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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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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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9.10.21
    [스포주의] '버티고' 초간단 리뷰
  2. 2019.03.15
    [스포주의] '우상' 초간단 리뷰 (1)
  3. 2018.10.15
    '메기' 초간단 리뷰
  4. 2016.05.10
    [조금 스포] '곡성' 초간단 리뷰 (4)
  5. 2015.12.07
    천우희&박소담 - 성실한 나라의 여배우들 (1)
  6. 2015.08.05
    천우희의 영역, 넘볼 수 없는 세계의 구축 (3)
  7. 2015.08.05
    '뷰티 인사이드' 초간단 리뷰
  8. 2015.07.03
    '손님' 초간단 리뷰 (1)
  9. 2014.10.22
    '카트' - 25년만에 돌아온 '파업전야', 변한 것 아무것도 없다
  10. 2014.04.30
    '한공주'&세월호 참사 - 어른들의 질서에 부서진 아이들

1. 어떤 영화에 대해서, 그 배경이나 인물의 체험이 실제 내가 겪은 것과 일치한다고 둘을 대입해 리얼리티를 검증하는 행위는 영화에게 다소 가혹할 수 있다. 미장센과 연출을 위해 영화는 때로 리얼리티와 논리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 '버티고'에 리얼리티를 따지고 묻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그 점을 잘 알지만 '버티고'에게서는 도저히 리얼리티를 떼어놓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위로'라는 키워드를 내걸었고 '위로'를 하기 위해서는 '공감'이 우선시 돼야 하기 때문이다. '버티고'를 다 보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들었던 첫 번째 의문은 "대체 이 이야기에 몇 명의 직장인이 공감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나는 회의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2. '버티고'는 계약직 여직원 서영(천우희)이 회사생활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보여주고 건물외벽 청소부 관우(정재광)를 통해 이를 극복해 치유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영이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는 일이다. 영화는 서영의 스트레스를 현기증과 이명증상 등으로 표현한다. 이 증상은 어릴때 아버지에게 맞아 고막이 다친 것에서 비롯됐다. 즉 현기증과 이명증상의 원인은 회사 외부에 있다. 서영이 회사 내부에서 겪는 갈등의 주된 요소는 진수(유태오)와의 은밀한 사내연애에서 비롯된다(여기에 '계약직의 불안'까지 더해졌지만 서영이 그것에 직접적인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대목은 없다). 은밀한 사내연애와 애인의 비밀은 역시 일과 무관한 것이다. 서영이 회사에서 하는 일은 계약직 웹 디자이너다. 그녀가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지점은,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다. 

3. 서영의 스트레스는 직장인의 보편적인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이다. 그리고 직장, 업무와는 직접적인 연관도 없이 특수하다. 여기에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끌어오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계약직의 불안'이라도 보편적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극 중 등장하는 회사(아마도 협찬사)인 웹캐시는 개인적으로 일 때문에 몇 번 통화했던 회사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이며 B2B 핀테크 플랫폼 등을 개발한다.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광고에도 여러번 등장하는 '경리나라'가 있다. '버티고' 일단 내가 가진 정보로 저 회사가 소프트웨어 기업임을 알고 영화를 봤다.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대기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즉 이들은 대형 SI기업(삼성SDS, LG CNS, SK C&C 등)의 제1하청이다. 클라이언트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굉장한 회사다. 애시당초 영화는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관심이 없다는 듯 '업무적 스트레스'는 전혀 표현하지 않는다. 

4. 이 회사를 대기업이 아닌 '제1하청'이라 놓고 본다면 계약직이라서 받는 스트레스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대기업도 아니고 아무리 좋게 봐야 중견기업이라면 재계약 안 된 것이 계단에 앉아서 펑펑 울 일인가. 조금 규모가 작은 회사라면 충분히 정규직으로 취직할 수 있고 '디자이너' 특성상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좋다. 설령 영화 속 이 회사가 삼성이나 LG, SK 수준의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걔들은 계약직 쓰는 대신 하청업체에 맡겨버린다. 계약직이 재계약에 목을 매려면 '평생직장'의 개념이 서있어야 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것은 이제는 새로운 일도 아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라면 오히려 부장급이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5. 소프트웨어 기업인 것을 알고 봐서 그런지 회사 분위기도 납득이 가지 않는 수준이다. 모든 직원들은 정장에 넥타이를 하고 있고 탕비실에는 여직원들 밖에 없다. 분명 '개발2팀'이라는 부서도 존재했는데 누가 봐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서영이 다니느 회사의 분위기만 본다면 경직되고 딱딱한 여의도 금융기업 모양새지만 그런 회사도 아니다. 당최 뭐하는 회사인지 알 수가 없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서영이 다니는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저 '보편적 직장'의 형태를 그리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 결과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기업이 돼버렸다. 당연히 현재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얻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6. 백번 양보해서 이 영화가 '고층건물에 갇힌 현대인들의 불안을 이야기한 영화'라고 정의내려보자. 건물외벽청소부가 서영을 위로한다는 지점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같은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서영의 직장이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난처해진다. 영화의 핵심 키워드가 '고층건물'이라면 광화문이나 여의도, 테헤란로처럼 고층건물이 우거진 서울 중심부를 배경으로 해야 했다. 오히려 바다 보이는 뻥뚫린 뷰라면 고층건물 중에서도 '다닐만한 고층건물'이다. 그렇게 전망 좋은 직장 42층에서 근무하면서 답답함과 현기증을 느끼는 것이, 지금 이 글을 쓰는 광화문 어딘가 건물 19층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미세먼지 뿌연 인왕산이다.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였으면 좋겠다. 

7. 관우의 누나 관순(이수인)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다. 영화에서는 관우가 서영에게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관우가 서영은 우연한 자리에서 만났지만 관우는 서영에게서 죽은 누나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관순 역시 폭행 당해서 살해됐을 것이며 관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우가 서영에게 갖는 감정이 동정에서 사랑으로 발전한 것일 수 있고 관우가 관순에게 가졌던 감정이 가족애 이상일 수 있다. 어느 쪽에 대한 감정이건 관우의 감정은 '외줄'을 탄 혼란스러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는데 영화에서는 이야기를 안 해준다. 아쉽다. 

8. 결론: "대체 이 영화가 왜 이럴까"라는 의문은 전계수 감독의 인터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전계수 감독은 이 영화를 2000년에 일본에서 직장생활 할 당시 구상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2000년의 일본 직장문화에서 전혀 진화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결론에 이른다. 2019년 한국의 직장문화는 당연히 변했고 젊은이들의 사고도 변했다. '고증'이라는 것은 사극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대물에서도 고증은 필요하며 이것은 사극의 고증보다 더 중요하다. 사극의 고증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가들뿐이지만 현대물의 고증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동시대를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버티고'는 '공감대'를 얻는 지점에서 신중하지 못한 영화다.


추신)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오류: 서영의 직장이 42층에 있다는 점은 이 건물은 최소 42층 이상이라는 소리다. 그 정도 고층건물이라면 외벽청소할 때 잘 고정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간다. 높은 지점일수록 바람이 거세기 때문이다. 관우가 타고 내려온 그네를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 32층 건물이었다. ...이건 '영화적 허용'이라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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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화'가 어렵다는 사실은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대화는 어렵다. 이 말인 즉슨 '언어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늘 고민하는 것 중 하나: 언어는 문명을 만들었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고정관념을 만들고 관계에 장벽을 세워버렸다.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프랭크'나 정윤석 감독의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를 보면 언어의 벽을 뛰어넘거나 언어의 벽에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대화는 소통의 창구가 되지만 그 대화 때문에 벽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저마다 생존을 위해 겉과 속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 최근 유행하는 '짤' 중에 '사회생활 짤'이 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다른 표정을 짓는 것이다. 대화에서 상당부분은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르다. 

2. 쇼윈도에 비치는 상품은 실제로 구입해 만져보기 전까지는 제품의 성능과 문제점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쇼윈도는 제품을 조금 과장해서 보여준다. 다시 말해 유리창은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보여주는 것 그 이상은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영화 '우상'에서 유리창은 이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 영화에서 유리창은 아주 많은 부분 등장한다. 첫 장면에서 귀국한 구명회(한석규)는 참모진들과 공항에서 만난다. 이때 참모진들은 공항 바깥에 있고 명회는 공항 안에 있다. 유리창을 통해 서로 확인했지만 정작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우상'은 끊임없이 이런 식이다. 유리창을 통해 상대가 보이면 들리지 않고 들리면 보이지 않는다. 유리창은 상대를 식별하게 하지만 상대와 대화할 수는 없다. 유리창은 '보이는 벽'이기 때문이다. 

3. 그렇다면 '우상'과 '유리창'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것의 의미는 드러난다. 명회는 청중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 그런데 그는 프롬프터의 한글과 달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명회와 청중은 당연히 소통이 되지 않을 것이다. 명회와 청중 사이에는 유리로 된 막이 하나 있다(헐리우드 영화에서 본 방탄유리처럼 생겼다). 청중에게 명회는 '우상'과 같은 존재다. 이 영화는 유중식(설경구)과 최련화(천우희)가 등장하지만 사실상 극을 이끄는 축은 구명회다. 그에게 영화 내내 이어진 이야기는 가장 큰 위기이자 재기의 드라마인 셈이다. 그러나 청중들은 그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청중들이 듣게 되고 알고 있는 것은 포장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4. '우상'에 선거가 등장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셜명된다. 선거는 포장된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포장된 이미지에 속하서 투표했다가 추악한 실체를 마주하는 경험은 유권자라면 이미 여러번 했다. 당선된 정치인들 역시 사악한 메시지를 그럴듯한 언어로 포장해 국민들에게 전달하곤 한다(또 한 번 언어는 벽이 된다). 예를 들어 전두환의 호헌 선포문도 그럴 듯한 명분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사악한 선언문이다. 정치는 늘 그런 식으로 자라왔다. 그리고 그 최고봉에 있는 것이 바로 '선거'다. 

5. 결국 이 영화에서 유리창은 우상을 보는 창구가 된다. 그런데 유리창으로 마주한 우상은 꽤 여러 사람이다. 그는 명회나 준상, 련화가 될 수 있고, 명회의 아들(조병규)이나 황우식 변호사(유승목)도 모두 창문을 두고 대화를 한다. 앞서 나는 명회가 우상이 됐다고 말했지만 그 의미는 파괴됐다. 그렇다면 우상은 누구인가. 그 의미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있다. 카메라는 연설하는 명회를 지나 청중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그 청중(관객)을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관객이다. 영화 속 관객과 영화 바깥의 관객은 스크린이라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결국 우상은 창문을 사이에 둔 청중과 관객, 불특정 다수의 모두가 우상이다. 이 말은 대화가 단절되고 부조리한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우상시 되고 숭배되지만 실체에는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결국 이 영화는 대화와 단절에 대한 이야기다.

6. 이쯤에서 의문: 도대체 이 이야기는 '우상'이라는 키워드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영화 '우상'은 뺑소니 사고로 사람을 죽인 아들의 아버지 명회, 그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중식, 그리고 사건의 열쇠가 되는 련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포스터에 얼굴 박힌 세 분이다). 이들은 저마다 '우상'과 연관이 돼있다. 명회는 스스로 우상이 된 자, 중식은 우상을 파괴한 자, 련화는 우상이었던 자. 모두가 우상이면서 각자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각자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된다. 사실 이들은 제대로 대화가 된 적이 없다. 다시 한 번 유리창 이야기를 하자면, 중식의 집에서 명회가 몰래 단서를 빼내다 창문 밖을 바라본다. 이때 또 다른 창문에 중식이 있다. 명회는 중식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식의 시점에서 그 창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유기적이지만 단절돼있다. 숭배되고 이미지화 됐지만 그 실체에는 관심이 없는 것과 같다. 

7. 우상은 결국 숭배하지 않는 자에 의해 파괴된다. 이 행위는 목을 자르는 것으로 묘사된다. 극성 기독교인들이 절에 침입해서 불상의 목을 자르는 소식은 흔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목을 자르는 일은 정체성(얼굴)을 지우는 일, 즉 이미지를 지우는 일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살인은 얼굴을 지우는 것으로 묘사된다(영화에서 중식의 아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우상'의 세계관에서는 대화의 단절과 같다. 얼굴이 없는 자와는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우상'은 관계를 맺고 대화하지만 사실은 단절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영화 속 청중이기도 하며 영화 밖 관객이기도 하다. 

8. 결론: 영화 '우상'은 굉장히 설계가 잘돼있다.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모든 키워드들이 짜맞춰진다. 그 짜맞춰진 키워드는 대화의 단절과 타인에 대한 무의식적 폭력에 대해 처절할 정도로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이수진 감독의 전작 '한공주'에서 보여준 부조리의 실체를 향해 접근하는 것과 같다. 부조리가 그토록 처절했다면 그 실체는 얼마나 더 처절할 것인가. '우상'은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통증과 같다. 


추신1) 마지막 청중씬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해봤다. 프랑스 누벨바그 시절 영화들처럼 영화가 관객들과 거리를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도 했고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에반게리온' 극장판처럼 그냥 폭주하는 장면도 연상됐다. 그런 기교로 이해할 장면은 아니었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소름돋게 다가온다. ...그래, 이 장면은 소름돋아야 맞는거다.

추신2) 중식은 우상을 파괴하는 의미로 광화문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 폭탄테러를 해 목을 자른다. 이는 무당이 했던 "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의 목을 베야 한다"는 말을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에서 몇 걸음만 더 들어가면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다. 왕의 목을 치지 않고 장군의 목을 친 이유가 아직도 궁금하다. 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이순신 장군의 목에 폭탄을 설치하는 것보다 세종대왕의 동상에 폭탄을 설치하는게 더 쉽다. 아직도 그게 제일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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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23 01:30 address edit/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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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옥섭 감독의 영화 '메기'는 일종의 해방구와 같다. 전형성과 익숙함에 갇혀있던 최근의 영화들에게 오랜만에 안겨주는 '신선함'에 가까웠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이야기를 쫓아가며 온전히 이야기를 탐닉하는 경험은 "아직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그런데 이야기의 자유만큼 해석의 자유도 주어져 있는지 모르겠다. 참 난처하게도,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큰 산을 넘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토르'의 헤임달(이드리스 엘바)처럼 영화의 문 앞을 지키고 서서 "어디 나를 넘고 갈테면 가봐라"는 식으로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 이것은 검은색 바탕에 붉은 글씨로 작게, 단 일곱 글자만 등장한다. 그런데 그것은 영화 내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글자는 '국가인권위원회'라는 말이다. 

2. 내가 아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영화들'을 떠올려보자. '시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영화들, 말 그대로 인권이 억압받는 부조리한 사회의 일면을 바라본 영화들이었다. 재미있는 영화들도 많았지만 다 보고 돌아서면 사은품처럼 '생각할 꺼리'를 한 무더기 안겨주는 영화들이었다. 그런데 '메기'는 이 영화들과 많이 다르다. '인권'이라는 키워드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어느 병원에서 남녀의 성관계 장면이 엑스레이에 찍혀 발견되고 간호사 윤영(이주영)은 자신과 남자친구(구교환)의 사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병원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지만 병원에는 그보다 더 다이내믹한 일들이 벌어진다. 

3. 이런 이야기에서 쉽게 '인권'이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내긴 어렵다. 게다가 앞서 만들어진 '시선' 시리즈들과도 굉장히 다른 영화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이야기에서 '인권'이라는 키워드를 지워볼까 했다. 그러다 발견한 어느 인터뷰. 이 이야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옥섭 감독과 구교환 프로듀서에게 먼저 제안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 당혹스러웠다.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취업난과 빈곤, 데이트폭력 등의 문제가 '인권'의 전부일까? 큰 줄기도 없이 단편적으로 인권을 이야기한 영화라면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이 영화는 분명 잘 만든 영화다. 그렇다면 내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니깐 '메기'를 이해하는 일은 '숨은인권찾기'와 같다. 

4. 우선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인권'이라는 키워드가 아닌, 이야기의 키워드 몇 개를 알아보자. 병원(회사), 싱크홀, 메기, 데이트폭력 등이다. 이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회사와 싱크홀이다. 윤영은 병원에 다닌다. 분명 종합병원처럼 생겼지만 일반적인 병원과는 모양새가 다르다. 재활병원 내지는 요양병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대단히 바빠보이진 않는다. 고상하지만 다소 고압적인 부원장(문소리)이 병원의 실세지만 이 관계는 온전히 갑을관계로 형성되지 않는다. 심지어 병원의 전직원들이 아파서 결근했을때 두 사람은 버디무비에 가까운 호흡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윤영의 회사는 이상하다. 여기에 이상한 일이 하나 더 생긴다. 대한민국 곳곳에 싱크홀이 생기고, 청년들은 싱크홀을 메우는 일에 대거 채용된다. 일자리가 부족한 청년들이 국가적 재앙에 일자리를 얻게 된 셈이다. '이상한 사건'에 양념을 치는 사람도 등장한다. 잠깐 지나간 그는 싱크홀 메우는 걸 구경하겠다는 여성 운전자다. 이 존재감 없는 출연자는 이상한 사건에 양념을 친다. 

5. 싱크홀과 병원은 영화의 세계관을 이상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니깐 '메기'의 세계는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일들 투성이다. 그런데 그 이상한 세계, 어딘가 낯이 익다. 우리가 다니는 회사는 부조리하고 이상한 일들 투성이다. 직장상사는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를 일들을 시킨다. 게다가 별 도움도 안될 일들에 명분을 내세워 그것을 하게 한다. 공무원이 하는 일은 그리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 역시 합리적이라기 보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며 때로는 남의 불행을 머금은 정책이 나오거나 남을 배려하지 않는 정책이 나온다. 싱크홀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세상처럼 말이다. 비상식적인, 이상한 세계는 결국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한 부분인 셈이다. 

6. 그런데 여기에는 '저항'의 메시지가 없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고 살지만 이 청년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 안에서 티격 댈 뿐이다. 이것은 부당하다기 보다는 우리의 일상처럼 익숙한 것들이다. 우리는 얼마나 이상한 세상에서 이상하게 사는가. 합리적인 것. 다수를 이롭게 하고 소수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바라보면 세상은 이상한 것 투성이다. 데이트 폭력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끔찍하고 두려운 것이지만 가해자는 "그럴수도 있지" 혹은 "그땐 사정이 있었어"라며 자각하지 못한다. 데이트 폭력은 이상한 세계의 구체적인 사례였다. 

7. 심지어 이 이상한 세계를 바라보는 관찰자는 메기(우리가 아는 그 생선)다. 윤영이 일하는 병원의 병실에서 길러지는 메기(천우희)는 윤영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전한다. 대체 왜 가물치도 아니고 쏘가리도 아닌 메기인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 역시 '이상한 것'의 정점이라고 여겨진다. 지금 이 글에서 여러 번 이야기한 것 같지만 또 한 번 강조한다. '메기'는 이상한 영화다. 정말 이상한 영화다. 

8. 결론: 앞서 말한대로 '메기'는 단편적으로 보면 국가인권위원회의 메시지가 곳곳에 보인다. 하지만 그 파편같은 상황들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이상함'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즉 이 영화에서 '인권'이라는 키워드가 드러남은 나무를 바라보는데 있다. 나무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숲을 바라보면 기괴하게 뒤틀린 마녀의 숲이 보일 것이다. 그것이 뿌리깊게 박힌 우리의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는 머지 않아 구멍 속으로 빠질 것이다. '메기'는 이상한 나무들이 살고 있는 마녀의 숲과 같은 영화다. 


추신) 이 영화에서 최고의 명장면이 뭐냐고 묻는다면 두 명의 이주영이 마주보고 대화하는 장면일 것이다. 언제고 두 명의 이주영이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입장에서는 엄청 반가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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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시골마을에서 텍사스 사막같은 고립감이 느껴질 줄은 몰랐다. 심지어 텍사스의 사막이나 크리스탈 레이크보다 더 깊고 복잡하며 정교하다. '곡성'의 배경은 꽤 넓어 보이지만 이것은 거대한 미로와 같다. 


2. 이야기가 정교한 탑을 쌓고 잘 설계돼있지만 의외로 생략이 많다. 돌이켜보면 나홍진의 전작 '황해'에서도 굉장한 생략이 있었다. '곡성'은 '황해' 못지 않게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곡성'의 생략은 어눌해서 빼먹은 생략이 아니라 "주절주절 설명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몰아쳐야지"라는 뚝심이다. 그래서 '곡성'은 설명이 부족한 대신 그만큼 더 관객의 숨통을 조른다. 


3. 다행스러운 것은 '황해'와 달리 '곡성'은 설명의 부재가 이야기의 구조를 해치진 않는다. 많은 부분을 알려주진 않지만 그 자체로도 이야기는 완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략은 이 이야기를 영화 바깥으로 끄집어내지 않는다. 영화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영화 안에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치 인물들이 곡성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것처럼, 이야기도 '곡성' 안에 머물러있다. 


4. '곡성'은 여러가지 면에서 나홍진의 필모 중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선 나홍진의 이야기 중 가장 굴곡이 심하다. 그동안 나홍진의 영화는 하나의 구조만을 두고 몰아붙이는 뚝심을 보였지만 '곡성'은 인물구조의 변화가 심한 가운데 몰아붙인다. 나홍진이 진화한 것이다. 


5. 그리고 역대 나홍진의 영화 중 가장 웃기다. 아마 몇 개의 한국 코미디영화를 갖다놔도 그거보단 웃길 것이다. 이것은 온전히 곽도원의 공이 크다. 그는 웃길 때와 진지할 때를 잘 나눠서 연기한다. 물론 이 분위기가 나뉘는 이음새는 마감처리가 완벽하다. 


6. '곡성'은 나홍진의 영화 중 가장 어두운 엔딩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추격자'나 '황해' 모두 밝지 않은 결말에 이르렀다면 '곡성'은 이 둘을 뛰어넘게 어두운 결말이다. 심지어 관객은 경우에 따라 '미스트'급의 공허와 허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7. 배우들의 연기가 발군이다. 특히 아역배우 김환희의 연기는 '도가니' 이후 오랜만에 'YWCA어머니회'같은 시민단체의 걱정을 살만한 연기다. 분명 촬영장에는 아동심리치료사가 있었을거라 생각된다. 조금 과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린다 블레어에 필적할만한 연기다. 


8. 쿠니무라 준은 남의 나라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곽도원이 불이었다면 쿠니무라 준은 칼을 품은 얼음이다. 둘이 만나는 순간 영화는 제대로 빛이 난다. 


9. '곡성'은 결국 '의심'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아마 이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보면 재밌는 글이 나올 것 같다. ...개봉하고 좀 지나면 써야겠다. 


10. 결론: 분명 헐리우드에서 찾을 영화다. '진화한 나홍진'이라면 대한민국에 두기엔 아까울 수 있다. 그러니 어서 봉준호, 김지운, 박찬욱 따라서 헐리우드로 꺼지길 바란다. 



추신) 아는 동생이 스태프로 참여한 건 알았는데 저렇게 중요한 일을 한 줄은 몰랐다. ...평소에 연락 좀 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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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좋아요 2016.05.11 22:09 address edit/delete reply

    매번 좋은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 필력이 너무 좋으세요. 곡성 보고 오는길에 등에 식은땀 흘리며 글 읽고 있습니다.
    "의심"을 주제로한 글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DAISHI ROMANCE 2016.05.12 01:01 신고 address edit/delete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ㄷㄷ

      곡성 개봉하고 좀 지나면 써 볼 생각입니다 ㅋ

  2. BlogIcon 해룡 2016.05.12 03:00 address edit/delete reply

    필력이 어설프게 과장되지 않고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적고 싶었는데 윗분도 같은 말을..!

  3. ㅎㅁㅎ 2016.07.26 17:41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우연히 들어와서 읽게 되었는데 정말 필력이 좋으시네요. 핵심만 쏙쏙.






배우의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 영국 국립극장에서 의상감수와 연기를 병행하며 오래전부터 연기를 준비해 온 콜린 퍼스도, 어린 시절 아역모델로 시작해 카메라에 익숙해졌던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집에서 놀다가 영화감독인 형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한 류승범도, 모두 훌륭한 연기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들이 연기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있어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는 배우들이다. ...물론 모든 배우들은 그렇게 연기를 한다. 


배우가 인기를 얻는 길에는 정답이 없다. 아이돌의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에까지 영역을 넓힌 설현도, TV드라마에서 영화 조연으로 서서히 인기를 얻은 크리스 프랫도, 빛 한 번 못 보고 한물 가나 싶었는데 철갑옷 입은 재벌역할 만나서 전성기 찾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저마다 방법은 다르지만 어쨌든 스타가 됐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두 배우, 천우희와 박소담은 아주 평범한 방법으로 배우가 됐다. 그것은 간호사가 간호대학 나오는 것, 자동차 생산라인 근로자가 자동차공학과 나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대단히 새로운 방법으로 스타가 됐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방법이지만 유독 그녀들은 대단히 '희귀한 스타'들이다. 




10대때부터 단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천우희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다. 2009년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는 짧은 분량이었지만 장면 특유의 기괴한 감각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극의 분위기를 살린다. 이후 '이파네마 소년'과 '뻑킹 세븐틴' 등 영화에 얼굴을 비추다 2011년 '써니'의 일명 '본드걸'로 출연한 후 주목받기 시작한다. 천우희에게 '써니'는 분명 큰 기회였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2011년 '써니' 이후 그녀는 2013년까지 영화 '코리아', '26년'의 특별출연이나 '사이에서'같은 옴니버스 영화에 출연한다. 그러다 운명의 2014년, 그녀는 연기인생의 중요한 두 작품인 '우아한 거짓말'과 '한공주'를 만난다. 대중들은 그때부터 '천.우.희'라는 이름 세글자를 기억하게 된다.


이제 천우희는 스타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조급하지 않다. "물 들어올때 노 저어라"는 말은 천우희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같았다. '한공주' 이후 그녀가 선택한 영화 '카트'다. 염정아, 문소리, 김영애 등 거물급 선배들의 틈에서 연기한 그녀는 자신이 돋보일 기회가 많지 않은 작품임에도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 이후 '손님'과 '뷰티인사이드' 역시 '한공주'만큼 그녀를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사실상 천우희라는 이름 석자로 작품을 책임진건 '한공주'가 유일했다는 것이다.




연기자의 엘리트 코스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한 박소담은 2013년 영화 '소녀'와 '잉투기'의 조연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된다. 장편과 단편 가리지 않고 작은 역할부터 시작한 박소담은 지난해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에서 첫 주연을 맡게 된다. 대중들이 박소담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영화가 흥행에서 실패하며 생각보다 큰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박소담에게는 굵직한 기회들이 여럿 찾아오게 된다. '사도'와 '베테랑', '쎄씨봉', '검은 사제들' 등 대작들에 연이어 이름을 올리며 "이 여배우가 누구냐"는 기대감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도', '베테랑', '쎄씨봉'에서도 그녀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거나 아니면 대형 배우들의 틈에 낀 작은 역할만을 맡는다. '검은 사제들'이 개봉하기 전, 온스타일의 드라마 '처음이라서'에 민호, 김민재, 조혜정, 정유진, 이이경 등과 출연하지만 케이블 채널 드라마다 보니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 개봉한 '검은 사제들'은 사실 박소담의 영화는 아니다. 포스터에서부터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김윤석과 강동원의 영화다. 박소담은 말 그대로 '조연'이다. 하지만 그녀가 연기한 이영신은 굉장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영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사실상 '검은 사제들'은 천우희의 '써니'처럼 박소담에게 중요한 작품인 셈이다.




두 배우는 특별할 것 없이 연기를 시작했다. 천우희는 아역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지만 대학 진학 후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간 천우희는 학업을 병행하며 작은 역할로 경험을 쌓는다(작은 역할이지만 어른이 되고 첫 작품에서 노출연기까지 감행한다). 박소담 역시 대학 4학년 취업반처럼 연극원 4학년때부터 작은 역할로 작품에 들어간다. 


배우건 가수건 '무명시절'을 갖는건 그리 특별한게 아니다. 대다수의 스타들이 무명시절을 거쳐 자리에 올랐고 아직도 무명시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무명시절을 거쳐 스타가 되는 경우에는 어떤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딱 맞는 역할을 우연찮게 만나거나 연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오는 기회이기도 하다.


천우희와 박소담이 얻은 기회는 여전히 작은 역할, 작은 영화다. 많은 대중이 오랫동안 마주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니다. 아마 누군가는 그것이 기회인줄도 모르고 지나쳤겠지만 두 배우는 그것을 기회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아직 오지 않은 기회를 만들어서 잡아버린 격이다.




두 배우가 오지 않은 기회를 만들어서 잡은데는 탄탄한 기본기와 감각이 조화를 이룬 탓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연기는 배워서 되는 사람이 있고 그냥 끼가 있어서 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맞는 길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표현의 기본기와 캐릭터를 이해하는 감각이 어우러졌을때다. 천우희와 박소담은 이 조화를 이룬 여배우들이다. 


어쩌면 이것이 두 여배우가 '작은 역할'을 고집하며 서두르지 않았던 이유기도 할 것이다. 어떤 캐릭터라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이미 배우에겐 '작은 역할'이 아니다. 주인공 못지 않게 캐릭터들 각자의 삶이 있고 세계가 있다. 두 여배우들, 혹은 우리가 '씬스틸러'라고 부르는 많은 배우들은 그 삶과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해낸다. 즉 천우희와 박소담은 우리가 아는 씬스틸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배우인 것이다. 


원래 스타가 되는 것은 연기력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다. 이슈를 불러올 수 있는 스타성과 관객을 끌어당길 티켓파워가 겸비돼야 스타 여배우가 되는 것이다. 천우희와 박소담은 여전히 이슈메이커로서 검증받아야 하고 티켓파워도 미지수다. 하지만 이들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됐다. 그것은 오로지 안정된 연기력과 기다림만으로 이룩한 성과다. 거기다가 이들은 앞으로 해야 할 역할, 보여줄 것이 더 많은 배우들이다. 




그래서 천우희에게 '해어화'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한효주, 유연석과 함께 출연하는 이 작품은 사실상 천우희의 상업영화 첫 주연작이다. '손님'의 티켓파워를 류승룡과 이성민이 책임졌다면 '해어화'는 세 사람의 이름값으로 티켓을 책임져야 하는 영화다. 박소담은 이제 영역을 넓혀 연극 '렛미인'으로 무대에 선다. 학창시절에나 해봤을 연극이지만 일반 대중 앞에서는 처음 선보일 것이다. 박소담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큰 기회다. 그녀는 주연배우로서 두번째 기회를 연극무대에서 맞이하게 됐다.


20대 여배우는 여전히 기근이고 한국영화는 남성중심이지만 재능있고 성실한 두 여배우가 앞으로 보여줄 모습은 관객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하다. 그리고 이들의 행보와 역할을 대하는 자세는 연기를 공부하는 지망생들이라면 참고해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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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길동 2015.12.10 06:23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 글입니다.






일전에 나는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20대 여배우'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었다(http://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7873165). 그리고 그보다 앞서 나는 하손김(하지원, 손예진, 김하늘) 이후 한국영화를 이끌 여배우 트로이카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http://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7697402). 두 게시물의 특징을 살펴보면 나는 '여배우 트로이카'를 묻기 위해 후보군을 선정하는 작업에서 '천우희'라는 배우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의 노련한 연기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티켓파워나 스타성에 있어서는 아직 물음표가 남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이끌어 갈 스타로 남기에 천우희는 아직 모자르다는게 나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설문조사에서는 완전 다른 결과가 나왔다. 영화와 드라마, CF 등을 주름잡는 동년배의 여배우들을 누르고 천우희는 압도적 스코어로 1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의 판단착오다. 스타로서 천우희에 대해 내가 굉장히 과소평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대해 나의 잘못된 판단임을 인정한다. 사실 천우희에 대해 연구하기에는 아직 텍스트가 부족하다.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그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를 찾는게 쉽지 않다. 하지만 한 작품에서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꾹꾹 눌러담아 연기하는 천우희의 내공을 꾸역꾸역 끄집어내 글로 풀어보겠다. 




천우희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배우다. 여배우들의 향연이었던 '써니'에서 그녀는 강소라, 심은경, 민효린 같은 스타들을 받쳐주는 조연 캐릭터였다. 물론 그 특유의 어둡고 거친 감성이 잘 드러나면서 세간의 관심을 얻기에 충분했지만 천우희를 관심있게 보기에는 배우가 너무 많았다. 마치 '인셉션'에서 엘렌 페이지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천우희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단발성이 되는 듯 했다. 물론 이 영화 덕분에 '마더'에서 깨알같이 나타났던 천우희를 찾아본 사람들도 일부 있었지만 천우희는 아직 많은 것을 감춘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써니' 이후 그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긴 것, 더 정확히는 그녀에 대한 '포텐'이 폭발한 것은 바로 '한공주'다. 영화 전체를 이끄는 1인 주연으로 그녀는 관객의 가슴에 돌덩이를 앉히게 하는 훌륭한 연기를 해낸다. 영화 속 한공주는 이 극악의 환경에서 섣불리 감정이 폭발하지 않는다. 한공주의 가장 강력한 한방, 소름돋는 연기는 끔찍한 기억을 머금고 덤덤하게 지어대는 표정이다. 그 표정은 결코 끔찍한 기억을 잊은 표정이 아니다. 포스터에 보여지는 저 덤덤한 무표정에는 끔찍한 기억을 억지로 숨기고 있는 한공주의 여린 벽이 느껴진다. 천우희는 이 어려운 표정을 영화 내내 짓고 있다. 그것도 아주 한결같이...




'한공주' 이후 이제 본격적으로 천우희가 주목받는 듯 했다. 이 정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으면 대형스타가 되는게 맞다. 그러나 여전히 '천우희 주연'의 영화를 보는 일은 어렵다. '한공주' 이후 그녀가 출연한 '카트'나 '손님'같은 작품은 여러 명의 배우들이 함께 하는 영화다. 


'카트'에서는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김강우 같은 대스타들의 틈에서, 과거 '써니'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찾아야 했다. '손님'에서는 이성민과 류승룡이라는 대배우들의 틈에서 자신을 감추고 극에 맞는 연기를 해야 했다. 최근작 '뷰티인사이드'에서도 그녀는 수많은 '우진' 중 한 명이었다.


언듯 그녀는 스스로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하는건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젠 가장 주목받는 배우가 됐지만 주목받지 않는 자리에서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다. 앞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곡성'이나 '해어화'에서도 엄청난 배우들의 틈에서 연기를 한다. 




굳이 천우희 단독 주연작을 찾자면 '출중한 여자' 정도가 있겠지만 큰 스크린에서 관객을 만난 영화가 아닌 이상 열외로 둘 수 밖에 없다. 천우희는 충분히 승부처에서 한방을 걸 수 있는 파괴력이 있지만 대배우들과 앙상블을 추구하고 있다. 


천우희의 앙상블, 사실 배우가 모노드라마를 하지 않는 이상 '앙상블'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른 배우와 함께 연기하며 장면의 특성,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고 감추는 것을 판단해야 한다. 물론 감독이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가 상황을 이해하고 완급조절을 한다면 현장에서 여러 사람이 편해질 수 있고, 관객도 편하게 볼 수 있다. 


천우희의 앙상블은 이미 여러 작품에서 검증이 됐다. 그녀는 어떤 대배우와 연기하건 어떤 신예와 연기하건 자기 역할을 해낸다. 사실 천우희의 스타성이나 트렌드가 완성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젊은 여배우 가운데 오롯이 연기력만으로 자신의 스타성을 구축하는 배우가 몇이나 될 지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 때문에 나는 천우희의 스타성을 인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세간의 이목을 끌지 않는다. 단지 그녀의 연기만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참 건강하게 성장하는 여배우다. 




하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아직 천우희는 자신의 이름값만으로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배우가 아니다. 그래서 천우희는 '여배우 트로이카'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천우희는 트로이카가 아닌 아주 독보적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것이다.


'천우희의 영역'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흔히 천우희 또래 '여배우의 영역'은 미모를 바탕으로 인기를 얻어 스타가 되거나 연기를 바탕으로 여주인공 옆을 지키는 조연이 되는 경우 정도다. 물론 미모에 연기력을 더해 롱런하는 배우들도 있었지만 대중들이 기억하는건 결국 여배우의 미모였다. 


천우희의 영역은 연기를 바탕으로 평판을 넓혀 스타가 되는 영역이다. 마치 홍보비 몇 푼 없었는데 입소문 타서 흥행하는 영화와 같은 모양새다. 정말로, 이제,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과제는 '티켓파워'다. 이 무시할 수 없는 과제를 그녀가 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귀한 여배우를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추신) 천우희의 소속사 '나무엑터스'는 많은 스타들(문근영, 김소연, 유준상, 홍은희, 유지태, 김효진, 김향기, 박건형, 김주혁 등)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배우 매니지먼트 중 손 꼽히는 대형 기획사지만 정작 배우를 스타로 만드는데 별 관심이 없는 회사다. 10년전 소속 여배우였던 이은주의 사망사건 이후 김종도 대표는 회사의 이익보다 배우들이 행복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무엑터스의 신인배우들은 스타가 되는 속도가 상당히 더디다. 그래도 사고 한 번 안 치고, 비호감짓 안 하고, 착한 일 많이 하는, 좋은 배우들이 많은 회사다. 개인적으로 이 회사 소속 배우들을 다 좋아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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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랩스타 2015.08.16 09:53 address edit/delete reply

    잘보고 갑니다. 진짜 한국 영화계를 이끌 재목이라고 생각해요 천우희 배우..

  2. BlogIcon 지나다 2015.09.20 02:58 address edit/delete reply

    '우리는 정말 귀한 여배우를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 와닿는군요. 어떤 매체, 어떤 장르에서건 그녀의 연기를 볼 수 있다면야 가릴 것없이 다 좋겠지만, 특히 영화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쭉 봤으면 싶은 배우인 것 같네요. 그래서 다음 행보가 너무나도 기대가 됩니다. 천우희씨 말고도 앞으로도 우리나라 영화계에 이런 참배우들이 많아졌으면 싶은 바램입니다..^^

  3. BlogIcon 강경훈 2015.11.07 20:17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1. 여러가지로 이와이 슌지의 멜로가 생각난다. 피사체를 감싸는 강렬하고 따스한 역광, 투박하지 않고 부드러운 핸드헬드, 틀에 구애받지 않고 감정으로 인물을 잡아내는 시선. 그리고 느리지만 켜켜히 쌓아내는 이야기 전개, 사건보다 인물에 중심을 준 연출 등 이와이 슌지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2. 게다가 플롯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떠올린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사랑이야기, 능력으로 인한 갈등과 화해 등. 즉 '뷰티 인사이드'는 이와이 슌지 식으로 풀어낸 '시간을 달리는 소녀' 정도로 설명하는게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표절이라던지 베끼기는 아니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긴 하지만 엄연히 창작물이고, 꽤 괜찮은 창작물이다. 


3. 시종일관 섬세하게 인물들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우진이가 몇 명이건 영화는 나레이션과 몇 가지 장치를 통해 우진을 하나로 묶어버린다.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관객은 우진에 대한 일체감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4. 영화에서 가장 조마조마했던 부분은 이수(한효주)가 약을 먹을때다. 영화를 보면서 "혹시나 불치병 드립치면 작가를 죽여버릴거야"라고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5. 영화나 기타 이야기 속 많은 초능력자들은 저마다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뷰티인사이드'는 우진의 핸디캡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저건 엄연한 '초능력'이다. '엑스맨'의 미스틱처럼 의도해서 변할 수는 없지만 우진이 저 재능을 살려 CIA나 MI6 등 정보기관에 취직하면 재미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 결론: 국산 멜로는 어느 순간 '현실멜로'를 중심으로 흘렀다. 그 와중에 이런 잘 만든 '판타지멜로'가 등장한 건 반가운 일이다. 



추신1) 긴 리뷰를 써볼 생각이라 초간단 리뷰를 정말 초간단하게 썼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방식이라 좀 쑥스러운 리뷰가 될 것 같다.


추신2) 리뷰에 넘버링 하는 거 내가 하기 이전에 누가 한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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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러는 분위기"라는 진리를 지키는 몇 안되는 국산호러다. 많은 국산호러영화 감독들이 "호러는 분위기"라는 진리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호러는 분위기!"


2. 게다가 "공포는 비극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도 잘 따르고 있다. 아주 비극적인 호러영화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한, 모두의 비극이다.


3. 그 와중에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잘 만든 신파극이 초장에 웃기듯 초반에 웃기는 호러도 나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4. 단, 피의 복수가 벌어지는 장면이 생각보다 심심하다. 예상하건대 더 찍어놓고도 등급이나 다른 사정으로 인해 수위를 대폭 낮춘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 이렇게 잘 잡아놓고 이 중요한 장면을 섭섭하게 찍을리가 없다. 어서 디렉터스컷을 내놓길 바란다. 디렉터스컷 안 내놓으면 손님이 찾아갈 것이다.


5. 류승룡이나 이성민, 천우희 등 명불허전 배우들의 듬직한 연기가 영화의 수준을 한껏 높여준다. 그 가운데 이준 역시 거물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배우들은 흠 잡을데가 없다.


6. 사실 이 영화에서 기대한 배우는 역시 '이민지'다. 포스터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으나 그녀는 대사 한마디 없이 리액션만 한다. 리액션도 아주 훌륭하게 잘한다.


7. 사실 이 영화는 정말 잔인한 호러영화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극악무도한 호러영화들도 지키던 불문율에 대해 이 영화는 아주 가차없다. 그 장면은 영화의 결말에 등장한다. ...잔인하지는 않다.


8. 어쨌든 이 영화에서 최고 개고생한건 아역배우들이다. 모든 아역배우들, 특히 영남이(구승현)에게 박수를 보낸다. 


9. 엔딩크레딧을 보다가 궁금한게 크레딧에 라디오DJ, 비서, 노인 등의 역할을 본 거 같다(그 와중에 노인 역할은 전국환 배우가 맡았다). 대체 저들은 어디에 나온거지? 난 졸지도 않았는데...


10. 위 9번의 근거로 봤을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영화는 디렉터스컷이 따로 있다. 디렉터스컷을 내놔라. 진짜 피리들고 손님이 되어 찾아간다.


11. 결론: 기발한 아이디어와 장르적 재미, 공포의 근원을 놓치지 않고 골고루 잡아낸 공포영화다. 최근 몇 년 한국 호러영화의 퀄리티를 감안했을때 이 정도면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단, 중요한 장면에서 에너지를 마음껏 뿜어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추신1) 위 사진은 NG컷인듯 한데 재밌어서 썸네일은 저걸로 한다.


추신2) 극장의 상태고 나발이고 나는 영등포CGV가 제일 좋다. 집에서 걸어갈 거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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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11 04:46 address edit/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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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곶매의 '파업전야'를 본 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충 고3때쯤이었던 것 같다. 연도로 따지면 90년대 후반이다. 개봉 당시는 당연히 못 봤고 당시 자주 놀러갔던 시네마떼끄1/24에서 본 것 같다. 당시 워낙 어리고 철없다 보니 영화의 내용은 그리 공감할 수 없었다. 지금 기억이 나는 건 몹시 사실적이고 날 것의 느낌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꽤 처절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만 해도 한국영화의 사실주의하면 박광수 감독의 영화들만 겨우 기억해낼 수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한편으로 '파업전야'는 꽤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부지영 감독의 '카트'는 마치 '파업전야'의 속편과 같은 영화다. 두 작품은 다른 시대의 다른 산업,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놀랍도록 비슷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장산곶매의 멤버였던 이은 감독은 현재 '카트'의 제작사인 명필름의 대표이사다. 25년전 영화인 '파업전야' 속 처절한 노동자의 투쟁은 25년이 흐른 지금 한 대형마트에서 고스란히 재현됐다. 강산이 두번 반 변했지만 세상에 달라진 것은 없다는 말이다. '카트'는 이미 시작부터 변한 것이 없는 노동자의 삶을 읊조리고 있다. 




'카트'는 포스터에서 느껴지듯이 꽤 따뜻한 영화다. 부당한 처우와 해고통지에 저항하며 권리를 찾는 마트 근로자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면서 동시에 따뜻한 가족애와 진한 동료애의 모습을 그려낸다. 특히 생업에 뛰어든 어머니로써의 모습은 초췌한 그 얼굴들 만큼이나 관객들을 애잔하게 만든다. 이것은 과거 '파업전야'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점이다. 금속공장 노동자들의 처절하고 서슬퍼런 절규와 달리 이들은 투쟁의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표출하는 가운데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카트'의 노동자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수다를 나누며 마치 '투쟁'이 아닌 '놀이'와 같은 파업을 준비한다. '감정노동자'로 일하는 그들이 일하면서 보여준 '가짜 미소'가 아닌 '진짜 미소'를 찾으려는 노력들이다. '카트'는 이 부분을 통해 파업의 의미를 드러낸다. 노동자에게 파업이란 진짜 미소를 찾는 것처럼 인간으로서 권리를 찾는 것이다. 그 권리는 계약직에서 정직원으로 전환 해주거나 임금을 높여준다고 돌아오지 않는다. 노동자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 어찌 보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경영자로서 최소한의 윤리의식만 갖는다면 지켜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그런 경영자가 없으니 문제다. 1990년 '파업전야'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방직공장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焚身)하기 이전부터 경영자의 윤리의식이라는 건 환상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산업은 늘 변해왔다. 1970년대 방직공장부터 1990년대 철강·중공업 위주, 2014년 서비스업 위주. 하지만 늘 같은 문제에 봉착해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며 외쳐댄 것, 동성금속의 200여명 노동자가 기계를 멈추고 투쟁에 나서게 한 것, 더 마트 캐셔와 청소아줌마, 정규직 사원들이 매장을 버리고 거리로 나선 것. 산업은 늘 변했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의 요구는 변하지 않았다. 경제가 발전했을 지언정 우리 삶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카트'가 전하는 소름돋는 메시지다. 



'파업전야'(1990)


앞서 말한대로 '카트'는 '파업전야'가 개봉하고 25년이 지나서야 만들어진 속편같은 영화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파업전야'의 속편은 여러 수십개가 만들어질 수 있다.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절규는 '파업전야' 이후 수십차례 있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기사들의 처우는 '카트'의 사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사례들이다. 이밖에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의 사례 역시 상당한 이슈거리였으며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조는 여전히 광화문 태광그룹 사옥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 측이 주장하는 사측의 위법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이 있다. 위 회사들의 AS기사들은 본사의 이름을 걸고 일하지만 중간에 하도급업체가 끼어있다. 특히 2중, 3중으로 끼어있는 하도급업체는 기사들이 가져가야 할 정당한 댓가를 갉아먹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근로자도, 자영업자로 아닌 이상한 형태로 계약해 4대 보험이 정당한 혜택을 받는 것도 방해하고 있다. 


어떤 기사들의 경우 시급도 아닌 '분급'으로 댓가가 지급돼 일하는 중간에 쉬기라도 하면 고스란히 일당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기사들은 "운전하면서 빵을 먹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밥 먹느라 쉬기라도 하면 받는 돈이 적어진다는 얘기다. 근무복장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강요해 위험한 작업의 경우 안전장치도 착용할 수 없다. 한 설치기사의 경우 안테나 설치를 위해 안전장치도 없이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하다 추락한 사례도 있다. 물론 산재 인정은 받지 못했다. 대체인력 고용도 흔한 일이다. 티브로드의 경우 파업 기간 중 설치 및 보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체인력들이 투입되면서 케이블 방송 설치가 엉망이 됐다고 한다. 노숙농성을 하던 설치기사들은 "파업 끝나고 보수하려면 잔업에 연장근무 다 뛰어야 된다. 난리났다"고 말했다. 



태광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조의 싸움은 어쩌면 '카트' 속 사건보다 더 영화같다.


이처럼 '카트'의 사례들은 매우 흔한 일이다. 그래서 이 모든 사례들을 영화로 만들었다간 007 시리즈를 능가할 '파업시리즈'가 나올 지경이다. 그래서 '카트'는 상징적이고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다. 실제로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건이 그랬다. 비정규직 부당해고와 노조 탄압 등 당시 힘없는 계약직 노동자들의 절규는 처절함 그 자체였다. '카트'는 '파업전야' 이후 현재까지, 25년간 일어난 모든 비정규직의 억울함을 담은 영화다. 


가끔 어떤 영화는 영화 그 이상의 힘을 갖는다. 대표적으로 '도가니'가 기억난다. '카트'는 전국에서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들의 전의(戰意)를 다지게 할 힘을 가지고 있다. 국회에는 '을지로 위원회'라는 곳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중심인 이 모임은 서울 중구 을지로와 상관없이 을(乙)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을 벌이는 국회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와 티브로드 등 노조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자리에 찾아가서 노조를 대변해주고 있다. 분명 이 '을지로 위원회'가 '카트'를 두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정규직 노조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앞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에도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적으로 '카트'는 매우 정교하고 상업적이다. 앞서 말한대로 따뜻한 면도 갖추고 있으며 드라마적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도 보여준다. 하지만 아마 일부 관객들은 결말에서 당황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의 말대로 그 결말은 매우 합리적이며 가장 힘이 있는 결말이다. 관객이 결말의 떨떠름함을 안고 극장문을 나선다면 이 영화는 성공한 것이다. 관객은 그 떨떠름함을 해소하기 위해 '카트'의 실제 사례를 찾을 것이고 이를 통해 홈에버 비정규직의 설움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미없단 얘기가 아니다. 쉽게 말해 재미있는 영화가 열린 결말로 끝을 맺지만 관객의 노력에 따라 결말을 다르게 맺을 수 있다는 소리다.


'카트'는 어깨가 막중한 영화다. 비정규직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한 영화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느 영화보다 이 영화의 개봉이 몹시 설렌다. 이 영화가 가져올 세상의 변화들이 기대된다. 



여담) 영화 속 이슈와 별개로 '카트'의 핫이슈는 역시 EXO의 도경수(a.k.a. D.O)의 출연이다. 극 중 선희(염정아)의 아들로 출연한 도경수군은 공교롭게도 일반 관객들에게 '발연기 논란'을 들을 것 같다. 굳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도경수가 맡은 태영 역은 전형적인 불만많은 사춘기 소년 역할이며 가난 때문에 주눅도 좀 들어있는 역할이다. 시종일관 어둡고 뚱한 표정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혹자는 "표정이 하나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원래 표정이 다양할 수 없는 역할이다. 관객이 그 점을 이해해줄 것 같진 않지만 가능하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반항하듯 소리칠 때 발성은 배우의 발성이라 하기엔 어색한, SM 소속 보컬의 발성이다. 그건 좀 마음에 안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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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공주'와 세월호 참사는 이야기의 맥락부터가 판이하게 다르다. 이 말을 우선 전제로 깔아둬야 필자나 독자 서로 오해가 생길 일은 없을 것 같다. 제각기 다른 곳에서 출발했고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진 이야기는 이야기의 진행과정 내내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마지막에서야 만난다. 하지만 우리가 시선을 아주 멀찌감치 떼어놓고 본다면 두 이야기는 하나의 큰 범주 안에 묶여있게 된다. 그 범주란 폭력적이고 치졸한 어른들의 단면이며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상처투성이 아이들의 무덤덤한 일상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질서


흔히 우리나라는 '전쟁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라고 평가받는다. 그 경제발전에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일한 아버지 세대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분들이 살고자 발버둥 친 덕분에 지금 우리나라는 꽤 살만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그 '살만한 나라'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윤리와 도덕을 져버렸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부정부패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부정부패들에 대해 그것이 발생한 이유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분명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자들이 지금 재벌이 됐고 사회지도층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또 자신들이 쌓은 부를 지키고 싶어할 것이다. 당연한 이치다. 그들이 부를 쌓기 위해 친구도 등졌을 것이고 믿음도 져버렸을 것이다. 또 누군가의 억울한 희생 또한 밟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의 폐허에서 살아남기 위해 습득한 방법 그대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어른들의 질서란 생각보다 가혹하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공부해야 하고 대학가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회사에 입사해서는 일하는 걸로도 모자라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치봐야 하고 결혼은 사랑보다 경제적 사정을 우선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는 결혼 후 낳은 자식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하지만 '한공주'와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진 이야기는 이러한 질서 속에 아이들일 집어넣는 걸로도 모자라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버리기 까지 한다. 어른들이 지켜온 이기적이고 부정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거나 차가운 바다속에 잠기게 된다.




구겨넣어진 아이들


'아이들'이라고 명명했지만 이 역시 범위를 확장시켜보자. 공부에 찌들고 취업, 내 집 마련에 찌든 세상의 모든 청춘들이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청춘의 삶이란 쉼없는 고난의 연속이다. 사색할 여유도 없고 꿈 꿀 여유도 없이 사회의 질서를 쫓기 위한 쉼없는 달리기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꿈도 멀어지고 사색도 멀어지게 된다. 

꿈이란 늘 고난이 따르는 법이라지만 그것이 사회가 만든 고난이어선 안 될 것이다. 흔히들 꿈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고 하면 어른들은 "노력해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올바른 사회라면 그 꿈이 뭐가 됐건 응원하고 지원해줘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그런 점에서 많이 부족한 사회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은 꿈 꿀 권리를 잃어버리게 되고 전쟁 직후부터 내려온 쳇바퀴같은 어른들의 질서 속에 살아가게 된다. 




'한공주'의 이야기를 해보자. 한공주(천우희)는 꿈도 있고 재능도 있는 아이다. 아주 가난하진 않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한공주는 특출나게 모범적인 아이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모난 아이도 아니다. 그런 한공주가 상처를 입게 된 건 또래의 아이들로부터다. 시작은 거기서부터다. 

하지만 영화는 한공주가 상처입는 과정을 거기서 시작하지 않는다. 공주는 상처를 입었지만 나름 씩씩하게 극복하려 한다. 자신을 방어하며 삶을 찾으려 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새 삶을 꾸리려고도 한다. 어른들의 시선은 여전히 가혹하지만 공주는 친구들 덕에 위기를 잊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아물어가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건 어른들이다. 

공주의 상처가 곪아 터졌을 때 어른들의 시선은 냉정하고 가혹했다. 누구 하나 공주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어른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그나마 공주를 지켜주던 담임(조대희) 역시 어른들의 질서에 순응하는 희생양일 뿐이다. 공주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사라지자 공주의 상처는 새 친구들에게도 전염된다. 

세월호 참사 역시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대로다. 회장의 부정함이 부실한 여객선을 들여왔고 선장의 이기심이 아이들을 선실 안에 방치시켰고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버려졌다. 결국 200여명의 아이들이 바다 속에 잠겼다. 200여개의 꿈 역시 사라지게 됐다. 




아이들보다 중요한 어른들의 안위


우리나라는 유교적 질서가 자리잡은 나라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그런 생각들은 곳곳에 남아있다. 유교적 질서에는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필자는 이 나라의 어느 지점에서 이 질서가 아주 극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어른들은 자신의 안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아이들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말로는 아이들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탐욕스런 어른들에게 남의 아이까지 챙길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한공주는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희생됐고 자기 아이만 지키려는 탐욕적인 어른들에 또 한 번 상처입었다. 세월호 속 아이들 역시 수익을 챙기려는 기업인들의 횡포와 자리를 보존하고 시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정부 관료들에 의해 희생됐다. 




아이들을 지켜줄 수 없고, 지키지 않으려는 나라는 어떤 의미일까? 그건 꿈과 미래를 포기한다는 의미다. 뮤지션의 꿈이 있던 한공주, 운동선수와 과학자, 연예인, 정치인을 꿈꿨을 세월호 속 아이들. 또 꿈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에 충실했을 아이들. 우리는 진도 앞바다에 200여개의 꿈을 수장시켰다.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고귀한 꿈을 파묻어 얻으려 한 것은 알량한 자신들의 안위일 뿐이었다. 아이들의 꿈과 미래보다 현재 자신들의 안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런 국가에 과연 미래가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여담) 공직사회의 밑바닥

※ 이 글은 본문과 연관이 있는 듯 하지만 연관이 없을 수도 있고 뭐 아리까리한 글임.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월호 참사는 공직사회의 밑바닥을 보여준 사고다. 물론 '한공주'에서도 만만치 않은 공직사회의 바닥을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에서는 공직사회의 관료주의와 형식, 실적을 중시하는 업무방식이 구조의 속도를 더디게 했고 유가족들의 마음에 대못질을 했다. 그런데 그 대못질을 해댄 만행들을 살펴보면 참 공무원스러운 일들이었다. 상관을 대우하고 서류와 사진을 통해 업적을 남기는 등 말하자니 쪽팔리는 이 상황들은 사실 공직사회의 흔한 일상이다. 


물론 세월호 참사는 어디까지나 별도의 사고원인이 있고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은 따로 있지만 이런 상황과 별개로 공직사회는 분명 각성해야 한다. 그리고 '한공주'에서 보여진대로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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