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life in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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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거닐며 바라보는 나무 하나하나가 영화고 음악이고, 나의 컨텐츠다.
by DAISHI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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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9.03.12
    잡담 190312 - 넷플릭스, 극장, TV
  2. 2016.03.21
    오디션 프로그램 유감
  3. 2015.01.11
    '무한도전:나홀로 집에' - Goodbye 여의도! Goodbye 2014!
  4. 2014.12.17
    '선암여고 탐정단' 1회 초간단 리뷰
  5. 2013.06.08
    LG전자를 희생시키며 알아본 현대 마케팅 경향 분석 (1)
  6. 2012.09.03
    '응답하라1997' vs '건축학개론' - 사랑은 아날로그다
  7. 2012.06.18
    '신사의 품격' vs '마이블랙미니드레스' (2)
  8. 2011.04.11
    드라마는 추억을 싣고... (2)
  9. 2011.01.04
    우리에게 '배우의 연기'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2)
  10. 2010.12.18
    '무한도전' - 공동의 위협에 대처하자


극장이라는 플랫폼은 늘 도전을 받으며 성장해왔다. 당초 그것은 텔레비전이라는 거대한 도전을 이겨냈으며 디지털의 파도도 넘어섰다. 어떤 새로운 플랫폼이 영화와 극장을 멸종시킬 것처럼 거세게 밀고 들어왔지만 극장은 끈질기게 생명력 유지했다. 

넷플릭스는 저 옛날 텔레비전의 도전과 같다. 1950년대 TV가 등장한 후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앞으로 TV는 극장 플랫폼을 대신하게 될 것이고 영화산업은 TV 스튜디오화 될 것이라는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이때 헐리우드 스튜디오는 생존 전략으로 극장만이 가능한 영화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때 나온 영화가 '벤허'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대작 영화들이었다. 

넷플릭스의 강점은 휴대성에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은 극장 플랫폼이 따라갈 수 없는 매력이다. 여기에 자신들만의 독점 콘텐츠도 좋은 경쟁력이 된다. 그러나 '체험'의 의미에서 넷플릭스는 절대 극장을 이길 수 없다. 디바이스가 고도화되고 영상과 음향 기능이 향상된다지만 극장의 경쟁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다만 TV만큼은 위기감을 느끼기 충분하다. 이미 유튜브에게도 밀려버린 TV가 넷플릭스에게 주도권을 내줄 날도 머지 않았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TV 시장은 초대형 프리미엄 TV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오히려 TV가 점점 극장을 쫓아가려는 시도를 한다. TV의 생존을 위해서는 콘텐츠의 질과 경쟁력이 관건이다. 

이미 TV는 8K에 이르렀지만 8K 콘텐츠는 여전히 부족하다. 삼성과 LG의 8K TV들이 업스케일링 방식을 통해 4K급 화질도 8K로 만들어준다고 하지만 이는 오리지널 8K 콘텐츠의 90% 수준이다. TV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8K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세계 TV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 OLED 진영에 8K TV가 등장하는 올해 하반기가 최고 적기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넷플릭스로 돌아가서, 결론을 얘기하자면 넷플릭스는 극장과 경쟁이 될 수 없는 상대다. 국내 멀티플렉스나 세계 영화제들, 고지식한 영화관계자들은 넷플릭스에게 관대해져도 된다. 현재로서 넷플릭스는 4D를 만들 수 없고 아이맥스 수준의 영화 체험을 선사할 수도 없다. 오히려 넷플릭스에 긴장해야 할 것은 TV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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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는 이야기인데 나는 애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싫어한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렇다면 '애들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놓고 말하는데 극혐이다.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럽고와 별개로 그런 프로그램 자체가 보기 좋진 않다. 지금부터 쓰려는 이 글은 대단히 간단한 글이다. 그냥 그 프로그램들이 왜 보기 안 좋은지 이유를 주절주절 적을 것이다. 다소 꼰대같고 꽉 막혀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 없다. 무지 걱정이 되는 부분이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주길 바라는 부분이다. 


현재 방송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 중 20세 이하 아이들이 주축인 프로그램은 '위키드', '프로듀스101', 'K팝스타' 등이 있다. 'K팝스타'의 경우 의도한 것 같진 않은데 어쩌다 보니 10대들이 주를 이루는 프로그램이 됐다. '프로듀스101'은 각 기획사에서 데리고 있는 연습생들이 10대들이다 보니 그리 된 것 같고 '위키드'는 아예 대놓고 어린이들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꽤 매니아 층도 많고 어른들도 특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에 대해 염려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방송이 경쟁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교육은 유난히 경쟁을 조장하고 스스로 성공하기 위해 타인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 이것은 학교의 시스템을 통해서도 아이들에게 충분히 주입된다. 부모들은 다른 집 아이들과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대출을 받아서라도 2개 이상의 학원에 보내고 어느 학습지 광고는 "친구보다 공부가 중요하다"고 대놓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방송에서조차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겨 우승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뿐 아니라 모든 오디션 프로가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들은 나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경쟁에 임하는 동안 아이들은 서로 친구가 되고 우승한 아이도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승을 한 단 한 사람은 거액의 상금과 엄청난 특전을 누린다. 그리고 주목받는 스타가 되고 여러 기회를 잡는다. 방송을 보는 학부모들은 우승한 친구가 누리는 혜택에 집중한다. 그것은 '1등'이라는 자리에 오른 '단 한 사람'만이 누리는 특전이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에게 '1등'을 강요할 것이다. 그 '단 한 사람'이 누리는 혜택을 봤으니 말이다. 


아이 입장에서도 대단히 설득력이 생기는 내용이다. 화려한 연예인의 삶을 동경하는 아이라면 오디션 프로 우승자가 누리는 특전은 대단한 선망의 대상일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돈'의 가치가 커지는 사회에서는 거액의 상금을 거머쥔 우승자의 모습은 매우 부러울 것이다(부러움이라도 느낀다면 나름 효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깐 거액의 상금을 가져가는 10대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돈'의 가치에 대해 더 크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를 사는데는 당연한 덕목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치관의 주입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오디션 프로에 우승하는 것이 '행복'을 찾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속 아이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밤새도록 연습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 긴장해서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고 좌절과 슬픔을 일찍 맛보기도 한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고 나니 '그것이 인생'이라는 점 정도는 안다. 하지만 일찌감치 그것을 알려줘야 할 필요는 있을까 싶다. 


꿈을 갖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꿈이 좌절했을때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른들은 노력하면 뭐든지 이뤄질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공의 문은 대단히 좁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넘어지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물론 어른도 있다). 그렇게 넘어져도 어른들은 아이에게 "다시 일어나.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오디션 프로에서 심사위원들은 기꺼이 그런 '멘토'가 된다. 그러나 그 멘토들 중 누구도 실패를 이겨내는 법이나 더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죽도록 노력하게 등을 떠민다.


오디션 프로는 꿈을 향해 달리는 법만 보여준다. 살아보니 '꿈'과 '행복'은 같은 방향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꿈을 이뤄야 행복한 것이 아니고 성공해야 행복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의 어떤 심사위원(멘토)도 '즐기는 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지독하게 노력하다 좌절할까 염려된다. TV에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들, 그리고 어디선가 꿈을 꾸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더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아서 시작한 그것이 '일'로 다가오면 그 고통은 꽤 크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영재'가 나오는 프로그램도 안 봤으면 좋겠다. 마치 아이들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며 특별한 아이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내 비록 총각이고 아이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특별하다고 믿는다. 한글을 깨치는 속도가 또래보다 늦다고, 구구단이 좀 늦다고, 시계바늘을 아직 읽지 못한다고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그 아이는 분명 다른 아이들보다 특별한 재능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100명의 아이들이 있다면 '영재' 또한 100명이다. 그 모든 아이들을 TV에 담아낼 자신이 없다면, 아예 '영재'를 발굴한다는 프로그램은 안 만들어지는게 낫지 싶다.


좀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방송이란 어떤 의의를 담고 있건 돈이 오가는 냉정한 '비즈니스의 장'이다. 거액의 광고가 걸려있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한다. 어린 아이들이 벌써 비정한 '광고시장'의 중심에 뛰어들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나는 아이들이 '돈'보다 더 큰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앞에서 말한 '행복'에 관한 것이다. 돈은 '행복'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30대 그룹사 오너인 이재현 CJ 회장의 일가를 봐도 그들이 마냥 행복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일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최근 아동학대에 관한 뉴스가 자주 보인다. 학대를 피해 탈출하기도 하고 혹은 차가운 베란다에서 숨지기도 한다. 그리고 300명이 넘는 아이들은 차가운 바닷속에서 숨지기도 했다. 어른이라는 존재는 때로 아이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다. 아이는 어른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제 아무리 어른이라도 아이의 길을 정하고 끌어줄 필요는 없다. 어른이란 아이가 가려는 험난한 도로를 포장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른과 아이가 있다면 어른은 무조건 '조연'이고 아이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을 빛낼 수 있는 어른의 역할이 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추신) 이 글을 마무리하고 예상되는 '부모'들의 반응: "니가 키워봐라. 그런 소리 나오나". 내가 결혼하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는데 가급적 나는 이런 생각을 실천하고 싶다. ...근데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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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가 분장개그 친 거 오랜만이지 싶다.


'무한도전'이 오랫동안 예고하며 기대하게 만들었던 '나홀로 집에'가 드디어 방송했다. 그렇게 오래 예고한 것 치고는 1회분에 방송이 끝나 뭔가 허무했지만 한 겨울에 즐기는 납량특집은 가히 역대급이라고 할만했다. 어릴때는 방과 후 텅빈 학교조차 무서웠는데 심야시간에는 인적도 드문 여의도 한 가운데 텅빈 방송국이라니, 상상만 해도 무서울 지경이다. 원래 무한도전은 '예능 그 자체'로 즐겨야 하는게 맞지만 이번 편은 보기보다 이야기꺼리가 상당히 많은 특집이라 몇 자 적는다. 물론 그 이야기는 이전에 네티즌들이 하던 '정치적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무한도전의 이번 특집이 가능했던 건 텅빈 MBC사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국은 기본적으로 24시간 사람들이 상주해있고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다. 그건 과거 '24' 특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활기가 사라진 텅빈 방송국 건물은 정적만이 맴돌 뿐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어떤 사연에서건 방송국으로 향한다. 



준하형 말씀 받들어 여름에 또 하자.


이들이 하는 첫 미션은 분장실, 두번째는 뉴스룸, 세번째는 드라마 세트장이다. 분장하고 뉴스하고 드라마 촬영하는 것, 이건 방송국의 흔한 일상이다. 그 일상이 사라진 방송국 건물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은 마지막으로 방송국의 일상을 보여준다(물론 '예능'은 멤버들이 하고 있는 것이기에 생략됐다). 아마도 그들은 여의도 사옥에서 마지막으로 촬영한 프로그램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것은 32년 동안 생활한 여의도 사옥에 보내는 무한도전의 작별인사다. 방송국의 흔한 일상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추억하며 곧 사라질 건물에게 마지막 헌사를 보낸 것이다. 


MBC가 어떤 곳인가?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허울만 남은 공영방송이 아니던가? 사실 지금의 MBC를 추억하고 그 마지막에 헌사를 보낼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마 몇 명의 사람들은 "망할 MBC 없애버려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의 마지막 자존심'정도로 여겨질 '무한도전'은 위태로운 MBC에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무한도전'의 각오


이와 동시에 '무한도전'은 시끄러웠던 2014년과의 작별도 알렸다. 두번째 미션인 뉴스룸에서 무도 멤버들이 말한 끝인사 멘트는 여의도 MBC시대의 종결과 함께 시끄러웠던 2014년의 종결도 알린 것이다. 이 멘트를 통해 이들은 2015년에 더욱 달라질 것을 각오하기도 했다. 그 기세를 보여주듯 지난해 말 '무한도전'은 연이어 대박 특집을 기획했다. 그리고 예고를 통해 드러난 10주년 특집 또한 '28년후'에 버금가는 대형 블록버스터다(여기서 불안해 할 사람이 많을거라 생각된다). 


'무한도전'관련 커뮤니티에 가보면 이들이 마치 끝인사를 준비한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글이 많이 보인다. 제작진은 보란듯이 이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홀로 집에' 특집에서 보여준 이들의 각오는 "헌건물은 떠나보내고 새건물에서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는 결연한 의지처럼 보였다.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이쯤에서 남는 가장 큰 의문 하나, 왜 하필 '한 겨울의 납량특집'일까? '납량특집'은 무한도전 멤버들의 최대 취약분야 중 하나다. 몸 쓰고 구르는 거라면 타고난 그들이지만 납량특집은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되는 것 같다. 이들이 가장 취약한 분야에 정면으로 나선 것(정면이 아닐 수도 있지만)은 새해에도 물불 가리지 않고 도전하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공포극복'이라는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싶을 지경이다(물론 이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어쨌든 시청자의 입장에서야 더 바랄 것 없는 특집이었다.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좋아하는 스타들이 새해에도 온 힘을 다해 웃겨주겠다는데 바랄 것이 있을까? 명수형 올해 10억 기부 안해도 좋으니 10억원어치 웃겨주길 바란다. 말 안해도 기부는 알아서 잘 하시는 분들이니 바랄 건 없다. 요 몇 주 계속 흐뭇한 '무한도전'을 봐서 참 기분이 좋다.



여담) 그래서 2015년에는 서장훈의 비중이 커진다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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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뭐 순전히 이민지양 때문에 기대한 드라마지만 내용도 뭐 가벼울 것 같고 무상무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 좀 했습니다.


2. 총평을 하자면 병신력을 전방에 내세운 드라마입니다. 사실 병신력 드라마는 최근 케이블 드라마의 나름 트렌드이지만 '선암여고 탐정단'은 상당히 작정한 병신이죠. 흡사 과거 '미지왕'을 연상시킵니다.


3. 하지만 길 잃은 '미지왕'이죠. 질주하는 병신이 되지 못하고 이야기를 쫓아가는데도 시선을 놓치지 않습니다. 보는 입장에서는 살짝 답답하기도 하죠. 더 병신이 되길 바라게 되거든요.


4. 역시 대한민국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최고의 '멋진 병신'은 '미지왕'임을 새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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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대한 이민지양은 주연급 다섯명 중 비중이 가장 작습니다. 그럼에도 특유의 '연기하는 줄 모르게 하는 연기'를 선보이죠. 그런데 그러기엔 또 캐릭터가 너무 판타지스럽습니다. 한마디로 병신들의 향연에서 정신차리려고 애쓰는 형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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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빵꾸똥꾸의 커리어는 역시 대단하군요. 가장 TV에 최적화된 연기를 펼칩니다. 사실상 원탑 주연이고요. 그러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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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난친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잘합니다. 정말 연출자의 디렉션을 잘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느낌이에요. 만약 "내가 이 드라마의 연출자라면 혜리에게 어떤 연기를 요구했을까?"라고 생각했을때 내릴 수 있는 답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나름 능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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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생각보다 잘합니다. 가장 기대 안 한 배우인데 잘 스며드네요. 근데 이게 이 친구가 잘해서 스며든건지 주변이 다 고만고만해서 스며든건지 헷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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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실상 세컨주연에 가까운데 심각하네요. 어린 친구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만 배우가 캐릭터를 어색해하고 있는게 보여요. 사실 누가 해도 어색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배우가 해석해내는 능력이 필요한거죠. 어린 배우에게 바랄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거슬리는 캐릭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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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알려두건데 필자는 광고와 마케팅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고 배워본 적도 없다. 이건 그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는 삼성과 LG전자의 마케팅 전략에 대한 비교다. 


그리고 하나 알려두건데 아마 이 글은 노골적으로 삼성전자의 편에 선 광고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코 말할 수 있는 것은 LG전자의 마케팅보다는 삼성의 마케팅 전략이 고객 입장에서 더 끌린다. 이 글은 필자의 그런 견해를 전제로 작성한다. 즉 어쩔 수 없이 삼성의 마케팅 전략을 옹호하고 LG의 마케팅을 폄하하는 발언이 있을 수 있다. 그 점 염두해두고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필자는 최근 얼마간 LG전자에서 일을 했었다. 물론 본사 정규직은 아니고 협력업체에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잠시 일했다. 이곳에서 일하며 하나 깨달은게 있다면 "절대 LG폰은 사지 말자"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현재 출시대기중인 옵티머스 폰이 대여섯개쯤 되는 것을 보고 이같이 결정했다. 지금 출시된 옵티머스만 해도 알파벳을 다 외우기 힘들 지경인데 아직도 더 나온다니, 현재 모델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모델이 많아지다 보니 광고에도 집중하기 어렵다. 솔직히 이 정도 많은 모델을 광고할려면 대기업 LG전자라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물론 삼성 갤럭시도 꽤 다양한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도 삼성은 나름 전략모델 하나를 정해서 그것에만 광고물량을 모두 투입하고 있다. 한 예로 필자는 '갤럭시 그랜드'라는 모델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매장에서 처음 봤다. 즉 몇 개의 갤럭시 모델이 있지만 주력으로 광고하는 것은 갤럭시S4라는 소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과 LG의 스마트폰 광고 퀄리티에는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두 스마트폰 회사의 광고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자.




LG의 경우에는 앞서 말한대로 제품이 다양하다 보니 한가지 제품에 마케팅을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장 쉽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스타마케팅'이다. 정작 LG전자 직원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지금 언듯 떠올려봐도 LG전자의 모델들은 엄청난 스펙을 자랑한다. 휴대폰 뿐 아니라 모든 가전제품을 통틀어봐도 LG전자의 광고모델들은 삼성에 전혀 뒤지지 않으며 심지어 삼성을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LG전자가 이 모델들을 활용하는 방법은 그들이 그동안 방송이나 영화, 스포츠계에서 활동하면서 쌓아온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 뿐이다. 이런 스타마케팅은 스타의 힘 때문에 금방 어필할 수 있지만 금방 이미지에 익숙해져서 질리게 하는 부작용을 준다. 즉, 스타마케팅은 단발적인 효과를 얻을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LG전자는 무슨 사정이 있는지 시종일관 이런 스타마케팅 전략을 고수한다. 물론 간혹 이들의 스타마케팅 전략은 아주 훌륭한 성과를 얻기도 한다. 한 예로 김태희가 혼자 핸드폰 보면서 춤추는 싸이언 광고는 오늘날에도 많은 남성들에게 오르내리며 '훌륭한 광고'로 인정받고 있다. ...순전히 김태희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오프라인 마케팅 행사에 스타를 대동하며 제품의 이미지에 더욱 스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LG전자의 광고에 활용되는 스타가 김태희와 류승룡이 있다. 


LG가 이처럼 스타마케팅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제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옵티머스' 한 제품만 해도 엄청나게 다양한 모델을 자랑하며 그 모든 모델에 대한 나름의 홍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 외에도 포켓포토나 로보킹, 침구킹 등등 생활가전 분야에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고 그 모든 제품들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제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이 다양한 제품들에 제각기 기발한 홍보전략을 구상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를 돈으로 사는 것은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LG전자는 가장 간편한 광고전략인 '스타마케팅'을 활용했을 것이다.



LG전자의 스타마케팅이 만든 최고의 성공작은 김태희가 출연한 바로 이 광고가 아닐까... 아주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이제 삼성전자의 광고와 노골적으로 비교를 해보자. 삼성전자 역시 스타를 활용해 마케팅을 펼친다. 하지만 이들은 스타를 활용하는 방식이 LG와 사뭇 다르다. 최근 삼성전자는 갤럭시S4를 출시하며 양익준, 정우성, 김남길, 구혜선 등 4명의 배우 겸 감독들을 섭외해 광고영화를 제작했다. 국내에서는 코오롱스포츠가 박찬욱과 김지운 같은 거장 감독들을 섭외해 광고영화를 제작한 적이 있지만 삼성은 이미 갤럭시노트를 출시할때부터 광고영화를 적극 활용해 영화배우와 감독, 웹툰작가 등 문화계 전반의 스타들을 마케팅에 활용해왔다. 그리고 이보다 이전부터 이효리, 에릭, 보아, 박봄, 타블로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을 활용해 노래와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해왔다.


이쯤되면 삼성이 스타를 광고에 활용하는 방법은 다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광고를 단순히 '소비하는 이미지'로 두지 않는다. 이들이 만드는 광고는 하나의 '문화컨텐츠'로써 오랜 시간 두고 소비할 가치가 있는 또 하나의 상품이 된다. 이런 식의 광고 전략은 자사의 제품을 장기적으로 홍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제품의 고급화 전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광고 자체가 소비성 이미지가 아닌 오래 두고 즐길 문화컨텐츠라면 그 광고가 홍보하고 있는 제품은 어떤 모습일까? 삼성전자의 광고는 바로 그 지점에서 스스로의 고급화를 꾀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은 그런 고급스런 이미지의 제품을 구매하면서 스스로를 고급화 시키기도 한다. 



삼성 갤럭시S4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를 주로 펼친다.


삼성전자의 홍보전략은 한가지 더 있다. 바로 감성마케팅이다. 최근 갤럭시S4는 제품이 가진 기술적 특징들을 감성에 덧씌운 광고들을 내놓았다. 물론 갤럭시S4의 영화들 역시 그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광고다. 


사실 기술에 감성을 더하는 것은 애플사의 마케팅 전략이다. 애초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적 정서를 기반으로 자사 제품의 테크놀로지 개발에 앞장섰으며 현재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기술과 홍보에는 이런 인문학적 감수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차가운 전자기기제품들을 홍보하면서 거기에 감성을 녹아들게 하는 것은 대중에게 제품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효과를 준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자사 제품인 소나타 하이브리드의 TV광고에서 스타가 전혀 없이 비오는 날 선루프를 즐기는 모습을 광고에 내보냈다. 이것은 감성마케팅과 동시에 소비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준다. 선루프가 있는 차를 가진 사람에게는 비오는 날 선루프를 즐기는 여유를 줘 현대자동차의 기업이미지를 재고시킬 수 있고, 선루프가 없는 차를 이용하거나 아예 차가 없는 소비자에게는 이 다음에 차를 사면 선루프가 있는 차, 기왕이면 소나타를 사야겠다는 구매욕구를 일으켜주기도 한다. 


이처럼 감성마케팅은 공감대 형성을 통한 기업이미지 재고와 구매욕구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효과를 보여준다. 강렬한 이미지의 홍수인 현대 미디어사회에서 '쉬어가는 이미지'를 주는 광고로 더욱 친숙하게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어쨌든 LG의 스타마케팅 덕분에 우리는 좋아하는 스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긴 하다.


정리하자면 LG전자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숙제는 '광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사실 광고의 사전적 개념은 '제품을 알리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제품을 알리는 수준만 해서는 광고를 통해 더 나은 효과를 얻을 수 없다. 광고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삼성전자는 바로 그 점에 집중해 광고를 새로운 문화컨텐츠로써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로써 소비자는 이효리와 에릭의 콜라보레이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하정우와 3명의 기성감독들이 함께 한 옴니버스 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자극적인 이미지의 홍수에서 잠시나마 쉬어가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글 서두에 언급한대로 이 글은 노골적으로 LG전자를 '까는' 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삼성과 LG는 대한민국 가전업계를 양분하며 전자기술의 발전을 이끈 거대기업이다. 필자는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서민이지만 이들이 부디 사소한 분야에서나마 '사회적 공헌'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대중들에게 훌륭한 문화컨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라면 공헌이다. 



최근 '감성마케팅'의 가장 성공적인 광고사례는 현대자동차의 바로 이 광고일 것이다.


아무리 기업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꼴보기 싫어도 우리는 어쩔수 없이 대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소비하고 있고 우리들 중 누군가는 그 대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 기왕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기업이라면 좀 더 여러 면에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업'으로 남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혹시 LG전자 마케팅 관계자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부디 애정어린 충고로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광고나 마케팅 관계자, 혹은 그 분야에 공부하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부디 삼성전자의 홍보전략을 활용해 더 나은 양질의 광고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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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ephia 2013.07.13 12:0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돈성이야 언플 전략은 알아주잖아요. 쿨럭.

    소문에 의하면 한때 기아자동차가 어려워진 배경에는 돈성의 언플이... ㄱ-




이 글의 부제목을 보고 있자면 독자들은 "90년대의 사랑만 아날로그냐?"라는 불만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리 밝혀두고 시작하건데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랑'에 대한 나름의 정의이며 그 이유를 서술한 것에 해당한다. 


그래, 대놓고 말해보자. 사랑은 그 자체로 아날로그의 결정적 산물이다. 디지털 시대인 현재에 사랑이 없었냐고 묻겠지만 이 시대에서의 사랑도 결국 최소한 남아있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에 의해 형성되고 이뤄진다. 그렇다면 그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이토록 청춘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었는가? 


최근 이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담아낸 두 편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공개됐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건축학개론'이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7, 80년대의 사랑도 아날로그적인 것일텐데 왜 유독 90년대의 이야기만 텍스트로 끌어들이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우선 그 이야기부터 해보자. 




● 아날로그의 끝자락, 디지털의 등장


90년대에는 IT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벤처 붐이 일어났고 PC통신과 인터넷 보급이 활성화됐다. 하지만 그보다 가장 단적으로는 PC방이 생겨났고 '스타크래프트'가 PC방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DOS 운영체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도 90년대인걸로 알고 있다. 


즉, 90년대는 아날로그의 끝과 디지털의 시작이 만나는 일종의 '과도기'다. 이 과도기적 문화는 젊은이들의 생활 속에 깊숙히 파고 들어 있었다. 워크맨과 MP3 사이에 아주 잠시 존재했던 휴대용 CDP가 있었고 삐삐라는 놀라운 무선통신기기가 등장하나 싶더니 시티폰이 등장하고 PCS가 등장하다가 휴대폰이 보편화된다. 


젊은이들은 디지털의 편리함으로 쉽게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되지만 한편 여전히 불편한 어느 한 대목 때문에 아날로그적 사랑을 하게 된다. 아날로그적 사랑의 가장 첫 번째 화두는 '그리움'과 '애틋함'이다. 애시당초 디지털과 멀리 지냈던 7, 80년대에는 멀리 지내는 것이 당연했기에 만남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기 힘들었다. 그때는 그 만남의 거리가 당연하게 느껴졌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디지털기기가 서서히 고개를 들자 우리는 더 넓고 다양한 만남을 쉽게 가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만남은 여전히 힘들고 애틋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그리워 할 수 있는 범위가 더욱 확장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90년대의 젊은이들은 디지털 시대를 반기는 한편 아날로그를 아쉬워하는 시기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 그리움은 오해를 먹고 커져간다


2012년의 만남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약속장소를 대충 잡고 핸드폰으로 계속 연락하면서 쉽게 만날 수 있고 화상통화로 보고 싶을때 언제든 얼굴을 본다. 모바일메신저는 정성들여 쓰던 손편지를 대신하게 됐고 몇번이고 쓰다 지우는 이메일도 대신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듣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때 REC 버튼을 눌러 녹음하던 버릇은 MP3 파일 다운로드로 대신하게 됐고, 보고 싶은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게 됐다. 


디지털 시대는 세상을 참 좁아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만남을 참 편리하게 만들었다. 또 그만큼 그리움을 감소시켜 '오해'를 줄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사랑의 오해가 그렇게 나쁜 것일까?


앞서 말한 두 텍스트, '응답하라1997'과 '건축학개론'은 모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모두 '오해'로 인해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어간다. 사실 스무살 청춘의 사랑이 그렇게 결실을 보기는 힘들다. 굳이 '오해'라는 무기를 꺼내지 않아도 그 철 모를 아이들이 사랑의 결실을 맺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때는 우리가 얼마나 순진했던가? 포르노테잎 하나 볼려고 시내 불법카세트테이프 자판 아저씨와 암묵적 거래를 하기도 하고 그렇게 확보한 것을 부모님 일 나가신 친구집에 모여서 방문 잠그고 숨죽여 볼 정도로 순진했다. 지금은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검색어만 치면 주르륵 찾을 수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응답하라1997'이나 '건축학개론' 모두 참 '90년대스러운' 연애담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오해'에서 비롯되고 그 오해는 시간이 흐른 뒤 '후회'라는 결말을 낳게 된다. 오해와 후회는 모두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한다. 사랑을 하는데 있어 아파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성장통을 겪어야 우리는 사람 귀한 줄 알게 되고 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 시절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러다 오해하고 헤어지고 후회하고 그리워하며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어른'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정작 어른이 된 우리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잊은채 살고 있다. 왜냐하면 어른이 되고 맞이한 세상은 디지털의 편리를 누리며 '그리움'을 잊게 만들고 오해와 후회를 줄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도 카카오톡 메시지 보내듯 편리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편리함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


그러니깐 위에 쓴 복잡한 글을 짧게 요약하자면 "진짜 사랑은 그리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편리함이 더해져 그리워 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진짜 사랑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응답하라1997'과 '건축학개론'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잊고 지냈었다. 그것을 우리는 두 작품 모두에서 중요한 텍스트로 등장하는 '가요'를 통해 알 수 있다. 


사실 90년대 후반은 H.O.T,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들이 막 등장해 가요계의 일반적인 흐름을 바꿔놓던 시기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신승훈, 김건모가 가요계를 찜쪄먹다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해 판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아이돌'이라면 지금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기 아이돌이 부르던 노래와 지금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노래'란 말 그대로 하나의 '시'(詩)다. 아름다운 노랫말에 멜로디를 실어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예술장르다. '건축학개론'에 중요한 텍스트로 등장하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만 해도 공들여 쓴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로 당시 많은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울렸다. 또 '응답하라1997'에도 90년대의 많은 노래들이 등장한다. 물론 가장 많이 등장한 곡은 H.O.T와 젝스키스의 노래다. 사실 나 역시 90년대를 관통한 '아저씨'로('응답하라1997' 등장인물들의 연령대를 보니 걔네들이 전부 나랑 동갑이다. 1980년생.) 당시만 해도 아이돌의 노래 가사들이 그저 그래보였다. 헌데 지금 아이돌의 노래를 듣다가 생각해보니 당시 아이돌들의 가사가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캔디'나 '행복'같은 달작지근한 사랑노래를 부르던 H.O.T도 'We are the future', '늑대와 양', '아이야'같은 묵직한 노래들을 내놨다. 젝스키스는 뭐 데뷔곡부터가 '학원별곡'이다. 그러고보니 H.O.T도 데뷔곡이 '전사의 후예'다. 냉정하게 이들의 데뷔곡만 비교해보자. 두 곡 모두 입시에 찌들은 청소년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후에도 이들의 노래는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10대들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가사들로 채워내고 있다. 이후 등장한 G.O.D, 신화 등 아이돌들 역시 '가사'만큼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을 보이고 있다.


가사를 써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적어도 노래 한 곡을 만들며 이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들이 단순히 귀가 즐거운 것을 떠나 10대들의 마음을 얼마나 대변해주는지 알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아이돌'은 그냥 이쁘고 잘 생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우상'이라면 '우상'에 걸맞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아이돌 그룹 내 왕따가 있다고 폭풍같은 비난을 퍼붓는 것은 말 그대로 그들이 '우상'이었기 때문이다. 우상에 대한 실망은 다른 실망보다 훨씬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상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이야기가 좀 샌 것 같다. 어쨌든 디지털 시대의 서운한 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노래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른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나 만든 사람이나 부르는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우리 모두가 노래에 자신만의 사연을 담고 있었다. '건축학개론'만 해도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에 사연을 담은 두 남녀가 등장한다. 단순하게 말해 이성에게 차이고 집으로 가는 길 버스 라디오에서 들려온 노래가 가슴을 후벼판다면 그 곡도 사연이 담긴 노래가 된다. 



요즘 애들은 잘 모를텐데, 이 분들이 '전람회'이시다. 오른쪽이 젊었을때 김동률 형님이시지.


이것은 감수성의 문제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이 가벼워지면서 듣는 사람 역시 노래에 사연을 담아낼 만큼 감동을 받지 못하게 됐다. 물론 여기에는 MP3를 통해 쉽게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기여했다. 물론 90년대에도 레코드판은 있었지만 냉정하게 그 시기는 레코드판 닦아가며 듣던 시대가 아니니 접어두자. 그래도 용돈 차곡차곡 4500원짜리 카세트테이프나 12000원짜리 CD 사서 들으며 그것들 참 귀하게 관리하던 시기였다. 너무 오래 들어서 카세트테이프 늘어나면 속상해 했고 CD는 오늘날 제품처럼 별의 별 별책부록 안 들어있어도 참 귀하게 관리하던 물건이었다. CD에 기스날까봐 판 부분 못 잡고 손가락으로 양쪽 끄트머리 잡은채 CDP에 고이 얹어두고 들었다. 


노래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면서 우리의 감수성이 메마른건지, 아니면 감수성이 메말라 노래를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12년의 젊은이들은 90년대의 그들처럼 노래를 즐기지 못한다. 노래를 즐기는 것은 단순히 노래방가서 신나게 불러제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2012년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얼마나 거기에 빠져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드는 사람부터 유통하는 사람, 듣는 사람까지 모두 노래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노래를 귀하게 여길 때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사회를 걱정하게 될 것이다. 


가끔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앞으로 약 10여년쯤 흐른 뒤, 지금의 청춘들이 20대 후반에서 30대가 됐을 때 그들은 어떤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추억하게 될까?




● 1990년대, 가장 조화로웠던 시기


이제 정리해보자. 아날로그의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던 90년대에는 80년대 이전의 감수성과 2000년대의 편리가 만나 꽤 재미난 광경을 여럿 연출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영화 '접속'과 같은 진풍경들이다. '응답하라1997'과 '건축학개론'은 바로 그 가장 이상적이었던 시기에 대한 그리움이다.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디지털에 녹아들며 아날로그로 디지털을 풀어갈 수 있는 시기였다. 


2012년이 되고 보니 사회나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수성 모두 디지털화 되어버렸다. 디지털 사회는 우리를 매우 편리하게 만들었고 또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했다. 그 사회의 속도에 우리는 허겁지겁 달려가며 겨우 쫓아가고 있다. 그리고 쫓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낙오자'로 찍히게 됐다. 


굳이 여유로웠던 시기를 추억하기 위해 90년대를 꺼낼 필요는 없다. 80년대에도 70년대에도 정치적 불안은 내재했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누구보다 낭만적이고 여유로웠다. 적어도 지금 젊은이들보다는 말이다. 


사실 이 글의 결론을 낼 수는 없다. "그때는 이런 것이 좋았으니 그때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기에도 난처하다. 단 하루쯤 "세상에서 사라지자"는 마음으로 컴퓨터도 꺼버리고 핸드폰도 꺼버리자. 필자는 최근 자의반 타의반으로 핸드폰을 없앴다. 물론 부득이한 연락을 위해 와이파이는 사용하고 있지만 전화를 주고 받는 일은 거의 안 하고 있다. 며칠 됐는데 의외로 편한 점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으로부터 도피지만 한결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90년대에는 삐삐만 있어도 약속잡고 사람만나고 다 했다. 



여담1) 내 첫사랑은 잘 지낼래나?


여담2) 짤방 2번, 3번 가지고 뭐라 하지 말자. 짤방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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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드라마 중 가장 핫한 드라마를 꼽자면 '신사의 품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장동건, 김하늘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김수로, 김민종, 이종혁, 윤세아 등 걸출한 스타들이 대거 출동하다보니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에는 충분하다. 헌데 이 명품드라마로 각광받는 드라마가 이야기구조를 따져보면 의외로 상당히 단순한 구석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하다기 보다는 아주 익숙하기까지 하다.


음... 그래 솔직하게 말하겠다. '신사의 품격'의 인물과 이야기 구조는 아주 정확하게 말해서 '마이블랙미니드레스'의 확장판인셈이다. 썩 바람직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마이블랙미니드레스'는 20대 후반의 싱글여성 4인의 일과 사랑을 '나름대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같은 구조로 '신사의 품격' 역시 성공한 40대 싱글남성 넷의 일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인물들의 계층만 바뀌었을 뿐이지 두 작품은 사실상 거의 동일한 구조와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작품에 대한 평가는 거의 극과 극이다. '마이블랙미니드레스'는 영화를 본 관객들로부터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낮은 평점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반면 '신사의 품격'은 방송 첫 주만에 '시크릿가든'에 필적할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인기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이같은 극과 극의 반응에는 연출자의 능력이나 극본의 재미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블랙미니드레스'가 악평을 받던 당시 '인물들에 대한 공감지수'가 언급됐던 점을 비춰볼 때 두 작품의 극과 극 반응에는 영화적인(혹은 드라마적인) 구성요소와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두 작품의 차이에 대해서는 여러 요소가 있을테지만 가장 큰 요소로 언급하고 싶은 것이 앞서 말한 '인물들에 대한 공감지수'다. '마이블랙미니드레스'는 20대 후반 여성들이 주인공들이다. 경우에 따라 20대 여성이라면 충분히 성공을 이뤄냈고 자기 삶을 즐길 줄 아는 계층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20대 여성이라면 성공한 삶을 위해 좀 더 노력하고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 속 인물들도 성공을 위한 좌충우돌을 충분히 그려내고 있지만 이야기는 그들의 삶에 대한 노력보다 상류사회를 즐기는 모습을 비추는데 더 주력하고 있다. 그런 치열한 삶을 사는 20대들에게 '마이블랙미니드레스'는 "사치스럽고 골빈 동년배들의 일상"이 되는 것이다.


반면 '신사의 품격'은 40대 싱글남들의 이야기다(아, 물론 극 중 한 명은 결혼했다). 이들은 각각 건축사무소 소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귀부인의 연하남편 등등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다. 언듯 보면 되게 럭셔리한 삶을 즐기고 있지만 딱히 럭셔리하지도 않다. 딱 한 명만 뺀다면 이들은 자신의 직업과 성취도에 맞는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조차 그리 현실적이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들의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0대라면 충분히 그런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이야기의 완성도' 면에서도 40대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더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해 직장을 얻고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뤄낸 40대 남성이라면 그만큼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신사의 품격'은 네 남자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 극의 흥미를 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물론 20대 후반의 네 여성들에게도 분명 과거의 이야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는 세월의 연륜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마련이다. 특히 '추억'은 술과 같아서 오래 묵혀둘수록 깊이가 더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사의 품격'은 여기에 깨알같은 유머들로 극적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긴 드라마다 보니 네 남자를 중심으로 주변인물들이 다양하게 배치되어있고 그들과의 유대관계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다 보니 극적 재미는 '신사의 품격'이 압도적으로 앞선다. 하지만 '마이블랙미니드레스' 역시 충분한 극적재미를 보여줄 수 있었지만 상류사회에 대한 보여주기에 급급하다보니 재미와 공감대를 둘 다 잃게 됐다.


특히 '신사의 품격'은 40대들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근엄한 어른으로 묘사하지 않고 '소년'에 가깝게 묘사하며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는 누군가의 말을 새삼 보여주고 있다. 이 귀여운 아저씨들이 여성 시청자들의 격한 공감을 얻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장동건, 김수로, 김민종, 이종혁 등 '원래 매력남'들이 연기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글을 쓰다보니 이 글이 40대와 20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글로 비춰질지 염려된다. 우선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밝혀둔다. 20대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40대에도 충분히 소년같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우리의 삶'이 아니라 대중앞에 보여지는 이야기로써라면 '마이블랙미니드레스'의 '럭셔리한 20대'는 완벽한 실패작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들과 동년배인 여성관객들이라면 박한별, 윤은혜, 차예련, 유인나의 완벽한 몸매는 "흥!칫!뿡!"이 절로 나오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테니 말이다. 남성관객은? 어차피 그들이 선호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성공한 40대의 럭셔리 라이프에서는 아저씨들 삶의 깊이와 연륜이 묻어난다. 또 그들의 소년같은 모습은 일상 속 아저씨들의 답답한 모습에서 벗어난 일종의 '로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20대 여성들의 모습 역시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성공이 클럽에서 이성과 만나고 명품을 사기 위한 성공이라면 동년배의 여성들조차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아니, 20대가 공감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그들의 노력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얼마전 KBS에서 최규석 작가의 만화 '습지생태보고서'를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했다. 매우 처절한 20대 청춘들의 모습이었고 심지어 이들이 열망하는 것 역시 '마이블랙미니드레스'와 닮아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빠르게 그들을 꿈에서 깨게 한다. 그리고 산 속 작은 집에서 또 다른 희망을 꿈꾸게 한다.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년이 즐거운 이유는 청춘의 노력을 이뤄냈다면 충분히 즐길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선 말이다.


결론은 '신사의 품격', 의외로 진지하고 이야기꺼리가 많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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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eehk0813 2012.08.16 22:49 address edit/delete reply

    제가 두달뒤에 비슷한 소재로글을 쓰게 되었는데 이글이 있는지 모르고 그런 글을 쓰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 BlogIcon DAISHI ROMANCE 2012.08.16 23:06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제가 쓴 것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재밌는 글이네요 ㅋㅋ 죄송할 것 없어요. 잘 읽었습니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일어나 TV를 켰는데, 드라마 <올인>이 한다. 이게 벌써 8년전 드라마라는게 감회가 참 새롭다. 워낙 사연도 많았던 드라마라 멍때리고 한참을 쳐다봤다. 이게 한참 방영할 때가 군대 있을 때 였다. 예비역들은 공감할테지만 일석점호 후 당직사관과 협상해서 드라마 보고 자는 것은 나름 군인들의 낙이었다. 뭐 부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 글은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군대에서 드라마 본 이야기'이다. 추억의 드라마가 많이 언급될테지만 군대얘기라면 질색인 여성들은 일찌감치 뒤로가기를 눌러주길 바란다. 뭐 그래도 궁금하다며 글을 읽는다면 딱히 말리지는 않겠다.

'네 멋대로 해라'

'순수의 시대'


대략 2002년말 쯤이었을 것이다. 필자의 부대는 내무실이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날도 당직사관과 협상을 해 일석점호 후(저녁 10시 이후) 드라마를 보기로 했었다. 그 당시 KBS에서 뭘 방영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필자의 내무실에서는 SBS에서 방영하던 <순수의 시대>를 보고 있었다. 김민희, 박정철, 고수가 주연한 이 드라마는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발연기 작렬하는 작품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나름 재미나게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순수의 시대>가 한 다음날이면 옆 내무실의 녀석들이 자기네들 보던 드라마가 진짜 재밌다며 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그래도 보던 드라마가 있었기에 그냥 무시하고 계속 봤다. 아마 그때쯤 <순수의 시대>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병맛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어느날 10시 이후 드라마 시청시간이 되자 과감하게 보던 드라마를 접어두고 내무실을 넘어가보기로 했다. 그 당시는 흔한 말로 "일병만 꺾이면" 내무실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과감하게 넘어가서 뒤늦게 챙겨본 드라마는 양동근, 이나영, 공효진 주연의 <네 멋대로 해라>였다. 드라마를 처음 보자마자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엄한 드라마 보며 허송세월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올인'

'눈사람'

그렇게 늦게나마 <네 멋대로 해라>를 재밌게 본 얼마 뒤, 이번엔 MBC에서 새 드라마를 방영했다. <네 멋대로 해라>의 제작진들이 고스란히 모여서 만든 <눈사람>이라는 드라마였다. 공효진, 조재현, 오연수, 김래원이 주연한 드라마로 나름 시나리오도 충격적이고 꽤 재미난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옆 내무실 녀석들이 "드라마 끝내줘요"라며 자기네들 보는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눈사람>도 나쁘지 않은 연기력과 재미를 보장했기에 이번엔 정말 심각하게 내무실 넘어가는 것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한 번 더 속는 셈 치고 내무실을 넘어갔다. 당시 옆 내무실에서 하던 드라마는 이병헌, 송혜교 주연의 <올인>이었다.

'맛있는 청혼'

사실 따지고 보면 필자가 '드라마운'이 없는 것은 군입대 당시부터 시작이었다. 필자가 군입대하기 전에 꽤 인기있던 드라마 중 <맛있는 청혼>이 있다. 정준, 소유진 주연에 소지섭, 권상우, 손예진 등 초호화 조연을 자랑하는 이 드라마는 당시 꽤 인기가 좋았다. 필자 역시 한참 재미나게 보던 드라마였다. 그러나 슬프게도, 필자가 입대하던 2001년 3월 8일은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방영하던 날이었다. 아직도 필자는 이 드라마 마지막회를 모른다. 아마 평생 모르고 지낼 것 같다. ...꽤 재미난 드라마였는데 말이다.

'야인시대'

'막상막하'


이밖에도 아직까지 많은 남성들에게 회자되는 드라마인 <야인시대>는 김두한의 아역시절을 아직도 모른다. <야인시대>의 방영첫날, MBC에서는 4부작의 또 다른 드라마가 시작했었다. 바로 성유리 주연의 <막상막하>였다. 성유리가 육군 소위로 나오고 이훈, 서경석, 윤태영 등 당시 현역 군입대 연예인들도 꽤 출연한 드라마였다. 왜 군인들이 군대드라마를 보는지 궁금하겠지만, 그래도 남자들 싸움질하는 드라마보다야 성유리 나오는 드라마가 군인들에게는 최고인거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필자는 지금도 드라마 고르는 운이 없는 편이다. 진짜 재미난 드라마는 놓치고 엄한 드라마를 챙겨보는 편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마음내키면 채널을 돌릴 수 있고, 재방송도 지겹도록 한다. 그나마도 놓치면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불과 8년 사이 컨텐츠 이용이 매우 쉬워진 것이다.

분명 드라마보기가 한결 편해지긴 했지만, 불현듯 다른 생각을 해본다. 옛날 음악에 그 하나하나 추억이 담겨있듯 좋은 드라마에도 추억이 담겨있다. 지금의 좋은 드라마에도 추억이 담겨있을까?

문화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들 각자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소중한 감성의 한 페이지로 다가와 심금을 울리는 것이 좋은 문화컨텐츠의 역할이다. 지금의 문화컨텐츠는 오락꺼리로써는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추억의 한 페이지처럼 각자의 감성에 소중하게 와닿고 있는가?

디지털의 시대, 우리에겐 소중한 것이 점점 줄어든다.


여담) 뭔가...결론이 이상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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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hain 2011.04.11 09:2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드라마 하나하나도 좋은 작품이 있겠지만....
    추억이 담긴 드라마가 훨씬 더 좋지요..
    몇 작품들은 기억이 나네요

    • BlogIcon DAISHI ROMANCE 2011.04.12 05:00 신고 address edit/delete

      평소 블로그에 드라마 리뷰 많이 쓰시더니...

      역시 이 드라마들을 알아보시네요...

      몇몇 작품은 왠만해선 알아보기 힘든데...





중학교 3학년때 '중경삼림'의 감상문을 쓴 이후에 오랜 시간동안 영화를 볼 때면 짧게라도 글을 남겼었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어느 순간 내 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됐고, 이제는 몇 가지 철칙을 만들게 됐다. 그 많은 철칙 가운데 하나가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가끔 부득이하게 배우의 연기에 대해 말할 때가 있다. 가장 최근에도 <폭풍전야>의 황우슬혜와 <제로포커스>의 히로스에 료코의 연기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지나고 보니 이유를 제대로 서술하지 않은 것 같아 "아... 아직 내가 내공이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들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해 뭐라 한 이유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만 이 글은 그 이야기를 할 곳이 아니기 때문에 넘어가자.

스크린 속 배우의 눈빛만으로 나는 꽤 호흡곤란과 마비증세를 느꼈다.


나는 영화감상문을 쓸 때 가장 큰 철칙으로 두는 것이 "모든 감상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고, 약간 루즈했다"라는 문장을 쓸려면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표현돼서 루즈했다던지, 컷의 박자가 비슷한 장르의 영화에 비해 느려서 루즈했다던지(이런 경우라면 구체적인 비교를 해주는 것이 좋다)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배우의 연기에 대해 말할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잘한 연기라면 잘한 부분을 설명해주며 "크로 모레츠는 <킥애스>에서 힛걸이라는 캐릭터를 맡아, 어린 소녀가 소화하기 힘든 액션연기와 허세섞인 표정 등을 잘 표현해냈다"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뭐 그래도 "이 배우는 연기가 완벽하다!!"라는 표현은 가급적 안 쓸려고 한다. 예전에 <지옥의 묵시록>을 뒤늦게 극장에서 볼 때, 큰 화면에 등장한 말론 브란도가 카메라를 쳐다만 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된 적이 있다. 그 경험을 겪고 나면 "진짜 연기 잘하는 배우는 스크린에서 관객을 압도해야 한다"는 철칙이 생기게 된다. 만약 당신이 나처럼 어느 배우에게 압도당한 적이 있다면 "완벽하다"라는 칭찬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함부로 "완벽하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될 것 같다.

김태희는 '연기력 논란'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배우들에게 "연기 못한다"는 말을 종종한다. 한 예로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명세 감독의 <M> 상영 후 이명세 감독, 이연희, 조성우 음악감독 등이 참가한 GV시간에서 한 관객이 면전에서 이연희의 연기를 비난한 적이 있다(물론 이 관객도 말하다보니 그렇게 흘러간 것이라 좀 쑥스러워했고, 관객들의 폭풍야유를 받았다). 이 부분에 대해 이명세 감독은 나름의 이유를 들며 이연희가 이 영화와 잘 맞았고, 좋은 연기를 펼쳤다고 주장했었다.

관객이 "잘했다"고 평가하는 연기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못했다"고 말한 연기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 누가 봐서 못한 연기도 다름 사람에게는 "이정도면 됐지"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흔히 관객들이 말하는 "못한 연기"의 대표적인 예로 <중천>의 김태희를 든다. 솔직히 나도 그 영화에서 김태희가 모든 장면에서 똑같이 짓고 있는 표정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엄연히 그 장면은 연출자의 OK사인을 받은 장면이고 <중천>을 만든 감독은 왜 그 장면이 OK였는지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관객은 이제 그 장면이 OK인 것에 반박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중천>의 김태희가 촬영한 장면을 연기했을때 김태희만큼 잘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경험한 김태희가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다. 김태희에게 주어진 그러한 이점을 빼고라도, 내가 김태희보다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난 자신없다.

아이돌치고 연기경력이 좀 되는 최시원이지만 그의 연기는 사람들에게 큰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연기란 그만큼 어려운거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연기 못한다"고 판단한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연출자의 OK사인이 떨어진 것이다. 물론 연출자 입장에서 "완벽하다!!"며 OK를 냈을수도 있겠지만 "얘는 이거 이상 못할거야"라며 좌절의 OK를 냈을수도 있다. 어쨌든 OK는 OK다. 이제 우리가 TV나 영화를 보다가 '발연기'를 작렬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면 배우를 욕할 것이 아니라 연출자를 욕하자. 연출자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영화라면 모든 책임은 연출자가 져야 하는거다. 아마도 배우 입장에서도 감독님 욕 먹이기 싫다면 좀 더 연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원래 무슨 일이건 "나때문에 남이 욕먹는 경우"는 매우 가슴이 아픈 경우다.


여담1) 나름 진지하게 할려고 쓴 글인데 결론이 좀 코미디가 되어버렸다. 어쨌거나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배우의 연기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와 "만약 있다면 그 비난에는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었다. 독자의 대답은 무엇인가?

여담2) 일부 독자들은 이 글을 읽고 "그럼 아이돌 발연기도 비난할 수 없냐?"라고 물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배우' 이야기를 한 거다. 그리고 '비난'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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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깊은 하늘 2011.01.04 17:4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가끔 비난할 때 보면 그 캐릭터를 미워하는 데, 배우와 혼동해서 미워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여튼 중천의 김태희는 첫 대사부터 맥빠지게하는 면이 있긴 했어요. 왜 그런지 설명을 하기는 딱히 어려운데.. ;;;;

    • BlogIcon DAISHI ROMANCE 2011.01.04 18:02 신고 address edit/delete

      미워하는 것과 '연기력'을 비난하는 것은 다른 문제같네요..ㅋ
      여튼 <중천>의 김태희가 연기력 논란에 빠진 것도 다 이유가 있을거에요.





한동안 달력 찍고, 소시지빵 만들던 <무한도전>은 꽤 평화로워 보였다. 마치 최근의 <무한도전>은 난세에서 혼자 풍류를 즐기는 고수의 모습과 같았다. 그러나 난세의 영웅은 풍류를 즐기다가도 한 번 내지른 칼로 천하를 제압할 수가 있다. 달력찍고 놀고 있던 <무한도전>이 오랜만에 검을 꺼내들었다. 그 검은 '패닉룸', '7' 이후 다시 돌아온 소름돋는 게임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번주 <무한도전>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몰디브로 여행 간 3인(재석, 하하, 홍철)과 북극으로 여행 간 3인(준하, 명수, 형돈)은 2층 구조로 이뤄진 방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몰디브에서 켠 에어컨으로 인해 북극의 실외기가 돌아가면서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얼음이 녹은 물은 몰디브로 새어 들어온다.

그러나 이 순환구조가 정작 문제를 발휘하는 것은 '국내여행'을 즐기는 길이다. 길이 가진 사소한 생활습관 가운데 에너지 과소비가 북극의 얼음을 더 빠르게 녹이고, 몰디브는 빠르게 물에 잠긴다. 즉, 우리 국민들의 에너지 소비습관이 몰디브와 북극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게임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아주 바람직하고 공익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공익성 강한 메시지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2층과 1층의 갈등이다.

마치 남북관계를 연상시키는 듯한 소통의 부재와 무조건적인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북극과 몰디브의 갈등은 시청자들에게 꽤 그럴싸한 답답함을 안겨준다. 사실 서로의 상황을 모르는 두 진영에서는 어떻게 이 갈등이 시작됐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자의적인 해석만을 할 뿐이다.

재밌는 것은 이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이다. 서로 니가 잘했네 잘못했네 싸우던 두 진영은 갑자기 시작된 한 편의 영화를 보자 진정이 된다. '나비효과'라는 이름의 이 영화는 이들에게 닥쳐온 '공동의 위협'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한 집에서 엄마랑 아빠랑 싸우다가 강도가 침입하자 힘을 합해 싸우는 꼴이다. 뭐 프로그램 상에서 뚜렷하게 싸우지는 않지만 적어도 둘 사이의 갈등을 잠재울 화두는 된다.


현재 남북문제는 그 어느때보다 긴장이 고조된 상태고, 우리 국민들의 반북(反北) 감정도 여느때보다 높다. 이럴때 <무한도전>은 위험을 무릅쓰고 '평화'를 논한다. <무한도전>이 언급한 평화의 방법은 '공동의 문제'를 논하자는 것이다. 남측과 북측에 공통된 위협,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이 갈등과 긴장을 완화하는 길이라는 것이 <무한도전>의 주장이다.

물론 이것은 시기상조적인 이야기다. 연평도 포격의 상처는 아직 채 아물지도 않았고, 북측의 도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물론 북측의 도발에는 항전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 노력"이며 나아가 "대화를 시작하려는 자세"다.

어쩌면 이날 <무한도전>이 논한 '지구 온난화' 역시 남과 북에 공통된 화두가 아닐까 생각된다. 한 예로 백두산 화산이 곧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 동아시아 전체가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라도 북한, 중국, 일본 등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나라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조금은 시기상조인 것 같았던 <무한도전>의 평화론은, 어쩌면 가장 적절한 시기의 언급이다. 더 늦지 않게, 이 긴장의 정국을 타파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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