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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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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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20.05.06
    잡담 200506 - 코로나19와 국제영화제
  2. 2018.09.10
    '어둔 밤' 초간단 리뷰
  3. 2018.07.23
    잡담 180723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4. 2017.10.19
    '프리벤지' 초간단 리뷰
  5. 2017.07.24
    '몬 몬 몬 몬스터' 초간단 리뷰
  6. 2017.07.24
    '로우' 초간단 리뷰
  7. 2017.06.26
    잡담 170626 - 부천영화제 관련
  8. 2012.07.25
    '리비드' - 장르의 회귀, 초현실주의 재림
  9. 2012.05.30
    7년전 종로, '리얼판타스틱'을 기억하십니까
  10. 2011.07.29
    'L.A 좀비' - 훈훈하고 정의로운 게이좀비포르노 (2)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매년 국내 3대 국제영화제(부산, 부천, 전주) 중 최소 1개 이상은 무조건 갔습니다. 부산에서는 두 번 정도 '내부자'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나름대로는 우리나라 영화제의 생리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아는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최근 우리나라 국제영화제는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입니다. 관객의 관심과 영화제의 지향점이 다르다던지, 효율적인 운영을 할 돈이 없다던지. 뭐 그런 문제들이죠. 

올해 전주영화제가 코로나19 영향으로 무관객 영화제가 된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메가박스 객사점이 영업을 종료하면서 전주영화제 상영관이 부족할 상황이었거든요. 4월말에 같은 자리에 씨네큐 전주영화의거리점이 문을 연게 영화제와 어떻게 연동될 수 있었을지 알 수 없지만(첫 개관행사를 전주국제영화제로 할 수도 있었음) 메가박스 객사가 있을 때도 전주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만약 씨네큐가 예정대로 문을 열지 못했다거나 씨네큐와 협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면 올해 전주영화제는 더 정신없어질 뻔 했죠. 

부천영화제는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김봉석 전 프로께서 언급하신 여러 사태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도 이 자리에서 차마 언급할 수 없는 여러 이슈들이 있었죠. 

영화제뿐 아니라 어딜 가도 20년 넘게 자리를 잡은 기관이라면 고인물과 적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영화판은 정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자리가 극히 제한적이라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위원장 같은 자리는 여러 사람이 탐내는 자리죠. 사무국장을 포함한 사무국 주요 요직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의 경우 상근직이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고 그만큼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약하자면 현재 대한민국 3대 국제영화제는 여러 고인물과 적폐가 어우러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코로나19로 영화제들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가 마찬가지죠. 외국의 사정은 잘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사태가 개선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전보다 관(官)이 개입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관의 입김은 세죠. 게다가 영화제에 얽힌 이권다툼도 심각합니다(이것은 김봉석 전 프로님 말씀 참조). 때문에 코로나19는 영화제의 내적 쇄신을 꾀할 계기가 될 수 있겠군요. 

구체적인 대안은 더 연구해봐야겠지만 변해버린 관람문화를 수용하고 넷플릭스를 포함해 더 늘어나는 글로벌 OTT 플랫폼과도 상생의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고전적인 지역 축제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를 수 있는 행사가 돼야겠죠. 더 자세한 건 관계자들이 논의해서 답을 내놓을거라 생각됩니다. 

전주가 무관객 영화제를 하기로 했고 부천도 규모가 대폭 축소된다고 합니다. 개인적 생각은 이참에 부산도 조정을 하고 대규모 쇄신에 들어갔으면 좋겠군요. 이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는 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부산시장에 의한 쇄신이 아니라 내부에서 나오는 자성의 목소리여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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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오래전 시나리오 공모전에 내려고 준비한 이야기가 있었다.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고등학교 두 친구인 두 소녀가 미국 디트로이트와 러시아 모스크바로 각각 떠나게 된다. 미국으로 떠난 친구는 유학을 떠난 것이었고 모스크바로 떠난 친구는 리듬체조 국가대표 전지훈련을 위해서였다. 두 소녀는 SNS를 통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타지에서 외로움을 달랜다. 미국에 사는 소녀는 아역배우 출신이다. 그녀는 아이의 이미지를 벗어날 새로운 작품을 찾고 있었다. 러시아의 소녀는 국가대표 상비군이다. 열심히 연습해서 올림픽에 나가야 한다. 결말부터 말하자면 두 소녀가 준비하던 일은 각각 실패한다. 아역배우는 꼭 맡고 싶은 배역이 있었으나 아이돌에게 빼앗기게 된다. 리듬체조를 준비하던 친구는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다. 두 소녀는 실패하고 다시 SNS에서 서로를 위로한다.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배우 심은경과 리듬체조선수 손연재의 SNS 대화를 보다가 떠오른 '픽션'이다(둘 다 고등학생 때 이야기다). 둘의 SNS 대화로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실패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TV드라마 중 '드림하이'라는 게 있었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노력해서 아이돌 가수가 되는 이야기다. 일종의 반항심과 같은 이야기였다. 어른들이 말하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 이병헌 감독의 영화 '스물'에도 재미있는 대사가 등장한다. "왜 포기하는 사람은 비난받아야 하는데?". 오래전 일이지만, 나는 '실패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1.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꼰대'들의 전형적인 레파토리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노력해야 된다는 식의 말들은 노예를 양성하기 위한 선동과 날조라고 생각한다(예를 들어 '아프니깐 청춘이다'같은 헛소리들). 현재를 희생해서 더 나은 미래를 얻을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지금의 세상에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현재를 희생해도 더 나은 미래를 얻을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이 주장은 조금 희망적인 명제를 도출하는데 작용한다. "현재를 희생해도 더 나은 미래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을 조금만 바꾸면 "현재를 즐겨도 더 나은 미래를 얻을 수 있다"가 될 수 있다. 

2. 오래전 봤던 우문기 감독의 영화 '족구왕'은 아주 진한 감동을 준 영화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홍만섭(안재홍)같은 남자가 이 다음에 성공할 수 있을지, 여자한테 인기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지인이 했던 말이 있다. "저런 애가 3~4학년때 정신차리고 바짝 공부해서 대기업 입사한 다음 이쁜 여자랑 결혼한다". 반신반의한 말이었다. "정말? 홍만섭이?". 몇 년이 지나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비록 의미없는 일일지라도 온전히 미쳐서 즐길 수 있다면 이 다음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의미, 그 정도로 이해했다. 

3. '족구왕'이 감동적이었던 이유를 잠시 언급해보자면, 이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의 놀이 콘텐츠는 '족구'와 '술'이었다. 그 중에 내 경우는 '족구'보다 '영화'에 많이 치우쳐져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나 친구들이나 지독하게 공부 안 했다. 지금의 대학생들과 비교하면 많이 다른 모습인데, 정말 술 마시고 족구하고 영화보고 놀았다. 그러다 나에게 캠코더를 들고 영화를 찍을 기회가 찾아왔다. 그 중 첫번째 구상이 바로 '족구하는 영화'였다. 

4. 이 '족구하는 영화'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운동 잘하고 건실한 신입생이 단대 체육대회에서 매번 깨지는 과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한다. 그러던 중 학교의 전설적인 족구선배를 발견하고 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족구에 의욕을 잃은 선배. 신입생은 자신의 실력으로 선배를 설득해 다시 한 번 족구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과거의 멤버들을 모으러 가는데, 이들은 취업 준비와 연애 등으로 바쁘다. 그들을 설득해 족구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이 주된 이야기다. 물론 이 이야기는 너무 블록버스터라 영화로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기억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다가 '족구왕'을 만나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5. 나는 심찬양 감독의 '어둔 밤'을 보면서 오래전 묵혀둔 그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어제의 똘끼를 묻어두고 오늘을 희생하는 젊은이'의 모습에서 그랬던 것 같다. '어둔 밤'에서 영화 '다크 나이트 리턴즈(Dark Night Returns)'를 만드는 과정은 대단히 어설프고, 엉망진창이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과정은 오늘에 충실한 선배들을 다시 모으는 과정이다. 물론 어제의 용사들('다크 나이트'를 만들던 선배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영화를 좋아했던 청년들이 오늘을 사는 모습을 보며 많이 애잔했다. 

6. 사실상 '어둔 밤'의 주인공은 상미넴(김상민)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하고 꾸역꾸역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아마 상민이도 군대에 다녀오면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오늘에 충실하며 살아갈 것이다. 다만 상민이는 앞선 선배들보다 조금은 나은 모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선배들과 달리 결과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백번 양보해서 '패러디 영화'로 봐준다면 다행이지만) 어디 내놓기 힘든 영화다. 말 그대로 '자기만족'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자기만족은 과정에 비해 지나치게 끝내주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 여러 의견들을 모조리 반영해 만든 이 영화는 상민이의 미래처럼 삐까번쩍하다. 이제 군대로 떠나는 이 청년에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그저 어두컴컴한 군대로 떠나는 이 청년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고 건강하다는 것이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7. '어둔 밤'은 어쩌면 단순한 메시지일 수 있다. 이 청년들이 겪는 고난과 굴복은 대단히 하찮아 보인다(군대와 연애, 취업 등). 왜냐하면 내 입장에서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다 겪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조금 부드럽게 받아들일 필요는 있어보인다. 겪을 때는 인생에 큰 산을 만난 기분이지만 지나고 돌아보니 언덕과 같은 것. 이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문제가 만만해 보였다면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 역시 이미 오래전에 지나온 산이지만, 그때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다. 적어도 '꼰대'는 되기 싫다.

8. 결론: '어둔 밤'을 본 내가 받은 감동은 '족구왕'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감동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청춘을 제대로 즐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어도 젊을 때 캠코더 들고 영화 하나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위대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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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돌이켜보면 뭔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시 말해 돈이 없다는 느낌이다. 정말 그런가 싶어 영화제 스폰서 명단을 살펴봤다. 메인스폰서로 CGV와 LG하이엔텍이 나온다. CGV는 부천시청과 만화박물관을 제외한 모든 상영관을 지원했으니 당연히 핵심 스폰서일거라 생각된다. 그리고 LG하이엔텍은 (LG계열사긴 하지만) 부천 지역 기업으로써 도의적인 지원을 한 모양이다. 솔직히 LG하이엔텍은 "지원을 해봤자 얼마나 했겠냐"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 기업도 아니고 B2C 기업도 아닌 수처리 기술 전문 기업이 말이다. 결국 올해 부천 영화제는 사실상 메인스폰서가 없는 영화제인 셈이다. 작년에도 그랬는지 확인하진 못했다. 그런데 이건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세상 모든 일은 '돈'이다.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스탭들 월급부터 시작해서 영화제 운영 유지비 모두 '돈'이다. 물론 작품을 초청해 프린트를 배송받고 게스트를 부르는 것도 돈이다. 작년과 올해 영화제에서 특급 게스트를 기대한 관객들은 꽤 김이 빠졌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부천영화제는 돈이 없다. 게스트를 부르는 항공료와 숙박비 등을 지급할 돈도 당연히 없다. 있는 게스트들로 최대한 흥행몰이를 해보려고 했을테지만... 돈이 없다.

문득 나는 '사상 최악의 부산국제영화제'로 손꼽히는 1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추억해봤다. 그 영화제가 '최악'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바로 스폰서 때문이다. 당시 영화제의 메인스폰서는 의류브랜드 '빈폴'이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빈폴은 영화제에 엄청난 돈을 후원했다. 그 덕분에 영화제 행사장 곳곳에는 'PIFF'라는 단어보다 'BEANPOLE'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빈폴국제영화제'라고 부른다.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발전기금과 지자체의 지원금, 여기에 기업 스폰서 비용으로 운영된다. 이 돈의 비율은 대략 50:50 정도다. 물론 기업의 스폰서는 현금 외에 자동차나 주류, 음식, 호텔 등이 포함된다. 어쨌든 영화제를 운영하는데는 '기업의 현금'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런 맥락으로 봤을때 '빈폴국제영화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좋은 영화를 찾아와서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들기 때문이다.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다녀온 소감은 꽤 참담했다. 작품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영화제의 운영에서 가난이 너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결국 영화와 같다. 흥행을 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BiFan이 내년부터 다시 홍보대사를 부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홍보대사 제도를 폐지할 당시 영화제 측은 "홍보대사는 행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는 벌써 20년이나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홍보대사 제도를 없앴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는 스폰서를 땡기기 위해서라도 홍보대사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 BiFan은 아직 그 정도로 잘 나가는 영화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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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혼남성인 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화두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다. 수많은 꼰대들이 집필한 청소년 성교육 교재를 살펴보면 임신과 출산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군 간부는 '임신은 국가에 대한 의무'라는, 다분히 군인같은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30 젊은 세대라면 어렴풋이 '임신·출산·육아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좋아하는 것, 아끼는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사람을 만드는 일'에 매진해야 하는 것은 굉장한 노력과 고통을 동반한다. 

2. 몸 안에 다른 생명이 자란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아무거나 막 줏어먹고 다닌다면 몸 안에 기생충이 자랄 수 있다. 그리고 술·담배를 거침없이 하고 다닌다면 몸 안에 암세포가 자랄 수 있다(어떤 드라마 주인공은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말한다). 손바닥보다 작은 기생충이나 암세포도 신경쓰이고 불편한데 하물며 이것은 최대 3kg에 이르는 묵직한 것이다. 그것은 이 다음에 커서 사람이 될 것이며 뱃속에 있는 순간에도 지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기를 뱃속에 품은 임산부의 모습을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묘사한 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가공의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몸 안에서 사람이 자란다는 것은 '숙주에 의해 생명력과 기가 빨리며 정신을 조종당하는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앨리슨 로우의 영화 '프리벤지'는 그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3. 임신 7개월인 루스(앨리슨 로우)는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임신 스트레스에 빠진 루스는, 어느날 아기의 목소리를 듣는다. 루스는 아기가 시키는대로 광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프리벤지'는 루스의 살인 일대기를 추적한 영화다. '프리벤지'는 자기 세계에 갇힌 루스가 바라본 세상의 모습이다. 통상적인 고정관념과 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인간사회는 새로운 생명의 눈에는 '부조리한 사회'로 비춰진다. 모든 남자는 사악한 변태들이며 모든 여자들은 더러운 창녀 혹은 일중독자들이다. 아기는 루스에게 '오로지 내 말이 법이며 다른 자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마치 아기는 권력자이고 엄마는 노예인 듯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4. '태아와 산모'의 관계를 비트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인 '프리벤지'는, 그 의미를 확장하자면 '엄마와 아기'의 관계도 비틀어버린다. 수많은 매체들이 모정은 숭고하고 위대하며 아기는 예쁘고 순수하다며 주입한 가치관에 대해 "정말 그럴까?"라며 되묻는 식이다. 나는 오래전,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아기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아기는 이 다음에 커서 세기의 연쇄살인마가 된 찰스 맨슨이다. 아기의 미소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저렇게 예쁜 아기가 커서 연쇄살인범이 됐을까?"라는 반응과 "어쩐지 아기의 미소도 소름돋는다"라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그 아기의 마음 속에 '악(惡)'이 자라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또한 사람들의 편견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고정관념처럼 그 아기가 착하고 순수했는지도 알 수 없다.

어린 시절의 찰스 맨슨.


5. '프리벤지' 속 루스는 상처가 많은 여자다. 사고로 남편을 잃었고, 사고를 방조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루스는 그 사람들에게 원한이 있다. 어쩌면 루스의 살인은 아기의 명령이 아니라 루스 마음 속의 분노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뉴스 사회면에서 심심치 않게 '자식을 살해한 부모'의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앞서 말한대로 부모가 되는 일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사람의 형태를 한 생명체를 생산한 것부터 사회구성원으로 적합한 성품을 갖기까지,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무척 많고 어렵다. 이 복잡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삶에서 여러 상처를 받을 지언정 강해져야 한다. 모든 상처와 아픔에 방패를 치고 있어야 '사람을 만드는 일'을 행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의 자격'은 꽤 신중하게 주어져야 한다. 

6. 과거보다 지금은 사회가 훨씬 복잡해졌다. 경쟁은 심각해졌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변했다. 이기적인 타인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은 마음을 닫게 되고 방어적(혹은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다. 불과 몇 십년 전보다 지금의 어른들은 상처받을 일이 더 많아졌다. 이 가운데 우리는 '부모'라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된다. 당연히 부모의 일을 수행하는 것도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면에서 그토록 끔찍한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7. 영화 '프리벤지'가 보여주는 것, 그것을 통해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임신과 출산, 육아는 그리 축복받은 것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연애를 하다 결혼을 하는 것이 낭만이 아닌 실전이듯, 임신과 출산도 실전이고 치열한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닌 계획과 준비를 한 뒤 아이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현대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 두 사람으로는 한계가 생긴다. 이제는 정말 사회가 도와줘야 제대로 된 사람 하나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하철의 분홍색 자리는 비워두자. 그 자리는 숙주에게 조종당하는 인간이 쉬어가야 할 자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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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득 '대만영화'를 뭐 본 게 있나 싶어서 찾아봤는데, 새삼 내가 대만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장 최근에 본 대만영화가 허우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이며 그 흔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나의 소녀시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도 못 봤다. 부천에서 본 영화 '몬몬몬 몬스터'는 '자객 섭은낭' 이후 처음 본 대만영화인 셈이다. 

2. 일단 한마디로 이 영화를 정의내리자면 '정말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게 하는 영화'다. 웃기다가 무섭다가 슬프다고 놀라다가 화나다가 또 슬퍼지는 영화다. 관객의 감정을 한가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다소 위험한 발상의 영화다. 관객의 감정이 이리저리 격렬하게 널뛰기를 한다는 점은 한편으로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정의 널뛰기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관객을 집중시킨다. 바로 꽤 흥미로운 이야기 탓이다. 

3. 사실 '몬몬몬 몬스터'의 이야기는 대단히 전형적으로 시작한다. 고등학교의 불량학생들이 도시에 출몰하는 요괴 둘 중 하나를 우연히 생포해 아지트에 가둬두고 학대하기 시작한다. 사라진 요괴를 찾아 또 다른 요괴가 나타나고 그들 주변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기 시작한다. 이런 시놉을 가졌는데 동양에서 만들어졌다면 이것은 '권선징악'의 메시지도 가져야 하며 적당히 신파도 섞여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고어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응당 그래야 할 영화이며 정확하게 그 예상대로 흘러간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재밌다. 별다른 표현이 필요없을 정도로 아주 말초적으로 재미가 있다. 앞서 말했지만 이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널뛰기하게 만드는 영화다. 대단히 웃기다가 슬프다가 무섭다가 화나는 영화다. 그 말인 즉슨 웃긴 장면은 대단히 세련됐고 슬픈 장면은 몹시 애절하며 무서울때는 박력이 넘치고 화날때는 몹시 화가 난다는 것이다. 모든 장면들이 대체로 극단적이다. 나쁜 놈은 아주 나쁘고 소심한 놈은 지나치게 소심하다. 애절한 놈은 몹시 애절하고 무서운 놈은 끔찍할 지경이다(크리쳐물에서 사망자가 100명이 넘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즉, 이 영화는 대체로 극단적이다. 그런데 그 극단적인 감정들이 이상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 울다가 웃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5. 심지어 음악들도 대체로 매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Chara의 'My Way'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괴물이 학교 버스에 올라타 살육을 벌이즌 장면에서 '대장'의 여자친구가 듣는 헤드폰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 등장하는 음악으로 노래와 영화 모두 애정하는 작품이다. 무슨 이유로 살육의 장이 열리는 장면에 이 음악이 쓰였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기회가 없었다.  

6. 결론: 사실 대단히 할 말이 많은 영화는 아니다. 오만가지 감정을 다 때려넣은 오락영화이며 관객은 충분히 그것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이 영화는 제 역할을 다 한 셈이다. 


추신1) 모로 가도 권선징악으로 가니 제 역할은 다 한 셈이다. 

추신2) 작성자의 인생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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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식인'이라는 소재는 나에게 그리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워낙 이 세상 소재가 아니라는 인상이 강한데다 실제 살코기를 먹지 않아도 이 세상이 '식인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식인종이 등장했던 영화 '홀로코스트'나 익숙하게는 좀비영화들을 봐도 '식인'이라는 소재는 별로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이유를 찾지 못한, 다분히 '호러' 장르에 근접한 이야기였다. 

2. 줄리아 듀코나우의 영화 '로우'는 식인에 대한 이야기다. 온 가족이 채식주의자인 소녀 쥐스틴(가랜스 메릴레르)이 우연히 고기의 맛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애시당초 시놉시스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호러'가 될 여지가 적다. 영화를 보면서도 무서워 해야 할 지점을 찾기가 어려운 영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억눌린 소녀의 일탈과 자유를 그린 영화에 가깝다. 이제 이 영화는 연관성이 적어보이는 두 단어를 나란히 세워둔다. '식인'과 '성장'. 그리고 '일탈', '자유' 등의 단어들이 등장한다. '로우'는 아주 절묘하게도 이 모든 단어들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3. 갓 성인이 된 쥐스틴은 언니 알렉시아(엘라 럼프)가 재학 중인 수의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 학교에는 나름 '전통'인 오리엔테이션 기간이 있다. 그런데 이게 전형적인 '똥군기'의 행태다. 그런 모습이 며칠 동안 이어진다. 전세계 어딜 가나 '똥군기'의 목적은 신입생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그것을 통해 선배들이 더 많은 자유를 얻겠다는 의도다. 자유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선배는 '먼저 왔다'는 이유만으로 거기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고 한다. 

4. 쥐스틴이 고기의 맛을 알게 되는 사건은 이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벌어진다. 오리엔테이션 기간 중 토끼콩팥을 맛보고 한 차례 큰 병을 치른 쥐스틴은 점점 고기의 맛을 알게 되다 사람고기까지 먹으며 넘을 수 없는 벽마저 넘게 된다. 그때 쥐스틴은 채식주의라는 엄격한 집안의 질서와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억압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사실 영화 내내 쥐스틴은 언니를 쫓아 해방을 갈구한다. 이미 집을 떠난지 몇 년이 된 알렉시아는 더 이상 엄격한 가풍 속에서 자란 소녀가 아니다. 이들의 일탈은 "왜 여자는 앉아서 소변을 보나"는 물음에서 시작해 굳이 서서 소변을 보려는 시도를 하는 장면에서도 보여진다. 그리고 '식인'은 이들 자매에게 '해방'의 절정이자 상징인 셈이다. 

5. 쥐스틴은 알렉시아를 쫓아 사람고기의 맛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치 본능에 이끌리듯 사람고기를 갈구한다. 쥐스틴과 아드리엥(라바 나이트 오펠라)이 여사친-남사친의 선을 넘는 장면을 살펴보자. 욕망에 이끌려 친구 사이의 선을 넘는 와중에도 쥐스틴은 사람고기를 갈구하며 아드리엥을 물어버리려 한다. 쥐스틴에게 닥쳐온 이 달콤한 식욕은 섹스의 순간에서조차 성욕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식인'은 쥐스틴에게 자유이자 해방이고 일탈이었다. 그것의 달콤한 맛은 욕망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6. 쥐스틴과 알렉시아의 '자유'는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낸다. 주변의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더 많은 고기를 갈구하며 몸이 괴로워하게 된다. 마치 피의 맛을 알게 된 뱀파이어와 닮았고, 때로는 마약중독자와 닮았다. 이들이 누리는 '자유'는 광폭하고 위험하다. 이 자유는 누군가의 신체를 훼손하고 생명을 앗아가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이다. 아마 누군가가 누리는 자유도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자유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식인을 하는 자와 식인을 당하는 자는 어디에서건 생기게 된다. 

7. 예를 들어 유통업계 점유율 1위인 어느 대기업이 SSM(Super SuperMarket. 기업형 슈퍼마켓)을 런칭해 골목상권에 문을 연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은 기업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이며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한마디로 기업의 자유인 셈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골목에서 장사를 하던 영세 슈퍼마켓은 상권에 피해를 보고 결국 망하게 된다. '로우'가 보여주는 '식인'은 규제로 억압된 사회에서 자유를 누리려는 자가 있다면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8. 그런 맥락에서 봤을때 마치 이 영화는 '모두가 평등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한 사람이 온전히 자신의 자유를 모두 누릴 경우 다른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굳이 식인이 아니더라도 옥상에서 그러고 소변을 보면 아침에 온 학교로 지린내가 퍼질 것이다.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9.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식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선택했을까? 이 영화의 작가는 '자유를 누리는 자'와 그로 인해 '자유를 빼앗기는 자'를 '먹는 자'와 '먹히는 자'로 바라본 듯 하다. 실제로 도시문명사회는 이성과 질서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듯 하지만 결국 '약육강식'의 사회인 셈이다. 더 넓게 보더라도 트럼프의 미국이 온전히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만의 권리를 찾으려고 움직이다 보면 다른 어떤 국가는 위기가 찾아오고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사회 역시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있는 셈이다. 

10. 결론: '로우'는 문명사회에서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 아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유의 나라' 프랑스 출신의 작가가 자유에 대해 이토록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자유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된다. 



추신) 사실 사람고기를 먹거나 식중독 발진이 일어나는 장면보다 대학교 똥군기가 더 극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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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팬들이나 블로거들과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통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바로 "일본영화가 예전같지 않다"는 점이다. 프로그래머들의 의도를 들어보면 '탈 아시아'로 방향을 선회한 듯 하다. 

2. 여기에 영화제를 자주 찾던 사람들의 분석에 따르면 부천영화제는 올해 장르영화제의 이미지를 벗고 부산이나 전주와 같은 종합영화제가 되는 것을 노리는 눈치다. 

3. 먼저 '탈 아시아'의 대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환영한다. 영화제가 해야 할 의무 중 그 해 영화계의 흐름을 짚고 소개하는 것 외에도 '발굴'의 의무도 있다. 전세계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작가를 찾아내 소개하고 발굴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부천영화제는 '발굴'의 의무에서 굉장히 미흡한 면을 보였다. 당장 지난해에도 그랬다. 올해 부천의 프로그램에는 낯선 작가들과 제3세계 국가의 이름이 많이 보인다. 관객에게 조금 외면을 받더라도 발굴을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 프로그램이 유독 더 기대가 된다. 

4. 단, 종합영화제가 되겠다는 의지에는 물음표를 던진다. 지난해에도 최승호 감독의 '자백'같은 영화의 펀딩을 부천에서 진행하는 대목이 좀 의아했다. 올해도 최승호 감독의 신작이나 '위로공단'을 만든 임흥순 감독의 신작이 공개된다. 이미 20년동안 '장르영화제'로 각인된 부천영화제가 이제와서 영역을 넓히는게 잘 될 지 의문이다. 자칫 이도저도 아닌 영화제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해외의 많은 장르영화제들도 장르 안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려 하지 방향을 선회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5. 한국의 영화제는 지자체와 불가피한 공생을 해야 한다. 공무원들에게 영화제는 '지역축제'일 뿐이다. 올해 상영관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지역축제'의 부득이한 선택이다. 특이할 점은 이전보다 시청에 대한 협조가 더 적극적인 모양새다. 사실 지금 김만수 부천시장도 영화제를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이다(정지영 감독이 조직위원장으로 있지만 뒤에서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사람은 김만수 시장이다. 그는 영화제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스스로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깐 부천영화제는 지금 시와 영화제가 서로를 배려하는 모양새다. 언듯 웃기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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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명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언급한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라피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가장 독특한 작품임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 영화는 이명세의 필모그라피 가운데 가장 서사구조가 뚜렷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명세 감독은 서사구조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야기를 두고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는다. 그리고 그 정교한 이미지를 통해 전해지는 감수성이 다시 이야기로 치환된다. 이명세의 영화가 이미지를 언어로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현대 세계영화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 방식으로 흡사 초기 루이스 브뉘엘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명세 감독의 영화 중 '형사'를 상당히 좋아한다. 이야기는 연기처럼 산산히 흩어졌지만 인물의 감성만은 구구절절히 전해진다. '저널리즘'에 대해서 배우다 보면 백마디 리포트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힘을 가질 때가 있다. 이명세의 영화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보다 한 프레임의 이미지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더 큰 힘을 가진다. 




알렉상드르 뷔스티요와 쥴리앙 모리 감독의 영화 '리비드'는 흡사 '가장 이명세스러운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야기는 산산히 부서지고 절정의 이미지와 피의 향연만이 남아있다. '떡밥'인양 존재하던 많은 기호들 역시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진다. 마치 허상을 걷어낸 뒤 숨어있던 실체가 드러나듯 '리비드'는 이야기와 기호의 허상을 걷어내자 이미지라는 실체를 드러낸다. 즉, '리비드'는 '영화보기의 방식'부터 기존의 극영화와는 철저히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선 이 영화는 시작부터 독특한 구경거리 몇 개를 제시한다. 오드아이의 젊은 여성, 한적한 산기슭 낡은 대저택, 발레복 입은 소녀 뱀파이어, 기괴한 산소마스크를 쓴 노파 등등. 시작부터 관객이 따라가야 할 것은 바로 이 이미지들이다. 영화 초반 모든 이야기들은 이러한 이미지들의 폭발을 위해 빠른 속도로 치닫고 있다.


본격적으로 이미지가 폭발하는 지점은 루시(클로이 콜루드)가 대저택의 과거를 보기 시작한 시점부터다. 피를 머금은 발레리나 소녀와 저택 주변의 녹음, 약간 찌뿌린 하늘이 어우러진 판타지스런 이미지가 펼쳐지면서 점점 이야기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문제는 이야기가 부서진채 남아있는 이미지들에게서 관객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미지가 폭발하는 몇몇 지점을 살펴보면 그곳에는 '대사'가 거의 실종된 상태다. 필자는 이 지점을 '대저택의 과거' 장면과 루시와 안나의 영혼이 바뀌는 장면, 두 소녀가 대저택을 탈출하는 장면으로 두고 싶다. 자, 다른 모든 이야기와 상황은 이미 산산히 부서졌으니 일단 빼보자. 영화가 끝난 지점에서 남아있는 것들만 두고 이야기를 풀어보자. 


먼저 대저택의 과거 장면에서는 발레리나 소녀의 아름다움과 뱀파이어의 공포, 그리고 이것이 합쳐진 '피를 머금은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이 뱀파이어는 강압적인 엄마의 태도때문에 탈출하고 싶지만 햇빛을 볼 수 없는 특징 때문에 탈출할 수 없다. 고통스러운 집에 갇힌 어린 소녀를 보는 애절함과 피를 머금은 뱀파이어의 공포가 동시에 와닿게 된다. 




다음으로 안나와 루시아 밀실에서 '수술(?)' 당하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외과수술'을 연상시킨다. 원래 의료적 장면 중 가장 무서운게 치과수술이지만 사실 신체를 훼손해 병을 치료하는 모든 의료수술 장면은 다 무섭긴 마찬가지다. '리비드'는 여기에 어두컴컴한 수술실과 기괴한 수술장비 등을 등장시킨다. 이 장면에서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공포의 극단으로 치닫는 기괴함을 보여준다. 이어서 등장하는 발레연습 장면 역시 앞서 언급된 '고통받는 여린 소녀'를 재차 강조한다. 또 소녀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보여주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또 두 소녀가 탈출할 수 없는 대저택을 탈출해 바다로 향하는 장면 역시 극단의 고통과는 대비되는 장면이다. 많은 관객들이 불만을 제기했을 '하늘을 나는 소녀' 장면 역시 이러한 '고통과의 대비'를 보여주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또 영화 내내 찌뿌린 하늘은 이 딱 한 장면에서만 맑게 개여있다. 이미지가 언어로써 힘을 갖기 위해서는 장면과 장면이 극단적인 대비를 이뤄야 한다. 즉,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 극단적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 다소 유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 유치한 상황은 프랑스의 CG 기술력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아마도 이 감독들은 비극의 두 소녀에게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엄마를 잃은 소녀와 엄마에게 학대받은 소녀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것처럼 이 마지막 장면은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이것을 위해 기술력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감독이 인물들에게 갖는 이 깊은 애정이 이미지로 형상화되면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것이 이 영화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이처럼 '리비드'는 보는 방식에서 서사구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따른 감수성이 만들어 낸 '새로운 언어'로 봐야하는 영화다. 따지고 보면 루이스 브늬엘과 살바도르 달리가 만든 최초의 초현실주의 영화인 '안달루시아의 개' 역시 프랑스 영화가 아니던가. 또 회화미술 하면 또 프랑스가 아니던가. 이들의 전작인 '인사이드'는 현대 프랑스 '공포'영화의 어떤 경향을 보여줬다면 '리비드'는 프랑스 예술계가 쌓아온 미학적 완성을 공포영화의 미장센으로 녹여낸 작품이다. 이 영화, 결코 만만한 장르영화로 볼 작품이 아니다. 이들은 '리비드'로 아트무비의 어떤 경지에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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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4년, 당시 부천시장이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장이던 홍건표가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김홍준 집행위원장을 자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프로그래머들까지 모조리 영화제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다음해 이들은 보란듯이 부천영화제가 열리는 7월 같은 기간에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또 하나의 판타지아를 열게 된다. 그것이 리얼판타스틱영화제다.


물론 이 영화제는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을 띄고 열린 영화제다. 하지만 그런거 다 떠나서 워낙 양질의 프로그램과 현재까지도 감히 볼 수 없는 키치적인 분위기를 가진 영화제였기에 7년이 지난 지금 새삼 한 번 언급해본다.

 

 

 

알다시피 이 영화제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위치한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2억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개최됐다. 당시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국내외 영화계가 김홍준 위원장에 대해 부당한 처사를 보인 부천영화제를 보이콧하며 부천으로 갈 상영작 대부분이 리얼판타로 몰렸다. 하지만 부천의 약 1/10 규모 예산으로 열리는 영화제인만큼 많은 상영작을 수용하지 못해 부천 입장에서도 크게 피해볼 것 없는 장사였다.


리얼판타의 개막작은 아코프 프로타자노프 감독의 1924년작 '아엘리타'다. 당시 동구권 SF영화라는 국내에서 도저히 보기 힘든 영화들로 특별전을 마련한 만큼 소련 SF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며, 이 영화제는 자신들의 승부수를 '신선함'에 뒀다.


또 관객투표로 선정된 폐막작은 마이클 도우즈 감독의 '본격 뽕필일렉트로닉클럽판타지 휴머니즘' 영화 'X됐다, 피트 통'이 상영됐다.

 

 

 

리얼판타에서 사실상 메인 프로그램은 '판타스틱영화세상' 부문이며 이 섹션에는 15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헌데 왠만한 영화제와 달리 이 영화제의 메인프로그램에서는 단 한 편도 정식개봉한 작품이 없다. 영화제가 소규모였다는 것도 이유가 될테지만 이 중 4편을 본 입장에서는 "도저히 개봉할 영화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당시 필자가 본 영화는 'X됐다, 피트 통'과 함께 시바타 고 감독의 '느린 남자', 메이케 미츠루의 '사치코의 화려한 생애', 길렘 모랄레스 감독의 '침입' 등이다. 이 중 그나마 국내에 알려진 작품이 '침입' 정도일텐데 그 이유는 이 영화를 만든 길렘 모랄레스 감독의 차기작 '줄리아의 눈'이 국내에 정식 개봉했기 때문이다. 물론 '큐브'를 만든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영화 'Nothing'도 있었지만 이 영화는 빈센조 나탈리의 장편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어쨌거나 경쟁부문에서 단 네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은 "왠만해선 극장개봉이 힘들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 잔인하거나 야해서가 아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참 스타일 강렬하고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판타스틱'의 정의를 단순히 썰고 베고 꿈꾸는 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충분히 그 개념을 확장시켰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다.

 

 

리얼판타의 매력은 작품 프로그래밍 외에도 영화제 전반의 분위기에 둘 수 있다. 낙원상가라는 복고분위기 물씬 풍기는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 키치적이면서도 판타지한 장소로 재창조해냈다. 특히 폐막파티를 극장 맞은 편 '1,2,3 캬바레'에서 연다는 아이디어는 눈부실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인디 힙합씬들이 캬바레에 총출동해 파티를 벌인다는 발상은 실로 감동적이다. 물론 필자는 그 파티에 가지 못했다. 아직도 그 점은 한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밖에 리얼판타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기념품이다. 당시 최고 화제가 된 기념품인 '통조림 세트'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썰어놓은 뇌', '으깬 심장', '잘려진 손톱과 손가락' 등 이름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통조림들, 그리고 그 속에 든 반전은 전국 어느 영화제에서도 하지 못한 솔깃한 아이디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한 자원활동가들의 수작업 이야기는 이 가난한 영화제의 눈물겨운 노력을 실감케 한다.

 

 

앞서 말한대로 리얼판타는 정치적 목적을 띄고 열린 단발성 영화제다. 그렇다 보니 서울아트시네마에 이 판타지아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제는 관공서와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은 영화제가 얼마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부산과 부천, 전주의 많은 영화제들이 충분히 본 받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이들은 각자 공간적, 물질적 제약을 받으며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주어진 공간에 얼마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영화제를 기획하고 개최하는 이들의 몫이다. 경우에 따라 충분히 '도시 전체'가 축제의 판타지아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 영화제의 기획력이다.

 

 

여담) 리얼판타스틱영화제의 홈페이지는 아직 살아있다(http://www.realfanta.org/main/). 물론 지금은 게시판에 광고가 도배되어 있어 마치 '폐가'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가끔 이곳에 들어가보면 이 영화제의 흥미로웠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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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에다가 이런 얘기 하는게 처음이라 당황스럽지만... 19세 미만 미성년자나 비위 약하신 분은 리뷰 읽지 마시길 권해드립니다.

201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1년전인 2010년과 마찬가지로 '악명높은 영화' 하나를 선택했다. 2010년 부천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영화는 <세르비안 필름>이었다. 2011년에도 부천은 그 정도의 악명이라고 떠들어대며 경고한 영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L.A 좀비>였다. 평범한 좀비영화같은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의 악명이 알려진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인 브루스 라브루스가 독특한 퀴어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L.A 좀비>는 악명높은 '게이좀비포르노'가 되는 셈이다. 막상 영화의 실체를 확인했을때 이 영화는 아주 확실한 '게이좀비포르노'였고 그 표현수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만큼 적나라했고 솔직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적나라한 이미지에 갇혀있지만 나름 할 얘기를 가지고 나온 영화였다. 그리고 그 할 이야기를 찾아내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영화의 대략적인 이야기로 한번 풀어나가보자. 세부적인 디테일 묘사는 일본 대지진 현장만큼으니 처참하게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디테일 이야기 꺼내면 3박4일동안 욕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거두절미하고, 이 영화의 이야기는 한적한 바닷가에 뜬금없이 나체의 근육질 좀비가 나타난다. 그리고 아주 뜬금없이 심야에 산길을 다니는 한 남자의 차를 얻어탄다. 그런데 또 이 남자의 차는 뜬금없이 사고를 당한다. 좀비는 좀비니깐 당연히 안 죽는데, 운전하던 남자는 거의 죽어간다. 마지막 심장박동이 멈추고, 결국 남자는 죽는다. 옆에서 끈적하게 이 죽은 남자를 바라보던 좀비는 뜬금없이 바지를 벗더니 죽은 남자의 상처부위에 물건을 삽입하더니 격하게 피스톤 운동을 한다. 어느덧 절정에 이르고 좀비가 검붉은 정액을 뿜어내자 죽은 남자는 갑자기 살아난다.

이쯤 듣다 보면 독자들 역시 "대체 그게 뭐야?", "병신같애" 뭐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필자도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더군다나 대사 한마디 없이 이 뜬금없는 상황이 주구장창 반복된다면 이미 개념은 안드로메다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 좀비는 앞서 이야기한 식대로 로스앤젤리스의 갱스터와 부랑자, 피살자 등 많은 시체들을 살려낸다. 이 이상한 장면들을 연속으로 보고 있자면 마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언데드 사제가 죽은 파티원 부활하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게이변태좀비가 '사제'로 보일 정도라면, 이 좀비의 행동은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게 된다. 특히나 좀비가 살려낸 사람들, 좀비가 지나다니는 공간은 로스엔젤리스의 어둡고 더러운 부분에 해당된다. 좀비는 이 어둡고 더러운 곳을 다니며 죽은 사람들을 살려낸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빌리 해링턴'(국내 잉여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게이 포르노배우)처럼 하고 있는 4명의 남자들을 살려낸 뒤 벌이는 다섯 남자의 뜨거운 정사는 검은색과 붉은색, 살색이 뒤엉킨 이상한 지옥도를 연상시킨다. 타락천사가 지상의 가엾은 중생들을 쾌락으로 구원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좀비는 변태짓으로 L.A의 죽은 자들을 살려낼까? 그것은 후반부에 가서 드러난다. 이 좀비가 공동묘지로 가더니 죽은 자들의 죽는 장면을 떠올리며 뜨거운 피눈물을 흘린다. 그러더니 어느 무덤으로 가서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 묘비에는 'LAW'(법)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좀비가 'LAW"의 무덤을 파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죽은 법을 살려내서 L.A를 구원하겠다는 좀비의 강한 의지, 혹은 하루동안 열심히 활동한 'LAW'라는 이름의 좀비가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는 것. 둘 중 뭐가 정답인지 알 수는 없지만 뭐가 정답이건 간에 이 좀비는 '훈훈한 게이좀비'가 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해석으로 인해 얻어진 의미는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음지로 숨은 동성간의 성행위로 L.A를 구원하겠다는, 말도 안되게 야심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왠지 병신같지만 뭔가 훈훈한 영화인 것이다.

<L.A좀비>는 이처럼 훈훈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영화로써는 엉망이다. 좀비의 옷이 시종일관 달라지는 것에 대해, 하나의 좀비가 갑자기 둘로 나뉘어져 서로 바라보고 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해석이 안된다. 그것을 자아의 분리 정도로 본다고 해도 말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결론은 "감독이 영화를 못 만든다"로 보는게 속 편할 것 같다. 그냥 이렇게 결론내린 것에 대해 "필자가 무책임하다", "필자가 감독의 내공을 못 따라간다"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필자는 원래 그것밖에 안되는 모양이다.

지독하게 못 만든 영화고, 지독하게 더러운 영화지만 범죄 피해자와 부랑자들을 살려내는 게이좀비의 따뜻한 '생명구원 프로젝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관객들은 극장을 나설때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 물론 게이포르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야 한다. 다행히 필자는 뭔소린지는 알았으나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필자는 이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성애자라서...


여담) 동성애자를 비하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다. 단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동성애자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진다. ...내말 못 믿겠으면 한 번 구해보시던지...

L.A. 좀비
감독 브루스 라 브루스 (2010 / 독일,프랑스,미국)
출연 프랑소와 사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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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바흐 2011.07.29 11:5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으하하하 이거 골때리는 영화군요. -ㅁ-;;;;;;;

  2. 2016.10.02 22:25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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