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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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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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9.12.23
    '백두산' 초간단 리뷰 (1)
  2. 2018.12.26
    하정우를 두 번 이상 사용한 영화감독들의 모임
  3. 2018.12.20
    [스포주의] 'PMC:더 벙커' 초간단 리뷰
  4. 2018.08.03
    [약간스포] '신과함께:인과 연' 초간단 리뷰
  5. 2018.08.02
    [쬐금스포] '공작' 초간단 리뷰
  6. 2017.12.28
    '신과 함께:죄와 벌' 초간단 리뷰
  7. 2017.12.13
    '1987' 덜 간단한 리뷰 (1)
  8. 2016.08.03
    [스포주의] '터널' 초간단 리뷰
  9. 2016.05.31
    [스포일러 왕창] '아가씨' 초간단 리뷰
  10. 2013.09.08
    클린트 이스트우드 vs 짐 캐리 - 표정은 연기의 일부일 뿐

1. 몇 년 전 한국영화 '7광구'를 볼 때 느꼈던 불편함들이 있었다. 일단 괴상한 CG부터 불편했겠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점은 배우들의 감정이 과잉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클라이막스에서 차해준(하지원)과 괴물이 싸울 때 해준이 지나칠 정도로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거의 모든 장면에 "으아아아아" 거리면서 뭔가를 한다. 그때 관객인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인물이 괴물과 싸우고 있다"라는 생각보다 "이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보며 연기하는 일은 천하의 대배우 안성기조차 어려워 한 일이다. 그런 작업에 익숙해진 헐리우드 배우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하더라도 우리 배우들에게 그건 여전히 낯선 일이다. 이 글이 이렇게 시작했다고 "'백두산'은 '7광구'급이다"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백두산'은 '7광구'에 비하면 당연히 훌륭한 영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연기하는 것도 많이 늘었다. 다만 이 영화가 가진 '불편했던 지점'은 '7광구'를 보고 느꼈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한다. 이 불편한 점들을 개선하는 것은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2. 다행스럽게도 '백두산'은 배우의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진 않는다. 워낙 잘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만큼 8년전 하지원이 하던 "으아아아아" 같은 것은 답습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같은 "으아아아아"를 하더라도 꽤 멋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클라이막스에서 등장하는 현악기 길게 늘어뜨린 음악은 "이러다 '아리랑' 연주하는 거 아냐?"라는 긴장감을 준다. 들을 때 마다 '디 워'가 떠오르는 음악이었다. 배우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며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그런데 음악이 지나치게 앞서나간다. 만약 내가 '올해 최악의 영화음악'을 꼽아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백두산'을 선택할 것이다. 

3. '백두산'에서 음악보다 더 거슬리는 것이 바로 편집이다. 속도감을 더하기 위해 편집을 더 했다는 인터뷰 내용을 봤다. 대체 편집을 어떻게 했길래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지 물어보고 싶다. 예를 들어 지하에서 드립을 주고 받다가 갑자기 지진이 나고 우루루 뛰어 나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깥에서 뭔가 회의를 하나 싶더니 갑자기 지하에서 총격전을 한다. '백두산'은 꽤 많은 부분이 이런 식으로 흐름이 끊어지고 설명이 생략된다. "속도감을 더해야 한다"는 게 감독의 뜻인지 제작자의 압박인지 궁금하다. 누가 저질렀건 간에 편집을 더한 것은 '저스티스 리그' 수준의 참사를 불러왔다. 배우의 말대로 이 영화, 감독판이 절실하다. 

4, '백두산'이 가져야 할 최대 장점은 CG여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CG기업인 덱스터스튜디오가 참여한 작품인 만큼 헐리우드 수준의 퀄리티를 보여줘야 한다. 큰 그림에서는 당연히 놀라운 CG를 보여준다. 영화를 나름 큰 화면에서 보고 싶어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슈퍼플렉스G에서 봤는데 대단히 만족스러운 스펙타클을 보여줬다. 그런데 스펙타클한 CG는 그렇게 잘 그리면서 그 흔한 크로마키는 왜 그렇게 티가 나는지 궁금하다. 리준평(이병헌)이 조인창(하정우)을 데리고 중국으로 넘어가려다가 차를 세우고 소변을 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 이후 리준평은 탈출을 시도하려는 조인창을 발견하고 차 뒷문을 연다. 이때 하늘과 나무가 보이는 배경 앞에 리준평이 서있다. 이 장면은 크로마키 촬영한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적어도 날씨예보하는 기상캐스터보다는 현실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최고의 CG 스튜디오 작품인데. 

5. 올해 '나랏말싸미'를 보면서 문제점이라고 느낀 것이 "왜 개그를 끼워넣냐"는 것이었다. 확실히 극장에서 가볍게 팔아먹기 위해서는 적당히 웃겨주는 것이 좋다. 게다가 영화의 주인공인 이병헌과 하정우는 웃기는 걸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들의 재능이 출중한 탓에 웃기다가도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매끄러웠지만 웃기려고 하는 장면은 확실히 이야기와 따로 논다. 상업영화라고 굳이 웃길 필요는 없다. 재난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백두산'이 많은 클리셰를 가져다 쓴 헐리우드 재난영화에서도 섣불리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재난영화 매니아('장인'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은)' 롤런드 에머리히의 영화들도 그랬고 그냥저냥 봤던 '샌안드레아스'도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만약 웃기고 싶었다면 재난이 터지기 전에 웃기는 것이 좋다. 특히 아무리 EOD(폭발물처리반)팀이라고 해도 구보시 발도 못 맞추고 총도 제대로 못 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 록'의 스탠리 굿스피드(니콜라스 케이지)는 FBI 화학무기 전문가(=과학자)였다. 그럴싸한 EOD는 '허트로커'에 나온다. 걔들은 총 잘 쏘잖아.

6. 많은 관객들은 '백두산'이 "전형적이고 뻔하다"라고 말한다. 분명 그런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난영화에는 '한국이니깐 가능한 장면'이 분명 등장한다. 화산이 터져서 범국가적 재난이 불어닥쳤는데 총질하는 장면이 나오고 작전지휘권을 빼앗기는 장면이 나오는 건 미국영화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재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휴머니즘이나 추악한 인간성 대신 총질하는 정치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안 어울리는 상황들이 등장하는데 그게 꽤 말은 된다. 미중 갈등상황도 어느 정도 반영돼있어 더 말은 된다. 헐리우드 재난영화였다면 오직 재난하고만 싸워야 했을테지만 한국의 재난영화는 싸워야 할 상대가 너무 많다. 그건 꽤 기발했다. 기발한 걸 잘 못 살린 게 문제지만. 

7. 결론: 나는 '백두산'이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재미가 없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불가피한 사정은 '저스티스 리그'가 노잼이 된 사정과 통한다. 재미없는 영화지만 감독판이 보고 싶다. 


추신) '백두산'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마동석을 새롭게 썼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마동석은 2017년 '부라더' 이후 처음으로 사람을 때리지 않았으며 2016년 '38사기동대'의 공무원 백성일 이후 가장 지적인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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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길가다 2019.12.24 12:49 address edit/delete reply

    덱스터의 특징을 잘 짚으셧네요... 갸들 특징은 중요한데서 성의가 없다는거죠.. 자신들이 제작한 신과 함께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영화들의 덱스터 특징을 보면 디테일 해줘야 할 중요한 부분들이 너무 성의 없다는..
    아마도 제작비의 문제가 크겠지만.. 명성에 비하면 너무 조잡하다 싶은부분들이 ..

    솔까 자신들 이름을 걸고 만든 신과 함께조차 어설프게 만들은거 보면..





한국영화에는 소위 '믿고 보는 배우'가 몇 명 있다. 대표적으로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등이 있을 것이다(개인적인 견해로는 조진웅도 이 명단에 조심스레 들이대본다). '믿고 보는 배우' 중 감히 '최연소'라고 말할 수 있는 배우가 있다면 단연 하정우일 것이다. 일단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라면 어떤 형태로건 재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든다. 다른 선배들에 비해 긴 커리어는 아니지만 이토록 성실하고 훌륭하게 경력을 쌓은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그냥 혼자서 하는 얘기긴 한데, 나는 배우의 가치는 필모그라피로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에 나온 배우일수록 그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배우에게 필요한 여러 덕목 중 '작품 선구안'도 아주 중요하다. 비결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정우는 선구안이 참 좋은 배우다.

그런데 하정우의 강점은 비단 이 선구안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선구안이 좋은 배우라면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을 봤을 것이다. 그런데 하정우는 최소 두 번 이상 함께 한 영화감독들이 꽤 많다. 다들 하정우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자면 친하다고 작품을 흔쾌히 수락한다기 보다는 좋은 작품에 수락을 해야 '선구안이 좋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하정우와 여러번 함께 한 '인맥'들은 정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일까? 천재 곁에는 천재만 모이는, '끼리끼리 노는' 원리가 여기에 딱 적용된 것일까? 이 글은 '하정우를 두 번 이상 사용한 영화감독들'에 이야기다. 그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정우를 적재적소에 사용한 것'도 빼놓을 수 없을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들이 하정우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 하정우의 매력과 그들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윤종빈 - 계급의 포식자와 그것을 깨부수는 남자

윤종빈과 하정우는 중앙대학교 동문이다. 나이는 하정우가 한 살 더 많다. 윤종빈은 졸업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하정우와 함께 하고 이 인연으로 무려 네 작품('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민란의 시대')을 함께 한다. 윤종빈 감독이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만든 세 작품에 대해 나는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 3부작'(남자 3부작)이라고 부른다(아마 나 혼자만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이 작품에서 하정우의 역할은 대체로 관계의 상위에 위치한 호전적인 사람이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호쾌한 성격의 고참,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호스트들의 마담,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조직의 두목이다. 이 역할의 공통점은 모두 밑바닥에서 시작해 계급의 윗 단계까지 올라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외향적이고 호전적이다. 이는 신입 계급일 때 부터 근면성실해야 하고 상관의 비위도 잘 맞춰줘야 가능한 자리다.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윤종빈에게 하정우는 '성공한 남자의 표본'이다. 재벌가의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자리 잡은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윤종빈의 '남자 3부작'에서는 '무너지는 남자'와 '근근히 버티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들의 대립점으로 자리잡는 역할을 주로 하정우가 했다. 이후 윤종빈은 '군도:민란의 시대'라는 전형적인 장르영화를 하나 만들어낸다. 여기서 하정우가 연기하는 '돌무치'는 앞선 '남자 3부작' 속 하정우의 시작과 같다. 철저한 계급 관계가 만들어진 조선 어느 곳에서 돌무치는 맨 밑바닥에 머물러있다. 그런데 돌무치는 계급의 위로 올라가는 대신 계급을 파괴해버린다. 어쩌면 앞서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군도'의 조윤(강동원)처럼 될 수 있었다. 마치 돌무치는 그간 마음의 짐을 내려놓듯 과감하고 저돌적이다. 윤종빈은 하정우를 통해 한국사회 속 계급의 원리를 보여주고 그것을 깨버린다. 


#김용화 - 어설프지만 인간적인 리더

하정우와는 역시 중앙대 동문이다(다만 동문이라서 뭘 함께 했을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김용화 감독은 총 6편의 필모그라피 중 3편('국가대표', '신과함께:죄와벌', '신과함께:인과연')에서 하정우와 함께 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다. 이 기간동안 김용화 감독은 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국가대표' 이후 4년만에 내놓은 '미스터 고'가 있다. '미스터 고'의 관객수는 132만명이다. 그리고 하정우와 함께 한 3편의 관객수 합계는 3507만명이다. 다시 말해 하정우가 없으면 크게 망한다는 의미다. 아마 김용화 감독에게 하정우는 '흥행토템'과 같을 것이다. 

그가 작품에서 하정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찾기는 의외로 쉽다. '국가대표'에서 차헌태는 어릴때 미국으로 입양된 스키 국가대표다.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리더가 된다. '신과함께' 속 강림차사의 역할도 이와 유사하다. 그는 삼차사의 리더로서 상황을 지휘한다. 김용화의 영화 속 하정우는 대체로 리더였다. 그런데 그 리더에게 흔히 말하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예를 들어 '캡틴 아메리카'같은). 이 리더는 실수도 하고 불안해 할 때도 있다. 듬직할 때도 있지만 관객이 주로 만나는 모습은 연약하고 초조한 내면이다. 그런데 하정우가 연기하는 리더의 불안한 면은 대단히 인간적으로 다가온다(사실 캡틴 아메리카가 정말 말도 안되는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다). 이 인간적인 리더는 이야기 전체에 휴머니즘을 부여한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위기에 몰리지만 그것들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모습이 극적 재미와 함께 감동도 준다. 

김용화 감독은 하정우를 이야기의 큰 줄기처럼 활용한다. 그의 선택과 갈등을 통해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완성된다. '이야기의 줄기'라는 무게를 감당하기에 하정우는 대단히 든든한 버팀목이다. 나 역시 그의 방식에 지지를 보낸다. '신과 함께'라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앞으로 더 만들어지는 이상 김용화 감독은 한눈 팔기 어려울 것이다. 그 말은 하정우와는 앞으로 몇 작품 더 한다는 의미다. 김용화 감독의 작품들이 앞으로도 승승장구 할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신과 함께'라는 걸출한 컨텐츠를 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정우라는 '흥행토템'을 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홍진 - 야누스의 얼굴

나홍진 감독은 영화 한 편을 내놓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장인정신'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그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좋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 그는 현재까지 3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그 중 두 작품('추격자', '황해')에서 하정우와 함께 했다. 사실 나홍진의 영화 속 하정우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추격자'의 지영민과 엄중호(김윤석)는 대립을 펼치며 서로를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대신 '황해'의 김구남은 일방적으로 극한으로 몰린다. 사실 나홍진의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인물이 극한으로 몰린다. 특이할 점은 그 극한에서 하정우는 대부분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있다. 지영민은 사람을 죽여놓고 순진하게 초콜릿을 까먹고 있고 하정우는 죽음의 위기까지 내몰린 뒤 산 속에서 오열한다. 

나는 나홍진이 하정우의 눈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진한 눈에 악마성을 부여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곡성'에서도 그는 어린 아이의 착한 눈에 악마를 씌운다. 사실 지영민이나 김구남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가 효진이(김환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홍진이 사용하는 하정우는 혼란스럽다. 선한 듯 악하고 악하지만 약하다. 어쩌면 하정우가 가장 입체적으로 그려진 영화는 나홍진의 작품에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김병우 - 위기의 남자

김병우는 최근 'PMC:더 벙커'를 통해 하정우와 다시 한 번 만났다. 두 사람은 '더 테러 라이브'로 만나서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성과를 일궈낸 전적이 있다. '더 테러 라이브'와 'PMC:더 벙커'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다. 그만큼 인물과 이야기는 한정돼있고 김병우 감독은 그 공간을 스릴과 서스펜스로 채워넣는다. 거의 하정우의 원맨쇼에 가까웠던 '더 테러 라이브'에 비하면 'PMC:더 벙커'는 윤지의(이선균)를 등장시키며 다소 틈을 열어둔다. 하지만 결국에는 하정우의 원맨쇼로 이야기는 귀결된다. 

김병우가 쓰는 하정우는 나홍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다만 나홍진이 극한 속에서 하정우의 양면성을 봤다면 김병우는 그냥 위기에 몰린 한 남자를 봤다. 마치 '괴롭히기 좋은 녀석'인양 장애물을 던져주고 그것을 빠져나와보라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물론 김병우 감독의 영화가 갖는 목적은 '서스펜스'에 있기 때문에 인물에게 집중할 여유는 그리 많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하정우라는 배우는 김병우의 서스펜스 안에서 칼춤을 추기 정말 적절하다. 이것은 김용화 감독이 바라본 하정우와 어느 정도 통한다. 그는 유력 방송 앵커와 민간군사기업의 유능한 팀장을 맡고 있다.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소개되지만 결국은 흠집이 드러나게 되고 그것 때문에 극한의 위기에 몰린다. 마치 견고하게 쌓은 모래탑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얄팍한 즐거움처럼 김병우의 영화 속 하정우를 보는 일은 약간의 죄책감을 유발한다. 김병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 '리튼'을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이런 쪽에 장기가 있는 것 같다. 만약 그와 하정우가 또 만난다면 김병우 감독은 다시 한 번 하정우를 괴롭힐 것 같다. 그는 그걸 대단히 잘하는 사람이다.


#하정우 - 허허실실 유쾌한 상남자

하정우는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롤러코스터', '허삼관', '577프로젝트'). 그리고 이 중 두 편('허삼관', '577프로젝트')에는 하정우 본인이 직접 출연했다. 그래서 이들 두 영화는 '하정우가 보는 하정우'로서 대단히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우선 그는 대단히 유쾌한 사람이다. 이것은 굳이 '허삼관'과 '577프로젝트'를 빌리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다(일단 그가 만든 모든 영화는 코미디다). 하정우는 개그를 하기 대단히 좋은 캐릭터다. 그는 굉장히 웃기는 이야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재밌는 이야기를 할 때 말하는 사람이 먼저 웃어버리면 망한다). 그리고 '장난 DNA'도 굉장히 발달돼있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장난을 친다(이것은 제작보고회 등에서 나온 답변들을 들어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미적감각도 뛰어나다. 영화 연출을 한다는 자체가 그것을 어느 정도 증명하기도 하지만 미술과 사진에도 재능이 있다. 그야말로 예술적 '끼'가 상당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하정우가 본 하정우는 가장 정확한 하정우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그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언제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경우에 따라 '하정우를 한 번만 사용한 영화감독'들을 폄하는 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정우를 한 번만 썼던 박찬욱, 전계수, 이윤기, 김성훈, 장준환 등은 다시 하정우를 찾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들 중 상당수는 "하정우와 한 번 더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중들에게 '믿고 보는 배우'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의 시선과 연출자의 시선은 통하기 마련이다. 대중들이 본 매력은 결국 연출자들도 본 것이다. 그래서 '하정우를 두 번 이상 사용한 영화감독들의 모임'에는 앞으로 회원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추신) 사실 김기덕 감독 역시 '숨'과 '시간'에서 하정우와 작업하며 '하정우를 두 번 이상 사용한 영화감독'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그의 세계관에서 하정우만이 갖는 차별성을 찾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이 글에서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라 빼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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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초의 영화이론은 정적이었다. 영화의 기원이 사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활동사진'을 이어붙여서 만든 이야기에 가깝다. '활동사진 A'와 '활동사진 B'를 이어붙여 '상황 C'를 만드는 원리와 같다. 이것은 '근의 공식'이나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영화이론서 한곳에 단단하게 박혀있었다. 영화의 역사는 이론을 파괴시키며 발전해왔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미국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 브라질의 시네마누보 등 여러 영화이론들은 기존의 관습을 깨부수고 진보하며 영화의 다양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장해왔다. 관습의 파괴는 혁명의 메카니즘과 같다. 영화는 그렇게 혁명적으로 진화해왔다. 

2. 나는 1999년 봤던 영화 '블레어 윗치'가 새로운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활동사진'의 정적인 원리에서 벗어나고 편집의 공식이 완전히 파괴된 영화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이야기의 원리와 관객의 감정을 성공적으로 움직인다. 이것은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다. 그리고 현재에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불리는 많은 영화들은 영화 공식의 메카니즘 안에서 틀을 최대한 파괴하며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 김병우 감독의 영화 'PMC:더 벙커'는 철저하게 픽션이다. 애시당초 가상의 미래가 배경이며 극적인 구조를 잘 형성하고 있다. 관객에게 이 상황을 진짜처럼 믿게 하는데 별로 관심이 없다. 처음부터 '가짜'라고 밝히고 들어가는 영화다.

3.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들이 이 가짜에 깊이 빠져들길 원하고 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진짜라고 믿으며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가짜지만 빠져보라는 강한 '협박'과 같다. 관객은 고분고분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돼있다. 영화 전체가 에이햅(하정우)의 시선으로 처리되는 만큼 에이햅이 얻는 정보와 관객이 얻는 정보는 같다. 다시 말해 에이햅이 얻는 감정을 관객도 고스란히 느끼는 셈이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주연이었던 영화 '베리드'나 최근에 본 스웨덴 영화 '더 길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제한시키는 것은 정보의 빈공간을 인물의 감정으로 채우게 한다. 'PMC:더 벙커' 역시 그렇게 관객을 집중시킨다.

4. 그렇다면 이렇게 집중시켜서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PMC:더 벙커'를 보고 나면 곧장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영화가 있다. 피터 버그 감독의 '론 서바이버'다. '론 서바이버'는 전쟁영화인 척 하는 생존담이다. 양 진영이 치고 받을만한 그림이 나오는 가운데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쫓기고 몰리는 싸움이다. 에이햅과 랩터16팀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생존'이다. 이는 보통 좀비영화에서 자주 보던 공식이다. 좀비영화에서 인간들의 목표는 좀비와 싸워서 이기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그걸 망각한 영화가 '창궐'이다). 그러니깐 'PMC:더 벙커'의 진한 몰입감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쟁영화의 시원함보다는 답답한 긴장감이 주를 이룬다. '론 서바이버'도 마찬가지였다. 

5. 김병우 감독은 영화의 개봉 즈음 변해버린 국제정세를 일부 반영하기 위해 배경설명을 새로 찍었다고 했다. 아마도 벙커 안 줄거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수정이 가해진 모양이다. 얘기인 즉슨 벙커 안과 바깥의 상황은 본래 유기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온전히 '관계없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영화에 주요하게 언급되는 나라는 총 4개국(미국, 중국, 북한, 남한)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남한을 상징할 인물은 애시당초 등장하지 않았고 북한은 주권이 없는 나라처럼 그려진다(에이햅은 미국 시민권을 기대하는 사람이고 북한의 '킹'은 선택이나 권력을 전혀 행사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결정권을 가진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 전부다. 그런데 그들이 싸움을 하다 미사일을 쏘고 비행기를 격추시킨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다.

6. 결국 이 영화는 '한국전쟁 시즌2'로 치닫는 나라를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일촉즉발로 치닫는 나라지만 남한과 북한은 뉴스의 어느 귀퉁이에서도 정체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남한이었던 사내와 주군을 잃은 북한 의자 윤지의(이선균)가 등장할 뿐이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서 이러저리 치이다가 죽을 고비를 맞이한다. 누가 봐도 한국전쟁의 재현이다. 그리고 그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 남한은 북한을 구하고 북한은 남한을 돕는다. 찰나에 스쳐간 에이햅의 미소는 이 이야기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랬다. 이 영화는 '국뽕영화'인 것이다. 

7.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를 보면서 "국뽕영화도 잘 만들면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니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끝내주는 국뽕영화였다. 국뽕영화도 잘 만들면 비평과 흥행을 모두 챙길 수 있다. 한국영화에는 국뽕을 빨 여지가 많다. 다만 오랜 시간 좌절과 절망을 겪은 국민들에게 국뽕은 저열한 프로파간다에 불과했다(실제로 영화들도 저열한 프로파간다였다). 나는 한국영화에서 '잘 만든 국뽕영화'를 기대하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PMC:더 벙커'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푸른 빛이 감도는 새벽의 들판에서 에이햅이 보여준 옅은 미소는 생존에 대한 희망과 화해의 메시지가 있다. 다만 감독이 이를 의도했을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이념적 유토피아를 논하기 전에 이 영화는 처절한 생존이야기이기 때문이다.

8. 결론: 정신없이 쥐고 흔들어대다가 무심한 듯 툭 던진 국뽕에 취한다. 주모~ 샤따내려~


추신1) 김병우 감독은 이 작품을 기점으로 윤종빈, 김용화, 나홍진에 이어 '하정우와 두 번 이상 작업한 연출자 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젊은 감독들은 하정우와 두 번 이상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연출자들에게는 일종의 '하정우뽕' 같은 것이 있나?

추신2) 흙먼지를 뒤집어 쓴 하정우에게서 자꾸 '터널'이 보인다. 필모를 뒤져보니 흙먼지를 뒤집어 쓴 기억이 그리 많진 않다('터널', '더 테러 라이브', '군도:민란의 시대' 등). 의외로 흙먼지가 잘 어울린다. 

추신3) 덱스터 스튜디오를 한국의 디지털도메인이나 앰블린으로 불러야 할까 고민해봤다. 그러기엔 김용화 감독이 아직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론에 근접하지 않은 것 같다. 이건 좀 더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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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영화 '신과 함께'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의 풋풋한 마음이 아니라 '한국형 프렌차이즈'의 탄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상업영화에서 있어 흥행 원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프렌차이즈'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프렌차이즈의 천국인 미국이나 만화·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천국'인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돈 벌어먹을 콘텐츠'가 유난히 없다. '한국형 프렌차이즈'의 가능성을 보인 영화라면 '여고괴담'이나 '조선명탐정' 정도 있을 것이다. 마음먹고 기획한다면 팔아먹을 꺼리가 많은 영화지만 정작 제작·기획을 하는 사람들은 이 콘텐츠들로 돈 벌어먹는데 실패한다. 김용화 감독은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에 빗대 KCU(김용화시네마틱유니버스)라는 되먹지 않은 농담을 했지만 나는 '신과 함께'가 그에 못지 않은 프렌차이즈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 프렌차이즈의 요건은 우선 '팔아먹을 꺼리'가 많아야 한다. 단순히 영화 티켓값 뿐 아니라 캐릭터 상품도 팔아야 하고 게임이나 소설 등 2차 콘텐츠로도 생산돼야 한다(이미 원작이 만화책이니 한번의 재생산은 거친 셈이다). 그 가능성을 보기 위해 '신과 함께:인과 연'은 매우 중요한 지점의 영화였다. 말 그대로 앞으로 이 콘텐츠가 얼마나 돈이 될 지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먼저 훌륭한 캐릭터들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함께 외적인 디자인도 포함한 것이다. 그리고 게임으로도 팔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중독성'(a.k.a. 게임성)도 갖춰야 한다. 다시 말해 게임으로 발전될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과 함께:인과 연'은 재미있는 영화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티켓값을 제외한 다른 수익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3. '인과 연'은 전편의 단점들을 상당수 보완했다. 일부 관객들의 말대로 전편보다 담백하고 재미있다. 다만 캐릭터들은 여전히 장사가 될 인물들이 아니다. '인과 연'에서는 이들의 기구한 사연이 공개되긴 했지만 그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기회가 주어지진 않는다. 돈이 되는 캐릭터들(예를 들어 마블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사연을 극복하고 본격적인 활약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캡틴아메리카의 경우 약골인 몸을 극복하고 영웅으로써 활약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아이언맨 역시 테러단체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하는 고난을 겪고 활약을 보여준다. '인과 연'은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은 자신들의 사연을 극복하는데 영화 전체를 할해한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뭘 해보려니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적어도 3편은 나와봐야 이들의 '상업성'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4. 마동석이 연기한 '성주신'은 어쩌면 '인과 연'에서 가장 상품성이 있는 캐릭터다. 마동석 자체가 주는 매력과 성주신의 우직함과 귀여움은 관객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기 충분하다. 게다가 캐릭터 디자인 역시 원색이 많아서 눈에 띄는 편이다. 팔아먹기 좋다는 의미다. 다만 너무 일찍 이 캐릭터를 내놓은 것이 이 캐릭터의 상품성을 해치고 있다. 디자인의 상품성으로 따지면 최고였던 저승의 7대왕들은 몇몇 대왕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번에는 지옥이 포인트가 아니기 때문이라 치더라도 그 캐릭터들의 상품성은 다소 아깝다. 그리고 성주신은 기대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5. 이야기는 재미있다. 이승과 저승을 아우르며 1000년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복잡한 이야기는 꽤나 잘 짜여져 있다. 다만 여기에는 몇 가지 거슬리는 지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1000년 전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고리가 그리 밀접하지 않다. 두 사건이 만나야 하는 이유도, 두 사건을 만나게 한 강림의 의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결과적으로 두 사건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연관성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강림의 선택은 억지스럽다. 또 하나, 배경이 고려시대라면서 한글을 이용한 트릭은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해놓은건지 모르겠다. 

6. 그런데 '인과 연'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있다. 해원맥이 고려군 장수였던 시절과 덕춘이 여진족 고아였던 시절.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나는 이것이 '로맨스'를 의도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치 '불한당:나쁜놈들의 세상'에서 한재호(설경구)와 조현수(임시완)의 관계가 로맨스였냐 아니냐는 논란과 비슷할 것 같다. 해원맥과 덕춘의 관계는 '키다리 아저씨'와 '고아소녀'로 보기에는 그 이상으로 애틋한 지점이 많다. 화살을 가르치는 장면이나 마지막 죽을 때의 모습에서 두 사람에게 '연인'이 보인다. 물론 감독이 다른 생각을 했는데 표현이 잘못된 것일수도 있겠다.

7. 워낙 김향기의 팬이기도 하지만 이번에도 김향기는 몹시 애절하다. '죄와 벌'에서 눈물샘을 차태현과 예수정 배우가 책임졌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김향기가 눈물을 다 책임진다. 원래 잘하는 다른 배우들은 접어두고라도 김향기의 눈물연기를 볼 수 있는게 이 영화의 백미가 될거라 생각된다(사실 김향기도 눈물연기를 원래 잘한다). 그리고 불쌍한 여진족 고아의 분장이 너무 잘 어울려서 영화 보다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정말 잘 어울렸다.

8. 결론: 한국형 프렌차이즈는 아직이란 말인가...


추신1) 4DX 효과가 생각보다 시시하다. 물론 아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4DX 효과를 보여줬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오히려 잔잔할 지경이었다. 

추신2) 쿠키영상 보자마자 육성으로 튀어나온 말 "이자성 너 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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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작'을 보기 얼마전, 우리는 이단 헌트(톰 크루즈)라는 걸출한 첩보원을 만났다. 첩보와 공작활동을 한다고 하니 당연히 '아는 첩보원'의 이름이 스쳐 지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이단 헌트와 박석영(황정민)은 다르다. 둘의 유일한 공통점은 '아재'라는 것 밖에 없다(사실 이단 헌트를 이제 '첩보원'이라고 불러야 할 지 부터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션 임파서블'을 좋아한다. 매번 나올때마다 극장에서 승승장구하며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007', '제이슨 본' 시리즈를 볼 때 마다 나는 생각을 해본다. '진짜 첩보영화'는 무엇일까? 최첨단 기기를 가지고 황당한 논리를 내세우는 악당을 황당하지만 재밌게 막아내는게 첩보영화일까?

2. 사실 '진짜 첩보영화'를 찾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윤종빈 감독의 '공작'도 진짜 첩보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이 영화가 전방에 내건 '흑금성 작전'을 맥거핀이라고 불러야 할 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윤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 '공작'에 대해 "원래는 '흑금성'을 제목으로 하려고 했으나 주목을 받을 수 있어서 '공작'이라는 가제를 지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입에 붙어서 그냥 '공작'이라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 제목이 '선거 공작'을 의미한다고 믿고 싶다. 이 실제 사건은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두고 시작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주체인 안기부에게 '주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되기 때문이다. 

3. 그렇다면 윤 감독은 왜 하필 이 사건을 영화화하려 한 것일까? 단순히 '재밌는 사건이라서'라고 보기에는 시기가 너무 적절하다. 일부 SNS를 중심으로 17대, 18대 대선에 대한 '조작'의 의심이 조금씩 고개를 들던 시기였다. 아니, 어쩌면 본격적으로 의심이 이어졌으나 언론이 등을 돌린 시기였다. 누가 봐도 뭔가 할 말이 있어서 대놓고 하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건은 돌고 돌아 한 지점에 머무른다. 이것은 시간적인 지점이 아니라 메시지의 지점이다. 남과 북의 갈등으로 시작해서 정치적 갈등이 폭발하는 내부를 거쳐 결국 남과 북의 우정으로 향한다. 큰 집단과 작은 집단의 갈등을 거쳐 개인의 화합에 머무른다. 부조리한 집단에게서 본 실망을 개개인의 희망에서 찾으려한다. 이 부조리한 사건에서 도출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결론이라고 여겨진다.

4.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언급할만 화두인데)사실 윤종빈 영화만큼 여성캐릭터 찾기 드문 영화가 없다. 여성캐릭터가 등장할때면 꽤 재미있는 캐릭터로 등장하긴 하지만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공작'은 전작보다 여성캐릭터가 더 없다. 애시당초 여성캐릭터가 끼어들 틈이 없는 이야기긴 하다. 개인적으로 큰 불만은 없다. 오히려 억지로 여성캐릭터를 넣으려 하면 흐름이 깨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박소담을 너무 아끼지만 '대장 김창수'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과 같은 원리다).

5. 아마 앞으로도 윤종빈 감독은 여성캐릭터가 주(主)가 되는 이야기는 만들지 않을 것 같다.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만든 '비스티보이즈'와 '범죄와의 전쟁'을 두고 '남자의 일생 3부작'이라고 개인적으로 정의내리는 것처럼 그는 5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한없이 '남자의 일생'에 관심이 많았다('남자의 일생 3부작'은 군대에서 친구, 아버지로 이어지는 '남자이야기'를 말한다). '공작'에서도 리명운(이성민)을 통해 아버지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준다. 그러나 '군도' 이후 윤종빈 감독은 '남자'에 대한 고찰을 접어둔 듯 하다.

6. '공작'은 여러모로 이례적인 영화다. 그 이례적인 지점 중 가장 큰 지점을 언급하자면, 이 영화는 윤종빈 감독의 필모그라피 중 처음으로 '하정우가 나오지 않는 영화'다. 사실 그게 정말 궁금했다. 하정우에게 책을 보냈는데 거절당한건지, 아니면 "우리 이제 그만보자"라고 해서 안 보낸건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이야기에는 하정우가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박석영이나 리명운은 나이가 있는 캐릭터다. 최학성(조진웅)을 연기할만큼 하정우는 '연령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는 아니다. 정무택(주지훈)을 맡기기에는 그 명성과 위압감이 아깝다. 결국 '필요에 의한 결별'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7. '공작'은 비록 하정우도 없고 눈에 띄는 여성배우도 없지만 배우들의 잔치라고 볼 정도로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 최고는 단연 기주봉이다. 무려 '김정일'을 연기한 그는 완벽한 분장을 하고 김정일을 그려낸다(베일에 쌓인 김정일을 연구할 수는 없었을거라 생각된다). 그가 표현한 김정일은 호탕한 카리스마를 가진, 시원시원한 성격의 사내다. 이쯤에서 나는 위험한 상상을 해보고자 한다. 북한에 대한 실상을 담은 방송 몇 개를 보면 북한은 미국에 대해 '미제 괴뢰(?)' 정도로 표현한다. 그들이 만든 삽화에 미군은 탐욕스럽고 악랄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물론 선전과 선동의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런데 북한만 선전과 선동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체제(=권력)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전과 선동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도 선전과 선동을 당한 부분이 있진 않을까?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8. 영화 '공작'은 실제 사건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일부 각색이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지나치게 정직하다. 그 증거로, 영화는 중요한 지점에서 '나레이션'을 내보낸다. 다소 투박한 말투로 담담하게 말하는 박석영의 나레이션은 실제 주인공의 회고록을 읽는 것처럼 건조하고 직설적이다. 이는 중요한 장면에서 관객이 상상할 여지를 막아버린다. 마치 관객을 향해 "딴 생각하지 말고 내 의도대로 따라와"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필요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즐기고자 하는 입장에서 이런 나레이션은 다소 심심하고 아쉽다. 나는 막 상상하고 싶기 때문이다.

9. 결론: '공작'은 주고 받는 대사의 '티키타카'가 좋은 영화다. 배우들은 노련한 기술로 대사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이끌고 간다. 영화의 재미는 대부분 그 지점에 있다. 다만 '주고 받는 대사'가 아닌 나레이션은 다소 숨이 막힌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외적인 부분에 대해 온갖 상상을 다 하게 된다. 영화가 개봉하면 여러모로 이야기꺼리가 많을 것 같다.


추신) 윤종빈 감독에게 정말 궁금한 것 하나: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이 실제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영화 속 김명수(김홍파)와 정무택이 베이징 클럽에서 추는 그 사회주의적인 '땐-쓰'는 어디까지 실화일까? 안무도 다 따로 짜서 연습한 것일까? 굉장한 칼군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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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호민 작가의 웹툰은 '짬'을 재밌게 봤다. 에피소드 단위로 끊어지는 웹툰을 좋아해서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가진 '신과 함께'는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주호민 작가의 그림은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그림도 아니었다. 그런 '신과 함께'가 판타지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돼 올해 마지막 대작이 되고 있다고 한다. 어째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대체 얼마나 잘 나온거야?"라는 궁금증과 약간의 의무감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2.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단히 기능적이고 전략적인 영화다. 영화를 만든 사람의 메시지나 원작에 대한 재해석이 담겨있다기 보다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장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영화인 셈이다. 대다수의 오락영화들이 그렇지만 '신과함께:죄와벌'은 특히 그런 부분이 더 눈에 띈다. 원작의 긴 이야기를 함축하려다 보니 전개가 상당히 빠르다. 시작하자마자 곧장 김자홍(차태현)을 죽이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일곱가지 지옥을 보여준다'는 마케팅과 달리 필요한 지옥만 보여주고 넘겨버린다. 이야기의 갈등에 최대한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보여진다. 이런 의도처럼 영화는 몇 개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하면서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3. 아마 원작팬이라면 꽤 빨라진 전개와 그로 인해 생략된 것들 때문에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적재적소에 감정을 끌어올리면서 이어지는 전개 덕분에 관객들이 영화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물론 단점이라면 한 감정에 깊게 빠져들 수 없다는 점이다. 눈물 나올만하면 다른 사건이 등장하고 생각 좀 해볼만하면 다음 장면이 등장한다. 

4. '신과함께'는 꽤 흥미로운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지옥'은 어릴때 어설픈 스님이나 목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죽어서 벌을 받는다는 발상이다. 이것은 7개의 관문으로 꽤 단순하게 도식화돼있다. 그런데 김자홍의 삶은 (어쩌면 거의 모든 인간의 삶이 그럴테지만) 그리 단순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선한 일에도 저승의 도(道)를 그르치고 악한 일에도 저승의 도(道)를 지킬 수 있다. 한 예로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한다. 아마 그 논리대로라면 세상 온갖 나쁜 놈들은 대부분 천국에 있을 것이다. 

5. '선의지'(ein guter Wille)라는 말이 있다. 칸트의 '윤리 형이상학 정초' 첫 번째 절에 등장하는 말로 '이 세계에서 또는 도대체가 이 세계 밖에서까지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을 말한다. 즉 제한없이 절대적으로 선한 것은 선한 행동을 하려는 의지 뿐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을 하더라도 나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고 악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의 삶이 이처럼 복잡한데 지옥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그것은 이승과 저승의 구조 자체가 부조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6. '신과 함께'는 김자홍의 여정을 통해 그 딜레마를 드러내고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물론 칸트의 '선의지'를 떠올릴 정도로 철학적이진 않다). 깊은 철학적 접근은 없지만 화두를 던져준 것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흥미롭고 가치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7. 오래전 '7광구'를 보면서도 느낀건데 영화에서 시각효과라는 것은 기술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발전하는 것 같다. 아무리 기술적 발전을 이룩하더라도 그 그릇에 담아낼 상상력이 없다면 시각효과는 대단히 후진 그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할때도 한국은 '밑그림 하청국가'로써 위치를 지켰다. 그림 기술은 좋으나 일본 애니메이션같은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신과 함께'의 시각효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판타지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에 걸맞게 놀라운 특수효과를 선사하지만 정작 그림들이 식상하다. 물론 '인면어'같은 기발한 발상도 있었지만 김자홍이 죽어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장면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식상했다. 

8. 결론: '신과함께'는 관객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오락영화다. 나 역시 울컥한 장면도 몇 차례 있었으나 울만하면 상황이 바뀌어있어서 울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내년 여름에 개봉하는 작품과 함께 2부작이라고 들었다. 원래 영화는 '3'이 안정적인데 '2'라니 다소 애매하다. 이런 영화라면 3부작으로 해도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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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 여름 '택시운전사'를 통해 만난 1980년 5월의 광주.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익숙한 이야기지만 그날의 광주에 대한 서슬퍼런 묘사가 인상적인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는 외부자 김만섭(송강호)이 광주로 가서 사건을 목격하고 변화하는 과정이 익숙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광주는 이전의 영화와 다르게 사실적이었고 소름돋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80년 5월의 광주에 대해서는 꽤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1987년 6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그날의 이야기는 어쩌면 광주의 대학살에 가려져 있었거나 혹은 누군가 창작자의 입을 틀어막아 전해지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2. 장준환 감독이 1987년 6월의 이야기를 전한다고 했을때 다소 의아했다. 그의 전작 '지구를 지켜라'나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의 일관된 세계관이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에 어떻게 스며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세계관이 이 사건에 스며드는게 가능한지부터 묻고 싶어졌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준환 감독은 자신의 장편에서 보여준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1987'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화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전작들에 역사적 근거를 더한다. 장준환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1987'은 굉장한 도움이 되는 영화일 것이다. 

3. 우선 장준환 감독의 작품 속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공통점은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신하균)와 '화이'의 석태(김윤석)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외계인을 믿거나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한마디로 '이상한 사람'이 된다. 이 이상함은 '폭력성'으로 드러나며 병구와 석태의 아픈 과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깐 주로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폭력적인 인간이 나온다는, 경찰서의 가정폭력 예방문구 같은 사실이 장준환 영화의 핵심이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이 말을 믿는다. 그의 영화 속 폭력의 원인은 모두 인물의 과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4. '1987'에서 가장 폭력적인 인물은 박처원 대공수사처장(김윤석)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우두머리인 그는 검찰도 압박하는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고문한다. 그의 명분은 '애국'이다. "빨갱이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붙잡아 고문하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그것을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영화 내내 '애국'을 부르짖던 그는 중반부가 지날 즈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말한다. 평안도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 해방 직후 이념적 대립이 막 일어나던 시기이며 한국전쟁으로 이어지기 직전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제주 4.3사건과 유사한 성격, 한 마을에서 함께 어울려 살던 주민들이 이념으로 갈라지며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시대를 관통한 사람이 박 처장이다. 그러니깐 그는 소위 '빨갱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이것이 극단적인 폭력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5. 폭력적인 트라우마를 가지고 어른이 돼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된다는 설정은 병구, 석태의 모습과 닮아있다. 하지만 박 처장은 병구, 석태와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과거에는 앞선 두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나있다. 박 처장의 과거는 이념의 대립이 시작되는 과도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는 '애국'이라는 명목으로 또 다른 누군가의 '폭력'이 된다. 아마 1987년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면 병구나 석태같은 자가 폭력으로부터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장준환의 세계관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6. 어쩌면 이미 우리는 폭력의 대물림을 목격했을지도 모르겠다. 1987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르고 또 다른 독재(=폭력)에 짓밟힌 세상에서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고 세상을 또 한 번 바꿔냈다. 만약 그가 늘 하던대로 '폭력의 대물림'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면 이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1987'은 장준환의 이전 영화들과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아마도 그는 이 영화에서 희망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느끼게 된 이유는, 이 영화에는 '너무 많은 의인(義人)'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7. 여기에 '화이'에 이어서 다시 한 번 등장하는 기독교(교회)의 모습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의 영화 속 드러나는 모든 절망의 순간에 '예수님'은 자리에 있지 않았다. 흔히 "현세에 고통받더라도 나중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현세가 이미 지옥이라면 죽은 후의 천국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박 처장이 대공분실에서 고문피해자를 심문하는 장면, 그는 어린 시절 겪었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가하면서 "지옥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의 앞에 앉은 사람은 며칠째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 끔찍한 고문을 당하던 사람이다. 지옥은 가까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현세를 지켜보고 계신다. 그런데 장준환의 세계관에서 그런 예수님의 곁에는 언제나 악인(惡人)이 있었다. 


8. 영화의 메인포스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외에도 이 영화에는 의로운 일을 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언듯 보면 이 영화는 마치 일본 전대물처럼 하나의 악당과 여러명의 히어로가 싸우는 영화로 보인다('어벤져스'?). 하지만 박 처장의 권력 뒤에는 타노스처럼 막강한 실세(연희동 민대머리)가 버티고 있다. 떼로 덤벼도 쉽지 않은 승부라는 것이다. 마치 승부를 내보자는 의도처럼, 이 영화에는 다수의 의인이 등장해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연희(김태리)가 거리로 향하기 전, 그녀는 엄마의 슈퍼에서 물건을 정리한다. 그런데 영화는 하필 그녀가 '양초'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냥 넘겨버리기엔 양초가 너무 크게 보인다. 1987년 6월에서 2016년의 10월을 읽어내는 모습이다.

9. 박 처장 다음으로 내 시선을 사로잡는 인물은 동아일보 사회부 윤상삼 기자(이희준)다. 나름 사회부에서 고참들만 간다는 검찰 출입기자를 하면서 꽤 기민하게 움직인다(혹시 오해할까봐 하는 이야기인데 그 시절 언론은 뿌리가 어떻든 정권의 탄압을 받고 있었고 기자들은 그에 저항하고 있었다). 흔히 '기자의 꽃'이라고 불리는 사회부는 집에 들어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바쁘지만 그만큼 굵직한 기사를 많이 뽑아낸다. 지금이야 연예기사를 가장 많이 본다지만 혼란스런 시대에는 사회부 기사를 가장 많이 봤었다. 겪어봐서 다들 잘 알 것이다. 

10. 가끔 열심히 일하는 기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볼 때면 뭔가 의지가 끓어오른다. 몇 년 전 '스포트라이트'를 봤을때도 "저게 기자의 로망이지"라며 박수를 쳤다. 지금이야 언론이 너무 많아진 탓에 어떤 기자들은 '기레기'라 불리기도 한다. 기자를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배우게 되는 기자의 직업윤리, 사명감 같은 것은 오늘날의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1987'에서 유난히 많이 보여지는 장면이 동아일보 편집국과 서울지검 기자실의 모습, 그리고 치안본부장실에서 브리핑을 하는 모습 등이다. 마치 정치·사회부 기자들이 영화를 봐주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보아라 기레기들아,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불의에 분노하고 진실을 알려 정의를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절로 숙연해진다.

11. 이 영화는 다양한 사람들을 차례차례 비춰준다. 그 중 김태리와 강동원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다소 흐름이 끊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이 사건으로 분주한데 이 대학생 둘만 청춘멜로영화를 찍는 것처럼 보인다(미대오빠 강동원은 너무 사기다). 혹시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태리와 강동원의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핵심이다. 최 검사(하정우)가 이야기의 시작을 열었다면 두 사람의 에피소드는 이야기의 결말을 짓는 셈이다. 그러니 두 사람의 에피소드에 쳐지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리고 둘이 나오는 장면 꽤 이쁘고 재밌다.

12.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던 입장에서 배우 우현의 등장은 꽤 놀라웠다. 어쩌면 '나올 배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등장은 '1987'의 무게를 한껏 실어준다. 우현은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나왔지만 학생운동으로 두 차례 옥살이를 하면서 군에서 면제됐다. 6월 항쟁 당시 선봉에 섰으며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영정과 함께 집회 선봉에 선 사진은 미국 타임지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 총학생회장이 이미 붙잡혀간터라 학생회 간부였던 우현은 우상호 의원과 함께 집회 선봉에 섰다. 만약 어느 연예부 기자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우현을 만나서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1987'에 출연한 소감이 어땠는지...

13. 언급한 배우들 외에도 좋은 배우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으로 나온 배우는 (내 기억이 맞다면) 최민식의 동생 최광일이다. 이미 연극계에서는 굉장한 거물이다. 강동원의 동료로 등장한 양조아는 남연우 감독의 영화 '분장'에서 대단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조우진, 고창석, 오달수 등 '나올 배우'들은 여전히 알차게 그림을 만들어주고 있다. 또 유해진은 '택시운전사'에 이어 '1987'에도 얼굴을 내민다. 그는 올해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아픈 두 지점을 다녀온 배우가 됐다. 

14. 결론: '1987'을 보다 보면 몇 차례 울컥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런데 이것은 신파에 의한 눈물과 다소 다르다. 물론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긴 하나 이는 억울함과 분노를 동반한 슬픔이며 후반부에는 군중의 구호에 소름이 돋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아마 관객은 조금 다른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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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빛나 2017.12.28 02:08 address edit/delete reply

    13번 최광일 배우 맞습니다 맞고요!!! 양조아 배우는 넘 짧게 지나가 놓쳤는데 고맙습니다~~
    14번 저도 모르게 '호헌철폐 독재타도' 따라서(물론 작게ㅋ) 중얼거렸습니다ㅠㅠ





1. 사전 설명이 별로 없다. 영화 시작하고 최소 5분 이내에 일단 터널을 무너뜨린다. 서론 다 제끼고 일단 본론부터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일단 굉장히 마음에 든다. 


2. 이제 터널의 붕괴 후,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드라마가 동시에 벌어진다. 터널 안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이정수(하정우)와 터널 밖에서 부조리와 싸우며 구조작업을 지휘하는 김대경 소방장(오달수)이다. 여기에 후반부로 갈수록 아내 세현(배두나)의 드라마가 가미되면서 몇 개의 이야기가 얽혀버린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앙상블이다. 


3. 이야기 간의 앙상블은 꽤 좋은 편이다. 부조리에 대한 웃픈 코미디와 생존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보여주는 휴먼드라마의 케미는 좋은 편이다. 여기에 세현의 절절한 눈물이 어우러지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실소를 짓게 하다가 울게 하는 맛을 보여준다. 이것은 흡사 "관객을 가지고 논다"고 평가할 정도로 지능적이고 다이내믹한 리듬이다. 


4. 이제 관객이 얼마나 이 리듬에 녹아드냐의 문제다. 꽤 지능적이긴 하지만 복잡하게 관객을 가지고 논다. 초반부에 웃프고 씁쓸한 코미디는 후반부의 절망과 신파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처럼 쓰여진다. 하지만 사실 관객은 시종일관 답답한 가운데 웃다가 눈물짓게 될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터널은 영화 시작 후 극초반에 무너졌다. 터널에 갇혀서 홀로 지내는 이정수의 초반 모습처럼 관객은 그 답답한 와중에서 온갖 감정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5. 다만 이 복잡한 리듬에 녹아들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산만함을 느낄 수 있다. 이게 웃기자는건지 울라는건지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복잡한 감정선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몰입시킬 장치가 필요하다. '터널'은 충분히 관객을 몰입시킬 장치를 깔아뒀지만 어차피 영화에 몰입하는건 개인차다. 충분히 집중해서 볼 자신이 있으면 이 영화의 감정 널뛰기를 즐겁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6.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 역시 구조과정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어느덧 한국영화에는 '시대 비판'이라는게 트렌드처럼 자리잡았다. 예술이 시대에 대한 비판정신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시대에 대한 비판정신이 정말 날카로운 의지를 가지고 만들었는지, 아니면 이런 이야기가 돈이 돼서 그러는건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시대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다룬 영화는 확실히 돈이 된다. 올해만 해도 '부산행'이 엄청난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지난해에도 '베테랑'과 '내부자들' 등이 좋은 성과를 보였다. 관객들은 억눌린 현실에 분노하며 이를 해소해줄 수 있는 영화에 열광한다. 


7. '터널'은 이런 부분에서 충분히 효과적인 풍자를 보여준다. 장관(김해숙)이 현장에 와서 브리핑 받고 한마디 하는 장면은 파란지붕집에 계신 분을 떠올리게 한다(정말 심하게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국민 여론조사와 언론의 모습도 여러가지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어떤 영화들은 이런 비판정신을 팔아서 장사하는 경우도 있다(주로 '성상납'이라는 화두로 장사를 했던 것 같다). 이런 우려는 사실 '터널'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터널' 이후에 '비판정신'을 팔아서 장사할지도 모를 영화들이 염려되고 '비판정신'에 무뎌질지도 모를 관객들이 우려된다. 당장 나 역시 '비판정신'에 무뎌지고 아무리 비판하고 분노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무기력해진다. 


8. 사실 '터널'에 한해서는 '무기력'이란 말이 이상하게 와닿는다. '터널'은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정수는 극적으로 생환했고 시원한 한방을 날렸으며 아내와 함께 무사히 집으로 향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아내와 구조대장이 있었고 희망을 품었던 작업반장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구하지 못한 일련의 사건들을 잘 알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때 살아난 이정수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장문을 나서고 현실로 돌아오면 누구도 구하지 못한 그날의 사건과 무너진 안전 속에서 불안에 떨어야 하는 우리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터널'은 그런 면에서 일종의 '희망고문'같은 영화다.


9. 다른 이야기인데 무너진 터널 세트가 상당히 디테일하다. 의외로 공간이 많았음에도 보는 사람들의 숨을 턱 막히게 한다. 하지만 영화보다 더 답답한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답답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10. 결론: '터널'은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게 만드는 영화다. 여기에는 분명 리듬이 있고 패턴이 있다. 그리고 이것을 공통적으로 아우르는 답답함은 터널의 안과 밖에서 모두 느끼게 될 것이다. '터널'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영화다. 어쩌면 이것은 '부산행'보다 더 무거운 돌덩이를 관객에게 던져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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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장면은 아무래도 '동주' 촬영장을 활용한 것 같다. 저기 어딘지 정말 궁금하다. 


2. '아가씨'의 원작인 '핑거스미스'의 요약 줄거리조차 단 한 줄도 읽지 않아서 이 이야기의 정체성이 뭔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 '아가씨'와 소설 '핑거스미스'의 싱크로율도 전혀 모른다. 그런 입장에서 영화 '아가씨'에 대해 요약하자면 이것은 치정극을 가장한 전형적인 '페미니즘 영화'다. 


3.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탐욕스럽고 가학적인, 그러면서 모자라고 둔한 사내들과 합리적인 사고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질주하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남자'인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꽤 매력적이다. 그 이유는 식민과 독재, 폭력의 시대에 처해진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4. 이 영화와 꽤 닮은 이야기로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언급해보자.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어느 외딴 언덕이다. 고립된 장소에서 고립된 질서에 의해 핍박받는 여성들의 이야기와 그녀들의 복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시대와 남성의 역할 사이에 대한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고립된 언덕'이라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5. 반면 '아가씨'는 그 '일제시대'라는 것이 이야기의 설득력을 만들어줬다. 물론 '일제시대'는 이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저 계급의 차이가 극명하고, 낮은 계층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높은 계급을 탐해야 하고, 그 욕망은 꿈틀거리고 가학적 형태로 드러나고. 인물들은 남자와 여자 모두 뱀처럼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6. 그러니깐 적어도 영화의 어느 지점까지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꿈틀대는 욕망을 품고 더 나은 삶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치정극'으로 위장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정성을 가지고 "그녀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풀어내고 있다. 결국 위장을 벗겨냈을때, 이 영화에 남은 건 탐욕스런 두 남자의 죽음과 사랑을 푸은 두 여자의 도주만이 있었다. 그래서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페미니즘 영화가 된다. 


7.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것은 아가씨(김민희)와 하녀(김태리)의 정사씬이다. 알려진대로 근래 한국영화에서 본 적 없을 정도로 대담한 수준이다. 이 장면은 이전의 한국영화 '간신'과 비교 해 볼만하다. 


8. '간신'은 그 자체가 '에로틱 사극'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에로티시즘'에 초점을 맞췄다. 즉 행위의 중요성보다 분위기로 숨이 턱턱 막히는 에로티시즘을 선사한다. '간신'에서 화제가 된 그 장면은 오롯이 두 사람의 감정과 연산군과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담긴 장면이다. 반면 '아가씨'의 그 장면은 상당히 대담하고 직설적이다. 마치 영화 속 등장하는 춘화처럼 노골적이다. 물론 '에로틱'한 장면이 없는 건 아니다. 아가씨와 하녀의 목욕장면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야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정체성은 엄연히 '포르노그라피'에 가깝다. 


9. 늘 이야기하지만 영화에서 정사씬은 인물의 관계가 드러나는 '언어'다. 아가씨와 하녀의 정사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다. 그것을 위해 이 장면은 분위기보다 두 사람의 몸짓과 자세에 집중한다. 


10. 재밌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는 '대칭'이 핵심이다. 보통의 정사라면 누구 하나가 위에 있고 아래에 있고, 먹고 먹히는 관계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정사씬은 누구도 위에 올라서지 않는다. 마지막까지도 두 사람은 '대칭'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두 사람의 관계를 의미한다. 영화 내내 가학과 피학, 혹은 욕망이 꿈틀대던 남성들과 달리 이 두 여성의 관계는 누구도 위에 올라타지 않고 '마주보는 관계'인 셈이다. 마지막까지 두 사람은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주보는',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아마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11. '아가씨'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미술'이다. 이 영화는 제임스 아이보리의 영화들에 근접할 정도로 고풍스런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여기에 춘화풍의 정사장면과 중세 유럽미술풍의 회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박찬욱 식'으로 표현해내는 고집은 '아가씨'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12. 결론: 욕망과 치정, 가학과 피학의 끈끈이 지옥 속에서 두 여인의 사랑만이 꽃핀다. 혼돈의 역사 속 삶의 고된 나날과 같은 짙고 짙은 안개를 머금은 검은 망망대해,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불안의 한 가운데,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가는 여객선 속 사랑을 머금은 청하한 방울소리만이 구름을 머금은 달빛처럼 빛나고 있구나.



추신) 내가 "'아가씨' 보러 간다"고 하니 후배기자 녀석이 "썸타는 여자랑 영화 볼건데 '아가씨' 어떤지 알려달라"고 한다. 나는 내일 녀석에게 "'아가씨' 너무 따뜻한 멜로영화다. 부디 썸타는 여자랑 꼭 봐라. 사랑이 꽃 필 것이다"라고 말 할 계획이다(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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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던가... 김도훈씨던가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둘 중 한 분이 방송에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는 다른게 아니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를 참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그 말을 듣고는 "응 뭐라고? 제정신이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어보니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억 속 아련한 그 영화평론가가 이야기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란 정말 한정된 표정 속에서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연기자에게 기본이 되는 '표정'이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기를 못한다는 주장이다.

 

"뭐 그래도 풍기는 아우라가 남다르지 않소?"라고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자,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서 비장함을 느끼는 장면이 있었다면 어느 영화가 됐건 그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 장면에서의 조명과 카메라 각도, 음악, 복장, 색채, 편집 등등 모든 미장센을 떠올려보자. 어떤 미장센이라도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우라는 단언컨대 클린트 이스트우드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독의 연출과 스태프의 노력이 어우러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표정 위에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이쯤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반대방향에 있는 한 남자를 떠올려보자. 바로 짐 캐리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정된 표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수백가지 표정을 가지고 있다. 안면근육이 실리콘재질인양 다양한 표정을 구사하지만 데뷔 초만 해도 그는 "연기 잘한다"라는 소리를 그리 많이 듣지 못했다. 그의 데뷔작 '에이스 벤츄라'를 떠올려보자. 카메라와 조명, 편집 등 모든 미장센이 그의 표정을 잡아내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마스크'도 마찬가지다. 아마 짐 캐리는 이 대목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23'같은 영화로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프레임을 표정으로 채워버리는 연기자가 있다면 연출은 그리 할 일이 적어진다. 이미 그의 표정으로 프레임이 할 이야기가 상당부분 소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연출자는 나름대로 프레임을 뭔가로 꾹꾹 채워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채워낸다 한들, 관객은 인물의 감정은 무엇으로 읽어낼까? 배우의 표정으로 읽어낸다.

 

 


어쩌면 이것은 누가 더 훌륭하고 아니고를 가려내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건, 표정과 연출로 함께 감정을 전달하건 관객의 선택에 의해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순전히 필자의 의견일 뿐이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명배우 '스티븐 시걸'을 언급하는건 자제해야 할 것이다. 그는 육체의 대화로 연기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이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짐 캐리 중 누가 더 좋은 연기자냐?"를 묻는 간단한 질문이다. 다시 말해 이 질문은 앞서 말한대로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자와 연출에 표정을 녹여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자 중 누가 더 좋은 연기자냐를 따지는 작업이다. 여기서 필자는 전자를 지지하고자 한다.

 

 


연기 자체에서 연출의 공간을 남겨두는 것은 감독이 더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 배우가 이야기 전체를 어떻게 이해했다고 한들 편집에서 감독이 원하는 흐름이 있다면 프레임에서 인물의 감정은 배우가 표현할 일이 아니라 감독의 역량에 맡겨야 할 일이다. 이것은 히치콕의 몽타주에 빗대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샤워하는 여자의 모습과 창 밖을 바라보는 무표정한 남자의 모습이 순차적으로 보여질 때 남자의 프레임 안에서 그는 무표정할 수 있었기에 편집은 그를 샤워하는 여자나 훔쳐보는 변태로 만들 수 있었다. 만약 감독이 연기자에게 "욕망이 끌어오르는데 티를 안 내는 인텔리한 변태"를 표현해달라고 주문한다면, 연기자는 꽤 골치가 아플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국영화에서는 꽤 많은 배우들이 연쇄살인마나 사이코패스를 연기한다. 이런 살인범을 연기할려면 기본적으로 눈을 치켜뜨고 약간 화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게 깐 채 험한 대사들을 내뱉는다. 누가봐도 이건 '살인범'의 기본기다. 여기에 하정우라는 연기자는 작은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그는 '추격자'에서 살인범을 정말 평범하고 순박한 청년처럼 묘사한다. 살인범을 살인범이 아닌 것처럼 연기하자 그의 행각들은 더욱 관객에게 공포로 다가온다. 이 묘한 상황의 원리는 바로 연기자의 능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물을 표현할 틈을 줬기 때문이다.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욕실에 들어오고도 태연하게 거울을 보고 단장을 하는가 하면 곧 죽일 피살자에게 "괜찮아 걱정마"하며 어르고 달래는 상황은 '살인'이라는 당시의 행동을 제외한다면 너무 평범하고 순박해진다. 바로 살인이라는 행동과 프레임 속 상황, 배경이 끼어들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필자가 단연 최고의 연기라고 인정하는 '지옥의 묵시록'에서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이 카메라를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장면이다. 만약 그 장면에서 모든 조명과 분장, 음악, 구도를 빼고 봤다면 그냥 멍 때리는 중년남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미장센이 개입하자 장면은 커츠 대령의 아우라가 잘 드러난 명장면으로 탈바꿈한다. '신세계'에서 이중구를 연기한 박성웅 역시 그의 비열함을 연기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감독에게 욕을 좀 먹었다. 그리고 그는 이중구의 캐릭터에 힘을 죽 빼기 시작했다. 그러자 캐릭터는 보기 드문 비열한 사내로 바뀌어버렸다.

 

 


물론 짐 캐리도 좋은 연기자다. 그가 가진 수백가지 표정들은 전세계 어느 연기자들과 겨뤄봐도 소중하고 독자적인 자산이다. 그 표정만으로도 그는 헐리우드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기자로써 그가 이룩하고자 하는 영역에 도달하는데는 아직 한계가 있다. 솔직히 짐 캐리에게서는 그 '천의 얼굴' 때문에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제한을 받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짐 캐리만큼 표정으로 뭘 할려고 하는 판이 바로 한국드라마계, 그 중 이병훈표 사극계다. 이병훈은 훌륭한 드라마 연출자로 한국 사극드라마의 틀을 잡은 산증인이다. 헌데 문제는 이병훈표 연기 디렉팅이다. 그의 사극에서 착한 사람은 착한 표정을 짓고, 나쁜 사람은 나쁜 표정을 짓고, 놀란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짓고, 흐뭇한 사람은 흐뭇한 표정을, 화난 사람은 화난 표정을 짓는다. 표정들이 지나치게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그렇다 보니 어느 순간 이병훈표 사극에서 한계가 느껴진다. 그것은 이야기의 한계일 수 있지만 아마 '연기의 한계'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이병훈표 사극 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드라마들이 인물의 감정표현을 상당 부분 연기자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그래서 프레임이나 세트 등 많은 부분이 단조롭다.

 

이건 연기자가 고민해야 할 일이지만 연출자가 고민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연기자는 표정으로 표현해야 할 부분과 연출에 기대서 표현해야 할 부분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러닝타임 내내 주연배우의 연기밖에 안 보이는 영화 '히트'를 보면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러닝타임 내내 연기로 격돌하진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 그들은 상황에 기대고 편집과 연출에 기댄다. 그리고 그때 연출자는 인물들을 비장하고 터프하게 묘사해낸다. 흔히들 '히트'를 두고 "배우가 집어삼킨 영화'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정작 배우들은 '연기'를 하지 않는다. 연기할 부분은 연기하고 어떤 부분은 연출에 기대 그대로 움직이기만 할 뿐이다. 사실 '히트'는 배우의 연기력과 함께 노련한 연출력이 뒷받침된 작품이다.

 

 


이제 이쯤에서 우리나라의 몇몇 연기자들을 보자. 물론 우리나라에도 좋은 연기자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자신의 연기력만으로 인물을 표현할려고 한다. 표정과 연기만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어떤 연기자들은 '명품조연'이라는 대접을 받으며 연기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면 감독이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을 죽일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감독의 훌륭한 연출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앞선 이야기들을 돌이켜보면 좋은 연기자는 늘 좋은 연출자와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은 필자가 좋아하는 배우인 이연희를 위해 쓴 글이다. 그녀가 이 글을 볼 지 모르겠지만 만약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부디 표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길 바란다. 그리고 좋은 연출자도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공적인 자리에서 만난 그녀의 모습이나 연예부 선배기자들, 사진기자들에게 종종 듣던 그녀의 모습들을 감안해본다면, 사실 그녀는 이승기나 송중기 못지 않게 건실한 젊은이다. 그런 성실하고 착한 젊은이가 자기 일에서 성공하길 바라는 건 당연한 이치! 그래서 이런 충고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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