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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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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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에 해당되는 글 2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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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김보라 감독(왼쪽)과 '우리집' 윤가은 감독. [사진=아트나인 트위터]

사실 이 글을 쓰는 일은 조심스럽다. "여성감독이 올해 열일했다"는 말에 대해 누군가는 "여성감독이 아니라 그냥 영화감독이 일을 잘한 것일 뿐이다"라고 반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며 확신이 없었다. 나는 한국의 젊은 영화감독들을 검색하다가 이 글을 써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30대 한국 영화감독들을 성별로 나눠보면 남성 감독들의 경우 상업영화 시장에서 장르영화를 만드는 사례가 많다. '사자'를 만든 김주환 감독이나 '장산범'의 허정, '타짜:원아이드잭'의 권오광, '사바하'의 장재현 등이 있다. 상업영화 시장에서도 장르영화가 아닌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려는 젊은 감독들도 눈에 띄지만 확실히 한국 영화계에서 상업영화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남성 감독들이다. 

반면 최근 몇 년 새 독립영화계에서 젊은 여성 감독의 등장은 대단히 많다. 지난해만 해도 '수성못'의 유지영, '어른도감'의 김인선, '미쓰백'의 이지원,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등 작품성과 재미를 고루 갖춘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대거 등장했다. 올해도 '벌새'의 김보라, '우리집'의 윤가은, '메기'의 이옥섭, '아워바디'의 한가람, '밤의 문이 열린다'의 유은정 감독 등이 좋은 영화를 가지고 등장했다. 여기에 첫 장편 입봉작 '82년생 김지영'을 내놓은 김도영 감독도 언급할만 하다. 이들의 등장을 두고 '한국영화 두 번째 르네상스'라고 말하는 것이 다소 과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독립영화판에서 '주목할만한 30대 남자 영화감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은 이 글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남자 감독이 없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그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여자 감독들이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드네, 앞으로 한국영화의 근간이 되겠구나"라는 의미의 썰이다. 

우선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던 2003년을 추억해보자. 2019년의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2003년은 꽤 재미있는 시기다. 그 재미를 찾기 위해서는 1년 더 이전인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 해는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암흑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일 월드컵으로 극장은 텅텅 비었고 극장에서 개봉하는 한국영화들은 단발성 코미디영화들('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가문의 영광', '색즉시공', '몽정기', '서프라이즈',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주를 이뤘다. 여기에 사상 최대 암흑기를 형성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아 유 레디?', '예스터데이',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들도 이때 다 나왔다. 물론 이 시기에도 썩 괜찮았던 한국영화('오아시스', '복수는 나의 것', '생활의 발견', '피도 눈물도 없이', '죽어도 좋아', '낙타(들)', '공공의 적' 등)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주류 시장에 나서지 못했다. 

'소공녀'

'희망의' 2003년에 이르자 한국영화의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삼류 코미디영화가 주를 이루던 극장가에서 웰메이드 영화들이 잇따라 등장한 것이다. 박찬욱('올드보이')과 봉준호('살인의 추억'), 김지운('장화, 홍련')을 필두로 장준환('지구를 지켜라'), 이재용('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곽재용('클래식'), 이언희('...ing'), 김기덕('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인정하긴 싫지만), 임상수('바람난 가족'), 이수연('4인용 식탁') 등이 작품성과 재미를 고루 갖춘 영화들을 내놨다. 여기에 힘입어 당시 중견감독인 강우석은 한국영화 사상 첫 천만관객 영화 '실미도'를 내놨고 홍기선 감독도 의미있는 영화 '선택'을 내놨다. 비록 관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한국형 SF의 기술적 발전을 보여준 '내추럴시티'나 '원더풀데이즈'도 이때 등장한 영화들이다. 

이 르네상스 시기의 메인프레임을 장식했던 박찬욱과 봉준호, 김지운은 모두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전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이재용, 김기덕, 임상수 등도 마찬가지다. 2019년 한국영화의 중견감독이라고 자리잡은 사람들은 데뷔부터 성공을 맛본 사람은 아니다(이건 장준환 감독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재능있는 전작('복수는 나의 것', '플란다스의 개', '조용한 가족', '눈물', '정사' 등)이 있어도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감독들이 대부분이다. (정확히는) 이 시장에서 '성공한 영화감독'으로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2003년은 좋은 영화와 '성공한 영화감독'들이 아주 많이 등장한 해다.

그 후 꽤 오랫동안 한국영화는 과도기와 같았다. 영화시장이 커지면서 천만영화들이 쏟아졌지만 멀티플렉스의 영향으로 시장은 양극화되고 주류 영화는 다양성을 잃어갔다. 헐리우드 스튜디오 영화는 슈퍼히어로의 힘을 받아 더 맹렬히 공세를 퍼부었고 2003년 이후 지속되던 한국영화의 위상은 점점 거품이 돼갔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은, 주류 시장이 외면한 곳에서 독립영화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와 올해 극장가에서는 유독 의미있는 독립영화(서두에 언급한 영화들)가 많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독립영화들의 대부분은 여성감독이 만든 작품들이다. 이것이 내가 '여성감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벌새'

독립영화가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것은 대중성, 오락과 다소 거리가 있으며 많은 부분 무겁거나 난해하게 인식된다. 그래서 그들의 현재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의 초창기를 닮았다. 더 공교로운 사실은 지난해와 올해 한국영화는 2002년을 조금 닮았다는 점이다. 2018년의 한국영화는 시장 자체가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많은 대작영화들('염력', '마약왕', 'PMC:더 벙커', '협상', '스윙키즈', '인랑', '흥부', '버닝', '변산', '창궐' 등)이 실패를 맛봤다. 올해는 CJ영화들이 대체로 성공을 거뒀지만 그 외 영화들('자전차왕 엄복동', '타짜:원아이드잭', '비스트', '악질경찰', '나랏말싸미', '버티고', '우상', '미성년' 등)의 성적은 처참한 수준이다. 양극화가 극에 달한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성공적으로 데뷔한(혹은 두번째 영화를 만든) 여성감독들의 다음 영화를 기대해본다. 그들 중 모두가 주류 시장으로 편입하진 않겠지만 분명 누군가는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을 넘어설 의미있는 차기작을 만들지 않을까 예상된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최근 몇 년 주류 한국영화들은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과도한 자기욕심에 취하거나 동어반복, 지나친 기획 등. 때로는 "한국영화는 재미없어"라는 편견을 가진 일부 관객들이 이해가 될 때도 있다. 때문에 나는 재능 있는 영화감독(=최근 등장한 여성감독들)들이 이를 바꿔줄 것으로 믿는다. 때가 되면 세대가 교체돼야 하는 법이다.

다만 기성세대들이 윗선에 있는, '다소 꼰대같은' 주류 영화시장에서 이들이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염려스럽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이 살아남았던 그때의 시장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제조업에서나 쓰는 말인 '유리천장'은 그곳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제조업에서는 그것을 깨는 움직임들이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대기업 여성임원들 간에 이뤄진 간담회에서 김효정 신한카드 상무는 "뛰어난 리더라면 여성이라는 것을 무기로 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 풀무원 상무도 "여성 후배들도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버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변영주 감독이나 임순례 감독, 부지영, 장유정, 홍지영 감독 등이 유리천장을 깬 사례가 있지만 실력 있는 영화감독이 가장 많은 지금은 유리천장을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것은 영화팬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르네상스'는 학문이나 예술의 재생·부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03년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프랑스 누벨바그나 아메리칸 뉴시네마, 독일 뉴웨이브와 견줄만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그건 영화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정의내릴 일이다). 다만 그 시기를 '르네상스'라고 불렀던 것은 분명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났다. 이제 또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올 때가 됐다. (여전히 성별로 나누는 것이 편하진 않지만) 어쩌면 앞으로 주류 영화시장은 여성감독들이 이끌지도 모르겠다. ....그건 진정한 '르네상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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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순간부터 김기덕의 영화를 보지 않게 된 시점이 있다. 그게 언제부터인지 살펴보니 '시간'부터였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몇 작품 거르고 '뫼비우스'나 '피에타'를 보긴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의 영화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할 마음이 사라진 영화들이었다.

2. 그러다 몇 개의 작품을 거르고 '일대일'을 만났을 때,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악어'를 처음 봤던 그때의 충격과는 다른 것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김기덕은 영화 속에 수많은 기호와 상징들을 넣어 그것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영화는 노골적으로 기호를 읽어야 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일대일'은 마치 거대한 '기호의 덩어리'와 같았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를 보면 거대한 덩어리가 돼가는 테츠오의 모습이 등장한다. 김기덕의 영화는 기호에 둘러싸여 점점 그런 테츠오가 돼가고 있었다. 

3. 나는 어떤 집단을 이야기할 때 대표자 한 사람만으로 이야기하진 않으려고 한다. 분명 선한 의지를 가지고 성실하게 집단 안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런데 김기덕 영화의 경우에는 워낙 소규모로 작업이 이뤄지는 만큼 감독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4. 자신의 영화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김기덕의 비밀이 까발려졌다. 이것은 "불미스런 일"이라는 점잖은 단어로 포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악한 일이다. 이제 이 사람은 '세계적인 거장'에서 '추악한 성범죄자'가 돼버렸다. '거장의 영화'라고 칭송했던 영화들은 '추악한 성범죄자의 정신세계를 담은 영상물'이 돼버렸다. 

5. 내가 정신분석학자는 아니지만 김기덕의 영화에 대한 재평가는 한 성범죄자의 정신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의 생각이 온전히 반영된 이 영화들은 한 성범죄자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적어도 일부 관객들이 극도의 불쾌감을 나타낸 몇 개의 영화들('섬', '나쁜 남자', '파란대문', '수취인불명' 등)을 보며 그의 내면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가 이 세계를 어떻게 통제했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6. 나는 김기덕 감독을 영화제 GV에서 두 번 정도 본 적이 있다('나쁜 남자', '파란대문' GV). 그는 꽤 수다스런 사람이었고 잘 우는 사람이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파란대문' GV 당시 "관객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주셔서 감동받았다"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날 극장에는 절반 정도의 관객만 앉아있었다. 

7.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김기덕은 주로 '피해자'의 모습이었다. 제자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도둑맞았다며, 자신의 영화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있다며 싸우는 모습들이었다. 그 싸움 때문에 그는 한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기도 했다. 

8. 어쩌면 김기덕은 권력욕이 매우 강한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즐기고 권력의 우위를 지켜야 하는 사람. 어떤 의미에서건 이번에 김기덕은 인생 최대의 주목을 받게 됐다. 

9. 영화계에는 몇 명의 '김기덕 라인'이 있다. 가장 최근에는 문시현 감독('신의 선물')부터 김동후 감독('메이드 인 차이나'), 전재홍 감독('풍산개', '아름답다' 등), 장훈 감독('영화는 영화다') 등이다. 특히 장훈 감독은 김기덕과 한 차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나는 새삼 그들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누군가는 김기덕의 조력자일 수 있고 누군가는 김기덕에게 저항한 사람일 수 있을 것 같다.

10. 어쨌든 더 이상 김기덕의 영화를 보고 싶진 않다. 기호의 덩어리가 돼버린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편치 않았던데다 그의 실체도 까발려졌으니 더는 그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불편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이현주는 단 한 건의 성폭행 사건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김기덕도 그와 동일한, 아니 그 이상의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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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는 식민시대와 독재, 전쟁 등으로 오욕과 고난의 세월이었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이렇게 고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있나 싶을 정도다(물론 뒤져보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끝나지 않은 고난의 세월같다. 이런 고난의 세월 속에서는 언제나 저항정신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한국영화에서도 분명 저항의 아티스트들이 존재해왔다. 


지금부터 언급할 장선우, 송능한, 임상수 감독을 '저항의 아티스트'라고 정의내린다면 분명 누군가는 섭섭해 할 것이다.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제3의 영역에서 저항을 이어간 영화운동가들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들 3명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들이 메인 프레임에 존재했던 만큼 대중에게 미치는 파급력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은, 셋다 지독하게 냉소적이고 어딘가 건방진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들이 저항은 조롱과 냉소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양아치스러운 면이 있다. 



'꽃잎'


장선우, 신내린 무당이거나 땡중이거나


장선우 감독은 한때 박광수 감독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티격태격 한 인물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박광수 감독의 영화들은 사시미로 역사의 급소를 쿡 쑤시는 반면 장선우 감독은 송곳으로 여기저기 쿡쿡 찌르며 도발하는 스타일에 있다. 그만큼 장선우 감독은 장르적 특성과 파격을 활용한 도발에 능하다. 


장선우의 도발은 무속신앙과 불교에 뜻을 두고 있다. 그는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향해 한 판 굿을 벌이거나 불경을 외운다. 이쯤 들으면 장선우의 영화는 '도발'이 아닌 '위로'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똑같은 굿 한 판을 벌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도발이 된다. 


영화 '꽃잎'은 80년 5월의 광주를 향한 위로와 애도의 굿 한 판이다. 처참히 찢겨져 이름모를 길 위에 버려진 5월의 광주를 향해 애잔한 위로를 건넨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5월의 광주 뿐 아니라 그 광주를 짓밟은 어떤 존재에 대한 묘사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 소녀를 강간하고 가두고 폭행한 가난뱅이 어른(문성근)과 흑백 TV 속 어스름히 숨어있는 대머리 권력자. 영화는 비참이 버려진 소녀와 대비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숨어있는 권력과 군부의 잔인함을 부각시킨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사실 장선우가 가장 자주 조롱한 사람들은 지식인 계층이다. '경마장 가는 길'이나 '너에게 나를 보낸다', '거짓말' 등의 영화는 지식인들이 부려대는 허세가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그리고 그들 또한 결국 아랫도리의 노예일 뿐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거짓말'은 개봉 직후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사회적 반응들이 있었다(영화 개봉 후 보수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보이콧 사태가 벌어졌다. 문화부 뿐 아니라 사회부에서도 큰 뉴스꺼리였다). 아마도 장선우는 영화 개봉 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을 보며 낄낄댔으리라 예상된다. 


장선우의 영화는 주로 길 위에 있을때가 많다. '꽃잎'도 그랬고 '화엄경'도 길 위의 영화였다. 그리고 '나쁜 영화' 역시 도시의 길 위에 버려진 가출청소년과 노숙자들의 이야기다. 장선우 감독 역시 길 위를 떠도는 땡중처럼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고, 중생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본의 힘이 커지는 시대가 도래할 즈음, 그는 100억짜리 보시(布施) 한 번 시원하게 지르고 홀연히 사라졌다. 회사 두어개가 사라진 것이야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아마도 장선우는 "돈이 뭐 중요하나"라는 심정으로 영화계를 떠나 조용히 지내고 있다. 



'넘버3'


송능한, 부조리한 세상의 민낯을 까발리다


송능한 감독은 단 두 편의 영화만 남기고 영화판을 떠난 인물이다. 하지만 그 두 편의 영화는 우리 영화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영화들이다. 과연 한국영화에서 송능한의 이전과 이후에 그토록 날카로운 조롱을 전방위로 날리던 인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특히 송능한 감독의 영화는 여러 부조리의 대상들이 한 곳에 뭉쳤을때 벌어지는 난장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권력과 폭력, 자본이 한데 어우러졌을때 벌어지는 이 난리부르스가 실제 우리 사회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인지할때 관객들은 웃어도 웃는게 아닌 괴이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넘버3'은 표면적으로 조폭영화다. 그러나 조폭보다 포악한 검사와 부조리에 휘둘리는 조폭(넘버2), 권력의 부조리와 욕망이 얽히고 섥히면서 그야말로 '세상의 난장판'을 보여준다. 이 난장판의 근본은 앞서 말했지만 '욕망'에 있다. 권력과 돈, 섹스에 대한 욕망이 부딪혔을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주는게 이 영화의 주된 목적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난장판이 세기말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가장 통렬하고 직설적인 시선일 것으로 생각된다. 



'세기말'


'세기말'은 한국사회에 대해 좀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자본과 착취, 지식인의 부조리함, 도덕의 실종으로 얼룩진 혼돈의 세기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혼돈은 '세기말의 불안'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세기말'을 제거하고, 2015년의 한국을 대입시켜보자. 썩 틀린 이야기가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혼돈의 한국사회는 단순히 '세기말이어서'가 아니라 '불안해서'인 것이 더 크다. 불안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기도 하고, 우리를 더 타락시키기도 한다. 혼돈과 불안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무너지고 타락할 것인가. 적어도 16년전 '세기말'보다 지금 우리는 더 타락해있다. 


송능한의 영화들은 원론적 화두에서부터 한국사회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원론적 화두에서 비롯된 부조리함을 직시하고 적나라하게 스크린에 옮겨낸다. 즉 송능한의 영화는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도 들어맞는 우리의 불편한 민낯인 셈이다. 


송능한 감독은 '세기말'이후 한국 정치의 난장판을 스크린에 옮기고자 했었다. 그러나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정치스캔들이 터진 후 송능한은 영화연출을 그만뒀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이제 현실이 영화보다 더 부조리하다. 송능한 감독 스스로, 이제 현실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를 만들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좋아한 일개 관객으로서 말하자면 이 부조리한 현실을 스크린에 온전히 담아낼 사람은 송능한 뿐이다. 



'그때 그 사람들'


임상수, 부르주아 한량의 허허실실 직격탄


일단 임상수 감독에 대해 '부르주아'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나는 임상수 감독의 재산상황에 대해서도 모르고 '아부지 뭐하시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부르주아'라는 수식어를 붙인건 그의 영화들 때문이다. 임상수의 영화는 사실 별로 치열한 영화는 아니다. 딱히 전투적이지도 않고 공격적인 어조를 갖춘 것도 아니다. 그의 영화는 몹시 여유롭고 느긋하다. 하지만 썩 긍정적이지는 않다. 딱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본 건 아닌 듯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은 부조리 투성이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섹스와 역사, 돈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는 침대 위의 남자들을 조롱했고, '눈물'에서는 아이들을 착취하는 어른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바람난 가족'에서는 가부장적 가족의 부조리함을 비웃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군부독재의 심장부에 총알을 박고 희희낙락 웃어댔고 '오래된 정원'에서는 역사적 아픔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여주며 폭력의 가해자들을 냉소했다. 일종의 돌려까기인 셈이다. 


임상수식 조롱은 직접적이지도, 공격적이지도 않다. 그저 뒤에서 팔짱끼고 실실 웃으며 "지랄하네"라고 욕지거리 날리는 수준이다. 하지만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게 날리는 조롱이 더 기분 나쁘고 열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딱히 반박할 꺼리도 없다는 점이다. '그때 그 사람들'처럼 디테일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순 있어도 영화 전체에 대해 반박하기는 어려운게 임상수 영화의 특징이다. 특히 초창기 섹스 3부작은 특정인을 겨냥하진 않았지만 불특정 다수의 불편한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조롱했다. 이러한 조롱은 최근 영화들에서도 이어졌다. 



'나의 절친 악당들'


최근에 만들어진 '하녀'와 '돈의 맛'은 표면적으로는 돈에 대한 조롱이다. 하지만 실상 이 영화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돈'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사실은 돈을 바탕으로 한 '갑'(甲),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돈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염두해 둘 때 권력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은 바로 '재벌'이다. 그래서 두 영화는 '재벌=권력'이 욕망에 의해 드러내는 추악한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욕망으로 인해 무너질 것 같지만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돈의 벽'을 체감하게 한다.


임상수 감독의 최근작 '나의 절친 악당들'은 이전과 다른 이야기 방식을 고집한다. 허허실실 웃어대던 이 아저씨는 젊은 감각으로 자신을 덧씌우고 있다. 아마도 임상수는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꼰대스럽다"는 생각을 한 듯 하다. 뒤에서 낄낄대는 아저씨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최전선에서 함께 뒹구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당초 임상수 감독은 '눈물'을 통해 착취당한 아이들을 위로하면서 차가운 사회의 장벽을 신랄하게 알려주는 '어른'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는 어른으로서 가르침이 아니라 청년들이 뛰어놀 판을 벌려주는 역할을 했다. '갑'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조롱했던 입장에서 스스로 '갑질'을 하고 싶지는 않은 듯 하다.


임상수 감독은 이제 '냉소적인 구경꾼'이 아니라 함께 뛰어노는 아저씨가 되려고 한다. 앞으로 그가 얼마나 더 스크린 위에서 뛰어놀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영화에는 3명의 '양아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2명이 영화와 사회에 환멸을 느껴 영화판을 떠났다. 이제 남아있는 양아치는 임상수 감독 뿐이다. 그리고 그런 임상수는 이제 좀 더 적극적인 양아치가 되려고 한다. 이 적극적인 양아치가 저질러댈 난장판이 좀 더 기대된다. 



추신) 장선우와 송능한 감독 모두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 얄라셩 출신이다. 확실히 이 동아리는 강력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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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지구본 2015.09.30 13:43 address edit/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공유해가기 괜찮을런지요?






이병헌 감독의 영화 '스물'은 가벼운 영화다. 처음 보자마자 생각난게 '유머감각 있고 조금 병신같은 김난도'의 느낌이었다.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뻘소리를 되게 유머감각 넘치게 한 것 같다. 그래서 '스물'은 조금만 진지하게 봤다가는 젊은이들에게 험한 소리 듣기 딱 좋은 영화다. 그러나 굳이 이 영화에 대해 화를 내고 싶진 않다. 비록 속 편한 소리를 해댈지언정 그 '속 편한 소리'가 매우 재미있으니 말이다. 헛소리도 재미있으면 용서해주고 싶어진다. 이 재미있는 헛소리는 순전히 감독이 이야기를 잘 써준 덕이 크다. 


이 이야기를 쓴 이병헌 감독은 각본가 출신이다. 각색에 참여한 '써니'나 '타짜:신의 손' 등을 보면 대사 쓰는 재주가 꽤 있는 감독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사 잘 쓰는 사람이 정말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대체 어디서 그런 말빨이 나오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당장 떠오르는 각본가 출신 감독은 '알포인트'의 공수창 감독이 있다.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 진보주의 영화부터 '하얀전쟁', '비상구가 없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링', '텔미썸씽' 등 메이저 영화까지 여러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감독 데뷔작 '알포인트'는 지뢰밭과 같은 한국 호러영화계의 몇 안되는 '보석'이 됐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 감독이 더러 있는 편이긴 하지만 살아남는 경우는 드물다(사실 뭐 영화감독 입봉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이병헌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 기대주가 되기 충분할 것이다. 물론 이병헌 감독 이전에 스타급 연출자가 하나 있다. 바로 박훈정 감독이다.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등 느와르 대작들의 이야기를 쓴 박훈정 감독은 '혈투'로 데뷔한 후 '신세계'로 대박을 터트렸다. 


이병헌 감독과 박훈정 감독은 코미디와 느와르라는 전혀 상반된 장르를 연출하지만 대사를 잘 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제 장편 한 두개 만든 '신인감독'들이지만 대사를 잘 쓰는 그 장점은 영화판에서 굉장한 장점으로 남아 긴 생명력을 보장할 것이다. 사실 나 역시 공모전 준비를 해봤지만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어려운게 '대사'다. 이게 평소 하는 말대로 하자니 영 재미가 없다. 대사로 재미를 주는게 보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이들 두 감독의 '대사'는 그들이 만드는 영화 장르에 따라 특성을 달리 한다. 마치 샤브샤브용 고기와 스테이크용 고기를 달리 쓰는 것과 같다. 이들이 쓰는 대사를 살펴본다면 이들이 장르에 얼마나 정통한지, 이야기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병헌 감독의 대사는 '스물' 홍보팀이 말한대로 '말 맛'을 주는 대사다.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하면서 간결하다. 사실 코미디영화의 대사가 간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보는 재미'를 주는 대사는 대체로 수다스러운 편이다. 펼쳐놓는게 많아야 재미를 얻어갈 부분도 많아지는 법이다. 물론 다른 일련의 영화들에 비하면 대사가 많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이병헌의 대사는 구구절절 웃기려고 판을 벌이지는 않는다. 


강형철 감독이 각본을 썼지만 이병헌 감독이 각색한 '써니'에서 "어이, 소녀시대"같은 대사는 트렌디하면서도 간결한 재미를 준다. 또 "이것들이 왜 남의 남편 꼬추갖고 지랄들이야" 같은 대사는 다소 과격하지만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면서 상황이 주는 재미에 효과적인 양념 역할을 한다. '스물'에서도 "섹스를 하자" 같은 단도직입적인 대사나 "함께 있을 때 무서울게 많은 븅신이었다"같은 재치있는 대사들은 어느 방향으로 가건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 충분한 대사였다. 


사람에 따라 다소 가볍다고 느낄 수 있지만 무겁거나 진지해서는 관객을 웃길 수 없다. 그래서 이병헌 감독의 대사들은 코미디에 최적화 돼 있다. '스물'의 대사들처럼 정말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 듯한" 대사들은 마치 박명수가 '무한도전'에서 던지는 일련의 멘트들처럼 관객들을 웃겨준다. 이병헌 감독을 만나게 되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예능 프로그램 즐겨 보시는지...



이병헌 감독과 강형철 감독은 어째 딱 봐도 '스승과 제자' 느낌이다.


박훈정 감독은 사실 대사보다 이야기가 두드러진 작가로 볼 수도 있다. '악마를 보았다'나 '부당거래'는 각각 김지운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각색을 하면서 연출자의 색채가 입혀지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이야기의 기본골격은 박훈정 특유의 색깔이 입혀져있다. 그래서 박훈정의 말빨이 드러난 건 '혈투'나 '신세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연출작들에서 드러난 박훈정 감독의 대사는 이야기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느와르 장르에 걸맞게 진지하고 무시무시한 대사를 날리지만 지나친 무게감으로 쳐지는 것은 아니다. 무겁되 지루하진 않은 대사인 것이다. 특히 '신세계'의 경우에는 거의 유행어에 가까울 정도로 명대사가 많다. 이중구 역할을 한 박성웅을 스타로 만드는데 '신세계'의 대사들이 일조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중구 뿐 아니라 정청(황정민)이나 이자성(이정재), 장과장(최민식)의 대사 역시 유행어에 가까울 정도로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사실 '신세계'의 대사들이 이만큼 잘 나간데는 영화가 재미있었던 탓도 크다. 다수의 인물들이 얽히면서 극한으로 치닫는 박훈정표 이야기는 연출의 묘만 살아난다면 엄청난 재미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부당거래'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도 그동안과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면서 그럴싸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게 이야기가 잘 빠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류승완 감독이 기본기가 탄탄함을 보여준 예시기도 하다. '부당거래'는 류승완 본인에게도 큰 시험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걸 훌륭하게 해냈기에 류승완 감독도 종전과 다른 입지에 오를 수 있었다. 



박훈정 감독은 입봉작과 차기작 사이에 갭이 가장 큰 감독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병헌이나 박훈정 감독은 '말빨'이 좋은 감독이다. 시나리오 만지던 시절부터 다져온 내공이 자신들의 작품에서도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빨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의 골격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스물' 역시 온 사방으로 흩어진 사건들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결국 하나의 탄탄한 골격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 '대사빨'이 살아날 수 있었던 건 결국 이야기의 큰 틀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재미난 여러 상황들 때문이다. '신세계'의 경우에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극한으로 내몰았던 상황들이 '대사빨'을 살려냈다. 결국 이 역시 이야기의 골격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박훈정과 이병헌의 영화들은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 물론 이들이 만들어 내는 맛깔스런 대사들은 책을 많이 읽던지 무슨 수를 내서 제대로 배워야 하겠지만 적어도 좋은 이야기와 좋은 대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여담1) 이병헌 감독은 연출자인데 저렇게 잘 생겨도 되는건가. 


여담2) 여러 인물들이 얽히는 이야기에서 재미를 주던 박훈정 감독의 차기작 '대호'는 '최민식 vs 호랑이'의 구조다. 박훈정 감독은 이 이야기에 자기식대로 주변인을 막 넣을지, 아니면 정말 안 해본 이야기를 만들지 모르겠다. 그래서 기대된다. 


여담3) '스물'을 처음 보고 느낀 건 이병헌 감독은 차세대 '장진' 정도는 가능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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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오키드'(1989) 촬영장.


한국에서 욕이란 욕은 있는대로 다 쳐먹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봤다. 생각보다 봐줄만하다는 사실에 놀랐으면서 아쉬움도 어느 정도 들었다. 꽤 괜찮은 골격을 가진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가 흥분해서 이야기를 만든 통에 오글거림의 연속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영화를 연출했으면 하는 사람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바로 잘만 킹이다. 잘만 킹의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는 역시 잘만 킹의 '와일드 오키드'나 '레드 슈 다이어리'다. 물론 그 이전에 '투문정션'같은 멋진 에로영화도 있었다. 


그 시절 비디오가게 에로영화의 대표 브랜드는 잘만 킹과 함께 틴토 브라스도 있다. 한마디로 미국의 거장과 이탈리아 거장이 한국의 비디오가게에서 격돌한 셈이다. 물론 둘의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은은하게 성적 욕망을 자극했던 잘만 킹에 비해 틴토 브라스는 저돌적이고 도발적인 포르노그라피를 만들어냈다. 


특히 잘만 킹은 행위와 노출에 집중하는 틴토 브라스의 영화와 달리 조명과 편집 등으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잘만 킹의 영화는 '야한 행위'때문에 야한게 아니라 화면 안에 모든 것이 야하기 때문에 야하다. 그래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고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이 바로 잘만 킹이다. 



'투 문 정션'(1988)


잘만 킹은 단역배우로 먼저 영화계에 입문했다. 1988년 '투문정션'이 그의 연출 데뷔작이지만 이미 60년대부터 단역과 조연배우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투문정션'은 '얼굴만 봐도 야한 여자' 셰릴리 펜이 TV시리즈 '트윈픽스'에 출연하기 전에 나온 작품으로 그녀의 매력을 본격적으로 알린 영화기도 하다. 부잣집 부인과 근육질 정원사의 사랑이라는 다소 뻔한 이야기지만 그 끈적끈적하고 은은한 분위기는 많은 에로영화들의 귀감이 됐다. 


사실 잘만 킹은 에로영화의 마스터피스인 '나인하프위크'의 제작과 각본을 쓴 인물이기도 하다. '나인하프위크'는 어떤 점에서 '그레이...'와 닮은 점도 있다(얼음을 쓸 때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나인하프위크'와 '투문정션'에서도 드러나지만 잘만 킹은 "벗어야 야하다"는 관념에서 탈피해 '진짜 야한 것'을 찾아내는 인물이다. 그걸 찾기 위해 잘만 킹은 프레임 안의 모든 것을 야하게 만든다. 


이것은 이전의 에로영화와도 차별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관객의 욕망에 근접하면서 관객의 체통을 지켜주려는 배려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후 만들어지는 '와일드 오키드', '델타 비너스' 등에서도 드러난다. 



'나인하프위크'(1986)


잘만 킹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역시 '금기'를 드러내는데 있다. 사실 에로영화 그 자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위를 보여주는 것에도 있지만 '금기'를 건드리는 것도 있다. 에로영화가 주는 쾌락의 근본이 여기에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잘만 킹의 거의 모든 영화는 금기시 된 관계를 건드리는데서 오는 일탈의 쾌감에 있다. 잘만 킹은 이런 '일탈의 쾌감'을 건드리는 재주가 탁월하다. 


금기시 된 관계를 몰래 행하는데서 오는 짜릿함은 아마도 잘만 킹이 가장 세련되게 건드려준다. 그야말로 격이 다른, 기품있는 에로영화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감히 에로영화의 위치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고 말할 수 있다. '포르노그라피'로 불리며 성의 정치적 측면을 논하기 위해 도발적이고 과감했던 과거 에로영화와 달리 오로지 에로 그 자체에 몰입하며 관객의 본성을 자극한 것이 잘만 킹의 에로영화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015)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면서 시종일관 잘만 킹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세련되고, 은밀하고, 기품있는 감각이 그 이야기를 만져준다면 엄청난 에로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잘만 킹은 다시 한 번 거장의 위치를 입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 2월 3일, 그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더욱 아쉽다. 그리고 잘만 킹 같은 감각을 가진 연출자가 남아있지 않음이 아쉽다(물론 애드리안 라인이라는 세련된 아티스트가 있지만 정말 영화를 가끔 만드시는 분이다). 


여전히 우리는 욕망 앞에 솔직하지 못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우리를 욕망의 앞으로 인도하면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배려했던 사람이 바로 잘만 킹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유독 그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영화다. 어쩌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나인하프위크'급 지위에 오를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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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스스로 영화 보는데 관대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병신같은 영화라도 세상에 태어난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7광구'를 보면서 한국영화의 현실을 실감해 측은한 감정을 느꼈고, '맨데이트'를 보면서도 "이건 한 30년쯤 뒤에 '컬트'가 될 수도 있을거야"라는 말같지도 않은 기대를 갖기도 한다. 


나는 못만든 영화일지언정 열심히 만든 흔적을 보인다면 영화를 감싸주는 편이다. 어차피 그 사람도 나처럼 영화를 좋아해서 만들었을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만들었다면 능력이 거기까지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웨 볼 영화도 별로 욕을 안 한다. 어차피 능력이 거기까지인데 열심히 만드는거고, 내가 안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욕하는 영화감독이 딱 두 명 있다. 바로 마이클 베이와 롤런드 애머리히다. 나는 이 두 영화감독이 영화를 못 만드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둘은 확실히 재능있는 '기술자들'이다. 마이클 베이는 어떻게 때려부셔야 박력있어 보이고 어떻게 찍어야 '간지'가 사는지 잘 알고 있다. 롤런드 애머리히는 어떤 면에서 마이클 베이보다 더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CG와 미니어쳐, 세트를 가리지 않고 '시각효과'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다(물론 최근에는 CG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그는 상상하는 그림을 스크린에 옮겨내는 능력이 출중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 둘이 너무 싫다.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은 영화과 대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능도 모자란데 엉뚱한 가치관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니 더 문제다. 한마디로 이들 두 사람은 재능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 헐리우드가 아무리 분업화 되어 있다지만 영화의 책임자인 영화감독은 여러가지 일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즉, 마이클 베이와 롤런드 애머리히는 재능있는 기술자지만 영화를 책임질 능력은 없다.




사실 나는 마이클 베이를 처음부터 싫어하진 않았다. '48시간'같은 형사버디물의 열혈팬인 나에게 '나쁜 녀석들'은 너무 반가운 영화였고 재미있게 즐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록'의 이야기도 상당히 부실한 편이었지만 그 부실한 이야기가 영화의 엔터테인먼트와 잘 어울렸다. 오락영화로서 박자가 골고루 맞아 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후의 마이클 베이다. 디테일은 무시되고 이야기는 실종됐다. '아마겟돈'은 그런 마이클 베이의 절정을 보여줬다. '진주만'은 한 단계 발전하려는 마이클 베이의 야망을 보여줬다. 그래서 '진주만'은 마이클 베이에게 몹시 중요한 영화였다. 헌데 그러기엔 너무 이야기가 주말연속극 수준이었다. 폭격씬이 대단할지언정 나머지는 몽땅 지루했다.




나는 '트랜스포머' 1편도 싫어한다. 여전히 이야기가 실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트랜스포머'를 3편까지 다 보고 나서 마이클 베이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했다. 이 세개의 조각들을 이어붙이고 나니 "마이클 베이에게 휴머니즘이 있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진주만'에서도 보여주려다 실패한 것이다. 그 휴머니즘은 소년과 로봇(옵티머스 프라임)이 오랜 시간 가져온 끈질긴 관계에서 비롯된다. 곁을 지킨건 범블비지만 끈끈한 파트너쉽은 옵티머스와 연결된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자식이 '트랜스포머' 4편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그래 결국 너는 장사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후에도 느껴진 것은 '장사꾼'의 무리수였다. 팬티에다가 우산 기능을 추가한 격이다. 매우 쓸데없다는 소리다.




반면 롤런드 애머리히는 꾸준히 싫어했다. 그나마 이야기를 잘 만들던 시절에는 '미국 제일주의'를 강요하는 이야기가 싫었다. 나중에는 그 이야기조차 못 만들어서 싫다. 돌이켜보면 '인디펜던스 데이'는 꽤 괜찮은 오락영화다. 특히 거기서 보여준 시각효과는 '걸작'에 가까운 수준이다. 헌데 그 저변에 깔린 "미국이 세계를 구한다"는 사고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사고는 롤런드 애머리히의 필모 내내 이어진다. 문제는 그나마 이야기마저 못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2012'의 그 말같지도 않은 이야기 전개는 보는 내내 욕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설명은 피한다). 


롤런드 애머리히의 가장 큰 문제는 필요한 재능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함께 애머리히의 기술도 늘고 있다. 이 사람은 점점 더 '필름 디렉터'보다 '엔지니어'에 가까워지고 있다.뭐 굳이 엔지니어의 발명품에 극장료를 지불하겠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그 정도에 내 돈을 지불할 생각은 없다. 




앞서 나는 "열심히 해도 못 만든 영화를 보면 측은해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마이클 베이와 롤런드 애머리히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나는 이들이 이야기꾼으로서 충분한 재능을 보여줬었고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본다. '못하는 건' 뭐라하기 애매한데 '안하는 건' 욕을 좀 해도 된다고 본다. 우리 신지식인 선생님께서도 "못해서 안 하는게 아니라 안 하니깐 못하는 겁니다"라는 명언을 남기시지 않았는가. 


앞서 말했지만 '맨데이트'는 오랜 시간 뒤에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습니다"라며 컬트가 될 수도 있다. '트와일라잇'같이 멍청한 뱀파이어 영화도 훗날 "엄청나게 말같지도 않고 독특한 영화"로 재평가될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 컬트로 인정하는 '토마토 공격대'나 '미지왕' 같은 영화도 당시에는 별 말같지도 않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영화 시각효과의 기술도 나날이 발전한다. 지금의 기술이 전부인 것처럼 블럭버스터들이 담아내지만 미래에는 이보다 더 리얼하고 실감나는 블럭버스터를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묻겠다. 여기 볼거리만 남아있는 영화가 있다. 그런데 그 볼거리보다 더 대단한 볼거리를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전에 그 영화를 찾게 될까? 이것이 내가 마이클 베이와 롤런드 애머리히같은 '돈 많은 집 자식들'에게 동정이 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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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그러니깐 내가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때. 친구들과 모여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1997년 아버지께서 사주신 8미리 캠코더를 들고 친구들과 모여 이틀간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찍었다. 편집하는데 걸린 시간을 합치면 촬영부터 편집까지 3일이 걸린 셈이다. 내용은 뭐 별 거 없고 공부와 연애에 실패한 고등학생이 자살하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주인공이 자살하는 장면을 찍던 날이었다. 낮에 주인공과 주인공이 사랑하는 비디오가게 점원 여자애와의 장면을 찍고 옥상 장면은 밤에 찍었다. 그런데 하필 밤이 되니 비가 왔다. 4월이라 밤에는 꽤 쌀쌀했고 우리는 촬영에 치여 저녁도 못 먹었다. 그저 촬영이 끝나고 근처 친구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을 계획이었다. 


촬영에 한창이던 그때 점원 역으로 섭외한 동갑내기 여자애와 그 친구가 빵과 우유를 사들고 촬영장으로 왔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으며 고마워했고 그 여자애들은 밤이 깊은 탓에 일찍 집으로 향했다. 빵은 뒀다가 나중에 먹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 우리는 몹시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잠시 계단에 들어가서 쉬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상 촬영과 동시에 식사를 해야했다. 물론 배우는 다음컷 준비하는 동안 틈틈히 빵을 먹었다. 그날밤 옥상에는 비가 왔다. 그리고 빵은 서서히 비에 젖어갔다. 




그 시절 영화를 좋아했던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에서 상당한 별종들이었다. 오타쿠 수준은 아니더라도 꽤나 특이한 문화에 심취한 인간들이었다. 심지어 선생님들도 쉽게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매년 가을이면 야간자습을 땡땡이치고 남포동 피프광장으로 향했다. 친구들과 영화 관객수 맞추기 내기를 해서 진 사람은 또 영화표를 쏘기도 했다. 그 별종들 못지 않은 별종들이 어느 일본영화에 등장했다. 그리고 전혀 상관없는 키리시마 때문에 당혹스러운 일도 생긴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영화다. 많은 인물들이 있고 그들은 저마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 사랑을 하고 있고, 저마다 상처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키리시마'와 어떤 연관이 돼 있고 그 키리시마가 사라지는 순간 이들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 혼돈 속에 영화광 마에다(카미키 류노스케)도 함께하고 있다. 


이 영화가 당혹스러운 이유는 말 그대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저마다 갈등을 겪고 있고 상처를 받고 있다. 물론 그 원인에는 키리시마가 있지만 그 키리시마조차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모두가 물고 물리는 괴로운 청춘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 괴로운 청춘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채 영화는 끝을 맺는다. 결국 영화는 그들 삶의 한 부분이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들의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이다. 마에다가 만든 '학생회오브더데드'가 이전에 그가 본 어떤 영화와 연결되는 것처럼. 




마에다는 결국 자신은 영화감독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가 영화를 찍는 것은 청춘을 후회없이 사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나리오도 무시하고 좀비영화를 밀어붙인다. 좀비영화는 호러영화 중에서도 취향을 타는 장르다. 물론 지금이야 인기를 얻어 '월드워Z'같은 메이저 좀비영화도 등장하지만 애시당초 좀비는 가장 가난한 공포영화였다.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도 직업인들이 주말마다 모여서 찍은 영화가 아니던가. 


그런 좀비영화와 청춘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가장 사적인 추억을 만드는 일이다. 나 역시 생애 첫 시네마떼끄를 경험하게 한 영화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었다. 미국 직수입 비디오테입이라 한글자막도 없었지만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좀비를 보는 경험은 몹시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마에다 역시 츠카모토 신야의 역작 '테츠오'를 관람하며 조지 로메로를 존경한다. 가장 사적이고 영광스러운 추억을 지닌 고등학생이다. 청춘의 한자락을 뚝심있는 좀비영화와 함께 한 그는 후회없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마에다에게는 두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소노 시온 감독의 '지옥이 뭐가 나빠'에 등장하는 히라타(하세가와 히로키)다. 




사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를 보자마자 떠오른 영화가 소노 시온의 '지옥이 뭐가 나빠'다. 이 영화 역시 지독한 영화매니아 히라타가 등장하며 히라타는 소노 시온의 페르소나와 같다. 야쿠자가 전쟁을 벌이고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지옥같은 현장에서 히라타는 몇번을 고쳐 죽어도 영화를 찍는다. 


사실 영화가 워낙 판타지다 보니 이것을 다 걷어내고 바라보면 히라타의 지독한 뚝심만이 보인다. 그것은 다시 말해 영화를 만든 소노 시온의 열정이다. 촬영현장은 전쟁같고 제작자 눈치 봐야되고 배우는 말도 안 듣고 스태프는 열정도 없는 거 같고 정부는 태클걸고 몸은 지치고 힘들어도 영화를 완성해내는 열정(실제로 소노 시온은 엄청난 다작을 한다). 


나는 마에다가 어른이 되면 히라타가 됐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소노 시온이 됐으면 좋겠다. 물론 마에다의 말처럼 영화감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에다의 일상에 내 과거가 투영이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마에다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관객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령 그것이 마에다가 아니라 열정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히로키(히가시데 마사히로), 사랑에 아파하는 아야(오고 스즈카), 1인자가 되지 못해 좌절하는 코이즈미(타이가)라 할 지라도. 상처를 안은채 주어진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들을 응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에다가 후회없는 청춘,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지옥같은 영화를 찍어내고 "뻑 보머스!"라고 외칠 수 있는 열정 가득한 청년이 됐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벌써 30대 중반이다. 야간자습 땡땡이치고 영화 찍어대던 그 시절이 벌써 18년 전이다. 앞서 말한대로 그때 나는 정말 마에다같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히라타처럼 살고 있을까? 아니, 마에다처럼 그 시절이 정말 후회없는 청춘이긴 했을까? 나는 후회없이 영화 찍은 거 같은데... 


친구들과 정신없이 비에 젖은 빵을 먹으며 영화를 찍었던 1998년의 어느 아파트 옥상. 그때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눈 걸로 기억한다.



"야... 씨발 존나 춥다"

"빵 더 쳐먹어, 새꺄"

"영화 찍는 것도 이만큼 힘들겠지?"

"야, 씨바. 몇 배는 더 힘들지"

"그래도 우리가 어디 가서 '비에 젖은 빵'을 먹어보겠냐"

"이러니깐 우리 존나 대단한 거 찍는 거 같다"

"대단한거지, 씨바! 우리 영화 존나 재밌거든!"

"그건 아닌 거 같고"

"에이 씨발롬아, 빨리 찍고 우리집 가서 라면먹자"

"또 묵나, 돼지새끼야!"

"라면 뭐 있는데?"

"너구리!"

"에이! 짜파게티 없나, 개새끼야"

"묵지마 씨발롬아!"



좀비와의 추억은 내 학창시절의 중요한 양분이다.


여담1) 본문 마지막에 대화는 약간 각색은 했지만 실제로 비슷한 대화는 주고 받았다. 


여담2) 그때 찍은 영화는 정말 어디갔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세상에 없을수도 있다. 


여담3) 이 글은 "영화찍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잘 살자!"고 하는 소리다. 요즘 사는게 힘들다. 다들 뭐 마찬가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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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헐리우드에서 블럭버스터 연출을 맡길때 어떤 기준으로 맡기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지금 성공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감독들은 대부분 과거에 재기발랄한 작품을 만든 바 있다. 한가지 확실한 건 헐리우드는 과거에 뭘 했건 재능을 중심으로 인재를 등용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작품이 흥행을 했건 뭐건, 재능있는 작품을 만든 감독이라면 누구든 등용한다. 


여기 두 명의 영화감독이 있다. 아마 이들은 지금 헐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감독일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J.J 에이브람스 등으로 이어지던 신 작가세력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세력들이다. 굳이 이들을 분류하자면 영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상또라이' 정도 될 것이다. 이들의 이름은 매튜 본과 제임스 건이다. 


매튜 본은 최근 개봉한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에서 극에 달한 똘끼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다. 제임스 건은 지난해 최고의 블럭버스터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연출하며 헐리우드 주류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착륙했다. 두 사람은 마치 선동렬과 최동원처럼 반대편에 위치해 있지만 공통점도 상당히 많은 감독이다. 



우선 두 사람의 출신은 영국과 미국으로 각자 다르다. 프로듀서 출신의 매튜 본은 영국의 재기발랄한 영화감독 가이 리치와 함께 영화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락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와 '스내치'의 제작자로 참여하며 가이 리치와 함께 한 그는 이후 '그들만의 월드컵'과 '스웹트 어웨이'도 제작하게 된다. 


'레이어 케이크'와 '스타더스트'를 연출한 매튜 본은 2010년 '킥애스:영웅의 탄생'으로 미국 영화시장에 입성한다. '킥애스'의 성공으로 헐리우드에 연착륙한 그는 헐리우드 최고의 프로젝트인 '엑스맨'의 리부트를 연출하며 존재감을 입증한다. 그리고 '킥애스2:겁없는 녀석들'과 '엑스맨:데이즈오브퓨쳐패스트'의 제작을 거쳐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로 연출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매튜 본의 필모그라피에서 흥미로운 점은 제작자의 직함을 절대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튜 본은 자신이 연출한 모든 작품과 자신이 참여한 프로젝트의 속편에 모두 제작자로 참여했다. 그리고 '언피니시드'같은 영화에서도 제작자로 참여한다. 


제작자로 참여한다는 것은 자기 영화를 통제할 여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헐리우드같은 정교한 시스템에서 검증된 영화감독이 아니면 자기 역량을 마음껏 살리기 어렵다. 아마 매튜 본은 제작을 겸하며 영화의 더 많은 부분에 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가이 리치같은 엉뚱한 연출자와 파트너였다면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터, 지금까지 그가 미국에서 보여준 많은 영화들의 똘끼 역시 마음껏 펼쳐낸 그의 역량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매튜 본과 1살 차이인 제임스 건은 미국 출신이다. 호러팬들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트로마 스튜디오의 핵심멤버였던 그는 '트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했고 '톡식어벤져4'와 '톡시묵시록' 등에서 배우로도 활약했다. '스쿠비 두' 시리즈와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 각본에도 참여했다. 


2006년 연출한 '슬리더'는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지독한 악취미를 여과없이 보여줬다. 4년이 지난 2010년, 절치부심하고 돌아와 연출한 '슈퍼'는 이야기꾼으로서 제임스 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물론 '슬리더' 역시 엄청난 이야기였다). 2013년 '무비43'에 참여한 후 영화는 실패했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연출자로 낙점된다. 




매튜 본이 제작에 끈을 놓지 않았다면 제임스 건은 각본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연출한 모든 작품의 이야기를 직접 써왔다. 물론 매튜 본도 자신의 연출작 다수에 각본으로 참여했지만 둘은 출신부터 다른 것이다. 각본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야기에 개성을 녹여낼 수 있다는 장점이다. 그리고 그 개성에 자신감이 있다면 충분히 제작자도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물로 나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되새겨 보자면 제작자는 그의 시나리오에 충분히 만족했으리라 추정된다.


매튜 본이 '영국 또라이'라면 제임스 건은 '미국 또라이'다. 애시당초 세계적인 똘끼 프로덕션인 트로마에서 시작한 제임스 건은 시종일관 그 똘끼를 유지하며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쌓아갔다. 사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전까지 그의 필모는 지독하게 마이너였다. 그야말로 '트로마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마블의 핵심 프로젝트를 맡게 됐을까?




사실 이 질문은 매튜 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물음에 대한 편의를 위해 두가지 텍스트를 꺼내보자. 제임스 건의 헐리우드 입성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매튜 본의 입성작 '킥애스: 영웅의 탄생'. 두 작품은 모두 코믹북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코믹북이라는게 대부분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두 작품은 그 중에서도 상당한 고퀄리티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헐리우드의 기성 감독들 중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소화해 낼 감독은 많다. 하지만 제임스 건과 매튜 본은 그 기성 감독들에게 없는게 하나있다. 바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개성이다. 전문가들은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영화적 스타일이라고 부르기에는 훨씬 싼티가 난다. 애시당초 그들은 영화적 품격따위는 관심없이 오직 자신만의 재미만 추구한 인물들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소화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조건은 없을 것이다. 


이들이 히어로물 중에서도 하필 그 두 영화를 맡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10살도 안된 소녀가 다 큰 어른을 둘로 가르고 너구리고 총 쏘는 별세계는 평범한 멘탈로는 구현할 수 없는 세계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연출자가 필요했을 것이고 헐리우드는 제임스 건과 매튜 본을 찾아냈다. 그 결과 우리는 놀란과 에이브람스가 보여주지 못한 미칠듯한 발랄함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생각해보니 매튜 본의 '킥애스:영웅의 탄생'과 제임스 건의 '슈퍼'는 닮은 구석이 많은 영화다.


이제 시작하는 제임스 건과 달리 매튜 본은 이미 헐리우드의 주류 시스템에 자리 잡았다. 물론 제임스 건이 만들게 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도 기대되지만 나는 그가 마블과 계약이 끝나고 찍어낼 영화가 기다려진다. 호러를 찍건 SF를 찍건 누구보다 강력한 미친 짓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는 오지랖 넓은 생각, 흔히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창의적 인재' 등용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제임스 건이나 매튜 본 같은 괴팍한 천재들이 입사지원한다면 그들은 인재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 이전에, 우리에게도 이런 미친 상또라이 영화감독을 알현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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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더리 2015.03.01 22:58 address edit/delete reply

    둘다 최고!!!!

  2. BlogIcon 이름없는소년 2015.05.01 02:30 address edit/delete reply

    마지막 글귀가 여운이 남는군요....
    최소 우리 나라는 앞으로 20년 후에나 괴짜들의 창의성을 인정해줄겁니다.

  3. no named 2015.07.03 20:16 address edit/delete reply

    극에 달한 상 또라이 공감하오

  4. BlogIcon 니아 2016.02.14 19:27 address edit/delete reply

    글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ㅋㅋㅋ우리나라도 또라이 양성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텐데요. 혹시 글을 트위터에 링크로 올려도 괜찮을까요?

    • BlogIcon DAISHI ROMANCE 2016.02.15 09:35 신고 address edit/delete

      감사합니다 ㅋ

      본문 퍼가시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어요.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썩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나는 어릴때 소심하고 말수가 적고 조용한 아이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내놈들은 전부 운동장 나가서 축구하고 다망구하고 기타 등등 하고 놀았지만 나는 교실에서 그림책이나 읽었다. 동네 친구들과 서바이벌게임이라도 한다 치면 나는 그야말로 구멍이었다. 그만큼 움직이는데 젬병이었다. 그러니깐 결론적으로 나는 어릴때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어릴때는 친구들과 노는 시간보다 영화를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 시작은 대략 7살때쯤, 부산 왕자극장에서 '우뢰매'를 처음 보고나서 였다. 물론 그때는 영화가 뭔지도 몰라서 "우뢰매같은 로보트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10살때 아버지께서 사오신 비디오(TV와 일체형)로 '슈퍼홍길동'을 봤다. 영화라는 것에 가까워진건 딱 그때부터였다. 아버지께서 동네 비디오가게 가서 영화를 빌려오셨다. 그런데 그걸 아버지 안 계실 때 형과 함께 보게 됐다. 


그 영화는 '비룡맹장'이었다. 성룡과 홍금보, 원표 3명이 나오는 영화였다. 성룡이 나오는 영화다 보니 애들 보기 되게 불편한 영화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때를 계기로 용돈 차곡차곡 모아서 비디오가게로 가서는 성룡영화를 빌려보기 시작했다. 그 중 특히 내 마음을 울린 건 '폴리스 스토리' 1편과 '복성고조'였다. 그때부터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꿨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95년은 영화탄생 100주년인 해였다. 그때는 많은 영화평론가들이 '영화탄생 100주년, 세계영화 100선' 같은 주제의 책들을 출간했었다. 물론 나도 그런 책을 하나 구입했었다. 그때 구입한 책들에서 '시민케인'이나 '전함 포템킨', '대부'같은 영화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 전에 '스크린'이나 '로드쇼'같은 잡지에서 막연하게 접했지만 그 영화들에 궁금증을 유발한 건 딱 그때였다. 


그리고 그 해에는 영화잡지 '키노'가 창간됐다. '스크린', '로드쇼' 등의 잡지만 보던 내게는 신세계와 같은 잡지였다. '키노'의 필진들을 동경하던 나는 그들의 글쓰기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어디가서 말하지만 내 영화리뷰의 스승은 키노와 박찬욱의 영화평론책이었다. 그들의 리뷰를 읽고 이해도 못하면서 그걸 또 따라서 썼다. 


내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국어선생님이셨다. 원래 중학생이 되면 일기를 안 쓰는게 일반적인 학창시절이지만 그 분은 노트에다가 일기를 쓰게했다. 별로 쓸게 없던 나는 매일 집에 가서 빌려본 비디오의 감상문을 써서 제출했다. 담임은 그게 기특해보였는지 글쓰기에 대해 빡세게 가르쳐주셨다. 결국 1년 내내 일기에 영화감상문만 써댔다. 그 결과 졸업할 때 만드는 '졸업문집'에 내 영화감상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때 '중경삼림' 감상문을 썼었다. 물론 '키노'에서 언급한 '중경삼림'의 주제와 거의 일치했다. 졸업하던 날 담임선생님은 진지하게 나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건 기특한 일인데 너무 영화만 생각하지 마라". 그땐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18년을 출석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본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1996년에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씨네21'이 창간했고,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주간영화잡지를 처음 본 나는 엄마를 조르고 졸라서 창간호부터 2년간 정기구독했다. 내 방 한 쪽 귀퉁이에는 스크린, 로드쇼, 키노, 씨네21. 그리고 그 모든 잡지들의 별책부록(브로마이드)이 쌓여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 중 99%가 사라지고 없다. 사실 씨네21이 뭐 글쓰기의 식견을 넓혀주고 그런 건 없었다. 하지만 영화정보를 더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더 빠르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건 애정이 깊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데는 씨네21의 공이 매우 컸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부산 대신동에 있었다. 남포동과 버스로 10분 남짓한 거리였다. 그런 남포동에서 영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영화에 환장한 나는 야간자율학습이고 뭐고 째고 홀로 남포동으로 향했다. 남포동은 친구들과도 자주 놀러 가던 곳이라 친숙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본 영화는 마를린 고리스 감독의 '안토니아스 라인'이었다. 원래 '물속의 8월'이라는 일본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웬만한게 모두 매진이라 남은게 없어서 그걸 봤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당시 교복을 입고 있었던 거 같다. 그래도 덩치가 크고 얼굴이 노안이라 무리없이 들어간 거 같다. 그리고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봤다. 물론 예매를 제대로 하지 않은 덕에 원하는 영화는 죄다 못 챙겨봤지만 그래도 꽤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고교 3년동안 부산국제영화제 가는 길은 꽤 버라이어티했다. 학교를 지각하며 부산은행 가서 티켓을 예매하고, 야간자습 도망가서 영화보고 다음날 담임에게 죽도록 맞고 그 날 또 도망가고. 수능이 1달 남짓 남아도 영화보러 남포동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공부를 안 했나 후회도 되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너무 즐거운 추억이었다. 1997년에는 '해피투게더'로 내한한 양조위가 남포동에 나타나 피프광장이 마비되기도 했지만 그 현장에서 사람에 치이면서도 재밌었던 것 같다. 




1997년에는 영화 배급업을 하시는 아버지 친구분을 만나게 됐다. 부산 왕자극장과 아카데미극장에 영화를 배급하는 분이셨다. 그 아저씨는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금홍아 금홍아'나 '초록물고기'같은 영화의 시나리오를 줬다. 아저씨에게 찾아가면 시나리오와 함께 영화이야기도 많이 들려줬다. 평론가들에게서 접하는 이야기와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그래서 아저씨 사무실에 자주 놀러 갔었다. 부산이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배우들이 싸인회(그때는 무대인사 개념이 아니었다)라도 하러 내려오면 아저씨가 날 불러서 배우, 감독들과 인사시켜줬다. 그때 한석규, 문성근과 인사한 기억이 난다. 지금은 안 그러지만 그때는 연예인 보는 생각에 엄청 두근거렸었다. 


그해에 아버지께서 8mm 캠코더를 사주셨다. 영화 좋아하고 만들고 싶어하는 아들보고 영화 찍어보라고 사주신거였다. 내가 기억하기에도 큐브릭이나 타르코프스키같은 거장들은 어릴때부터 카메라로 뭘 찍어댄 것 같다. 그런데 난 거장이 될 재목은 아닌 것 같다. 나한테 그건 '가장 비싼 장난감'에 불과했다. 물론 고3인 1998년과 재수생인 99년에는 그걸로 영화를 찍었다. 그 영화들은 부산 씨네마떼끄 1/24(떼끄)에서 개최한 '언더그라운드 캠코더 영화제'에 출품했다. 1999년에는 그걸로 상도 받았다. 




씨네마떼끄와의 인연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부산에 씨네마떼끄라는 곳이 있고 거기서 영화상영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떼끄는 부산 남천동 KBS방송국 인근에 있었다. 학교가 있는 하단동에서는 버스로 40분 내외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그 거리를 달려서 뭔지도 모를 영화를 보러갔다. 그때 본 영화가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었다. 당시 전국의 모든 씨네마떼끄들이 그렇지만 몹시 열악한 곳이었다. 비디오도 누가 외국 나갔을때 구입했는지 어쨌는지 미국 버전이었다. 그러니깐 한글자막이 없다는 소리다. 생각해보면 그 영화가 그렇게 자막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자막이 없어도 영화가 깊게 박힐 정도로 강렬했다. 극장과는 다른 그 소소한 영화보기 공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 후 1998년에 떼끄에서 캠코더 영화제를 열었다. 1년에 두 번 열리는 이 영화제는 문화학교 서울(아마도?)에서 당시 10만원 영화제를 열어 성공을 거두자 그걸 벤치마킹한 영화제다. '캠코더를 가진' 나를 중심으로 친구들이 모여 영화를 찍어 출품했다. 제목이 '미완성'이라는 작품이었는데 한 소년의 미완성된 사랑과 인생을 주제로 다뤘지만 사실 영화를 덜 만들어서 '미완성'이라고 했다. 운 좋게도 동네 전파상에서 비디오 편집을 해줘서 거기서 편집과 후반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어디가서 "우리나라 청소년 영화의 1세대가 바로 나다"라며 자랑질을 하고 다닌다. 


캠코더 영화제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내 영화를 만들어 출품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또래 친구들이나 형, 누나들과 어울릴 수 있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다. 1998년에는 고등학생이라 술자리에 함께할 수 없지만(함께해도 괜찮았는데) 1999년에는 동료 영화인(?)들과 제대로 어울렸다. 


1999년에는 4월에 캠코더 영화제가 열렸다. 그리고 나는 3월에 첫 여자친구에게 차였다. 뭘 영화로 만들까 고민하던 차에 나는 내가 여친에게 차인 걸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내용은 뭐 없고 그냥 여친에게 차인 내가 여친이랑 좋았던 장소들을 찾아가며 추억하는 내용이다. 그래봤자 뭐 별거 없고 내가 카메라 들고 여친이랑 자주 데이트하던 장소(송정, 광안리, 동아대학교 하단캠퍼스)를 가서 혼자 주절주절 떠드는 내용이었다. 그땐 나름 신선한 영화였다. 그걸로 상 받았다. 개근상 말고는 난생 처음 받아본 상이었다. 상금도 15만원이었는데 그건 술값으로 다 썼다. 




나는 고3때와 재수생 여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입시를 쳤다. 물론 둘 다 시원하게 낙방했다. 부산 촌놈이 서울 신이문까지 가서 시험을 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1999년 캠코더 영화제가 끝나고 부산 씨네마떼끄에서 일하게 됐다. 고2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형과 둘이 살다가 1999년에 형이 군대가고 사실상 혼자 살았다. 공부에 흥미없던 나는 부산대학교 앞에 있는 떼끄에 나가서 무보수로 자원봉사했다. 물론 숙식은 제공해줬다. 말이 일하는거지 그냥 영화보고 노는 공간이었다. 


1999년에는 여기서 운영하는 한예종 입시 스터디 모임에 들어갔다. 이 모임의 장은 30대 후반의 교회 전도사 형님이었다. 이 형님은 교회 전도사지만 당시 생각에 그리 신앙심은 깊은 분은 아닌 것 같았다. 불교사상과 포르노그라피를 공부하고 신성모독 영화에도 거침없이 논할 수 있는 형님이었다. 철학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이 형님 덕에 철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엄밀히 따지면 철학 자체에 흥미를 가진 것보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예종 입시를 준비하기 위한 이 모임은 나에게 영화를 깊이 있게 보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거기에는 철학이 반드시 필요했다. 


앞서 말한대로 나는 모든 한예종 입시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한동안 신이문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을 정도로 짜증이 샘솟았다. 하지만 이때 경험은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철학을 배워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재수 후 철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결과적으로 철학과를 들어간 건 지금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와 삶에 대해 사유하는 특별한 방법을 익히게 된 시간이었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때까지만 해도 언젠가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학교 다닐때도 과후배들 데리고 영화를 만들어 축제때 상영하기도 했다. 나름 인문대 학장의 투자를 받을 정도로 학교 내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교내 학보사와 단독인터뷰까지 해 신문 한쪽면을 다 채우기도 했다. 물론 그 신문은 후배들이 과방에서 삼겹살 구워먹을때 바닥에 깔더라. 영화를 만들 수 있을거라는 내 기대는 졸업과 함께 부서진 것 같다. 삶은 여전히 척박하고 나는 한 치 앞을 고민하기 바쁘다. 


영화가 점점 나에게서 멀어짐을 느낀다. 잡고 싶은 꿈이지만 살면서 점점 더 막연해진다. 이해는 한다. 다 내 잘못이고 내가 노력하지 않은 탓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꿈이었던 영화가 멀어지니 친구였던 영화가 그리워진다. 처음에 영화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친구끼리 뭐 부담이 생기거나 목적이 있으면 안되는거 였다. 뭐든지 내려놓고 허물없이 지내는게 친구 아니던가. 처음에 내게 영화는 그랬다. 목적없는 친구. 이제 다시 영화에게 손을 내밀어보고 싶다. 우리 친구가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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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감독 박찬욱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박찬욱은 영화감독보다 영화평론가로서 처음 만났다. 서강대 철학과 출신의 영화광 박찬욱은 '비디오무비'와 '스크린' 등 영화잡지에 실었던 리뷰를 모아서 영화평론서적을 냈다.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이하 '비디오드롬')이라는 비범한 책은 그 제목에 걸맞게 소개하는 영화들도 비범하기 그지없다. 훗날 '확장판' 격인 '박찬욱의 오마주'도 출간됐지만 잘생기지도 않은 감독님 얼굴 전면에 때려박은 '확장판'보다 비범하고 사악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오리지널판이 더 좋다. 


이 책을 처음 접한 1995년에 나는 중학교 3학년, 한참 영화 좋아할 나이였다. 그리고 그 해는 '영화탄생 100주년'이라는 비범한 해였다. 1995년에는 많은 영화평론서적이 출간됐다. 평론가들은 대부분 '영화탄생 100주년, 세계영화 100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같이 '시민케인'이나 '전함 포템킨', '대부', '7인의 사무라이'같은 영화들만 이야기했다.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시민케인'은 "반드시 봐야 할 영화" 정도였다(물론 당시 비디오가게 사정상 구해 볼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박찬욱의 '비디오드롬'은 과연 괴기한 기운을 풍겼다. '분노의 주먹'이나 '밀러스 크로싱'같은 숨은 걸작들도 있었지만 '글로리아', '배트맨', '소오강호', '다크맨'처럼 매니악한 영화들부터 '84찰리모픽', '가르시아'처럼 말 그대로 시체실의 오래된 시체같은 영화들을 다시 꺼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대단한 업적은 '영웅본색3'같이 총기에 얻어맞고 초토화된 영화의 시신조각을 재조립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좋아했을 영화겠지만 나에겐 '영웅본색3'에 대한 인상을 바꿔 준 사람은 바로 박찬욱이다. 


'비디오드롬'은 그의 출신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를 기호화해서 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죽은 영화를 해체하듯' 영화를 평론한다. 특히 샘 페킨파 감독의 '어둠의 표적'은 박찬욱식 리뷰의 백미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은 '발견'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백투더퓨쳐'를 리뷰하더라도 가장 포지션이 애매한 2편을 리뷰한다. 그는 '백투더퓨쳐2'가 이 시리즈 중 얼마나 수작인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조지 로메로의 '시체 3부작' 중에서도 불세출의 걸작이자 조지 로메로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도 아니고 미국 자본주의의 허상을 통렬하게 풍자한 '시체들의 새벽'도 아닌 '죽음의 날'을 이야기한다. 물론 '시체 3부작'이야 버릴 것 없는 걸작 시리즈지만 사실 시리즈 중 가장 대중적이고 가벼운게 '죽음의 날'이다. 박찬욱 또 그걸 살려낸다. 



1994년 초판의 서문에서 박찬욱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영화관이 선남선녀의 연회장이라면 비디오 숍은 공동묘지. 이 책은 그들에 대한 검시 보고서이다. 연인의 시신을 해부하는 의사의 심정! 칼을 대렸더니 주검들은 좀비로 되살아났다. 나는 도리어 팔뚝을 깨물렸다". 아마도 박찬욱은 우리가 아는 영화감독들 중 가장 지독한 오타쿠이자 성공한 영화광이다. 서양의 오타쿠 길레르모 델 토로를 부러워하진 말자. 우리도 그 못지 않은 오타쿠 하나 모시고 있다. 


추신) 중학생 때 구매한 1994년 초판은 공교롭게도 이사가다가 분실했다. '씨네21' 창간호와 함께 ㅋㅋㅋㅋ. 그래도 지금 2005년판 '박찬욱의 오마주'는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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