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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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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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0.02.05
    '버즈 오브 프레이: 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초간단 리뷰
  2. 2020.01.27
    '풀 메탈 자켓' - 베트남전에서 '조커'의 정체성을 찾다
  3. 2019.09.26
    '조커' 간단 리뷰
  4. 2016.08.01
    '수어사이드 스쿼드' 초간단 리뷰

1. 몇 년 전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고 나는 "온누리에 사랑이 넘쳐. 마치 '러브 액추얼리'같아"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마치 크리스마스에 틀면 좋을 법한 영화였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어디선가 BGM으로 'All You Need is Love'가 들려오는 듯 했다(얼마 뒤 '어벤져스:에이지오브울트론'을 보고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나는 만화책에서 할리 퀸이 어떤 캐릭터인지 모른다. 다만 영화에서 어렴풋이 행세를 하는 걸 보고는 "썅ㄴ이면 썅ㄴ답게 굴어"라는 요구를 하게 만든다. 나는 스스로 선하거나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쁜 놈은 숨김 없이 나빴으면 좋겠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아쉬운 지점은 거기에 있었다. 내가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을 보기 전 기대한 것은 사랑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썅ㄴ다운 썅ㄴ'이었다. 

2. 일단 할리 퀸(마고 로비)은 푸딩(조커)에게 까였다. 그리고 징징댄다. 사랑따위에 굉장히 연연하는 모습이다. 다행스럽게도 '러브 액추얼리'스런 모습은 없다.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으니깐. 일단 언제쯤 저 징징댐을 멈추고 진정한 썅ㄴ으로 거듭나는지 기다려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썅ㄴ다운 면모를 갖추는데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옛 추억의 장소가 눈에 보인다고 길에서 트럭을 훔쳐 냅다 돌진해버렸으니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할리 퀸이 굉장한 썅ㄴ이긴 한 모양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할리 퀸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시절 할리 퀸보다는 한결 마음에 든다. 이 정도면 나름 썅ㄴ이다. 

3. 영화가 얼마 지나더니 꾸역꾸역 '썅ㄴ 스쿼드'(=버즈 오브 프레이)가 완성된다. 모두 여자들로 구성돼있으며 남자 동료에게, 혹은 마피아(남자)에게 까이거나 가족이 죽임을 당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혹은 여자아이를 지키려는 사람도 있다. '썅ㄴ 스쿼드'의 멤버들은 대체로 억압 당해 있다. 제목에 '황홀한 해방'이 들어갔다. 억압 당했으니 해방해야지. 당연한 전개다. 이 영화에서 '해방'은 아주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할리 퀸을 포함한 여러 멤버들이 악당(=남자)과 싸우는 과정은 대체로 발차기로 고추를 박살내며 마무리된다. 어찌나 고추를 박살내는 장면이 많은지 공감능력 투철한 남자관객은 영화를 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지도 모르겠다. 

4. 나는 할리 퀸과 '버즈 오브 프레이'의 원초적 '썅ㄴ스러움'이 영화 끝까지 이어지길 바랬다. 갑자기 처음봐서 공공의 적과 싸우던 이 스쿼드는 급 친밀해졌다. 카산드라(엘라 제이 바스코)를 구하는 대목에서는 할리 퀸 마저 캡틴 아메리카 못지 않은 히어로로 보인다. 일단 사건을 해결해야 하고 나쁜 놈 로만(이완 맥그리거)을 없애야 하는 입장에서는 정의로울 수 밖에 없다. 다만 여기서도 할리 퀸은 좀 더 썅ㄴ다울 수 있었다. 굳이 캡틴 아메리카가 될 필요는 없었다. 만약 할리 퀸이 '카산드라를 구해야 한다'보다 '로만의 고추를 걷어차야 한다'에 더 초점을 맞췄어도 할리 퀸은 좀 더 썅ㄴ다울 수 있었다. 

5. 다시 말해 이 영화는 굉장히 단순하다. '여성의 연대를 통한 해방'은 '억압 당한 여성들이 모여서 남자들의 고추를 걷어차는 일'이다(굉장히 많은 고추가 박살난다. 영화 내내 박살난 고추만 합쳐도 할머니댁 부직포에 가득 널어놓고 말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여자가 죽는 장면은 영화가 가린다(로만이 동양인 가족을 묶어놓고 죽이는 장면에서 남편만 얼굴가죽을 벗긴다. 바로 옆에 아내는 어떻게 죽었는지 안 보여주는데 죽었다). 이런 단순하고 원초적인 페미니즘을 전에 본 적이 있다. 바로 '걸캅스'다. 누군가 '버즈 오브 프레이'와 닮은 영화를 물어본다면 나는 '걸캅스'라고 답할 것이다(당황하진 말자. '걸캅스'보다는 재밌다). 

6.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아등바등 찍은 '걸캅스'보다 '버즈 오브 프레이'가 나은 지점은 액션씬에 있다. 꽤 인상적인 액션씬이 여럿 등장하는데 폐허가 된 놀이공원 액션씬은 성룡의 '복성고조'나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2'를 떠올린다. 고전 B급 장르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볼꺼리다.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함꼐 여러 효과들로 오락가락 정신없이 유쾌하게 전개되는 것도 봐줄만하다. 일단 늘어지거나 시간 끄는 지점은 전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들 드럽게 못 싸우네"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앞서 말한 '이 영화의 정체성'에 해당하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하자. 

7. 결론: 단순하고 간결한 영화다. 액션도 화려하고 유쾌하다. 할리퀸이 '수어사이드 스쿼드'보다 한결 썅ㄴ이 된 점도 마음에 든다. 바램이 있다면 할리 퀸에게 "왜 이리 약한 모습이야? 이보다 더 건방질 수 있잖아"라고 독려하고 싶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와 비교할 영화는 아니지만(우위가 아니라 성격이 다른 영화임) 조커 캐릭터에 부합하는 '논쟁적인 썅ㄴ'은 돼야 하지 않겠나. 나름 빌런인데... 


추신) 원작 코믹스를 못 봐서 모르겠는데 이런 무공을 쓰는 캐릭터가 원래 있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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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나는 세상에 없었다. 당연히 베트남전이 갖는 트라우마도 모른다. 그것이 '미국인이 갖는 베트남전에 대한 트라우마'라면 더더욱 모른다. 그저 내가 아는 베트남전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가장 최근에 영화에서 본 베트남전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더 포스트' 속 모습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조작한 '펜타곤 페이퍼'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내용이다. '조작'됐다. 어떤 일을 사실인 듯 꾸며서 만들었다. 혹은 진짜를 본떠서 가짜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표면과 실체가 다른 것, 베트남 전쟁은 그런 전쟁이라는 의미다. 나는 표면과 실체가 다른 베트남전의 이중성이 얼마나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몇 개의 그 트라우마의 형태를 미뤄 짐작할 뿐이다. 

오랜만에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을 봤다. 이 영화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보통 감독에게는 수작, 큐브릭에게는 범작"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말이었다. 확실히 큐브릭의 여러 영화들에 비하면 다소 모자란 면이 있었지만 개성있고 세련된 전쟁영화였다. 스탠리 큐브릭 특유의 인간미 뚝 떨어지는 완벽한 연출과 차가운 질감은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행위와 시너지 효과를 낸다.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극중 닉네임이 '조커'라는 사실은 2020년에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 특별함은 영화가 전개될수록 점점 더 '흥미'로 다가왔다 '풀 메탈 자켓'은 2019년 최대 화제작 '조커'와 맞닿은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을 관찰할 수 있다면 베트남 전쟁과 그 이후 미국의 트라우마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풀 메탈 자켓' 속 데비이스(매튜 모딘)는 훈련소에서 '조커'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는 훈련소에 입대한 이유에 대해 "살인을 하기 위해"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답변을 들은 하트만 교관(R. 리 어메이)은 그에게 '조커'라는 별명을 붙인다. 그런데 조커는 재미있는 면이 있다. 훈련을 곧잘 소화하지만 그는 '살인병기'라는 인상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은테 안경과 차가운 인상은 그가 공부만 하고 자란 '너드(Nerd)'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무사히 전역했다면 차고에서 컴퓨터를 두들기다가 회사를 차렸을 법한 외모다. 그는 소대에서 뒤쳐지는 로렌스(빈센트 도노프리오)의 사수 역할을 하면서 친절하게 그를 도와주지만 정작 로렌스에게 행해지는 소대원의 집단구타에 동조한다. 게다가 "살인을 하기 위해 입대했다"고 말한 조커는 정작 보병대가 아닌 군 신문사로 배치받게 된다. 자대에서도 그의 행태는 이중적이다. 가슴에는 평화의 상징 뱃지를 달고 헬멧에는 'Born to kill'이라는 살벌한 문구를 새겨둔다. 

조커의 이중성은 이야기 전체의 이중성과 통한다. 훈련소에서는 '쓸모없는' 훈련병들을 살상병기로 훈련시킨다고 하지만 정작 가장 많이 등장하는 훈련장면은 제식훈련이다. 유격훈련이나 사격도 일부 등장하지만 영화는 제식훈련이나 구보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제식과 구보는 정작 전쟁터에서는 가장 쓸모없는 행위다. 심지어 유격훈련 장면에서 등장하는 통나무 넘기 진흙탕 행군, 줄타기 등은 정글에서 쓰이는 이동훈련이다. 이 영화는 베트남전을 그린 영화 중 거의 유일하게 정글 전투가 등장하지 않는다. 베트남전을 시가전으로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풀 메탈 자켓'에서는 거의 모든 것들이 부조리하고 앞뒤가 맞지 않다. 원인은 다른 결과로 향하고 의도는 다른 행위로 이어진다. 이것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앞뒤가 맞지 않음=조작'으로 향한다. 베트남 전쟁은 처음부터 앞뒤가 맞지 않았고 말도 안되는 전쟁이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훈련소에서 구보 중 부르는 교관의 구호(이것을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도 썩 유쾌하진 않다. 다소 민망한 '사내들의 음란한 농담'을 옮긴 구호는 이 전쟁이 남성적이며 불순했음을 증명한다. 전쟁터에 나가서도 이들이 하는 일은 현지 창녀를 싼값에 꼬셔서 노는 것이다. 이 전쟁은 앞뒤가 맞지 않다. 그 중 '앞'은 불순한 침략과 지배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작전이 마무리 되고 불길을 배경삼아 행군하는 군인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미키마우스'가 등장한다. 내내 음란했던 미군의 행각은 일이 해결되자 '미키마우스'로 바뀐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미키마우스의 속에 이상한 것이 들어있을 거라는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이다(실제로 월트디즈니의 최근 행보는 가히 '침략자'나 '정복자'의 모양새라고 볼 수 있다) 

'풀 메탈 자켓'과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최소 5~10년의 시간차를 두고 있다. 두 영화의 유일한 공통점은 '조커'가 등장한다는 것뿐이다. .그나마 이 조커도 많이 다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나 악마성을 발현하는 조커가 있는가 하면 죽이겠다고 말하지만 죽이지 못하는 조커도 있다. 두 조커가 거의 유일하게 닮은 점은 '양면성'이다. 토드 필립스의 영화 속 조커(호아킨 피닉스)는 사실상 아서 플렉과 다른 자아라고 봐도 좋다. 그 안에는 억눌리고 뒤틀린 자아가 있고 자신만만하고 폭력적인 자아도 있다. DC코믹스 속 빌런 '조커'도 이중성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그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광대의 외향을 하고 무서운 짓을 저지른다.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은 선하거나 좋은 의미가 아니다. 유쾌한 행위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테러리즘으로 이어진다. '조커'는 거대한 아이러니의 상징이다. '풀 메탈 자켓'의 조커를 관찰하는 일은 히어로물 역사상 최고 인기 빌런 '조커'의 기원을 찾는 일과 같다. 

토드 필립스 영화 '조커'의 배경은 대략 1980년대다. 이때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을 때다. 때문에 '조커'에서 베트남전쟁을 읽는 일은 다소 무리가 있다. 전쟁에서 5년 이상 지난 시점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일은 어렵다. 이것은 말 그대로 '베트남전과 1980년대를 관통한 미국인'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다만 그 트라우마를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은 '풀 메탈 자켓'이 1987년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시기(1985~1990년)에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가 많이 나왔다('플래툰', '7월 4일생', '야곱의 사다리' 등). 역사적으로 큰 사건은 영화로 만들기 좋은 소재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영화가 '전쟁의 애국심'이 아닌 '전쟁의 트라우마'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라우마에 대한 영화가 많았다는 것은 1980년대 미국인이 느꼈을 정서와 통한다. 

그래서 토드 필립스의 '조커' 속 아서 플렉에게는 영화가 보여주진 않았지만 전쟁 트라우마가 어떤 형태로든 작용했을 것이다. 아서 플렉이 참전을 했건, 그러지 않았건 표면과 다른 실체, 의도와 다른 결과는 '조커'라는 괴물을 탄생시키기 좋은 여건이다. 어쩌면 그가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 때 고담시 어느 극장에서는 '풀 메탈 자켓'이 개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실제로 '킬러=조커'의 공식이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서 플렉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DC코믹스 속 '조커'는 1940년에 첫 등장했다). '풀 메탈 자켓'에 조커를 가져온 것은 코믹스를 염두한 영화의 의도였으리라. 그리고 그 의도를 이어받은 것이 토드 필립스의 '조커'였을거라 추정해본다. '조커'와 '풀 메탈 자켓'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히스 레저)는 배트맨(크리스천 베일)에게 동질감을 강조한다. "내가 있어야 네가 존재한다"는 뉘앙스다. 나는 늘 "혼란스런 시대에는 평범한 사람이 투사가 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평범한 가장이 억울한 사고로 자식을 잃자 거리의 시위대가 되는 경우다. 또 혼란스런 시대에는 재야의 인재가 등장해 세상을 바로 잡는다. 우리는 그를 '히어로'라고 부른다. 히어로가 등장하면 따라 나오는 것이 '빌런'이다. 울트론을 만든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언급하지 않아도 좋다. 강한 권력은 언제나 도전을 받는다는 사실만 인지하면 된다. 히어로와 빌린언 그렇게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부조리한 연결고리다. 베트남전을 일으킨 미국에서도 볼 수 있고 웃기고 싶은 광끼에서도 볼 수 있는 고리다. 전쟁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된 부조리한 행위다. 그 행위는 혼란스럽고 사람들은 혼돈의 얼굴에 고통받는다. 불순한 의도, 부조리, 혼돈. 이 모든 것이 결합된 캐릭터가 '조커'다. '풀 메탈 자켓'은 베트남 전쟁을 포함한 거의 모든 전쟁의 기승전결이다. 그 기승전결을 사람의 형태로 만든 게 토드 필립스의 '조커' 속 아서 플렉/조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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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칭송받을 수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에서 그것은 '차별' 당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우리나라에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겪는 일이기도 하고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들, 성소수자들도 일상에서 '개성'이라며 인정받는 것보다는 차별당하고 무시 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가정이나 학교 혹은 직장에서 차별 당하고 무시 당한 존재들은 그것에 좌절에 무너지거나 그것을 극복한다. 다만 아주 소수의 경우로, 차별 당한 존재들은 괴물이 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 중 많은 이야기들은 이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대체 "괴물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을 한다. 토드 필립스의 영화 '조커'는 히어로무비 역사상 최고의 빌런으로 손꼽히는 조커를 우리의 일상 곁으로 끌어내린다. 가히 무자비한 짓이라고 볼 수 있다. 

2.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직업은 '출장 광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나왔고 어머니 페니 플렉(프랜시스 콘로이)의 집에 얹혀서 지낸다(우편함에 적힌 집주인 명의가 페니 플렉이다). 광대(혹은 코미디언)라는 직업은 앞서 말한대로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슬프거나 아픈 일이 있어도 늘 웃어야 한다. 심지어 광대는 울고 있어도 웃는 표정이고, 반대로 웃고 있어도 우는 표정이다. 다시 말해 광대는 늘 차별에 노출돼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예능 토크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코미디언들이 길을 걷다 초등학생들에게 반말로 이름 불리는 경우를 여럿 들을 수 있다(과장되기도 했겠지만 영 일어나지 않는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TV에 나와서 웃음을 주는 직업들에게 이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넓은 범주에서 '차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조금만 과격한 시대에 살았다면 무명 코미디언도 길을 가다 나쁜 아이들에게 이유없이 얻어 터질 수 있다. 

3. 아서는 광대라는 위치에 걸맞게 뭐든지 반대다. 남들과 웃음코드도 다르고 출구로 들어가려고 한다. 일부러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괴롭거나 슬플때마다 웃는다(병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분명 다수와 다른 사람이며 그 때문에 무시당하고 얻어터진다. 그동안 조커의 매력은 이런 아이러니에서 있었다. 끔찍한 짓을 하면서 웃고 공포와 혼란을 조장하지만 정작 본인은 춤을 춘다. 영화는 이런 아이러니의 기원을 '광대'라는 분장에서 찾고 있다. '배트맨'이나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대목을 영화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 '조커'는 지극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다. 유약했던 아서 플렉이 어떻게 영화 사상 최악의 빌런으로 거듭나는지 보여주는게 이 영화의 목적이다. 그가 광대라는 점과 주목받고 싶어한다는 점, 그리고 웨인 가문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마지막은 배트맨 영화들에서 언급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그것들을 찾아가는데 현미경을 가져다 댄 것처럼 아주 성실하다.

4.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충실하게 짜여진 캐릭터와 함께 그것을 표현해내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다. 이 영화는 배우가 영화 그 자체인 작품이다. 호아킨 피닉스는 목소리와 표정뿐 아니라 몸짓과 골격 하나까지 완벽하게 아서 플렉,(a.k.a. 조커)이 된다. 눈은 울면서 입만 웃거나 눈은 화내면서 입은 미소짓는 표정들은 가히 압권이다. 여기에 굽은 어깨뼈나 기이하게 패인 갈비뼈는 캐릭터의 기괴함을 더 잘 표현해준다. 정말 "이 배우는 뼈도 연기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아서 플렉을 지나 조커에 이르렀을때 변화도 놀랍다. 영화 내내 "이토록 유약한 남자가 어떻게 조커가 될까" 궁금했다. 그런데 아서 플렉이 조커에 이르는 과정은 일종의 '해방'이다. 어깨뼈를 짓누를 정도의 차별적 시선과 갈비뼈를 패일 정도로 만드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정말로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다름이 아니라 '윤리 ·도덕적으로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는 이 모든 것,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는 해방을 모두 연기해낸다. 가히 놀라운 연기다. 

5. 상업영화적으로 생각하자면 조커를 더 조커답게 할 대항마(빌런)는 반드시 필요할 수 있다. 록키(실베스터 스탤론)에게는 이반 드라코(돌프 룬드그렌)가 있고(혹자들은 '아폴로' 얘기를 하는데 나는 이반 드라코다) 슈퍼맨에게는 렉스 루터가 있다. 서도철 형사에게는 조태오가 있고 마석도 형사에게는 장첸이 있다. 강백호에게는 서태웅이 있고 하니에게는 나애리가 있다. 주인공이 있다면 그를 돋보이게 할 빌런은 있는 것이 좋다.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이끄는 방법이다. 그런데 '조커'에서는 그런 대항마가 없다. 토마스 웨인(브레트 컬렌)조차 조연에 불과하고 브루스 웨인은 아직 꼬마다.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의 역할도 크지 않다. 이 영화에는 오직 조커만 있다. '빌런이 있다'는 발상은 앞서 말한대로 상업영화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상업영화적인 것'을 포기했을까? 그저 어려운 길을 갔다고 보는게 맞다. 빌런을 포기하고 조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해한다. 그와 동시에 "너희 중에도 조커가 있다"며 조커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이보다 무시무시한 저주가 있을까?

6. '조커'는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많다. 영화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의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가진 자들의 오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있다. 혼돈과 불안의 도시 고담은 '배트맨'에도 등장한 대목이다. 그 시대에 대해 영화는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본다. 혼돈과 불안의 시대에서 무정부주의적 행동은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 그것은 마치 폭탄처럼 잠자코 있다가 뇌관을 건드리기만 하면 겉잡을 수 없이 터질 것이다. 분명 이것을 두고 '(부자) 트럼프 시대에 대한 경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만 다소 구차해보여서 거기까지 가진 않겠다. 빈부격차와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는 정말로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시절부터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조커가 등장하는 과정이 '모던 타임즈'를 참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7. 결론: 영화 '조커'가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봐서 반갑긴 했지만 조커의 매력이 반감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커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크나이트'에서처럼 '이유없이 미친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조커'를 계기로 '이유있는 미친놈'이 됐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유가 있어도 미친놈은 미친놈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고 조커의 매력을 더 배가시킨 것은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힘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히스 레저의 조커마저 지워버리게 만들었다. 이제는 히스 레저의 조커를 떠나보내도 될 것 같다. 


추신1) 만약 사람들이 "영화 '조커'를 아이맥스로 보는게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가능하면 큰 화면가 짱짱한 사운드에서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 '조커'는 스케일이 큰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한 개인에게 집중하는 영화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 분노, 좌절, 광기 등 오만 감정에 온전히 몰입하는데 큰 화면과 짱짱한 사운드는 큰 도움이 된다. '조커' 덕분에 아이맥스의 새로운 활용 가치를 알게 됐다. 그리고 한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스펙타클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추신2) 끝내주는 노래가 많이 나온다. 예고편 영상에도 들어간 지미 듀란티의 'Smile'도 그렇고 엔딩크레딧 때 흘러나온 'Send in the Clowns'도 좋다. 그런데 후자에 나온 곡은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 음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대결은 지금부터다. '조커'를 보면서 김연아를 떠올릴까, 아니면 김연아를 보면서 '조커'를 떠올릴까. 그게 궁금해서 이 글을 쓰기 전에 김연아 소치 동계올림픽 경기영상을 찾아봤다. ...그래도 아직은 김연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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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배트맨 v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을 상당히 싫어한다. 이것저것 마구 담으려는 욕심에 150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다 담지 못해서 이야기가 넘쳐버렸다. 배트맨과 슈퍼맨,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의 유구한 역사를 한껏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된다. 


2. 사실 '배트맨 v 슈퍼맨'과 이어지는 이야기인줄도 몰랐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 대목에서는 확실히 현명한 선택을 했다. DC코믹스의 유구한 역사를 의식하지 않고 마치 이 한 편으로 이야기를 완결 지으려는 시도를 한다. 물론 앞 이야기인 '배트맨 v 슈퍼맨'에 몇 가지 부분을 빚지고 있고 다음 이야기인 '저스티스 리그'에도 빚진 부분이 있지만 이것은 아주 최소한에 해당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것 하나로 온전한 이야기가 된다. 


3. 여기에는 분명 부작용도 따른다. 가장 큰 부작용은 '나쁜 놈'들이 '나쁜 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광고 카피에 등장한 '나쁜 놈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이상한 놈들이 세상을 구한다'로 정정해야 할 판이다. 이 역시 2시간에 완결될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가지치기'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다. DC코믹스의 매력덩어리 빌런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대목이겠지만 떡밥에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영화 한 편을 바란 관객에게는 괜찮은 결과다. 아무래도 '매력적인 빌런'과 '떡밥에 치우치지 않는 영화'를 동시에 바라는 건 무리인 모양이다. 


4. 완결을 위해 이야기에도 많은 부분 생략을 한다. 극 초반부에 이 영화는 상당 부분 설명을 생략한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로 매끄럽게 흐름을 이어갈 바에 콘솔게임처럼 캐릭터 소개하고 곧장 빌런 잡으러 간다. 영화를 보다가도 "이렇게 빨리 악당이 등장하나?" 싶을 정도다. 흡사 '아내의 유혹'과 비슷한 이야기 전개 속도다. 


5. 의외로 곳곳에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릭 플래그(조엘 킨너만)와 준 문(카라 델러바인), 조커(자레드 레토)와 할리 퀸(마고 로비), 데드샷(윌 스미스)과 딸(셰일린 피에르 딕슨), 카타나(후쿠하라 카렌)와 남편, 디아블로(제이 에르난데스)와 가족. 이 정도면 거의 '러브 액츄얼리' 수준이다. 못해도 '데드풀'의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만한 사랑꾼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특히 조커. ...악당이 주인공이랍시고 이렇게 곳곳에서 사랑이 꽃피는데 애시당초 작가가 '나쁜 놈'이라는 이들의 정체성에 관심이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6. 다행스러운 것은 아만다 웰러 국장(비올라 데이비스)이라는 이 영화 최고의 악당이 등장해서 영화 보는 맛은 난다. 아마도 영화를 통틀어 최고 악역이지 않을까 싶다. 


7. 의외로 할리 퀸과 함께 매력발산 경쟁을 펼치는 캐릭터가 '인챈트리스'다. 이야기 초반에 굉장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이 캐릭터는 '오빠 버프'로 2단계 변신을 하자 코스튬이 폭망한다. 좋게 말하자면 켄 러셀의 '백사의 전설'에서 봤을법한 코스튬이고 안 좋게 말하자면 '파워레인저'에 나오는 웃음소리 호탕한 악당 두목과 닮은 코스튬이다. 정신이 번쩍 든 부분은 '인챈트리스 2단계 변신'이다. 


8.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조커는 사실상 '사랑꾼'이다. 익살스러웠던 잭 니콜슨의 조커나 오싹했던 히스 레저의 조커와 비교한다면 자레드 레토의 조커는 막 사랑스러울 지경이다. 아마 역대 조커 중 가장 많은 여성팬을 거느리지 않을까 싶다. ..."조커한테 바란게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자레드 레토의 조커는 '사랑꾼'이다. 


9. 액션이 다소 답답할 수 있다. 빌런 졸개들이 너무 시꺼멓고 날도 밤이라서 뭐 어떻게 싸우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악당 빌런과 '우중혈투'는 흡사 '어벤져스'의 '원샷 떼거지 장면'만큼 멋있다. ...최소한 '에이지오브울트론'보다는 확실히 멋있다. 


10. 이 영화가 세간의 혹평을 받고 있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디씨 영화 중 가장 큰 성과를 거뒀다. 바로 제일 웃기다는 점이다. 돌발행동의 일인자 할리 퀸이나 뜬금 개그캐릭인 킬러크록(애디왈레이 애키누에이아그바제이.... 이름 뭐 이래?)의 예능감은 이야기를 더욱 말랑말랑하게 해준다. 


11. 한마디로 이 영화는 이야기의 완결성을 위해 캐릭터의 매력을 버린 경우다. 그 점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영화를 봤다. 그런데 슬립낫(애덤 비치)은... 해도 너무했다. 


12. 결론: 히어로물의 계속되는 떡밥에 지친다면 이건 그럭저럭 괜찮은 소품이다. 애시당초 빌런을 주인공으로 했는데 이 영화 바깥에서 이들이 대단한 역할을 할거라는 기대도 안 가졌다. 각 빌런들의 유구한 역사와 정체성을 2시간 안에 담아내는건 애시당초 무리였다. 그래서 이들은 적당히 예능하고 사라지는게 순서였다. 어차피 이 영화가 속편 계획이 잡히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주인공 할 일은 없다. '영화'라는 구조 속에서 이들은 욕심부리지 않고 딱 그들 각자의 역할만 했다. ...슬립낫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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