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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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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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는 전편보다 속편이 더 훌륭한 영화다. 그러나 전편 역시 그 나름대로 매력이 훌륭한 영화다. '터미네이터'는 전편과 속편이 합쳐져서 거대하고 정교한 타임 패러독스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전편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B급 감성이 물씬 풍기는 SF 액션 스릴러가 된다. '터미네이터'가 액션 스릴러로써 정체성을 갖는 방법은 간단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있고 극단적으로 쫓고 쫓기는 것이다. 이 간단한 플롯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쫓는 자는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는 로봇이 됐고 로봇을 등장시키기 위해 미래라는 배경도 끼어들었다. 아마 제임스 카메론도 '터미네이터'가 거대한 유니버스를 갖추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터미네이터'에서 미래는 타임 패러독스와 로봇을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다. 

2. 쫓고 쫓기는 플롯은 단순하지만 아주 재미있다. 그것은 액션 스릴러 장르로써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여지가 있다. 그 '새로운 이야기'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영화 '사냥의 시간'이다.  '사냥의 시간'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쫓기는 청춘들과 쫓는 암살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다. 그리고 충분히 '터미네이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른 노선을 택한다. 오히려 '쫓고 쫓기는' 오래된 플롯을 도구로 삼아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데 쓴다. 이것은 장르영화의 틀 안에 메시지를 녹인 것이며 전작인 '파수꾼'과 장르영화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와 같다. 꽤 어려운 도전을 한 셈이며 그럭저럭 잘 해냈다. 

3. '사냥의 시간'은 배경이 되는 시대부터 의미심장하다. 이 시대는 일단 '가상의 미래'다. 대략 "경제가 어렵다"라는 설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대단히 낯이 익다. 영화에 간간히 등장하는 뉴스들로 미뤄봤을 때 이 시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나라 경제가 파탄난 대한민국이다. 1997년을 살아본 세대라면 영화 속 풍경들이 그리 낯설진 않을 것이다. 물론 IMF의 기억을 되돌려봐도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다. '원화'가 더 이상 가치를 상실하고 달러로 거래하는 시대라면 원 가치는 영화 속 대사처럼 '휴지조각'이 됐다는 의미다. 추측해보건대 영화 속 시대는 IMF 당시 금모으기 등 이것저것 하지 않고 그대로 쭉 살았을 경우 맞이했을 '현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이는 가상의 '미래'가 아닌 가상의 '현재'가 될 수 있다. 

4. IMF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까지 살았다면 정말 나라는 파탄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시대를 사는 젊은이라면 정말 보석상이라도 털지 않는 이상 먹고 살 길이 막막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준호(이제훈)의 일행은 킬러 한(박해수)에게 쫓기기 전부터 이미 쫓기는 삶을 살고 있었다. 때문에 킬러 한에게 쫓기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쫓고 쫓기는' 플롯이 필요했지만 그것은 불확실한 시대 속 청춘들의 삶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도구에 불과했다. 게다가 준호 일행이 도둑질을 하며 훔친 것은 달러였고 한이 찾으려는 것은 하드디스크다. 상징적이긴 하지만 애시당초 둘은 지향점이 다르다. 그래서 곽철용 선생의 말처럼 "이 경우엔 원래 쇼당이 안 붙"는다. 

5. 추격전은 결국 도구로 전락했지만 감독은 최대한 재미를 끌어내려 시도한다. 닌자처럼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한의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 그의 얼굴에는 유독 역광을 심하게 줬고 미세먼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안개와 붉은 조명은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한껏 살려낸다. 특히 몇몇 장면에서는 사소한 리듬을 살려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준호 일행이 주차장에서 차를 훔칠 때 반복되는 자동차 경보음이 긴장감을 더한다. 그리고 준호가 바에서 전화벨 소리를 듣는 장면도 소리의 리듬으로 긴장을 주는 장면이다. '사냥의 시간'에서 추격전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그 한계 속에서 재미를 주려는 시도는 충분히 했다. 그리고 그 시도에 나는 만족한다(물론 '터미네이터'에 비할 바는 아니다). 

6. 극단적인 추격전 끝에 준호는 한에게 죽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한에게 죽은 봉식(조성하)을 쫓는 형 봉수(조성하)의 일행이 한을 쫓아 공격한다. 사냥꾼(=한)이 또 다른 존재의 사냥감이 된 순간이다. 추격전에서 준호는 쫓기는 자이긴 했으나 '주체'였다. 그러나 봉수의 등장으로 준호는 주체의 위치를 빼앗긴다. 그 가운데 준호는 겨우 살아남아 홀로 대만으로 향했다. 그러나 친구들을 모두 잃고 도착한 대만에서 그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애시당초 이 추격전은 준호가 주체인 싸움이 아니었다. 준호의 일행이 훔친 것은 도박장 환전소 금고의 돈이었으나 누구도 그 돈을 쫓진 않았다. 즉 준호와 그 일행들은 모든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자신과 상관도 없는 싸움에 내던져진 것이다. 

7. 결국 혼자 남아 도망친 준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이것은 조금 꼰대같은 결론이 될 수 있다. 준호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를 한을 죽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치 도망치려 한 현실에 피하지 말고 맞서라는 '꼰대'스런 메시지처럼 들린다. 온전히 청춘들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파수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사냥의 시간'은 청춘들의 불안과 좌절에 대해 시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랬다면 영화는 끝에 가서도 시대가 바뀌어야 함을 요구해야 한다. 여느 청춘들처럼 친구들과 있을 때 욕이나 찍찍 해대지만 결국 친구를 좋아하고 가족을 그리워 하는 아이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시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 청춘들 스스로에게 답을 찾을 것을 요구함은 "시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패배선언인지 꼰대의 도피인지 물어보고 싶다(차라리 '패배선언'이라고 하는 것이 덜 비겁해보인다). 

8. 궁금한 장면이 하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2020년 4월 23일 오후 9시16분) 온라인에서 진행 중일 GV를 본다면 다행이겠지만 귀찮아서 그냥 혼자 궁금증으로 남겨둔다. 영화에서는 네 친구 중 상수(박정민)와 기훈(최우식)이 죽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수는 준호의 꿈을 통해 죽었음을 짐작할 뿐이고 기훈은 빈대(김원해)의 대사에서 추측할 뿐이다. 차라리 장호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의 죽는 모습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해가 쉬웠을텐데 굳이 상수와 기훈만 죽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의문스럽다. '친구를 잃었다'와 '친구가 죽었다'는 분명 맥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수와 기훈은 '잃은 것'으로, 장호(안재홍)는 '죽은 것'으로 묘사한다. 장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상실'을 '죽음'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싶었지만 기훈의 죽음은 장호의 죽음 이후에 언급된다(빈대의 대사와 자전거 가게의 상상). 이건 참 궁금한 대목이다. 

9. 결론: 추격전(장르영화)의 재미와 청춘에 대한 관찰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가 보인다. '균형을 잘 잡았는가'라는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보다는 위로와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장르영화의 범주에서 벗어나 이 영화를 보는 일은 피로하다. 과연 세상의 모든 청춘들이 자신을 쫓아오는 킬러와 맞서 싸울만큼 여력이 남아있을까? 킬러를 없애고, 돈을 훔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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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NUPE 2020.04.24 02:4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영광스런 귀환 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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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아닌 사람도 다 아는 사실: 배우는 몸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항상 건강하게 체력을 유지해야 하고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이것은 굳이 액션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덕목이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감정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지치지 않고 연기하려면 체력과 멘탈 관리는 필수적이다. 나는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 그저 연기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감정을 마음껏 뿜어내는 연기보다 감정을 억누르는 연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오래전 영화 '용순'을 봤을 때도 내내 뚱한 표정을 짓고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용순(이수경)의 연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최우식에 대해 떠올린 가장 첫 번째 단어는 '무기력'이었다. 그는 체력이 좋고 건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감정을 마음껏 뿜어내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그는 나보다 건강할 것이며 외향적이고 활기찬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의 그는 놀라울 정도로 무기력하고 절제하고 있다. 사실 그는 동세대의 배우들 중 가장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배우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최우식이라는 배우를 새겨두진 않았다. 드라마의 조연으로 시작해 리얼리티 예능을 전전하며 스타가 되기 위한 거친 길을 걷는 청년일 뿐이었다. 첫 영화 주연작인 '거인'에 출연했을때도 '다시 없을 명연기'를 선보였다고 하지만 독립영화의 한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그 연기가 닿진 않았다. 그는 '거인'으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제36회 청룡영화제 '신인남우상',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 제16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 제2회 들꽃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는 tvN 드라마 '호구의 사랑'에서 첫 주연을 맡는다. 어쩌면 대중에게 다가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으며 '최우식' 이름 석자를 알릴 계기가 됐을 것이다. '거인'의 내실에 이어 대중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우식의 저력을 알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부산행'에서 최우식을 처음 봤을 때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있었다. 극 중 그는 고교 야구부로 등장한다. 누가 봐도 야구부와는 거리가 먼 체격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야구 하는 사람'이라는 그의 역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가 연기한 '영국'은 축구부나 관악부였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트럼펫으로 좀비를 때려잡는다던지). 이런 작용은 꽤 이상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야구부 같지 않은 체격의 배우를 야구부에 앉히고 야구부와 상관없는 역할을 부여한다. 이 작용을 통해 놀랍게도 그는 '완벽한 야구부'가 된다. 관객이 야구부를 의식하지 않게 되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영국'을 야구부로 세뇌시켜버린 것이다. 최우식의 저력은 여기서 등장한다. 놀랍게도 이 배우에게는 뭘 갖다 붙여도 말이 된다. 도화지같은 배우라는 의미다. 

최우식의 '도화지스러움'은 '물괴'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시대 유학자나 도령이 어울릴 것 같은 이 청년은 칼을 들고 무사를 연기한다. 이때 최우식도 '부산행'의 야구부처럼 이상한 어울림을 선사한다. 관객 중 누구도 "최우식이 무사야?"라고 의아해 하는 대신 "최우식이 무사구나"라고 납득할 것이다(영화가 납득하기 어려웠던 지점은 별개의 문제다). 최우식의 무기력함은 이상한 지점에서 또 빛을 발한다. '옥자'와 '마녀'에서 최우식은 정말 재미있다. 냉소적이고 껄렁한 이 역할들은 최우식이 아닌 다른 배우가 했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정도로 완벽한 그림이다. 세보이지 않지만 세고 가진 것 없으면서 건방지다. 이런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은 무기력한 외향과 반대되는 에너지가 뿜어나오면서 얻어낸 결과다. 이것은 최우식이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사실 그는 에너지가 넘치고 그것을 컨트롤 할 줄 아는 배우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에서 최우식을 '기우' 역할에 캐스팅하면서 '무기력한 청년'의 이미지를 노렸다. 이 이야기는 "최우식이 아니면 '기우' 역할을 할 사람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만약 관객들에게 "최우식 필모그라피 중 최고의 영화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기생충'이나 '거인'으로 갈라질 것이다. 작품이 좋았던 탓도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최우식은 억눌려있고 지쳐있다. 이 배우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기력'이며 그것을 이끌어내는 힘은 '절제'다. 최우식은 무기력을 바탕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며 에너지를 바탕으로 무기력을 연기한다. 여기에는 지쳐보이는 쳐진 눈과 왠지 좁을 것 같은 어깨도 한 몫한다(이 배우의 키는 의외로 180cm가 넘는다). 최우식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똑똑한 배우다. 

현재 개봉을 앞둔 최우식의 작품은 '사냥의 시간'과 '경관의 피'(가제)가 있다. '사냥의 시간'은 그렇다 쳐도(어쩐지 윤성현 감독과 어울릴 것 같은 최우식이다) '경관의 피'에서 최우식의 역할은 '형사'인 것으로 보인다(아직 그가 어떤 역할인지 정보가 알려지진 않았다. 시놉시스와 캐스팅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놀랍게도 그는 형사를 연기한 적이 있다(드라마 '특수사건 전담반 TEN'). 오래전 일 때문에 경찰서 강력반을 출입하면서 느꼈지만 최우식 같은 외모의 형사는 없다(머리 쓰는 자리인 정보과에 가도 없다). 이는 최우식뿐 아니라 '잘 생기고 늘씬한 외모의 형사'가 등장하는 모든 작품에 적용하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우식이 연기하는 형사가 꽤 자연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도화지같은 배우이며 뭘 그려도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니 내가 최우식의 외모에 대해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스크린과 사진으로 본 최우식은 마치 조셉 고든 래빗을 떠올린다. 쳐진 눈에 좁은 어깨가 꽤 지쳐보이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로 다재다능한 매력을 선보인다. 그렇다 최우식에게 '한국의 조셉 고든 래빗'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진 않다. '조토끼'는 '조토끼'의 길이 있고 최우식은 최우식의 길이 있다. 최우식의 외모에 대한 편견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외모는 어떤 배우도 가지지 못한 무기이자 장점이다(헐리우드에서도 조셉 고든 래빗이나 가진 무기). 이 배우는 독창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이다. 그는 건강미가 넘치는 동시대의 남자배우들도 하지 못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외모와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장점이 어떻게 발현될지 지켜보는 일은 최우식을 보는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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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블 영화가 성공하고 헐리우드 영화시장을 히어로들이 잠식한 것은 역시 '캐릭터의 힘'이다. 막말로 '피규어 만들어서 팔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야 티켓이 팔리고 돈을 번다. 한국영화에서도 '캐릭터가 힘'이 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마동석이다. '나쁜 녀석들'의 박웅철과 '범죄도시' 마석도 등 그의 마초적이고 머쓱한 매력을 잘 살린 캐릭터는 '캐릭터가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독보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김주환 감독의 영화 '사자'는 오컬트와 격투 액션을 혼합한 '이종 오락영화'다. 어디를 봐도 '돈 벌겠다'며 나온 느낌이 폴폴 난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볼 때 마음가짐은 하나다. "이 영화는 돈을 벌 자격이 충분한가?".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돈을 벌 자격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캐릭터가 매력이 없다. 이것은 배우의 연기를 지적할 문제가 아니다. 캐릭터를 형성하는 것은 배우의 연기와 함께 편집과 의상, 이야기, 조명 등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다. '사자'는 주인공 용후(박서준)의 캐릭터를 구성하는데 있어 시작부터 꼬여있다. 영화의 시작은 용후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앙심이 투철한 용후와 용후 아버지(이승준)의 일상이 그려지고 경찰인 용후 아버지가 사고(혹은 사건)로 목숨을 잃는다. 어린 용후는 신에게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목숨을 잃는다. 인간이 신을 저주하고 증오하는 일은 꽤 신화적이다. 실제로 신화를 모티브로 한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신을 저주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용후의 어린 시절은 충분히 신화적일 수 있었으나 그것과 거리가 멀다. 이것은 이야기 뿐 아니라 연출과 연기, 모든 면에서 해당된다. 

3. 첫 장면을 신화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용후에게 신을 격렬하게 증오할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자'에 등장한 용후의 어린 시절만 보고서는 용후가 신을 미워하고 악마에게 고통받는다는 전개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 힘을 주고 극적인 장치가 가미돼야 할 부분이 대충 퉁치고 넘어갔다는 의미다. 용후가 신을 미워하게 되는 계기는 더 처절하고 잔인해야 했다. 이렇게 시작이 꼬여버리니 그 다음도 쉽게 와닿지 않는다. 갑자기 20년이 훌쩍 지나버리고 용후는 성공한 파이터가 됐다. 어느날 꿈에 아버지가 나오고 손바닥에 상처가 생겼다. 그리고 요괴들이 용후를 괴롭힌다. 왜 하필 그날 꿈을 꾸고 상처가 생기고 요괴가 나타났을까? 여기에 대한 명분도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만약 감독이 어떤 장치를 숨겨놨다면 그건 잘못된 선택이다. 돈 벌려고 만든 영화였다면 이 대목은 직관적으로 눈 앞에 드러나야 했다. 이건 그냥 MBC '서프라이즈'의 나레이션으로 "그러던 어느날~"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4. 용후가 낯선 힘을 쓰는데 있어서도 극적 효과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묠니르를 들지 못하는 토르라던지, 오베다이아에게 아크원자로를 빼앗기는 토니 스타크처럼 말이다. '사자'에서는 지신(우도환)이 안신부(안성기)와 용후를 갈라놓기 위해 수를 쓰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동기가 약하고 예상이 가능한 수준이다. 극적으로 더 짜릿해지도록 이야기를 쓰고 연출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 장면에서 돋보인 것은 귀신 씌인 아이의 연기 뿐이다. 혹시 안신부가 흉기에 찔리고 용후가 클럽으로 향하는 장면이 중요한 지점인지 고민해봤다. 그런데 그것은 극적으로 중요한 지점이 아닌 필연적인 지점이다. 필연적인 지점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중요한 지점은 어설프게 할 바에 빼는 게 나은 지점이다. 기왕 용후에게 계기를 주고 싶었다면 좀 더 드라마가 강했어야 했다. 

5. '사자'는 이처럼 용후의 캐릭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부분이 대충 그려지거나 생략됐다. 그렇다면 그 사라진 부분은 무엇으로 채우느냐, 지신으로 채운다. '검은 주교'라고 불리는 이 사내는 이야기에서 소위 '빌런'의 역할이다. 빌런은 주인공과 갈등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주인공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사자'에서 참 특이한 부분은 빌런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해하고도 빌런이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빌런의 캐릭터를 형성하는데 시간을 할해한 것이 아니다. 빌런이 '세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시간을 할해한다. 이는 의식이나 능력 등을 통해 드러난다. 지신의 능력은 볼 꺼리를 만들지만 그 성격을 규정하진 않는다. 검은 주교의 재단도 너무 자주 등장했다. 나중에는 검은 주교의 등장 장면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6. 다행스럽게도 캐릭터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특히 안신부와 용후의 관계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보다 더 입체적으로 부자관계를 연출한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성격부터 등장씬까지 너무 판타지다. 부자관계이면서 협력자가 되도록 짜놓은 안신부와 용후의 관계는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그 틈새에 놓인 최신부(최우식)도 제 역할을 했다. 다만 캐릭터들 자체의 매력이 없으니 이 관계에 대해서도 더 빠져들기 어렵다. 게다가 영화는 상당 부분을 검은 주교의 재단에 할해하고 있다(그러면서 러닝타임은 120분이 넘는다). 

7. 결론: 소재도 신선하고 발상도 좋은데 그게 너무 전형적으로 전개된다. 게다가 어설픈 개그로 살려보려던 캐릭터의 매력도 시작부터 꼬여서 별 매력이 없다(박서준은 매력있다). '한국형 히어로영화'에 대한 시도는 종종 있어왔다. 확실한 건 아직까지 '가장 잘 만든 한국형 히어로영화'는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인 모양이다(그러고 보니 '사자'의 CG는 '전우치'와 큰 차이를 모르겠다. '전우치'는 10년 전 영화다). 


추신1) 아버지의 등장씬은 말 안해도 엉망이니 더 이상 말하진 않겠다. 

추신2) 이토록 예쁜 박지현은 어쩌다 귀신 씌인 역할만 두 번('곤지암', '사자')을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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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면서도 언급했지만 박사장의 직업이 왜 하필이면 'IT기업 대표이사'인지가 궁금했다. 한국영화에서 재벌을 묘사할 때 보통 재벌가 2~3세 정도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게 묘사하기 쉽고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보다 조금 특별하고, 그래서 더 난해한 'IT기업 CEO'로 캐릭터를 잡는다. 

이 캐릭터가 특별한 이유, IT기업이라면 보통 90년대 중후반 벤처열풍 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인터넷 기업들 살아남은 곳이다. 군사정권 시절 정치권의 압박과 탄압 속에서 기업을 일구기 위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짓도 서슴치 않는 과거 재벌총수들과는 다른 환경이다. 그들은 우선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일 시간이 없다. 생존을 위한 루틴을 만들어야 했고 오직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재벌가 2~3세처럼 안하무인에 느긋한 갑질 캐릭터보다는 자기 세계와 자기영역이 확실한 캐릭터가 영화에 필요했다.  

박사장이 "나는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해"라고 하는 말은 이런 그의 과거를 보여준다. 네이버의 창업자 이해진의 경우 삼성SDS의 직원 출신이다(네이버는 사내벤처로 탄생한 기업이다). 당시 IT기업 중에서는 이런 형태로 탄생한 기업이 많다. 박사장은 사내벤처 출신일 수 있고 아니면 아이디어와 열정만 많은 컴공생일 수 있다. 어쨌든 그의 시작은 '흙수저'까진 아니고 대충 쇠수저나 스댕수저 정도 될 것이다. 그 얘기인 즉슨 IT기업 CEO는 '자수성가형 CEO'임을 의미한다. 어떤 직종이건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기 것을 잃는 걸 특히 더 싫어한다. 1세대 재벌총수들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짓도 서슴치 않았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자기 재산과 회사를 지키려고(물론 잘못된 방법이다). 그렇다면 '선을 넘는 사람'은 자기 루틴을 해치는 사람임과 동시에 자기 영역을 침범한 사람도 해당된다. 

다만 IT기업은 '경영승계'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창업자라도 기업의 경영자로 남는 기간이 그리 길진 않은 편이다.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자도 지금은 해외사업 담당으로 나가있고 김정주 NXC 대표도 주주로서 권리만 행사할 뿐 넥슨의 사업에 관여하진 않는다. 제 아무리 주력사업 분야라도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창업자는 뒤로 빠지기 마련이다. 1세대 벤처기업인들이 세운 회사들은 현재 대부분 전문경영인들이 사업을 책임진다. 

박사장이 창업자인지 전문경영인인지 확실치는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봉준호 감독이 IT기업의 CEO를 일반 제조업 CEO와 똑같이 해석해 창업자가 끝까지 회사를 지키는 것으로 설정했거나 이미 대형 IT기업을 일군 박사장이 재창업해 성공을 거둔 경우다. 후자의 경우라면 박사장은 이전 회사의 급여와 지분으로 이미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재창업한 현재의 회사를 사업궤도에 올려둔, 아주 능력있는 경영인인 것이다. 박사장의 재산규모에 대해 등장한 것은 집과 벤츠 밖에 없다. 집은 위치를 보아하니 성북동 쪽 같다(영화 속 대사들로 유추함). 거기 살 정도라면 보통 재벌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글을 딱히 마무리 지을 말은 없다. 이 글은 "박사장은 왜 하필 IT기업 CEO일까?"에 대해 나름 생각한 내용들이다. 


추신) 스타라이브톡에서 어느 팬이 '박사장의 기생충이라도 되고 싶다'고 플랜카드를 들고 왔다던데....부자들은 뱃속에 기생충 안 살아요(동심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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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 28일 기 작성된 '기생충' 리뷰는 타 커뮤니티에서 봉준호 감독의 당부가 있어 한시적 블라인드 처리됐습니다. 해당 리뷰는 원래 오늘 노출할 계획이었으나 제가 어제 2회차를 보고 나니 리뷰를 일부 수정하고 싶어져서 다시 써서 올렸습니다. '산수경석'과 관련된 내용이 일부 수정됐음을 알립니다. 


1. 겜블을 하면서 패를 다 까발릴 때는 주로 제정신이 아니거나 뭘 해도 자신이 있는 경우다. 이런 거창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화투를 치다가 바닥패에서 싼 것이 나왔을 때 그걸 가지고 있으면 이마에 붙이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그런 면에서 대단히 호기롭다. 부자가족과 가난한 가족이 등장하고 가족희비극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자신의 패를 거의 까발렸다. 이미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생충'에 대해 요르고스 란티모스나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떠올렸다(그런 분위기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 대목에서 이미 자신의 패가 드러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자신의 패를 거의 까발린 듯 하면서도 '스포일러 조심'이라고 당부한다. 뭔가 더 보여줄 것이 남았을까. 영화가 나를 도발한다. 나는 그 도발에 순순히 응했다. 결과는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2. 우선 '기생충'의 시놉시스를 살펴보자. "전원백수로 살 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송강호) 가족.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박사장(이선균) 집으로 향하는 기우.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조여정)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영화는 시놉시스에 대단히 충실하다. 이야기는 부잣집에 고액과외를 가게 된 기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이 가족이 소동을 벌이는 동안 관객들은 "들키지 않을까"라며 조마조마하게 영화를 봐야한다. 그러나 이때의 '조마조마함'은 분위기가 전환되는 후반부에 비하면 애교수준이다. 

3. 공개된 시놉시스는 이 영화의 딱 절반만 이야기하고 있다. 박사장의 저택에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분위기는 서스펜스 스릴러로 급반전된다. 이때도 '봉준호스러운' 엇박자의 유머를 잃진 않지만 마치 지상 500m 외줄 위에서 제기를 차면서 폴라포를 먹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영화는 진행된다. 이것은 에너지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언젠가 크게 터트릴 것임을 선언한 셈이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 관객들은 어렴풋이 짐작할 뿐, 어떤 형태로 분출할 지 알 순 없다. 그래서 이 영화의 긴장감은 더욱 커진다. 사실 이런 것들은 장르영화의 대단히 전형적인 공식이다. ①분위기를 뒤집고 ②갈등과 감정을 쌓다가 ③한 번에 확 터트리는 것. 이야기의 구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패턴은 뻔하다. 그러나 잊지 말자. 상대는 봉준호다.

4. 영화는 클라이막스를 위해 내내 떡밥(복선)을 뿌린다. 보통의 복선이라면 그것이 복선임을 금방 알 수 없지만 '기생충'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야 그게 복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기우가 기정(박소담)에게 "너는 이 집에서 살게 되면 어느 방을 쓰고 싶냐"고 묻자 기정은 "일단 살아보고 얘기하고 싶다"며 웃는다. 흔히 공포영화에서 '죽는 사람'을 말하는 이 공식은 아주 간단하지만 묘하게 비틀어졌다. 그 순간은 '공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박사장의 집에서 쫓겨난 문광(이정은)이 캐리어를 끌고 급하게 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장면 역시 나중에 일어날 반전의 빌미를 제공한다. 말 그대로 마블이 10년동안 뿌릴 떡밥을 100분만에 다 뿌리고 나머지 시간에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 2시간짜리 영화 안에서 그토록 치밀하고 꼼꼼하게 움직인다. 괜히 '봉테일'이 아니다. 

5. '기생충'에서 특이할 점은 다소 과장된 대사들이다. 예고편에서도 드러났지만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아버지, 저는 이게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등이다. 주로 기택이나 기우의 대사가 이런 식인데 이는 등장인물 중 현실감각이 없는 인물들이 말하는 방식이다. 다른 예로 박사장네 아들 다솜 역시 인디언 놀이에 젖어 "오버~"같은 말들을 한다. 그리고 현실감각이 없는 인물들은 선의 양쪽을 모두 본다. 기택은 가족들 중 분노를 토해낸 인물이고 기우는 경계 너머에 처음 발을 들인 인물이다. 그리고 다솜은 박사장네 가족 중 유일하게 비밀을 목격한 인물이다. 자본으로 나눠진 계급의 양극단을 오고 간 인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말투에서 드러난 셈이다. 그게 그렇게 비현실적인지 모르겠지만(그렇다면 너무 가혹하긴 한데) 영화는 "응, 그건 비현실적인 일이야"라고 말한다(문광의 말투도 꽤 과장됐다). 

6. '기생충'은 키워드로 '해석'하듯 풀어보고 싶은 지점이 많다. 예를 들어 '냄새'나 '물', '인디언', '산수경석' 등이다. 최근 '어스'나 '우상' 등의 영화들에 대해 했던 것처럼 키워드를 두고 풀어보고 싶지만 영화는 아주 노골적으로 그것을 방해한다. 이는 기우의 대사 한 마디 "저는 이것이 상징적이라고 생각해요"(잘 기억나지 않지만 '상징적'이라는 단어는 들어갔다)를 통해 완성된다. 이미 영화에서 상징적이라고 못 박은 이상 그것을 상징적으로 정하고 해석하는 것은 영화에게 패배하는 기분이다. 때문에 내가 이 영화에 대해 키워드를 정하고 이해하려는 것은 '패배선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중 일부는 감독의 말을 인용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것이고 다른 일부는 늘 하던대로 '상징적인 해석'을 시도할 것이다. 난 이미 영화에게 졌기 때문이다.

7. '냄새'는 감독의 말대로 '무례함'을 말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너 냄새나"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물은 '빗물'을 통해 표현된다. 박사장네 저택에서 물은 낭만을 즐기는 도구가 되지만 같은 시간 기택의 집에서 물은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 된다. '인디언'은 연교가 지향하는 '미국제'의 상징이자 착취 당해 죽어버린 민족이다. 영화 내내 연교는 어설픈 영어를 쓰고 미국제를 선호한다. 그녀는 '천박한 재벌'의 전형을 보여준다. 당연히 아메리칸 인디언이 당한 착취의 역사도 알지 못한채 문화콘텐츠로 인식할 것이다. 인디언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인디언 덕후가 된 다솜이가 마주한 실체는 착취의 역사와도 다르지 않다. 나는 처음에 민혁(박서준)이 기우에게 선물한 산수경석이 '가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중간에 돌이 물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시멘트를 가지고 만든 가짜 돌쯤으로 여겼다. 감독은 돌의 진위여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나는 여전히 그 돌은 가짜일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진짜건 가짜건 중요하지 않다. 희망의 실체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8. 나는 늘 '한국영화가 재벌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단순했기 때문이다. 마치 "보고 화내라"며 전시한 듯한 인상이었다. 그 맥락에서 벗어난 재벌이 '여교사'의 혜영(유인영)이었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자라서 모두가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믿지만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가차없이 밟아버리는 식이다. '기생충'의 박사장과 연교는 '여교사' 이후 가장 완벽한 재벌묘사다. 박사장은 IT기업의 사장이다. 구체적으로 뭘 하는 회사인지 알 순 없지만 대충 저 정도 재력을 이룬 사람이라면 90년대 후반 벤처열풍에 뛰어들어 살아남은 '벤처 1세대'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재벌과 다르다. 대부분 자수성가형 재벌이라면 군사정권의 험한 시기를 가로질러 살아남아 '깡만 남은' 사람들이다.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하지만 회사를 지키는데는 성공했다. 반면 벤처세대들은 무한경쟁사회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회사를 살린 사람들이다. 일중독이고 독하지만 비윤리와 부도덕은 조금 덜하다. 게다가 자수성가형 재벌인 만큼 안하무인한 성격도 갖지 않았다(이건 주로 곱게 자란 2, 3세대들에 해당된다). 박사장은 그 경계를 잘 타고 있다. 안하무인하진 않지만 자기가 이룬 것을 누리고 사는 일중독자다. 이렇게 디테일한 재벌묘사는 처음 봤다.

9. 연교에 대해 정확한 설명은 없지만 그녀는 재벌의 딸로 추정된다. 굴지의 대기업이라기 보다는 돈만 많은 졸부 정도다. 경영수업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부모와 주변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느긋하게 자랐다. 그러다 사교모임이나 적당한 파티에서 박사장과 만나 연애하다 결혼했을 것이다. 연교는 기택 집안 사람들의 말대로 '착하다'. 거의 호구에 가까울 정도로 눈치가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릴때부터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해"라며 자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도 못할 것이며, 그것이 눈 앞에서 벌어졌을때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연교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10. '기생충'에서 꽤 소름돋고 슬픈 부분은 기택과 '문광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비현실적 사고를 하고 무능력하며 처참한 현실 앞에 놓인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의외로 그들의 과거는 흔한 이야기다. 자영업을 하다가 망해서 대리운전과 발렛파킹을 하다가 백수가 됐고, 혹은 자영업을 하다가 망해서 빚쟁이에 쫓기는 사람. 그 흔한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것은 "너희들은 이렇게 될 일 없을 것 같지?"라며 영화가 보내는 경고처럼 들린다. 기택과 '문광의 남편'이 처한 비현실적 상황은 '언덕 아래에 사는 서민'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게 이 영화의 최대 공포가 아닌가 싶다. 

11. 봉준호 감독은 제작보고회와 칸 영화제, 여러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해 "배우들이 다 한 영화"라고 겸손한 표현을 했다. 정말 배우들이 다 한 영화(혹은 '배우가 훔친 영화')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 배우들은 봉준호 감독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정말 신나게 뛰어논다. 제작보고회와 기자간담회, V라이브에서 배우들의 분위기가 유난히 화기애애해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일거라 생각된다. 팀 분위기가 이토록 좋았기 때문에 훌륭한 앙상블이 나올 수 있었다. 봉 감독의 말이 맞다. 이 영화는 배우들이 다 했다. 그런데 배우들이 다 할 수 있게 멍석 깔아준 것은 봉 감독이 한 일이다. 

12. 결론: '기생충'은 블랙코미디와 스릴러가 어우러진 크로스오버 장르영화다. 유쾌하게 웃다가 심장 졸이다가 놀라 나자빠지는 영화다. 그렇게 신나게 즐기고 극장을 나설 채비를 할 즈음 영화는 관객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그런데 소름돋는 사실은, 사실 영화는 내내 관객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있었다. 관객은 부잣집 동경하다가 자기 집 물에 잠기는 줄 모르는 기택의 가족처럼, 가슴에 칼 꽂히는 줄 모른채 낄낄대며 웃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참 아픈 영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파서 몸부림 칠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부자는 금방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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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ut 2019.05.30 21:37 address edit/delete reply

    영화 보기 전에 수위아저씨 님의 글을 먼저 읽었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영화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2. BlogIcon 아네모네피쉬 2019.06.06 02:4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하고 정말 생각이 비슷하시네요 덕분에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 1번과 재벌에 관한 부분이 그렇습니다. 영화 예고편, 시놉시스만 보고 도대체 어디서 이 영화만의 개성이 있을까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나름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거하게 뒤통수(!)를 맞았죠.

  3. BlogIcon 자스민차향기조아 2019.07.12 12:0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는 기생충 그저 재미있게만 봤어요. 뭐라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잘만들었구나 하면서 말이죠. 그 뭐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을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서 풀어낼 수 있다니 정말 부러운 재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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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러영화에는 몇 가지 '정체성'이라 부를만한 캐릭터들이 있다. 저 옛날 드라큐라나 프랑켄슈타인, 미이라, 늑대인간, 그리고 저주받은 소녀, 혼령, 삐에로 등등. 대충 '캐빈인더우즈'에 보면 다 나오는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마녀'도 있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시작한 이 캐릭터는 흑마술로 사람들을 해치고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그리고 '마녀를 잡아낸다'는 광끼에 젖은 어떤 시대에는 무고한 여성을 마녀로 몰아붙여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마녀는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가진 두려움의 존재이자 핍박과 억압을 받은 아픔의 존재다. 

2.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는 두려움과 아픔의 존재로써 마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락영화'다. 마녀라는 캐릭터는 한국영화로써는 낯설지만 헐리우드 영화나 유럽영화에서 대단히 익숙한 존재다. 그만큼 마녀는 한국식으로 소화됐을때 자칫 대단히 이질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우리의 역사나 가치관에서는 신들린 무당이나 있었지 '마녀'라는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참 다행스럽게도 영화 '마녀'는 이질적인 배경과 이질적인 캐릭터를 한국식으로 녹여내는데 성공한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강한 이질감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아마 그 이질감의 정도를 수치로 측정한다면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 정도가 될 것 같다. 

3. 영화 '마녀'의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야기와 캐릭터가 대단히 익숙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대로 서양의 영화들에서 몇 번은 봤을 캐릭터다. 가장 가깝게 마블 캐릭터인 스칼렛위치(엘리자베스 올슨)의 과거를 캐봐도 엇비슷한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 익숙함은 '식상함'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기묘한 경험이다. 분명 대단히 익숙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매우 신선한 영화다. 아마도 그것은 '한국식'의 힘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이질감'과 '익숙함'이라는 대립되는 요소가 좋은 방향으로 만난 셈이 된다. 다시 말해 마녀의 낯섦과 이야기의 익숙함은 좋은 방향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4. '마녀'가 반가운 이유는 3부작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영화가 어려운 이유를 언급할 때 ①'예술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과몰입'과 ②'프렌차이즈의 부재'를 말한다. 잘 만든 장르영화와 팔아먹기 좋은 프렌차이즈 영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국은 말이 필요없는 장르영화와 프렌차이즈의 천국이며 일본 역시 버블시대의 만화들로 쌓아놓은 콘텐츠가 즐비하다(그리고 중국은 돈으로 이걸 다 사온다). 한국영화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돈을 더 벌어먹기 위해서는 '프렌차이즈'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 기억에 한국영화 중 '프렌차이즈'라고 부를만한 것은 '여고괴담'이나 '조선명탐정'이 전부다. 

5. 그렇다면 '마녀'는 한국형 프렌차이즈로써 가능성이 있을까? 여기에 대한 내 판단은 50:50이다. 우선 캐릭터는 조금 더 가공이 필요하다. 영화를 이끄는 캐릭터인 구자윤(김다미)은 마냥 선하고 정의로운 캐릭터는 아니다. 이 캐릭터가 한차례 크게 변하는 지점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말 그대로 선과 악을 화투패 뒤집듯 보여주는 인물이다. 코믹스의 히어로들 중에서도 이런 면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종종 있어왔다. 구자윤은 그와 같은 지점의 매력을 가진 캐릭터다. 물론 그런 구자윤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마녀 파트2'가 나올 필요가 있다.

6. 그런데 지나치게 어두운 분위기는 프렌차이즈로써 단점이 된다. 우리는 이미 어두운 분위기 때문에 크게 망한 슈퍼히어로 영화를 본 적이 있다(뒤늦게 밝은 모습을 보여봤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어떤 영화인지 언급하진 않겠다). 물론 어두운 분위기가 모두 망하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은 그 어두운 분위기에도 불구하도 대성공을 거뒀다. 물론 거기에는 탄탄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 '마녀'는 이미 분위기 전환을 하기엔 늦었다. 여기서 갑자기 밝아진들 괴상해질게 뻔하다(박훈정 감독이 밝은 영화를 잘 만들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마녀'의 희망은 캐릭터들에 힘을 싣는 것이다.

7.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에는 가능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많다. 우선 메인 포스터에 등장하는 네 캐릭터 모두 가능성이 열려있다. "파트2까지 보면 캐릭터들의 매력이 살 걸?"이라고 강조하듯 영화는 캐릭터들에 대한 '가능성'만 열어놨다. 여기에 구자윤의 친구와 본사의 똘마니들, 정부 측 박사 등등. 마음만 먹으면 재미있게 만들 캐릭터들이 널려있다. 나는 그 캐릭터들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적어도 그건 파트2 정도는 가야 어느 정도 보일 것 같다. 사실 돌이켜보면 '다크나이트' 3부작도 두 번째인 '다크나이트'부터 재미가 있었지, '배트맨 비긴즈'는 평범했다. 

8. 캐릭터에 힘을 싣는 것은 배우들의 몫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가 없다. 특히 주인공인 김다미를 보면서 혹자들은 김고은을 떠올렸다지만 나는 박소담의 시작을 떠올렸다(최애배우와 비교를 허용한 건 다 준거다!!). 박소담은 '검은 사제들' 촬영 당시 악령에 씌은 소녀 영신을 연기했다. 사람이 살면서 악령에 씌일 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신은 대단히 낯선 캐릭터다. 박소담은 그 점에 흥미를 갖고 그것을 즐겼다. 피를 뒤집어 쓴 악령의 모습과 연기 역시 현장에서는 즐겼다고 한다(실제로 박소담은 귀신을 무서워한다). 김다미 역시 생전 겪어볼 일 없는 기이한 능력을 갖는 소녀를 연기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현장을 즐기면서 연기했다. 적어도 박소담 못지 않은 시작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9.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닮은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마녀'를 보고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를 떠올렸다. 다른 점이라면 '마녀'에서는 구자윤의 어린 시절 억압과 고통에 대해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만약 그 과정이 조금 더 자세히 언급됐다면 이 영화는 '캐리'의 프롬파티 못지 않은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카타르시스에 집착하지 않는 눈치다. 구자윤은 막강한 능력을 과시하지만 부숴야 할 벽이 더 남은 것처럼 힘을 아껴둔 분위기다. 박훈정 감독은 "파트1이 잘돼야 뒷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뒷 이야기가 필수적이다. 지금은 똥을 덜 싼 상태다. 아직 변기에 좀 더 앉아있어야 한다.

10. 결론: '마녀'와 '악녀'의 의미에는 조금 차이가 있을지언정 맥락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둘 다 '나쁜 여자'이며 다시 말해 '팜므파탈'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구자윤은 팜므파탈의 정체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저 캐릭터를 의도대로 완성할 수 있다면 상당히 이질적인 팜므파탈을 만날 수 있다. '마녀'에서의 구자윤은 아직 미완의 캐릭터다. 이것은 이 이야기의 뒤가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추신) 최우식이 영어 쓸 때 마다 자꾸 '옥자'가 생각나, 시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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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부산행'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지므로 '부산행'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안 보신 분은 피해주십시오.

 

※ 저도 그냥 재미로 쓴 소설이라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속출할 수 있습니다(제목부터 어디서 많이 봤을겁니다). 그 점 염두해두시기 바랍니다.

 

※ 좀 더 신경을 써서 써보고 싶었는데 "한 편에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보니 이야기를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2편 이상 넘어가면 제가 완결을 못 지을 것 같아 그랬으니 그냥 스토리만 봐주십시오.




그날 이후 7년이 흘렀다. 부산은 많은 피난민으로 혼잡해졌다. 난리를 피해 온 사람들 덕에 부산의 인구는 1300만명에 이르렀고 해외에서 구조와 연구를 위해 입국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1370만명에 이른다. 경계지역에는 혹시 모를 좀비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호 철책이 둘러쳐졌고 이곳은 마치 GOP처럼 군인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하지만 부산을 방호할 병력은 많이 부족한 상태고 결국 17세 이상 입대 허용에 의무 복무기간은 3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부산 임시정부에서는 군의 지원을 위해 해외에서 들어온 긴급 구호자금으로 최신식 좀비 디펜스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UN군이 긴급 투입돼 좀비 소탕작전에 나섰지만 한국의 복잡한 지형과 수많은 좀비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핵폭탄 투하도 고려됐으나 시민들의 반발로 이는 보류된 상태다. 좀비들을 99.8% 감지해 신속히 제거하는 이 방어체계는 부산의 최북단인 금정구 노포동에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전자파와 방사능 수치가 높다는 소문에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뉴스에서는 전방 경계태세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군 장병들의 효율적 방어를 위해 화기와 방어장비 등을 미 육군 기준으로 교체했다고 하지만 실감할 수가 없다. 여전히 40년 된 수통과 반합을 사용하면서 대체 어느 부대에 최신식 장비가 들어온건지 궁금할 뿐이다. 말로만 떠들던 '방산비리'라는 것을 슬슬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들이 경계근무를 서는 곳은 최전방이다. 하지만 인구 포화상태인 부산 때문에 민가와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계선 주변으로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종종 눈에 띈다. 군인들은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말을 하지만 병력이 부족해 이런 통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계를 해야 할 대상이 화기를 든 북한군이 아니라 좀비라는 점이다. 



성경과 수안, 수안의 엄마는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수안의 엄마는 부산까지 수안을 무사히 데려온 성경이 고마워 함께 머물도록 해준 것이다. 성경의 아이, 선영이는 어느덧 7살이 됐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다. 지금 부산의 학교는 한 반에 50명이 넘는 교실이 태반이다. 


어느날 수안과 수안의 엄마, 성경, 선영이는 주말을 맞아 교외로 나가기로 했다. 혼잡한 부산 시내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포동보다 조금 위쪽에 위치한 서창 초소는 북적대는 부산에서 그나마 가장 한적한 곳이다. 군인들의 통제가 허술한 틈을 타 수안과 선영이는 철책까지 올라가보기로 한다. 원래는 군인들이 통제를 하던 곳이지만 사람이 없어서 통제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도 성인이라면 두려움에 잘 올라오지 않는 곳이지만 수안과 선영은 겁이 없는 편이었다. 


철책에 서서 바라본 외곽은 이제 수풀이 우거진 조용한 곳이다. 7년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은 철책 외곽은 간간히 보이는 좀비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초창기에 군인들은 좀비들을 좀비영화에서나 봤을 '좀비사격게임'을 하곤 했지만 이젠 실탄도 부족해 그조차 금지됐다. 그저 좀비들이 군인쪽을 보지 못하도록 숨을 죽이고 경계만 할 뿐이다. 


선영이는 철책에 바짝 달라붙어 좀비들을 구경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선영이는 좀비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두려움도 없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 상화처럼... 좀비가 궁금한건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궁금했는지, 선영은 연신 철책 너머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선영은 좀비들 사이에서 유독 덩치가 큰 좀비에게 시선이 향했다. 바로 상화였다. 선영은 언니인 수안을 불렀다. 수안은 선영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곧바로 상화 아저씨인걸 알아챘다. 어찌해야 할 지 잠시 당황하다 선영을 안고 철책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진땀을 흘리다 엄마와 성경에게 "그만 가자"고 졸랐다. 두 사람은 잠시 당황했지만 마침 오래 있었기도 해서 내려가기로 했다. 



한편 철책 너머의 좀비가 된 상화는 철책에서 선영을 데리고 내려가는 수안의 그 작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쪽을 쳐다본다. 상화를 포함한 몇몇 좀비들도 그 소리를 듣고 그곳을 바라본다. 스멀스멀, 좀비들이 철책을 향해 다가간다. 느긋하게 초병을 서던 군인들은 좀비가 다가오는 것을 미쳐 보지 못한다. 오히려 좀비보다 철책 안 쪽의 민간인들을 통제하기에 더 여념이 없다. 안전을 위해 철책 내부의 민간인들도 어느 정도 통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접근하지 않던 좀비들에 대해 미쳐 간과하고 있었다.


육군에서 발간한 '좀비대처규정'에 300m 이내로 좀비가 접근하면 사살하도록 정해져 있다. 각 초소에서는 300m를 표시할 수 있는 구조물을 정해 초병들이 암기하도록 해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민간인들을 통제하는 사이, 좀비들은 이 구조물을 지나 더 안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100m 가까이 접근해서야 한 이등병이 발견하고 총을 쐈다. 총소리에 놀란 군인들도 뒤늦게 좀비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철책 주변에는 1차 경고방송이 전파됐다. 좀비 사태 이후, 부산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들이 숙지하고 있는 어떤 규정이 있었다. 사이렌이 길게 한 번 울리는 1차 경고방송은 철책 주변으로만 방송된다. 이 경우 철책 주변 주민들은 집 안이나 대피소로 대피해 문을 잠그고 대기하면 된다. 사이렌이 짧게 3번 울리는 2차 경고방송은 시내 전역에 울리며 이 경우 철책 주변 2km 이내 주민들은 거주지를 벗어나 시내 중심부로 피신하고 시내 주민들은 집 안이나 실내에 있으면 된다. 사이렌이 짧게 6번 울리는 3차 경고방송은 전 부산시민의 대피를 알리는 방송이다. 이 경우 가까운 항구와 공항으로 대피해야 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산을 떠나야 한다. 



이 시각 성경과 수안 일행은 철책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들은 철책 부근을 벗어나 1차 경고방송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던 성경의 일행은 도로 앞에 한 무리의 시위대를 만난다. 좀비 디펜스 시스템을 반대하던 노포동 주민들의 무리다. 경찰은 유턴해서 우회하라고 안내를 해준다. 돌아서 가는 길에 선영이가 마침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고 차는 근처 지하철역 주변에 내린다. 성경이가 선영이를 데리고 지하철역 화장실로 향하고 수안이와 엄마는 역 근처에서 음료를 마시며 이들을 기다린다. 


수안과 엄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이야기, 성적, 내일 할 일. 누구도 아빠 석우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 그리움을 애써 묻어두려는 눈치였다. 그렇게 잠깐의 대화가 오고갈 즈음, 한산한 지하철역을 흔드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짧게, 여섯번. 수안과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성경이 화장실에서 선영을 안고 허겁지겁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서둘러 차를 세워둔 지상으로 향했다. 



지상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노포동에서 내려온 좀비들이 시위대를 물어버리기 시작했다. 군인들과 경찰들이 좀비들을 제압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좀비와 시위대는 분간할 수 없어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좀비 뿐 아니라 시민들 역시 총에 맞고 쓰러져갔다. 


한편 3차 경고방송과 동시에 지하철역은 대피소로 봉쇄된 상태였다. 이들은 지상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하 대피소 봉쇄에 성공하면 지하철은 오직 항구와 공항으로 향하는 노선만 운행됐다.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역무원의 안내로 지하철로 향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부산항까지 곧장 향하게 됐다. 


지하철에는 놀란 시민들도 있었고 짜증내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이미 좀비 사태가 벌어진지 7년이 지났으니 사람들은 좀비에 대해 둔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인 반응은 '침묵'이었다. 짧은 시간 그들이 지켜온 일상이 붕괴되는 순간, 당연히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무거운 침묵이 가득 찬 가운데 지하철은 조용히 부산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하철이 서면을 지날 즈음,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하철이 멈춰섰다. 시민들은 침묵을 깨고 불안함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지하철이 멈춰 선 그 시간, 서면의 지하철 환풍구가 무너져 내렸다. 환풍구 위에 서 있던 수많은 좀비들은 지하로 떨어졌고 마침 성경 일행이 타고 있던 열차가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열차 위로 좀비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열차가 좀비를 치여버린 것이다. 기관사는 이들이 좀비임을 깨닫고 밀어붙였다. 그때 열차는 다시 출발했다. 그러나 옆에 매달려 있던 좀비가 기관실을 공격했고 기관사가 좀비에게 물린 것, 그리고 열차는 기관사가 없이 내달리게 됐다. 


열차는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리고 부산항이 위치한 초량역까지 지나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성경 일행을 포함한 시민들이 이를 깨달았을때는 이미 열차는 멈출 수 없는 상태였다. 시민들은 언제 전복될 지 모르는 열차에 탄 채 두려움에 떨며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더 이상 역이 보이지 않게 됐다. 빠르게 '신평역'이 지난 걸 눈치 챈 시민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손잡이를 있는 힘껏 부여잡고 있었다. 충돌에 대비한 것이다. 열차는 생각보다 세게 부딪히진 않았다. 비상 브레이크가 작동한 탓에 서서히 속도가 줄었지만 워낙 빠르게 달렸던 탓에 열차는 꽤 빠른 속도로 부딪혔다. 시민들은 신평차량기지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차량기지를 빠져 나와서 우왕좌왕 하던 시민들은 조심스레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정해진 안전수칙대로 우선 다대포항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선과 소형선박이 들어서고 인근 조선소에서도 작은 배들이 만들어지는 작은 항구였다. 유사시에는 이곳에서도 많은 배들이 대피선박으로 활용되지만 대부분 항구가 좁은 위험성 탓에 시민들이 대피장소로 꺼려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걸어서 이곳까지 향하려던 시민들은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주변에 정차된 버스 2대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신평차량기지에서 다대포항은 차로 약 20분 거리였다.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언제 좀비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버스는 속도를 내서 달리고 있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인적이 없는 주택가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좀비가 들이닥친 것이다. 버스는 좀비를 피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부산의 좁은 골목길을 대형버스로 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뒤에 따라오던 버스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전복됐다. 좀비들은 넘어진 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앞 차에 있던 성경의 일행과 시민들은 버스를 공격하던 좀비를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좀비들을 피해 전속력으로 달린 버스는 얼마 후 다대포항에 도착했다. 많은 배들이 떠나고 조선소 쪽에 마지막 한 대의 배만이 사람들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꽤 컸던 탓에 항구에 완전 정박하진 못했다. 많은 고깃배들이 동원돼 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배에 올라타야 했다. 흡사 영화 '국제시장' 첫 장면의 흥남부두가 펼쳐진 듯 했다. 


버스는 최대한 가까이에 정차했다. 사람들이 내린 후 버스를 운전한 아저씨는 버스로 길을 막았다. 그리고 빠르게 배로 달려갔다. 살아남은 이들은 본능적으로 이 배가 마지막 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넘어 멀리에서는 좀비들의 괴성과 뜀박질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남은 군인들은 버스에서 내린 일행들이 지나가자 배치된 크레모어를 터트렸다. 그러나 밀려오는 좀비들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제서야 군인들도 배로 피신하기 시작했다. 


배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어선들이 만든 다리를 건너 배 옆에 있는 그물을 타고 올라야 했다. 성경은 선영을 업고 수안과 수안의 엄마는 짐을 들고 그물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미친 듯이 그물을 오르고 있었다. 여자와 아이라고 봐줄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기어이 수안의 엄마가 옆에 올라가던 아저씨의 어깨에 부딪혀 떨어졌다. 바다로 빠진 수안의 엄마를 보고 놀란 수안은 엄마를 구하기 위해 내려가려 했다. 그때 성경이 수안의 팔을 잡았고 선영이를 건넸다. 남편을 잃은 자신을 거둬주고 보살펴준 수안의 엄마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수안과 선영은 성경을 말렸지만 성경의 의지는 확고했다. 마침 버스를 운전하고 오던 아저씨가 수안의 팔을 잡았다. 아저씨는 수안과 선영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성경은 수안의 엄마를 구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성경은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성경과 수안, 아저씨,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내려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일말의 희망과 수안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성경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좀비들이 부두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든 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물을 타고 올라오는 중이었지만 승무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그물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선영을 등에 업은 수안이 아저씨와 함께 배에 오르고 몇 명의 사람들이 더 올라오자, 승무원들은 그물을 버렸다. 수안과 선영은 울부짖으며 바다를 향해 뛰어갔지만 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배를 향해 달려오는 좀비들과 성경, 수안의 엄마를 뒤로하고 배는 매정하게 다대포항을 떠났다. 


부산시의 대피계획은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으로 시민들을 수송하는 것이었다. 수안과 선영이 탄 배는 일본 후쿠오카로 향하고 있었다. 수안은 엄마를 잃은 슬픔에 엉엉 울고 있었지만 자신의 품에서 더 크게 울고 있는 선영을 보고 울음을 참아보기로 했다. 다가올 미래가 두려웠지만 자신을 지키려다 죽어간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성경을 생각해 어떻게든 살아보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부산에서 대피한 한국인들은 후쿠오카와 교토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들의 생활은 피폐할 따름이었다. 흡사 '제2의 식민지'가 아니냐는 우려도 시민들 사이에서 퍼져 나왔다. 사실 부산시의 대피계획을 수립할 때 야당은 대만과 협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일본, 중국과 협정을 맺었다. 역사가 반복될 것을 우려한 사람이 있었지만 정부와 여당에게는 들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일본에 정착한 수안은 부잣집 가정부로 생계를 이어갔다. 일은 고되지만 월급으로 선영을 보살피고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수안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수안은 늦은밤 선영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주인집 가족들이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면서 집이 3일 동안 집이 비게 된 것이다. 집주인의 허락으로 수안과 선영은 단 3일동안 이 부잣집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남은 음식을 싸가서 끼니를 해결했던 이전과 달리 처음으로 둘은 직접 만든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오키나와 해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 화려한 해변 깊숙한 곳에서 어떤 생물체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이들은 마치 강에 잠복한 특전사처럼 소리없이 조용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한국에서 떠내려 온 좀비들이었다. 부산항과 감천항, 다대포항에서 바다에 빠진 좀비들이 오랜 시간 바다를 떠내려와 일본에 도착한 것이다. 특히 일본 근해의 높은 방사능을 직접 쬔 좀비들은 피부 돌연변이가 나타나 바다 속에서도 끄떡없는 피부를 갖게 됐고 더 강력한 힘과 스피드를 얻게 됐다. 어떤 좀비들은 몸에서 촉수까지 뻗어나왔다. 이들에게서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바다를 떠내려 온 좀비들은 오키나와를 비롯해 후쿠오카, 시마네, 교토 등에 상륙했다. 그리고 이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휴가를 즐기던 집주인 가족들도 좀비에게 끔찍하게 당했다. 이 좀비들 가운데는 상화와 석우의 얼굴을 한 좀비도 있었다. 방사능 돌연변이로 온 몸에 두꺼운 비늘과 가시 돋은 어깨를 가진 상화는 대형 트럭도 넘어뜨릴 정도로 강력한 좀비로 변해있었다. 석우 역시 방사능 돌연변이로 갈퀴가 돋은 손과 5m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다리를 가진 좀비가 됐다. 대부분의 좀비들에게서 이런 돌연변이 현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삽시간에 도심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좀비들이 공격한 그 시각, 수안과 선영은 주인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45층 펜트하우스에 위치한 복층짜리 대형 고급아파트, 1층 입구는 유사시에 철문으로 봉쇄된다. 철저한 내진설계에, 만약을 대비한 비상식량도 3개월치가 구비돼있다. 역시 지진을 대비한 자가발전은 3개월 동안 불을 켜고 살 수 있으며 식수 또한 수도에 연결된 정수시스템으로 상시 공급이 가능하다. 이 펜트하우스는 최소 3개월을 버틸 수 있는 '요새'에 가깝다. 수안과 선영은 천연덕스럽게 이곳에서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은 꿈에도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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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확실히 같은 '독한영화'라도 '외제'보다는 '국산'이 피부로 와닿는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심하게 느낀 부분인데 좀비영화도 제대로 국산을 만드니 피부로 와닿는다. 


2. 사실 '부산행'은 '좀비영화'보다 '재난영화'에 가깝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좀비 특유의 정통성이 돋보이지 않는다. 끈적끈적하게 조여드는 좀비의 공포와 야무지게 식사하는 좀비의 먹성은 썩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재난영화로서의 폐쇄성과 고난을 헤쳐나가는 인간의 모습은 잘 보여준다. 


3. 일단 영화를 보기 전부터 플롯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폐쇄공간에 좀비라니, 이보다 매력적일 수 있나 싶었다. 그리고 이 폐쇄공간(기차)은 이동한다. 좀비영화고 재난영화임과 동시에 한국에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로드무비'인 것이다. 


4. 이전에 가장 최근에 본 좀비영화는 단연 '좀비스쿨'이다. 좀비 말고는 아무것도 볼 게 없는 영화였다. 아마 좀비에 대한 묘사는 딱 그 정도다. 뭐 그보다 쪽수가 많은건 나름 장점이다. 사람에 따라 '월드워Z'의 '좀비 쓰나미'가 생각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 정도로 무자비하다는 뜻이다(아, 이 영화에는 '좀비카펫'이 등장한다). 


5. 재난상황 속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만큼 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상화(마동석)와 운송회사 상무(김의성)가 가장 눈에 띈다. 마동석은 특유의 거친 상남자 매력과 귀요미 매력은 동시에 폭발시킨다. 게다가 그 로맨티스트적 모습은 사람에 따라 "공유보다 더 멋있어"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확실히 이 영화에서는 공유보다 마동석이다. 


6. 김의성은 그동안 영화에서 악역을 많이 맡았다. 단언컨대 이 영화에서 김의성은 그동안 맡은 역할을 통틀어 가장 나쁜놈을 연기한다. 관객이 보다가 "으...암 걸릴 것 같아요"라는 반응이 나오면 무조건 김의성 때문이다. 


7. 석우(공유)의 성격이 변해가는 것도 다소 전형적이지만 봐줄만하다. 영화의 드라마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거라 생각된다. 그 맥락에서 봤을때 수안(김수안)의 역할은 다소 재미가 없다. 너무 착한 딸이라 석우와 수안 사이의 드라마가 돋보이지 않는다. 


8. 이 영화의 숨은 명품 캐릭터는 노숙자(최귀화)다. '존멋, 개간지'였던 상화만큼이나 노숙자는 대단히 멋있다. 


9.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의 드라마는 그럭저럭이다. 단 안소희가 영화 후반에 뜬금없이 연기를 잘해서 상당히 놀랬다. 


10. 연상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밝은 영화인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연상호라면...연상호라면..."이라며 예상한 결말을 완전히 빗나가버린다. 문제는 사람이 그동안 워낙 다크포스 가득한 이야기를 써내다 보니 밝고 화기애애한 드라마를 낯설어 한다. 아마 어느 지점에서 "전형적이다"라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해하자, 오글거리는 말 잘 못하는 사람같더라...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마무리 지은 것은 연상호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중간중간 연상호 식의 '자비없는 연출'은 돋보였다(CJ식으로 만들었다면...먼산).


12. 결론: 정통 좀비영화에서는 상당히 어긋났지만 오락영화로써 재미는 충분하다. 



추신1) 익무여신님 카메오, 놓치지 말자!


추신2) 역시 동대구역은 환승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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