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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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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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20.01.16
    '남산의 부장들' 간단 리뷰 (2)
  2. 2019.12.23
    '백두산' 초간단 리뷰 (1)
  3. 2019.01.31
    [약간 스포] '극한직업' 초간단 리뷰
  4. 2018.04.06
    '바람바람바람' 초간단 리뷰
  5. 2018.01.24
    '그것만이 내 세상' 초간단 리뷰 (1)
  6. 2017.10.03
    '남한산성' - 정치의 길
  7. 2015.11.04
    '내부자들' -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
  8. 2015.04.29
    '차이나타운' -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2)
  9. 2015.03.26
    이병헌&박훈정, '말빨' 좋은 영화감독들
  10. 2015.03.12
    '스물' 초간단 리뷰 (2)

1. 내가 어릴적에는 트렌디 드라마가 유행했었다. 장동건이나 김희선 같은 배우들이 나와서 연애를 하거나 대충 여자주인공이 신데렐라처럼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그런 드라마들 와중에 나는 유독 역사드라마를 좋아했다. '용의 눈물'이나 '태조 왕건'같은 대하사극은 부담스럽더라도 '제5공화국'이나 '코리아 게이트' 같은 드라마는 정말 재밌게 봤다. 당연히 '모래시계'같은 드라마도 좋아했고 '아스팔트 사나이', '올인' 같은 드라마도 좋아했다. 말랑말랑한 로코 드라마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그런 건 유독 보지 않았다.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드라마의 매력은 감정을 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기 바쁘고 그것만으로도 이야기가 풍성하게 꾸려질 정도로 긴장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인물에 대해 어떠한 감정의 시선도 보내지 않기 때문에 실존인물이기도 했던 드라마 속 등장인물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2. '남산의 부장들'은 잊고 지냈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재의 이야기다. 2004년 만들어진 영화 '그 때 그사람들'도 좋아하는 영화인데 당연히 '남산의 부장들'도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좋은 배우들이 수두룩하게 나오고 과감한 해외로케로 이야기의 디테일과 몰입감을 더했다. 첩보장르영화로써 이 영화의 완성도는 굉장했다. 다만 그 와중에는 나는 이 이야기에서 위험한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소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벌써 40년전 얘기이며 사실상 '끈 떨어진 구시대의 독재자' 이야기가 더 이상 위험한 소재일리는 없다. 나는 이 이야기가 가진 정치적 태도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비록 이야기가 오래된 소재이긴 하지만 이와 같은 시선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3. 이 영화에는 이병헌과 곽도원, 이희준, 이성민 등 엄청난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맡은 역할 역시 역사 속에서 굉장한 무게감을 자랑했던 실존인물들이다. 영화는 이 인물들 가운데 김규평(이병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는 현직 중앙정보부장으로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전직 중정부장 박용각(곽도원)은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인물이며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은 사건에 불을 지피는 인물이다. 그리고 박통(이성민)은 사건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만약 이 이야기에 정치적 태도가 들어가야 한다면 그것에 박통에 대한 태도와 같다. 그 시대는 엄연히 '박통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우민호 감독은 이야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시대상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인물들에게 집중해 갱스터영화나 첩보스릴러 영화의 구조를 만들어버린다. 나는 이 태도가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4. 이야기는 박통에 대한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그를 '독재자'가 아닌 '장기집권을 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5.16에 대해서도 감독의 의견을 배제하고 인물들의 말을 빌어 '혁명'이었다고 표현한다(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감독의 의견이 아니다). '독재자'는 '절대악'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장기집권을 한 사람'이라면 그 고충에 접근하기 쉽다. '남산의 부장들'에 등장한 박통은 18년간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 지치고 히스테릭한 상태다. 미국은 끊임없이 자신을 주시하고 한때 데리고 있었던 박부장은 자신을 잡기 위해 해외에서 수를 쓰고 있다. 박통은 외롭고 지쳐있으며 자리를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과 그래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혼재한다. 

5. 박통의 이같은 심리가 보여지면서 나는 아주 잠깐이나마 영화 속 박통을 동정했다. 그러다 단 몇 초만에 정신을 차리고 "아니지, 내가 왜 박통을 동정해?"라며 냉정을 유지했다(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자). 이것은 재벌 걱정하는 방구석 오타쿠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는 20년 가까이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나는 그 권력의 근처에도 못 가본 사람이다. 냉정을 찾고 난 뒤 나는 근원적인 물음을 갖게 됐다. "박통에 대한 '정치적 중립'이 가능할까?". 박통이 집권하던 시대에서 벌써 40년이 흘렀다. 그의 행적과 시대에 대해 쉬쉬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역사적 평가를 할 수 있는 시대다. 그 평가는 정치적 이념을 바탕으로 두 진영으로 갈라져 이뤄진다. 그렇게 지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즉 한쪽 진영의 평가와 반대편 진영의 평가가 누적되면서 박통은 마치 동전처럼 양면만 존재하는 인물이 됐다. 그러고 나서 '남산의 부장들'이 하려는 시도는 동전을 세로로 세우는 일과 같다는 걸 알게 됐다. 

6.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전을 세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동전을 세우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쓰러지게 된다. 그때 어느쪽 면이 위로 올라올 지는 알 수 없다. 박통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굉장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문득 광화문에서 태극기 흔들던 어르신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봤다. 아마도 "각하께서 저렇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셨다니"라며 펑펑 울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만약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면 정치적 반대편의 반응도 예상이 가능하다. "이 영화는 박통을 미화하는 영화다"라며 분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로 인해 뜨거운 불판위의 오징어처럼 한바탕 논쟁의 장이 펼쳐질 수 있다(영화를 흥행시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7. 나는 '남산의 부장들'이 박통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상업영화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의 결과물처럼 내놓을 것이라면 아예 박통이라는 인물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현재의 결과물에서는 박통이 엄연한 '등장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가 등장인물이 아닌 부장들 사이의 대상이나 도구가 됐다면 영화는 더 안전한 길을 갈 수 있다.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과 비교해보자. 이 영화는 박통뿐 아니라 사건 전체에 대해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허허실실대며 비아냥대듯 사건을 바라보는 이 태도는 실제 사건과 관객 사이에 거리감을 준다. 이 거리감으로 인해 관객은 오히려 사건과 인물, 정치적 상황에 대해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 때 그 사람들'에서는 모두가 우습고 유치했다. 

8. '남산의 부장들'은 브로맨스 영화같은 구석이 있다. '천문'과 같은 훈훈한 브로맨스였다면 좋겠지만 이것은 박통과 김부장, 곽실장으로 이어지는 삼각 로맨스다. 김부장이 비오는 날 궁정동 안가에서 박통의 전화를 엿듣는 장면, 여기서 김부장의 표정은 참 멜랑꼴리하다. 마치 "그가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아. 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고 나를 버리려 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배신감을 눈으로 표현하며 애절한 장면을 연출한다. 박통 역시 "나는 외롭고 지쳤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해. 나는 김부장이 좋은데, 김부장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거야. 곽실장은 좀 멍청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잘 헤아려줘"라는 분위기다. '남산의 부장들'과 '천문'을 같은 야오이 장르로 본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좀 더 어른스럽다. 

9. 나는 지금의 20대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 지 정말 궁금하다. 10.26과 5.16, 12.12 등 역사적 사건에 대해 기성세대들보다 더 거리감이 있을 세대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박통과 그 때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꼰대' 마인드인지 모르겠다. 그저 바램이라면 '천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브로맨스가 가미된 첩보스릴러 영화로 보고 휘발시키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영화가 묘사한 박통에 대한 감정적 접근은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위험해 보인다. 그에게 공감하는 대신 그가 한 일들을 찾아보는 정도로 역사공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역사공부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픽션은 그저 매개체일 뿐이다. 

10. 결론: "'남산의 부장들'이 흥행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 썩 긍정적이진 않다. 긴장감 넘치는 첩보스릴러긴 하지만 무겁고 진지하다. 게다가 약간 난해하기도 하다. 가상의 사건을 다룬 첩보스릴러와 실제 사건을 다룬 동 장르영화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실제 사건이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이야기라면 관객들도 당연히 무게감을 가지고 극장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마케팅팀도 난감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SNS 마케팅처럼 유머러스한 마케팅을 펼치기에도 부담스럽다. 결국 이 영화가 잘되는 방법은 '입소문' 밖에 없다. ...그래서 말하자면, 영화는 재미있다. 촘촘하고 긴장감 넘친다. 김부장을 쫓아서 이야기만 즐긴다면 이 영화를 안전하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추신) 이성민 배우와 서현우 배우의 고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캐릭터의 무게감도 당연하지만 이성민은 다이어트에 귀 분장도 붙인 듯 하다. 게다가 서현우는 M자 탈모분장까지 했다....분장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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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자스민차향기조아 2020.01.19 12:0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번 주에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김재규 관련 책도 읽었고 말이죠.. 박통이 미화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라면... 음... 고민되네요..

  2. silentfilms 2020.01.25 19:16 address edit/delete reply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박정희란 인물에 대한 감독의 일정정도의 판단이 부재하는 영화. 박정희를 객관적으로 다룬다는 자체가 이미 불가능,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는 전제를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재미조차 없었거든요... 그래서 막 화가 나있던 찰나에, 도대체 이 영화 뭐가 문제지? 하던 중에 글 잘 읽고갑니다




1. 몇 년 전 한국영화 '7광구'를 볼 때 느꼈던 불편함들이 있었다. 일단 괴상한 CG부터 불편했겠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점은 배우들의 감정이 과잉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클라이막스에서 차해준(하지원)과 괴물이 싸울 때 해준이 지나칠 정도로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거의 모든 장면에 "으아아아아" 거리면서 뭔가를 한다. 그때 관객인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인물이 괴물과 싸우고 있다"라는 생각보다 "이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보며 연기하는 일은 천하의 대배우 안성기조차 어려워 한 일이다. 그런 작업에 익숙해진 헐리우드 배우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하더라도 우리 배우들에게 그건 여전히 낯선 일이다. 이 글이 이렇게 시작했다고 "'백두산'은 '7광구'급이다"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백두산'은 '7광구'에 비하면 당연히 훌륭한 영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연기하는 것도 많이 늘었다. 다만 이 영화가 가진 '불편했던 지점'은 '7광구'를 보고 느꼈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한다. 이 불편한 점들을 개선하는 것은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2. 다행스럽게도 '백두산'은 배우의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진 않는다. 워낙 잘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만큼 8년전 하지원이 하던 "으아아아아" 같은 것은 답습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같은 "으아아아아"를 하더라도 꽤 멋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클라이막스에서 등장하는 현악기 길게 늘어뜨린 음악은 "이러다 '아리랑' 연주하는 거 아냐?"라는 긴장감을 준다. 들을 때 마다 '디 워'가 떠오르는 음악이었다. 배우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며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그런데 음악이 지나치게 앞서나간다. 만약 내가 '올해 최악의 영화음악'을 꼽아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백두산'을 선택할 것이다. 

3. '백두산'에서 음악보다 더 거슬리는 것이 바로 편집이다. 속도감을 더하기 위해 편집을 더 했다는 인터뷰 내용을 봤다. 대체 편집을 어떻게 했길래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지 물어보고 싶다. 예를 들어 지하에서 드립을 주고 받다가 갑자기 지진이 나고 우루루 뛰어 나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깥에서 뭔가 회의를 하나 싶더니 갑자기 지하에서 총격전을 한다. '백두산'은 꽤 많은 부분이 이런 식으로 흐름이 끊어지고 설명이 생략된다. "속도감을 더해야 한다"는 게 감독의 뜻인지 제작자의 압박인지 궁금하다. 누가 저질렀건 간에 편집을 더한 것은 '저스티스 리그' 수준의 참사를 불러왔다. 배우의 말대로 이 영화, 감독판이 절실하다. 

4, '백두산'이 가져야 할 최대 장점은 CG여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CG기업인 덱스터스튜디오가 참여한 작품인 만큼 헐리우드 수준의 퀄리티를 보여줘야 한다. 큰 그림에서는 당연히 놀라운 CG를 보여준다. 영화를 나름 큰 화면에서 보고 싶어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슈퍼플렉스G에서 봤는데 대단히 만족스러운 스펙타클을 보여줬다. 그런데 스펙타클한 CG는 그렇게 잘 그리면서 그 흔한 크로마키는 왜 그렇게 티가 나는지 궁금하다. 리준평(이병헌)이 조인창(하정우)을 데리고 중국으로 넘어가려다가 차를 세우고 소변을 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 이후 리준평은 탈출을 시도하려는 조인창을 발견하고 차 뒷문을 연다. 이때 하늘과 나무가 보이는 배경 앞에 리준평이 서있다. 이 장면은 크로마키 촬영한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적어도 날씨예보하는 기상캐스터보다는 현실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최고의 CG 스튜디오 작품인데. 

5. 올해 '나랏말싸미'를 보면서 문제점이라고 느낀 것이 "왜 개그를 끼워넣냐"는 것이었다. 확실히 극장에서 가볍게 팔아먹기 위해서는 적당히 웃겨주는 것이 좋다. 게다가 영화의 주인공인 이병헌과 하정우는 웃기는 걸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들의 재능이 출중한 탓에 웃기다가도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매끄러웠지만 웃기려고 하는 장면은 확실히 이야기와 따로 논다. 상업영화라고 굳이 웃길 필요는 없다. 재난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백두산'이 많은 클리셰를 가져다 쓴 헐리우드 재난영화에서도 섣불리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재난영화 매니아('장인'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은)' 롤런드 에머리히의 영화들도 그랬고 그냥저냥 봤던 '샌안드레아스'도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만약 웃기고 싶었다면 재난이 터지기 전에 웃기는 것이 좋다. 특히 아무리 EOD(폭발물처리반)팀이라고 해도 구보시 발도 못 맞추고 총도 제대로 못 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 록'의 스탠리 굿스피드(니콜라스 케이지)는 FBI 화학무기 전문가(=과학자)였다. 그럴싸한 EOD는 '허트로커'에 나온다. 걔들은 총 잘 쏘잖아.

6. 많은 관객들은 '백두산'이 "전형적이고 뻔하다"라고 말한다. 분명 그런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난영화에는 '한국이니깐 가능한 장면'이 분명 등장한다. 화산이 터져서 범국가적 재난이 불어닥쳤는데 총질하는 장면이 나오고 작전지휘권을 빼앗기는 장면이 나오는 건 미국영화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재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휴머니즘이나 추악한 인간성 대신 총질하는 정치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안 어울리는 상황들이 등장하는데 그게 꽤 말은 된다. 미중 갈등상황도 어느 정도 반영돼있어 더 말은 된다. 헐리우드 재난영화였다면 오직 재난하고만 싸워야 했을테지만 한국의 재난영화는 싸워야 할 상대가 너무 많다. 그건 꽤 기발했다. 기발한 걸 잘 못 살린 게 문제지만. 

7. 결론: 나는 '백두산'이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재미가 없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불가피한 사정은 '저스티스 리그'가 노잼이 된 사정과 통한다. 재미없는 영화지만 감독판이 보고 싶다. 


추신) '백두산'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마동석을 새롭게 썼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마동석은 2017년 '부라더' 이후 처음으로 사람을 때리지 않았으며 2016년 '38사기동대'의 공무원 백성일 이후 가장 지적인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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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길가다 2019.12.24 12:49 address edit/delete reply

    덱스터의 특징을 잘 짚으셧네요... 갸들 특징은 중요한데서 성의가 없다는거죠.. 자신들이 제작한 신과 함께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영화들의 덱스터 특징을 보면 디테일 해줘야 할 중요한 부분들이 너무 성의 없다는..
    아마도 제작비의 문제가 크겠지만.. 명성에 비하면 너무 조잡하다 싶은부분들이 ..

    솔까 자신들 이름을 걸고 만든 신과 함께조차 어설프게 만들은거 보면..





1. 이병헌 감독의 전작 '바람바람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저 '안 웃기고 안 야하기' 때문이다. 좀 더 막 나가지 못함이 아쉬웠다. 이 사람(이병헌)이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이거 밖에 못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이병헌'은 참 귀한 사람이다. 한국영화 바닥에서 '장르 최적화'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장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으면서도 투자자와 관객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공포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안병기 감독은 '그저 좋아하기만 해서' 잘 안됐다. 현재 그는 제작자로 전향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물론 중국에서 하고 싶은 공포영화 계속한다). 코미디영화를 좋아했던 강형철 감독은 어떤 책임감에 '스윙키즈'를 만들었으나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에 비하면 이병헌 감독은 장르에 대한 애정과 재능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경우다.

2. '극한직업'은 전작인 '바람바람바람'에서 뭐가 부족했는지 알고 만든 영화다. 장르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지론이지만 장르영화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그 목적만을 생각해야 한다. '바람바람바람'은 코미디의 외형을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디테일한 부분은 '안 웃긴'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극한직업'은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하기 위해 치킨집을 열었는데 대박이 났다'는 전제만 가져다 두고 그 안에서 웃길 수 있는 소동을 벌인다. 판을 깔아놓고 웃기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게다가 작정하고 만든 코미디 영화인 만큼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어필이 되고 있다. 

3. 이 영화가 웃기려고 작정했다 싶은 이유는 악역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청년경찰'의 경우 두 주인공(박서준, 강하늘)의 케미를 강조하기 위해 범죄는 잔혹하게 보여준다. 저 옛날 형사영화였던 '공공의 적'도 강철중(설경구)의 수사과정은 다소 웃음을 자아내지만 범죄는 흉악하다. 그런데 '극한직업'의 악당들은 대단히 흉악한 척 하는데 뭐가 흉악한지 잘 모르겠다. 그냥 동네 모자란 형들 보는 느낌이다. '극한직업'에서 가장 신선한 시도가 이 대목인 것 같다. 웃기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안하기 위해 악당까지 너프시켰다. 지금 '극한직업'의 흥행에도 그게 작용한 듯 하다. 모든 코미디영화가 참고할만한 대목이다. 이밖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나 '영웅본색', '어벤져스'를 패러디 해대는 것도 '웃기려고 작정한' 일이다. 잘했다.

4. 사실 실제 경찰이라면 마약반이라도 저렇게 모아놓을까 싶다. 막말로 강철중만 다섯명 모은 경우인데...대체 누가 머리를 쓰라는건가 싶다. 고반장(류승룡)도 경험이 많을 뿐이지 별로 똑똑해 보이진 않는다. 장형사(이하늬)도 마찬가지이며 나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일선 형사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저렇게 모을 수 있는지... 예전 경험을 떠올려 봤을때 차라리 '조폭전담팀'이라면 저렇게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쪽 팀 형사들은 모르고 세워놓으면 조폭하고 구분이 안 간다.

5. 결론: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웃겼으니 됐다"는 생각만 든다. 그리고 '장르 최적화' 감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가지 장르에 최적화 될 수 있는 것은 장르에 대한 애정과 재능이 동반돼야 한다. 이병헌 감독은 웃길 줄 아는데 재능도 있다. 앞으로 다른 시도를 하려거든 확신이 있을 때 했으면 좋겠다. '바람바람바람'은 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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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한 사람들이나 혹은 적당히 가까운 사람들과 술을 마실때면, 대단히 말을 재밌게 하는 형이 한 명씩 끼어있다. '컬투쇼'에나 어울릴법한 발랄한 에피소드를 특유의 입담으로 더 재밌게 만들어서 들려주는 형이다. 이런 형들하고 술을 마시면 그날 술자리가 참 유쾌해진다. 사실 이병헌 감독이 그렇게 술자리에서 유쾌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적어도 그의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이 사람은 술자리에서 풀어놓을 에피소드가 대단히 많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2. 이병헌 감독의 영화 '바람바람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난 가족'의 이야기다. 모두 저마다 바람이 나있고 그때문에 사건이 발생한다. '바람바람바람'은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등장인물들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개방적이다. 아마 한국의 관객이라면 "이런 캐릭터는 '사랑과 전쟁'에서도 본 적이 없다"며 공감을 하지 않을 인물들이 있다. 바로 석근(이성민)과 제니(이엘)다. 이들은 매우 유럽사람에 가까울 정도로 개방적이다. '바람바람바람'의 한국 관객들에게 이질감을 줬다면 아마 이들 둘 때문일 것이다.

3. 여기에 '바람바람바람'은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꽤 희석돼있다. 물론 '바람'이 주제다 보니 가족의 개념에 빅엿을 날려야 할테지만 결국 훈훈하게 마무리가 돼도 끝까지 가족의 결속력을 명확하게 보여주진 않는다(두 남자의 표정에서 알 수 있다). 이들에게 가족으로의 회귀는 '해피엔딩'이 아닌 '또 다른 구속'임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현대인들이 갖는 '가족'의 의미를 보여주는 결론이 아닐까 싶다. 참 좋은데 답답한 관계.

4. 그 이질감을 반영이라도 한 듯 이 영화의 배경은 제주도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제주도의 경치를 묘사하는데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 물론 제주도 자체를 배제하진 않았지만 이 이야기의 배경이 '제주도'라는 사실은 그렇게 깊게 각인되지 않는다. 그러니깐 이 이야기의 배경이 서울이었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차라리 서울이라면 이야기가 좀 더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5. 사실 이 이야기는 '섹시코미디'가 돼도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섹시코미디인데 내가 몰라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닥 안 섹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중 '섹시코미디'를 표방한 영화 '색즉시공'을 떠올려보자. 이야기의 큰 틀은 재미가 없지만 '섹시'와 '코미디'를 표현하는데는 나름 충실한 편이다. 반면 '바람바람바람'은 '섹시'가 어딘가로 숨어버린 느낌이다. 물론 이야기에 필요한 적정선만큼 섹시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 노선이 흥행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병헌 감독답게 '코미디'는 대단히 충실하다.

6. 결론: 이병헌 감독은 확실히 유쾌하다. 대단히 이질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왔지만 그의 코미디로 이 이질감을 무마시켜버린다. 그런데 '섹시코미디'가 어울릴 이 영화가 그냥 '코미디'로 등장한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추신) 나는 영화제목을 듣고 김범룡의 노래 '바람바람바람'이 나올 줄 알았다. ...이게 다 '돌아와요 부산항愛'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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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영화를 보고 울 수 있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스스로 얼마나 영화에 몰입했으며 얼마나 영화를 즐겼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놓고 '신파영화'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누군가가 온전히 감동을 받아 울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는 세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간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아주 대놓고 "울어"라며 등을 떠미는 영화다. 구식 신파영화의 특성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전형적인 영화라도 정말 울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울어 줄 용의가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영화가 울라고 떠미는 힘이 그리 강력하지 않다. 나는 이 영화가 신파라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아니라 '신파가 약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우선 이 영화의 주인공 김조하(이병헌)는 직업이 복싱선수다. WBC 동양챔피언까지 올랐으나 지금은 스파링 페이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아는 형이 일하는 캐나다로 가서 살 생각이다. 김조하는 한국에 별로 미련이 없어보인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캐릭터의 직업은 복싱선수다. 신파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아주 좋은 조건이다. 워낙 배고프고 힘든 종목이라 애절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직업의 매력을 전혀 살리지 않는다. 김조하에게 '복싱선수'는 그저 배경일 뿐이다(심지어 그리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김조하가 복싱선수가 아니었어도 이야기에는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복싱선수였다면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속 두 인물들처럼 처절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드라마에 힘이 더해졌을 것이다. 

3. 김조하의 분량이 적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동생 오진태(박정민)와 주인숙(윤여정)과의 관계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김조하와 주인숙이 화해를 하고 김조하와 오진태가 형제의 정을 쌓는데 있다. 그러니깐 이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만으로 관객을 울리기엔 관계의 개체가 되는 인물 각자의 사연이 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진태는 오진태 나름의 고통을 더 보여줘야 하고 주인숙은 김조하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좀 더 애절하게 설명했어야 했다. 

4.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인물 개인에 대한 설명이 그리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120분이다. 대체 그 많은 러닝타임을 어디다 쓴 것일까? 이 영화에는 꽤 많은 주변인들이 등장한다. 집주인 홍마담(김성령)과 그녀의 딸 변수정(최리), 우연히 만난 재벌집 회장님 복자(문숙)와 그녀의 딸인 피아니스트 한가율(한지민), 그밖에 황실장(황석정)이나 스파링 상대 이태구(박지훈), 오토바이 가게 친구 동수(백현진), 피아노원장 문성기(조관우) 등. 이 많은 인물들로 영화는 이야기를 꽤 쉽게 끌고 간다. 이토록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 역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주변인과의 관계로 시선이 분산되면서 주인공 3명의 사연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5. 그렇다면 이 영화는 사실 신파가 아니라 코미디였던 것일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있다. 영화는 상당 부분 웃긴 지점이 등장한다. 그리고 울릴 부분도 등장한다. 사실 신파와 코미디가 같이 만나기는 대단히 쉽다. 이정국 감독의 영화 '편지'의 경우 행복하고 웃음이 절로 나오는 전반부와 비극으로 치닫는 후반부가 분명하게 나눠져있다. 마치 '단짠단짠'처럼 웃기다가 울리면서 신파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런 계산이 전혀 안 돼있다. 이것은 단 것을 먹고 그 다음 짠 것을 먹는 순서가 아니라 단 것과 짠 것을 섞어서 한 번에 먹은 느낌이다. 신파는 신파대로 죽어버리고 코미디는 코미디대로 안 웃기다. 

6. '그것만이 내 세상'은 매우 구식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낡은 수준으로 따지면 같은 날 개봉한 한국영화 '돌아와요 부산항애'와 박빙이다. 하나가 '낡은 신파극'이라면 다른 하나는 '낡은 조폭물'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내 세상'이 낡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다. 이병헌과 박정민을 중심으로 윤여정, 문숙, 한지민, 김성령 등에 이르기까지, 배우들이 자기 포지션에 걸맞는 연기를 펼친다. 그리고 백현진이나 조관우 등 '볼 때마다 신선한 배우'들도 볼 수 있어 반갑다. 무엇보다 영화 '귀향'에 출연했던 최리를 다시 볼 수 있었던 것도 반갑다(알고 보니 최리는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다고 한다). 

7. 결론: 어쩌면 '그것만이 내 세상'은 120분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파와 코미디, 관계의 따뜻함. 모든 것을 놓치기 싫어하는 눈치다. 그런데 결국 다 놓쳐버린 것 같다. 


추신1) 영화의 러닝타임이 길어진데는 PPL의 공로도 크다. 만약 이 영화의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친데 대해 책임추궁을 하고 싶거든 각종 PPL 기업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추신2) '그것만이 내 세상'과 '돌아와요 부산항애'의 주연배우를 바꾸면 어떨지 상상해봤다. 형들(이병헌, 조한선)은 그렇다 치더라도 동생들(박정민, 성훈) 때문에 절대 바꾸면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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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남 2018.02.24 16:26 address edit/delete reply

    처절,애절같은 한국 신파의 식상한 클리셰가 없어서 다행인 영화..





'정치'라는 단어가 대중들에게 주는 인상은 일단 대단히 지루하고 불쾌하고 혐오스런 것이다.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불신의 아이콘'이 돼버렸으며 정치인의 말은 '거짓말'과 같은 의미로 쓰일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본디 '정치'라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말한다. 간단하게 말해 '정치'라는 것은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기 위해 국가를 운영하는 일을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제대로 된 정치를 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훈 원작,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은 우리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제대로 된 정치'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산성'은 '진정한 판타지 영화'라고 농담을 건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일단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구조를 살펴보면 대통령이 있고 여당과 야당이 있다. 여당은 대통령이 속한 당이기도 하고 대통령의 뜻을 지지하는 정당, 즉 정권을 잡고 있는 정당이다. 그리고 여당과 뜻이 다른 모든 정당은 야당이다.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정치의 모습에서 '여당'이란 대통령의 잘못된 모습까지 감싸며 조건없는 지지를 보내는 정당이다. 반대로 야당은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를 내세운다. 현대 정치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여당은 자신들이 잡은 정권을 이어가야 하고 야당은 여당과 대통령을 깎아내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정치'라는 것이 사전적 의미와 뜻이 다른 이유, 현대의 정치에 있어 '국민'이라는 말은 허울 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에서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이라는 두 정치인이 있다. 이들은 청나라의 공격에 맞서 각기 다른 주관으로 인조(박해일)를 설득하려 한다. 청나라와 '화친'(和親)을 강조하는 최명길, 청나라에 결사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상헌. 둘의 이야기는 마치 여당과 야당처럼 극단적으로 갈라져있다. 최명길은 백성(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왕이 치욕도 감수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김상헌은 왕의 위신이 바로 서야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나라를 지킬 수 있음을 강조한다. 확실하게 다른 길을 가지고 있으나 양쪽은 모두 백성을 위하고 왕을 섬긴다는 공통된 뜻이 있다. 단지 그 길이 다를 뿐이다. 정치라는 것은 극단적인 대립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다는 큰 목적 안에서 합리적인 길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인들에게 모두 같은 큰 목적이 있고 그 사실을 서로가 잘 알고 있을때, 정치인은 서로 '존경'을 할 수 있게 된다. 뉴스에서 종종 등장하는 국회 청문회나 상임위, 본회의 장면 중 어느 국회의원이 동료 국회의원을 언급할 때가 있다. 이때 국회의원은 "존경하는 ***의원님~"이라며 운을 뗀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서로 절대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회의원들과 국민들 모두 잘 알고 있다. 애시당초 정치를 하는 목적이 다르다면 절대 서로를 존경할 수 없을 것이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늘 서로에게 예를 갖추고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정치에 있어 서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한다'는 목적에 있어 서로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만약 그 목적이 아니었다면 '숙청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산성'은 정치에 대한 영화다. 그 명확한 이유는 날쇠(고수)와 칠복이(이다윗), 나루(조아인)에게 많은 분량을 할해한 지점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정치인이 아닌 '백성'들이다. 급박한 국가의 정세 속에 휘둘려 가족을 잃고 전쟁을 피해 도망쳐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인들의 한마디에 삶 전체가 휘둘리는 사람들이다. 정치인의 한마디에 가마니를 얻어 추위를 나기도 하고 또 한마디에 가마니와 지붕을 잃기도 한다. 가마니와 말고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정치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나루의 할아버지나 날쇠는 "정치는 잘 모르겠고 배고프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을 춥고 배고프게 하는 것도, 따뜻하고 배부르게 하는 것도 정치인의 말 한마디다. 

한반도의 오랜 역사에서 병자호란 같은 일은 여러차례 있었다. 우리는 가끔 '남의 나라를 한 번도 침략하지 않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는 걸 볼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절대 자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굴욕이라고 보는 편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탁월한 전략가와 과학자, 용맹한 장수와 독립운동가들이 나타나서 나라를 지킨 덕에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우리는 '강한 국력'을 가져본 적이 없다.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하는 정치인(권력가)들은 언제나 국가보다 자신의 이익과 명분을 챙겨왔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침략할 수 없는) 민족의 굴욕은 영화 속 백성들의 삶을 봐도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의 욕심은 다른 나라의 것을 얻어 우리나라의 이익을 챙기는 것인, 우리나라(백성)의 것을 얻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국민들의 전쟁의 위협과 수탈의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남의 나라를 한 번도 침략하지 않은 국가'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 셈이다.

'남한산성'은 결국 몰락한 나라를 구하려는 바른 정치인들의 노력을 담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이 없었다면 조선은 진작에 청나라에 의해 쑥대밭이 됐을 것이며 역사 속에서 그 이름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들이 한 일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들의 주관으로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결정권자인 왕이 선택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당은 진보의 이념대로 보수정당은 보수의 이념대로 옳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 가운데 결정권자가 취사선택을 할 수 있어야 국가는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는 극단적으로 목적이 나뉘어져 있다. 결정권자(대통령)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 자신의 신념에 맞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한쪽의 신념에서 다른 쪽의 신념은 전혀 설득력이 안 생기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이념의 근본적인 목적이 달라질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국가의 분열이다. 해방 이후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진 것도 이런 부분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물론 이것은 오롯이 정치인들의 주체적 결정이라고 볼 순 없다). 그리고 영남과 호남으로 갈라져 싸운 것도 하나의 목적을 막기 위한 권력가들의 수작이었다. 결국 정치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라는 공통된 목적 아래 다양한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정치판에서의) 여당과 야당 모두 필요한 정당이다. 어느 한쪽을 무조건 몰아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단지, 이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모든 정당이 '국익'(國益)이라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비전 아래 각자의 길을 펼치고 상대에 대한 존경을 표할 수 있다면 정치는 더 이상 불쾌하고 혐오스런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 쯤은 잘 안다. 그래서 '남한산성'을 '판타지 영화'라고 앞서 정의했다. 


'남한산성'은 정치에 대한 영화다. 올바르고 이상적인 정치에 대한 길을 보여주고 비전을 제시한다. 정치는 영화 속 김육(송영창)처럼 말빨과 명분으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최명길과 김상헌처럼 모든 것을 걸고 헌신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가 제발 개봉전에 국회에서 시사회를 했으면 좋겠다. 단 몇 명이라도 좋으니 여·야 국회의원 모셔놓고 시사회를 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의원들이 뭐라도 느끼고 나간다면 참 다행스럽고 기쁠 것 같다. 물론 이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 쯤은 잘 안다. 그만큼 한국 정치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크다는 의미로 해 본 제안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매우 진중하고 우직하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신념만큼 영화는 무게감과 책임감을 갖고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것은 때때로 코미디같은 한국의 정치를 바라보며 느꼈을 갈증에 대한 해소가 될 수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본 후 병자호란과는 다른 의미로 국민의 삶이 위태로운 가운데 우리의 삶과 국가의 안위를 걱정해 줄 정치인이 있는지 둘러보게 될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런 정치인을 발견하고 희망을 갖게 될 것이고 운이 나쁘다면 그런 정치인이 없음에 좌절하게 될 것이다. '남한산성'은 지금의 정치와 우리의 삶을 둘러보게 하는 영화다.


추신1) 날쇠의 화승총 에피소드는 대단히 흥미롭다. 총신이 휘어져 전장에 조준사격 할 수 없는 총을 가지고 싸운다는 점은 전투장비가 불량하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뉴스에서 총알이 뚫리는 방탄조끼가 군에 공급됐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예비역이라면 한국전쟁 때 수통과 판초우의가 최근까지도 사용됐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방산비리'라는 말은 군대를 다녀오거나 다녀오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방산비리'가 국가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절실히 보여준다. 

추신2)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지나고, 나는 인조(박해일)가 활을 들고 산 속으로 들어가 청나라 병사들을 몰살시키는 장면을 상상했다. 생각해보니 용골대(허성태) 장군이 쥬신타(류승룡)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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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부자들' 웹툰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쓴 글임을 밝힙니다.



오래전 지방광역의회를 출입하며 정치부 기자를 처음 경험했을때, 다른 회사의 한 선배는 술잔을 기울이며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너 그 회사에 있으면서 의원 하나 만들 수 있겠냐?". 당시 내가 일하던 회사는 기반도 근본도 없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엉망진창인 회사였다. 아마 기자들끼리 놓고 봐도 나는 말 그대로 '족보없는' 기자였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그 시기는 아마 짧은 기자생활 중 가장 열심히 일한 시기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의원들과 어울리며 팔자에 없는 테니스도 배워보고(금방 그만뒀지만) 한의사가 먹지 마라고 했던 개고기도 먹고(맛있었음), 원래대로라면 기자인 내가 의원들에게 갑(甲)이 될테지만 그때 나는 을(乙)이었다. 그렇게 구른 결과 의원들과 선배 기자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나름 고급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지방의회의 고급정보라는게 뭐 특별한게 있겠냐만은...


언론사에는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스포츠부, 연예부 등 여러 부서가 있다. 이 부서는 저마다 특징이 있고 진로가 있다. 사실 이들 중 가장 '권력'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바로 정치부 기자다. 실제로 기자나 앵커 등 언론인이었던 사람들은 당 대변인을 거쳐 정치계의 중심에 자리잡는다. 이처럼 이들은 스스로 권력의 중심에 자리잡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배후에서 권력을 조종하기도 한다. 


꽤 시간이 흘러 기자선배들과 커피를 마실때 일이었다. 나는 박근혜가 당선된 이후 새누리당이 다음 대선주자로 내세울 카드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당시만 해도 대선주자로 언급된 사람들이 모두 해묵은 카드들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現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이라는 스타를 등용해 새누리당과 박빙의 대결을 펼쳤다. 새누리당에도 그런 스타가 있는지 궁금했다. 선배들은 "대선이 임박하면 새누리당에서 스타가 나올 것이다. 벌써 깜짝주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이 김무성 의원인지 생각하고 있다. 




영화 '내부자들'은 권력을 조종하는 배후세력에 대한 이야기다. 정치인 하나를 만드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돈과 여론이다. '내부자들'은 정말 깔끔하게 돈과 여론과 권위가 만나 권력을 움직인다. 영화는 이 셋이 만났을때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을 갖게 되는지 잘 보여준다. 나는 이 '세가지 힘' 가운데 여론, 즉 언론의 힘에 주목하게 된다. 


이강희 논설주간(백윤식)은 이 권력구조의 브레인 역할로 선수를 내세우고 판을 주무르는 인물이다. 그는 정치인을 내세우고 투자자를 엮어 거대한 권력의 삼각형을 만든다. 이 권력의 삼각형은 완벽할 정도로 서로가 필요한 것만을 챙긴다. 나는 이 삼각형에서 이강희가 챙겨가는 것에 하나가 빠져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회사의 입지다. 


이강희는 장필우(이경영)를 정계에 입문시키고 대선주자로 키워낸다. 이를 위해 그는 자금줄인 오현석 회장(김홍파)을 엮어냈다. 오 회장은 장필우의 권력과 이강희의 펜을 통해 비정규직 시위를 막아냈고 영화에 언급되진 않았지만 각종 비리나 특혜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장필우는 든든한 자금줄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선출마까지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전국규모의 대선은 총선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이 든다). 


그렇다면 이강희는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 영화에서는 장필우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장관이나 총리자리 얻어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언론인이 행정직에 앉아서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정계에 따라 입문해서 당의 중심에 자리잡거나 조금 느슨해지면 공기업 사장 정도 하는게 고작일 것이다. 이강희가 근본적으로 얻어가는 것은 이게 아니다. 이강희가 얻어가는 것은 회사의 입지와 발전이다. 




나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강희를 이야기하며 왜 '회사'에 대한 부분이 약하게 언급됐는지 궁금하다. 이 권력의 삼각형에서 어쩌면 이강희는 가장 큰 것을 얻어간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이강희는 오 회장으로 하여금 회사의 광고를 따낼 것이다. 이강희가 오 회장과 친분을 쌓은 뒤 광고국이 움직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거액의 광고가 회사로 들어간다. 이것은 당연히 회사의 이익이 되고 이강희 개인의 이익도 된다. 논설주간은 회사에서 대단한 힘을 가진 '임원급 인사'지만 결국 회사의 오너는 아니다. 아마 이강희가 몸 담고 있는 조국일보에는 정치부 논설주간이 몇 명 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다른 스타플레이어를 만들어낼 것이다(정황상 이강희는 이들 논설주간들 중 가장 힘이 세기는 하다).


이강희가 오 회장에게서 얻어가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필우에게서 얻어가는 것이다. 자본가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돈이지만 권력가에게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은 꽤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11년 12월 유래없는 특혜를 받으며 개국한 4개 종편채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권력가가 언론에 베풀 수 있는 최고의 특혜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강희는 다른 '기자 출신 정치인'처럼 전면에 나설 것인가? 영화 내내 느꼈지만 이강희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아마 그의 최종목표는 언론사 사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권력을 배후조종하는 지략가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대선주자까지 만들어낸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안상구(이병헌)와 우장훈(조승우)의 콤비플레이는 권력의 삼각형을 박살냈다. 이 대목에서 조국일보는 대단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사실 '대선주자'를 쥐고 있는 것은 이강희가 아닌 조국일보다. 이들은 권력의 삼각형이 무너지면서 대선주자도 잃었고 킹메이커 이강희도 잃게 됐다. 아마 주주들과 이사진들은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이강희를 쳐내야 한다고 반발할 것이다. 저런 재능있는 킹메이커를 쳐내는 것은 회사에게 큰 타격이다. 


아마 회사는 이강희를 쉽게 쳐내지 않을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정보보고의 몇 가지 사건들을 터트릴 것이고 안상구의 폭로를 덮은 것처럼 사건을 덮으려 들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오 회장 역시 상당한 로비자금을 풀어 사건을 무마시키려 들 것이다. 여담이지만 어느 대기업 회장은 상황이 위태로워지자 로비자금 마련을 위해 외제차 콜렉션의 절반과 상당량의 그림을 처분했다고 전해진다. 즉 애시당초 이들의 목적대로 장필우는 끝나게 되겠지만 킹메이커와 자금줄은 또 다른 말을 찾아 왕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중 누가 신문사의 늙은 글쟁이에게 관심이나 가질까? 그들은 여론의 뒤로 숨어버리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오 회장 역시 1~2년 살다가 특별사면으로 풀려날 것이다. 아마 그 시점에 이강희도 필드로 복귀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또 다른 선수를 찾아 후일을 도모할 것이다. 지략가와 자본가에게는 여전히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상구와 우장훈의 복수는 별로 개운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들은 부패한 거대권력의 한 부분에 흠집만 냈을 뿐, 그들의 말대로 정의를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권력이 단 3명에 의해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영화에 잠시 등장했던 김석우 의원은 장필우가 무너지면서 대선주자 1순위가 됐다. 아마 당에서 전당대회를 다시 열게 되면 김석우 의원이 대선주자로 당선될 것이다. 그는 영화 초반부에 이강희에게 찾아가 "날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다 거절당했다. 이후 김석우 의원은 또 다른 이강희와 오 회장을 찾았을 것이다. 거대 언론사의 정보력은 국정원 못지 않다. 조국일보가 아닌 다른 언론사가 분명 김석우를 밀 것이다. 그렇게 또 다른 '권력의 삼각형'은 생겨나게 된다. 




'내부자들'을 영화적으로 본다면 진짜 주인공은 안상구와 우장훈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빽도 없고 줄도 없고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들, 말 그대로 현대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약자'다. 영화는 약자가 강자를 무너뜨리는, 대단히 통쾌한 이야기다. 영화를 이야기하려면 분명 이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인 이들과 달리 '권력의 중심'은 바로 이강희다. 일전에 나는 한국 기자들을 믿을 수 없는 몇 가지 이유(http://daishiromance.tistory.com/587)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기자가 본연의 일에 충실하지 않고 돈과 이익, 욕망을 쫓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바로 이강희를 보면 된다. 실제로 기자는 이강희 못지 않게 권력의 중심에 앉을 수 있다. 그만큼 힘이 세다는 소리다. 그 기자가 욕망을 꿈꾸면, 부패한 권력은 거기서 생겨날 것이다. 더 소름돋는 것은, 욕망을 꿈꾸는 기자가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정치부를 갓 시작한 햇병아리 기자에게 "의원 하나 만들 수 있겠냐?"라고 묻는 선배가 있었으니 말이다. 




여담1) 영화의 구조는 '부당거래'와 '성난변호사'를 닮아있다. 특히 '성난변호사' 생각이 많이 났는데 개운한 맛은 '성난변호사'가 앞섰지만 디테일이나 짜임새, 완성도는 '내부자들'이 훨씬 좋다. 


여담2) 정치깡패 안상구가 갑자기 똑똑해진다. 대단히 적응이 안되고 당혹스러운 부분이다. 


여담3) 시경 정보과(로 추정) 형사가 정치인 꼬봉을 하고 있다. 이건 대단히 소름돋는 부분인데 영화에서 대충 처리한게 아쉽다. 


여담4) 어찌보면 정치인 엿 먹이는 영화인데 국회촬영을 과감하게 허락해준게 의아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나름 추리(라 쓰고 '상상'이라 읽는)를 해보자면 촬영을 허가해준 것은 국회 사무처겠지만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운영위에서도 촬영 소식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국회의원들은 영화나 만화, 소설들이 정치인을 까는 것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겠구나 싶었다. 국민들의 분노가 실제 정치인이 아닌 가상의 정치인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고 묘사한 것보다 더 은밀하고 정교하게 일을 꾸밀 것이다. '베테랑'에서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가 대단히 어설퍼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여담5) 대한민국 개저씨들 노는 꼴 보기 싫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다면 영화평론가를 그만두는게 맞지, 영화가 어디 예쁘고 아름다울수만 있나. 


여담6) '조 상무'를 연기한 조우진이라는 배우, 상당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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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 등장하는 대사다. 그야말로 영화 전체의 주제와 주인공의 심정을 요약한 명문이다. 폭력조직의 2인자 선우(이병헌)가 꿈꿨던 밝은 미래, 그러나 돌아온건 비정한 현실.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압축한 대사인 셈이다. 사실 이런 정서는 '달콤한 인생' 뿐 아니라 꽤 많은 한국영화를 관통하고 있다. 특히 '게임의 법칙'이나 '걸어서 하늘까지', '비트' 등 90년대 조폭영화들을 시작으로 최근 만들어진 일련의 느와르영화까지 이어진다. 이 가운데 나는 '차이나타운'과 함께 이런 정서를 가장 직접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두 개의 영화('달콤한 인생', '신세계')를 중심으로 이야기 할 계획이다.




'달콤한 인생'과 '신세계'는 '차이나타운'과 닮은 구석이 가장 많은 영화다. 특히 관객들은 '차이나타운'을 본 후 가장 먼저 떠올릴 영화가 '달콤한 인생'이 될 것이다. 김혜수와 김고은, 박보검 등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놀랍도록 김영철, 이병헌, 신민아의 역할과 닮았다. 그만큼 이야기하려는 주제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선우와 일영(김고은)은 비정한 폭력의 세계 속 인물이다. 자기 세계에 충실하며 두목의 신임을 얻은 이 2인자들은 말 그대로 "잠시 꿈을 꾼다". 옅고 낮게 드러나는 선우의 꿈은 '욕망'에 기인하고 있다. 희수(신민아)라는 여자를 바라보며 원했던 일순간의 욕망은 그에게 '고통'이 되어 돌아온다. 


일영의 꿈은 조금 직접적이다. 석현(박보검)은 희수와 마찬가지로 폭력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일영의 꿈도 사실 매우 단순하다. '사랑받는 여자'로 사는 것이다. 물론 일영의 곁에는 또 다른 멜로라인인 우곤(엄태구)이 등장한다. 일영에게 마음을 드러내는 우곤 역시 같은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달콤한 인생'과 '차이나타운' 속 세계에서는 행복한 꿈은 용납이 되지 않는 셈이다.




좀 가혹해 보인다. 이야기가 영화 속 인물들에게 가혹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관객에게 더 가혹해 보인다. 잔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잠시 꿈을 꿨는데 거기에 돌아온 것은 참혹한 형벌이다. 그들은 단지 비정한 현실 속에서 꿈을 꾸고 욕망한 죄 밖에 없다. 이야기들은 관객에게 일말의 꿈도 허락하지 않을 셈인가. 


전략적으로 봤을때 이것은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려는 의도가 있다.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나 '강남1970'도 이런 정서를 고스란히 계승한다. 이들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겪은 주인공의 슬픔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결론들이 카타르시스를 주는지 좌절감을 주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식 '조폭영화'의 정서는 주인공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데 있다. (사진은 '강남1970')


냉정하게 따지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해피엔딩보다 새드엔딩이 장사가 잘 된다. 새드엔딩이 뭔가 현실적이고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20년 넘게 이어져 온 '패배주의'의 정서가 깔려있다. 여기에는 한국인의 역사 속에서 갖게 된 어떤 마음들이 깔려 있다. 


앞서 말한대로 오래전부터 우리 조폭영화에서는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지려 한 주인공은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우리 근현대사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픔과 상처가 많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버텼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꿈을 이룬 사람을 만나지만 그 이면에는 꿈을 이루는데 실패한 사람들이 더 많다. 특히 지금의 한국이라면 더 할 것이다. 


2015년의 대한민국은 꿈이 사치인 나라나 다름없다. 이런 세상에서 섣불리 꿈을 이야기하는건 관객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 있다. 그야말로 관객이 선우와 일영처럼 꿈을 꾸다가 비극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조폭영화들의 패배주의적 정서는 우리들의 삶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쯤 보면 독자들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정말 일영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것일까?". '달콤한 인생'의 선우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일영은 엄마(김혜수)를 죽이고 차이나타운의 지배자가 된다. 언듯 보면 썩 비극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일영이 이루려던 꿈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썩 밝은 이야기도 아니다. 이 대목은 영화 '신세계'와 닮아있다. 


'신세계'의 이자성(이정재)은 굉장히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잠복생활을 벗어나 경찰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갈등이 따른다. 장과장(최민식)을 포함한 비정한 경찰들과 훈훈한 정을 드러내는 조직. 이자성에게는 어쩌면 꿈을 이루는데 가장 큰 걸림돌일 것이다. 물론 이자성은 여기서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골드문의 회장이 된다. 경쟁자들은 모두 제거됐지만 이자성은 기어이 불안하고 고독한 1인자가 된 것이다. 석동출(이경영)은 심복에 의해 살해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르려는 이중구(박성웅), 정청(황정민) 등이 있지만 자리에 오른 자는 정청의 심복(혹은 형제)인 이자성이다. 


일영도 마찬가지다. 이제 차이나타운에서 일영을 위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쟁자들은 모두 제거됐고 일영은 강력한 힘을 얻게 됐다.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일영의 최후에 대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를 죽이고 그 자리에 올랐다. 일영 역시 엄마를 죽이고 그 자리에 올랐다. 속편이 없어도 일영 역시 엄마와 같은 최후를 맞이할 게 뻔히 보이는 지점이다. 




이자성과 일영은 조직(폭력의 세계)을 벗어나려는 꿈을 꿨다. 이자성의 꿈은 어둠의 세계가 아닌 밝은 세계의 일원으로 사는 것과 신분노출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영 역시 밝은 세계에서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모두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을 폭력의 세계에 묶어두는 가장 큰 족쇄, '1인자'이기 때문이다. 


이자성과 일영은 분명 선우와는 다른 결말을 맞이했다. 그러나 복수를 이루고 죽음으로써 자유를 얻은 선우에 비하면 이자성과 일영은 살아서 그 족쇄를 계속 차게 됐다.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결국 이자성과 일영, 선우 모두 이상의 세계로 나가지 못하고 꺾인 주인공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차이나타운'의 후반부가 '신세계'와 닮았다는 것은 일영 뿐 아니라 엄마에게서도 드러난다. 엄마는 사실 매우 복합적인 인물이다. 극 초반에는 강 사장(김영철)과 닮아있지만 후반부에 엄마는 정청이 된다. 물론 결과적으로 엄마는 정청에 가까운 인물이다. 


물론 정청은 이자성과의 우정 때문에 그를 지키려 한 것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정청이 이자성에게 준 가르침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살아남아서 골드문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것이었다. '차이나타운'에서는 영화 내내 "엄마가 예전같지 않다"는 말이 등장한다. 치도(고경표)를 제거할때도 드러나지만 엄마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자랑한다. 그러나 엄마 스스로도 자신이 예전같지 않음을, '쓸모없음'을 느낀다. 엄마가 일영을 기다린 것은 후계자를 계승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차이나타운의 질서를 위해 '쓸모없어진' 자신을 제거한 것이다. 아마 엄마가 그 위의 엄마를 죽일때도 그런 계승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폭력의 세계 속 질서는 생각보다 견고하다. 정청과 엄마의 모습은 따뜻한 '보호자'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조직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반증이 된다. 우리는 '설국열차'에서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의 혁명에 집중한다. 영화는 그가 기차를 바꿀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인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윌포드(에드 해리스)와 길리엄(존 허트)에게 커티스는 하나의 흐름에 불과하다. 일영과 이자성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대한 조직 속 하나의 흐름. 개인이 이렇게 나약하다.




사실 이자성이나 일영, 선우 모두 선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몸 담고 있는 세계는 비정하고 사악하다. 그러나 폭력의 세계만이 비정하고 사악할까? 선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사회에는 탐욕과 냉정만이 남아있다. 그것은 학교와 직장 어디에서건 마찬가지다. 그 비정한 사회에 속한 사람들중 누군가는 더 나은 미래를 꿈 꿀 것이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때까지 나오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결국 비정한 사회를 벗어나봤자 남아있는 건 '더 큰' 비정한 사회다. 



여담1) '차이나타운'을 기대한 이유 중 하나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배우인 이민지님의 출연 때문이다. ...하...하마터면 못 찾을 뻔 했다.


여담2) 확실히 석현은 비현실적 캐릭터긴 하다. 석현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조금은 더 필요했을 것이다. 


여담3) 홍주(조현철)는 확실히 인상에 남는 캐릭터다. 마치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속 레더페이스의 현실버전인 것 같다. 순둥한데 무서운?


여담4)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김고은이 로맨틱하고 러블리한 캐릭터를 연기했으면 좋겠다. '차이나타운'을 보니 그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 



사실 고은이는 이렇게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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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지나가는 2015.05.02 09:13 address edit/delete reply

    잘읽었습니다!!

  2. 김영중 2015.06.14 22:42 address edit/delete reply

    공대생으로 취미가 글쓰기라서, 인터넷에서 잘 씌여진 글을
    찾다가 우연히 들렀습니다. 저도 이런 글을 참 쓰고 싶어요






이병헌 감독의 영화 '스물'은 가벼운 영화다. 처음 보자마자 생각난게 '유머감각 있고 조금 병신같은 김난도'의 느낌이었다.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뻘소리를 되게 유머감각 넘치게 한 것 같다. 그래서 '스물'은 조금만 진지하게 봤다가는 젊은이들에게 험한 소리 듣기 딱 좋은 영화다. 그러나 굳이 이 영화에 대해 화를 내고 싶진 않다. 비록 속 편한 소리를 해댈지언정 그 '속 편한 소리'가 매우 재미있으니 말이다. 헛소리도 재미있으면 용서해주고 싶어진다. 이 재미있는 헛소리는 순전히 감독이 이야기를 잘 써준 덕이 크다. 


이 이야기를 쓴 이병헌 감독은 각본가 출신이다. 각색에 참여한 '써니'나 '타짜:신의 손' 등을 보면 대사 쓰는 재주가 꽤 있는 감독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사 잘 쓰는 사람이 정말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대체 어디서 그런 말빨이 나오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당장 떠오르는 각본가 출신 감독은 '알포인트'의 공수창 감독이 있다.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 진보주의 영화부터 '하얀전쟁', '비상구가 없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링', '텔미썸씽' 등 메이저 영화까지 여러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감독 데뷔작 '알포인트'는 지뢰밭과 같은 한국 호러영화계의 몇 안되는 '보석'이 됐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 감독이 더러 있는 편이긴 하지만 살아남는 경우는 드물다(사실 뭐 영화감독 입봉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이병헌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 기대주가 되기 충분할 것이다. 물론 이병헌 감독 이전에 스타급 연출자가 하나 있다. 바로 박훈정 감독이다.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등 느와르 대작들의 이야기를 쓴 박훈정 감독은 '혈투'로 데뷔한 후 '신세계'로 대박을 터트렸다. 


이병헌 감독과 박훈정 감독은 코미디와 느와르라는 전혀 상반된 장르를 연출하지만 대사를 잘 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제 장편 한 두개 만든 '신인감독'들이지만 대사를 잘 쓰는 그 장점은 영화판에서 굉장한 장점으로 남아 긴 생명력을 보장할 것이다. 사실 나 역시 공모전 준비를 해봤지만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어려운게 '대사'다. 이게 평소 하는 말대로 하자니 영 재미가 없다. 대사로 재미를 주는게 보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이들 두 감독의 '대사'는 그들이 만드는 영화 장르에 따라 특성을 달리 한다. 마치 샤브샤브용 고기와 스테이크용 고기를 달리 쓰는 것과 같다. 이들이 쓰는 대사를 살펴본다면 이들이 장르에 얼마나 정통한지, 이야기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병헌 감독의 대사는 '스물' 홍보팀이 말한대로 '말 맛'을 주는 대사다.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하면서 간결하다. 사실 코미디영화의 대사가 간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보는 재미'를 주는 대사는 대체로 수다스러운 편이다. 펼쳐놓는게 많아야 재미를 얻어갈 부분도 많아지는 법이다. 물론 다른 일련의 영화들에 비하면 대사가 많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이병헌의 대사는 구구절절 웃기려고 판을 벌이지는 않는다. 


강형철 감독이 각본을 썼지만 이병헌 감독이 각색한 '써니'에서 "어이, 소녀시대"같은 대사는 트렌디하면서도 간결한 재미를 준다. 또 "이것들이 왜 남의 남편 꼬추갖고 지랄들이야" 같은 대사는 다소 과격하지만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면서 상황이 주는 재미에 효과적인 양념 역할을 한다. '스물'에서도 "섹스를 하자" 같은 단도직입적인 대사나 "함께 있을 때 무서울게 많은 븅신이었다"같은 재치있는 대사들은 어느 방향으로 가건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 충분한 대사였다. 


사람에 따라 다소 가볍다고 느낄 수 있지만 무겁거나 진지해서는 관객을 웃길 수 없다. 그래서 이병헌 감독의 대사들은 코미디에 최적화 돼 있다. '스물'의 대사들처럼 정말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 듯한" 대사들은 마치 박명수가 '무한도전'에서 던지는 일련의 멘트들처럼 관객들을 웃겨준다. 이병헌 감독을 만나게 되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예능 프로그램 즐겨 보시는지...



이병헌 감독과 강형철 감독은 어째 딱 봐도 '스승과 제자' 느낌이다.


박훈정 감독은 사실 대사보다 이야기가 두드러진 작가로 볼 수도 있다. '악마를 보았다'나 '부당거래'는 각각 김지운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각색을 하면서 연출자의 색채가 입혀지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이야기의 기본골격은 박훈정 특유의 색깔이 입혀져있다. 그래서 박훈정의 말빨이 드러난 건 '혈투'나 '신세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연출작들에서 드러난 박훈정 감독의 대사는 이야기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느와르 장르에 걸맞게 진지하고 무시무시한 대사를 날리지만 지나친 무게감으로 쳐지는 것은 아니다. 무겁되 지루하진 않은 대사인 것이다. 특히 '신세계'의 경우에는 거의 유행어에 가까울 정도로 명대사가 많다. 이중구 역할을 한 박성웅을 스타로 만드는데 '신세계'의 대사들이 일조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중구 뿐 아니라 정청(황정민)이나 이자성(이정재), 장과장(최민식)의 대사 역시 유행어에 가까울 정도로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사실 '신세계'의 대사들이 이만큼 잘 나간데는 영화가 재미있었던 탓도 크다. 다수의 인물들이 얽히면서 극한으로 치닫는 박훈정표 이야기는 연출의 묘만 살아난다면 엄청난 재미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부당거래'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도 그동안과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면서 그럴싸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게 이야기가 잘 빠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류승완 감독이 기본기가 탄탄함을 보여준 예시기도 하다. '부당거래'는 류승완 본인에게도 큰 시험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걸 훌륭하게 해냈기에 류승완 감독도 종전과 다른 입지에 오를 수 있었다. 



박훈정 감독은 입봉작과 차기작 사이에 갭이 가장 큰 감독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병헌이나 박훈정 감독은 '말빨'이 좋은 감독이다. 시나리오 만지던 시절부터 다져온 내공이 자신들의 작품에서도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빨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의 골격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스물' 역시 온 사방으로 흩어진 사건들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결국 하나의 탄탄한 골격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 '대사빨'이 살아날 수 있었던 건 결국 이야기의 큰 틀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재미난 여러 상황들 때문이다. '신세계'의 경우에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극한으로 내몰았던 상황들이 '대사빨'을 살려냈다. 결국 이 역시 이야기의 골격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박훈정과 이병헌의 영화들은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 물론 이들이 만들어 내는 맛깔스런 대사들은 책을 많이 읽던지 무슨 수를 내서 제대로 배워야 하겠지만 적어도 좋은 이야기와 좋은 대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여담1) 이병헌 감독은 연출자인데 저렇게 잘 생겨도 되는건가. 


여담2) 여러 인물들이 얽히는 이야기에서 재미를 주던 박훈정 감독의 차기작 '대호'는 '최민식 vs 호랑이'의 구조다. 박훈정 감독은 이 이야기에 자기식대로 주변인을 막 넣을지, 아니면 정말 안 해본 이야기를 만들지 모르겠다. 그래서 기대된다. 


여담3) '스물'을 처음 보고 느낀 건 이병헌 감독은 차세대 '장진' 정도는 가능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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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썩 공감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누구나 스무살때는 병신같았다"는 대목에는 공감간다. 그래, ...그땐 전부 병신들이었어 ㅋㅋㅋ


2. 나이 찬 여성관객들에게는 다소 유치할 수 있다. 그런데 남성관객들은 매우 좋아할만하다. 남자새끼들 술자리 모이면 하는게 여자얘기, 먹고 살 얘기 등등이니 말이다. 


3. 그 점을 감안했는지 출연하는 여배우들이 하나같이 예쁘다. 




4. 특히 이유비가 연기하는 '김소희' 캐릭터는 심각하게 예쁘고 매력적이다.


5. 이유비가 교복을 입어서 예쁜 것인가, 교복이 이유비를 품어서 예쁜 것인가. ... ...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6. 이병헌 감독이 각색한 '써니' 생각이 많이 날 수 있다. 그런데 '써니'보다는 훨씬 담백하고 가볍다. 여기에는 인물들 특유의 '병신美'가 크게 작용했다. 


7. 물론 유치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철 든 여성관객들은 유치하게 볼 영화다. 하지만 남자들은 당당하게 말해도 될 것 같다. 함께 있을때, 우린 존나 병신이었다고...


8. 말빨개그나 상황개그 감각이 남다르다. 강형철 감독에게 배운 흔적도 보이지만 감독 자체가 대사로 웃길 줄 아는 사람이다. 이 대목에서는 '차세대 장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9. 스무살 또래들이 공감을 하느냐 마느냐가 변수일 수도 있다. 아마 그 친구들은 상관없을 것이다. 그냥 존나 웃기면 장땡이다. 그 점에서는 충분히 충족을 시켜준다. 


10. 심각하게 보자면 이건 '유머감각 좋은 김난도' 정도로 보일 수 있다. 뭐 그렇게 보이면 그냥 웃고 넘기면 장땡이다. 최소한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개똥같은 소리보다야 이 영화가 훨 낫다.


11. 어쨌든 '스물'은 가볍게 즐기기 좋은 영화다. '써니'를 가볍게 즐긴 관객이라면 '써니'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게 웃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12. 여러가지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고로 공감하기 어려운 건 세친구가 저렇게 다 잘생겨도 되냐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예쁘고 잘 생긴 녀석들만 나온다. 그나마 '족구왕'의 두 주역인 안재홍님과 황미영님이 밸런스를 맞춰준다. 


13. 결론: 견미리 여사님, 감사합니다. (니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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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물기대중 2015.03.12 19:25 address edit/delete reply

    족구왕 나오는건 김독님이 안재홍 배우 안다고(친하다고?) 자랑한 걸 통해서 알게 됐는데 황미영 배우도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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