기서 등장한다. 놀랍게도 이 배우에게는 뭘 갖다 붙여도 말이 된다. 도화지같은 배우라는 의미다. 

최우식의 '도화지스러움'은 '물괴'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시대 유학자나 도령이 어울릴 것 같은 이 청년은 칼을 들고 무사를 연기한다. 이때 최우식도 '부산행'의 야구부처럼 이상한 어울림을 선사한다. 관객 중 누구도 "최우식이 무사야?"라고 의아해 하는 대신 "최우식이 무사구나"라고 납득할 것이다(영화가 납득하기 어려웠던 지점은 별개의 문제다). 최우식의 무기력함은 이상한 지점에서 또 빛을 발한다. '옥자'와 '마녀'에서 최우식은 정말 재미있다. 냉소적이고 껄렁한 이 역할들은 최우식이 아닌 다른 배우가 했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정도로 완벽한 그림이다. 세보이지 않지만 세고 가진 것 없으면서 건방지다. 이런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은 무기력한 외향과 반대되는 에너지가 뿜어나오면서 얻어낸 결과다. 이것은 최우식이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사실 그는 에너지가 넘치고 그것을 컨트롤 할 줄 아는 배우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에서 최우식을 '기우' 역할에 캐스팅하면서 '무기력한 청년'의 이미지를 노렸다. 이 이야기는 "최우식이 아니면 '기우' 역할을 할 사람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만약 관객들에게 "최우식 필모그라피 중 최고의 영화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기생충'이나 '거인'으로 갈라질 것이다. 작품이 좋았던 탓도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최우식은 억눌려있고 지쳐있다. 이 배우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기력'이며 그것을 이끌어내는 힘은 '절제'다. 최우식은 무기력을 바탕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며 에너지를 바탕으로 무기력을 연기한다. 여기에는 지쳐보이는 쳐진 눈과 왠지 좁을 것 같은 어깨도 한 몫한다(이 배우의 키는 의외로 180cm가 넘는다). 최우식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똑똑한 배우다. 

현재 개봉을 앞둔 최우식의 작품은 '사냥의 시간'과 '경관의 피'(가제)가 있다. '사냥의 시간'은 그렇다 쳐도(어쩐지 윤성현 감독과 어울릴 것 같은 최우식이다) '경관의 피'에서 최우식의 역할은 '형사'인 것으로 보인다(아직 그가 어떤 역할인지 정보가 알려지진 않았다. 시놉시스와 캐스팅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놀랍게도 그는 형사를 연기한 적이 있다(드라마 '특수사건 전담반 TEN'). 오래전 일 때문에 경찰서 강력반을 출입하면서 느꼈지만 최우식 같은 외모의 형사는 없다(머리 쓰는 자리인 정보과에 가도 없다). 이는 최우식뿐 아니라 '잘 생기고 늘씬한 외모의 형사'가 등장하는 모든 작품에 적용하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우식이 연기하는 형사가 꽤 자연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도화지같은 배우이며 뭘 그려도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니 내가 최우식의 외모에 대해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스크린과 사진으로 본 최우식은 마치 조셉 고든 래빗을 떠올린다. 쳐진 눈에 좁은 어깨가 꽤 지쳐보이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로 다재다능한 매력을 선보인다. 그렇다 최우식에게 '한국의 조셉 고든 래빗'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진 않다. '조토끼'는 '조토끼'의 길이 있고 최우식은 최우식의 길이 있다. 최우식의 외모에 대한 편견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외모는 어떤 배우도 가지지 못한 무기이자 장점이다(헐리우드에서도 조셉 고든 래빗이나 가진 무기). 이 배우는 독창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이다. 그는 건강미가 넘치는 동시대의 남자배우들도 하지 못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외모와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장점이 어떻게 발현될지 지켜보는 일은 최우식을 보는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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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드라이버를 처음 본 것은 사베리오 코스탄조의 영화 '헝그리 하트'였다(이전에 '인사이드 르윈'에도 출연했다고 나와있지만 이 영화에서 아담 드라이버는 기억나지 않는다). 노아 바움백의 '프란시스 하'나 '위아영'에도 나왔다고 하지만 이 작품들은 보지 못했다. '헝그리 하트'는 가족의 위기를 다룬 영화로 대단히 무겁고 진지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아담 드라이버와 알바 로르와처는 굉장한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을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실제 두 사람은 2014년 제71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이 작품으로 각각 남녀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토록 대단한 영화에서 대단한 연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담 드라이버에 대한 내 첫인상은 '이광수'였다. 배우 이광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SBS 예능 '런닝맨'의 이광수 이미지가 강한 상황에서 '이광수'가 떠올랐다는 것은 다소 우스꽝스럽다는 의미로 통한다. 나중에 이르러서야 '신현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 이르기도 했지만 역시 진지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에 만난 아담 드라이버는 단 한 번도 우스꽝스런 역할을 한 적이 없었다. '스타워즈:깨어난 포스'에서의 카일로 렌이나 '패터슨'에서의 패터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2019년에는 무려 4편의 영화에서 아담 드라이버를 만났다('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데드돈다이', '결혼이야기', '스타워즈:라이즈오브스카이워커'). 유쾌한 영화들도 꽤 있었지만 아담 드라이버는 작정하고 관객을 웃긴 적은 없다. 그는 모든 영화에서 아주 진지하게 연기했다. 나는 어쩌면 '런닝맨'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때문에 아담 드라이버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게 됐다(그 전에 미국인들도 아담 드라이버의 얼굴에서 유머러스함을 읽는지 모르겠다. '데드돈다이'와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보면 확실히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담 드라이버는 커리어부터 대단히 진지한 배우다. IMDB에 따르면 아칸소 주 리틀록에서 태어난 아담의 아버지는 침례교 목사였다. 고등학교 때 연극에 출연했으며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부상으로 전역했다. 이후 그는 군대에서 연극을 하는 비영리 단체 AITAF를 설립하기도 했다. 인디애나폴리스대학교와 뉴욕 줄리어드에서 연기를 전공했으며 이후 브로드웨이 연극무대를 돌다 2011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J. 에드가'로 영화에 발을 들인다(이전에 TV영화에 종종 얼굴을 비춘 적은 있다). 이후 레나 던햄의 드라마 '걸스'로 이목을 끈 뒤 지금의 대세배우가 됐다. 그의 배경만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연기에 대한 욕심이 어릴 적부터 상당했으며 단 한 번도 이 일을 가볍게 여긴 적이 없다는 점이다.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그의 필모그라피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단 한 번도 만만하거나 가벼운 작품에 출연한 적이 없다. 흔히 거쳐갈만한 3류 코미디 영화나 액션영화가 단 한 작품도 없다. 그는 재능있는 젊은 감독의 영화부터 미국영화를 이끈 거장의 작품까지 모두 출연했다. 특히 노아 바움백('프란시스 하', '위아영', '결혼이야기'), 코엔 형제('인사이드 르윈'), 마틴 스콜세지('사일런스'), 짐 자무쉬('패터슨', '데드돈다이'), 스티븐 소더버그('로건 럭키'), 테리 길리엄('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스파이크 리('블랙 클랜스만'), J.J.에이브람스('스타워즈:깨어난 포스', '스타워즈:라이즈오브스카이워커'), 클린트 이스트우드('J.에드가') 등과 작업한 경험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거장과 신예를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작품이 그를 찾아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역시 누구보다 신중하게 작품을 고른다는 점이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자주 하는 말이지만 '배우의 가치는 작품이 결정한다'. 좋은 작품에 참여한 배우일수록 가치는 올라가고 더 많은 관객들에게 인정받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아담 드라이버는 말 그대로 '꽃길'만 걷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올해 이후 그의 행보는 더 감동적이다. 그가 출연한 영화 '더 리포트'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감독으로 신예 스콧 Z. 번즈가 연출했다. 이 감독은 '007' 신작과 '본 얼티메이텀', '사이드이펙트',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등의 각본을 썼다. '더 리포트'는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또 거장 리들리 스콧의 영화 '더 라스트 듀얼'을 준비 중이다. 이 영화는 벤 에플렉과 맷 데이먼이 각본에 참여했고 아담 드라이버 외에 조디 코머, 맷 데이먼, 벤 애플렉이 출연한다. 찰스 6세 왕과 기사 장 드 카루지의 결투를 다룬 작품으로 중세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리들리 스콧의 경우 영화 속 배경이 과거로 향하면 승률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글래디에이터'를 제외하면 대체로 "그저 그랬다"는 반응을 얻었다('1492 콜럼버스', '킹덤 오브 헤븐', '로빈후드', '아메리칸 갱스터', '엑소더스' 등).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이 영화가 더 궁금하다. 

꽤 스케일이 커 보이는 '라스트 듀얼' 외에 굉장한 영화가 포스트 프로덕션을 진행 중이다. 레오 카락스의 신작 '아네트'다.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그의 아내인 오페라 가수, 그리고 2살짜리 딸에 대한 이야기로 그는 생애 처음 '웃기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레오 카락스 연출에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라인업만 봐도 굉장하다. 특히 '아네트'는 레오 까락스가 2012년 '홀리모터스'를 만든 후 8년만에 내놓는 첫 장편영화다. '라스트 듀얼'과 '아네트'만 봐도 아담 드라이버의 정체성은 명확해진다. 그는 마치 '좋은 영화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와 같다. 골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처럼 좋은 작품을 찾아 자신의 기량을 펼칠 기회만 노리는 듯 하다. 

배우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꽤 여러가지가 있다. 천의 얼굴, 중후한 목소리, 존재를 바꿔버리는 메소드 연기력. 그 밖에 아담 드라이버처럼 좋은 작품의 냄새를 맡는 선구안도 필요하다. 아담 드라이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 선구안에 있다. 그는 작품을 정말 잘 고르고 잘 소화해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좋은 작품에 꾸준히 출연할 수 있는 것은 배우로서 재능이 충만해야 가능한 일이다. 다만 재능이 충만해도 이상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떠올려보면 아담 드라이버는 자신의 재능을 정말 잘 쓰는 경우다. 그래서 이 배우는 진정한 완성형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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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라는 걸 배워본 적 없는 나에게 배우 유지태가 '무릎팍도사'에서 들려준 일화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당시 젊은 배우였던 유지태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촬영을 앞두고 유명한 '요가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직접 자세를 연습했다. 그런데 자세가 워낙 어려워서 박찬욱 감독에게 상의를 했더니 "피아노줄 매달면 되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찬욱 감독이 당시 유지태에게 요청한 것은 거창한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편안하게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편안한 연기', '힘을 빼고 하는 연기'가 뭔지 궁금했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고 배울 계획도 없는 나는 고민을 하다가 몇 명의 배우를 골랐다. 이들은 '힘 빼는 연기'의 정답이라기 보다는 '내가 보기 편안한 배우'들에 가깝다. 사실 연기를 편안하게 하는데 찰떡같이 어울리는 배우들(하정우, 조진웅, 이민지, 곽도원 등)이다. 

한 지인이 "이순재는 연기를 잘한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이 문장이 아주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이순재는 1956년에 데뷔해 올해로 63년째 연기를 하고 있다. 한 가지 분야에서 60년 넘게 성실히 일한 사람에게 겨우 30~40년 산 사람이 "잘한다"라는 말을 함부로 써도 되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 정도 되면 '잘한다'라는 경지도 이미 초월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배우의 연기에 정답은 없다. 그저 대중들이 끊임없이 원하고 필요한 부분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 배우는 훌륭하고 롱런할 수 있는 배우다. 이순재는 무려 60년동안 대중들이 원했고 필요한 부분에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경지는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걸까?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꽤 여러번 봤다. 사실 콘스탄스를 연기한 배우(박소담, 채수빈) 때문에 보러 갔다. 나는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이순재의 연기에 대해 집중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배우는 늘 볼 때마다 그 자리에 '앙리 할아버지'로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나는 이민지가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 '현기증'을 보다가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배우에 대해 "연기를 잘한다"라는 것을 인식할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민지는 그 장면, 그 순간에 일진 '정혜'로 자리할 뿐이었다. 다시 말해 그 장면에 '배우'는 없고 '일진 정혜'만 있을 뿐이었다. 이는 메소드 연기와는 다르다. 메소드 연기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우고 캐릭터에 녹아드는 것이라면 이민지는 자신을 지우고 정혜가 되는 대신 정혜를 자신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일진 정혜'에 '이민지'의 정체성을 녹이는 작업이다. 나는 이것이 어떤 경지에 이른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순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작업을 했다(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드라마 '사랑은 뭐길래'부터). 그는 아이덴티티를 지우고 에너지를 쏟아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대신 캐릭터를 '이순재'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대중들은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다. 충분한 협의가 이뤄졌을 것이며 이야기에서 튀지 않도록 설계했을테니 말이다. 적어도 이순재의 연기에 대해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으니 이 설계는 성공한 듯 보인다. 

나는 이것을 '숨쉬듯 연기하기'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한때 '천하의' 김윤석에 대해 연기력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정확히는 비슷한 캐릭터에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다. 확실히 김윤석은 오랫동안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연출자와 관객들이 김윤석에게 요구하는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김윤석도 결국 캐릭터를 위해 자신을 지우는 대신 캐릭터와 자신을 동기화시킨 것이다. 내가 김윤석을 연기한 이유는 캐릭터나 극의 성격에 따라 이런 연기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정우의 건들거림과 유머러스한 성격은 그의 실제 성격이며 연기에서도 이같은 점이 묻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게 어색하지 않다. '맞는 옷'을 입었기 때문일 수 있지만 캐릭터와 자신의 동기화가 성공한 경우다.

숨을 쉬는 행위는 본능적인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행위다. 숨 쉬듯 연기하는 것은 연기자가 힘 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메소드 연기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캐릭터를 받아들이기 위해 온전히 감내하는 그 고통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이것은 그저 취향의 차이다. 배우가 고통스럽게 하는 연기는 보는 나조차 고통스럽다. 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세상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출연작에 손길이 닿지 않는다. 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배우가 편하게 연기한다는 인상을 받으면 나도 편안하다. 다만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자신에게 캐릭터를 맞추는 과감한 작업은 굉장한 내공이 필요할 것이다(이것은 짐작일 뿐이다). 숨 쉬듯 연기하는 경지, 힘 빼는 연기가 이제 조금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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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는 소위 '믿고 보는 배우'가 몇 명 있다. 대표적으로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등이 있을 것이다(개인적인 견해로는 조진웅도 이 명단에 조심스레 들이대본다). '믿고 보는 배우' 중 감히 '최연소'라고 말할 수 있는 배우가 있다면 단연 하정우일 것이다. 일단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라면 어떤 형태로건 재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든다. 다른 선배들에 비해 긴 커리어는 아니지만 이토록 성실하고 훌륭하게 경력을 쌓은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그냥 혼자서 하는 얘기긴 한데, 나는 배우의 가치는 필모그라피로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에 나온 배우일수록 그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배우에게 필요한 여러 덕목 중 '작품 선구안'도 아주 중요하다. 비결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정우는 선구안이 참 좋은 배우다.

그런데 하정우의 강점은 비단 이 선구안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선구안이 좋은 배우라면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을 봤을 것이다. 그런데 하정우는 최소 두 번 이상 함께 한 영화감독들이 꽤 많다. 다들 하정우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자면 친하다고 작품을 흔쾌히 수락한다기 보다는 좋은 작품에 수락을 해야 '선구안이 좋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하정우와 여러번 함께 한 '인맥'들은 정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일까? 천재 곁에는 천재만 모이는, '끼리끼리 노는' 원리가 여기에 딱 적용된 것일까? 이 글은 '하정우를 두 번 이상 사용한 영화감독들'에 이야기다. 그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정우를 적재적소에 사용한 것'도 빼놓을 수 없을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들이 하정우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 하정우의 매력과 그들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윤종빈 - 계급의 포식자와 그것을 깨부수는 남자

윤종빈과 하정우는 중앙대학교 동문이다. 나이는 하정우가 한 살 더 많다. 윤종빈은 졸업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하정우와 함께 하고 이 인연으로 무려 네 작품('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민란의 시대')을 함께 한다. 윤종빈 감독이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만든 세 작품에 대해 나는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 3부작'(남자 3부작)이라고 부른다(아마 나 혼자만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이 작품에서 하정우의 역할은 대체로 관계의 상위에 위치한 호전적인 사람이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호쾌한 성격의 고참,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호스트들의 마담,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조직의 두목이다. 이 역할의 공통점은 모두 밑바닥에서 시작해 계급의 윗 단계까지 올라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외향적이고 호전적이다. 이는 신입 계급일 때 부터 근면성실해야 하고 상관의 비위도 잘 맞춰줘야 가능한 자리다.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윤종빈에게 하정우는 '성공한 남자의 표본'이다. 재벌가의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자리 잡은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윤종빈의 '남자 3부작'에서는 '무너지는 남자'와 '근근히 버티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들의 대립점으로 자리잡는 역할을 주로 하정우가 했다. 이후 윤종빈은 '군도:민란의 시대'라는 전형적인 장르영화를 하나 만들어낸다. 여기서 하정우가 연기하는 '돌무치'는 앞선 '남자 3부작' 속 하정우의 시작과 같다. 철저한 계급 관계가 만들어진 조선 어느 곳에서 돌무치는 맨 밑바닥에 머물러있다. 그런데 돌무치는 계급의 위로 올라가는 대신 계급을 파괴해버린다. 어쩌면 앞서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군도'의 조윤(강동원)처럼 될 수 있었다. 마치 돌무치는 그간 마음의 짐을 내려놓듯 과감하고 저돌적이다. 윤종빈은 하정우를 통해 한국사회 속 계급의 원리를 보여주고 그것을 깨버린다. 


#김용화 - 어설프지만 인간적인 리더

하정우와는 역시 중앙대 동문이다(다만 동문이라서 뭘 함께 했을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김용화 감독은 총 6편의 필모그라피 중 3편('국가대표', '신과함께:죄와벌', '신과함께:인과연')에서 하정우와 함께 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다. 이 기간동안 김용화 감독은 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국가대표' 이후 4년만에 내놓은 '미스터 고'가 있다. '미스터 고'의 관객수는 132만명이다. 그리고 하정우와 함께 한 3편의 관객수 합계는 3507만명이다. 다시 말해 하정우가 없으면 크게 망한다는 의미다. 아마 김용화 감독에게 하정우는 '흥행토템'과 같을 것이다. 

그가 작품에서 하정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찾기는 의외로 쉽다. '국가대표'에서 차헌태는 어릴때 미국으로 입양된 스키 국가대표다.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리더가 된다. '신과함께' 속 강림차사의 역할도 이와 유사하다. 그는 삼차사의 리더로서 상황을 지휘한다. 김용화의 영화 속 하정우는 대체로 리더였다. 그런데 그 리더에게 흔히 말하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예를 들어 '캡틴 아메리카'같은). 이 리더는 실수도 하고 불안해 할 때도 있다. 듬직할 때도 있지만 관객이 주로 만나는 모습은 연약하고 초조한 내면이다. 그런데 하정우가 연기하는 리더의 불안한 면은 대단히 인간적으로 다가온다(사실 캡틴 아메리카가 정말 말도 안되는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다). 이 인간적인 리더는 이야기 전체에 휴머니즘을 부여한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위기에 몰리지만 그것들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모습이 극적 재미와 함께 감동도 준다. 

김용화 감독은 하정우를 이야기의 큰 줄기처럼 활용한다. 그의 선택과 갈등을 통해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완성된다. '이야기의 줄기'라는 무게를 감당하기에 하정우는 대단히 든든한 버팀목이다. 나 역시 그의 방식에 지지를 보낸다. '신과 함께'라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앞으로 더 만들어지는 이상 김용화 감독은 한눈 팔기 어려울 것이다. 그 말은 하정우와는 앞으로 몇 작품 더 한다는 의미다. 김용화 감독의 작품들이 앞으로도 승승장구 할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신과 함께'라는 걸출한 컨텐츠를 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정우라는 '흥행토템'을 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홍진 - 야누스의 얼굴

나홍진 감독은 영화 한 편을 내놓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장인정신'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그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좋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 그는 현재까지 3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그 중 두 작품('추격자', '황해')에서 하정우와 함께 했다. 사실 나홍진의 영화 속 하정우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추격자'의 지영민과 엄중호(김윤석)는 대립을 펼치며 서로를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대신 '황해'의 김구남은 일방적으로 극한으로 몰린다. 사실 나홍진의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인물이 극한으로 몰린다. 특이할 점은 그 극한에서 하정우는 대부분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있다. 지영민은 사람을 죽여놓고 순진하게 초콜릿을 까먹고 있고 하정우는 죽음의 위기까지 내몰린 뒤 산 속에서 오열한다. 

나는 나홍진이 하정우의 눈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진한 눈에 악마성을 부여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곡성'에서도 그는 어린 아이의 착한 눈에 악마를 씌운다. 사실 지영민이나 김구남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가 효진이(김환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홍진이 사용하는 하정우는 혼란스럽다. 선한 듯 악하고 악하지만 약하다. 어쩌면 하정우가 가장 입체적으로 그려진 영화는 나홍진의 작품에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김병우 - 위기의 남자

김병우는 최근 'PMC:더 벙커'를 통해 하정우와 다시 한 번 만났다. 두 사람은 '더 테러 라이브'로 만나서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성과를 일궈낸 전적이 있다. '더 테러 라이브'와 'PMC:더 벙커'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다. 그만큼 인물과 이야기는 한정돼있고 김병우 감독은 그 공간을 스릴과 서스펜스로 채워넣는다. 거의 하정우의 원맨쇼에 가까웠던 '더 테러 라이브'에 비하면 'PMC:더 벙커'는 윤지의(이선균)를 등장시키며 다소 틈을 열어둔다. 하지만 결국에는 하정우의 원맨쇼로 이야기는 귀결된다. 

김병우가 쓰는 하정우는 나홍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다만 나홍진이 극한 속에서 하정우의 양면성을 봤다면 김병우는 그냥 위기에 몰린 한 남자를 봤다. 마치 '괴롭히기 좋은 녀석'인양 장애물을 던져주고 그것을 빠져나와보라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물론 김병우 감독의 영화가 갖는 목적은 '서스펜스'에 있기 때문에 인물에게 집중할 여유는 그리 많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하정우라는 배우는 김병우의 서스펜스 안에서 칼춤을 추기 정말 적절하다. 이것은 김용화 감독이 바라본 하정우와 어느 정도 통한다. 그는 유력 방송 앵커와 민간군사기업의 유능한 팀장을 맡고 있다.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소개되지만 결국은 흠집이 드러나게 되고 그것 때문에 극한의 위기에 몰린다. 마치 견고하게 쌓은 모래탑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얄팍한 즐거움처럼 김병우의 영화 속 하정우를 보는 일은 약간의 죄책감을 유발한다. 김병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 '리튼'을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이런 쪽에 장기가 있는 것 같다. 만약 그와 하정우가 또 만난다면 김병우 감독은 다시 한 번 하정우를 괴롭힐 것 같다. 그는 그걸 대단히 잘하는 사람이다.


#하정우 - 허허실실 유쾌한 상남자

하정우는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롤러코스터', '허삼관', '577프로젝트'). 그리고 이 중 두 편('허삼관', '577프로젝트')에는 하정우 본인이 직접 출연했다. 그래서 이들 두 영화는 '하정우가 보는 하정우'로서 대단히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우선 그는 대단히 유쾌한 사람이다. 이것은 굳이 '허삼관'과 '577프로젝트'를 빌리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다(일단 그가 만든 모든 영화는 코미디다). 하정우는 개그를 하기 대단히 좋은 캐릭터다. 그는 굉장히 웃기는 이야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재밌는 이야기를 할 때 말하는 사람이 먼저 웃어버리면 망한다). 그리고 '장난 DNA'도 굉장히 발달돼있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장난을 친다(이것은 제작보고회 등에서 나온 답변들을 들어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미적감각도 뛰어나다. 영화 연출을 한다는 자체가 그것을 어느 정도 증명하기도 하지만 미술과 사진에도 재능이 있다. 그야말로 예술적 '끼'가 상당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하정우가 본 하정우는 가장 정확한 하정우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그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언제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경우에 따라 '하정우를 한 번만 사용한 영화감독'들을 폄하는 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정우를 한 번만 썼던 박찬욱, 전계수, 이윤기, 김성훈, 장준환 등은 다시 하정우를 찾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들 중 상당수는 "하정우와 한 번 더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중들에게 '믿고 보는 배우'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의 시선과 연출자의 시선은 통하기 마련이다. 대중들이 본 매력은 결국 연출자들도 본 것이다. 그래서 '하정우를 두 번 이상 사용한 영화감독들의 모임'에는 앞으로 회원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추신) 사실 김기덕 감독 역시 '숨'과 '시간'에서 하정우와 작업하며 '하정우를 두 번 이상 사용한 영화감독'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그의 세계관에서 하정우만이 갖는 차별성을 찾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이 글에서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라 빼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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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찬영

- '당신의 부탁'에서 윤찬영이 연기한 종욱은 소년의 틀에 있지만 사내로 나가고 싶어하는 과도기적 시기의 인물이다. 윤찬영은 그 시기를 잘 이해하고 있다. 입을 꾹 닫고 있지만 침묵으로 말을 하고 표현한다. 그것은 꽤나 난해한 것이다. 윤찬영은 그것을 아주 천재적이고 섬세하게 연기해낸다. '당신의 부탁'에서 윤찬영은 아주 섬세한 연기를 하는 배우였다.


2. 금새록

- 몇 편의 대작영화에서 단역을 했고 드라마에도 조연으로 얼굴을 비춘 것 같다. 그리고 올해도 그녀는 '독전'과 '공작' 두 편의 영화에서 아주 비중이 작은 역할로 등장했다('독전'에서는 조금 비중이 있었다). 당장 그녀의 연기를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그녀의 이미지는 짧은 순간에도 강렬하게 각인됐다. 그거면 할 일은 한 셈이다. 


3. 이봄

- '죄많은 소녀'의 여러 아이들 중 이봄이 연기한 '다솜'은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영희(전여빈)의 입장에서 이 아이는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알 수 없다. 이봄의 얼굴은 그 알 수 없는 물음표를 고스란히 그리고 있다. '죄많은 소녀'에서 이봄의 존재감은 전여빈만큼 강렬했다.


4. 김수현

- 사실 이 아이가 연기하는 걸 본 적은 없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믹스나인'에서 양현석을 홀리는 눈찡긋이 전부였다. 그런 아이가 올해 웹드라마 '에이틴'에서 연기를 한다. 그리고 KBS드라마 '땐뽀걸즈'에도 출연한다. 첫 인상은 끼가 아주 넘쳐 흐른다는 인상이다. 인스타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봐도 여느 아이돌 못지 않은 끼를 가지고 있다. 이런 아이라면 뭘 해도 크게 될 게 분명하다.


5. 이태경

- '죄많은 소녀'에 등장한 또 다른 존재감이다. 일진 소녀의 연기는 꽤 묵직한 카리스마와 함께 '재수없음'이 동반돼야 한다. 이태경은 그걸 다 가지고 있다. 강한 척 하지만 비겁해야 한다. 이태경이 연기한 유리는 그걸 고스란히 소화하고 있다. 저 옛날 '현기증'에서 본 정혜(이민지)를 다시 보는 것 같은 기대감을 안겨준다. 그녀의 필모를 더 찾아보고 싶다.


6. 오수경

- '어둔밤'은 사실 연기라는 걸 딱히 할 일이 없는 영화다. 애시당초 스타를 데려다 뭘 하려는 생각도 없어 보이는 영화다. 그 와중에 여자주인공을 연기한 오수경은 욕심이 많은 배우다. 현재 그녀는 '클럽소울'이라는 걸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군부대 위문공연을 하고 있고 국군방송에서 MC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군인들의 스타다. 끼도 대단히 많아 보인다. 앞서 얘기했지만 끼가 많으면 뭘 해도 된다.


7. 이규호

- '범죄도시'에서 마동석에게 맞고 있는 그를 봤을때는 "잘 될 여지가 남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올해 '챔피언'에서 마동석에게 맞고 있는 그를 다시 봤을때는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조금 더 생겼다. 그의 이미지는 독보적이다. 마동석에게 맞고 또 맞을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는 마동석의 반대편에 세워두기 딱 좋은 배우다. 


8. 이재인

- '무서운 이야기3'에서 이 아이를 처음 봤다. 그리고 올해는 '어른도감'에서 또 봤다. 사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블라인드 시사 영화에서 이 아이를 봤다. 박소담의 팬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이 아이는 '제2의 박소담'이 되기에 충분한 아이다.


9. 김규선

- 야심차게 영화판에 들어섰지만 '상류사회'는 난감한 성적표를 안겨줬다. 아마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 중 가장 비중이 큰 역할이 아닌가 싶다. 다행스러운 점은 김규선은 '상류사회'의 모든 배우들 중 거의 유일하게 빛났다는 점이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이럴때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고 말한다. 김규선은 다음 경기가 기대되는 선수다.


10. 공민정

- 홍상수의 영화에서 빛나는 신인을 찾기란 어렵다. 꽤 경력이 많은 배우다. 홍상수 영화에도 여러편 출연했다. 그런데 유독 '풀잎들'에서 안재홍과 마주 앉은 이 배우가 눈에 띈다. 홍상수의 페르소나가 되건 그를 벗어나 다른 자리에 착륙하건, 잘 될 가능성이 많은 배우인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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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이런 문장을 써놓고 잠시 멍하게 생각에 잠겨봤다. 좋은 배우는 노력과 재능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영화만 보는 입장에서 처음 뵙는 얼굴이 어디선가 홀연이 나타나 작품을 휘젓는 모습을 보면 정말 스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중에 관심을 갖고 뒤적거리고 나서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스타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마치 하늘의 별이 반짝반짝 빛나다 그 밝은 싱그러움이 익어갈 때 쯤 빛을 흘리며 땅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스타는 숙성을 거쳐 지상에 내린다. 적어도 2018년에 전종서와 김다미는 그런 배우다.

전종서와 김다미 두 배우 모두 홀연히 등장해 거물급 감독의 작품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의 이전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글은 마치 어딘가에 숨어서 일하는 FBI 요원들처럼 갑자기 나타난 UFO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예정이다. 단서, 혹은 증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외계에서 온 듯한 낯선 영화 '버닝'과 '마녀' 뿐이다. 아주 잠시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멀더와 스컬리에 빙의해본다. 지상에 내린 이 별들은 정말 외계에서 온 것일까?


전종서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누군가는 "멋진 연기"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발연기"라고 말한다. 내가 정의내리자면 전종서의 연기는 '낯선 연기'다. 그녀가 연기한 '해미'라는 인물은 실체가 불분명하다. 종수(유아인)의 기억 속 깊은 곳에 묻혀있다 나타난 인물이지만 정말 '기억'으로부터 소환된 것인지 '상상'으로부터 소환된 것인지 불분명하다. 나는 '버닝'의 이야기를 종수가 쓰는 소설로 해석하고 리뷰했다. 종수와 벤(연상엽), 해미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관념적이다. 이야기는 흔한 치정소설에 닿아있지만 이미지는 무의식을 추적하듯 관념적이고 얼굴은 실체가 없는 것처럼 그림자 속에 있다. 여러가지 단서가 '해미의 실존'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런 해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야 할까? 해미는 통속적인 이야기의 캐릭터다. 그렇다면 이 인물은 통속적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해미는 관념적이어야 한다. 그 인물을 종수의 상상(=무의식) 속 존재여야 한다. 다시 말해 해미는 구체적이지 않고 쉽게 파악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구성하기는 꽤 어려울 것이다. 정확하게 '통속'과 '낯섦'의 경계에 서야 한다. 전종서가 연기해야 할 인물은 바로 그 지점이다. 

전종서는 크고 쌍꺼풀이 짙은 눈을 가지고 있다. 코와 입을 포함해 그녀의 이목구비는 매우 뚜렷하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지만 짙은 쌍꺼풀 탓에 눈빛에서는 뚜렷함을 찾기가 어렵다. 그녀의 얼굴은 명확함 속에 안개를 감춰두고 있는 듯 하다. 간단한 수학문제같지만 풀면 풀수록 미궁에 빠지는 함정과 같다. 이창동 감독이 그녀의 마스크에서 그런 매력을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내가 본 전종서는 위험한 미로같은 인상이다. 그리고 그런 인상은 종수를 낯선 세계로 인도하는 해미와 매우 닮아있다. 

전종서는 1994년생으로 현재 공식적으로 소개된 작품은 '버닝'이 유일하다. 단편영화조차 언급된 적이 없다.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출신으로 연기를 전공했다면 몇 편의 연극이나 졸업작품 등에 출연한 적은 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하지만 이렇게 소개된 적이 없다면 그마저도 다른 신인배우들에 비해 적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연기'를 해 본 경험이 대단히 적은 배우다. '날 것'. 이창동 감독이 원한 것은 그런 연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함정같은 마스크에 숙달되지 않은 낯선 연기. 해미를 완성시킬 최선의 선택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연기도 몇 작품 경험을 하다보면 늘게 될 것이다. 전종서에 필모그라피가 쌓이게 된다면 그녀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나는 그녀의 낯섦이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전종서는 더 오래 뇌리에 남을테니 말이다.


김다미는 전종서 못지 않게(혹은 그보다 더) 낯선 배우다. 소속사(매니지먼트AND)와 몇 개의 출연작('나를 기억해', '2017 동명이인 프로젝트'), 생년(1995년) 말고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이유영, 김희원 주연의 '나를 기억해'에서 유민아 역할로 출연했지만 그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장편 첫 주연작 '마녀'를 중심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마녀'의 구자윤은 비밀을 가진 소녀다. 괴한들의 추격을 받으며 두려움에 떨다가 어느 지점에서 손바닥 뒤집듯 캐릭터가 뒤집어진다. 김다미는 '마녀'에서 사실상 두 사람을 연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구자윤을 이해하기 위해 '팜 파탈'이라는 용어를 꺼내보고자 한다.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의 문학작품과 20세기 초 하드보일드 느와르 영화에 등장한 이 캐릭터는 남성을 유혹해서 파멸로 이끄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구자윤은 남성을 유혹하는 아이는 아니다. 다만 그녀는 남성을 포함한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아이다. 구자윤에게 필요한 것은 소녀의 발랄하고 여린 모습과 마녀의 악랄하고 무자비한 모습이다. 김다미는 그 경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능숙하게 뒤집는다. 신인배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숙련된 연기를 보여준다. 이것은 전종서와는 반대되는 지점이다. 감독의 말대로 '마녀'가 재밌자고 만든 상업영화라면 김다미의 연기는 작품에 가장 적절한 연기인 셈이다. 

김다미는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앳된 얼굴을 가지고 있다. 평소의 모습대로 있다면 영락없는 소녀의 얼굴이다. 그러다 마녀로 돌변하면 그녀는 꽤 굉장하게 공포스런 표정을 보여준다. '마녀'를 보면 그 순둥한 얼굴이 그렇게 무서워질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얼굴은 온전히 김다미가 다 만든 것은 아니다. 조명과 분장, 상대배우와의 앙상블이 모두 모여 만든 '표정'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연기를 참 좋아한다. 혼자 다 하지 않고 주변에 묻어서 표현해내는 것. 혼자 다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는 연기는 보기에 자연스럽다. '마녀'에서의 김다미에게는 감히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한대로 이 배우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하나의 단편영화와 하나의 조연, 비슷한 신인배우를 통틀어봐도 굉장히 소소한 경력이다. 앞으로 이 배우에게 관심을 좀 가져봐야 할 것 같다. 마치 '검은 사제들'에 출연하던 시절의 박소담처럼 낯선 캐릭터를 두려움없이 연기해낸다(감독의 말대로라면 이 폭력적인 캐릭터를 즐기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박소담의 팬이 된 계기도 역할을 맡는데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꾸 김다미에게서 박소담이 보인다(나에게 이건 엄청난 찬사다). 


참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매년 기가 막힌 신인여배우를 만났다. '검은 사제들'의 박소담, '아가씨'의 김태리, '박열'의 최희서, '한공주'의 천우희, '스틸플라워'의 정하담, '은교'의 김고은 등. 한국영화에서 여배우가 맡을 역할이 적고 주목받기 어렵다고 하지만 매년 귀한 배우들이 등장해서 늘 감사하다. 전종서와 김다미는 이 배우들의 자리를 이으며 연말 시상식에서도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재능있는 여배우를 더 얻게 됐다. 재능있는 배우들이 더 많아지다 보면 한국영화도 '남성 중심'에서 점차 균형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별인지 UFO인지 알 수 없는, 빛나는 무언가가 지상에 내려왔다. 이들의 실체를 추적해보려 했지만 결국 약간의 리포트만 남긴채 실패로 돌아갔다. 이 생명체에 대한 연구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생명체는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될 것이다. 그만큼 리포트에 추가해야 할 내용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 생명체는 마치 'X파일'의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흥미로운 시작을 예고했다. 어서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추신) 문득 연말시상식에 '신인여자배우' 부문을 상상해봤다. 지금까지 결과로 따져보면 '독전'의 이주영, '마녀'의 김다미', '버닝'의 전종서, '곤지암'의 박지현 등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제 이들 말고 얼마나 대단한 배우들이 등장할지 기대하면서 남은 한 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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