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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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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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an'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2.05.30
    7년전 종로, '리얼판타스틱'을 기억하십니까
  2. 2011.07.29
    'L.A 좀비' - 훈훈하고 정의로운 게이좀비포르노 (2)
  3. 2011.07.22
    '리벤지, 미친 사랑 이야기' - 우직하지만 실패한 복수극
  4. 2010.08.25
    [The 14th Pifan] 괴물들 (4)
  5. 2010.08.10
    [The 14th Pifan] 하우스 오브 데블
  6. 2010.08.09
    [The 14th Pifan] 유괴 (4)
  7. 2010.07.31
    [The 14th Pifan]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1)
  8. 2010.07.29
    [The 14th Pifan] 고백
  9. 2010.07.26
    [The 14th Pifan] 콜렉터
  10. 2010.07.26
    [The 14th Pifan] 세르비안 필름

때는 2004년, 당시 부천시장이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장이던 홍건표가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김홍준 집행위원장을 자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프로그래머들까지 모조리 영화제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다음해 이들은 보란듯이 부천영화제가 열리는 7월 같은 기간에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또 하나의 판타지아를 열게 된다. 그것이 리얼판타스틱영화제다.


물론 이 영화제는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을 띄고 열린 영화제다. 하지만 그런거 다 떠나서 워낙 양질의 프로그램과 현재까지도 감히 볼 수 없는 키치적인 분위기를 가진 영화제였기에 7년이 지난 지금 새삼 한 번 언급해본다.

 

 

 

알다시피 이 영화제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위치한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2억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개최됐다. 당시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국내외 영화계가 김홍준 위원장에 대해 부당한 처사를 보인 부천영화제를 보이콧하며 부천으로 갈 상영작 대부분이 리얼판타로 몰렸다. 하지만 부천의 약 1/10 규모 예산으로 열리는 영화제인만큼 많은 상영작을 수용하지 못해 부천 입장에서도 크게 피해볼 것 없는 장사였다.


리얼판타의 개막작은 아코프 프로타자노프 감독의 1924년작 '아엘리타'다. 당시 동구권 SF영화라는 국내에서 도저히 보기 힘든 영화들로 특별전을 마련한 만큼 소련 SF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며, 이 영화제는 자신들의 승부수를 '신선함'에 뒀다.


또 관객투표로 선정된 폐막작은 마이클 도우즈 감독의 '본격 뽕필일렉트로닉클럽판타지 휴머니즘' 영화 'X됐다, 피트 통'이 상영됐다.

 

 

 

리얼판타에서 사실상 메인 프로그램은 '판타스틱영화세상' 부문이며 이 섹션에는 15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헌데 왠만한 영화제와 달리 이 영화제의 메인프로그램에서는 단 한 편도 정식개봉한 작품이 없다. 영화제가 소규모였다는 것도 이유가 될테지만 이 중 4편을 본 입장에서는 "도저히 개봉할 영화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당시 필자가 본 영화는 'X됐다, 피트 통'과 함께 시바타 고 감독의 '느린 남자', 메이케 미츠루의 '사치코의 화려한 생애', 길렘 모랄레스 감독의 '침입' 등이다. 이 중 그나마 국내에 알려진 작품이 '침입' 정도일텐데 그 이유는 이 영화를 만든 길렘 모랄레스 감독의 차기작 '줄리아의 눈'이 국내에 정식 개봉했기 때문이다. 물론 '큐브'를 만든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영화 'Nothing'도 있었지만 이 영화는 빈센조 나탈리의 장편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어쨌거나 경쟁부문에서 단 네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은 "왠만해선 극장개봉이 힘들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 잔인하거나 야해서가 아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참 스타일 강렬하고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판타스틱'의 정의를 단순히 썰고 베고 꿈꾸는 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충분히 그 개념을 확장시켰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다.

 

 

리얼판타의 매력은 작품 프로그래밍 외에도 영화제 전반의 분위기에 둘 수 있다. 낙원상가라는 복고분위기 물씬 풍기는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 키치적이면서도 판타지한 장소로 재창조해냈다. 특히 폐막파티를 극장 맞은 편 '1,2,3 캬바레'에서 연다는 아이디어는 눈부실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인디 힙합씬들이 캬바레에 총출동해 파티를 벌인다는 발상은 실로 감동적이다. 물론 필자는 그 파티에 가지 못했다. 아직도 그 점은 한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밖에 리얼판타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기념품이다. 당시 최고 화제가 된 기념품인 '통조림 세트'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썰어놓은 뇌', '으깬 심장', '잘려진 손톱과 손가락' 등 이름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통조림들, 그리고 그 속에 든 반전은 전국 어느 영화제에서도 하지 못한 솔깃한 아이디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한 자원활동가들의 수작업 이야기는 이 가난한 영화제의 눈물겨운 노력을 실감케 한다.

 

 

앞서 말한대로 리얼판타는 정치적 목적을 띄고 열린 단발성 영화제다. 그렇다 보니 서울아트시네마에 이 판타지아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제는 관공서와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은 영화제가 얼마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부산과 부천, 전주의 많은 영화제들이 충분히 본 받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이들은 각자 공간적, 물질적 제약을 받으며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주어진 공간에 얼마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영화제를 기획하고 개최하는 이들의 몫이다. 경우에 따라 충분히 '도시 전체'가 축제의 판타지아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 영화제의 기획력이다.

 

 

여담) 리얼판타스틱영화제의 홈페이지는 아직 살아있다(http://www.realfanta.org/main/). 물론 지금은 게시판에 광고가 도배되어 있어 마치 '폐가'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가끔 이곳에 들어가보면 이 영화제의 흥미로웠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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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에다가 이런 얘기 하는게 처음이라 당황스럽지만... 19세 미만 미성년자나 비위 약하신 분은 리뷰 읽지 마시길 권해드립니다.

201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1년전인 2010년과 마찬가지로 '악명높은 영화' 하나를 선택했다. 2010년 부천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영화는 <세르비안 필름>이었다. 2011년에도 부천은 그 정도의 악명이라고 떠들어대며 경고한 영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L.A 좀비>였다. 평범한 좀비영화같은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의 악명이 알려진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인 브루스 라브루스가 독특한 퀴어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L.A 좀비>는 악명높은 '게이좀비포르노'가 되는 셈이다. 막상 영화의 실체를 확인했을때 이 영화는 아주 확실한 '게이좀비포르노'였고 그 표현수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만큼 적나라했고 솔직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적나라한 이미지에 갇혀있지만 나름 할 얘기를 가지고 나온 영화였다. 그리고 그 할 이야기를 찾아내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영화의 대략적인 이야기로 한번 풀어나가보자. 세부적인 디테일 묘사는 일본 대지진 현장만큼으니 처참하게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디테일 이야기 꺼내면 3박4일동안 욕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거두절미하고, 이 영화의 이야기는 한적한 바닷가에 뜬금없이 나체의 근육질 좀비가 나타난다. 그리고 아주 뜬금없이 심야에 산길을 다니는 한 남자의 차를 얻어탄다. 그런데 또 이 남자의 차는 뜬금없이 사고를 당한다. 좀비는 좀비니깐 당연히 안 죽는데, 운전하던 남자는 거의 죽어간다. 마지막 심장박동이 멈추고, 결국 남자는 죽는다. 옆에서 끈적하게 이 죽은 남자를 바라보던 좀비는 뜬금없이 바지를 벗더니 죽은 남자의 상처부위에 물건을 삽입하더니 격하게 피스톤 운동을 한다. 어느덧 절정에 이르고 좀비가 검붉은 정액을 뿜어내자 죽은 남자는 갑자기 살아난다.

이쯤 듣다 보면 독자들 역시 "대체 그게 뭐야?", "병신같애" 뭐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필자도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더군다나 대사 한마디 없이 이 뜬금없는 상황이 주구장창 반복된다면 이미 개념은 안드로메다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 좀비는 앞서 이야기한 식대로 로스앤젤리스의 갱스터와 부랑자, 피살자 등 많은 시체들을 살려낸다. 이 이상한 장면들을 연속으로 보고 있자면 마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언데드 사제가 죽은 파티원 부활하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게이변태좀비가 '사제'로 보일 정도라면, 이 좀비의 행동은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게 된다. 특히나 좀비가 살려낸 사람들, 좀비가 지나다니는 공간은 로스엔젤리스의 어둡고 더러운 부분에 해당된다. 좀비는 이 어둡고 더러운 곳을 다니며 죽은 사람들을 살려낸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빌리 해링턴'(국내 잉여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게이 포르노배우)처럼 하고 있는 4명의 남자들을 살려낸 뒤 벌이는 다섯 남자의 뜨거운 정사는 검은색과 붉은색, 살색이 뒤엉킨 이상한 지옥도를 연상시킨다. 타락천사가 지상의 가엾은 중생들을 쾌락으로 구원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좀비는 변태짓으로 L.A의 죽은 자들을 살려낼까? 그것은 후반부에 가서 드러난다. 이 좀비가 공동묘지로 가더니 죽은 자들의 죽는 장면을 떠올리며 뜨거운 피눈물을 흘린다. 그러더니 어느 무덤으로 가서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 묘비에는 'LAW'(법)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좀비가 'LAW"의 무덤을 파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죽은 법을 살려내서 L.A를 구원하겠다는 좀비의 강한 의지, 혹은 하루동안 열심히 활동한 'LAW'라는 이름의 좀비가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는 것. 둘 중 뭐가 정답인지 알 수는 없지만 뭐가 정답이건 간에 이 좀비는 '훈훈한 게이좀비'가 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해석으로 인해 얻어진 의미는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음지로 숨은 동성간의 성행위로 L.A를 구원하겠다는, 말도 안되게 야심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왠지 병신같지만 뭔가 훈훈한 영화인 것이다.

<L.A좀비>는 이처럼 훈훈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영화로써는 엉망이다. 좀비의 옷이 시종일관 달라지는 것에 대해, 하나의 좀비가 갑자기 둘로 나뉘어져 서로 바라보고 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해석이 안된다. 그것을 자아의 분리 정도로 본다고 해도 말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결론은 "감독이 영화를 못 만든다"로 보는게 속 편할 것 같다. 그냥 이렇게 결론내린 것에 대해 "필자가 무책임하다", "필자가 감독의 내공을 못 따라간다"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필자는 원래 그것밖에 안되는 모양이다.

지독하게 못 만든 영화고, 지독하게 더러운 영화지만 범죄 피해자와 부랑자들을 살려내는 게이좀비의 따뜻한 '생명구원 프로젝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관객들은 극장을 나설때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 물론 게이포르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야 한다. 다행히 필자는 뭔소린지는 알았으나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필자는 이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성애자라서...


여담) 동성애자를 비하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다. 단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동성애자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진다. ...내말 못 믿겠으면 한 번 구해보시던지...

L.A. 좀비
감독 브루스 라 브루스 (2010 / 독일,프랑스,미국)
출연 프랑소와 사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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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바흐 2011.07.29 11:5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으하하하 이거 골때리는 영화군요. -ㅁ-;;;;;;;

  2. 2016.10.02 22:25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스포일러 다량 함유.

박찬욱 감독은 참 팬도 많고 안티도 많은 감독이다. 그만큼 그의 유명세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이런 유명세는 가끔 그의 업적을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이 인정해야 할 것은 그가 만든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은 한국영화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복수는 나의 것>은 장르영화의 전통에 리얼리즘의 규칙을 계승해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리얼리즘의 파괴력'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홍콩의 한 젊은 감독은 박찬욱이 보여준 '리얼리즘의 파괴력'에 큰 감명을 받은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복수'를 노골적으로 주제로 다룬 <리벤지, 미친 사랑 이야기>(이하 <리벤지>)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눈치가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박찬욱보다 멋드러진 복수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분명 박찬욱에 비해 심하게 모자란 부분도 있었다. 마치 단단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칼을 쥔 듯한 기분이었다. 만약 이 영화를 만든 웡칭포 감독이 칼날을 다듬어서 나타난다면 그는 두기봉 이후 새로이 나타난 '홍콩의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다.

<리벤지>는 '임산부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충격적 이야기로 시작한다. 연쇄적으로 임산부의 배를 산채로 갈라 태아를 꺼내어 과다출혈로 숨지게 하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여성들의 남편이 모두 함께 일하는 경찰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남편들 중 하나는 살해당했고, 다른 하나는 실종됐다. 경찰은 검문을 강화한 끝에 유력한 용의자 친(주노 막)을 체포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가 어찌하여 이 끔찍한 살인을 벌이게 됐는지 보여준다. 그의 범행동기에는 이 살인보다 더 끔찍한 이야기가 버티고 서 있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주인공 친의 복수극이다. 친은 만두가게 종업원으로 어리숙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던 청년이었다. 그는 매일 닭만두를 사러 오던 여고생 윙(아오이 소라)을 짝사랑한다. 우여곡절 끝에 윙과의 사랑을 시작하려 하지만 오해가 거듭되면서 윙은 친이 보는 앞에서 경찰들에게 무참히 윤간당하게 되고 친은 경찰폭행죄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뒤 6개월동안 경찰들에게 복수할 날만을 꿈꾼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친의 복수는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갖게 되고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복수를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응원에 부응하기로 하듯 친의 복수는 잔혹하고 무자비하다. 그러나 친의 복수가 그 최후를 맞이한 순간, 관객들은 복수에 응원하며 동참한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고 철없었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미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무자비하고 어리석은 복수를 잘 관찰해왔다. 치밀하게 준비했던 동진(송강호)의 복수가 맞이한 결말을 보며 복수에 바쳐온 인생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했는지 깨닫게 된다. 어쨌든 복수의 완성은 살아있음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리벤지>는 맥락은 다르지만 그 무의미한 복수를 보여준다. 정당한줄 알았던 복수가 순간 무의미해진 것은 '시간'과 '분노'의 화학작용 때문이다. '분노'라는 감정은 인간이 가진 많은 것들 중 가장 저돌적이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상황에 대해 가리지 않고 노골적으로 돌진하게 하는, 가장 힘이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분노'는 그 우직함으로 둘러싸인 만큼 '섬세함'이 부족한 감정이다.

그 우직한 분노가 5년동안 앞 뒤 안 가리고 돌진했다. 5년은 상황을 변하게 했지만 분노만큼은 변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분노의 끝에는 또 다른 참사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복수가 가장 합리적일까? <리벤지>나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 깨닫게 되지만 '죽음'을 통한 복수는 너무 쉽다. 또 다른 복수극인 <악마를 보았다>를 보더라도 '죽음'을 통한 복수가 얼마나 쉬운 것인지 알게 된다. 복수는 삶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다시 헤어나올 수 없는 무기력함과 패배감, 상실감 속에서 평생을 살도록 하는 것, 그 감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이 가장 처절한 복수가 될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이병헌)은 경철(최민식)을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 죽여 복수에 성공하고도 밀려오는 상실감에 오열한다. 그 순간에 수현은 복수를 성공한 후 밀려오는 상실감과 패배감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복수에 성공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쉬운 복수라고 말한 것은 <리벤지>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아마도 마지막 장면으로 미뤄봤을때 윙 또한 죽었을 것이다. 친과 윙, 두 죽은 자들이 떠나는 산책은 꽤 한가하고 평화롭다. 죽음으로 그들을 한적한 산책길을 떠나게 하는 것은 너무 쉽고, 불공평한 복수다.

<리벤지>에서의 상황에서 그 경찰들에게 '완벽한 복수'를 선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필자도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서 복수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용서보다는 쉬운 일이 복수지만, 분노의 감정을 고스란히 원인제공자에게 갚아야 하는 것은 복수자에게도 엄청난 숙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완벽한 복수를 행하지 못했기에 이처럼 찜찜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영화적으로 이 영화는 나름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나름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지만 그건 마치 초등학교 축구부 학생이 시전하는 '마르세이유턴'을 바라보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심정이다. 감독도 그걸 알았는지 결국 이야기를 우직한 스트레이트로 돌려버린다. 그런데 이야기가 우직한 스트레이트로 돌아서는 순간, 마치 오승환의 직구와 같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 마치 최고의 경주마처럼 양 옆에 바라보지 않고 앞만 보고 질주하는 우직함은 관객에게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증가시키고, 이야기 자체에 대한 설득력이나 힘을 증가시켜준다.

그래서 이 영화의 단점은 반대로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이 영화와 가장 유사한 특징을 가진 <복수는 나의 것>은 엇박자와 기교로 이야기를 재미나게 끌고간다. 나름 섬세한 작업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리벤지>는 홍콩영화 특유의 극단적 상황으로 비극에 몰아넣은 뒤 반대로 복수를 행한다. 나쁜 놈은 나쁘고 착한 놈은 착하다. 그래서 이야기는 단순하고 간단해진다. 이 영화의 감독에게 우직함은 돋보였지만 섬세함은 반드시 배워야 할 작업이다.

아마도 많은 팬들이 궁금해 할 것은 '아오이 소라'의 연기가 될 것이다. 이미 많은 남자들은 그녀의 연기를 여러 경로로 봐왔지만 아마도 이 영화는 그녀의 출연작 중 가장 '메이저'에 해당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 TvN의 <한국어학당>이라는 단막극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세계영화제에 다녀간 작품은 이 영화가 처음이 될 것이다.

웡칭포 감독은 아오이 소라의 캐스팅에 대해 "홍콩에서 이 역할을 소화할 배우가 없어 일본 AV배우 중 물색하다가 아오이 소라가 느낌이 잘 맞아서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감독의 선택대로 이 역할은 아오이 소라와 참 잘 어울린다. 그러나 그녀의 팬들이 실망할 소식 하나만 전하자면 이 영화는 아오이 소라의 영화와 비디오 출연작을 통틀어서 두 번째로 '안 야한' 영화가 될 것이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한국어학당>이다. 돌이켜보면 왜 홍콩에서 이 역할을 소화할 배우가 없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그러나 아오이 소라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AV배우'가 아닌 '영화배우'로 전직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두 작품 더 두고 본 뒤 결정해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왼쪽부터) 남자주인공 주노 막, 여자주인공 아오이 소라, 감독 웡칭포. ....직찍임.

<리벤지>는 홍콩 특유의 고어물과는 달리 잔인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딱히 신체훼손의 잔인함을 부여하지 않아도 홍콩영화 특유의 극단적 상황이 주는 잔인함은 꽤 끔찍한 편이다. 홍콩영화는 전반적으로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편이다. 나쁜 놈은 나쁘고 착한 놈은 착하고 불쌍한 놈은 한없이 불쌍해진다. 한마디로 그리 입체적 인물구성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영화도 그 점은 마찬가지지만 어쩌면 그러한 홍콩영화의 특징이 바로 이 영화를 살린 것인지도 모른다. 우직한 복수극 한 편 보고 싶다면, 이 영화는 꽤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여담1) 부천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의 남녀주인공과 감독이 입장했다. 근데 영화의 남자주인공보다 감독이 객관적으로 더 미남이다. 근데 태도가 더 거만한 것 또한 감독이다. 대체 뭐하는 감독일까?

여담2) 이미 감독과 두 주연배우는 이 작품으로 뉴욕영화제에도 다녀왔다. 만약 이 작품을 계기로 점점 그녀가 메이저 작업을 하게 된다면, 얼마 후 AV은퇴를 결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팬들의 탄식이 들려오는 것 같다.

리벤지, 미친 사랑 이야기
감독 황정보 (2010 / 홍콩)
출연 맥준룡,아오이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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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쓴 영화감상기 가운데 가장 오래 묵혀두고 쓰는 것 같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지도 어언 1개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다행스러운 일은 이후에 작성해야 할 영화 <괴물들>과 <더 리즈>가 꽤 강렬한 작품들이라 그 이미지와 느낌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다행히 감상기를 쓰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지금부터 쓰게 될 영화 <괴물들>은 7월 23일 심야상영으로 본 작품들 중 두 번째 영화다. 첫 작품 <하우스오브데블>에서 질려버려서 "집에 갈까?"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던 찰라 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영화가 <괴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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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유독 B급 쌈마이 영화가 많았다. 혹자는 부천국제가비지(Gabarge)영화제냐며 농담을 하곤 했다. 이 가운데서도 마치 흙 속의 진주처럼 명작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최근에 발견된 것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고백>이었다. 이후에는 사실 이 영화제에서 '품격있는 영화'를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일거라 생각했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괴물들>은 시작부터 강렬한 비주얼로 관객을 압도한다. 밤길을 여유롭게 가던 미군차량이 괴생명체의 공격을 받고 반격하는 장면을 적외선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다. 이 장면을 보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본 몇 가지 영화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몇 가지 언급해보자면 <디스트릭트9>, <미스트>, <클로버필드> 등이 될 것 같다. 아마도 크리쳐물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쌍수를 들고 격하게 환영할만한 라인업이다. 필자도 이 첫 장면을 보고 굉장한 퀄리티의 크리쳐물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괴물들>은 첫 장면 이후 자막을 통해 영화의 배경을 설명한다. 외계생명체를 관측하기 위해 나사가 우주로 보낸 탐사선이 멕시코에 불시착했는데 그 안에 있던 외계생명체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을 공격했고, 이 지역에는 '오염지대'가 형성된다. 영화는 6년 후의 멕시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멕시코 지역 사고현장을 취재 중인 사진작가 앤드류는 편집장의 부탁으로 편집장의 딸 사만다를 미국으로 데려가야 한다.

앤드류가 해야 할 일은 사만다를 미국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평소라면 그냥 국경 하나만 넘는 일인데 이것도 만만치 않다. 국경지대는 모두 '오염구역'으로 지정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불가되어 있고, 배편을 통해서 가는 길은 엄청난 비용의 배삯을 지불해야 한다. 그나마 이 배도 구역 통제로 인해 얼마 뒤 끊어질 예정이다.

<괴물들>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 앤드류와 사만다가 미국까지 무사히 가기 위한 여정을 보여준다. 고가의 배삯을 내고 무사히 미국으로 가면 될 것을 앤드류가 술에 취해 다른 여자랑 놀아난 덕분에 지갑을 도난당해 여권이고 뭐고 몽땅 분실당한다. 사만다는 어렵게 자신의 약혼반지를 저당잡히고 오염구역을 관통하는 육로로 가는 방법을 확보하게 되고 앤드류와 사만다는 오염구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괴물들>은 첫 장면이 보여주는 강렬한 비주얼과 달리 괴물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앤드류와 사만다가 멕시코에서 오염지대를 관통해 미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괴물'의 등장이후 변해버린 세상과 괴물이 훑고 간 흔적을 보여주며, 전혀 새로운 세상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만큼 이 영화는 괴물들의 비주얼보다 변해버린 세상을 설득력있게 묘사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다. 마치 <디스트릭트9>에서 외계인이 불시착 한 이후 요하네스버그의 구역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 <괴물들>이 또 하나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두 주인공 앤드류와 사만다를 비롯해 영화 속 용병들이나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그리 특별할 것 없이 매우 소소하고 일상적이다. 어느 정도냐면 이 영화에서 뚜렷한 악역은 찾을 수가 없다. 하다못해 괴물조차도 말이다.

악역도 없이 벌어지는 앤드류와 사만다의 로드무비는 긴장감이나 박진감보다는 변해버린 세상에 대한 한적한 여행과 같다. 그러나 그 한적함이 마냥 평화롭고 포근한 여행인 것만은 아니다. 오염구역 속 파괴된 도시와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멕시코와 미국, 특히 국경지대는 더 할 나위없이 삭막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들이 처음으로 미국 국경을 통과했을 때, 파괴된 도시의 풍경은 전쟁의 상흔을 겪은 적이 없는 미국땅에서는 매우 낮선 풍경이다. 황량한 마을 위로 이 영화의 정체성을 증명하듯 널브러진 괴물의 시체, 그리고 미쳐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여느 괴물영화에서 괴물이 휩쓸고 간 이후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이 영화는 괴물이 휩쓸고 간 이후 생활상의 변화와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를 잘 표현한 영화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러한 표현은 마치 전쟁 직후의 생활상을 표현하는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하필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라는 점이다. 전쟁을 한 번도 치른 적이 없는 장소에서 전쟁 후의 폐허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에 대한 상징적 묘사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하필 그 폐허로 만든 것이 '외계생명체'라는 점에 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와는 아무 상관없는 외계생명체가 두 나라의 국경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모든 전쟁에 개입하던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외부의 존재로 인해 나라의 국경이 쑥대밭이 된 것은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난 일이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미국의 오만함에 대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듯 클라이막스에 등장한 괴물들은 꽤 묘한 그림을 연출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에 '악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괴물이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존재들이 악의를 가지고 인간들을 학살하지는 않는다. 급기야 클라이막스에서 괴물들의 행동을 보면 조금 사랑스럽게 느껴질수도 있다. 오히려 인간들을 공격하고 몰아넣은 괴물들이 보여주는 마지막 행동은 이들도 그저 '생명체'일 뿐이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지구상에서 먹이사슬의 최고 위치에 올라서 있다고 느끼는 인간들에게 도저히 올라설 수 없는 상위존재를 인식시켜주는 것이 이 영화에서 괴물들의 역할이다. 크리쳐라고 다 공격과 학살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영화가 <괴물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공포나 스릴러보다는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게 마냥 밍숭맹숭한 영화인 것만은 아니다. 자주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속 크리쳐의 퀄리티는 상당히 수준이 높다. <미스트>의 그 코끼리 닮은 괴물과 닮았는데 이 녀석이 야간에는 빛도 내고... 아무튼 꽤 신기하게 생긴 녀석이다. 특히나 영화가 전체적으로 '들고 찍기'를 추구하는 덕에 <디스트릭트9>나 <클로버필드>같은 느낌을 준다. 혹자들은 "멀미하겠네"라며 격하게 거부할 수도 있지만... 뭐 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니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괴물들>은 크리쳐 영화에 대한 매우 신선한 재해석이며, 굉장히 높은 퀄리티와 이야기를 자랑하는 영화다. 괴물이 휩쓸고 간 국경지대의 모습을 통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 간에 전쟁이 발생한 듯한 모습을 보여줘서 미국 본토에서 발생 가능한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옮겨놨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외계생명체의 공포'가 아닌 '전쟁의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괴물들
감독 가렛 에드워즈 (2010 / 영국)
출연 휘트니 에이블,스쿠트 맥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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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1) 이게 저예산 영화라는 건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디스트릭트9>가 그래던 것처럼 말이다.

여담2) 이제 부천영화제 리뷰도 하나 남았다. 오래된 숙제를 남겨둔 기분이다. ...어서 끝을 봐야지...

여담3) 그래도 야광괴물은 꽤 신선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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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2kwon 2010.08.25 08:0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부천가서 보진 못했지만 예고편만 봐도 비주얼이 상당하더군요. 감독상을 받았었던가요? 국내개봉은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이 많던데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DAISHI ROMANCE 2010.08.25 21:04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천초이스 장편부문 감독상을 수상했죠. 볼거리가 조금 부족하다는 점이 국내 배급업자들의 구미를 당기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만, 앞서 언급한 <디스트릭트9>와 <클로버필드>에 밀리지 않는 진지한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네요.

    • BlogIcon 2kwon 2010.08.25 21:22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예산이다보니 그놈의 몬스터가 많이 등장하지는 못하는걸까요;; 그래도 오히려 작품성은 독립,저예산 영화쪽이 더 좋은 경우가 많은데 배급업자들도 그런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DAISHI ROMANCE 2010.09.03 09:16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래도 이 배급업계라는게 우리가 아는 것과 상황이 다르다 보니깐요
      기자시사가서 가끔 배급업자들 하는 이야기 들어보면 정말 영화보는 눈이 관객들과 완전 다른 거 같아요.
      뭐랄까...흥행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해야 하나...ㄷㄷㄷ





이 길고 긴 부천영화제 후기도 이제 3편 남았다. 정말 다 쓰는데 1개월이 걸린 대장정이지만 그래도 나름 정성껏 썼다는 생각에 만족스럽다.

지금부터 쓰는 영화는 마지막 심야상영 3편의 묶음이다. 그 가운데 첫번째 영화인 <하우스오브데블>은 절망적으로 재미없는 영화였지만 이후 작성할 <괴물들>, <더 리즈>는 나름 만족스러운 영화다.

※ 경고 : 이 영화는 리얼한 비유를 위해 성적인 표현을 일부 사용했습니다. 19세 미만은... 그냥 읽지 마세요. 어차피 댁들이 볼 영화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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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베이는 정체불명의 영화사를 만들고, 과거 미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호러영화의 걸작들을 부활시키는 흑마술의 주문을 외웠다. 그 결과 프레디 크루거, 제이슨 부히스 등 많은 호러영화의 제왕들은 망령이 되어 살아났다. 그러나 욕망의 실현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쓴 결과는 늘 참혹했다. 되살아난 망령들은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안은 용사의 모습이 아닌 형상만 갖춘 좀비와 유사했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들 하지만 많은 호러영화팬들은 더 이상 과거의 영웅들이 좀비가 되어 부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과거를 다시 재건한 영화가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의 '영웅'이 아닌 '시대'를 통째로 되살릴려는 시도를 보인 영화다. 그 영화의 이름은 <하우스오브데블>이다. 이 단순명료하고 복고풍 물씬 풍기는 제목의 영화는 공교롭게도 2009년 최신작이다.

<하우스오브데블>은 오컬트가 만연한 70년대 후반 미국 공포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딱 거기까지다. 21세기 영화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고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이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지만 그 이상으로는 어떠한 매력도 보여주지 못하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타이 웨스트 감독의 '2009년작' <하우스오브데블>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거든"이라는 흔하다 못해 지루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게 과연 실제사건인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아는 사람 있으면 제보해주길 바란다.

기숙사를 나와서 새로 집을 구한 사만다(조셀린 도나휴)는 전세금을 내기 위해 급한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그러던 와중 '베이비시터'라는 꽤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찾게 되고, 도심지에서 약간 벗어난 대 저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떠난다. 정체불명의 친절한 영감님 울만(톰 누난)이 사는 이 집은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겨져 있고, 사만다는 이 집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 위기에 대해서는 뭐 딱히 숨길 것도 없다. 스포일러라고 욕할 수도 있지만 알아봤자 별로 도움도 안되고 소시적 공포영화 좀 본 사람이면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 대목이기에 사만다의 위기에 대해 미리 밝혀두겠다. 울만은 악마신봉자였고, 사만다는 악마에게 바쳐지기 위한 제물이었던 것이다. 사만다는 이대로 악마를 잉태한 제물이 될 것인가?


<하우스오브데블>은 익숙하디 익숙한 오컬트 영화의 전통을 모조리 땡겨온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영화는 2009년작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복고적인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그것은 그 당시 호러영화가 안겨준 '재미'를 놓친 것이다.

함께 영화를 본 지인은 이 영화를 두고 "78분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며 경악했었다. 자, 이 영화에서 사만다가 집을 구하고, 집값을 마련하기 위해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친구와 함께 아르바이트 할 집으로 찾아가서 울만과 인사하고 혼자서 집에 있다가 집을 둘러보기까지, 딱 78분 정도 걸린다. 이 시간동안 사만다의 친구 딱 한 명이 우연찮게 권총으로 살해당한다. 그 밖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시간동안 관객이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아니다. 아마도 감독은 그것을 원했을테지만 공교롭게도 그 정도로 숨막히는 긴장감을 느낄수는 없었다. 이것은 마치 한 차례 설사를 싸질렀지만 장이 영 개운치 않은 상태에서 장거리 여행가는 버스에 올라탄 기분이다. 그냥 떨떠름한 불안감만 지속될 뿐이란 말이다. 이것도 지속되면 나름 '공포영화의 긴장감'으로 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을테지만 이게 지나치게 길어지면 관객은 짜증만 날 뿐이다. 삽입은 안 하고 애무만 2시간 해봐라, 좋을리가 없지.

여기서 더 안스러운 것은 78분의 긴 애무끝에 삽입된 물건이 3cm 겨우 넘으니 환장할 노릇이라는거다. 즉, 긴 기다림끝에 작렬하는 오컬트 의식과 악마신봉자들의 극악무도함은 초딩이 그린 낙서처럼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쯤되면 관객은 짜증이 날 지경이다. 긴 기다림 끝에 등장하는 악당의 만행은 장난 수준에 지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속편 등장할 지도 몰라"라며 끝을 맺어버린다. 절망적인 영화다. 리메이크를 통해 부활한 어떤 호러영화의 영웅들보다 더 더욱 처참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부활한 호러의 시대였던 것이다.

얼마나 스샷으로 쓸 게 없으면, 전부 인물컷이다.


혹자들은 여기에 반문을 제기할수도 있다. "그 시절 공포영화가 다 그렇게 어설펐지, 왜 그러냐?"며 "어설픔 또한 복고풍으로 재연한 공포영화다"고 반문할 수도 있는 일이다. 여기에 필자는 아주 바람직한 복고풍 호러영화 한 편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더 퓨리(출시제:전율의 텔레파시)>다. 이것도 일종의 오컬트라면 오컬트지만 그래도 조금은 변종 오컬트에 가까운 영화다.

물론 드 팔마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을 신인감독에게 기대하는 것은 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주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영화 러닝타임의 70% 이상을 말도 안되는 허전함으로 메우는 짓은 1970년대에도 하지 않던 짓이다.

좀 극닥적인 혹평 하나를 날리지면, 이 영화가 '쌈마이 정신'을 내세워 "우리는 사실 그라인드하우스 영화"라며 동시상영관 직행을 노릴 수도 있는데, 그라인드하우스가 들으면 툴박스를 들고 나와서 살인이라도 저지를 기세다. 그라인드하우스도 기분 나빠할 영화라는 소리다.


<하우스오브데블>의 시도는 분명 높이 살만하다. 마이클 베이 제작의 호러영화들이 저지른 만행에 비하면 분명 신선한 시도며, 독특한 결과물을 양산해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허우대만 멀쩡한 빈약남처럼 어설프고, 내실이 부족하다.

필자는 이 영화가 매우 처참하고 어설픈 결과물이라고 정의내리게 되지만 이런 시도는 분명 다시 할 필요가 있다. 복고로의 회귀를 통해 만들어 낸 신선한 결과물임은 인정해야 할 것이니 말이다.

하우스 오브 데블
감독 타이 웨스트 (2009 / 미국)
출연 조셀린 도나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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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부천영화제를 통해 접한 영화인 <제1규칙>은 딱 필자가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하드보일드 탐정스릴러에 공포영화의 요소를 첨가한 독특한 이야기의 영화였지만 A형 여자 삐친 것처럼 작렬하는 뒤끝은 영화를 다 본 후 극장문 나서기가 두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뒤끝있는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 <제1규칙>은 역사상 둘 도 없는 뒤끝을 자랑하는 영화다.

그래서 그의 다음 영화인 <유괴>는 솔직히 보기가 두려웠다. 이번엔 또 애를 데리고 어떤 뒤끝을 작렬시킬지 모를 일이었다. 보는데 많이 망설였지만 이 영화를 다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제1규칙>이 보여준 정교하고 재미나게 엮어낸 이야기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그냥 무시하기엔 너무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마력이 필자를 유혹하기 시작해서 <유괴>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제1규칙>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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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감독 켈빈 통 (2010 / 싱가폴)
출연 이명순,임덕영,곽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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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규칙>과 <유괴>를 연출한 사람은 싱가폴 출신의 켈빈 통 감독이다. 싱가폴 영화라는게 가끔 낯설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켈빈 통의 영화는 차라리 홍콩영화에 매우 가까운 영화다. 그만큼 아주 거부감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유괴>는 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다이하드'를 다룬 영화다.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택시 운전사 림은 아이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어느날 생일을 맞은 아이는 친구와 시내 게임장에 놀러 가지만 거기서 유괴를 당한다. 알고보니 아이의 친구인 부잣집 아들과 헷갈려서 잘못 유괴된 것이다. 이 작은 실수는 아이나 림, 그리고 주변 모두에게 끔찍한 '다이하드'가 되어 돌아온다.

<유괴>는 말 그대로 '다이하드'다. 아이를 구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까지 팔아가면서 고군분투하는 아비의 눈물겨운 분투를 지켜보자면 너무 처절해서 눈물날 지경이다. 마치 저 옛날 홍콩영화에서 주인공의 고난을 표현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방법을 택한 것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그만큼 나쁜 놈이 지나치게 나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로 <천장지구>같은 영화에서도 주인공을 고난에 빠뜨리는 나쁜 놈은 정말 비현실적일 정도로 나쁘다. 때로는 이런 극단적인 나쁜 놈의 등장은 현실성을 떨어뜨려서 극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유괴>에서의 나쁜 놈도 지나치게 나쁘다. 납치된 아들의 아비에게 "어서 돈을 마련해라"며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아이의 피를 뽑아서 아비에게 전달하는 대목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유괴범의 수법이다. 국내의 철없는 어른들이 따라하지 않을까 두려운 대목이다.

도에 지나치게 나쁜 놈이 등장해서 극의 현실성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다행히 이 이야기는 아주 정교하고 재밌는 편이라 어느 정도 몰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는 나쁜 놈을 당연시 하고 그에 대한 분노를 새긴 채 영화를 본다면 충분히 몰입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필자는 솔직히 그 부분을 실패했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흡사 두기봉이 만든 일련의 하드보일드 영화를 떠올린다. 정해진 시간에 사건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은 홍콩영화 특유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이 영화의 카체이싱 장면은 여느 홍콩영화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정교한 시간계산을 통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야기의 정교한 구조물은 어느 유명한 건축물에 뒤지지 않는 완벽함을 선사한다.

<유괴>의 정교한 이야기는 마치 '나비효과' 이론을 생각나게 한다. 작은 실수 하나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어떤 결과를 이뤄내는지 말이다. 만약 유괴범이 계획대로 부잣집 아이를 유괴했다면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테니 말이다. 그 작은 실수 하나로 아이는 자식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깊게 새기게 되고, 부잣집 영감은 젊은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된다. 하나 더 이 영화에 대해 밝히자면 유괴범은 팔자에도 없던 자신의 딸을 택시기사 림에게 유괴당하게 된다. 물론 택시기사의 유괴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 글의 처음에서 "나는 뒤끝있는 영화를 싫어한다. 켈빈 통의 영화 <제1규칙>은 뒤끝이 넘치는 영화라 그의 다음 작품인 <유괴>를 보기가 두렵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필자는 <유괴>가 뒤끝이 있는 영화인지 없는지는 밝혀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뒤끝은 없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문을 나설 때, 큰일 보고 뒤 안 닦은 것 같은 찝찝함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켈빈 통 감독의 전작에서 느낀 거의 유일한 불만을 이 영화는 제거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이 영화는 적어도 필자에게는 "완전초울트라캡숑 재미진 영화"라는 말이다. 뒤끝없이 재미진 영화를 찾는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는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다. 물론 개봉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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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글쓴이 기욤 2010.08.09 07:5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유괴 참 재미있게 봤어요^^
    여기서 이렇게 리뷰를 보니 기쁘네요. 피판을 같이 보신건가요 ㅋㅋ
    저 또한 잘 몰입해서 보았던 영화인거 같구, 직접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죠 ㅋㅋ ^^

    • BlogIcon DAISHI ROMANCE 2010.08.09 08:18 신고 address edit/delete

      더헛;;

      저는 GA는 못 봤는데;; 본 시가는 달랐던 모양이네요 ㅋㅋ

    • BlogIcon 타이거샤트 2015.04.11 18:56 address edit/delete

      제 본명은 타이거샤크 입니다^~^

  2. BlogIcon 타이거샤트 2015.04.11 18:54 address edit/delete reply

    유괴범xxbb같은 사람같아 완전 나쁜사람임





왠 듣도보도 못한 '살인사건'에 관한 영화가 칸에 초청이 됐단다. 한국호러영화라고 하면 성공작을 구경하기가 로또 1등 걸린 사람이 벼락맞아 사망할 확률보다 낮을텐데, 그 와중에 칸에 갔다는 말은 좀 의아했다. "롱테이크같은 아트무비적 미장센을 끼얹나?"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보고 판단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주 오랜만에 '칸 영화제'라는 이름값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칸 영화제'라는 이름값을 업고 관객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영화는 바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이다. 드라마 <환상의 짝꿍>에서 오지호의 극중 배역이름인 '장철수'와 동명이인인 장철수 감독이 연출한 <김복남>은 익숙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연쇄살인 호러물이다.

서울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해원(지성원)은 회사에서 부득이한 일을 겪고, 마음정리를 할 겸 고향인 '무도'로 찾아간다. 섬 안에 총 다섯 가구밖에 살지 않을 정도로 작고 아담한 마을인 무도에는 해원의 친구 복남(서영희)이 살고 있다. 복남은 남편(박정학)의 폭력과 마을 어른들의 차별에 시달리며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고, 해원은 이에 분노하며 불쾌해한다. 그러던 어느날 딸 연희(이지은)를 데리고 도망을 치려 하던 복남은 남편에게 붙잡히게 되고 개맞듯이 얻어터진다. 이 과정에서 이를 말리던 연희가 사고로 죽게 되고, 복남에게는 약간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김복남>은 매우 익숙한 설정의 영화다. 멀리는 <울프크릭>, <호스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부터 시작해서 가까이는 <극락도 살인사건>, <시실리 2km> 등 다양하다. 이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도시인의 휴식이라는 꽤 귀중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위협함으로써 주는 공포와 인적이 없는 곳이 주는 불안감때문에 이런 소재는 공포영화에서 단골로 활용되곤 한다.

<김복남>은 이 익숙한 설정을 바탕으로 두고 있지만 여기에 뭔가 색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과정이 꽤 신랄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극명하게 갈라놓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관계를 뒤집어버리는가 하면 영화가 극으로 치달을수록 피해자와 가해자는 오리무중에 빠지게 된다. 즉, 이것은 간단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관계의 상하구조에 있어서 시시각각 역전을 해대며 관객들에게 은근히 머리쓰게 하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또 이 영화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21세기 한국에서 다시 보기 힘든 남녀차별의 실상이다. 제 아무리 육지에서 고립된 작은 섬마을이라고 해도 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부조리한 남녀차별이 판을 친다. 그 덕인지 몰라도 관객들은 해원이 도시를 벗어나 섬으로 오는 순간 마치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조차 느껴지게 한다. 관객들은 이 부조리의 마을을 보면서 은은한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김복남이 당해온 부조리와, 딸의 죽음이후 분노의 오열을 하는 김복남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도 흡사 비슷한 심경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점을 의도하기라도 하는 듯 감독은 김복남의 오열을 오랜 시간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후 변신한 김복남이 저지르는 무자비한 살인은 그리 큰 잔혹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살인 자체가 잔인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낫을 들고 마을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김복남은 배우 서영희가 전에 출연한 영화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을 능가할 정도로 잔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남의 살인사건이 신빙성을 얻는 것은 그녀의 살인이 그녀가 당해온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공포영화로서 이 영화의 역할은 어디서 이뤄지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살인범 김복남이 아니라 피해자 마을주민들이 하게 된다. 연희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럽게 사건을 왜곡하는 마을주민들과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 여기에 해원의 어떤 행동까지도 이 영화의 공포가 된다. 살인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들의 왜곡, 무관심, 폭력이 이 영화에서는 소름돋는 공포로 작용한다. 즉, 이 영화는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도시민들의 무관심, 폭력 등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뭐 사실 그것도 매우 흔한 이야기다. 도시문명이 발달하고 집단화사회가 형성되면서 개인에 대한 무관심과 차별, 그리고 온라인 사회에서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무자비한 폭력과 왜곡은 매우 흔한 이야기다. 그 흔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연쇄살인과 관계의 역전을 이용해 매우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라면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영화에도 엄연한 약점은 있다. 실컷 공포영화다운 신명나는 살인을 벌여놓고 차분하게 영화를 끝낸 점, 카타르시스와 함께 불안을 안고 떠날만한 엔딩으로는 부족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불안'보다는 '슬픔'을 안고 있다. 공포영화 다 보고 와서 눈물흘릴 판이다. 물론 그 '슬픈 결말'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공포영화다운 엔딩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대로 지나치게 현실성 떨어지는 마을주민들의 폭력은 "정말 영화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세상에 저런 남녀차별이 있을까 싶지만 그것은 현대사회의 개인에 대한 폭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 폭력은 '남녀차별' 뿐 아니라 '특정인에 대한 폭력, 차별'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폭력은, 영화 속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 뿐이다.

(왼쪽부터) 장철수 감독, 서영희, 이지은, 지성원, 박정학.



흔히들 한국 공포영화의 치명적 문제점이 "공포영화 주제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할려고 한다"는 점이다. 공포영화 주제에 반전도 담고, 액션, 멜로, 감동 등등 이것저것 때려담을려고 하니 주머니가 터져버리는 경우라고 말한다. 물론 이 영화도 공포영화 주제에 감히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을려고 시도했다. 참 다행스러운 점은 그 시도가 아주 성공적으로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 시도가 성공한 이유는 영화가 묘사한 현대사회의 폭력이 영화 속 그것만큼 공포스럽고 두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매우 성공적인 공포영화가 되었다. '칸 영화제 초청작'이라는 꼬리표는 이 영화에 매우 어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감독 장철수 (2009 / 한국)
출연 서영희,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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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rdragonfly1234 2012.06.19 20:4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마지막 문단에서 한국영화의 문제점을 딱 꼬집으셨군요.. 한국영화를 본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그런 습관이 남아있는가 봅니다... 블로그 중 어느 영화평론가 분은 그게 바로 감독의 생각이므로 오히려 좋게본다고 말씀하시던데, Daishi 님의 글을 보니 반갑네요.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을 몰고 온다는, 뭐 그런 의미로 사소한 행동 하나가 연쇄작용을 해서 거대한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이 '나비효과'는 따로 영화로 제작될만큼 시나리오를 쓰는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소재거리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만든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 <고백>은 이러한 '나비효과'라는 말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인 듯 하다. 아이들의 사소한 장난이 불러오는 최대의 비극을 표현한 이 영화는 등장인물 몇 명의 시점을 빌려와서 그들 각자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꽤 복잡한 영화다.


종업식을 앞둔 어느 중학교, 아이들은 시끌벅적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 담임선생인 유코(마츠 다카코)는 이제 교사를 그만 둘 것이라 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 하나를 전한다. "내 딸이 죽었다. 딸을 죽인 범인은 바로 우리 반에 있다". 아이들은 혼란에 빠지고, 범인찾기를 시작한다.

<고백>은 등장인물들의 고백을 중심으로 구성한 영화다. 유코의 고백을 시작으로 범인의 고백, 범인 엄마의 고백, 범인 친구의 고백(캐릭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등 등장인물 각자의 시선으로 진실을 구성한다. 사건의 진실에 대해 접근하는 이러한 방법은 매우 객관적이다. 영화가 지속되면서 누군가의 시선은 거짓말이 되고, 진실의 구멍이 발생하고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건이 꼬리를 물고 거대한 진실을 구성한다.

진실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은 매우 흥미롭다. 흡사 이것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보여준 관계의 역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진실을 왜곡해버린 <라쇼몽>과 달리 <고백>은 진실의 조각에 대한 각자의 증언으로 사건의 퍼즐을 완성하는 방법을 취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라쇼몽>을 뒤집는 '서사의 혁명'으로 정의내려도 무방할 것이다.



조각이 모여서 구성된 사건에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일본의 사회적 풍경에서 찾을 수 있는 허무주의에서 귀결될 것이다. 개인이 말살된 집단화 사회에서 정체성을 잃은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강력범죄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의 현상이다. 그러나 현상 넘어에서 감지되는 진실은 범죄를 통해 삶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이 그 정체성을 얻는만큼 피해자들에 대해 무심해지는 잔인무도함이다.

시종일관 공허한 표정으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징징거리면서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 정당성을 얻으려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트가서 장난감 사달라고 칭얼대는 아이들의 모습과 똑같다. 그런 아이들이 느끼는 공허함이란 무엇일까? 부모를 잃은 한 아이와 부모의 과잉보호에 여려진 아이, 즉 아이의 인격을 형성하고 만들어내는 가정의 역할이 부족함에 따라 벌어지는 참사였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엄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요즘 맞벌이하는 가정이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아이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엄마'다. <고백>에는 몇 명의 엄마가 등장한다. 미혼모인 엄마 유코는 아이를 일때문에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지며 처절한 복수를 계획한다. 또 다른 엄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무조건 아이편에 서지만 그 점이 오히려 아이를 망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책한다. 또 다른 엄마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버리고 떠나지만 마음 한 켠으로 여전히 아이를 응원하고 있다.

각자 다른 사연으로 아이를 지키려는 부모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비극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성의 왜곡이 부른 참사'로 정의내려야 할까? '모성'에 대한 불완전성을 묘사하는 듯한 이 대목은 사실 '모성의 한계'를 의미한다. 엄마의 힘으로 아이를 지키기에 한계를 갖는 사회적 구조와 변질된 인간관계들, 타락을 조장하는 미디어와 청소년기 정체성의 혼란. 모성은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지만 사회적 구조의 변질과 혼란 속에서 모성은 끝내 아이를 지키지 못한다.

모성의 한계와 가족구조의 붕괴가 불러오는 청소년들의 공허와 타락이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화두일 것이다. 단순히 청소년 범죄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사소한 사건 하나가 불러오는 파장은 너무나 엄청나다. 사회구조의 붕괴를 불러오는 작은 행동의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고백>은 영화적으로 매우 세련되어있다. 어둡고 건조한 무채색으로 일관된 영상은 극단적인 사건들에 대해 침착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그것은 감정을 배제한 채 잔인한 살인을 행하는 인물들처럼 차갑고 냉소적이다. 여기에 초고속 영상과 빈티지한 음악들은 이 무겁고 건조한 이야기가 관객들의 피부에 스며들도록 트렌디하게 만들어준다. 즉, 건조하고 냉소적이며 잔인한, 관객들의 거부감을 유발하기 딱 좋은 이야기에 트렌디한 옷을 입혀 억지로 스며들도록 만들어놓은 영화다. 다시 말하자면 쓰디쓴 한약을 마시고, 그 거부감을 덜기 위해 사탕을 하나 먹는 것처럼 쓴 약 같은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잘 스며들도록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스타일인 것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 또한 놀라운 수준이다. 원래 기본은 해줬던 마츠 다카코는 이 영화에서 아이를 잃은 슬픔은 고스란히 안은채 지능적이고 냉정한 복수를 꿈꾸는 여교사를 잘 소화해냈다. 웃고 있어도 눈은 분노하는 듯한 그녀의 표정은 영화의 초반부에 화면 전체를 압도해버릴만큼 놀랍다. 여기에 조연들의 연기 또한 이야기를 잘 받쳐주는데, 특히 아역들의 연기는 실로 놀라운 편이다.

분열의 두가지 종류를 각자 나눠서 소화해낸 범인 A와 B는 아이로써는 놀라울 정도로 충격적이고 두려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특히 장근석과 임주완의 비주얼을 섞어둔 듯한 그 소년은, 참 누나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을 보여준다. 물론 그 아이의 연기 또한 참 좋았다.

일본영화의 고질적인 문제가 '절제된 감정표현'을 거의 시도하지 않을 뿐더러 시도해도 정말 못한다는 점인데, 이 영화는 클라이막스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장면에서 감정의 절제를 훌륭하게 보여준다. 그 결과 영화가 본래 의도했던 건조함을 잘 살렸다. 물론 엔딩에서 좀 무너졌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용서할만하다.



<고백>은 흡사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을 가진 사이버펑크 영화를 닮아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엿보이기도 할 정도로 음울하고 칙칙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언젠가 어떤 형태로건 맞이해야 하는 우리의 미래다. <고백>은 미래의 절망적 어느 한 지점을 미리 맞이하는 예행연습과 같은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우리는 이 영화를 맞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백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2010 / 일본)
출연 마츠 다카코,오카다 마사키,키무라 요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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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쏘우> 이후부터인 것 같다. 공포영화마다 아주 창의적인 부비트랩이 등장하고 거기에 걸린 인간들은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트랩이라는게 공포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 것도 아마 이때쯤인듯 하다.

<쏘우> 4편 이후로 쭉 각본을 써왔고, <피스트>라는 공포영화 시리즈의 시나리오를 맡은 마커스 던스탠은 2009년에 <콜렉터>라는 영화를 연출하게 된다. 사실 <콜렉터>라는 제목을 듣고 나니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가 떠올랐다. 뭐 본 영화는 아니지만 워낙 명성이 자자한 영화라 제목이 같은 이 영화도 상당히 기대가 됐었다.

마커스 던스탠의 영화 <콜렉터>는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꽤 괜찮은 킬링타임용 영화였다. 사실 뭐 윌리엄 와일러 수준의 정교함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가벼운 공포영화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상식을 벗어난 몇 가지 상황설정은 몰입을 방해해 "재미없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꽤 재밌는 편이다.



<콜렉터>의 설정은 꽤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가볍다. 한 보석털이범이 아내의 빚을 갚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석을 털러 간다. 그러나 그가 침입한 집이 하필이면 연쇄살인범에게 점령당한 집이고 이 보석털이범은 납치된 집안 사람들을 구하고 자정전까지 탈출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이 귀여운 설정을 두고 또 영화는 아주 아기자기한 판을 벌인다. 살인범과 보석털이범, 폐쇄된 공간, 주인공을 위협하는 부비트랩들, 쫓고 쫓기는 추격 등등. 맘 잡고 재밌을 것이라면 이것은 근래 보기 드문 박진감 넘치는 공포영화가 될수도 있다.

참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 마음잡고 만든 덕분에 꽤 봐줄만한 '시간떼우기용 공포영화'가 탄생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폐쇄공간 안에서 쫓고 쫓기는 주인공들의 추격전이 일품이라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사는 그 복잡한 구조의 대저택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숨고 쫓고 하는 추격전은 이 영화의 상당한 재미요소가 된다. 문제는 그게 좀 짧다는 점이다.

이후에는 연쇄살인범의 잔인무도한 살인행각과 부비트랩의 위용이 이야기를 주도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필자는 결정적으로 부비트랩이 참 마음에 안드는데, 단 시간에 설치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마치 엄정화 주연의 <오로라 공주>에서 복수를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위치를 찾아내고 동선을 파악한 치밀함처럼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그 덕분에 현실감은 참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단점은 이게 거의 유일하다. 컨셉도 없고 목적도 없는 연쇄살인범의 광범위성에 대해 비난하고 싶지만 그 연쇄살인범과 주인공이 꽤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끌고 가 준 덕분에 사소한 단점 정도는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콜렉터>는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은 영화다. 긴장감 있고 박력 넘치는 연쇄살인물을 즐기고자 하는 관객들에게는 딱 그만큼의 시간 떼우기만 충족시켜줄,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너스라면 <다이하드> 1편에서 느꼈던 폐쇄공간의 긴장감일 것이다. 그런 종류 좋아한다면 충분히 즐길만하다.

 

여담)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된 이 프린트는 국내 배급용이었다. 조만간 극장개봉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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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관계의 정치학'에 관한 화두를 빌어 이야기한다.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섹스를 나누는 것이 아닌 몸에 대한 착취로 관계의 우위를 결정짓는 것이 많은 포르노그라피에서의 섹스였다. 그리고 여기에 역사적 사건을 대입시키면 섹스를 통한 정치사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가장 대표적으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이 이런 시도를 보인 바 있다.

뭐 그런 복잡한 이야기는 접어두자. 정치적 화두를 접어두고라도 인간사의 많은 섹스는 동등한 위치에서 몸을 나누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가장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이 관계를 나누기에 인간은 서로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사상이 만연하던 한국에서는 남자가 사회적으로 여자보다 우위에 있었다. 사회적 지위에서나 침실에서나 거의 모든 남자들은 여자를 지배해왔다. 물론 오늘날 세상이 변하고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침실에서 관계는 동등해지거나 여자가 우위를 점하게 된다. 자신의 지위를 박탈당한 남자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가? 결국은 성폭행, 강간이라는 폭력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우위를 드러내는 파렴치한 짓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인간의 섹스란 관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폭력적 행동이라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스르쟌 스파소예비치 감독의 <세르비안 필름>은 이런 폭력적 섹스의 극단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관계를 전복시켜버린다. 필자는 이것을 섹스의 정치적 해석이 아닌, 섹스의 경제적 해석이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은퇴한 포르노배우 밀로스는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하지만 배운게 포르노배우 뿐인 그에게 돈 벌기란 만만치 않다. 아내의 번역일로 근근히 집안 유지는 하고 있지만 밀로스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가고 싶다. 그러던 중 밀로스의 전직 동료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소개받게 된다. 평생을 먹고 살만큼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한 이 일자리에 밀로스는 결국 응하게 되지만 이 일자리란 매우 파격적인 포르노 촬영을 의미한다.

우선 주인공 밀로스를 만나보자. 그는 거대한 성기와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많은 포르노에서 여자들을 후리고 다닌 포르노스타다. 그가 출연한 작품들에서 그는 능동적인 자세로 여자들을 지배하던 '침실의 지배자'였다. 물론 그가 거액을 제시받고 시작한 일에서도 그는 폭력의 가해자로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진전될수록 우리는 '침실의 지배자'를 지배하는 세력을 만나게 된다. 그는 물론 이 포르노의 감독이 될테지만 그의 뒤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거대자본이다. 큰 돈으로 밀로스를 꼬드겨서 이 폭력적인 판에 끌어들이고, 돈에 의해 고용된 사람들은 밀로스를 가두는 창살이 된다. 침실에서의 남녀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정의내려지지만 이 남녀를 모두 지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문득 우리는 폭력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권력의 상징이 되고 권력이란 결국 폭력이 되어 사람들을 지배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우리는 <호스텔> 시리즈를 비롯한 몇가지 영화를 통해 그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르비안 필름>은 바로 이 '돈의 폭력성'을 무차별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적으로 봤을 때, 이 영화는 나름 공식에 충실한 재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큰 돈에 혹해서 의문의 일을 시작한 사내가 돌이킬 수 없는 악몽으로 빠져든다는 설정은 몇 가지 공포영화에서 본 듯한 정형화된 이야기다. 물론 여기에 어떤 디테일을 가미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새로운 재미를 찾게 될 것이다.

이 전형적인 이야기를 어두컴컴하고 원색적인 피칠갑으로 덮었으며 귀를 찢는 듯한 거친 사운드로 포장되었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보는 이들에게는 심장의 불규칙 바운스를 유발할만한 영화이기도 하다.

즉, 공포영화의 공식으로써 이 영화는 자기 본분에 아주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바탕이 되는 내용과 묘사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잔혹하기 때문에 <세르비안 필름>은 결국, 세상에 둘도 없는 무시무시한 영화가 되었다.

만약 당신이 최악의 악몽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 영화는 꽤 괜찮은 공포영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 속에서 도덕이라는 것이 삶의 큰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고, 그에 어긋나는 상황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순진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섣불리 도전했다가는 영화 중간에 극장밖으로 뛰쳐나가 구토를 한 그 관객의 모습이 바로 당신이 될테니 말이다.

세르비안 필름
감독 스르쟌 스파소예비치 (2010 / 세르비아)
출연 스르잔 토도로비치,세르게이 트리푸노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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