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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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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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판'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2.07.25
    '리비드' - 장르의 회귀, 초현실주의 재림
  2. 2011.07.29
    'L.A 좀비' - 훈훈하고 정의로운 게이좀비포르노 (2)
  3. 2011.07.23
    부천에서 찍은 아오이 소라 (2)
  4. 2011.07.22
    '리벤지, 미친 사랑 이야기' - 우직하지만 실패한 복수극
  5. 2011.07.18
    '수퍼' - 히어로를 꿈꾸게 하더니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1)
  6. 2010.08.25
    [The 14th Pifan] 괴물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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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14th Pifan] 하우스 오브 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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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0.07.31
    [The 14th Pifan]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1)
  10. 2010.07.29
    [The 14th Pifan] 고백

많은 사람들이 이명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언급한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라피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가장 독특한 작품임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 영화는 이명세의 필모그라피 가운데 가장 서사구조가 뚜렷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명세 감독은 서사구조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야기를 두고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는다. 그리고 그 정교한 이미지를 통해 전해지는 감수성이 다시 이야기로 치환된다. 이명세의 영화가 이미지를 언어로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현대 세계영화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 방식으로 흡사 초기 루이스 브뉘엘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명세 감독의 영화 중 '형사'를 상당히 좋아한다. 이야기는 연기처럼 산산히 흩어졌지만 인물의 감성만은 구구절절히 전해진다. '저널리즘'에 대해서 배우다 보면 백마디 리포트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힘을 가질 때가 있다. 이명세의 영화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보다 한 프레임의 이미지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더 큰 힘을 가진다. 




알렉상드르 뷔스티요와 쥴리앙 모리 감독의 영화 '리비드'는 흡사 '가장 이명세스러운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야기는 산산히 부서지고 절정의 이미지와 피의 향연만이 남아있다. '떡밥'인양 존재하던 많은 기호들 역시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진다. 마치 허상을 걷어낸 뒤 숨어있던 실체가 드러나듯 '리비드'는 이야기와 기호의 허상을 걷어내자 이미지라는 실체를 드러낸다. 즉, '리비드'는 '영화보기의 방식'부터 기존의 극영화와는 철저히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선 이 영화는 시작부터 독특한 구경거리 몇 개를 제시한다. 오드아이의 젊은 여성, 한적한 산기슭 낡은 대저택, 발레복 입은 소녀 뱀파이어, 기괴한 산소마스크를 쓴 노파 등등. 시작부터 관객이 따라가야 할 것은 바로 이 이미지들이다. 영화 초반 모든 이야기들은 이러한 이미지들의 폭발을 위해 빠른 속도로 치닫고 있다.


본격적으로 이미지가 폭발하는 지점은 루시(클로이 콜루드)가 대저택의 과거를 보기 시작한 시점부터다. 피를 머금은 발레리나 소녀와 저택 주변의 녹음, 약간 찌뿌린 하늘이 어우러진 판타지스런 이미지가 펼쳐지면서 점점 이야기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문제는 이야기가 부서진채 남아있는 이미지들에게서 관객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미지가 폭발하는 몇몇 지점을 살펴보면 그곳에는 '대사'가 거의 실종된 상태다. 필자는 이 지점을 '대저택의 과거' 장면과 루시와 안나의 영혼이 바뀌는 장면, 두 소녀가 대저택을 탈출하는 장면으로 두고 싶다. 자, 다른 모든 이야기와 상황은 이미 산산히 부서졌으니 일단 빼보자. 영화가 끝난 지점에서 남아있는 것들만 두고 이야기를 풀어보자. 


먼저 대저택의 과거 장면에서는 발레리나 소녀의 아름다움과 뱀파이어의 공포, 그리고 이것이 합쳐진 '피를 머금은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이 뱀파이어는 강압적인 엄마의 태도때문에 탈출하고 싶지만 햇빛을 볼 수 없는 특징 때문에 탈출할 수 없다. 고통스러운 집에 갇힌 어린 소녀를 보는 애절함과 피를 머금은 뱀파이어의 공포가 동시에 와닿게 된다. 




다음으로 안나와 루시아 밀실에서 '수술(?)' 당하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외과수술'을 연상시킨다. 원래 의료적 장면 중 가장 무서운게 치과수술이지만 사실 신체를 훼손해 병을 치료하는 모든 의료수술 장면은 다 무섭긴 마찬가지다. '리비드'는 여기에 어두컴컴한 수술실과 기괴한 수술장비 등을 등장시킨다. 이 장면에서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공포의 극단으로 치닫는 기괴함을 보여준다. 이어서 등장하는 발레연습 장면 역시 앞서 언급된 '고통받는 여린 소녀'를 재차 강조한다. 또 소녀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보여주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또 두 소녀가 탈출할 수 없는 대저택을 탈출해 바다로 향하는 장면 역시 극단의 고통과는 대비되는 장면이다. 많은 관객들이 불만을 제기했을 '하늘을 나는 소녀' 장면 역시 이러한 '고통과의 대비'를 보여주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또 영화 내내 찌뿌린 하늘은 이 딱 한 장면에서만 맑게 개여있다. 이미지가 언어로써 힘을 갖기 위해서는 장면과 장면이 극단적인 대비를 이뤄야 한다. 즉,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 극단적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 다소 유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 유치한 상황은 프랑스의 CG 기술력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아마도 이 감독들은 비극의 두 소녀에게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엄마를 잃은 소녀와 엄마에게 학대받은 소녀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것처럼 이 마지막 장면은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이것을 위해 기술력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감독이 인물들에게 갖는 이 깊은 애정이 이미지로 형상화되면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것이 이 영화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이처럼 '리비드'는 보는 방식에서 서사구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따른 감수성이 만들어 낸 '새로운 언어'로 봐야하는 영화다. 따지고 보면 루이스 브늬엘과 살바도르 달리가 만든 최초의 초현실주의 영화인 '안달루시아의 개' 역시 프랑스 영화가 아니던가. 또 회화미술 하면 또 프랑스가 아니던가. 이들의 전작인 '인사이드'는 현대 프랑스 '공포'영화의 어떤 경향을 보여줬다면 '리비드'는 프랑스 예술계가 쌓아온 미학적 완성을 공포영화의 미장센으로 녹여낸 작품이다. 이 영화, 결코 만만한 장르영화로 볼 작품이 아니다. 이들은 '리비드'로 아트무비의 어떤 경지에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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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에다가 이런 얘기 하는게 처음이라 당황스럽지만... 19세 미만 미성년자나 비위 약하신 분은 리뷰 읽지 마시길 권해드립니다.

201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1년전인 2010년과 마찬가지로 '악명높은 영화' 하나를 선택했다. 2010년 부천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영화는 <세르비안 필름>이었다. 2011년에도 부천은 그 정도의 악명이라고 떠들어대며 경고한 영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L.A 좀비>였다. 평범한 좀비영화같은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의 악명이 알려진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인 브루스 라브루스가 독특한 퀴어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L.A 좀비>는 악명높은 '게이좀비포르노'가 되는 셈이다. 막상 영화의 실체를 확인했을때 이 영화는 아주 확실한 '게이좀비포르노'였고 그 표현수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만큼 적나라했고 솔직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적나라한 이미지에 갇혀있지만 나름 할 얘기를 가지고 나온 영화였다. 그리고 그 할 이야기를 찾아내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영화의 대략적인 이야기로 한번 풀어나가보자. 세부적인 디테일 묘사는 일본 대지진 현장만큼으니 처참하게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디테일 이야기 꺼내면 3박4일동안 욕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거두절미하고, 이 영화의 이야기는 한적한 바닷가에 뜬금없이 나체의 근육질 좀비가 나타난다. 그리고 아주 뜬금없이 심야에 산길을 다니는 한 남자의 차를 얻어탄다. 그런데 또 이 남자의 차는 뜬금없이 사고를 당한다. 좀비는 좀비니깐 당연히 안 죽는데, 운전하던 남자는 거의 죽어간다. 마지막 심장박동이 멈추고, 결국 남자는 죽는다. 옆에서 끈적하게 이 죽은 남자를 바라보던 좀비는 뜬금없이 바지를 벗더니 죽은 남자의 상처부위에 물건을 삽입하더니 격하게 피스톤 운동을 한다. 어느덧 절정에 이르고 좀비가 검붉은 정액을 뿜어내자 죽은 남자는 갑자기 살아난다.

이쯤 듣다 보면 독자들 역시 "대체 그게 뭐야?", "병신같애" 뭐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필자도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더군다나 대사 한마디 없이 이 뜬금없는 상황이 주구장창 반복된다면 이미 개념은 안드로메다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 좀비는 앞서 이야기한 식대로 로스앤젤리스의 갱스터와 부랑자, 피살자 등 많은 시체들을 살려낸다. 이 이상한 장면들을 연속으로 보고 있자면 마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언데드 사제가 죽은 파티원 부활하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게이변태좀비가 '사제'로 보일 정도라면, 이 좀비의 행동은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게 된다. 특히나 좀비가 살려낸 사람들, 좀비가 지나다니는 공간은 로스엔젤리스의 어둡고 더러운 부분에 해당된다. 좀비는 이 어둡고 더러운 곳을 다니며 죽은 사람들을 살려낸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빌리 해링턴'(국내 잉여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게이 포르노배우)처럼 하고 있는 4명의 남자들을 살려낸 뒤 벌이는 다섯 남자의 뜨거운 정사는 검은색과 붉은색, 살색이 뒤엉킨 이상한 지옥도를 연상시킨다. 타락천사가 지상의 가엾은 중생들을 쾌락으로 구원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좀비는 변태짓으로 L.A의 죽은 자들을 살려낼까? 그것은 후반부에 가서 드러난다. 이 좀비가 공동묘지로 가더니 죽은 자들의 죽는 장면을 떠올리며 뜨거운 피눈물을 흘린다. 그러더니 어느 무덤으로 가서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 묘비에는 'LAW'(법)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좀비가 'LAW"의 무덤을 파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죽은 법을 살려내서 L.A를 구원하겠다는 좀비의 강한 의지, 혹은 하루동안 열심히 활동한 'LAW'라는 이름의 좀비가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는 것. 둘 중 뭐가 정답인지 알 수는 없지만 뭐가 정답이건 간에 이 좀비는 '훈훈한 게이좀비'가 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해석으로 인해 얻어진 의미는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음지로 숨은 동성간의 성행위로 L.A를 구원하겠다는, 말도 안되게 야심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왠지 병신같지만 뭔가 훈훈한 영화인 것이다.

<L.A좀비>는 이처럼 훈훈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영화로써는 엉망이다. 좀비의 옷이 시종일관 달라지는 것에 대해, 하나의 좀비가 갑자기 둘로 나뉘어져 서로 바라보고 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해석이 안된다. 그것을 자아의 분리 정도로 본다고 해도 말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결론은 "감독이 영화를 못 만든다"로 보는게 속 편할 것 같다. 그냥 이렇게 결론내린 것에 대해 "필자가 무책임하다", "필자가 감독의 내공을 못 따라간다"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필자는 원래 그것밖에 안되는 모양이다.

지독하게 못 만든 영화고, 지독하게 더러운 영화지만 범죄 피해자와 부랑자들을 살려내는 게이좀비의 따뜻한 '생명구원 프로젝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관객들은 극장을 나설때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 물론 게이포르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야 한다. 다행히 필자는 뭔소린지는 알았으나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필자는 이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성애자라서...


여담) 동성애자를 비하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다. 단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동성애자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진다. ...내말 못 믿겠으면 한 번 구해보시던지...

L.A. 좀비
감독 브루스 라 브루스 (2010 / 독일,프랑스,미국)
출연 프랑소와 사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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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바흐 2011.07.29 11:5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으하하하 이거 골때리는 영화군요. -ㅁ-;;;;;;;

  2. 2016.10.02 22:25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아...잊고 있었다...

블로그 먹여 살릴려면 이 분 사진을 공개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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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바흐 2011.07.23 17: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 내 단백질..... 은 농담이고..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것 같아서 신기하네요.





※ 스포일러 다량 함유.

박찬욱 감독은 참 팬도 많고 안티도 많은 감독이다. 그만큼 그의 유명세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이런 유명세는 가끔 그의 업적을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이 인정해야 할 것은 그가 만든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은 한국영화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복수는 나의 것>은 장르영화의 전통에 리얼리즘의 규칙을 계승해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리얼리즘의 파괴력'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홍콩의 한 젊은 감독은 박찬욱이 보여준 '리얼리즘의 파괴력'에 큰 감명을 받은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복수'를 노골적으로 주제로 다룬 <리벤지, 미친 사랑 이야기>(이하 <리벤지>)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눈치가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박찬욱보다 멋드러진 복수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분명 박찬욱에 비해 심하게 모자란 부분도 있었다. 마치 단단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칼을 쥔 듯한 기분이었다. 만약 이 영화를 만든 웡칭포 감독이 칼날을 다듬어서 나타난다면 그는 두기봉 이후 새로이 나타난 '홍콩의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다.

<리벤지>는 '임산부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충격적 이야기로 시작한다. 연쇄적으로 임산부의 배를 산채로 갈라 태아를 꺼내어 과다출혈로 숨지게 하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여성들의 남편이 모두 함께 일하는 경찰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남편들 중 하나는 살해당했고, 다른 하나는 실종됐다. 경찰은 검문을 강화한 끝에 유력한 용의자 친(주노 막)을 체포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가 어찌하여 이 끔찍한 살인을 벌이게 됐는지 보여준다. 그의 범행동기에는 이 살인보다 더 끔찍한 이야기가 버티고 서 있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주인공 친의 복수극이다. 친은 만두가게 종업원으로 어리숙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던 청년이었다. 그는 매일 닭만두를 사러 오던 여고생 윙(아오이 소라)을 짝사랑한다. 우여곡절 끝에 윙과의 사랑을 시작하려 하지만 오해가 거듭되면서 윙은 친이 보는 앞에서 경찰들에게 무참히 윤간당하게 되고 친은 경찰폭행죄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뒤 6개월동안 경찰들에게 복수할 날만을 꿈꾼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친의 복수는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갖게 되고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복수를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응원에 부응하기로 하듯 친의 복수는 잔혹하고 무자비하다. 그러나 친의 복수가 그 최후를 맞이한 순간, 관객들은 복수에 응원하며 동참한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고 철없었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미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무자비하고 어리석은 복수를 잘 관찰해왔다. 치밀하게 준비했던 동진(송강호)의 복수가 맞이한 결말을 보며 복수에 바쳐온 인생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했는지 깨닫게 된다. 어쨌든 복수의 완성은 살아있음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리벤지>는 맥락은 다르지만 그 무의미한 복수를 보여준다. 정당한줄 알았던 복수가 순간 무의미해진 것은 '시간'과 '분노'의 화학작용 때문이다. '분노'라는 감정은 인간이 가진 많은 것들 중 가장 저돌적이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상황에 대해 가리지 않고 노골적으로 돌진하게 하는, 가장 힘이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분노'는 그 우직함으로 둘러싸인 만큼 '섬세함'이 부족한 감정이다.

그 우직한 분노가 5년동안 앞 뒤 안 가리고 돌진했다. 5년은 상황을 변하게 했지만 분노만큼은 변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분노의 끝에는 또 다른 참사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복수가 가장 합리적일까? <리벤지>나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 깨닫게 되지만 '죽음'을 통한 복수는 너무 쉽다. 또 다른 복수극인 <악마를 보았다>를 보더라도 '죽음'을 통한 복수가 얼마나 쉬운 것인지 알게 된다. 복수는 삶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다시 헤어나올 수 없는 무기력함과 패배감, 상실감 속에서 평생을 살도록 하는 것, 그 감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이 가장 처절한 복수가 될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이병헌)은 경철(최민식)을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 죽여 복수에 성공하고도 밀려오는 상실감에 오열한다. 그 순간에 수현은 복수를 성공한 후 밀려오는 상실감과 패배감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복수에 성공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쉬운 복수라고 말한 것은 <리벤지>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아마도 마지막 장면으로 미뤄봤을때 윙 또한 죽었을 것이다. 친과 윙, 두 죽은 자들이 떠나는 산책은 꽤 한가하고 평화롭다. 죽음으로 그들을 한적한 산책길을 떠나게 하는 것은 너무 쉽고, 불공평한 복수다.

<리벤지>에서의 상황에서 그 경찰들에게 '완벽한 복수'를 선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필자도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서 복수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용서보다는 쉬운 일이 복수지만, 분노의 감정을 고스란히 원인제공자에게 갚아야 하는 것은 복수자에게도 엄청난 숙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완벽한 복수를 행하지 못했기에 이처럼 찜찜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영화적으로 이 영화는 나름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나름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지만 그건 마치 초등학교 축구부 학생이 시전하는 '마르세이유턴'을 바라보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심정이다. 감독도 그걸 알았는지 결국 이야기를 우직한 스트레이트로 돌려버린다. 그런데 이야기가 우직한 스트레이트로 돌아서는 순간, 마치 오승환의 직구와 같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 마치 최고의 경주마처럼 양 옆에 바라보지 않고 앞만 보고 질주하는 우직함은 관객에게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증가시키고, 이야기 자체에 대한 설득력이나 힘을 증가시켜준다.

그래서 이 영화의 단점은 반대로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이 영화와 가장 유사한 특징을 가진 <복수는 나의 것>은 엇박자와 기교로 이야기를 재미나게 끌고간다. 나름 섬세한 작업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리벤지>는 홍콩영화 특유의 극단적 상황으로 비극에 몰아넣은 뒤 반대로 복수를 행한다. 나쁜 놈은 나쁘고 착한 놈은 착하다. 그래서 이야기는 단순하고 간단해진다. 이 영화의 감독에게 우직함은 돋보였지만 섬세함은 반드시 배워야 할 작업이다.

아마도 많은 팬들이 궁금해 할 것은 '아오이 소라'의 연기가 될 것이다. 이미 많은 남자들은 그녀의 연기를 여러 경로로 봐왔지만 아마도 이 영화는 그녀의 출연작 중 가장 '메이저'에 해당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 TvN의 <한국어학당>이라는 단막극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세계영화제에 다녀간 작품은 이 영화가 처음이 될 것이다.

웡칭포 감독은 아오이 소라의 캐스팅에 대해 "홍콩에서 이 역할을 소화할 배우가 없어 일본 AV배우 중 물색하다가 아오이 소라가 느낌이 잘 맞아서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감독의 선택대로 이 역할은 아오이 소라와 참 잘 어울린다. 그러나 그녀의 팬들이 실망할 소식 하나만 전하자면 이 영화는 아오이 소라의 영화와 비디오 출연작을 통틀어서 두 번째로 '안 야한' 영화가 될 것이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한국어학당>이다. 돌이켜보면 왜 홍콩에서 이 역할을 소화할 배우가 없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그러나 아오이 소라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AV배우'가 아닌 '영화배우'로 전직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두 작품 더 두고 본 뒤 결정해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왼쪽부터) 남자주인공 주노 막, 여자주인공 아오이 소라, 감독 웡칭포. ....직찍임.

<리벤지>는 홍콩 특유의 고어물과는 달리 잔인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딱히 신체훼손의 잔인함을 부여하지 않아도 홍콩영화 특유의 극단적 상황이 주는 잔인함은 꽤 끔찍한 편이다. 홍콩영화는 전반적으로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편이다. 나쁜 놈은 나쁘고 착한 놈은 착하고 불쌍한 놈은 한없이 불쌍해진다. 한마디로 그리 입체적 인물구성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영화도 그 점은 마찬가지지만 어쩌면 그러한 홍콩영화의 특징이 바로 이 영화를 살린 것인지도 모른다. 우직한 복수극 한 편 보고 싶다면, 이 영화는 꽤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여담1) 부천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의 남녀주인공과 감독이 입장했다. 근데 영화의 남자주인공보다 감독이 객관적으로 더 미남이다. 근데 태도가 더 거만한 것 또한 감독이다. 대체 뭐하는 감독일까?

여담2) 이미 감독과 두 주연배우는 이 작품으로 뉴욕영화제에도 다녀왔다. 만약 이 작품을 계기로 점점 그녀가 메이저 작업을 하게 된다면, 얼마 후 AV은퇴를 결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팬들의 탄식이 들려오는 것 같다.

리벤지, 미친 사랑 이야기
감독 황정보 (2010 / 홍콩)
출연 맥준룡,아오이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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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너무 많은 부조리가 있다. 그 부조리는 너무 많고 다양해서 우리 각자에게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하나씩 와닿아 있다. 그 부조리의 크기가 크건 작건, 우리 각자에게 그것은 치명적이고 무시무시한 위협으로 다가와 일상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방법으로 그 부조리에 맞선다.

여기 한 남자 프랭크 다보(레인 윌슨)가 있다. 그에게는 몇 번의 '최고의 순간'이 있었지만 대체로 부조리에 억눌려 피해만 보는 인생을 살았다. 따지고 보면 몇 번의 최고의 순간도 피폐했던 그의 삶에 비해 최고였을 뿐이다. 한마디로 약간의 자기망상으로 부조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이 프랭크의 모습이었다. 마치 테리 길리엄 감독의 <피셔킹>과 닮아있으며, 더 멀리는 돈키호테마저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쩌면 이 영화 <수퍼>는 우리 각자의 일상에 대해 현실도피를 하고자 만들어내는 판타지, 혹은 각자의 부조리에 맞서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것이다.

현실도피에 대한 판타지는 앞서 언급한 영화 <피셔킹>을 통해 잘 살펴본 바 있다.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판타지는 우리 각자에게 현실왜곡을 불러오게 하며 그 왜곡은 상황에 맞지 않은 지나친 감정의 과잉을 불러온다. <수퍼>의 주인공 프랭크에게는 자신 생애의 유일한 행복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충격적 상황이 바로 '현실왜곡'을 불러오며 이것이 바로 슈퍼히어로 '크림슨 볼트'의 탄생이 된 것이다.

참 다행히도 여기까지는 <킥애스:영웅의 탄생>과 동일한 시작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미성년자나 철이 덜 든 어른이 성인영화 보고 그대로 흉내낸 격이다. 그러나 이 과대망상, 현실왜곡이 불러온 이상한 흉내는 그들 각자에게 기이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온다.

어쨌든 그 변화는 과대망상이 불러온 '왜곡된 용기'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은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힘이 되는 것이다. 결국 '용기'는 왜곡됐건 진심이건 다 같은 용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용기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부조리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아내 세라(리브 타일러)를 마약상 자크(케빈 베이컨)에게 빼앗긴 프랭크는 모든 것이 사라진 극한의 부조리를 느꼈고, 사소한, 차라리 유치한 TV드라마는 그에게 '계시'가 된다. 이 과대망상이 관객들에게는 참 우스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구나 과대망상의 현실도피를 꿈꾼다. 어릴적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보며 "이 커터칼로 저 새끼 목을 그어버리고 싶다"거나 짜증나게 구는 직장상사를 보며 "교통사고나서 콱 뒈져버렸음 좋겠다"라는 마음속 깊은 곳의 폭력적 상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내면의 폭력은 소심하지만 작은 위안을 준다. 그리고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면 <수퍼>의 '크림슨볼트'나 <킥애스>의 '킥애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킥애스나 크림슨볼트처럼 과감한 용기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킥애스'에게는 스승이자 친구이며, 조력자인 '힛걸'이 있었다면 '크림슨볼트'에게는 '볼티'가 있다. 만화방에서 일하는 22세 여대생 리비(엘렌 페이지)는 여러모로 프랭크에게 도움을 주고 변화를 주는 인물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언급은 피하지만 리비는 프랭크를 히어로로 만들어 낸 인물이자 고리타분한 기독교적 사고에서 그를 구원한 인물이고, 그의 히어로 생활을 끝내게 해준 인물이다. 한 관객이 리비에 대해 "'힛걸'보다 더 한 말괄량이"라고 평가했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해보자면 리비는 '힛걸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리비는 한마디로 프랭크를 인도한 '수호천사'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후 찾아온 프랭크의 현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만큼 극심한 리얼리티며 가슴 아리는 결말이다. 오히려 이 리얼리티 충만한 결말은 프랭크의 '과대망상'의 증거가 되어준다. 어쩌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아름답고 발랄쾌활한 미소녀 리비와 잠시라도 함께할 수 있었던 것부터 못생긴 아저씨 프랭크에게는 판타지나 다름없었다.

판타지의 터널을 빠져나온 프랭크는 조금 성장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의미의 '홀리 어벤져'가 되어 있었다. 결국 <수퍼>는 과대망상으로 현실의 부조리와 맞서 싸운 한 남자의 성장기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아주 낯익은 이야기다.

바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수퍼히어로는 어떤 부조리와 맞서 싸운 자가 영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들은 거대자본이나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평범한 소시민들에게는 거대자본도 초능력도 없다. <수퍼>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리얼한 히어로무비이며, 우리 모두에게 수퍼히어로를 꿈꾸게 하는 영화다. 그리고 동시에 과대망상을 절제하게 해주는 영화이자 관객으로 하여금 진정한 용기를 찾게 해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아이러니의 충돌을 각자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만들어낸 이 영화 <수퍼>는 한마디로 '좋은 영화'다.


여담1) 영화 속 프랭크가 보는 드라마 '홀리 어벤져'에서 악마 '데몬스윌'로 출연하는 배우가 바로 이 영화의 감독이다. 엔딩크레딧 보고 확인했다.

여담2) 분명 <수퍼>에서 '볼티' 리비는 <킥애스>의 힛걸보다 중요한 캐릭터이며, 더 과감하고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필자의 마음속에는 힛걸이 짱이다.

수퍼
감독 제임스 건 (2010 / 미국)
출연 레인 윌슨,엘렌 페이지,리브 타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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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안해여 2012.03.31 09:26 address edit/delete reply

    매우 정확한 심리테스트..

    솔직히 전 안믿으면서 했는데..

    결과를 보구 좀 섬뜩했습니다..

    진심으로 응하지 않으면

    결과에 화가 날수도 있습니다

    잘읽으세요-미리보기 없기..

    진지하게 한번 시도해 보세요!

    순서대로 하세요

    이 게임의 결과는 매우 재밌으면서 섬뜩합니다

    미리 읽지말구, 순서대로만 하세요. 1~2분정도 걸리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약간은 으스스 합니다. 먼저 백지와 연필을 준비 하세요

    추신: 이름을 고를때는 당신이 *실제로 아는*사람의 이름을 고르도

    록 하고, 첫번쩨 본능적으로 생각난 대답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한번에 한줄씩만 스크롤하세요- 미리 읽으면 재미를 망치게 됩니다

    1)먼저 종이의 위에서 아래로 1부터11의 숫자를 적으세요

    2)그리고 1과2의 숫자옆에 생각나는 두 숫자를 하나씩 적으세요

    3)3과7옆에 이성의 이름을 적으세요(두명..)

    미리보면 결과의 진실성이 없어 집니다!

    4)4,5,6 번째 빈칸에는 아무의 이름(친구나가족등등)을 적으세요

    속이게 되면 당신이 한일에 대해서 화가 날것입니다

    5)8,9,10,11번에 노래제목들을 각각 적으세요

    6)마지막으로 소원을 비세요

    이 게임의 설명

    3번째 적은 이름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7번에 적은 이름은 당신이 좋아하지만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람입니다

    4번에 적은 사람은 당신이 가장 보살펴주는 사람입니다

    5번에 쓴 사람은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6번에 쓴 사람은 당신의 행운의 스타입니다

    8번에 쓴것은 3번에 쓴 사람과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9번에 쓴 것은 7번에 쓴 사람과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10번에 쓴 것은 당신의 생각을 잘 표현한 노래입니다

    11번에 쓴 것은 당신이 인생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현한 노래입니다

    마지막으로 2번에 쓴 숫자만큼 다른 계시판에 이글을 올리면 당신의

    소원은 이뤄집니다..

    정말신기하게두여

    환장할 정도루..
    (출처: `헤어진남자친구돌아오게하는법`- 네이버 지식in)





아마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쓴 영화감상기 가운데 가장 오래 묵혀두고 쓰는 것 같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지도 어언 1개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다행스러운 일은 이후에 작성해야 할 영화 <괴물들>과 <더 리즈>가 꽤 강렬한 작품들이라 그 이미지와 느낌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다행히 감상기를 쓰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지금부터 쓰게 될 영화 <괴물들>은 7월 23일 심야상영으로 본 작품들 중 두 번째 영화다. 첫 작품 <하우스오브데블>에서 질려버려서 "집에 갈까?"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던 찰라 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영화가 <괴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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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유독 B급 쌈마이 영화가 많았다. 혹자는 부천국제가비지(Gabarge)영화제냐며 농담을 하곤 했다. 이 가운데서도 마치 흙 속의 진주처럼 명작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최근에 발견된 것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고백>이었다. 이후에는 사실 이 영화제에서 '품격있는 영화'를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일거라 생각했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괴물들>은 시작부터 강렬한 비주얼로 관객을 압도한다. 밤길을 여유롭게 가던 미군차량이 괴생명체의 공격을 받고 반격하는 장면을 적외선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다. 이 장면을 보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본 몇 가지 영화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몇 가지 언급해보자면 <디스트릭트9>, <미스트>, <클로버필드> 등이 될 것 같다. 아마도 크리쳐물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쌍수를 들고 격하게 환영할만한 라인업이다. 필자도 이 첫 장면을 보고 굉장한 퀄리티의 크리쳐물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괴물들>은 첫 장면 이후 자막을 통해 영화의 배경을 설명한다. 외계생명체를 관측하기 위해 나사가 우주로 보낸 탐사선이 멕시코에 불시착했는데 그 안에 있던 외계생명체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을 공격했고, 이 지역에는 '오염지대'가 형성된다. 영화는 6년 후의 멕시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멕시코 지역 사고현장을 취재 중인 사진작가 앤드류는 편집장의 부탁으로 편집장의 딸 사만다를 미국으로 데려가야 한다.

앤드류가 해야 할 일은 사만다를 미국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평소라면 그냥 국경 하나만 넘는 일인데 이것도 만만치 않다. 국경지대는 모두 '오염구역'으로 지정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불가되어 있고, 배편을 통해서 가는 길은 엄청난 비용의 배삯을 지불해야 한다. 그나마 이 배도 구역 통제로 인해 얼마 뒤 끊어질 예정이다.

<괴물들>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 앤드류와 사만다가 미국까지 무사히 가기 위한 여정을 보여준다. 고가의 배삯을 내고 무사히 미국으로 가면 될 것을 앤드류가 술에 취해 다른 여자랑 놀아난 덕분에 지갑을 도난당해 여권이고 뭐고 몽땅 분실당한다. 사만다는 어렵게 자신의 약혼반지를 저당잡히고 오염구역을 관통하는 육로로 가는 방법을 확보하게 되고 앤드류와 사만다는 오염구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괴물들>은 첫 장면이 보여주는 강렬한 비주얼과 달리 괴물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앤드류와 사만다가 멕시코에서 오염지대를 관통해 미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괴물'의 등장이후 변해버린 세상과 괴물이 훑고 간 흔적을 보여주며, 전혀 새로운 세상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만큼 이 영화는 괴물들의 비주얼보다 변해버린 세상을 설득력있게 묘사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다. 마치 <디스트릭트9>에서 외계인이 불시착 한 이후 요하네스버그의 구역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 <괴물들>이 또 하나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두 주인공 앤드류와 사만다를 비롯해 영화 속 용병들이나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그리 특별할 것 없이 매우 소소하고 일상적이다. 어느 정도냐면 이 영화에서 뚜렷한 악역은 찾을 수가 없다. 하다못해 괴물조차도 말이다.

악역도 없이 벌어지는 앤드류와 사만다의 로드무비는 긴장감이나 박진감보다는 변해버린 세상에 대한 한적한 여행과 같다. 그러나 그 한적함이 마냥 평화롭고 포근한 여행인 것만은 아니다. 오염구역 속 파괴된 도시와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멕시코와 미국, 특히 국경지대는 더 할 나위없이 삭막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들이 처음으로 미국 국경을 통과했을 때, 파괴된 도시의 풍경은 전쟁의 상흔을 겪은 적이 없는 미국땅에서는 매우 낮선 풍경이다. 황량한 마을 위로 이 영화의 정체성을 증명하듯 널브러진 괴물의 시체, 그리고 미쳐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여느 괴물영화에서 괴물이 휩쓸고 간 이후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이 영화는 괴물이 휩쓸고 간 이후 생활상의 변화와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를 잘 표현한 영화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러한 표현은 마치 전쟁 직후의 생활상을 표현하는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하필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라는 점이다. 전쟁을 한 번도 치른 적이 없는 장소에서 전쟁 후의 폐허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에 대한 상징적 묘사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하필 그 폐허로 만든 것이 '외계생명체'라는 점에 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와는 아무 상관없는 외계생명체가 두 나라의 국경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모든 전쟁에 개입하던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외부의 존재로 인해 나라의 국경이 쑥대밭이 된 것은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난 일이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미국의 오만함에 대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듯 클라이막스에 등장한 괴물들은 꽤 묘한 그림을 연출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에 '악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괴물이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존재들이 악의를 가지고 인간들을 학살하지는 않는다. 급기야 클라이막스에서 괴물들의 행동을 보면 조금 사랑스럽게 느껴질수도 있다. 오히려 인간들을 공격하고 몰아넣은 괴물들이 보여주는 마지막 행동은 이들도 그저 '생명체'일 뿐이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지구상에서 먹이사슬의 최고 위치에 올라서 있다고 느끼는 인간들에게 도저히 올라설 수 없는 상위존재를 인식시켜주는 것이 이 영화에서 괴물들의 역할이다. 크리쳐라고 다 공격과 학살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영화가 <괴물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공포나 스릴러보다는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게 마냥 밍숭맹숭한 영화인 것만은 아니다. 자주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속 크리쳐의 퀄리티는 상당히 수준이 높다. <미스트>의 그 코끼리 닮은 괴물과 닮았는데 이 녀석이 야간에는 빛도 내고... 아무튼 꽤 신기하게 생긴 녀석이다. 특히나 영화가 전체적으로 '들고 찍기'를 추구하는 덕에 <디스트릭트9>나 <클로버필드>같은 느낌을 준다. 혹자들은 "멀미하겠네"라며 격하게 거부할 수도 있지만... 뭐 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니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괴물들>은 크리쳐 영화에 대한 매우 신선한 재해석이며, 굉장히 높은 퀄리티와 이야기를 자랑하는 영화다. 괴물이 휩쓸고 간 국경지대의 모습을 통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 간에 전쟁이 발생한 듯한 모습을 보여줘서 미국 본토에서 발생 가능한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옮겨놨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외계생명체의 공포'가 아닌 '전쟁의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괴물들
감독 가렛 에드워즈 (2010 / 영국)
출연 휘트니 에이블,스쿠트 맥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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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1) 이게 저예산 영화라는 건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디스트릭트9>가 그래던 것처럼 말이다.

여담2) 이제 부천영화제 리뷰도 하나 남았다. 오래된 숙제를 남겨둔 기분이다. ...어서 끝을 봐야지...

여담3) 그래도 야광괴물은 꽤 신선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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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2kwon 2010.08.25 08:0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부천가서 보진 못했지만 예고편만 봐도 비주얼이 상당하더군요. 감독상을 받았었던가요? 국내개봉은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이 많던데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DAISHI ROMANCE 2010.08.25 21:04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천초이스 장편부문 감독상을 수상했죠. 볼거리가 조금 부족하다는 점이 국내 배급업자들의 구미를 당기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만, 앞서 언급한 <디스트릭트9>와 <클로버필드>에 밀리지 않는 진지한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네요.

    • BlogIcon 2kwon 2010.08.25 21:22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예산이다보니 그놈의 몬스터가 많이 등장하지는 못하는걸까요;; 그래도 오히려 작품성은 독립,저예산 영화쪽이 더 좋은 경우가 많은데 배급업자들도 그런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DAISHI ROMANCE 2010.09.03 09:16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래도 이 배급업계라는게 우리가 아는 것과 상황이 다르다 보니깐요
      기자시사가서 가끔 배급업자들 하는 이야기 들어보면 정말 영화보는 눈이 관객들과 완전 다른 거 같아요.
      뭐랄까...흥행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해야 하나...ㄷㄷㄷ





이 길고 긴 부천영화제 후기도 이제 3편 남았다. 정말 다 쓰는데 1개월이 걸린 대장정이지만 그래도 나름 정성껏 썼다는 생각에 만족스럽다.

지금부터 쓰는 영화는 마지막 심야상영 3편의 묶음이다. 그 가운데 첫번째 영화인 <하우스오브데블>은 절망적으로 재미없는 영화였지만 이후 작성할 <괴물들>, <더 리즈>는 나름 만족스러운 영화다.

※ 경고 : 이 영화는 리얼한 비유를 위해 성적인 표현을 일부 사용했습니다. 19세 미만은... 그냥 읽지 마세요. 어차피 댁들이 볼 영화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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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베이는 정체불명의 영화사를 만들고, 과거 미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호러영화의 걸작들을 부활시키는 흑마술의 주문을 외웠다. 그 결과 프레디 크루거, 제이슨 부히스 등 많은 호러영화의 제왕들은 망령이 되어 살아났다. 그러나 욕망의 실현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쓴 결과는 늘 참혹했다. 되살아난 망령들은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안은 용사의 모습이 아닌 형상만 갖춘 좀비와 유사했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들 하지만 많은 호러영화팬들은 더 이상 과거의 영웅들이 좀비가 되어 부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과거를 다시 재건한 영화가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의 '영웅'이 아닌 '시대'를 통째로 되살릴려는 시도를 보인 영화다. 그 영화의 이름은 <하우스오브데블>이다. 이 단순명료하고 복고풍 물씬 풍기는 제목의 영화는 공교롭게도 2009년 최신작이다.

<하우스오브데블>은 오컬트가 만연한 70년대 후반 미국 공포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딱 거기까지다. 21세기 영화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고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이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지만 그 이상으로는 어떠한 매력도 보여주지 못하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타이 웨스트 감독의 '2009년작' <하우스오브데블>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거든"이라는 흔하다 못해 지루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게 과연 실제사건인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아는 사람 있으면 제보해주길 바란다.

기숙사를 나와서 새로 집을 구한 사만다(조셀린 도나휴)는 전세금을 내기 위해 급한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그러던 와중 '베이비시터'라는 꽤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찾게 되고, 도심지에서 약간 벗어난 대 저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떠난다. 정체불명의 친절한 영감님 울만(톰 누난)이 사는 이 집은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겨져 있고, 사만다는 이 집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 위기에 대해서는 뭐 딱히 숨길 것도 없다. 스포일러라고 욕할 수도 있지만 알아봤자 별로 도움도 안되고 소시적 공포영화 좀 본 사람이면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 대목이기에 사만다의 위기에 대해 미리 밝혀두겠다. 울만은 악마신봉자였고, 사만다는 악마에게 바쳐지기 위한 제물이었던 것이다. 사만다는 이대로 악마를 잉태한 제물이 될 것인가?


<하우스오브데블>은 익숙하디 익숙한 오컬트 영화의 전통을 모조리 땡겨온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영화는 2009년작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복고적인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그것은 그 당시 호러영화가 안겨준 '재미'를 놓친 것이다.

함께 영화를 본 지인은 이 영화를 두고 "78분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며 경악했었다. 자, 이 영화에서 사만다가 집을 구하고, 집값을 마련하기 위해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친구와 함께 아르바이트 할 집으로 찾아가서 울만과 인사하고 혼자서 집에 있다가 집을 둘러보기까지, 딱 78분 정도 걸린다. 이 시간동안 사만다의 친구 딱 한 명이 우연찮게 권총으로 살해당한다. 그 밖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시간동안 관객이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아니다. 아마도 감독은 그것을 원했을테지만 공교롭게도 그 정도로 숨막히는 긴장감을 느낄수는 없었다. 이것은 마치 한 차례 설사를 싸질렀지만 장이 영 개운치 않은 상태에서 장거리 여행가는 버스에 올라탄 기분이다. 그냥 떨떠름한 불안감만 지속될 뿐이란 말이다. 이것도 지속되면 나름 '공포영화의 긴장감'으로 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을테지만 이게 지나치게 길어지면 관객은 짜증만 날 뿐이다. 삽입은 안 하고 애무만 2시간 해봐라, 좋을리가 없지.

여기서 더 안스러운 것은 78분의 긴 애무끝에 삽입된 물건이 3cm 겨우 넘으니 환장할 노릇이라는거다. 즉, 긴 기다림끝에 작렬하는 오컬트 의식과 악마신봉자들의 극악무도함은 초딩이 그린 낙서처럼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쯤되면 관객은 짜증이 날 지경이다. 긴 기다림 끝에 등장하는 악당의 만행은 장난 수준에 지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속편 등장할 지도 몰라"라며 끝을 맺어버린다. 절망적인 영화다. 리메이크를 통해 부활한 어떤 호러영화의 영웅들보다 더 더욱 처참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부활한 호러의 시대였던 것이다.

얼마나 스샷으로 쓸 게 없으면, 전부 인물컷이다.


혹자들은 여기에 반문을 제기할수도 있다. "그 시절 공포영화가 다 그렇게 어설펐지, 왜 그러냐?"며 "어설픔 또한 복고풍으로 재연한 공포영화다"고 반문할 수도 있는 일이다. 여기에 필자는 아주 바람직한 복고풍 호러영화 한 편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더 퓨리(출시제:전율의 텔레파시)>다. 이것도 일종의 오컬트라면 오컬트지만 그래도 조금은 변종 오컬트에 가까운 영화다.

물론 드 팔마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을 신인감독에게 기대하는 것은 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주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영화 러닝타임의 70% 이상을 말도 안되는 허전함으로 메우는 짓은 1970년대에도 하지 않던 짓이다.

좀 극닥적인 혹평 하나를 날리지면, 이 영화가 '쌈마이 정신'을 내세워 "우리는 사실 그라인드하우스 영화"라며 동시상영관 직행을 노릴 수도 있는데, 그라인드하우스가 들으면 툴박스를 들고 나와서 살인이라도 저지를 기세다. 그라인드하우스도 기분 나빠할 영화라는 소리다.


<하우스오브데블>의 시도는 분명 높이 살만하다. 마이클 베이 제작의 호러영화들이 저지른 만행에 비하면 분명 신선한 시도며, 독특한 결과물을 양산해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허우대만 멀쩡한 빈약남처럼 어설프고, 내실이 부족하다.

필자는 이 영화가 매우 처참하고 어설픈 결과물이라고 정의내리게 되지만 이런 시도는 분명 다시 할 필요가 있다. 복고로의 회귀를 통해 만들어 낸 신선한 결과물임은 인정해야 할 것이니 말이다.

하우스 오브 데블
감독 타이 웨스트 (2009 / 미국)
출연 조셀린 도나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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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부천영화제를 통해 접한 영화인 <제1규칙>은 딱 필자가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하드보일드 탐정스릴러에 공포영화의 요소를 첨가한 독특한 이야기의 영화였지만 A형 여자 삐친 것처럼 작렬하는 뒤끝은 영화를 다 본 후 극장문 나서기가 두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뒤끝있는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 <제1규칙>은 역사상 둘 도 없는 뒤끝을 자랑하는 영화다.

그래서 그의 다음 영화인 <유괴>는 솔직히 보기가 두려웠다. 이번엔 또 애를 데리고 어떤 뒤끝을 작렬시킬지 모를 일이었다. 보는데 많이 망설였지만 이 영화를 다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제1규칙>이 보여준 정교하고 재미나게 엮어낸 이야기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그냥 무시하기엔 너무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마력이 필자를 유혹하기 시작해서 <유괴>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제1규칙>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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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감독 켈빈 통 (2010 / 싱가폴)
출연 이명순,임덕영,곽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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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규칙>과 <유괴>를 연출한 사람은 싱가폴 출신의 켈빈 통 감독이다. 싱가폴 영화라는게 가끔 낯설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켈빈 통의 영화는 차라리 홍콩영화에 매우 가까운 영화다. 그만큼 아주 거부감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유괴>는 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다이하드'를 다룬 영화다.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택시 운전사 림은 아이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어느날 생일을 맞은 아이는 친구와 시내 게임장에 놀러 가지만 거기서 유괴를 당한다. 알고보니 아이의 친구인 부잣집 아들과 헷갈려서 잘못 유괴된 것이다. 이 작은 실수는 아이나 림, 그리고 주변 모두에게 끔찍한 '다이하드'가 되어 돌아온다.

<유괴>는 말 그대로 '다이하드'다. 아이를 구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까지 팔아가면서 고군분투하는 아비의 눈물겨운 분투를 지켜보자면 너무 처절해서 눈물날 지경이다. 마치 저 옛날 홍콩영화에서 주인공의 고난을 표현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방법을 택한 것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그만큼 나쁜 놈이 지나치게 나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로 <천장지구>같은 영화에서도 주인공을 고난에 빠뜨리는 나쁜 놈은 정말 비현실적일 정도로 나쁘다. 때로는 이런 극단적인 나쁜 놈의 등장은 현실성을 떨어뜨려서 극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유괴>에서의 나쁜 놈도 지나치게 나쁘다. 납치된 아들의 아비에게 "어서 돈을 마련해라"며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아이의 피를 뽑아서 아비에게 전달하는 대목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유괴범의 수법이다. 국내의 철없는 어른들이 따라하지 않을까 두려운 대목이다.

도에 지나치게 나쁜 놈이 등장해서 극의 현실성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다행히 이 이야기는 아주 정교하고 재밌는 편이라 어느 정도 몰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는 나쁜 놈을 당연시 하고 그에 대한 분노를 새긴 채 영화를 본다면 충분히 몰입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필자는 솔직히 그 부분을 실패했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흡사 두기봉이 만든 일련의 하드보일드 영화를 떠올린다. 정해진 시간에 사건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은 홍콩영화 특유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이 영화의 카체이싱 장면은 여느 홍콩영화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정교한 시간계산을 통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야기의 정교한 구조물은 어느 유명한 건축물에 뒤지지 않는 완벽함을 선사한다.

<유괴>의 정교한 이야기는 마치 '나비효과' 이론을 생각나게 한다. 작은 실수 하나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어떤 결과를 이뤄내는지 말이다. 만약 유괴범이 계획대로 부잣집 아이를 유괴했다면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테니 말이다. 그 작은 실수 하나로 아이는 자식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깊게 새기게 되고, 부잣집 영감은 젊은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된다. 하나 더 이 영화에 대해 밝히자면 유괴범은 팔자에도 없던 자신의 딸을 택시기사 림에게 유괴당하게 된다. 물론 택시기사의 유괴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 글의 처음에서 "나는 뒤끝있는 영화를 싫어한다. 켈빈 통의 영화 <제1규칙>은 뒤끝이 넘치는 영화라 그의 다음 작품인 <유괴>를 보기가 두렵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필자는 <유괴>가 뒤끝이 있는 영화인지 없는지는 밝혀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뒤끝은 없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문을 나설 때, 큰일 보고 뒤 안 닦은 것 같은 찝찝함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켈빈 통 감독의 전작에서 느낀 거의 유일한 불만을 이 영화는 제거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이 영화는 적어도 필자에게는 "완전초울트라캡숑 재미진 영화"라는 말이다. 뒤끝없이 재미진 영화를 찾는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는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다. 물론 개봉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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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글쓴이 기욤 2010.08.09 07:5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유괴 참 재미있게 봤어요^^
    여기서 이렇게 리뷰를 보니 기쁘네요. 피판을 같이 보신건가요 ㅋㅋ
    저 또한 잘 몰입해서 보았던 영화인거 같구, 직접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죠 ㅋㅋ ^^

    • BlogIcon DAISHI ROMANCE 2010.08.09 08:18 신고 address edit/delete

      더헛;;

      저는 GA는 못 봤는데;; 본 시가는 달랐던 모양이네요 ㅋㅋ

    • BlogIcon 타이거샤트 2015.04.11 18:56 address edit/delete

      제 본명은 타이거샤크 입니다^~^

  2. BlogIcon 타이거샤트 2015.04.11 18:54 address edit/delete reply

    유괴범xxbb같은 사람같아 완전 나쁜사람임





왠 듣도보도 못한 '살인사건'에 관한 영화가 칸에 초청이 됐단다. 한국호러영화라고 하면 성공작을 구경하기가 로또 1등 걸린 사람이 벼락맞아 사망할 확률보다 낮을텐데, 그 와중에 칸에 갔다는 말은 좀 의아했다. "롱테이크같은 아트무비적 미장센을 끼얹나?"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보고 판단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주 오랜만에 '칸 영화제'라는 이름값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칸 영화제'라는 이름값을 업고 관객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영화는 바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이다. 드라마 <환상의 짝꿍>에서 오지호의 극중 배역이름인 '장철수'와 동명이인인 장철수 감독이 연출한 <김복남>은 익숙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연쇄살인 호러물이다.

서울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해원(지성원)은 회사에서 부득이한 일을 겪고, 마음정리를 할 겸 고향인 '무도'로 찾아간다. 섬 안에 총 다섯 가구밖에 살지 않을 정도로 작고 아담한 마을인 무도에는 해원의 친구 복남(서영희)이 살고 있다. 복남은 남편(박정학)의 폭력과 마을 어른들의 차별에 시달리며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고, 해원은 이에 분노하며 불쾌해한다. 그러던 어느날 딸 연희(이지은)를 데리고 도망을 치려 하던 복남은 남편에게 붙잡히게 되고 개맞듯이 얻어터진다. 이 과정에서 이를 말리던 연희가 사고로 죽게 되고, 복남에게는 약간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김복남>은 매우 익숙한 설정의 영화다. 멀리는 <울프크릭>, <호스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부터 시작해서 가까이는 <극락도 살인사건>, <시실리 2km> 등 다양하다. 이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도시인의 휴식이라는 꽤 귀중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위협함으로써 주는 공포와 인적이 없는 곳이 주는 불안감때문에 이런 소재는 공포영화에서 단골로 활용되곤 한다.

<김복남>은 이 익숙한 설정을 바탕으로 두고 있지만 여기에 뭔가 색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과정이 꽤 신랄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극명하게 갈라놓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관계를 뒤집어버리는가 하면 영화가 극으로 치달을수록 피해자와 가해자는 오리무중에 빠지게 된다. 즉, 이것은 간단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관계의 상하구조에 있어서 시시각각 역전을 해대며 관객들에게 은근히 머리쓰게 하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또 이 영화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21세기 한국에서 다시 보기 힘든 남녀차별의 실상이다. 제 아무리 육지에서 고립된 작은 섬마을이라고 해도 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부조리한 남녀차별이 판을 친다. 그 덕인지 몰라도 관객들은 해원이 도시를 벗어나 섬으로 오는 순간 마치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조차 느껴지게 한다. 관객들은 이 부조리의 마을을 보면서 은은한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김복남이 당해온 부조리와, 딸의 죽음이후 분노의 오열을 하는 김복남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도 흡사 비슷한 심경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점을 의도하기라도 하는 듯 감독은 김복남의 오열을 오랜 시간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후 변신한 김복남이 저지르는 무자비한 살인은 그리 큰 잔혹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살인 자체가 잔인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낫을 들고 마을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김복남은 배우 서영희가 전에 출연한 영화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을 능가할 정도로 잔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남의 살인사건이 신빙성을 얻는 것은 그녀의 살인이 그녀가 당해온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공포영화로서 이 영화의 역할은 어디서 이뤄지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살인범 김복남이 아니라 피해자 마을주민들이 하게 된다. 연희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럽게 사건을 왜곡하는 마을주민들과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 여기에 해원의 어떤 행동까지도 이 영화의 공포가 된다. 살인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들의 왜곡, 무관심, 폭력이 이 영화에서는 소름돋는 공포로 작용한다. 즉, 이 영화는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도시민들의 무관심, 폭력 등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뭐 사실 그것도 매우 흔한 이야기다. 도시문명이 발달하고 집단화사회가 형성되면서 개인에 대한 무관심과 차별, 그리고 온라인 사회에서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무자비한 폭력과 왜곡은 매우 흔한 이야기다. 그 흔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연쇄살인과 관계의 역전을 이용해 매우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라면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영화에도 엄연한 약점은 있다. 실컷 공포영화다운 신명나는 살인을 벌여놓고 차분하게 영화를 끝낸 점, 카타르시스와 함께 불안을 안고 떠날만한 엔딩으로는 부족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불안'보다는 '슬픔'을 안고 있다. 공포영화 다 보고 와서 눈물흘릴 판이다. 물론 그 '슬픈 결말'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공포영화다운 엔딩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대로 지나치게 현실성 떨어지는 마을주민들의 폭력은 "정말 영화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세상에 저런 남녀차별이 있을까 싶지만 그것은 현대사회의 개인에 대한 폭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 폭력은 '남녀차별' 뿐 아니라 '특정인에 대한 폭력, 차별'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폭력은, 영화 속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 뿐이다.

(왼쪽부터) 장철수 감독, 서영희, 이지은, 지성원, 박정학.



흔히들 한국 공포영화의 치명적 문제점이 "공포영화 주제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할려고 한다"는 점이다. 공포영화 주제에 반전도 담고, 액션, 멜로, 감동 등등 이것저것 때려담을려고 하니 주머니가 터져버리는 경우라고 말한다. 물론 이 영화도 공포영화 주제에 감히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을려고 시도했다. 참 다행스러운 점은 그 시도가 아주 성공적으로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 시도가 성공한 이유는 영화가 묘사한 현대사회의 폭력이 영화 속 그것만큼 공포스럽고 두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매우 성공적인 공포영화가 되었다. '칸 영화제 초청작'이라는 꼬리표는 이 영화에 매우 어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감독 장철수 (2009 / 한국)
출연 서영희,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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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rdragonfly1234 2012.06.19 20:4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마지막 문단에서 한국영화의 문제점을 딱 꼬집으셨군요.. 한국영화를 본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그런 습관이 남아있는가 봅니다... 블로그 중 어느 영화평론가 분은 그게 바로 감독의 생각이므로 오히려 좋게본다고 말씀하시던데, Daishi 님의 글을 보니 반갑네요.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을 몰고 온다는, 뭐 그런 의미로 사소한 행동 하나가 연쇄작용을 해서 거대한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이 '나비효과'는 따로 영화로 제작될만큼 시나리오를 쓰는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소재거리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만든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 <고백>은 이러한 '나비효과'라는 말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인 듯 하다. 아이들의 사소한 장난이 불러오는 최대의 비극을 표현한 이 영화는 등장인물 몇 명의 시점을 빌려와서 그들 각자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꽤 복잡한 영화다.


종업식을 앞둔 어느 중학교, 아이들은 시끌벅적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 담임선생인 유코(마츠 다카코)는 이제 교사를 그만 둘 것이라 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 하나를 전한다. "내 딸이 죽었다. 딸을 죽인 범인은 바로 우리 반에 있다". 아이들은 혼란에 빠지고, 범인찾기를 시작한다.

<고백>은 등장인물들의 고백을 중심으로 구성한 영화다. 유코의 고백을 시작으로 범인의 고백, 범인 엄마의 고백, 범인 친구의 고백(캐릭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등 등장인물 각자의 시선으로 진실을 구성한다. 사건의 진실에 대해 접근하는 이러한 방법은 매우 객관적이다. 영화가 지속되면서 누군가의 시선은 거짓말이 되고, 진실의 구멍이 발생하고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건이 꼬리를 물고 거대한 진실을 구성한다.

진실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은 매우 흥미롭다. 흡사 이것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보여준 관계의 역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진실을 왜곡해버린 <라쇼몽>과 달리 <고백>은 진실의 조각에 대한 각자의 증언으로 사건의 퍼즐을 완성하는 방법을 취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라쇼몽>을 뒤집는 '서사의 혁명'으로 정의내려도 무방할 것이다.



조각이 모여서 구성된 사건에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일본의 사회적 풍경에서 찾을 수 있는 허무주의에서 귀결될 것이다. 개인이 말살된 집단화 사회에서 정체성을 잃은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강력범죄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의 현상이다. 그러나 현상 넘어에서 감지되는 진실은 범죄를 통해 삶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이 그 정체성을 얻는만큼 피해자들에 대해 무심해지는 잔인무도함이다.

시종일관 공허한 표정으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징징거리면서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 정당성을 얻으려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트가서 장난감 사달라고 칭얼대는 아이들의 모습과 똑같다. 그런 아이들이 느끼는 공허함이란 무엇일까? 부모를 잃은 한 아이와 부모의 과잉보호에 여려진 아이, 즉 아이의 인격을 형성하고 만들어내는 가정의 역할이 부족함에 따라 벌어지는 참사였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엄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요즘 맞벌이하는 가정이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아이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엄마'다. <고백>에는 몇 명의 엄마가 등장한다. 미혼모인 엄마 유코는 아이를 일때문에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지며 처절한 복수를 계획한다. 또 다른 엄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무조건 아이편에 서지만 그 점이 오히려 아이를 망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책한다. 또 다른 엄마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버리고 떠나지만 마음 한 켠으로 여전히 아이를 응원하고 있다.

각자 다른 사연으로 아이를 지키려는 부모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비극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성의 왜곡이 부른 참사'로 정의내려야 할까? '모성'에 대한 불완전성을 묘사하는 듯한 이 대목은 사실 '모성의 한계'를 의미한다. 엄마의 힘으로 아이를 지키기에 한계를 갖는 사회적 구조와 변질된 인간관계들, 타락을 조장하는 미디어와 청소년기 정체성의 혼란. 모성은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지만 사회적 구조의 변질과 혼란 속에서 모성은 끝내 아이를 지키지 못한다.

모성의 한계와 가족구조의 붕괴가 불러오는 청소년들의 공허와 타락이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화두일 것이다. 단순히 청소년 범죄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사소한 사건 하나가 불러오는 파장은 너무나 엄청나다. 사회구조의 붕괴를 불러오는 작은 행동의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고백>은 영화적으로 매우 세련되어있다. 어둡고 건조한 무채색으로 일관된 영상은 극단적인 사건들에 대해 침착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그것은 감정을 배제한 채 잔인한 살인을 행하는 인물들처럼 차갑고 냉소적이다. 여기에 초고속 영상과 빈티지한 음악들은 이 무겁고 건조한 이야기가 관객들의 피부에 스며들도록 트렌디하게 만들어준다. 즉, 건조하고 냉소적이며 잔인한, 관객들의 거부감을 유발하기 딱 좋은 이야기에 트렌디한 옷을 입혀 억지로 스며들도록 만들어놓은 영화다. 다시 말하자면 쓰디쓴 한약을 마시고, 그 거부감을 덜기 위해 사탕을 하나 먹는 것처럼 쓴 약 같은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잘 스며들도록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스타일인 것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 또한 놀라운 수준이다. 원래 기본은 해줬던 마츠 다카코는 이 영화에서 아이를 잃은 슬픔은 고스란히 안은채 지능적이고 냉정한 복수를 꿈꾸는 여교사를 잘 소화해냈다. 웃고 있어도 눈은 분노하는 듯한 그녀의 표정은 영화의 초반부에 화면 전체를 압도해버릴만큼 놀랍다. 여기에 조연들의 연기 또한 이야기를 잘 받쳐주는데, 특히 아역들의 연기는 실로 놀라운 편이다.

분열의 두가지 종류를 각자 나눠서 소화해낸 범인 A와 B는 아이로써는 놀라울 정도로 충격적이고 두려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특히 장근석과 임주완의 비주얼을 섞어둔 듯한 그 소년은, 참 누나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을 보여준다. 물론 그 아이의 연기 또한 참 좋았다.

일본영화의 고질적인 문제가 '절제된 감정표현'을 거의 시도하지 않을 뿐더러 시도해도 정말 못한다는 점인데, 이 영화는 클라이막스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장면에서 감정의 절제를 훌륭하게 보여준다. 그 결과 영화가 본래 의도했던 건조함을 잘 살렸다. 물론 엔딩에서 좀 무너졌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용서할만하다.



<고백>은 흡사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을 가진 사이버펑크 영화를 닮아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엿보이기도 할 정도로 음울하고 칙칙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언젠가 어떤 형태로건 맞이해야 하는 우리의 미래다. <고백>은 미래의 절망적 어느 한 지점을 미리 맞이하는 예행연습과 같은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우리는 이 영화를 맞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백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2010 / 일본)
출연 마츠 다카코,오카다 마사키,키무라 요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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